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1

[스크랩] 운허의『금강경』한글 번역에 대하여

수선님 2019. 1. 2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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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허의『금강경』한글 번역에 대하여 *

 

 

김치온

 

 

• 목 차 •

Ⅰ. 들어가는 말
Ⅱ. 운허의『금강경』 한글 번역
   1. 相에 대한 한글역
   2. 四相의 한글해석
   3. 게송의 한글역
Ⅲ. 운허의『금강경』한글 번역의 의의

 

* 본 논문은 2013년도 10월 12일 봉선사 육화당에서 운허기념사업회 출범1주년 학술대회 ‘운허스님이 이해하고 해석한 경전의 세계’라는 주제로 행한 세미나에서 발표되었던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 진각대학 교수.

 

 

한글요약

 

『금강경』이 최초로 한글로 번역되는 것은 1461년 간경도감이 설치되고 1464년에 『금강경언해』가 나오면서 부터이다. 그 이후 1922년에 용성선사에 의해 한글로 번역되었다. 그 후에도 60년대에 들어와서야 1965년에
백봉 김기추, 해안에 의해서, 그리고 그 이듬해 1966년 운허에 의해 한글로 번역되었다.

1966년에 초판 발행된 운허의 『금강경』번역은, 선행하는 세 분들의 번역과 비교해 볼 때 확실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먼저 운허가 사용하고 있는 번역용어는 당시 그 시대에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한글용어를 채택하고 있다. 즉 한자투의 불교용어를 최대한 뜻에 맞추어 한글용어를 채택하고 전체적인 문맥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문장을 구성하였다.

구마라집은 nimitta, saṃjñā, lakṣaṇa 등 세 용어에 대해 동일하게 相으로 한역하였고 용성, 백봉, 해안이 모두 相으로 번역하였지만, 운허는 『금강경』의 문맥과 전체적인 뜻에 맞추어 모양, 모양다리, 고집, 몸매 등으로 구분하여 번역하고 있다. 즉 nimitta는 모양다리라고 번역하였으며, saṃjñā에 대해서는 모양다리, 고집, 모양 등으로 각각 문맥에 따라 달리 번역하였으며, lakṣaṇa의 경우도 몸매라고 번역하였으나 모양이라고 번역한 경우도 있다.

특히 모양이라고 번역한 경우는 두 경우인데, 구마라집의 한역에서 ‘是實相者則是非相是故如來說名實相’과 ‘凡所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의 경우이다. 實相의 경우 相의 범어 원어는 saṃjñā이며, 뒷 문장에서의 相의 원어는 lakṣaṇa이다. 이 경우 용성,해안, 백봉 등은 모두 상으로 번역하고 있고 운허는 모양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그 의미 내용은 모두 nimitta, saṃjñā, lakṣaṇa 등 세 용어의 의미 내용을 넘어서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 『금강경』해석의 특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四相의 해석에 있어서도 운허는 앞서 행한 풀이와는 달리하고 있는데, 특히 我相을 ‘五蘊으로 된 이 몸을 참말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라고 하여 我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금강경』본래의 뜻에 부합하고 있다.

또한 중생상에 대해서도 ‘나는 오온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집착’이라고 하여 오온의 상속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게 된다면, 범어 원어로 살펴본 중생상이 ‘지금 그 생명의 당체가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해석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운허는 선행하는 용성, 백봉, 해안의 한글역과 달리 그 당시 세간에서 널리 사용함직한 고도 다양한 한글용어를 번역용어로 사용하였으며, 『금강경』의 전체적인 문맥과 뜻에 맞춘 번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제어

금강경 한글역, 용성, 운허, 相, 모양, 모양다리, 고집, 몸매, 四相의 해석, 아상, 중생상

 

 

Ⅰ. 들어가는 말

 

『금강경』은 한국불교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던 경전이며 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 최초로 한글번역이 이루어진 것은 1461년 세조 7년에 간경도감이 설치되고 1464년 세조 10년에 『금강경언해』가 나왔을 때이다. 그리고는 용성스님이 일제 강점기에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어 신앙되고 있는 것에 크게 반성하여 삼장역회를 조직하면서 불경번역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그때 『화엄경』을 비롯하여 『금강경』등 몇몇 경전들이 한글로 번역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금강경』은 대정 11년(1922년) 1월 16일에 『신역대장경금강경강의』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발행되었다. 『신역대장경금강경강의』는 『금강경』의 한역 경구는 없고 한글로 번역한 번역문과 뜻설명 이라는 부제 하에 경구에 대한 해설이 부가되어 있다.

그 이후에 대정 13년 2월 23일에는 『금강경』의 한역 경구를 현토하고, 이어서 한글역을 한 것으로 하여 발
행하였다. 또한 대정 15년(1926년)에도 발행하고 있다. 그 이후에는 1960년대에 백봉 김기추와 해안 그리고 운허스님에 의해 『금강경』의 한글 번역서가 나오게 된다.

