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념처를 얻은 뒤에는 다시 생각한다. |
‘중생은 무슨 까닭에 이 몸에 탐착하는가?
곧 즐거운 느낌 때문이니, 왜냐하면 안의 6정(情)과 밖의 6진(塵)의 화합을 따르는 까닭에 6식을 내고, 6식 가운데 세 가지 느낌[三受]을 내나니, 곧 괴로운 느낌[苦受]ㆍ즐거운 느낌[樂受]․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이다.’ |
이 즐거운 느낌은 일체 중생이 바라는 바이고, 괴로운 느낌은 일체 중생이 바라지 않는 바이며,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은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
이런 게송이 있다. |
악을 짓는 이나 출가한 이나 |
하늘 무리나 인간이나 벌레들이나 |
[740 / 2071] 쪽 |
일체 시방의 5도 가운데 모두가 |
즐거움을 좋아할 뿐, 괴로움을 싫어하는 이 없으니 |
미치고 뒤바뀌고 어리석어서 |
열반의 항상한 즐거움 알지 못하네. |
수행자는 이 즐거운 느낌을 관찰하여 실제로 그것을 안다면, 즐거움은 없고 오로지 못 고통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즐거움이 진실한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뒤바뀜이 없어야 하거늘 일체 세간의 즐거운 느낌은 모두 뒤바뀜으로부터 생겨나 진실됨이 없기 때문이다. |
또한 이 즐거운 느낌으로는 아무리 즐거움을 구하여도 큰 고통을 받기만 한다. |
이런 게송이 있다. |
어떤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 폭풍을 만나면 |
파도가 솟구쳐 마치 흑산(黑山)과 같고, |
어떤 사람이 큰 싸움터에 들어가면 |
매우 험하고 거친 길을 지나야 하리. |
귀한 장자(長者)도 신분을 낮추어 |
소인들을 가까이함은 색욕 때문이니 |
이러한 갖가지 큰 고통들은 |
모두가 쾌락에 집착하는 탐심 때문이네. |
이런 까닭에 즐거운 느낌은 능히 갖가지 괴로움을 낸다는 것을 안다. |
또한 부처님께서 세 가지 느낌에 비록 즐거운 느낌이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즐거움이 적은 까닭에 괴로움이라 하는 것이다.
마치 한 말[斗]이나 되는 꿀도 강에 던져지면 꿀의 기운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
대지도론 237. ★ 수념처(수수관) - 몸에 집착하는 것은 즐거운 느낌 때문이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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