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스크랩] 죽음과 재생연결식 / 비판

수선님 2018. 8. 12. 13:07

죽음과 재생연결식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인식과정의 끝에서 혹은 잠재의식이 다할 때

금생의 마지막인 죽음의 마음[사몰심(死沒心)]이 죽음으로서 일어났다가 멸한다.

그 죽음의 마음이 멸하자마자 바로 다음에 그와 같이 잡은 대상을 대상으로 하여

재생연결마음[재생연결식(再生聯結識)]이 일어난다.

 

재생연결 마음은 경우에 따라서 심장토대를 갖기도 하고,

혹은 갖지 않기도 하며,

무명의 잠재성향에 의해 던져졌고,

갈애의 잠재성향에 뿌리박은 상카라[행(行)]에 의해 생겼으며,

관련된 마음부수들과 결합되어 있으며,

함께 생겨난 마음부수들에게 활동무대가 됨으로써 이들의 선구자가 된다.

 

금생다음 생연결하기 때문에

재생연결이라 불리는 이 마음이 일어나서 다음 생에 확립된다.

 

 

<해설>

 

1.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 마지막 인식과정은 바왕가[意根]가 방해받으면서 시작된다.

바왕가는 한 찰나 동안 동요하고 정지된다.

그 다음은 다섯 감각의 문[오문(五門) : 안이비설신]의 하나에 어떤 감각의 대상이 나타나서 그 오문 과정이 시작되거나,

마음의 문[意門]에 나타난 감각의 대상이나 마음의 대상을 대상으로 삼아 의문과정이 시작된다.

이 맨 마지막의 자와나(속행)과정은 아주 미약하기 때문에 보통의 일곱번이 아닌 오직 다섯번의 심찰나만 일어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보통 속행과정이 가지는 생산업의 능력이 없다. 

단지 재생연결을 일으키는 역활을 한다고 여겨지는 과거의 을 위한 통로의 역할을 한다.

 

다섯 가지 속생의 단계 다음에는 두 가지 등록의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바왕가(잠재의식)가 마지막 인식과정에 따라 오기도 한다.

그럴 경우에는 맨 마지막의 마음인 죽음의 마음이 금생으로부터 떠나가는 기능을 수행한다.

죽음의 마음이 멸하면 생명기능은 끊어진다.

그러면 육체는 단지 온도에서 생긴 무정물의 덩어리로 남게 되며, 그렇게 해서 송장이 가루가 되어 없어질 때까지 지속된다.

 

2. 그 죽음의 마음이 멸하자마자 : 죽음의 마음이 멸하는 순간을 따라 새로운 세계에서 재생연결마음이 마지막 자와나(속행)의 과정에서 얻은 그 대상인지하면서 일어난다.

이 마음은 물질이 있는 세계에서는 심장토대를 의지하고, 무색계의 세계에서는 토대가 없이 일어난다.

이것이 상카라 들에 의해서 생겼다고 표현한 것은 바로 전생의 마지막 속행의 과정에서 생겼다는 뜻이다.

속행의 과정이 바로 유익하거나 해로운 이 일어나는 상카라. 의도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생의 마지막 속행의 과정은 윤회의 과정에서 두 가지 뿌리에 근거하고 있으니 그것은 무지의 잠재성향과 갈애의 잠재성향이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상권  479-4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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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미혹한 자 모든 경우에서 (인식[識]의) 무더기들[식취온]무너짐죽음(死)이라고 이해하지 않고, ‘중생이 죽는다. 중생이 다른 몸으로 건너간다.’ 라고 상상한다.

태어남미혹한 자모든 경우에서 (인식[識]의) 무더기들[식취온]나타남태어남(生)이라고 이해하지 않고, ‘중생이 태어난다. 중생의 새로운 몸이 나타난다.’ 라고 상상한다.

(현세에서) 무더기(5溫)요소(18界)장소(12處)의 연속이요, 끊임없이 진행됨 윤회[* 편집자 주 : 지금 여기 현실에서 정신적 괴로움을 가져오는 어리석은 인식(識)의 찰나생 찰나멸 윤회]라고 한다.

윤회미혹한 자 위와 같이 설한 윤회를 그렇게 이해하지 않고, ‘이 중생이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간다. 다른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다.’ 라고 상상한다.