1965년 3월 10일에 백봉 김기추에 의해 『금강경강송』이 나오게 되는데, 한역 경전을 단락 지어 경구를 현토
하고 훈독 즉 한글역과 강설 을 붙이고 강설의 끝에는 7언절구로 송하면서 끝맺고 있다.

65년 5월에는 김해안이 강의한 『금강반야바라밀경』이 나왔는데, 역시 한글번역과 해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1966년 11월 1일에 운허 스님의 『금강경』한글 번역서가 처음으로 발행되는데, 1972년 2월 8일 5판으로 발행된 책자는 법공양으로 제작되었다. 책의 제목은 『무봉탑․금강경』으로 되어 있으며, 먼저는 무봉탑 이 나오고 이어서 한문형태의 송경의식문과 『금강반야바라밀경』한역경문이 그대로 나온다.

그 다음에는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독경할 수 있도록 송경의식문과 『금강반야바라밀경』의 한글음사
를 배치하고 이어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의 한글번역문과 함께 어려운 용어에 대해서는 역주를 곁들이고 있다. 그리고 월운스님이 『금강반야바라밀경강화』를 1977년 5월 25일 발행하였는데, 경문에 대한 현토와 한글 번역 그리고 강화 라고 하여 내용을 해설하고 있다. 그 외에 1970년대에는 김종오, 이승기, 이혜성의 역서가 있으며, 80년대에는 신소천, 김운학, 김탄허, 석진오의 역해와 역주 등이 있다. 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금강경』에 대한 한글역 및 해설서가 대폭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강경구는『금강경』 한글 번역 및 해석의 현황과 특징 이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금강경』 해석의 특징을 네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의 전통주석을 계승한 해석의 경향, 수행 및 생활 체험을 반영한 해석의 경향, 서구의 철학, 종교, 과학 등의 관점을 적용한 경우, 복원된 범어 원전과 인도철학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해석의 경향이 그것이다.1)

 

본 논문에서 운허의 『금강경』한글역을 살펴보는 작업은 운허 이전에 한글역으로 나온 백용성, 김기추, 김해안 등의 한글역과 비교하고, 또한 범어원전에 충실한 가운데 번역된 한글역과 대조하며 작업하고자 한다. 이는 운허의 번역이 당시 다른 번역자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며, 비록 범어원전을 참고하여 번역하지는 않았지만 범어원전의 뜻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범어 원전의 뜻과 차이가 나는 경우에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는 것도 또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1) 강경구, 『『금강경』한글 번역 및 해석의 현황과 특징』 ,『동아시아불교문화』제6집,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0, pp.89∼90.

 

 

Ⅱ. 운허의 『금강경』 한글 번역

 

1. 相에 대한 한글역

 

한국에 유통되고 있는 『금강경』은 대개가 구마라집이 한역한 것이다. 그에 따라 한글역도 구마라집의 한역본 『금강경』을 저본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주지하다시피 구마라집은 범어본에 나오는 nimitta,saṃjñā, lakṣaṇa 등 이들 세 용어를 相으로 한역하고 있다. 범어 원전에서는 의미내용을 달리하면서 사용하였으나, 구마라집이 한역하면서 相으로 통일하여 한역함으로써 한글역도 그에 맞추어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다.

먼저 세 용어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nimitta는 ni(아래로)+mā(to measure)의 명사로 ‘결정된 크기나 모양을 가진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표식, 모습, 외관, 형태’ 등의 뜻으로 쓰인다.2) 초기 경전에서 이 단어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쓰인다.

첫째는 ‘외관, 흔적, 자국, 특성, 성질(영어의 mark)’ 등의 뜻으로 쓰이며, 둘째는 ‘신호, 표시, 징조, 조짐(영어의 sign)’ 등의 뜻으로 쓰이며, 셋째는 ‘영상, 잔영, 표상(영어의 image)’ 등의 뜻으로 쓰인다.

 

saṃjñā는 saṃ(함께)+jñā(to know)의 명사로서 ‘같게 인식하는 것’ 이다. 다시 말하면 대상을 받아들여 개념(notion)작용을 일으키고 이름 붙이는 작용이라 할 수 있다. 니밋따와 산냐는 서로 유사한 측면이 많이 있지만, 니밋따는 마음에 어떤 것이 형상화(visualization)된 것이라면 산냐는 마음에 형상화된 것이 아니라 개념화, 이상화, 음운화(verbalization), 관념화된 것을 말한다.3)

 

lakṣaṇa는 lakṣ(to mark)의 명사형으로, 특징을 의미한다. 니밋따가 외관, 표식, 영상 등의 일반적인 相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락샤나는 특정한 대상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相’ 혹은 ‘독특한 相’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것이다.

