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요(禪要)
高峰和尙
법봉스님 번역
선(禪)의 요령을 간추려 엮은 책으로, 고봉의 시자(侍者) 지정(持正)이 기록하고 거사(居士) 홍교조(洪喬祖)가 엮어서 《선요》라 명명했는데, 1358년에 초간된 것으로 되어 있다. 책머리에 편자 홍교조의 서(序)와 주영원(朱潁遠)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고려시대 이후 한국 선종 승려의 반드시 읽어야 할 책로 채택되었고, 한국 불교전문 강원의 증등과정인 사집과(四集科)의 세번째 과목으로 채용되고 있다. 이 책의 주석서로는 조선 후기 고승 유일(有一)의 《선요사기(禪要私記)》(1권)와 긍선(亘璇)의 《선요기》(1권)가 있다. 이 책에 관한 판본 중 현재 전하는 것으로는 1604년(선조 37) 능인암(能仁菴) 개간본(開刊本), 1680년(숙종 6) 원적산(圓寂山) 운흥사(雲興寺) 개간본 등 여러 종류의 목판본 ·활자본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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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집 가운데서 선을 토대로 한 교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도서와 절요가 있고,
순수한 선으로써 서장과 선요가 있게 되는데 서장이 참선하는 사람의 병통을 제거하는데 힘을 쓰는 것이 특색이라면
이 선요는 참서하는데 있어서 가장 안목이 될만한 그러한 내용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선요는 이러한 관계로 하여 이력을 마치고 전등염송을 보는데 밑바탕이 되게 한다는 그러한 배려에서 선요가 사집과에 필요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선요는 선문의 여러 어록 가운데서 가장 골자가 될만한 내용이 들어있는데
특히 고봉 화상 선요를 말하며 이 고봉 화상은 우리 한국 불교와 인연이 깊은분입니다.
임제종 계통인 고봉 화상은 그 스님 밑으로 단해 종의선사 그 다음에 종신선사 이어서 서곡 청운선사로 내려옵니다.
서곡 청운은 우리나라 태고 원정과 태고 보우 두분께서 우리나라 선맥을 이어받아서 옵니다.
서곡 청운선사의 문하에서 법을 받아 가지고 오신 태고스님,
그리고 서곡 청운의 스승이신 종신선사의 밑으로 평산 처림선사 아래로 고려의 나옹 스님이 법을 받아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임제종의 법맥이 몽땅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간다는 평을 받기도 한 그러한 분들입니다.
서고선사의 선맥이 임제스님 이후에 고봉선사에 와서 다시 크게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놓고 볼 때에 송나라가 패망하고 중국에 새로운 세력이 몽고대륙에서 밀려 들어와서 중국 문화를 몽고의 문화권과 동화시키는 과정에서
중국 한나라 사람들은 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들은 중국인이며,
원나라 몽고족은 침략자 오랑캐이다,
이렇게 하여서 몽고족인 원나라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 원나라 세조는 자신이 중국 본토를 침략한 지 십육년(16년)만에
중국본토를 통일하게 되고 통일한 후에 중국에 본래부터 있던 문화와 전통을 더욱 선양시키고
중국고유의 민족의식을 가꾸어서 몽고족과 중국인사이에 민족의 이질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그러한 정책을 펴 나갔습니다.
이 고봉스님이 선요의 법문을 그때에 하신것이지만
원나라 세조 삼십일년 재위의 마지막 해 (서기1294년)에 이 을 펴 내었습니다.
고봉은 원나라 세조가 몽고에서 군사를 일으켜서 중국을 통일한 후 멸망하기까지의 사이에
활약하신 스님으로서 다분히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고봉스님이 펴시는 최상승 화두선이 두각을 나타낼 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원나라 세조의 중국 한문화 동화정책에 크게 기여를 하고,
정부로부터 큰 혜택을 얻어 받은 과정에서 나타난 인물입니다.