상카라[행(行)]특징에 미혹한 는 상카라들의 개별적인 특징과 일반적인 특징[무상, 고, 무아]을 이해하지 않고, 상카라들을 자아, 자아에 속한 것, 항상한 것, 행복, 아름다운 으로 상상한다.

연기들에 대해 미혹한 는 상카라들의 전개과정이 무명 때문이라고 이해하지 않고, 자아가 알기도 하고 혹은 모르기도 하며, 자아가 행하고 혹은 행하게 만들고, 재생연결에 나타난다고 한다.

원자 등이 깔랄라[kalala, 대중부에 의하면 보디삿뜨바들은 모태(母胎)에서, 태아의 정상적인 발전 단계(최초의 1주일)] 등의 상태로 을 형성하게 하고 감각기능(根)들을 갖게 한다고 한다.

그 감각기능들을 가진 자는 닿고, 느끼고, 갈애하고, 취착하고, 애를 쓴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다른 존재로 생존한다고 [상상하거나] 혹은 “모든 중생은 운명우연의 일치와 천성의 틀에 짜여 있다(D.i.53)"라고 상상한다.

그는 무명에 눈이 가려 이렇게 상상하면서 마치 맹인이 땅 위를 걸을 때 길이건 길이 아니건, 불쑥 솟아올랐건 움푹 패었건, 평평하건 평평하지 않건 닥치는 대로 그곳을 걷는 것처럼 공덕이 되는 행위도 짓고, 공덕이 되지 않는 행위도 짓고, 흔들림 없는 행위 짓는다.“

 

<청정도론 제3권 17장  중에서> http://cafe.daum.net/bd-dm/Ffu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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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

 

 

다제 비구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너는 참으로 '나는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識)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안다.' 라고 그와 같이 말하였는가?"

 

  다제 비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참으로 세존께서 '지금의 이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어떤 것이 식(識)인가?"

 

  다제 비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이 이란 말하고 깨달으며, 스스로 짓고 남을 짓게 하며, 일어나고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여기저기서 선하고 악한 을 지어, 그 과보를 받는 입니다."

  

  세존께서 꾸짖어 말씀하셨다.

 

  "다제 비구야, 너는 어떻게 내가 그렇게 설법하였다고 알고 있으며, 누구에게서 내가 그렇게 설법을 하더라고 들었느냐?

어리석은 사람아, 나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너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는구나.

어리석은 사람아, 모든 비구들에게 꾸짖음을 들었으면 너는 그때 마땅히 법대로 대답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모든 비구들에게 물어보리라."

 

  이에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비구들아, 너희 또한 내가 '지금의 이 식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설법했다고 기억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너희는 내 설법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저희는 세존께서 '연(緣)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라고 설법하신 것으로 압니다.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방편으로 '을 따르게 때문에 일어난다.

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세존께서는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아, 너희는 내가 그렇게 설법한 것을 알고 있구나.

왜냐하면 나도 또한 그렇게 '식은 연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라고 설법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식은 연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라고 말했다.

 

식은 연하는 바를 따라 생기는데, 이란 곧 빛깔을 연하여 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식이 생긴 뒤에는 눈의 식(眼識)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을 인연하여 이 생기고, 식이 생긴 뒤에는 뜻의 식(意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이 연하는 바를 따라 생기는 것과 같나니, 그 이란 나무를 연하여 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불이 생긴 뒤에는 나무의 이라고 말한다.

또 풀이나 똥 무더기를 연하여 생긴 불은 풀의 불, 똥 무더기의 불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식은 연하는 바를 따라 생기는데, 그 연이란 곧 눈과 빛깔을 연하여 식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식이 생긴 뒤에는 눈의 식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과 법을 연하여 식이 생기고, 식이 생긴 뒤에는 뜻의 식이라 하느니라."

 

  세존께서 다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는 내가 이렇게 설법한 것을 알고 있구나.

그런데 저 어리석은 사람 다제 비구는 그 뜻과 글을 거꾸로 받아 이해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거꾸로 받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모함비방하고, 스스로 자기를 해쳤으며, 계를 범하고 죄를 지어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이 나무람을 받고, 또 큰 죄를 지었다.

어리석은 사람아, 네가 이렇게 악하고 착하지 않은 줄을 알겠느냐?"

 

                                                                            중아함경 제54권 《201. 다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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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사띠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좋은 일이 못됩니다.

세존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띠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는 조건 지워져서 일어난다[緣起]고 설하셨습니다.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는 그 비구들과 더불어 반문하고 대꾸하고 대화하였지만 그 삿된 견해를 완강하게 국집하고 고집하여 주장하였다.


