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불교사상(通佛敎思想)
< 韓國佛敎의 通佛敎 思想에 대하여>
Ⅰ. 序 言.
Ⅱ. 通佛敎思想 形成의 背景.
Ⅲ. 通佛敎思想의 形成.
Ⅳ. 通佛敎思想의 展開.
Ⅴ. 結 論.
Ⅰ. 序 言
韓國의 불교는 일찌기 민족 문화의 형성기라고 할 수 있는 삼국 시대에 전래되어 오랜 기간 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 문화의 발전에 깊이 관련되어 왔다. 특히 불교 전래기에서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는 동안에 전통적인 사상과 불교가 보다 능숙하게 회통되었고, 또한 이웃한 중국.일본의 宗派를 배경으로 한 불교와는 달리 한국 불교 특유의 一宗一派, 一經一論에 구애되지 않는 圓融會通의 독자적인 通佛敎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通佛敎의 형성은 불교 자체가 갖는 교리적인 특성과 그러한 특성을 發現한 先人들의 노력과 한민족의 민족적인 우수성이 어울려 이루어진 결과 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통불교적 특성은 한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며 한국의 불교 사상을 주도해 왔다. 그러므로, 통불교적 사상의 흐름을 살피는 것은 한국적인 사상의 원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이러한 통불교사상의 형성과 그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通佛敎 思想의 形成의 背景
한국 불교의 전래는 삼국인 고구려.백제.신라에 각각 다른 루트에 의해 다른 성격을 가지고 전래되었다. 이러한 불교의 전래는 단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사상의 전래와 더불어 한국 불교의 통불교적인 사상이 점차적으로 형성되어졌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한국 불교의 전래 과정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통불교사상의 형성과 관련하여서는 대체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은 삼국 시대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되는 과정과 이후에 불교의 각 종파 교학의 전래 과정, 그리고 초기禪門의 전래 과정이다.
그것은 첫째, 삼국 시대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되는 과정이다. 372년 소수림왕 2년에 前秦王 符堅이 佛僧 順道를 보내며 불상과 경전을 처음 전수했고, 또 2년 후에는 아도가 와서 肖門寺와 伊弗蘭寺를 창건한 것이 고구려 불교의 初傳이라 한다. 또한 백제는 384년 枕流王 元年에 인도승 摩羅難陀가 東晋으로부터 들어와 한산에 절을 짓고 沙門 열 사람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고구려.백제의 불교 初傳이 하나는 육로로 다른 하나는 수로로, 또 하나는 전진에서 다른 하나는 동진에서 각각 서로 다른 길을 통해서 들어왔으나 외교적 경로를 통해 국왕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온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신라불교의 초전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토착 사상과 대립하며 민중 속에서 신앙되다가 527년 법흥왕 14년에 이차돈의 순교로 인해 公認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공식 통로를 통해 전래된 고구려.백제의 불교와는 달리 신라의 불교는 토착 신앙과의 줄기찬 대립 속에서 이의 극복하고 토착 신앙과의 융화를 통한 公認이었기 때문에 국민 단합적인 호국적인 불교가 발전했다.
그리고 이것은 즉, 한국 불교의 초전은 삼국에서 각기 이루어졌지만 신라가 국민 단합의 호국 불교를 중심으로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이후의 한국 불교는 신라 불교적인 신앙이 중심적 토대를 이루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통일 이전의 신라불교의 특징이라 할 토착 신앙과의 대립을 극복한 것에서 한국 불교적인 토대가 형성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불교의 각 종파 교학의 전래 과정이다. 初傳은 他國에 의한 것이었지만 약 1세기가 지난 때부터 한국의 승려들이 他國인 중국이나 인도에 직접 유학하여 많은 불교 사상을 배워 왔다. 이것이 대승 불교의 여러 宗學의 전래이다. 중국에서는 종파, 혹은 학파의 형태로 교학이 전수되었으나 한국 승려들은 특수한 종학이나 교학에 국한되지 않고 불교 전반에 걸친 사상을 배우려고 했던 점이 특이하다. 고구려 승랑은 三論의 大家였지만 經律과 華嚴에 까지도 통한 大家였고, 보덕화상은 열반경의 대가였으나 방등에도 능했다고 한다. 겸익이 인도에 유학하며 오부율을 갖고 왔지만 그 후에는 열반경을 연구했다. 또한 신라의 律師인 慈藏도 華嚴에 능통했다. 의상도 보덕화상에게 열반경을 배우고 중국에서는 화엄을 修學했다.
