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같이 간경수행을 통해 본성을 찾는 길이 분명하니 간경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선가에서 불립문자라 하여 교를 배우는 것을 꺼리고 경전마저 멀리하니 그것은 눈뜬 장님을 만드는 결과로써 눈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두운 밤길을 등불도 없이 가는 것처럼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불립문자란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즉 문자에 갖히지 말라는 것이지 문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현재 부처님과 만나서 부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이니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어찌 허물이 되겠는가. 허물이 있다면 보는 자가 지혜로써 궁구하지 아니하고 생각으로 분별하고 지식을 쌓는 데만 급급한 것이니,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젖을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드는 것과 같다. 모든 이치가 그러하겠거니와 더구나 경전은 부처님의 현신일진데 어찌 그길을 통하지 않고 도에 이를 수 있겠는가.
간경의 필요성과 바른 태도를 간명하게 밝히신 죽창수필의 내용을 인용해 보겠다. 이 글은 계율의 부흥과 선정일치를 강조하신 명대의 주굉스님(1535~1615)이 말년에 후학들을 위해 저술한 것으로 공부하는 자에게 아주 요긴한 말씀들이다.
나도 소시에는 선비들이 불교를 비방하는 것을 보고, 선입견과 경솔한 판단으로 깨닫지 못했었다. 그 후 우연히 계단(戒壇)과 강당(講堂)에서 몇 권의 경을 구하여 읽어 보고는 비로소 크게 놀라며, '이같은 책을 읽어보지 못했던들 거의 인생을 허송할 뻔하였다'하고 생각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장성하고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눈에 스쳐본 적이 없는 자들이 무수하다. 실로 보배산을 눈앞에 두고도 찾아나서지 않는 자들이라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비록 읽기는 하지만 말만을 따라 이야깃거리로 삼거나, 자신의 문장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데 불과하며, 어려서부터 장성하고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잠시도 그 이치를 궁구하려 하지 않는다. 그 보배산을 찾아 나서기는 했으나, 그 보배를 찾아 취하지 않는 자라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비록 토론하고 강연하기는 하지만, 또한 글자나 풀이하고 문장을 해석하면서 서로 아만을 내세우는데 불과하여, 어려서부터 장성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잠깐도 진실하게 수행하고 실천하지 않는다. 보배를 취하여 손에 가지고 놀거나 감상하며, 혹은 품 속에 넣고 옷 소매 속에 간직했다 도로 내버리는 자들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식전(識田)에 물들면 마침내 道種을 이루게 될 것이니, 그러므로 불경을 불가불 읽어야 한다.
또 다른 한 편의 글에서는
어떤 참선에 대하여 자부하는 자가 "달마는 문자를 세우지 않았다. 견성하기만 하면 그만이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염불을 자부하는 자도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분을 만나는 것이다. 어찌 반드시 경전이 필요하랴" 하였다. 이 두 사람이 진정으로 얻은 것이 있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면 굳이 더 논할 일이 아니거니와, 실제 얻은 것이 없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런 일들은 대개 자신의 교리에 통달하지 못한 허물을 숨기려 하는 자들일 것이다.
나도 평소 염불을 숭상해 왔으나, 애써 사람들에게 경전을 읽기를 권하고 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염불의 가르침이 어찌 저절로 온 것이겠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경전 속에 기록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중생들이 어떻게 10만억 찰 밖에 아미타불이 계신 줄 알 수 있겠는가. 또한 참선하는 이들은 교 밖에 따로 전한 것이라고 핑계하고 있으나, 교를 여의고 참구하는 것은 삿된 因이요, 교를 버리고 깨닫는 것은 삿된 견해임을 알지 못하였다. 비록 그대가 참구하여 깨달았다 하더라도 반드시 경교로써 인증해야 할 것이요, 교와 더불어 합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모두 邪見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유교를 배우는 자는 반드시 육경과 사서로써 표준을 삼아야 하고, 불교를 배우는 자는 반드시 삼장 십이부로써 근본을 삼아야 한다.
경전이 아니라면 어떻게 불법을 만날 수 있으며 부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겠는가. 경전을 멀리하는 것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가 부모 곁을 떠나 멀리 가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낱 미망을 벗어버리지 못한 범부중생으로써 부처님 곁을 떠나고자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늘 경전을 보고 마음에서 잊지 않아야 몸과 마음에 허물이 생기지 않고 불법을 향해 올곧게 나아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