 

2) 각묵, 금강경 역해, 서울: 불광출판부, 2001, p.93.
3) 위의 책, p.94.

 

이제 각각의 범어 원전 한역과 이에 대한 한글역을 살펴보자. 먼저 nimitta는 『금강경』에서는 한 곳에 나오는데, 통상 무주상보시를 설하고 있는 妙行無住分제4이다. 이에 대해 구마라집의 한역을 바탕으로 한 운허의 한글역을 살펴본다.

 

 

"보살이 온갖 법에 대하여, 마땅히 머물러 있는 생각이 없이 보시를 할 것이니, 이른바 빛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임과 법진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여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마땅히 이렇게 보시하되, 모양다리에 머물지 말지니라.

무슨 까닭이냐. 만약에 보살이 모양다리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그 복덕을 생각하여 요량할 수 없느니라.4)"

4) 鳩摩羅什譯, 金剛般若波羅蜜經(大正藏8 749,上),

 “菩薩於法應無所住行於布施。所謂不住色布施。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菩薩應如是布施不住於

何以故。若菩薩不住相布施。其福德不可思量”;

이운허 편역, 『무봉탑․금강경』, 서울: 홍법원, 1972, 『금강반야바라밀경』묘행무주분 제四, 한글역 부분, p.4.

 

 

구마라집이 不住於相그리고 不住相布施라고 한역한 부분에서 相의 범어원문은 nimitta-saṃjñāyām이며, 이에 대해 현장은 相想이라고 한역하고 있다. 이것은 구마라집은 nimitta-saṃjñāyām을 그대로 相이라고 번역한 반면에 현장은 니밋따와 산냐를 따로 한역하여 相想이라 한역한 것이다.

범어 원문의 뜻을 살려 그 의미를 말한다면 니밋따에 이어 산냐가 생겨나는 상황에서 그 니밋따는 물론 산냐에
도 머물지 말고 보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역자들의 한글역은 어떤가?

운허 이전에 용성, 해안, 백봉은 모두 한역 그대로 “상에 머물지 아니 한다.”라고 하였다. 다만 운허는 “모양다리에 머물지 않는다.”고 번역하였다. 그리고 ‘모양다리’를 각주로 해설하고 있는 데, “모양다리는 마음으로 생각하여 볼 수 있는 온갖 물건과 일의 모양을 말하는 것”5)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마음으로 생각하여 볼 수 있는 온갖 물건의 모양은 니밋따라 할 수 있으며, 마음으로 생각하여 볼 수 있는 온갖 일의 모양은 산냐라 할 수 있다. 결국 니밋따에 이어 일어나는 산냐에서 그 니밋따는 물론 산냐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한다는 의미로, 범어 원문의 뜻을 정확히 살리고 있는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운허 이전의 용성, 해안, 백봉이 모두 相에 머물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그러한 번역에 이어 해설에 들어가서는 모두 니밋따는 물론 산냐에도 머물지 않는 삼륜청정의 무루복덕의 보시를 설하고 있어서 원문의 의미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운허의 한글역은 용성, 해안, 백봉에 이어 나온 한글역으로서, 앞에서 한역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과는 달리 당시에 널리 사용되는 한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번역에 있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相을 모양다리라고 번역한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이것은 범어원전의 용어가 saṃjñā인 경우 ‘모양다리’라고 번역한 경우이다.

 

 

보살은 마땅히 온갖 모양다리를 여의어 아누다라삼먁삼보리마음을 낼지니6)
sarva-saṃjñā : 구마라집; 一切相, 현장; 一切想, 용성․해안․백봉; 일체상


여래는 온갖 모양다리가 모양다리 아니라고 하며, 또 온갖 중생도 중생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7)
sattva-saṃjñā : 구마라집; 一切諸相, 현장; 諸有情想, 용성․해안; 일체제상, 백봉; 일체 모든 상

sarva-sattvās : 구마라집; 一切衆生, 현장; 一切有情

 

5) 이운허 편역, 위의 책, p.5, 역주 15).
6) 앞의 책(大正藏8 750,中), “菩薩應離一切相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
7) 위의 책(大正藏8 750,中), “如來說一切諸相卽是非相。又說一切衆生則非衆生”

 

 

위에서 먼저 첫번째 문장은 범어 sarva-saṃjñā에 대해 구마라집은 一切相, 현장은 一切想으로 한역하고 있다. 이것은 구마라집은 nimitta, saṃjñā, lakṣaṇa 세 용어에 대해 일관하게 相으로 한역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며, 현장은 앞에서 nimitta에 대해 相으로 한역한 것을 살펴보았고,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lakṣaṇa에 대해서도 相으로 한역하고 있으며,8) saṃjñā에 대해서만 想으로 한역하고 있다.