“도반들이여, 저는 세존께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識)가 건너가고 윤회한다.' 라고 설법하셨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라고.
(비구들이 사띠를 데리고 세존께 가서 지초지종을 다 말씀드리자 세존께서 사띠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띠여, 그러면 어떤 것이 알음알이(識)인가?”


“세존이시여, 그것은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서 좋고 삿된 들의 과보경험하는 입니다.”


“이 쓸모없는 인간이여, 도대체 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고 있는가?

쓸모없는 인간이여, 참으로 나는 많은 방편으로 알음알이조건 지워져서 일어난다고 설하였고,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쓸모없는 인간이여, 그러나 그대는 자신이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부덕을 생기게 하는구나.

쓸모없는 인간이여, 그러니 그대는 긴 세월을 이익됨이 없고 괴롭게 될 것이다.” <중략>


“비구들이여, 마치 무엇이든 그것을 반연하여 불이 타면 그것에 의해서 용어가 생기나니,

장작 반연하여 불이 타면 장작불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지저깨비를 반연하여 불이 타면 지저깨비불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짚을 반연하여 불이 타면 짚불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소똥을 반연으로 하여 불이 타면 소똥불이라는 용어가 생기며,

왕겨를 반연으로 하여 불이 타면 왕겨불이라는 용어가 생기며,

쓰레기를 반연하여 불이 타면 쓰레기불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 참고 : 제자의 죽음 앞에서 부처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 : 기름등불 http://cafe.daum.net/bd-dm/BQ8r/44)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무엇이던 그 조건을 반연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바로 그것에 의해서 용어가 생긴다.

형색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눈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귀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코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혀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몸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마노[意]와 법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마노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중략>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역시 이와 같이 설하고 나도 역시 이와 같이 설한다. '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즉,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行]들이,

의도적 행위[行]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識]가,

알음알이[識]를 조건으로 정신-물질[名色]이,

정신-물질[名色]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六入]가,

여섯 감각장소[六入]를 조건으로 감각접촉[觸]이,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느낌[受]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갈애[愛]를 조건으로 취착[取]이,

취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 남[生]이,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老死],

근심·탄식·괴로움·슬픔·절망이 생겨난다. => 12연기 유전문 순관

 

이와 같이 이것이 전체 괴로움의 덩어리[5취온苦] 일어남이다.”

[집성제(지금 여기 현실에서의 괴로움 (원인)발생 구조인 12연기 유전문), 제헹무상] => [고성제(5취온苦), 일체개고]

(* 외도의 주장경 [4성제] 설명 부분 참고 : http://cafe.daum.net/bd-dm/AHxb/15)

(* 연기법에 쓰인 용어의 의미 http://cafe.daum.net/bd-dm/ALiV/93)


“그는 눈(眼)으로 형색[色]을 보고서 [6입] => [촉] => [수]

사랑스러운 형색에는 홀리게 되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색에는 혐오한다.

그는 몸에 대해서 마음 챙김[念]을 확립하지 못하고 머문다.

마음은 제한되어 있고 그에게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심해탈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이와 같이

무슨 느낌[受]이든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모두 좋아하고 싫어하는데 치우쳐서 그런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다.

그가 그런 느낌[受]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으므로 기쁨[愛]이 일어난다.

느낌들에 대한 기쁨이 바로 취착[取]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老死], 근심·탄식·괴로움·슬픔·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이것이 전체 괴로움의 덩어리[5취온苦]일어남이다.

[집성제(유전문, 제행무상)] => [고성제(5취온苦, 일체개고)]


귀(耳)로 소리를 듣고서, …

코(鼻)로 냄새를 맡고서, …

혀(舌)로 맛을 보고서, …

몸(身)으로 감촉[觸]을 닫고서 …

마노(意)로서 법을 분별하여 알고서

사랑스러운 법에는 홀리게 되고, 사랑스럽지 않은 법에는 혐오한다.

그는 몸에 대해서 마음 챙김을 확립하지 못하고 머문다.

마음은 제한되어 있고 그에게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이와 같이 무슨 느낌이든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모두 좋아하고 싫어하는데 치우쳐서 그런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다.

그가 그런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으므로 기쁨이 일어난다.

느낌들에 대한 기쁨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근심·탄식·괴로움·슬픔·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이것이 전체 괴로움의 덩어리가 일어남이다.” (M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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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o We Have to Know About Dependent Arising?

