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해 (정수행(正修行))

수선님 2018. 6. 10. 12:40
                          

云何語中修觀 應作是念 由心覺觀鼓動氣息 衝於咽喉唇舌齒齶 故出音聲語言 因此語故 則有一切善惡等法 故名爲語 反觀語心 不見相貌 當知語者 及語中一切法畢竟空寂 是名修觀 如上六義修習止觀 隨時相應用之 一一皆有前五番修止觀意 如上所說


어떻게 말 하는 가운데서 관을 닦아야만 하는가.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만 한다. 죽은 사람은 입이 있는데도 무엇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말하는 것은 분별심이 호흡의 기운으로 요동하여 언어 음성이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언어는 안에서 호흡의 기운이 움직여 목과 입술과 혀와 잇몸과 충돌하기 때문에 음성이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이와 같지 않으면 말을 하고 싶은들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알아야 할 것은 입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인해서 말이 있다는 점이다. 만일 단순히 입만으로 말을 할 수 있다면 벙어리도 말을 할 수 있어야만 하는데, 그들은 무엇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가.

이를 통해서 말은 입만을 가지고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마음에서 분별심이 움직여 입으로 말을 할 때에 말을 하는 마음을 돌이켜 관찰해보면 안으로 육근, 밖으로 육진, 중간의 육식 등 그 어디에도 실체라고는 없다.

따라서 말을 하는 마음은 그 당체가 즉공, 즉가, 즉중이다. 말을 할 수 있는 마음만 즉공, 즉가, 즉중일 뿐만 아니라, 말 가운데 일체 선악 등 언어도 역시 즉공, 즉가, 즉중 이어서 필경 공적하다. 이와 같은 이치를 알면 말하는 가운데 관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옛날 제2조(第二祖) 혜가(慧可)대사는 초조인 달마대사 처소에 이르러 칼로 팔을 끊으면서 신심을 보이고 법을 구하였는데,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하면서 달마대사에게 말하였다.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십시오.”
달마대사는 말하였다.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너를 편안하게 해주리라.”
혜가대사는 답변하기를“마음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얻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자 달마대사는 말하였다.
“나는 너에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일을 끝냈다.”

이 경우가 바로 필경 공적한 지관의 의미와 서로 부합한다.

次六根門中修止觀者 一眼見色時修止者 隨見色時 如水中月 無有定實

두 번째로 육근이 육진을 마주하는 측면에서 수행하는 지관에 대해 밝히겠다. 최초로 발심한 사람이 지관을 수습하여 지관과 서로 호응하여 그 이익을 얻기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지관은 번뇌와 서로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마음의 모든 번뇌를 놓아 버리고 주관과 객관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내 몸에 대한 집착을 잊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 지관이라는 두 가지 법은‘집착을 타파하는 날카로운 도끼와 같고, 분별심을 없애는 강한 칼과 같으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사다리이며, 번뇌를 제거하는 오묘한 약’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만일, 하루 종일 지관을 잊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불도를 이루지 못하고 생사를 끝내지 못할까봐 걱정하겠는가. 그 때문에 육근이 한 경계를 마주한 가운데 수습하는 지관을 가르쳐 생각 생각에 지관을 떠나지 않고 간단없이 공부하는 법을 환하게 드러냈다.

육근이 육진을 상대하여 지관 수행한다는 것은 안근이 색진을 볼 때 수행하는 지관으로부터 제육의근이 법진을 마주하면서 수습하는 지관까지를 말한다.

육근 가운데 첫 번째 안근이 색경을 바라볼 때에 수습하는 지관은 눈이 안근에 보이는 갖가지 색상이 많기는 하지만 그것을 요약하면 세 종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는 현색(顯色) 인데, 현은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뜻이고, 색은 형질의 장애가 있다는 뜻이다. 현색은 청황적백(靑黃赤白)과 광명, 그림자, 어두움, 연기, 구름, 티끌, 안개, 허공 등을 말하는데, 분명히 환하게 드러나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 하나는 형색(形色)인데, 형은 형상의 의미이다. 장단방원(長短方圓)과 ,미세하고, 높고, 낮은 것과 올바르고, 올바르지 못한 것 등이 형색에 소속된다.

다음으로 표색(表色)인데, 표는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취사 굴신이 여기에 해당된다. 표색은 실재하는 물질이 아니라 행동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행동엔 표현이 있어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문에 표색이라고 말한다.

또‘아비담론’에서는 세 종류의 동일하지 않는 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볼 수 있고 마주할 수 있는 색이다. 일체 색신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세간의 색은 눈으로 볼 수 있고 또 안근과 상대적으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마주함이 있는 색인데, 안,이,비,설,신 등 오근과 색향미촉 등 사진이 여기에 해당된다. 안식은 볼 수는 없지만 색을 마주할 수 있고, 이식은 볼 수 없지만 소리는 마주할 수 있고, 신식은 볼 수는 없지만 촉을 마주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청정색으로서 승의근(勝義根)에 해당된다. 그리고 색,향,미,촉 등 사진은 너무도 작아 육안으로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지만 이, 비, 설, 신, 의근과 마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마주함이 있는 색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볼 수도 없고 마주함도 없는 색인데, 이는 무표색(無表色)에 해당된다. 우리의 제육의식이 과거에 보았던 경계를 인식할 때에 그것을 낙사영자(落謝影子)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의식 속에 그림자로 떠오른 색이다. 대체로 전오진(前五塵)은 의식으로 명료하게 분별하기는 하지만 단지 의식 속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그 내재한 색을 볼 수 없으며 역시 겉으로 드러나 상대적으로 마주함도 없다. 따라서 표현이 없는 색이라고 하여 무표색이라고 말한다.

지를 수행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서술한 갖가지 색을 눈가는 대로 따라 보면서 이 모든 것은 허공 꽃이고, 물속에 어린 달과 같아 있다 해도 실제 있지 않고, 있지 않다 해도 실제 있지 않는 상태에서 있기 때문에 단정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을 명료하게 알아야만 된다.



若見順情之色 不起貪愛 若見違情之色 不起瞋惱 若見非違非順之色 不起無明及諸亂想 是名修止

만일 내 감정에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색을 보면 마땅히 허깨비와 같고, 변화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는 것을 알고, 탐애심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내 감정을 위배하는 증오스런 색을 본다 할지라도 진심과 고뇌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또 내 감정에 위배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 색을 본다 할지라도 무명과 혼란한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를 두고 지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이상에서 밝혔던 현색, 형색, 표색 등 갖가지 색 가운데 낱낱이 모두가 감정에 순종하는 색, 위배하는 색, 위배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 색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수행자가 스스로 자세히 살펴야만 한다는 점이다.

 

 

                                                    - 중앙승가대학교 교수 송찬우 -  







수보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haha723/1400036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