구마라집의 一切相에 대해 용성, 해안, 백봉 모두 ‘일체상’으로 번역하여 모두 구마라집과 같이 相으로 번역하고 있다. 단지 운허의 경우만이 ‘온갖 모양다리’라고 번역함으로써 중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그 의미를 분명히 전달해주고 있다.

 

그 아래 문장은 구마라집은 一切諸相으로 한역하고 있으나 범어 원어는 sattva-saṃjñā로서 현장은 諸有情想이라고 한역하고 있다. 그리고 뒤이은 구절에서도 범어 원전은 sarva-sattvās로서 구마라집은 一切衆生으로 한역하고 있으나 현장은 一切有情으로 한역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 한글역을 보면 용성, 해안, 백봉 모두 구마라집의 한역에 따라 ‘일체제상’ 혹은 ‘일체 모든 상’ 그리고 ‘일체 중생’으로 번역한 것에 비해 운허스님은 ‘온갖 모양다리’ 그리고 ‘온갖 중생’으로 번역하고 있다.

 

범어 saṃjñā에 대해 또 달리 번역한 경우가 있는데, 샨냐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번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금강경』의 4상에 대한 한글역이다.

범어 원어는 ātma-saṃjñā, sattva-saṃjñā, jīva-saṃjñā, pudgala-saṃjñā으로 되어 있으며, 구마라집은 我相, 衆生相, 壽者相, 人相으로 한역하였으며, 현장은 我想, 有情想, 命者想, 補特伽羅想이라 한역하였다.

이에 대해 용성은 구마라집이 한역한 그대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해안은 나라는 상, 남이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수자상으로, 백봉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번역하고, 모두가 다 각 상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반면에 운허는 내라는 고집, 사람이라는 고집, 중생이라는 고집, 오래 산다는 고집으로 번역하고 각각에 대해 각주로써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4상의 각 상에 대한 풀이 혹은 설명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살펴보기로 한다. 한글역 부분에 대해 살펴보면, 용성, 해안, 백봉 역시 구마라집이 相이라고 한역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운허는 앞의 해석과도 달리 相을 ‘고집’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생각, 개념, 관념 등이 완전히 정착하였고, 그러한 사고가 모든 방면으로 드러나 스스로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을 읽어 낸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그러한 고집의 경우에는 4상에 대한 고집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법이다 법 아니다 라는 고집은 또한 이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운허는 이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8) 주) 13∼17 참조.

 

 

"이 여러 중생들이 다시는 내라는 고집, 사람이라는 고집, 중생이라는 고집, 오래 산다는 고집이 없으며 법이란 고집도 없고, 법 아니란 고집도 없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이 중생들이 만일 마음에 고집을 내면 그것이 곧 내라, 사람이라, 중생이라, 오래 산다는 고집에 집착함이 되느니라.

가령 법이란 고집을 내면, 곧 내라, 사람이라, 중생이라, 오랜 산다는 고집에 집착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설사 법 아니란 고집을 내더라도, 그것이 곧 내라, 사람이라, 중생이라, 오래 산다는 고집에 집착함이 되느니라.9)"

9) 위의 책(大正藏8 749,中),

“是諸衆生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無法相亦 無非法相。

何以故。是諸衆生。若心取相則爲著我人衆生壽者。

若取法相卽著我人衆生壽者。何以故。若取非法相。卽著我人衆生壽者”

 

 

구마라집이 法相이라고 한역한 것은 범어로는 dharma-saṃjñā이며 현장은 法想이라고 한역하였다. 용성, 해안, 백봉 모두 ‘법상’, ‘법 아닌 상’, ‘마음에 상’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운허는 ‘법이란 고집’, ‘법아니란 고집’, '마음에 고집‘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만약에 법이다 혹은 법이 아니다 라고 고집하게 되면 즉 마음에 고집을 내면 이는 바로 4상의 고집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된 번역이 앞의 모양다리와는 달리 고집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운허는 한글역 용어로서 고집과 모양다리를 한 문장 속에 함께 쓰는 경우도 있다. 이것 또한 saṃjñā에 대해서 구마라집은 모두 상이라고 한역하고 있지만, 운허는 달리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내라는 고집은 고집이 아니요, 사람이라는 고집, 중생이라는 고집, 오래 산다는 고집도 곧 고집이 아니옵니다. 그 까닭을 말하오면, 온갖 모양다리를 여읜 것을 부처님이라 하나이다.10)
sarva-saṃjñā : 구마라집; 一切諸相, 현장; 一切想, 용성․백봉; 일체상,해안; 일체 모든 상

10) 위의 책(大正藏8 750,中),

 “我相卽是非相。人相衆生相壽者相卽是非相。何以故。離一切諸相則名諸佛”


수보리야, 아누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 이는, 온갖 법에 대하여 마땅히 이렇게 알며, 이렇게 믿어 해석하고, 법이란 고집을 내지 아니하느니라.

