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현삼매품(普賢三昧品) ▣
⊙ 합론
보현삼매를 간략히 설명하면 일(一)은 그 품명을 설명함이요, 이지(理智) 무변(無邊)한 것이니, 이름하여 보(普)라 함이요, 지혜가 그 근기를 따라서 이익케 함을 이름하여 현(賢)이라 한다. 삼매(三昧)의 삼(三)은 정(正)이요, 매(昧)는 정(定)이니 삼매는 정정(正定)이라 한다. 정정(正定)이 되어야 능히 지혜를 낸다 하였다. 이(二)는 서른 일곱 가지 물음에 어떤 것이 일체 보살의 수행의 바다이며, 어떤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바다이며, 어떤 것이 신통의 바다이며, 어떤 것이 바라밀의 바다이며, 어떤 것이 세계의 바다인가를 답함이 될새, 모름지기 정에 들어 중법(衆法)을 간택(簡擇)하여 앞에 물은 바를 답하여 대중으로 하여금 미혹(迷惑)한 것을 풀리게 함이라. 고로 이로 하여금 정에 들게 함이니라.
1. 보현보살이 삼매에 드시다
경문 그 때에 보현 보살 마하살이 여래 앞에서 연화장 사좌자에 앉으사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삼매에 들어갔다. 이 삼매는 이름이 일체제불비로자나여래장신(一切毘盧遮那如來藏身)이다.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성품에 들어가서 능히 법계에서 온갖 그림자를 보이시며 넓고 크고 걸림이 없어서 허공과 같고 법계 바다의 소용돌이에 따라 들어가며 온갖 삼매의 법을 출생하고, 널리 시방법계를 싸들이며 삼세 모든 법계의 부처님의 지혜광명바다가 모두 여기에서 나오고 시방의 나란히 널려 있는 바다들이 다 나타내 보이시며, 모든 부처님의 힘과 해탈의 모든 보살의 지혜를 모두 포함하여 간직하고, 모든 국토의 티끌들이 그지없는 법계를 널리 수용하며, 모든 부처님의 공덕바다를 성취하고, 여래의 모든 서원의 바다를 나타내 보이시며, 모든 부처님에게 있는 법륜을 굴리어 유통시키며 보호해서 끊이지 않게 하시었다.
⊙ 합론
불신소현(佛身所現 : 불신소현이란 부처님이 몸을 나투시는 관계로 항상 몸을 나투신다 하니라)이 일체 국토와 이 국토에 있는바 미진의 낱낱 티끌 가운데 세계의 미진수의 불 세계가 있고, 낱낱 부처님의 세계에 미진수의 모든 부처님이 계시거늘 낱낱 세계의 미진수 부처님의 세계가 있으며, 낱낱 미진수 세계에 보현보살도 다 또한 이 일체 제불의 비로자나여래장신삼매(毘盧遮那如來藏身三昧)에 듦이 있으시니라.
☞ 해설
경문에서 "법계의 소용돌이에 따라 들어가고…" 이하 구절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바로 우주가 항상 어떤 소용돌이에 따라서 미진수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는 구절이 나온다. 참으로 오늘날 과학의 세계에서 우리들이 이해하는 바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이라고 하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시방세계를 싸들이며' 가 무슨 말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블랙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이 시방법계를 싸들이며 그 곳에서 미진수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나온다고 하였다. 삼매에 들되 일체제불비로자나여래장신삼매라는 이름의 삼매에 든다는 것, 그것은 곧 여래의 삼매에 들어 간다는 뜻이다.
2. 부처님이 가피를 내리시다.
경문 그 때 낱낱 보현 보살에게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그 앞에 나타나시사 모든 여래께서 같은 믕성으로 찬탄하시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이것은 그대가 능히 일체제불비로자나여래장신삼매에 들어간 것이로다.
불자여, 이것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그대에게 가피하심이니 비로자나불의 본래 원력인 까닭이며, 또한 그대가 부처님의 행원력을 닦은 것이니라. 이는 여래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서 법륜을 굴리는 바이며 지혜의 바다를 열어서 나타내 보이는 연고이며, 시방의 모든 바다를 남김없이 나타내 보이는 연고이며, 온갖 모든 법의 실상에 들어가서 지혜를 증장하는 연고이며, 모든 중생의 근기를 잘 아는 연고이며, 능히 일체의 교법(敎法)의 바다를 가지는 연고이니라."
보현 보살마하살에게 그 때 지혜 성품에 능히 들어가서 부처님의 지혜를 이루는 성품에 들어가며, 이와 같이 마음으로 가피를 내리시었다.