왜 이 중국 사람인 고봉스님의 선요를 우리나라 불교 전문 강원에서
교재로 선택하여 배워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모든 의식에서 증명법사가 되고 있는 지옹스님도 사실은
원나라가 몽고에서 일어나서 만주 대륙을 정복하고 중화 본토를 침략해야 된다는 커다란 (큰) 야욕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기회를 엿보는 그러한 때에,
만주보제사에 머물면서 대법회를 열고 원나라 세조의 이해와 지원을 받아서
우리나라에 까지 다녀 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유학을 만주 방향으로 가던 나옹스님이 보제사에 유명한 선지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법회에 참석을 했다가 제자가 되고,
중국 본토 대륙이 통일이 되자 남쪽으로 내려가서 평산 처림선사에게 선맥을 이어 받아 옵니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활발한 그러한 때에 중국 본토 문화 중흥의 일환으로
고봉선사가 그 시대의 불교를 이끌고 최고 선봉의 지도자가 되어서 최상승선인 화두선을 중흥하고 널리 보급시켰습니다.
그래서 안목도 상당히 높으신 분이고, 또 우리나라 불교의 임제스님 계통의 법을 전하여 이어져 오는 선맥과 깊은 관계가 있는 분이고,
나옹스님편으로 보거나 또 태고 스님편으로 보거나 가능한(될 수 있는 한) 증조할아버지 뻘이 되고
혹은 할아버지 뻘이 되며 우리나라에 법을 전하여 준 법맥 계통입니다.
그런일 또 저런일을 감안해서 우리나라 불교 전문 강원에서 교재로 선택하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제가 지금 옮기는 이 책은 화엄학 연구소에서 출판된 탄허스님이 번역한 책을 참고로 해서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고봉화상 선요 서문
고봉의 이름은 원묘요, 호가 고봉이다.
참선은 말과 글자를 세우지 않으며 닦아 들어가서 증득하는 과정을 의지하지 않는 것으로써 수승하고 으뜸으로 전하여 이어져 가지만 그러나 이미 가히 참구를 하여 보면,
반드시 요긴하고 중요한 곳이 있을 것이니 중요한 것이란 무엇이고,
그물 아래 위에 굵은 밧줄을 넣어서 그물 코들이 끌려가도록 하는 벼리줄이 있는 것과 같으며
옷에 옷깃이 있는 것과도 같아서 한번 들어올리면 지름길로 곧장 바로 성취함을 이루게 하는 것이 틀림없는 바로 이것이다.
일만가지 그물코가 그물이 아닌 것은 아니나 벼리를 버리고 그물코만 들면 그물은 반드시 펼쳐지지 못하고, 만가지 올마다 옷이 아닌 것이 없으나 옷깃을 버리고 실올만 들면 옷은 반드시 펼쳐지지 못하는 것이다.
당나라 때의 스님 영가가 말씀하시기를 잎을 만져보고 가지를 더듬어 보고 가지에서 큰가지 또 굵은가지 그래서 줄기에서 밑둥아리에서 뿌리 이렇게 하여서
이것은 영가스님의 증도가라는 게송에 있는 말인데 근원을 바르게 찾아 들어가 깨닫는 것이 곧 부처님께서 인가를 하신 바이다.
잎을 만지고 가지를 만지는 것은 내가 능하지 못하다 하시니 (그러한 일을 해서는 마음을 깨닫는 목적을 성취할 수 없다.) 요긴한 곳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가지와 잎은 중요한 곳이 아니요 근본만이 진실로 요긴한 것이니 참선하는 학자가 다시 그 근본진리를 깨닫지 못하였다.
아호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요긴한 것이 능히 최상승을 선택하는 데 있다.
이것이 요긴한 것을 바르게 선택하는 것이다. 말씀하시니,
옳은 것을 선택해서 따르는 것이 가하거늘 참선하는 학자가 가끔가끔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을 출발지점에서부터 공부를 그릇되게 잘못하여 마침내 남쪽나라로 가야 할 사람이 북쪽으로 수레바퀴를 굴린다.