 

의존적 일어남[연기법]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For the purpose of learning and cultivation, we must know dependent arising. Because nobody understands it, it has become a fallacy. The ordinary people’s fallacy is similar to Bhikkhu Sati’s belief: “Only the consciousness is going around in samsara.” This bhikkhu insisted that there was a “person,” “self,” or “sentient being” in the consciousness, which dwelled in samsara from one lifetime to the next. Believing that the consciousness has a “person,” “self” or “sentient being” that is perpetually going around in samsara is a fallacy resulting from ignorance of the nature of dependent arising.

 

배우고 수행하기 위해 의존적 일어남[연기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도 의존적 일어남[연기법]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릇된 믿음' 이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그릇된 믿음은 빅쿠(수행승) 사띠믿음과 유사합니다.

 

즉 "의식(識)만이 윤회한다"는 그릇된 믿음입니다. 

빅쿠 사띠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윤회하여 머무르는 의식(역주 : 후대의 아비담마에서 말하는 재생연결의식바왕가)에 '사람', '자아', 또는 '유정체' 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식이 영속적으로 윤회하는 '사람', '자아', 또는 '유정체'를 가진다는 믿음의존적 일어남의 법(담마)을 모르는 것에서 생긴 그릇된 믿음입니다.

 

 

All the bhikkhus tried to convince Bhikkhu Sati to abandon the fallacy, but Bhikkhu Sati was adamant about his view. The bhikkhus then told the Buddha about it, and the Buddha talked to Bhikkhu Sati. The Buddha asked him, “Do you really have such a concept?” Bhikkhu Sati said, “There is only the consciousness that is going around in samsara.” The Buddha then asked, “What is this consciousness that you speak of?” Bhikkhu Sati replied, “Esteemed Buddha, the consciousness is the entity that can talk, feel, or receive all the karmic repercussions.”

His was a very serious fallacy: a consciousness that facilitates talking, feeling, and receiving of all karmic repercussions.

 

모든 빅쿠들(수행승들)이 빅쿠 사띠그릇된 믿음을 버리도록 설득했으나, 빅쿠 사띠는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빅쿠들은 붓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붓다께서는 빅쿠 사띠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정말로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빅쿠 사띠는 "의식만이 세상을 돌며 윤회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붓다께서는 "그대가 말하는 이 의식은 무엇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빅쿠 사띠는 "존경하는 붓다시여, 이 의식은 말하고 느낄 수 있고 모든 의 영향(결과)을 받는 실체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띠의 견해는, '말하고 느끼는 것을 돕고 모든 의 영향(결과)을 받는 의식이 있다'는 매우 심각한 그릇된 믿음입니다. 

 

 

Ordinary people do not know why it is a fallacy because they believe, as Bhikkhu Sati did, that the consciousness exists perpetually. Since they are used to the idea, they do not consider it a fallacy. It is false to believe that the consciousness is perpetual, that it exists and acts on its own, and that it is not dependent arising. Consciousness, a manner of dependent arising, is devoid of ego. It manifests in an instant because of the interaction of mutually dependent conditions, and it advances to successive stages.

 

보통사람들은 빅쿠 사띠가 믿고 있었던 것과 같이, '의식영속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왜 그릇된 믿음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보통사람들은 이 견해에 익숙해져, 이것이 그릇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식영속하고, 존재하며, 그 스스로 작용하고, 의존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그릇된 믿음입니다.

 

의존적으로 일어나는 방식의 의식에고가 없습니다.

의식서로 의존하는 조건상호작용 때문에 한 순간에 나타나서, 이어지는 단계로 진전됩니다.

 

 

Bhikkhu Sati maintained that there was an ego or a consciousness with an ego that went around in samsara. This consciousness did not only exist in the instant but also persisted to the next life. He called the ego that could talk, feel, or receive karmic repercussions consciousness.

 

빅쿠(수행승) 사띠는 세상을 돌며 윤회하는 에고, 또는 에고를 가진 의식이 있다는 견해를 유지했습니다.

의식은 이 순간존재할 뿐만 아니라 다음 으로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빅쿠 사띠는 말할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영향(결과)을 받는 에고의식이라고 했습니다.

 

 

The common view prevents people from seeing the fallacy. Consciousness is devoid of ego. If consciousness exists, then it is dependent arising. It is a natural phenomenon manifested from successive occurrences due to mutually dependent conditions. It is not an entity.

