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7. 육문과 육경의 상호작용

수선님 2018. 10. 14. 11:24

7. 육문과 육경의 상호작용

위빠사나 수행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림이라는 마음의 작용(行)으로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우리의 하루를 살펴보면 매 순간마다 눈 귀 코 혀 몸의 감각기관이 외부에 대상인 형상이나 소리 냄새 맛 감촉들과 만납니다. 그러면 즉시 안으로 마음의 작용인 느낌(受)과 생각(想)과 의도(行)가 일어나서 몸으로 입으로 어떤 행위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행이 이런 일련의 진행 과정들은 수명이 매우 짧은 한 찰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새로운 대상과 촉하면서 대상에 대한 정보의 수신과 발신을 거의 동시에 하고 나면, 그 현상은 무대 뒤로 사라지고 즉시 새로운 현상이 다시 무대 위에 올려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라고 알고 있는 물질과 정신은 조건에 의해 한 순간 일어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면서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즉 물질과 정신은 조건에 의해 찰나생 찰나멸 하면서 계속 흐르기 때문에 실제로 어느 순간도 내 것으로 붙잡을 수 없고, 그냥 그 흐름에 나는 떠밀려갑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이렇게 머무르지 않고 계속 흐르는 물잘과 정신의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깨어서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아차리는 마음은 현재를 자기 고정관념으로 덧칠을 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이런 바른 마음에서 바른 생각과 바른 말과 바른 행위가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살아온 습관의 힘에 떠밀려 이런 물질과 정신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대상을 촉하는 순간 일어나는 감수작용(느낌)과 지각작용(정보)을 나라고 집착하는 어리석음에 의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이 시키는 대로 즉시 말과 행위를 합니다.

만일 알아차림이 있다면, 매 순간마다 접촉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 때문에 느낌이 시키는 대로 행위를 하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적절한 행위를 제어하고 바른 행위를 합니다.

예를 들면, 홍길동이 금강산 유점사로 스승인 백운도사를 찾아갈 때를 연상해봅시다. 홍길동의 여섯 감각기관은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눈으로 보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귀로 듣고, 꽃향기 흙냄새를 코로 맡고, 입안에는 달달한 침이 고이고,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과 햇빛을 느끼며, 마음으로는 조금 후에 만날 백운도사를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아리따운 낭자가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홍길동은 어느새 백운도사의 생각이 멈추어지고 낭자라고 알아보는 순간 좋은 느낌에 이끌려 낭자에게 말을 붙여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낭자에게 다가가서 유점사 가는 길을 물어봅니다.

이와 같이 마음은 오관 중에서 한 순간에 한 대상을 선택하여 그 대상을 보거나 듣는 마음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다시 다른 대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매우 빠르게 진행됩니다.

이때 알아차림이 없으면 여섯 감각기관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처럼 느끼면서 이들을 모두 내가 보고 내가 느끼고 내가 아는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이 몸과 마음을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알고 살아온 습관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홍길동은 알아차림이 없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유점사를 가고, 내가 아리따운 낭자를 보고, 자기가 느낀 좋은 느낌에 넘어가 낭자에 대한 갈애가 일어나서 낭자에게 말을 붙이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만일 홍길동이 알아차림을 하고 있었다면, 경치를 볼 때 현재의 마음이 경치를 보고 있음을 알고, 새소리를 들을 때 소리를 듣고 있음을 알고, 꽃향기를 맡을 때 단지 코에서 냄새를 맡을 뿐이며, 때때로 현재의 대상에 대하여 좋다 싫다 분별이 일어나면 그것을 다시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부딪치는 대상을 알아차릴 뿐, 대상에 대하여 좋다거나 예쁘다는 생각과 느낌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욕망에 의한 말이나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수행자에게 알아차림이 이어지면 그냥 그런 외부의 대상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자신을 알아차리느라 바쁩니다. 이렇게 마음이 현재의 대상을 알아차리면, 그 순간 마음은 갈애나 집착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때 홍길동이 길을 모르면 낭자에게 길을 묻지만 다른 뜻이 없었으므로, 갈애로 인해 생기는 괴로움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몸은 다섯 감각기관이 있어 이와 짝을 이루는 외부의 다섯 대상과 만나면 대상을 아는 마음이 일어나고, 대상과 관련된 과거의 정보들인 상과 함께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덤덤한 느낌이 올라옵니다. 이런 상과 느낌의 결과로 대상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하겠다는 의지작용이 일어나, 실제로 몸으로 입으로 행위를 하며 새로운 업을 생성하고 사라집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인 6근과 6경이 촉할 때 외부대상을 아는 마음과 함께 내부에서 수상행도 함께 일어나고 또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실재하는 것은 조건에 의해 생멸하는 색수상행식의 다섯 무더기이며, 이 오온이 계속 원인과 결과로 끊임없이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온은 識이 앞에서 受想行과 色을 이끌며, 함께 일어났다가 함께 사라지고, 다음 순간 새로운 대상에 의한 새로운 다섯 가지 무더기가 다시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이런 오온의 상호작용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무명과 갈애가 다할 때까지 흘러갑니다.

이처럼 마음은 여섯 감각기관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자기와 맞는 짝이 나타나면 그 대상을 아는 기능을 합니다. 다만 한 순간에는 하나의 감각기관만 작용하며, 오관을 통하여 받아들인 대상을 의식이 조사하고 결정하여 새로운 업을 짓게 됩니다.

즉 마음은 대상이 있으면 반드시 일어납니다. 지금 나타난 대상이 원인이 되어 그것을 아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 찰나에 그 대상과 함께 그 마음도 사라집니다. 마음은 한 순간에 두개의 대상을 접수하지 못하고 한 마음이 두 순간을 머물지도 못합니다.

어떤 마음도 어떤 행위도 어떤 느낌도 어떤 지각작용도 어떤 물질적 현상도 두 찰나를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이 오온의 무상한 특성입니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 어디에도 나의 것이나, 나이거나, 나의 자아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여러 조건들이 모여서 이 순간의 물질과 정신을 만들고 사라질 뿐입니다. 또 다음 순간 새로운 조건에 의한 물질과 정신이 일어나고 또 사라집니다. 어느 순간도 변하지 않는 나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통찰하는 것이 위빠사나의 지혜입니다.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이러한 오온의 상호작용들의 흐름을 직관하여 단지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오온의 생멸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긴 통찰 지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 것이라고 알고 있던 두꺼운 고정관념을 깨고, 오직 조건에 의해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흐름의 존재라고 정확하게 인식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을 소멸하게 됩니다. 이렇게 오온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소멸하면 그것이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인 열반입니다.

출처 : 정신을 바짝차리고
글쓴이 : 해맑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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