나아가서는 위로부터 남기신 어록과 저서가 산같이 쌓여 있으니 화두공안과 선문의 까다로운 법로가 진실로 강과령 아닌 것이 없거늘 세상은 부처님 계시던 때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성현과는 더욱 멀어져 가니 망정과 거짓이 날로 더욱 심하여져서 마음과 뜻과 잠재의식이(분별심) 좀 먹듯이 좀먹어 들어가고 있는지라
강령을 잘못 알아서 속아서 넘어가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이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딱한 일이다. (강령이란 말의 뜻은 큰번뇌와 미세한 번뇌를 휘어진 일체 관념을 초월한 절대적인 근본 마음진리를 말함)
우리의 스승이신 고봉화상께서 쌍봉이라는 지역에서 서봉지역에 이르기까지 이십여년 동안을 고래의 여러 조사스님들의 화두와 선문의 법을 쓰는 법로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많지만
후세의 배우는 사람들이 그것을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점이 딱하다는 이러한 생각을 하신 고로 마지 못하여 사람들에게 긴요하고 확실한 것을 보여 주시니
조그만 숟가락에 눈꼽만큼 약을 쓰더라도 죽을 사람을 일으키고
신령스러운 부적이 한 부적의 획을 그려서도 삿된 것을 그려서도 삿된 것을 �아냄과 같은지라
그러므로 묘유(용)가 진공(체)을 여의지 않기 때문에 일원상으로써
보이는 것과 비밀한 주문을 주워 모아서 장차 학자들이 꼭 의지해야 할 부분이 상당히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새를 얻는 것은 눈에 있는 것이지 벼리에 있지 않는 것이며
추위를 막는 것은 실올에 있는 것이지 옷깃에 있지 않는 것이니,
팔만사천 법문이 법문마다 가히 들어갈 수 있으니 옷깃에 실올이나 그물의 눈은 과연 긴요한 것이 아니겠느냐.
장차 그렇게 묻는 사람에게 대답해 이르기를 부처님의 법문이 진실로 광대하여 헤아릴수 없으나
돌이켜보건대 이에 방편으로 협소한 문을 베풀어 만들어서
모든 아들로 하여금 욕계 색계 무색계의 불타는 집안에서 벗어나 대승에 들어가게 하시니,
이것은 부처님 팔만사천가지의 법문의 말씀이 그물의 눈과 같고 옷깃의 실올과 같은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큰 번뇌 미세한 번뇌를 항복 받아서
근본진리를 바르게 보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벼리를 취할것인가 옷깃을 취할것인가 중요한 것을 취할것인가 중요한 것을 취하지 않을 것인가.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의 말씀에까지 속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서 마음 근원을 바르게 볼수 있는 바른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면 어느쪽을 취하겠다고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이글을 쓴 고봉화상께서 서봉이란 곳의 법회에 참석하신 이후로
매양 학자들에게 보이신 법어 가운데서 참구하여 화두타파하는데 간절한 것을 모아서
선요라 이름을 짓고 오랫동안 뜻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나누어 가지려고,
어느날 고소산에 있는 영중사의 지현스님에게 의논 하였더니
기뻐하면서 반연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나무에 새기고 출판하고자 하여 또 나로 하여금 책머리에 서문을 쓰라고 하거늘 내가 이미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하고
다시 그에게 말하기를 고봉스님의 별다르게 (따로이) 하신 격외의 말씀은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과 조사스님의 허물이 있는 말씀밖에 있어서 허공 뼈속에 지금 현재 감추어져 있으니,
형님께서 새겨서 출판하고자 하고 내가 서문을 쓰고자 하나 모두가 고봉스님의 격외의 뜻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오히려 다른날을 기다려서 다시 한번 말속에 들어있는 말
밝혀낼려고 하여도 밝혀낼수가 없고 서문을 쓰고자 하여도 서문을 지을 수가 없는 말씀을 그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법을 또 다시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다시 한번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여기에 적어서 공개할 뿐이다.
원나라 세조 삼십일년(마지막해) 갑오년(서기일천이백구십사년) 구월 구일
천목산에서 참선을 하는
학도 지공 홍고조는 삼가 서문을 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