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화상 선요 본문
시자 지정 기록
참선학자 지공거사 홍고조 편역
법을 이어받아 조실이 된 스님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설하는 법문 (제일편)
스님이 묻기를 시방이 함께 모여서 낱낱이 함을 없는 법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가 된 사람을 찾아내는 선불장이라 마음이 우주와 둘이 아닌 경계에 계합 되어지면
부처가 되어서 돌아간다 하신 방거사가 이렇게 말한 것이 또한 사람을 위한 곳이 있습니까
고봉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있는 것이다.
다시 나와서 묻기를
그렇다면 필경에는 어느 한 구절에 참으로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말이 있습니까?
고봉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네 귀절을 처음부터 차례차례로 물어보라
다시 말씀드리기를 어떤 것이 시방이 함께 모인 것입니까?
고봉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용과 뱀이 함께 어울려서 살고 있고 범부와 성인이 사귀어서 참구하는 것이다.
다시 묻기를
어떤 것이 낱낱이 함이 없는 법을 배우는 도리입니까?
고봉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입으로는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을 삼키고 눈으로는 체와 용을 덮는 것이다.
다시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가 된 사람을 찾아내는 선불장입니까?
동쪽과 서쪽이 십만리요.
남쪽과 북쪽이 팔천리이니라.
다시 묻기를
어떤 것이 마음이 우주와 둘이 아닌 경지에 계합하여 자유자재하게 되어서 돌아가는 것입니까?
고봉화상이 말씀하시기를
구애를 받지 않고 으시대고 뽐내면서 본래의 마음 고향을 드날려서 초조하고 불안한 근기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시 묻기를
말씀 말씀이 진리를 볼 수가 있고 귀절귀절이 마음 근원에 계합되는 으뜸가는 좋은 법문이 되겠습니다. 고봉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경계에 계합이 되어서 그러한 소견을 내어서 말을 하는가?
스님이 할하고 소리를 지르자
고봉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또한 방망이를 흔들어서 달을 때리는 격이로다.
다시 묻기를
이 일은 우선 그만두고 이러한 경우에 고봉화상 스님께서는 오늘날에 시방이 모여서 법회를 열고 선불장을 열었으니 어떠한 좋은 상서가 있겠습니까?
고봉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산과 강 땅과 만가지 형상이 벌어진 것과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이 모든 것이 어느 것 하나도 남음이 없이 부처가 되는 것이다.
다시 묻기를
이미 모든 것이 남음이 없이 부처가 되었다면 무슨 까닭으로 인하여 묻고 있는 나 자신은 부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까?
고봉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너 같은 번뇌망상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이 만일 부처가 된다면 어찌 아무런 분별이 없는 산과 강 그리고 땅(대지)으로 하여금 부처가 되어지게 할 것인가.
다시 묻기를
그러하다면, 제자신의 잘못된 단점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고봉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양자강의 남쪽이요 동정호의 북쪽이니라.
다시 묻기를
또한 저 같은 사람에게도 참회하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스님이 겨우 절을 하였더니
고봉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자는 돌을 던지면 쫓아가서 사람을 물거늘
한씨의 개는 돌을 던지면 흙덩이를 쫓아가서 문다.
고봉화상께서 이때에 손에 쥐고 있는 불자를 세우시고 대중들을 불러서 말씀하시기를
주장자를 들어서 대중에게 보이는 이 도리가 마음을 깨달아서 부처가 된 사람을 찾아내는 선불장이라 일체의 번뇌가 없어서 마음이 고요하여 깨달아 부처가 되어가는 길이니
영리한 놈이 만일 이 도리 속에서 참구하여 마음을 깨달으면
문득 방거사의 마음이 우주와 둘이 아닌 경지에 계합하여
나고 죽음에 구애를 받지 않는 도리를 보게 될 것이다.
