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되새기기

[스크랩] 교만한 사람에게 주는 교훈

수선님 2018. 9. 1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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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바라문이 찾아왔는데 이름이 ‘교만’이었다. 그에게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었다. 우선 그의 가계(家系)는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가였다. 그의 조상은 바라문들로서 7대를 내려오면서 깨끗하고 흠결 없는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머리도 매우 총명했다. 온갖 책을 읽어 말을 하면 논리가 정연하였고 만 가지 이치에 통달해 있었다. 용모는 단정한 미남이었으며 체격도 대장부답게 훤출했다. 또 재산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부유했다. 다만 그는 자만심 때문에 절대로 고개를 숙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교만 바라문’이라 불렀다.


이런 그가 어느 날 부처님을 뵙기 위해 기원정사를 찾아온 것이었다. 부처님이 설법을 한다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는 이 날도 황금마차에 일산을 받쳐든 하인들을 앞뒤로 세우고 거드름을 피웠다.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은 부러워하며 그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러나 부처님만은 그가 오든지 말든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교만 바라문이 기분이 상하여 돌아가려고 했다. 이를 알아챈 부처님이 그에게 말했다.


“진리를 배우러 온 사람이 교만한 마음만 더해 가지고 돌아가는구나.”


부처님으로부터 의외의 정문일침(頂門一鍼)을 맞은 교만 바라문은 그제서야 자신의 허물을 깨달았다.


“부처님, 어떻게 해야 교만한 마음을 내지 않고 남을 공경하는 마음을 낼 수 있습니까?”


“모든 번뇌를 조복받은 아라한을 보라. 그들은 바른 지혜로써 탐진치를 떠나고 모든 교만한 마음을 항복받았다. 이렇게 어질고 거룩한 사람에게는 항상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한 부모와 어른과 존경할 만한 모든 사람에게 마땅히 교만한 마음을 내지 말고, 스스로 낮추어 인사하고 마음을 다해 받들어 섬기며 공경해야 한다.”


잡아함 4권 92경 《교만경(驕慢經)》


권력 있고 돈 많은 사람,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하는 행동거지를 보면 눈꼴이 시어서 견디지 못할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들은 도대체 겸손할 줄 모른다. 다른 사람은 무조건 자기 발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지 웬만하면 반말지꺼리다. 자기는 무슨 별종이라고 생각하는지 보통 사람하고는 식사나 차마시는 것조차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 배를 내밀고 팔자걸음으로 걷고, 목에는 철심을 박았는지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어디 가서든 특별대우를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별종들은 절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돈과 권력을 앞세워 거드름을 피우며 으스댄다. 심지어는 부처님께 예배할 때도 특별한 대우를 요구한다. 이런 사람을 부처님이 보셨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교만에는 두 가지 악덕이 따라다닌다. 하나는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겸손의 미덕을 잃음으로써 더 이상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교만에 빠져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성장과 발전을 멈춘 사람이 참 많다. 부처님을 만나 하심(下心)을 배우지 못한 탓이 아닌가 모르겠다.


옛날 얘기 한토막.


큰 절 입구에 보면 ‘하마비(下馬碑)’라는 푯말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오라는 표시다. 조선시대는 척불이 자심해서 관리나 양반이 여기서 말을 내려 걸어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는 법당 앞까지 말이나 사인교를 타고 행차하는 일마저 있었다. 이를 참다 못한 스님들이 꾀를 냈다. 법당 바로 앞에 누각을 지으면서 아래층을 일부러 낮추어 지었다. 말을 타거나 사인교를 타고 법당 앞으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였다.


법당 앞의 누각은 보통 ‘보제루(普濟樓)’라고 현판하고, 절에서 큰 법회를 할 때 사용하는 공간이다. 스님들이 설법을 통해 가르치는 것은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관리나 양반들이 교만한 마음으로 법당 앞까지 말을 타고 들어오니 누각을 낮춰서 강제로 내리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방문객의 교만한 마음을 꺾겠다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참 절묘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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