수보리야 법의 모양다리라고 하는 것은, 여래가 말하기를 법의 모양다리가 아닐새 법의 모양다리라 이름하느니라.11)
dharma-saṃjñā : 구마라집; 法相, 현장; 法想, 용성․해안; 법상, 백봉; 법의 상

11) 위의 책(大正藏8 752,中),

“須菩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於一切法。應如是知如是見如是信解不生法相。

須菩提。所言法相者。如來說卽非法相。是名法相”

 

 

앞의 문장들에서 보는 것과 같이 saṃjñā에 대해서 구마라집은 相, 현장은 想이라 하였고, 용성과 해안 그리고 백봉도 구마라집의 한역에 따라 相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운허는 한 문장 속에 ‘고집’이라 번역한 경우와 ‘모양다리’라고 번역한 경우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경전의 전체 맥락과 경구의 의미맥락을 고려하여 번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의 한글역 문장에서 ‘온갖 모양다리’는 내라는 고집, 사람이라는 고집, 중생이라는 고집, 오래 산다는 고집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러한 고집을 여위는 것은 물론 어떠한 고집도 여위는 것이라는 점을 한글 번역에서 읽을 수가 있다.

두 번째 한글역 문장에서도 또한 아누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 이는 법이란 고집을 내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법이란 고집을 내게 되면 법이란 고집을 내는 그 순간 법의 모양다리가 되어 진정한 법의 모양다리는 아니게 된다. 문장에서 보면 법이란 고집은 법의 모양다리 속에 포함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운허는 또한 범어 saṃjñā에 대해서 구마라집의 한역 그대로 한글로 번역한 것도 있다.

 

 

"세존이시여, 이 참된 모양은 모양이 아니므로, 여래께서 참된 모양이라고 말씀하시나이다.12)"

12) 위의 책(大正藏8 750,中), “世尊。是實相者則是非相。是故如來說名實相”

 

 

구마라집이 實相으로 한역한 것은 범어로는 bhūta-saṃjñāṃ이며 현장은 實想으로 한역하였다. 용성은 실상, 해안은 실다운 상 혹은 실상, 백봉은 실상으로 번역하였고, 운허는 참된 모양으로 번역하였다.
구마라집의 實相을 참된 모양으로 번역한 것은 실상이라는 그 의미속에는 많은 외연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모양다리는 그 어떤 모양새로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내포한 것이라는 점에서 달리한 것이라 생각된다.

 

구마라집이 相으로 한역한 세 번째 범어는 lakṣaṇa이다. 이 lakṣaṇa에 대해서는 현장도 모두 相으로 한역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한글역을 살펴보기 위해 구마라집의 한역 문장의 예로써 살펴본다.

 

 

몸매로써 여래를 볼 수 있느냐.13)
lakṣaṇa : 구마라집; 身相, 현장; 諸相, 용성; 몸 형상, 해안; 신상, 백봉;몸 상

13) 위의 책(大正藏8 749,上), “須菩提。於意云何。可以身相見如來不”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삼십이거룩하온 몸매는 몸매가 아닐새, 삼십이거룩하온 몸매라 이름하나이다.14)
lakṣaṇa : 구마라집․현장; 三十二相, 용성․해안․백봉; 삼십이상

14) 위의 책(大正藏8 750,上), “如來說三十二卽是非相。是名三十二相”


여래의 말씀하는 모두 갖춘 거룩하온 몸매는 모두 갖춘 거룩하온 몸매가 아닐새 모두 갖춘 거룩하온 몸매라 하나이다.15)
lakṣaṇa : 구마라집․현장; 相, 용성․해안; 제상구족, 백봉; 모든 상의 구족

15) 위의 책(大正藏8 751,下), “如來說諸相具足卽非具足。是名諸相具足”


수보리야, 네가 생각하기를, ‘여래가 거룩한 몸매를 갖춘 탓으로,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느냐.16)
lakṣaṇa : 구마라집․현장; 相, 용성․해안․백봉; 구족상

16) 위의 책(大正藏8 752,上), “須菩提。汝若作是念。如來不以具足相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운허; 울긋불긋 겉모양에 속지말아라
        모두모두 거짓이요 헛된것일세
        온갖모양 보려해도 볼수없으면
        역력한 여래얼굴 분명하리라.
용성; 무릇 상이 있는 바는 다 허망함이니 만일 모든 상이 상 아님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17)
lakṣaṇa : 구마라집․현장; 相, 해안; 상, 백봉; 상

17) 위의 책(大正藏8 749,上), “凡所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

 

 

