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30송 (론서)

[스크랩] 혜거스님 유식 30송 강의 제 21 강

수선님 2018. 9. 23. 12:26

< 혜거스님 유식30송 > 제 21 강

 

제 28 송

若時於所緣 智都無所得

爾時住唯識 離二取相故


만약에 소연경(所緣境)을 대할 때 무분별지(無分別智)로 (인식하여) 도무지 얻을 바가 없으면 그 때 비로소 진여(眞如)를 증득(證得)하여 유식의 진승의성(眞勝義性)에 주(住)하게 되리니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두 분별상(分別相)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 송(頌)은 수행자가 발심하여 자량위(資量位)를 거쳐서 가행위(加行位)에서 더욱 증진되고 이 위(位)에서 통달(通達)의 경지에 이르게 됨을 밝혔기 때문에 이 위(位)를 통달위(通達位) 또는 견도위(見道位)라고 한다.

통달위(通達位)는 자량위(資量位)를 거쳐 가행위(加行位)에 이르러서도 일체이치(一切理致)에 대한 소지장(所知障)이 있어서 유식성(唯識性)을 요달하지 못하고 진여경계(眞如境界)를 증득하지 못하지만 가행위(加行位)의 마지막 경지인 세제일위(世第一位)에 이르러 망념의 구름이 걷혀 본래 존재하는 달을 볼 수 있으므로 통달위(通達位)라 한다.

통달(通達)이란 소지장(所知障)이 없어지고 2공(二空)에 의해 현현(顯現)된 진여(眞如) 즉 보리실성(菩提實性)을 요해(了解)한다는 뜻이다. 이 위(位)를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는 것은 요해(了解)가 곧 견(見)이며 실성(實性)이 곧 도(道)이기 때문이다.

제2구의 지도무소득(智都無所得)은 지(智)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말한 것이니 능(能)·소(所)·2취(二取)가 공(空)임을 관해서 2공진여(二空眞如)를 실증(實證)하여 심(心)과 경(境)을 모두 여의면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으니 이것이 곧 무분별지(無分別智)요, 또는 근본지(根本智)라고도 한다. 근본지를 성취하면 모든 경계(所緣境)에 무소득(無所得)일뿐 아니라 능관(能觀)의 지(智)도 무소득이므로 지도무소득(智都無所得)이라 한다.

제4구의 이2취상고(離二取相故)는 마음[心]과 경계[境]가 모두 공하면 지(智)는 오직 직관적 작용일 뿐이다. 이러한 무분별지(無分別智)는 만류(萬類) 중에 차별(差別)을 여의므로 이를 진리(眞理)라 하고 이 경지에서 유식성(唯識性)에 주(住)하게 된다. 능(能)·소(所) 2취(二取)의 상(相)을 여의면 만법은 모두 진여(眞如)이고 평등(平等)이며 이 평등진여가 곧 유식의 실성(實性)이다.

수행자가 도(道)를 닦는 과정에서 자량위(資量位)·가행위(加行位)·통달위(通達位)를 경과하게 되는데 이 위(位)가 곧 3현위(三賢位)이다. 이 위(位)는 유식의 실성(實性) 곧 진여법성(眞如法性)이기 때문에 능과 소의 2취 분별상(分別相)을 여읜 그 자리이다.


제 29 송

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捨二粗重故 便證得轉依


무분별지(無分別智)는 무득(無得)이며 부사의(不思議)이며 출세간(出世間)의 지(智)이다.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라는 두 가지의 조중(粗重)한 종자를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보리(菩提)·열반(涅槃)이라는 두 가지 전의과(轉依果)를 증득할 수 있다.


이미 28송에서 언급한 자량(資量)·가행(加行)·통달(通達)의 각 위(位)는 아직 수도(修道)의 준비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송(頌)에 이르러 비로소 진정한 수도과정에 입문(入門)하게 되므로 이 위(位)를 수습위(修習位)라 한다.

수행자가 유식성(唯識性)을 깨달으면 이미 전도지견(顚倒知見)에 속한 번뇌를 깨끗이 소제할 수 있다. 전도지견(顚倒知見)은 10사(十使) 번뇌를 말한 것으로 앞에서 말한 3현위(三賢位)를 거쳐 이미 10사(十使) 번뇌 가운데 5리사(五利使)는 여의었으나 아직 5둔사(五鈍使)가 남아 있는 것을 본송(本頌)의 수습위(修習位)에서 이를 멸진(滅盡)하게 된다.