 

보통 견해는 사람들이 그릇된 믿음을 그릇된 것으로 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의식에는 에고가 없습니다.

의식존재하면 그것이 의존적 일어남입니다.

이것은 상호 의존적 조건때문에 잇다른 사건으로부터 나타나는 자연적 현상입니다.

이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http://cafe.daum.net/bd-dm/G1Xy/7

 

 

* 참고 : 정견(正見)이 먼저 정립되어야...[사견(邪見)이 괴로움의 원인!] http://cafe.daum.net/bd-dm/BGji/257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 http://cafe.daum.net/bd-dm/BGji/219

연기법에 쓰인 용어의 의미 http://cafe.daum.net/bd-dm/ALiV/93

연기의 원리 http://cafe.daum.net/bd-dm/G1Xy/4

12연기의 12가지 구성 요소[아주 중요!] http://cafe.daum.net/bd-dm/ALiV/98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http://cafe.daum.net/bd-dm/AHxr/19

[중도연기법] 가전연경(迦旃延經) http://cafe.daum.net/bd-dm/BQ8r/34

외도의 주장 경(전생론, 창조론, 무인론) : 10선계, ... 4성제, 12연기, 5취온, 8정도 http://cafe.daum.net/bd-dm/AHxb/15

[업·윤회·전생]은 무엇인가 http://cafe.daum.net/bd-dm/ALiV/86

[무아]와 [윤회]의 모순 논쟁에 대한 [붓다의 뗏목] 카페의 입장 http://cafe.daum.net/bd-dm/Fzc9/3

각묵스님[남방불교 입장]의 윤회에 대한 시각에 대한 비판 http://cafe.daum.net/bd-dm/Fzc9/1

김성철교수[북방불교 입장]의 윤회에 대한 시각에 대한 비판 http://cafe.daum.net/bd-dm/Fzc9/4

초전법륜경(붓다의 첫번째 법문) http://cafe.daum.net/bd-dm/ALiV/19

무아상경(붓다의 두번째 법문) http://cafe.daum.net/bd-dm/AHxP/29

오온과 오취온 http://cafe.daum.net/bd-dm/ALiV/83

오온-무아(五蘊-無我) http://cafe.daum.net/bd-dm/ALiV/107

자신을 섬으로 경(S22.43, 自燈明經) 자등명법등명을 위해 오온을 관찰하라 http://cafe.daum.net/bd-dm/AHxP/39

모단경(毛短經) : 유신견(5취온), 무상 고 무아, 해탈(지견) http://cafe.daum.net/bd-dm/AHnF/121

연소경(붓다의 세번째 법문)  http://cafe.daum.net/bd-dm/AHxP/27

불교의 핵심교리[4성제, 12연기 유전문, 환멸문, 4법인] 간략하게 정리 http://cafe.daum.net/bd-dm/ALiV/80

지금 여기에서 당장 현실적으로 적용가능한 4성제[12연기]로 재정립해야... http://cafe.daum.net/bd-dm/ALiV/79

불교의 핵심교리 논리적 체계 http://cafe.daum.net/bd-dm/ALiV/1

열반경(涅槃經) - 29연기 http://cafe.daum.net/bd-dm/ALiV/16

[4성제]를 중심으로 불교의 수행 [29연기관계] 체계적 종합 정리 http://cafe.daum.net/bd-dm/ALiV/39

5전경 참고 : http://cafe.daum.net/bd-dm/ALiV/15

7처경 참고 : http://cafe.daum.net/bd-dm/ALiV/60

66경 참고 : http://cafe.daum.net/bd-dm/AHz7/6

대념처경(大念處經)[4념처(四念處)] http://cafe.daum.net/bd-dm/ANKx/92

위빠사나 4념처 마음챙김 수행  [참고 : 사마타 수행] http://cafe.daum.net/bd-dm/ANKx/96

입출식념경(入出息念經, 아나파나사티 숫타)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http://cafe.daum.net/bd-dm/ANKx/79

7각지 http://cafe.daum.net/bd-dm/ANKx/51

* 붓다의 최후 법문 * http://cafe.daum.net/bd-dm/AM39/6

[양머리]를 걸어두고서 [개고기]를 팔지는 말아야 한다! http://cafe.daum.net/bd-dm/Fa4t/8

출처 : 붓다의 뗏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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