위의 문장에서 보는 것과 같이 범어 원어 lakṣaṇa에 대해 구마라집과 현장 모두 相이라고 한역하였다. 그에 대한 한글역으로서 용성은 身相에 대해 ‘몸 형상’이라 번역한 것 외에는 모두 상으로 번역하였고, 해안과 백봉은 모두 상으로 번역하고 있다. 다만 운허의 경우에는 앞의 네 경문에 나오는 相에 대해서 ‘몸매’라고 번역하고 있다. 범어 lakṣaṇa의 의미가 특정한 대상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相을 뜻한다고 볼 때, ‘몸매’라는 번역은 문맥과 의미내용에 맞춘 매우 적절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도 범어 원어는 lakṣaṇa이지만 lakṣaṇa는 ‘구족하다, 갖추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sampad와 함께 쓰여 부처님이나 전륜성왕이 완전히 갖추고 있다고 하는 32가지 大人相을 의미한다.18)

이에 대해 구마라집과 현장은 相으로 한역하였고 용성과 해안 그리고 백봉도 그에 따라 상으로 번역하고 있다. 다만 운허스님은 ‘겉모양’, ‘온갖 모양’ 등 ‘모양’으로 번역하고 있다.

범어 원전의 의미내용은 lakṣaṇa와 sampad가 함께 쓰여 문장 구조로 볼 때 부처님의 특상인 32대인상을 의미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구마라집이나 현장이 相으로 한역하고, 그에 따라 용성 해안 백봉 등 한글역자가 또한 상이라 번역하고, 운허스님이 ‘모양’이라 번역한 것에는 이 경구에서는 lakṣaṇa의 의미는 물론 nimitta나 saṃjñā의 의미조차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범어 원전의 의미를 넘어선 번역으로서 동아시아 불교의 특성을 드러내는 번역이라 생각된다.

18) 각묵, 『금강경 역해』, 서울: 불광출판부, 2001, p.99.

 

구마라집이『금강경』에 나오는 nimitta, saṃjñā, lakṣaṇa의 세 용어에 대해 相으로 한역하였지만, 그 외에도 相으로 한역한 곳이 있다.
斷滅相과 一合相이 그것이다.

 

 

"무슨 까닭이냐. 아누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 이는, 법에 대하여 아주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하느니라.19)"

vināśaḥ(소멸) ucchedaḥ(단멸)20) : 구마라집; 斷滅相, 현장; 若壞若斷 용성; 단멸, 해안․백봉; 단멸상

19) 金剛般若波羅蜜經(大正藏8 752,上), “何以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於法不說斷滅相

20) 앞의 책, p.389.

 

“만일 세계가 참으로 있는 것이면, 그것은 곧 한덩어리 된 것이니,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한덩어리는 한덩어리가 아닐새, 한덩어리라 이름하나이다.”

“수보리야, 한덩어리란 것은 곧 말할 수 없는 것이언만, 다만 범부들이 그것을 탐내어 고집 하느니라.21)
piṇḍa-grāhaś(한 덩어리로 뭉쳐진 것)22) : 구마라집; 一合相, 현장; 一合執, 용성; 일합상, 해안; 한 뭉치의 상, 백봉; 하나의 합하는 상

21) 앞의 책(大正藏8 752,中),

“若世界實有者則是一合相。如來說一合相則非一合相。是名一合相。

須菩提。一合相者則是不可說。但凡夫之人貪著其事”

22) 앞의 책, p.408.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범어 원문에서는 相으로 번역될 만한 용어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구마라집은 의미상으로 相을 첨가하여 번역함으로써 뜻을 분명히 나타내려고 하는 의도가 보인다.

하지만 현장은 相을 첨가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번역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해 용성은 위의 경구에서는 ‘단멸’로 번역하였고 아래 경구는 ‘일합상’으로 번역하였다. 그 외에 해안과 백봉은 ‘단멸상’, ‘한 뭉치의 상’, ‘하나의 합하는 상’이라 하여 모두 相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에 운허는 상을 첨가하지 않고 ‘아주 없어지는 것’, ‘한덩어리’라고 번역하여 구마라집의 한역 속에서도 원전의 의미를 읽어내고 있으며, 그것을 한글로 나타내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고 있다.

 

이상에서 구마라집이 금강경에서 相이라고 한역한 것을 중심으로 현장의 한역과 한글역자들의 번역을 살펴보았다. 구마라집이 相이라고 한역한 것 가운데에서 nimitta와 lakṣaṇa에 대해서는 현장도 相이라고 한역하고 있으나, saṃjñā에 대해서는 想이라고 한역하였다.
이 세 용어에 대한 한글역은 용성, 해안, 백봉 모두가 대개 구마라집의 한역에 따라 상으로 번역하고 있다. 다만 운허 스님은 경문의 전체적인 맥락과 의미내용에 따라 모양다리, 고집, 몸매, 모양 등으로 번역을 달리하고 있다.

 

먼저 ‘모양’이라고 번역한 것은 구마라집의 한역에서 ‘是實相者則是非相是故如來說名實相’과 ‘凡所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 의 두 경문에서 나오는 相을 번역할 경우이다.