따라서 삼국이 정립한 시기인 한국 불교의 초창기에도 어느 한 종파에 구애되지 않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난다. 이것은 한국의 승려들이 일개 종파의 교학에서 벗어나 불교의 전체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며 종파적인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셋째, 초기 禪門의 전래 과정이다. 통일 신라 후기 대승불교의 이론에만 치우쳤던 것을 비판하고 7세기 무렵부터 실천 중심의 선종 사상이 전래된 것이다. 한기두 선생은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禪思想은 善德王 당시 法朗이 四祖道信의 法脈을 이어 新羅에 가지고 들어 왔다.그러나 이 禪系는 北宗禪으로 연결되어 敎宗과 별스런 마찰이 생기지는 아니했다. 그러나 道義가 入唐求法하여 西堂의 禪法을 宣揚하려 했으나 習觀尊神에 사로잡혀 있던 新羅人들에게는 그 禪法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했다. 따라서 설악산 陣田寺에 隱遁하면서 傳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中國禪을 그대로 傳法하지는 아니했다. 똑같이 西堂에서 배운 洪陟은 道義가 隱遁하는 방식과 달리 興德王과 宣康太子를 禪門弟子로 삼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는가 하면 諸山의 禪門들이 南岳과 北山(雪岳山)중심으로 나뉘어서 韓國특유의 禪法을 展開했는데, 經典에 의거하려는 融禪系와 經典에 의거치 않고 오직 禪만을 강조하려는 純禪系로 나뉘어졌던 것으로 짐작이 간다. 融禪系인 禪門이 주로 華嚴을 기초로 한 禪修行思想이었다면 純禪系는 이 華嚴禪을 버리고 入唐傳心해서 禪을 찾았던 韓國的 禪方法論으로 심어졌다고 『傳燈錄』,『祖堂集』,『禪門寶藏錄』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韓國禪系가 그 어느 곳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禪修行으로 大覺을 얻기 위한 執念을 성취하는 하나의 목적 아래 華嚴思想을 통한 大覺의 基礎暗示를 받으려는 방법과 暗示없이 大覺을 성취하려는 방법의 두 가지를 썼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하여 新羅因 중심의 禪系門을 형성하고 禪으로 佛祖의 心印을 徹悟하려는 大覺의 方法論이 羅末에 성취되었던 것이다.
위의 기술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한국 불교에서 선의 전래가 깨달음을 구하는 구체적인 실천의 방법으로써 수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국 불교에 있어서의 중심적인 사상의 흐름인 통불교사상이 이러한 깨달음이라는 전제를 가장 최고의 위치에 두고서 종파적인 관점을 지양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전체적인 불교를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고찰한 한국 불교의 통불교사상 형성의 배경은 먼저 한국 불교는 그 시작이 토착 신앙과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점과, 종파적인 경향에 머물지 않고 전체적인 불교의 이해를 지향했다는 점, 그리고 이론의 현란함보다 실천적인 방법을 중요시하여 불교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Ⅲ. 通佛敎思想의 形成
한국 불교의 특징적인 사상으로 통불교 사상을 주장한 것은 육당 최남선의 『조선불교통사』에서이다. 그는 여기에서 인도의 불교를 서론적인 불교, 중국의 불교를 각론적인 불교라고 한다면 한국의 불교는 결론적인 불교라고 하며, 원효의 화쟁회통의 사상을 지목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지적은 한국 불교의 특징으로 통불교를 지목하고 원효의 회통사상이 그 사상적 밑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국 불교를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통불교사상의 원류로써 원효의 화쟁회통의 사상을 제외하고는 통불교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원효의 사상에서 그러한 통불교적인 사상의 가장 완성된 형태를 실현하고자 했고, 전체 불교를 관통하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佛意에 契合한 불교 사상의 精髓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통불교사상의 선구자로써 이 후 한국 불교의 흐름을 주도한 원효의 사상이야말로 한국 불교의 통불교사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통불교 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원효의 통불교 사상을 살펴 보기로 한다.
원효는 대승적 견지에서 만법이 귀일하는 불교의 근본 정신을 파악하여, 착잡한 사상을 화회하고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려는 대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저술은 경율론 대소승의 전반에 걸쳐 있지만 그 내용은 강연한 主旨가 모두 불교의 본정신으로 귀납되어 있다.
원효의 경론에 대한 疏釋이 많지만 그의 이념을 단적으로 표현하여 통불교 사상을 고조한 것은 십문화쟁론이다. 이 론은 본래 2권이었으나, 불행하게도 대개가 산실되어 4장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아 전체 사상을 알기에는 부족하나 원효의 전체적인 사상이 화쟁회통의 통불교 사상인 것은 분명하다. 십문이란 제종을 통합하여 십문이라 한 것으로 10종의 門路를 뜻한다.
