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스크랩] 남방불교에서의 염불念佛, 붓다에 대한 명상, 불수념佛隨念

수선님 2018. 8. 12. 13:12

남방불교에서의 염불念佛, 붓다에 대한 명상, 불수념佛隨念.

 

염불念佛은 뜻 그대로 ‘붓다를 생각하는 것’이다. 남방불교에서는 이를 ‘붓다에 대한 명상(Buddhāussati, 佛隨念)이라고 부른다. 남방불교에서의 붓다에 대한 명상은 대승불교에서 목탁을 치면서 붓다의 명호를 부르는 것과 달리,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붓다의 공덕을 회상하는 수행이다. 붓다에 대한 명상은 사마타 수행법 중에서 10가지 수념 중에 하나이다. 수념(隨念, anussati)은 ‘계속해서 생각함, 되풀이해서 생각함’이란 의미한다. 그러므로 붓다에 대한 명상은 붓다를 계속해서, 되풀이해서 회상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방불교에서는 붓다를 찬송할 때 항상 외우는 구문이 있다. 이것이 여래십호(如來十號)이다.

 

Itipiso bhagavā arahaṁ sammā sambuddho

이띠삐소 바가와 아라항 삼마 삼붇다

Vijjācaraṇa sampanno sugato lokavidū

윗자짜라나 삼빤노 수가또 로까위두,

Anuttaropurisa dammasārathi

아누따로뿌리사 담마사라띠

Sattā deva manussanaṁ buddho bhagavāti 

삿따 대와 마누싸낭, 붇도 바가와.

 

이런 이유로 세존께서는(Itipiso bhagavā)

공양을 받을만한 분이시며(Arahaṁ, 應供),

스스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며(Sammā-sambuddho, 正遍知),

지혜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이시며(Vijjā-caraņa-sampanno, 明行足)

잘 가신 분이시며(Sugato, 善逝)

세상을 잘 아시는 분이시며(Lokavidū, 世間解),

가장 높은 분이시며(anuttaro, 無上士)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분이시며(Purisadammasārathi, 調御丈夫),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며(satthādevamanussānaṁ, 天人師)

부처님이시며(Buddho, 佛),

세존이시다(Bhagavāti 世尊).

 

여기에 나오는 10가지 붓다의 공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공양을 받을만한 분 | Arahant, 應供

2. 스스로 바르게 깨달으신 분 | Sammā sambuddha, 正邊知

3. 지혜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 | Vijjā Caraṇa Sampañña, 明行足

4. 바르게 잘 가신 분 | Sugata, 善逝

5. 세상을 잘 아시는 분 | Lokavidū, 世間解

6. 가장 높으신 분 | Anuttara 無上士

7.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분 | Purisadamma Sārathi, 調御丈夫

8. 신과 인간의 스승 | Satthā Deva Manussāna, 天人師

9. 진리를 깨달으신 분 | Buddha, 佛

10. 세존 | Bhagavā, 世尊

 

붓다에 대한 명상은 붓다의 10가지 공덕을 회상하는 것이다. 청정도론 제 7장(Vis.7.2-67)에 나오는 붓다에 대한 명상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대림스님의 청정도론에서 발췌했음)

 

1. 아라한 Arahant : 아라한에 대한 정의는 5가지가 있다.

 

     1) 모든 오염원과 습관적 성향을 남김없이 완전히 제거하였기 때문에 아라한이다.

2) 아라한도(道)의 검으로써 모든 오염원을 잘라 버렸기 때문에 아라한이다.

3) 무지와 갈망으로부터 연기의 수레바퀴를 부수어 버렸기 때문에 아라한이다.

4) 누구와 비길 데 없는 계행, 선정, 지혜로 신과 인간에게서 최상의 존경을 받기 때문에 아라한이다.

5) 홀로 있더라도 몸, 말, 생각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아라한이다.

 

이 명상을 닦기 위해서는 아라한에 대한 5가지 정의를 기억하고 암송해야 한다. 이 5가지 정의에 마음을 기울인다. 다음에 그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라한에 대한 정의를 선택하여 그 의미를 대상으로 삼고 ‘아라한, 아라한’ 하면서 계속해서 명상한다. 나머지 9개의 공덕에 대해서도 방법은 같다.

 

2. 스스로 바르게 깨달으신 분 Sammā sambuddha : 붓다는 사성제, 십이연기, 오온, 12처, 18계, 팔선정과 멸진정 등을 스스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바르게 깨달으신 분’라고 외우면서 명상한다.

 

3. 지혜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 Vijjā Caraṇa Sampañña : 지혜에는 8가지가 있고 실천은 15가지가 있다. 8가지 지혜는 6신통 + 위빳사나 지혜 +마음으로 이루어진 신통이다. 15가지 실천은 계율에 의한 단속, 감각기능의 단속, 음식의 단속, 깨어있음, 교학, 양심, 수치심, 믿음, 정진, 마음챙김, 통찰지와 색계 사선정이다. 이렇게 ‘지혜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라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명상한다. 또는 일체지와 대연민심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지혜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이라고 명상한다.

 

4. 바르게 가신 분 Sugata :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팔정도의 길을 따라 닙바나(열반)로 멋지게 잘 가셨기 때문에 바르게 가신 분이다. 수다원도, 사다함도, 아나함도, 아라한도로서 오염원을 버리고 가셨고, 버린 오염원이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기 때문에 바르게 가신 분이다. 상견과 단견의 양극단에 빠지지 않고 가셨기 때문에 바르게 가신 분이다.