앞의 문장에서 實相의 경우 相의 범어 원어는 saṃjñā이며, 뒷 문장에서의 相의 원어는 lakṣaṇa이다. 이 두 경문의 경우에는 구마라집의 한역의 경우나 한글역의 경우나 모두는 범어 원어의 의미내용을 넘어서 해석하고 있음을 추측케 한다. 앞의 실상에 대해서 운허는 ‘참된 모양’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실상이라는 의미속에는 많은 외연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모양새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모양다리’로는 많은 외연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모양’이라고 번역하여 다른 것과 달리한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뒷 문장의 경우에도 원어는 lakṣaṇa이나, 구마라집의 相이라는 한역과 한글역자들이 相이라고 번역한 것은 그 相에 대해 특상이라고 이해하지 않고 nimitta, saṃjñā, lakṣaṇa를 포함하는 일체의 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되며, 운허 또한 그러한 의미에서 ‘모양’이라고 번역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운허의 번역용어에서 ‘모양’은 nimitta, saṃjñā, lakṣaṇa를 모두 포함하는 외연이 가장 넓은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운허가 ‘모양다리’라고 번역한 것은 범어 원어 nimitta와 saṃjñā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모양다리에 대해 운허는 “마음으로 생각하여 볼 수 있는 온갖 물건과 일의 모양을 말하는 것”23)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모양다리의 한국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모양새를 의미하는 것의 모양의 됨됨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마음으로 생각하여 볼 수 있는 온갖 물건의 모양은 nimitta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일의 모양은 saṃjñ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nimitta는 표식, 모습, 외관, 형태 등의 뜻으로 쓰이고, saṃjñā는 개념화, 이상화, 음운화(verbalization), 관념화된 것에 쓰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23) 이운허 편역, 『무봉탑․금강경』, 서울: 홍법원, 1972, 『금강반야바라밀경』묘행무주분 제四, 한글역 부분, p.4.

 

‘고집’이라고 번역한 경우는 『금강경』의 四相의 경우와 法相에 해당하는 경우이며 범어 원어는 saṃjñā이다. 고집은 개념과 관념이 깊어져 고정화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스스로 실체적인 것으로 착각하여 그 착각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몸매’라고 번역한 것은 범어 원어가 lakṣaṇa인 경우이다. lakṣaṇa는 특정한 대상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相을 의미하는 것으로, 『금강경』에서는 범부중생들과 다른 부처님만이 가지고 있는 相을 나타낼 때 쓰이고 있다. 반면에 nimitta는 외관, 표식, 영상 등의 일반적인 相을 나타낼 때 쓰인다. 운허는 『금강경』에서 lakṣaṇa에 해당하는 한역의 경우에는 ‘몸매’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nimitta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모양다리’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 구마라집이 모두 相이라고 한역했지만 운허는 전체적인 문맥과 의미 내용의 맥락에 맞추어 알맞은 한글용어를 택해 번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 四相의 한글해석

 

구마라집이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으로 한역한 四相의 범어 원문은 ātma-saṃjñā pudgala-saṃjñā sattva-saṃjñā jīva-saṃjñā이다.
이에 대해 현장은 我想補特伽羅想有情想命者想으로 한역하였다.
이에 대한 한글역은 용성은 구마라집이 한역한 그대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해안은 나라는 상, 남이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수자상으로, 백봉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번역하고, 운허는 내라는 고집, 사람이라는 고집, 중생이라는 고집, 오래 산다는 고집으로 번역하고 있음을 앞에서 밝혔다. 본 단락에서는 각 상에 대한 풀이와 설명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용성(龍城; 1864〜1940, 본명은 相奎)의 해석을 보기로 한다.
대정 11년(1922년)에 초판 발행한 『신역대장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범부사람에 사상은 내가 재물이든지 학문이든지 있으면 일체사람을 업수이 여기나니 이것이 아상이 되는 것이오. 내가 인 의 례 지 신을 행하면 나혼자 사람인체 하나니 이것이 인상이오.

호사는 자기몸으로 돌려보내고 악사는 타인에게 베푸는 것은 이것이 중생상이오.

모든경계를 대하야 취사심이 있는 것은 이것이 수자상이니라.


공부하는 사람의 사상은 아소심이 있는 것이 아상이오.

자기가 계행가지는 상이 있어 파계한 사람을 업수이 여기는 것이 인상이오.

삼악도를 실여하야 천상에 나기를 좋아하는 것이 중생상이오.

오래 살기를 좋아하야 복을 부지런이 닦는 것이 수자상이니, 사상이 없어야 곧 이 불타이니라.”24)

24) 삼장역회 룡성당 백상규 강의, 『신역대장경금강경강의』, 서울: 삼장역회, 대정 11년(1922년) 1월 16일 초판발행, p.13.