45년간 설한 불타의 금구 설법을 보면 한 가지 여래의 진리이지만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차별된다. 이에 백가들이 이를 의지하여 본의에 어긋난 쟁론을 일으키게 된다. 이와 같은 수많은 쟁론의 한 단면이 10문인바 이러한 10문 사이에서 쟁론을 제거하고 화하도록 하는 원리가 바로 화쟁의 사상이다. 번다 하고 산만한 이론을 정리하고 트이지 못했던 생각들을 상통하게 하는 것은 원효에게 중대한 과제요 사명으로 느껴졌던 듯하다. 그래서 동문선에 원효의 사상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矛盾相爭者有年 爰乃曉公 挺生羅代 和百家之異諍 合二門之 同歸2)
이 화쟁을 하기 위해서는 인정해야 할 면과 부정해야 할 점의 두가지 논리를 원융하게 활용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의 종파가 성립이 되는 것은 불교의 진리와 동일하나 한 가지 동일하지 않은 어느 부정적인 면을 보고 종파가 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을 때 그 사상을 外道라고 몰아치고 파사현정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용수이후 삼론의 사상은 되지만 원효의 화쟁사상은 아니다. 부정하고 나선 그 어느 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제종개현의 원리이다.
또한 독특성을 인정하는 반면 공통점을 찾아 점점 독특성을 파하게 되면 이것은 획일만을 꾀하는 독재주의 전체주의와는 달리 귀합의 사상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개합의 숨은 의미이다. 원효의 이론은 단순히 종의 개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立破.與奪.同異.有無.離邊非中등이 모두 평등하여 중도적인 원리 안에서 회통하도록 하는 성숙한 이론인 것이다.
이와 같은 원효의 화쟁회통의 사상은 후대로 면면히 계승되어 한국 불교만의 독자적인 통불교 사상을 발전시켰다.
Ⅳ. 通佛敎思想의 展開
원효에게서 사상적인 원리로써 구현되어 화쟁사상으로 자리잡은 원융회통의 통불교사상은 통일 신라와 조선을 거치는 동안 한국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그 사상적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통불교 사상은 먼저 고려 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과 보조국사 지눌에게서 크게 발현되었다.
의천은 고려 문종의 4자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정신적인 통일 과업을 맡고 사상적 융화를 시도했다. 의천은 삼국 통일의 정신적 통일 과업을 회삼귀일의 원융사상으로 보고 화엄 및 천태의 사상을 찾았다. 특히 의천은 화엄의 오교융통의 도리를 찾기 위해 송대의 화엄승 淨源법사와 善聰.淨因.元炤등의 사상과 상통하였다.
의천의 사상은 화엄으로 다듬어졌으나 후일에 천태의 본찰인 국청사에 입참하여 해동불법에 관한 문제를 露呈하면서 천태사상을 강조하게 된다. 이것은 국가적으로 보나 불교종단의 문제로 보나 일승의 천태사상만이 서로를 화하고 통할 수 있다고 보고 천태종을 개창하였던 것이다. 또한 천태의 교관겸수의 사상이 선교 양종을 한층 깊이 상근시켜 준 점이다. 이러한 선교의 접근을 바탕으로 보조 국사 지눌은 선의 입장에서 교를 아우르는 더욱 발전된 사상을 추구 할 수 있었다
보조국사 지눌이 조계종을 개창했는가 하는 것은 오늘 날은 논란이 많은 문제이지만 지눌은 정혜결사를 통하여 실천적인 활동을 해서 고려 사회의 사상적 흐름을 선의 입장에서 선과 교를 통합하는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지눌은 혜능의 습정균혜하는 방법으로 선교융화의 원리를 삼고 나아가 선교융화의 구체적 방안을 원돈성불론과 화엄론절요에서 제시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심각한 배불의 상황에서 불교 사상만이 아닌 유교와 불교의 일치를 주장하는 함허당 기화의 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또한 청허 휴정의 유 불 도 삼교의 일치를 주장하는 것에서도 한국 불교의 원융회통적인 통불교의 사상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조선조 후기의 三門修業을 이루게 한 『三門直指』의 사상적 내용에서도 한국 불교의 통불교 사상은 면면히 이어져 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Ⅴ. 結 論
이상에서 살펴 본 바 같이 원융회통의 통불교 사상은 한국 불교의 가장 독자적인 특징으로 신라 원효의 화쟁 회통의 사상을 시작으로 고려 조선을 거치며 수많은 고승들에 의해 한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불교 사상은 무조건적인 통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대에 맞는 사상적 기반을 찾아내고 연구하는 노력을 통하여 불교의 참된 의미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venus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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