이미 방거사의 마음이 우주와 둘이 아닌 경지에 계합하여
나고 죽음에 구애를 받지 않는 도리를 보았을진대
문득 위로부터 부처님과 조사스님의 마음이 우주와 둘이 아닌 경지에 계합하여
나고 죽음에 구애를 받지 않는 도리를 볼 것이며,
이미 자기의 마음이 우주와 둘이 아닌 경지에 계합하여
나고 죽음에 구애를 받지 않는 도리를 보았다면
알 수 없는 의심 뿐인 이 속을 향하여 주장자를 분질러, 꺽어버리며,
바랑을 높이 걸고 세가닥의 서까래 아래와 (한사람의 좌선하는 방의 평수)
일곱자가 되는 자리 앞에서 (옷과 발우를 두는 곳) 무엇이라고 이름 지을 수가 없는
즐거운 맛의 알수 없는 의심뿐인 밥을 먹으며,
물기운이 전혀 없는 젖지 않는 법납의 국을 마시고,
다리를 펴고 잠을 자면서 자유롭게 세월을 보낼수 있겠거니와,
만일 공부를 잘못하여서 하인과 종을 가리지 못하고 콩과 보리를 분별하여
나누지 못한다면 또한 도리어 마지 못하여 헐떡거리는
번뇌망상을 항복 받고서 마음이 우주와 둘이 아닌 경지에 계합하는 것을 종지로 삼아서
본래의 마음 고향의 절대적인 본분을 바르게 들어내 보인
본분 화두를 의심하게 하여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고향을 소개한
법문에 의지해서 한마리의 고양이를 그려보게 할 것이다.
고봉화상이 성년에 상경사에 머물다가 선방에 들어간지 일개월이 채 되지도 않아서
홀연히 잠이 든 가운데에 의심하기를 만가지 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이것을 의심하니 이후로부터 의심이 계속 이어져서 잠을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밥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며,
동쪽과 서쪽도 가리지 못하고,
밤과 낮을 나누지 못해서
방석을 펴고 발우를 펼때와
똥누고 오줌 눌 때와
나아가서는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하며
한번 말하고 한번 잠잠하기를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만 본분 화두 하나 뿐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하는 의심뿐이요 다시 털끝만큼도 다른 생각이 없으며
또한 털끝만큼의 다른 생각을 일으키려고 하여도
마침내 가히 얻을수 없는 것이 비유하지면 차곡차곡 못을 박고
아교의 풀칠을 하여 붙인것과 같아서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음과 같은지라,
비록 사람이 빽빽이 가득 모인 넓은 좌석 가운데에 있을지라도
마치 한 사람도 없는 것과 같이하여 아침으로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저녁으로부터 시작하여 아침에 이르기까지
밝고 밝으며 높고 높으며 순수하게 밝아 티끌과 같은 미세한 번뇌가 동시에 끊어져서
화두 일념이 만년이 되어도 밝으리라.
경계가 고용하고 사람이 또한 없어지면 마치 어리석은 것 같고
또한 우두커니 멍청하여 바보가 된 것 같더니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제육일에 이르러서는 대중을 따라 삼탑사에 이르렀을때에 (삼탑사는 사찰의 이름이니, 지공화상, 달마스님과 오조 법연화상 세분 스님의 탑이 모셔져 있는 연고이다)
경을 화음을 맞추어서 소리내어 읽다가 고개를 들어 갑자기 오조 법연화상의 초상화의 모습을 문득 보고서 갑자기 건드리면서 터트리니 (확연히 깨달으니)
수일전에 앙산 노화상이 나에게 묻기를
죽은 송장(사체)을 끌고 다니는 자가 누구인고?
물으신 화두를 대답을 못했는데 앙산 노화상이 물으신 죽은 송장을 끌고다니는 자고 누구인고?
하는 화두의심을 타파하니
바로 당장에 허공이 가루처럼 부서지고 온누리의 땅덩어리가 평평하게 가라 앉아서
우주와 내가 다함께 잊어버리는 것이 거울로서 거울을 비치는 것과 같은지라,
백장 야호와 (전생의 백장화상에게, 어떤 학인이 묻기를 크게 깨달은 사람이 인과에 떨어집니까 인과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고 의심이 풀리지 아니하여
드디어 오백생 동안의 여우의 몸을 받았다가 후생의 백장화상에게 사람의 몸으로 나타내어
와서 묻기를 크게 깨달은 사람이 도리어 인과에 떨어지겠습니까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후생의 백장이 말씀하시기를 인과에 떨어지기는 하지만 인과에 매하지는 않는다.