 

2) 바르게 설하시기 때문에 바르게 가신 분이다. 붓다는 사실도 아니고 이익도 되지 않으면 설하지 않는다. 사실이지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설하지 않는다. 사실이면서 이익도 되지만 남이 듣기에 거북해한다면 설하지 않는다. 사실도 아니고 이익도 되지 않은 것은 남이 듣기 좋아한다고 해도 설하지 않는다. 사실이면서 이익도 되고 남이 듣기 좋아하는 말이라면 그 말을 할 시기를 알아서 설하신다. 이와 같이 바르게 설하시기 때문에 바르게 가신 분이다. 이렇게 ‘바르게 가신 분’이라고 외우면서 명상한다.

 

5. 세상을 잘 아시는 분 Lokavidū : 세상에는 3가지가 있다. 상카라의 세상, 중생의 세상, 공간의 세상이다. 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들이 상카라의 세상이다. 이 몸 안에서 세상이 일어나고 세상이 소멸하고 세상의 소멸로 이끄는 도의 길이 있다. 세상을 잘 아는 이는 세상의 끝에 이르러 청정범행을 완성하여 이세상과 저세상을 바라지 않는다. ②중생의 세상이란 세상이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는가?(有, 無, 非有非無, 亦有亦無)를 아는 것이다. 또는 중생들의 습성과 잠재성향을 아는 것이 중생의 세상이다. ③공간의 세상이란 삼계와 삼천대천세계 즉 무색계 천상에서 지옥까지 수직의 세상과 수평으로 온 우주를 말한다. 이 3가지 ‘세상을 잘 아시는 분’이라고 외우면서 명상한다.

 

6. 가장 높으신 분 Anuttara : 계(戒), 삼매(定), 지혜(慧),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에서 붓다와 동등한 자가 없다. 붓다께서는 ‘신과 인간을 포함해서 나보다 더 계를 구족한 사람이 없다.(S.i.139)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나머지 4가지 덕에서도 붓다를 능가한 자가 없다. 이렇게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외우면서 명상한다.

 

7. 사람들을 잘 길들이시는 분 Purisadamma Sārathi : 붓다는 인간뿐만 아니라. 코끼리, 용왕, 야차, 제석천왕까지 길들이셨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고 부드럽게 길들이신다. 이렇게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분’이라고 외우면서 명상한다.

 

6과 7을 합하여 하나의 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가장 높으신 분과 잘 길들이시는 분을 합하면 ‘사람을 길들이는데 비길 데가 없는 분(Anuttara Purisadamma Sārathi 無上士 調御丈夫)’ 이 된다.

 

8. 신과 인간의 스승 Satthā Deva Manussāna : 현생과 내생 그리고 닙바나를 가르치기 때문에 스승이다. 험난하고 무서운 사막과 황무지를 건네 평화의 세계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스승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신과 인간의 스승’이라고 외우면서 명상한다.

 

9. 진리를 깨달으신 분 Buddha : 깨달아야 할 것을 모두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님이다. 사성제를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님이고, 중생들을 깨닫게 하기 때문에 부처님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붓다’라고 외우면서 명상한다.

 

10. 세존 Bhagavā : 십바라밀을 완성하고 피안에 이른 행운을 가졌기 때문에 세존이다. 다섯 가지 마라, 즉 오염원의 마라, 오취온의 마라, 업형성력의 마라, 신의 마라, 죽음의 마라를 부수었기 때문에 세존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부수었고 모든 나쁜 법을 파괴했기 때문에 세존이다. 무한한 복덕을 지니셨기 때문에 세존이다. 모든 법을 분석하고 드러내고 보이셨기 때문에 세존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세존’이라고 외우면서 명상한다.

 

‘이런 이유로 아라한이시며, 이런 이유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며..... 이런 이유로 세존이시다.’라고 붓다의 10가지 공덕을 회상할 때, 수행자의 마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오장애가 억압되고 마음이 바르게 되면 일으킨 생각, 지속적인 고찰, 희열, 경안이 일어난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이 일어난다. 행복이 일어나면 마음이 부처님의 덕을 대상으로 근접삼매에 든다. 하지만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붓다의 덕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하므로 본삼매에는 들지 못한다.

 

붓다의 덕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수행을 하면 믿음이 강해지고 마음챙김이 깊어지고 통찰지가 깊어지고 공덕이 깊어진다. 희열과 행복이 일어나고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며 고통을 이겨내고 항상 붓다와 함께 사는 것과 같은 인식이 일어난다. 붓다의 덕을 생각하고 있으면 자신도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서원이 생겨난다. 계를 범하려고 해도 양심과 수치심이 일어나 계를 범할 수 없다. 그리고 통찰지를 개발하지 않았더라도 선처에 태어난다.

 

남방불교에서의 염불은 대승불교에서 뭔가를 희구하며 명호를 외우는 염불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방불교에의 염불은 붓다의 공덕을 회상하며 붓다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생기게 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출세간의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한다. 반면에 대승불교에서의 염불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는 출세간적 수행이 아니고 탐욕을 일으켜 뭔가 이득을 얻고자 하는 지극히 세간적인 것이다.

출처 : 법구경(法句經) 이야기
글쓴이 : 무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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