10사(十使) 번뇌의 5리사(五利使)와 5둔사(五鈍使)는 이미 12송(十二頌)에서 밝혔으므로 여기서는 대략 정리하고자 한다.

5리사(五利使)는 6번뇌(六煩惱) 곧 탐(貪)·진(瞋)·치(痴)·만(慢)·의(疑)·악견(惡見) 중 맨 끝의 악견(惡見)에 속하는 번뇌로서 이치를 미혹하므로 견혹(見惑)이라고도 하는 번뇌이다. 이렇듯 잘못된 견해에 5종(五種)이 있어서 5리사라 한다.

① 신견(身見) : 아견(我見)이다. 일체만법(一切萬法)이 환(幻)인 줄 알지 못하고 아(我)가 실유(實有)한다고 여기는 견(見)이다.

② 변견(邊見) : 인간이 한번 죽으면 모두 멸하여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을 말한 것으로 이를 단견(斷見)이라 한다.

③ 사견(邪見) : 인과를 믿지 않고 모두를 운명에 맡겨서 방종, 방만한 생각을 하는 것을 말한다.

④ 견취견(見取見) : 자신의 견해만을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⑤ 계금취견(戒禁取見) : 잘못된 계율이나 법을 집착하는 견해이다.


이상과 같은 다섯 가지 견해가 너무 강해서 이를 악견(惡見)이라 하는데 수행자가 먼저 악견(惡見)을 여의고 견도통달(見道通達)의 위(位)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본송(本頌) 수습위(修習位)에서는 앞에서 이미 악견(惡見)을 여의었으므로 탐(貪)·진(瞋)·치(痴)·만(慢)·의(疑)의 5둔사(五鈍使)는 사상(事上)의 구염(垢染)에 속하므로 끊기가 매우 어려워서 크게 닦아 수습해야 하는 수습위(修習位)에서 멸진(滅盡)할 수 있고 이를 멸진해야 비로소 성불의 문(門)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1구(一句)에서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라 한 것은 번뇌장(煩惱障)을 끊어서 대열반을 증득하고 소지장(所知障)을 끊어서 대보리를 증득하기 위해서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수습해야 한다. 이 지(智)는 능취(能取)와 소취(所取)를 멀리 여의었으므로 무득(無得)이라 하며 그 묘용(妙用)을 헤아리기 어려우므로 부사의(不思議)라 한다.

2구(二句)의 시출세간지(是出世間智)는 무분별지(無分別智)는 18계에 주(住)함이 없고 견문각지(見聞覺知)를 떠났기 때문에 세간지(世間智)가 아니다. 또 능취(能取)와 소취(所取) 수면(隨眠)이 세간의 근본인데 이를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출세간지(出世間智)라 한다. 이 근본지(根本智)는 지(智)의 체(體)가 무루(無漏)이기 때문에 진여(眞如)를 증득한다. 이 송구(頌句)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체무득(體無得)이요, 둘째는 용부사의(用不思議)이며, 셋째는 성출세간(性出世間)이다.

3구(三句)에서 조중(粗重)이라 한 뜻은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의 종자 즉 2취습기(二取習氣)를 말한 것이다. 이것은 분단생사(分段生死)와 변이생사(變異生死)의 근본으로 세(細)도 아니고 경(輕)도 아니므로 거칠고 무겁다는 뜻으로 조중(粗重)이라 한 것이다.

4구(四句) 맨 끝에 전의(轉依)라는 뜻은 전(轉)은 굴린다는 글자인데 여기에 굴려서 버린다는 뜻과 굴려서 얻는다는 두 가지 뜻이 있어 이를 전사(轉捨)·전득(轉得)이라 하고 의(依)는 소의(所依)의 뜻으로 곧 제8식의 소의처(所依處)를 말한다. 종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제8식은 그 안에 번뇌와 소지 2종의 종자를 저장하고 있으며 또한 보리와 열반의 종자도 저장하고 있다.

여기서는 제8식을 의지하여 번뇌와 소지 2장(二障)의 종자를 버리고[轉捨] 열반과 보리의 종자를 얻으므로[轉得] 두 가지 조중(粗重)을 버리고 보리 열반의 두 가지 전의과(轉依果)를 증득함을 말한다. 이상 2조중(二粗重)을 버리고 2전의(二轉依)를 증득하여 불과(佛果)를 이루기 위하여는 10바라밀을 닦아 10지(十地)에 이르러야 한다.

 

-이글은 월간 '불광'지에 연재 된 혜거스님의 글입니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마니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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