⊙ 합론
저 때에 낱낱 보현 보살이 있어 시방국토에 낱낱 부처님이 계시어 그 앞에 시현하사(그 一은 口加요, 二는 意加요, 후는 身加이다.) 모든 여래가 한 가지 음성으로 찬탄하시되, 착하고 착하다. 네가 능히 일체제불의 비로자나여래장신인 보살삼매에 들었도다. 불자야, 이는 시방의 부처님이 한가지 너에게 가지(加持)하심이니 비로자나여래의 본원력(本願力)으로써 한 연고이며, 또 여래의 행원력(行願力)으로써 한 연고이니라. 일체 여래 지혜를 개현(開顯)하는 일이며, 시방의 모든 바다를 비추어서 남음이 없게 하는 연고이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잡념을 맑게 하여 청정을 얻게 하는 연고이며, 일체의 모든 큰 국토를 섭수(攝受)하여 착(着)하는 바가 없는 연고이며, 깊이 일체 제불경계에 들어가서 장애가 없는 연고이며, 널리 일체 불공덕을 연〔開〕 연고이며, 능히 일체제법실상에 들어가서 지혜를 더하는 연고이며, 일체 법문을 관찰하는 연고이며, 일체 중생의 근본을 요달하여 아는 연고이며, 능히 일체 제불의 가르친 바를 가지는 연고이니라.
☞ 해설
비로자나여래장신삼매(毘盧遮那如來藏身三昧)란 비로자나는 법신이니 곧 진리의 당체이다. 차(遮)는 '자'로 읽는다. 보통 우리들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그 진리의 당체는 항상 청정하다고 믿는다. 진리는 왜 청정한 것이냐 하면 일체의 언설이 붙으면 그것은 군말이며 군더더기가 되는 연고로 이미 진리와는 일만 팔천 리로 떨어지는 것이다. '여래장신' 이란 여래의 몸인데 여래의 몸은 미묘하여 감추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보현삼매에 드니 곧 여래의 몸이 그 삼매 안에 있다는 것이다.
♧ 소지 보살(掃地菩薩)
옛날에는 빨래를 할 때 아낙들이 개울가에 모여서 양잿물로 옷가지를 삶아내 편편한 돌덩이 위에 놓고 방망이로 내리쳐서 빨았습니다. 어떤 것들은 손으로 싹싹 비벼 빨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빨래하기가 좋습니다. 세탁기가 헹굼까지 다 해주고 또 물을 꼭 짜주니, 편할 뿐만 아니라 할 일이 없으니 그저 그만입니다. 또 물빨래를 할 수 없는 옷가지들은 전문 세탁소에다 맡기면 화공약품으로 그 옷가지들을 세탁해서 반듯하게 내놓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입는 옷가지 등은 세탁을 해서 우리의 차림새가 말쑥해지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중생의 때는 무엇으로 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은 세상살이에 찌들려 너무도 많은 때가 묻어 있습니다. 얼굴에 분 바르고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다녀도 그 사람 자체에서는 떼 국물이 줄줄 흐릅니다.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들에 묻은 때를 빼는 데에도 저 빨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부지런히 절에 나가서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도 그 중 한 가지요, 부처님 앞에 간절히 엎드려 절하는 것도 또 한 가지이며,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 봉사를 열심히 하여 공덕을 쌓는 것, 두려움에 떠는 중생에게 경전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한량없는 부처님 법문을 다른 이에게 전해 주는 방법 등 많이 있습니다.
정신과 육체는 둘이면서 하나인데 이 육체는 정신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입니다. 마음이 불안정한 사람은 얼굴에서부터 좋을 게 없습니다. 남 보기에 불안하게 보이고, 남도 편하지 않게 합니다. 매일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사람은 보기에도 너무나 화사해서 옆 사람에게까지 그의 미소가 옮겨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소일소(一笑一少)요, 일노일노(一怒一老)라 하지 않습니까?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노하면 한 번 늙어진다.
이와 같이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얼굴 색깔이 달라지고, 얼마만큼 공부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격이 달라지며, 이처럼 그 사람의 짓는 공덕이 달라지면 그 사람의 생각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은 항상 생각하는 것이 나쁜 일만 생각하기에 그의 미래는 자꾸 어두워져가고,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의 미래에는 좋은 일만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부처님 경전을 공부하면서도 '그래 짧고 굵게 사는 거야. 단번에 깨달음에 도달하여 모든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들은 그야말로 수행의 정수인데, 깨달으면 이 삶을 떠나 다른 삶이 있는 것처럼 서둘렀으니 말이죠. 우리들의 기도와 원력은 하루 이틀에 끝날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량없는 세월 동안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야 할 그런 업장들 입니다.
이 세상에 성공을 하고 싶은 사람은 변함없는 마음으로 일관성 있게 무엇인가 해나가야 합니다.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고, 그 뒤에 따르는 준비가 없다면 어떻게 성공이 나에게 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정진이라는 이 말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를 가르쳐 주는 그런 단어입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앞으로 계속 화엄경 백일법문을 올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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