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라.
산이 좋은데 왜 다시 산에서 나오는가.
뒷날 나의 자취를 잘 지켜보시오.
나는 한번 청산에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라.
僧乎莫道靑山好 山好如何復出山
승호막도청산호 산호여하부출산
試看他日吾踵迹 一入靑山更不還
시간타일오종적 일입청산경불환
- 최고운
고운(孤雲, 857~?) 최치원 선생은 호를 해운(海雲)이라고도 한다. 869년(경문왕 9년)에 13세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유학한 지 6년 만인 874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중국에서 벼슬을 살다가 885년에 귀국하여 신라에서 시독 겸 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 등의 벼슬을 살았다. 후에 관직을 내놓고 난세를 비관하여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글씨를 잘 썼으며 문장이 뛰어나서 사산비문(四山碑文)이 유명하다. 기울어져 가는 신라의 국운을 뒤로 하고 가야산에 들어가서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아무튼 세상과 인생을 버리고 입산하러 가다가 산 어귀 홍류동에서 산을 내려오는 스님들을 만났다. 산이 좋아 세상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산다는 사람들이 다시 산을 내려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는 고운 선생에게는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은 시다.
그는 이 시를 짓고 가야산에 들어간 이후 다시는 세속에 내려오지 않고 뒷날 신선이 되었다는 말만 전해질 뿐이다. 그 징표로서 지금도 해인사의 학사대에는 고운 선생이 꽂아 두었던 지팡이가 큰 나무로 자라있다. 해인사 건너편 산에는 그가 살았다는 고운암도 있다.
필자는 어려서 가야산 해인사에서 살았다. 강원을 거쳐 선방에 들어가서 이 시를 외면서 크게 깨닫기 전에는 산을 내려가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였다. 깨닫기 위해서 모든 인간적인 삶을 모두 포기하였다. 그러면서 이 시를 반야심경보다도 더 많이 읊조리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또 포기하였다. 깨닫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붓도 꺾어 버리고 그 동안 많은 글을 기록해 두었던 노트도 불살라버렸다. 참으로 깊은 인연이 있는 시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②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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