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라자가하(王舍城)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흉악’이라는 별명을 가진 촌장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흉악’이라고 부르는 것에 무척 속이 상해 있었다.
“부처님, 사람들은 저를 가리켜 자꾸 ‘흉악’이라고 부릅니다. ‘선량’이라고 불려도 뒤에서 욕하는 사람이 많을 터에 ‘흉악’이라고 불리고 있으니 그 다음은 듣지 않아도 뻔할 것입니다. 도대체 저는 어떤 행동을 했기에 이렇게 나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지요?”
부처님은 촌장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촌장이여, 그대는 무엇보다도 바른 견해를 갖지 못하여 남에게 화를 잘내고, 화를 내기 때문에 나쁜 말을 하며, 남들은 그 때문에 그대에게 나쁜 이름을 붙이느니라. 또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업,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생각, 바른 선정을 닦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화를 내는 것이니라. 스스로 화를 내면 남을 화나게 만들고, 남이 화를 내면 자신은 더욱 화를 내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그대는 흉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느니라.”
“부처님,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는 바른 소견을 닦지 않아서 남에게 화를 잘 내고, 화를 잘 내기 때문에 나쁜 별명이 붙었나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화를 내는 일과 거친 말을 삼가하겠나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간단하면서도 마음에 와닿았던지 그는 그 자리에서 삼보에 귀의하고 재가 신자가 되기를 다짐했다.
잡아함 32권 910경 《흉악경(凶惡經)》
별명은 그 사람의 인격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제2의 이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샌님’으로 불린다면 그는 왠지 통이 작고 오종종한 사람처럼 보인다. 반대로 ‘멋쟁이’라든지 ‘신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람은 어쩐지 멋있어 보이고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별명은 갖고 싶다고 해서 붙여지거나 갖기 싫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별명은 그 사람이 살아온 행위의 결과로서 붙여진 것이다. 별명은 자기가 남에게 어떻게 보여왔느냐에 따라 붙여지는 것이므로 그렇게 불려지는 것은 자기 탓이지 남의 탓이 아니란 얘기다. 따라서 별명을 바꾸려면 먼저 행동을 바꾸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리고 행동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 경의 삽화가 그것을 잘 말해 준다.
멋지고 훌륭한 별명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사기꾼’이나 ‘도둑놈’으로 불리거나 ‘쪼다’나 ‘바보’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인상으로 각인돼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떤 별명으로 부르고 있는지를 알아보면 될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이렇게 자상한 방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부처님에 대해 무려 10가지의 근사한 별명을 붙여서 불렀다.
여래(如來)진리에서 오신 분
응공(應供)존경받고 대접받을 만한 분
정변지(正遍知)바른 지혜를 갖추신 분
명행족(明行足)아는 것을 실천하는 분
선서(善逝)고통의 바다를 건너신 분
세간해(世間解)세상일을 잘 아는 분
무상사(無上士)더없이 훌륭한 신사
조어장부(調御丈夫)중생들의 잘못을 항복받고 길들이는 장부
천인사(天人師)하늘과 인간 세상의 스승
불세존(佛世尊)진리를 깨달은 분이며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
이 멋지고 훌륭한 별명을 ‘부처님의 열 가지 다른 이름(如來十號)’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이 별명들을 살펴보면 그분이 어떤 인격을 갖춘 분인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부처님의 별명은 어디에도 초월적이며 신적(神的)인 능력을 나타내는 표현은 없다. 그대신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신뢰할 만한 스승이라는 뜻이 강하게 나타난다. 참 부러운 별명이다.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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