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과 수행

[스크랩] "오직모를뿐" 숭산스님

수선님 2019. 1. 6. 11:49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하니,

약견제상(若見諸相)이면 비상즉견여래(非相則見如來)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 세상에 이름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물건은 전부 허망무실하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사람이 모든 모양을 모양으로 보지 않는다면 곧 부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현재 이 몸뚱이를 끌고 화계사에 와서 달마회 법회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몸뚱이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다고 할 것인가, 없다고 할 것인가?


 『법화경』에 보면, “제법여래 상자적멸상(諸法從如來 常自寂滅相)”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법이 다 적멸상이며 생각이 끊어진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착하다,

악하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세상이 악한 세상인가, 착한 세상인가?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본래 무일물이라” 본래 한물건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살았다 죽었다 한다는 말입니다.  

그럼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인가, 죽어 있는 것인가? 오늘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모양ㆍ이름ㆍ시간ㆍ공간ㆍ인과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가 이 세상을 만들었고,

그 다섯 가지 속에서 우리가 태어났다, 죽었다 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서부터

다섯 가지가 일어나고, 한 생각이 멸하면서부터 다섯 가지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것은 마음을 일으켜야 될 것인가, 마음을 멸해야 될 것인가 하는 이 말입니다.

마음을 일으킨다면 모양과 이름에 걸리고, 마음을 없앤다면 공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이 주장자로 30방망이를 맞을 것이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장자로 30방망이를 맞을 것입니다.  우리 대중은 어떻게 하여야만 30방망이를 맞지 않겠는가, 이 말입니다.

악!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만물의 영장인가. 아는 것이 사업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라도

그 아는 것이 나 자신을 찾는 데는 마군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았느냐.  어떤 사람이

서울 장안에 왔습니다.
 

 “너, 어디에서 왔느냐?”
 “모르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왔느냐?”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할 것이냐?”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갈 것이냐?”
 “모르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서울에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 자신을 살펴봅시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느냐, 그 의문점을 해결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고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태자로 태어났는데 없는 것 없이 다 갖추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왜냐,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 때문에 늙는지, 무엇 때문에 병이

들고 죽는지를 몰라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음의 고통을 면할 수 없다는 의문 때문에

고뇌하시다가 하루는 죽고 사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유성출가를 하시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산에

들어가서 6년간의 끝없는 고행 끝에 아침에 샛별을 보고 득도를 성취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닫고 보니 몸뚱이를 위해 평생 사시었단 말입니다. 몸뚱이는 죽고 사는 것이 있으나

이 몸뚱이는 허공의 뜬구름과 같다는 말입니다. 하나가 생겼다가 하나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속에는 한 물건이 있습니다. 마음ㆍ정신ㆍ영혼 등이 있습니다.

이 마음은 맑고 깨끗해서 죽고 살고 하는 데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깨닫고 보니 생사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몸뚱이를 위하다 보니 이 몸뚱이가 ‘나’인 줄 알고 있습니다. 몸뚱이가 아픈데, 내가 아프다고 말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은 내가 무엇인가, 모를 뿐이야 모를 뿐인 그놈을 6년을 끌고 나갔다는 말입니다.

6년을 끌고 나가다가 모를 뿐인 그것이 터지는 바람에 ‘아! 내 몸뚱이는 생사가 있어도 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놈은 생사가 없는 것’을 부처님께서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과 같이 나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몸뚱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내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됩시다. 그것을 배우는 곳이 바로 절입니다.

참나를 위해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빌린 렌트카입니다.


 옛날에 루소는 대자연으로 돌아가자고 부르짖었습니다.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원자탄,

수소탄 등을 만들어 약육강식으로 자기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세계는 혈안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또 동물을 죽여서 먹죠.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가장 독재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3천년 전에 살생을

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었고, 세계평화와 평등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서양 사람들은 왜 불교를 좋아하는가. 인간을 토대로 한 인간성을 찾는 길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불교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행복ㆍ평등ㆍ평화가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교를 좋아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진실히 믿어 봐도 평등과 자비와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인간 노릇을 하려면 내가 내 자신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내가 내 자신임을 깨닫지 않으면 인간 노릇을 못합니다.
 

오늘날 서양 사람들이 참선을 좋아하고 불교를 좋아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회의 흐름입니다.

우리는 서양문화권내에서 살고 있습니다. 14세기까지는 신본주의였습니다. 문학ㆍ예술ㆍ종교ㆍ철학

전체가 다 하느님을 위한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14~15세기 무렵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노예가 되느냐 하며 자유ㆍ평등을

부르짖으면서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전개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그것을 ‘르네상스혁명’이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 혁명에서 봉건사상을 없애자고 했습니다.

왕이 통치하는 제도를 없애고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사람이 나라를 통치하자는 것이 프랑스

혁명입니다. 그것을 ‘합리주의’라고 합니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인본주의에서 합리주의로 넘어갔고, 합리주의를 하다보니까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누구냐 하는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물질이라는 생각들이 만연했고, 그 생각은 자본주의(물질) 와 공산주의(유물)

두 개로 갈라졌습니다.


 공산주의가 탄생한 것은 1917년으로 소련에서 혁명이 일어나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갈라졌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진영이 있게 되었지만 실상 물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잘 산단 말입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갈라진 이후 산업혁명이 일어나, 사상과 생각보다는 돈이 필요한

시대로 전개되었습니다. 그것은 실용주의로 발전했고, 실용주의는 실리주의로 바뀌었습니다.  

