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해설

[스크랩] [碧巖錄] 제23칙 保福長慶遊山 - 보복화상과 산 봉우리

수선님 2018. 7. 15. 13:04

관련 이미지 <벽암록(碧巖錄) 제23칙에는 설봉 문하의 보복과 장경 화상이 산에서 노닐며 나눈 대화에 경청과 설두가 착어한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보복 화상과 장경 화상이 산에서 노닐 때, 보복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이 바로 경전에서 말하는 묘봉정(妙峰頂)이다.’ 장경이 말했다. ‘ 그렇기는 하지만 애석하군!’ 설두 화상이 착어했다. ‘오늘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산놀이해서 무엇 하겠는가?’ 또 말했다. ‘ 백 천년 뒤에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드물 것이다.’ (보복, 장경 두 사람은) 뒤에 경청에게 이 이야기를 제시하니, 경청 화상은 말했다. ‘ 손공(孫公: 장경)이 아니었더라면 온 들에 해골이 가득 널려 있었을 것이다.’”

 

擧. 保福長慶遊山次, 福以手指云, 只這裏便是妙峰頂. 慶云, 是則是, 可惜許. 雪竇著語云, 今日共這漢遊山, 圖箇什. 復云, 百千年後, 不道無, 只是少. 後, 擧似鏡淸. 淸云, 若不是孫公, 便見遍野.


이 공안은 <전등록> 제18권 장경전에 수록하고 있는 것인데, <조당집> 제10권에도 보인다. 보복종전(保福從展: ?~928)의 전기는 <조당집> 제11권, <전등록> 제19권에 수록돼 있다.

 

원오는 ‘평창’에, “보복과 장경, 경청은 모두 설봉의 제자이다. 세 사람은 똑같이 불도를 체득했고, 똑같이 불법을 깨달았으며, 똑같은 안목으로 진실을 보고, 똑같이 본래면목을 드러내고 지혜작용을 펼쳤으며, 한결같이 출입을 함께하며, 서로서로 날카롭게 질문하며 탁마하였다. 그들은 동시대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시하면 곧바로 근본을 알았다. 설봉의 문하에 평상시 선문답을 한 사람은 이 세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실 설봉의 문하에는 여기에 등장하는 세 사람을 비롯하여 운문문언, 현사사비, 남악유경(南岳惟勁) 등 뛰어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보복과 장경이 산에 노닐(遊山)면서 보복이 손가락으로 눈앞을 가리키며 ‘이곳이 바로 묘봉산의 정상’이라고 혼잣말로 말했다. 산놀이(遊山)는 불법의 대의를 체득한 선승들이 여러곳을 다니며 산수(山水)를 바라보고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노니는 것을 말한다. 〈조당집〉 제6권 동산장에 약산과 운암의 산놀이와 〈벽암록〉제36칙에는 장사(長沙)의 하루 유산(遊山)을 싣고 있다.

 

보복이 말한 묘봉산(妙峰山)은 수미산을 말한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권유로 구도심을 일으켜 최초로 방문하는 산인데, 덕운 비구가 거주하고 있다. 선재는 덕운 비구를 친견하기 위해 7일간 찾은 뒤에 산의 정상에서 조용히 경행하는 덕운 비구의 모습을 보고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동산록〉에도 동산양개 화상이 묘봉산을 소재로 한 선문답을 전하고 있다. 원오는 어느 스님이 조주 화상에게 묘봉고정(妙峰孤頂)에 대해 질문한 선문답을 평창에 인용하고 있다. 묘봉산은 깨달음의 세계, 일미평등(一味平等)의 절대세계로서 진실의 완전한 경지를 산에다 비유한 것이다.