전생의 백장이 이 말을 듣고는 곧 여우의 몸을 벗음)
조주스님의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의 무와
청주 포삼과(조주스님께서 청주에 계실때에 베옷으로 두루마기를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근이나 되더라 하는 화두를 말함)
여자 출정화(부처님 당시에 한 여인이 있어 선정에 들었더니 사리불과 목건련도 여인을 선정에서 깨어나게 하지는 못하였다.
문수보살이 부처님께 묻기를
이 여인이 과거에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 앞에서 선정에 들어서 깨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물으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스스로 깨워서 물어보라 하시니
문수보살이 여러 가지 방편으로 선정에서 깨어나게 하려고 하였으나
선정에서 깨어나지 않거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문수보살이 일만명이 되더라도 선정에서 깨어나게 하지는 못 할 것이다.
오직 망명 보살만이 선정에서 깨어나게 할 것이다 말씀하시니
조금 있다가 망명보살이 땅속으로부터 올라와서 손가락 퉁기는 한 소리에 선정에서 깨어나게 하였다)
이러한 화두들을 의심하여 밀밀하게 화두를 잡들어
마음으로 비추어 증험하니 분명 분명하고 또렷한 것을 알 수가 있는지라
한가지의 본분 화두가 타파되면 일천 칠백 가지의 화두가 동시에 밝게 깨달아서
자유자재로 쓰게됨이 진실로 사람을 속이는 거짓이 아닌것이다.
만가지 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하는 화두를 잡들기 이전에 잠들었던 무 자 화두는 곧 삼년에 이르기까지 아침과 점심에 먹는 죽과 밥을 제외하고는 일찍이 앉는 방석에 오르지 않고서
아무리 피곤할때에도 앉거나 눕지를 않았고 비록 낮과 밤에
동쪽으로 걸어 다니고 서쪽으로 걸어다녀서
항상 혼침과 산란심 두가지 마장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가 되어서
아무리 여러 가지 방법을 지어서 있는 힘을 다하더라도
혼침과 산란심을 항복받아 물리쳐 버리지를 못하는 지라
이 무 자 화두를 들때에 마침내 일찍이 한 숟가락 밥먹을 사이에도 힘이 달려서
화두 의심이 되어지는 일이 없었는데,
스스로 결정한 후에 그 병의 근본원인을 분석하고,
깊이 생각하니 따로이 별다른 이유가 없고 다만 화두를 잡드는데에 있어서
의심을 계속 이어지게 하지않고 다만 이 생각으로 지어서 화두를 드는 것이 된 것이니
생각이 일어날 때에는 화두가 있고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적에는 문득 화두가 없으며
설사 의심을 일으키려고 노력하여도 큰번뇌 미세한 겹을 뛰는 번뇌를 항복 받을 수가 없으며
설사 번뇌를 쉬고 화두의심이 되어진다고 하더라도
다만 잠깐 사이가 되어질 뿐이고 또 혼침과 산란의 두가지 마장 때문에
잠깐사이에 화두의심이 되어지던 것이 망쳐지게 되는 것을 면하지 못하여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공연히 허다한 은혜를 갚지 못하는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서 먹고 쓰며 간략히 조금만큼의 화두의심의 진취가 없었더니라.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하는 화두는 도리어 무 자 화두와 더불어 열가지의 병에 걸릴 염려가 없고
또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하면 의심을 일으키기 쉬운 것이다.
화두를 한번 잡들면 의심이 함께 일어나서 반복해서 의심하면서
사랑하고 복탁하여 뜻을 헤아리는 것을 의도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어지기만 하면 차츰 의심을 크게 이루어서
문득 능히 알수없는 의심뿐이며 이미 능히 알 수 없는 의심뿐인
절대적인 마음 근원은 앞 생각 뒷생각이 끊어져서
드디어 일만가지의 반연되는 인연으로 하여금 쉬지 아니하여도
스스로(자연히)가 쉬어지며 눈.귀.코.몸.입.뜻으로 고요하게 하지 않아도
스스로 고요해져서 띠끌만큼도 범하지 아니하고 볼록함이 없는 삼매에 들게되었다.