올바른 실용주의가 되지 않고 실리주의로 변했습니다. 남은 죽든 말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주의로 변했습니다. 실리주의로 변하면서 사회질서와 도덕이 무너져 갔습니다.


 『금강경』에 보면, “아상(我相)ㆍ인상(人相)ㆍ중생상(衆生相)ㆍ수자상(壽者相)을 없애면

무량공덕을 받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모든 상을 버리게 되면 한량없는 공덕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나라는 생각과, 사람이라는 생각과, 중생이라는 생각과, 수자라는 모든 생각을 없애버렸을 때

내 마음과 같아집니다. 여러분들이 생각을 일으키면 여러분들의 생각과 내 마음이 달라집니다.

 생각을 끊어버리게 되면 여러분 마음과 내 마음이 똑같습니다. 그 속에는 공산당ㆍ민주당이 없습니다.

생각을 끊어버리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생각을 끊는 것이 공부입니다.  옛날에 돌당스님이 금강산에

향봉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스님, 제가 경을 10년 동안을 읽었습니다만 경 속에서는 내 마음을 찾지 못했습니다.

마음 찾는 법을 좀 가르쳐주십시오.”
 “너 어디에서 왔느냐?”
 “유점사에서 왔습니다.”
 “그래, 유점사에서 몇 걸음에 왔느냐?”
 “몇 걸음에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을 배웠으면 몇 발자국에 왔는지 그것부터 알아야 될 것이 아니냐. 가서 참선이나 해!”
 “네, 알겠습니다.”
 

돌당스님께서는 그 후로 자신이 유점사에서 몇 걸음에 왔는지 의심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문득 법성게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일즉일체, 다즉일.” 


 그때서야 돌당스님은 ‘한 발자국이라고 하면 될 것인데 내가 망상을 피웠구나’ 하는

 

“스님, 제가 알았습니다.”
 “너, 몇 발자국에 왔느냐?”
 “한 발자국에 왔습니다.”
 “이놈 발도 크지. 그런 대답 가지고는 안돼. 다시 공부해 와.”
스님은 부지런히 참선을 해서 몇 달 후 다시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스님, 이제 진짜로 알았습니다.”
 “그래 몇 발자국에 왔는가?”
 “본래 가고 오고 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스님은 돌당스님을 지팡이로 때리며 다시 물었습니다.
 “가고 오고 할 것이 없다면 무슨 물건이 왔느냐?”
 

다시 가서 참선을 열심히 하시다가 『육조단경』을 보니 육조스님이 말씀하시길,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했는데 “무슨 물건이 왔느냐”고 했으니 ‘무슨 물건’이란 말인가.

이렇게 의심이 나서 다시 스님을 찾아 가서 절을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진짜로 알았습니다.”
 “무엇을 알았느냐?”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본래무일물’이라고 했는데 가고 오고 할 물건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스님께서 방망이로 때리며 물었습니다.
 “아프냐?”
 “아픕니다.”
 “한 물건도 없는데 무엇이 아프냐?”
 

다시 스님은 망상에 걸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한 물건이 없는 속에 들어가

보니 만물이 다 통한다는 말입니다. 그 동안 그토록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잘 몰랐던

도리가 색이 공이 되고, 공이 색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무색무공’이라, 색도 없고 공도 없는 도리, 그러니까 일체가 유심조라는 도리를 그 때에 알았습니다.

‘일체유심조’를 알고 보니 일체가 다 내 마음이었습니다. 내 마음 아닌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옛날 선사께서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임제선사는 “억” 하고 소리를 지르고,

덕산스님은 “마음이 무엇이냐”고 하면 지팡이로 때리고, 구지선사는 “부처가 무엇이냐”고 하면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였습니다.  돌당스님은 ‘이제 알았다’ 하고 다시 향봉선사를 찾아갔습니다.

 

“몇 발자국에 왔느냐?”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악!’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놈 귀청 떨어지겠다. 그 소리가 몇 근이나 되느냐?”

그 말에 또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다시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어느 날 텅 빈 마음에 맑은

거울과 같은 경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은 푸르게 비추고, 산은 높게 비추고,

물은 흘러가게 비추고, 개는 멍멍 짖고, 설탕은 달고, 전체가 진리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다시 향봉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스님, 이제 완전히 알았습니다.”
 “그래 몇 걸음에 왔느냐?”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가지 않습니까?”
 “이놈 봐라.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가는 것은 네 것이 아니지 않느냐. 산은 산의 것이고,

물은 물의 것인데 네 것은 어디에 있느냐?”
이 말에 또 꽉 막혔버렸습니다.
 “다시 가서 공부해라. 내가 너한테 산을 묻지 않았고, 물도 묻지 않았다. 내가 너한테 묻기는

‘몇 걸음에 왔느냐’, 그것을 물었어.”
 “알았습니다.”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아침에 방안에서 깨우쳐 버렸습니다. 다시 스님의 방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알았습니다.”
 일어나서 스님을 한 바퀴 빙 돌더니 절을 한 번 하고 앉았습니다.

 그제서야 향봉스님은 “착하다 착하다” 하면서 잔등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와 같이 공부를 해서 돌당스님이 일대 선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제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소식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대중들도 무엇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내 본성을 찾아서

우주의 대진리를 찾고, 일체중생들의 안목이 되어주시길 빌어마지 않습니다

 
출처 : 불교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글쓴이 : 靑 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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