 

〈전등록〉제10권에 장사경잠이 “백 척의 긴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말한 ‘백척간두(百尺竿頭)’도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같은 의미이며, 〈임제록〉에도 깨달음의 경지(向上門)를 고봉정상(孤峰頂上)으로 중생교화의 보살도(向下門)를 십자가두(十字街頭)로 표현하여 설법하고 있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현상의 차별세계가 모두 깨달음의 경지인 묘봉정상에 귀결되고, 이 정상에서 다시 만법의 차별세계가 펼쳐진다. 불법 진실의 대의를 완전히 체득하면 깨달음의 세계인 묘봉산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묘봉산을 멀리서 찾아 헤매고 있다. 그래서 보복은 장경이 이 묘봉산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 원오가 ‘수시’에 “옥(玉)은 불로서 시험하고, 금(金)은 돌로서 시험하고 칼은 터럭으로 시험하고 물은 지팡이로 시험한다”는 마찬가지로, 보복은 묘봉산으로 장경의 안목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보복이 제기한 말을 들은 장경은 “그렇지. 묘봉산이 깨달음의 경지이긴 하지만, 애석하다(可惜許)”라고 보복에게 한방 먹이고 있다. 장경의 ‘애석하다’는 말의 의미는 원래 깨달음의 세계, 진리의 정상(頂上)은 이름도 없고, 뭐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는 것인데, 그대는 ‘묘봉정(妙峰頂)’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는 것은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쓸데없는 짓은 그만하는 것이 좋다고 질책한 말이다. 이 한마디에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고 말았다. 원오도 장경의 말에 “보통 사람 같으면 보복의 질문에 혹란되어 묘봉산에서 죽은 인간이 되겠지만, 역시 장경은 지혜의 안목으로 보복의 속을 훤히 다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애석하다’라는 말을 했다”는 의미로 착어하고 있다.

 

설두는 “오늘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산놀이해서 무엇 하겠는가?”라고 착어하고 있다. 즉 ‘보복과 장경이 산놀이한다면 산놀이답게, 철저하게 유산(遊山)의 유희삼매에 몰입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산놀이하면서 〈화엄경〉의 묘봉산 이야기를 제기하여 깨달음의 경지가 어떻고, 이러쿵 저러쿵 논의 한다면 산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영감들하고 산놀이 한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라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원오도 이러한 설두의 착어에 “보복과 장경의 몸값이 떨어졌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코멘트하고 있다.

 

설두는 또 “백년 천년 뒤에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드물 것”이라고 착어하고 있다. 즉 백년 뒤나 천년 뒤에도 보복과 장경과 같은 선지식이 출현하기는 하겠지만, 아마도 이러한 안목을 갖춘 선승은 지극히 드물 것이라는 의미이다. 앞의 착어는 비판한 것이지만, 뒤의 착어는 지극히 높이 칭찬한 것이다.

 

보복과 장경은 뒤에 산놀이에서 돌아와 경청(鏡淸)에게 이 이야기를 제시하니, 경청은 “손공(孫公; 장경)이 아니었더라면 온 들에 해골이 가득 널려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보복이 ‘여기가 묘봉산’이라고 한 말에 대하여 장경이 ‘애석하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참선수행자가 모두 깨달음의 경지(묘봉정상)에 안주하고 정체되어 지혜의 작용이 죽은 수행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불법수행으로 깨달음의 경지를 체득한 뒤에는 깨달음의 세계인 묘봉산에서 내려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도를 실행하지 않으면 모두 묘봉산의 정상에서 죽은 시체가 되고 말았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죽은 시체의 해골이 천지에 늘려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경청이 ‘해골(??)이 들에 널려 있다’고 말한 것은 해골을 제기하여 무심의 경지에서 본래면목의 지혜작용(본지풍광)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등산은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인데, 산의 정상에 올라서면 그 곳엔 아무 것도 없고, 텅빈 허공만 보일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정상을 오른 목적은 무엇인가? 사실 등산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상의 집(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목적이다. 중요한 것은 산의 정상에서 자신의 위대한 보살도의 삶을 실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산에 오르는 인내와 체험의 지혜(능력)를 자신의 집에서 일체중생과 함께 보살도의 삶으로 회향하며 사는 것이다. 선에서는 이것을 깨달음의 경지를 초월해서 지금 여기 자신의 일을 통해서 불법의 지혜로운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설두는 게송으로 읊고 있다. “보복이 묘봉정이라고 절대의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 것은 벌써 차별세계에 떨어진 말이다. 보복이 묘봉정을 들고 나온 것은 장경이 절대 평등의 깨달음의 경지를 분명히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인데, 장경은 ‘애석하다’”고 말했다. 설두는 “쓸데도 없는 묘봉정을 누구에게 주려고 하는가?”라고 보복을 다구치고 있다. 보복과 장경의 선문답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손공(장경)이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땅바닥에 해골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대는?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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