홀연히 죽먹고 밥벅는 곳을 만나서 발우 있는 곳을 향하여 숟갈과 젓가락을 잡을 때에도
가만히 화두와 함께 자연스럽게 합하여 마음 가운데 번뇌망상이 일어남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이미 체험하여 증득한 방법이기 때문에 결코 서로가 속이지 않는 것이다.
만일에 한구절의 말이라도 모든 사람을 속인다면
스스로 영원히, 망어한 과보를 혀를 빼어 보습을 만들어
소로 하여금 밭을 갈게 하는 발설지옥에 떨어짐을 면하지 못할것이다.
현재의 눈앞에서 최상승선을 배우는 보살들은
반드시 모름지기 이 마음근원의 진리를 밝히려고 하여
산이 높고 물이 넓은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특별히 애쓰고 힘들게 찾아와서 고봉의 회상에 모였거든,
하물며 이를 갈고 어금니를 갈아서 금생에 기어코
마음 고향에 돌아가는 일을 해 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마음의 뜻을 내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와 같은 지조와 이와 같은 견해가 정립이 되어져 있다면
간절하게 자기의 초심초학자 때의 마음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며
부모가 너희들을 태어나게 하여서 출가를 허락하여준 마음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며
사찰을 세우고 선방을 지어준 신도들의 마음을 저버리지 말아야하며
국가의 지도자와 지도층 관리들의 외호하여 주는 마음을 저버리지 말아야하고
당장에 큰 신심을 갖추어 정진을 하여야되며
당장에 변하는 마음이 없어야하며
당장에 만길이나 되는 절벽위의 낭떠러지에 서있는듯이 하며
당장에 법문을 의지해서 마음의 모양이 어떻게 생긴것인가를 찾아가고 찾아오고
궁구하여 감에 마음이 자연히 고요하고 깨끗하여지는 것이니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한 곳과 사람과 법을 다 잊어버리는 곳에 이르게 되면
붓끝 아래에 갑자기 한 낱 살아있는 격외의 공안이 튀어나올 것이니
원래에 온누리의 대지가 이 부처가 된 사람을 찾아내는 선불장이며
온누리의 땅덩어리가 곧 자기와 둘이 아닌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러한 경계에 계합이 되어지면 무슨 방거사를 말하리오.
비록 성문.연가.보살과 십지의 지위를 차례로 닦아서 증득한 성현일지라도
쓸개가 녹아지고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할 것이며
달마스님과 부처님이라도 본래의 마음을 말한다면
몸이 죽어서 장사를 지내야 할 것이다.
비록 그러나 이와 같으나 만일 인간과 천상사람의 안목을 열어주고 꿰뚫어서
부처님과 조사의 종지를 개발하고 선양하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자기와 부처가 된 사람을 찾아내는 선불장을 가져서 녹여
한 덩어리를 지어 백천만 억세계의 밖에 던져서 버려두고
몸을 굴리고 걸음을 옮겨서 최초의 부처님이신 위음왕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기 이전에 다시 말하자면 하늘과 땅의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 있었던
본래 면목의 진리를 향하여 한번 쓸어버리거나 한 번 치더라도
도리어 고봉의 앞에 와서는 크게 한방망이를 맞아야 할 것이다.
대중들아 이미 자기와 부처가 된 사람을 찾아내는 선불장을 가려서 녹여
한 덩어리를 지어 백천만억세계의 밖에 던져서 마쳤거니
다시 무슨 몸뚱이를 받아나서는 방망이를 맞을 것인고?
갑자기 자기 본래 면목인 성품이 참된 진리인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놈이 있어서
화두 타파되어 확철대오한 그 자리가 참된 진리라는 말을 듣고서
앞에서 나와서는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지 말라고
법문을 하는 법상을 흔들어서 거꾸러뜨리고 할 하고 소리를 질러서
대중을 흩어지게 하면 옮기는 곧 진실로 옳고 장한일이지만
요컨대 또 고봉의 사자바위는 즐거이 인정을 할 수가 없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