묵조선이란
조동종 굉지정각 스님이 체계화
중국 송대 조동종(曹洞宗)의 굉지정각(宏智正覺) 스님에 의해 형성되고 체계화된 수행체계가 묵조선(默照禪)이다.
묵묵히 앉아서 모든 생각을 끊고 행하는 것이라는 데서 나온 수행방법으로 간화선이 화두를 갖고 참선하는 것이라 면 묵조선은 화두 없이 참선하는 방법이다.
묵조선에서 ‘묵(默)’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어(語)’에 상대되 는 개념으로서의 침묵과 좌선이라는 수행행위의 의미이다. 후자의 개념이 더 잘 통용되고 있는데 〈굉지송고(宏智頌古)〉 의 제1법칙에서 “고요하고 차갑게 소림사에 앉아 있어도 천하에는 묵묵하게 온 법령이 제대로 지켜진다”라는 것처 럼 형태적으로는 앉아 있는 자세를 가리키고 있어 좌선 곧 수행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묵조선에서 ‘조(照)’는 삼조 승찬(三祖僧璨) 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서 “텅 비고 밝아 저절로 비추니 애써 마음 쓸 일이 없다. 비사량(非思量) 의 경계는 알음알이로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고 말한 것처럼 스스로 비추어 지(知)에 대한 자각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묵조는 신(身)으로서의 묵(默)과 심(心)으로서의 조(照)가 어우러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간화선이 공안을 통한 화두삼매를 중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묵조선은 일체 진리가 본래부터 완성되어 있다는 자 각을 중시한다. 그 자각은 바로 몸의 좌선을 통한 체험이고 심리적으로는 일체의 진리가 본래부터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묵조선은 그 깨달음으로 이끌어 나아가는 방법과 수행이 구체적으로 구분되어 있지는 않은게 사실 이다. 간화선을 체계화한 대혜종고 스님이 묵조선을 향해 ‘깨달음(悟)’이 없는 좌선이라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혜스님의 비판에 답한 묵조선 굉지정각 스님의 대답은 묵조선의 핵심을 잘 설명해준다. “오월도 중순이로구나. 농사 일이 한창이다. 일반적으로 밭을 가는 마음은 가을에 곡식을 거두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네는 그와 다르다. 벼가 익어도 나가서 거두어들일 생각을 않고, 그대로 비바람에 맞게 내버려 둘 뿐이다.
선지식들이여, 이 몸뚱아리 는 몸뚱아리 그대로 완성되어 있고, 두 눈은 두 눈대로 그대로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의 소식은 처음부터 털끝만치도 어긋남 없이 완전한 그대로이다. 그러니 늙은 여우같이 의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다시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
본래의 자리에 앉아서 좌선을 하면 술잔에 비친 것은 뱀이 아니라 바로 활의 그림자임 을 알리라”(굉지록 권1을 김호귀의 〈묵조선연구〉에서 재인용) 굉지스님의 대답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묵조선은 곧바로 깨달음을 기대하는 수행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를 깨달음의 현현(顯現)으로 익혀나가는 것이 묵조의 수행방법이다.
이는 본래 자성청정(自性淸淨)을 기본으로 하는 수행법으 로, 갑자기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내재하는 본래의 청정한 자성에 절대로 의지하 는 선이다. 묵조선에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또 다른 개념은 ‘이미(離微)’이다. 이(離)는 일체의 번뇌와 작위적인 행위를 떨 쳐버린 것이고, 미(微)는 만물속에 감춰져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자타의 구별없는 것이다.
“묵조(默照)의 도 (道)는 이미(離微)의 근본이다. 그러니 이미를 철견하게 되면 뛰어난 사기(梭機)가 된다.(굉지록 권8을 재인용) ” ‘이미’를 베틀에 비유한 굉지스님의 표현은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로 주객인 인(人)과 경(境)이 탈락한 깨달 음의 경계를 말한다. - 불교신문
금강선원 카페 글 http://cafe.daum.net/sunmoontemple/I6mU/4918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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