 

다시 대정 15년(1926년)에 초판 발행한 『금강반야바라밀경』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이미 반야를 깨친 보살은 다못 능히 증득한 바 지혜로 아상을 삼고

증득해질 바 진여로 인상을 삼으며

능히 증득하고 능히 깨친 것으로 중생상을 삼으며

증득하고 깨친 것을 잊지 못하여 가만히 계속하는 것으로 壽命相으로 삼을새

부처님께서 극히 미세한 사상을 파하신 것이다.”25)

25) 삼장역회 룡성 백상규,『금강반야바라밀경』, 서울: 삼장역회, 대정 15년 (1926년) 4월 29일 초판발행, p.31.

 

 

해안의 四相에 대한 풀이는 다음과 같다.

 

“아상은 나라는 상이니, 나 개인을 근본으로 하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이요,

인상은 내가 아닌 남이라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이요,

중생상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이요,

수자상은 청정열반을 즐기어 잊지 못하고 영원히 거기에 주하려 는 상이다.

그러나 이 네 가지 상이 나라는 상에서 근본된 것이, 나라는 상만 없으면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동시에 없어지는 것이다.”26)

26) 해안 강의,『금강반야바라밀경』, 서울: 불서보급사, 1965년 5월 1일 초판발행, 1971, pp.16∼17.

 

 

다음은 백봉 김기추의 四相의 풀이를 보기로 한다.

 

“我相이라 함은 立身揚名을 本位로 한 思念의 行動一切를 뜻함이요.
人相이라 함은 事理分別을 本位로 한 思念의 行動一切를 뜻함이요.
衆生相이라 함은 口正心邪를 本位로 한 思念의 行動一切를 뜻함이요.
壽者相이라 함은 不生不滅의 涅槃地를 얻었다는 觀念을 本位로 한 思念의 行動一切를 뜻한다.”27)

 

27) 김기추,『금강반야바라밀경강송』, 서울: 동국출판사, 1965년 3월 10일 초판발행, p.52.

 

 

마지막으로 운허스님의 四相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기로 한다. 각주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내라는 고집 - 五蘊으로 된 이 몸을 참말 나라고 집착하는 것.
사람이라는 고집 - 나는 사람이요 축생이 아니라는 집착이며, 또는 나에 대하여 남이라는 집착.
중생이라는 고집 - 나는 五蘊을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집착.
오래 산다는 고집 - 나는 일정한 기간동안 살아가는 목숨이 있다고 하는 집착.”28)

28) 이운허 편역,『무봉탑․금강경』, 서울: 홍법원, 1972, 『금강반야바라밀경』,p.5.

 

 

四相에 대한 범어 원어와 구마라집과 현장의 한역 그리고 구마라집의 한역을 저본으로 한 용성․해안․백봉․운허의 한글역과 그 풀이를 알아보았다. 그 풀이에서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범어 원전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면, 我相즉 ātma-saṃjñā는 ātman이라는 관념을 말하는 것으로, 보살이 ātman이라는 관념을 지니고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도 우파니샤드 철학에서 ātman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실체성을 지닌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人相즉 pudgala-saṃjñā은 pudgala라는 관념을 말하는 것으로, 보살이 pudgala라는 관념을 지니고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다. pudgala는 특히 불교의 한 부파였던 犢子部에서 주장하던 것으로 독자부에서는 푸드갈라를 非卽非離蘊이라고 한다.29) 비즉비리온이란 ‘오온에 즉해 있는 것도 아니며 오온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라는 의미로서, 푸드갈라는 언어로써 표현될 수 없다고 한다.

 

衆生相즉 sattva-saṃjñā는 sattva라는 관념을 말하는 것으로, 보살이 sattva라는 관념을 지니고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다. sattva는 인도 일반에서 넓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 전문적으로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며, 특히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모든 생명체를 의미한다.30) 그러므로 보살이 지금 그 생명의 당체가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중생으로 간주하고 스스로나 타인을 대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닌 것이다.

 

壽者相즉 jīva-saṃjñā는 jīva라는 관념을 말하는 것으로, 보살이 jīva라는 관념을 지니고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다. jīva는 자이나교에서 생사를 초월해서 존재한다고 여기는 개념이다. 결국은 보살이 스스로나 타인에 대해 자기의 중심체라고 여기는 어떠한 것에라도 머물러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사상에 대한 한글역을 보면 대개가 아 인 중생 수자라고 한역된 한자의 뜻에 따라 풀이하고 있다. 즉 나와 남, 중생 그리고 수명이라는 틀 속에서 해석하고 있다. 먼저 용성의 사상에 대한 해석은 혜능의 四相에 대한 설명에 영향을 받고 있다. 혜능의 사상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자.

 

29) 世友菩薩造, 三藏法師玄奘譯, 異部宗輪論(大正藏49 16,下), “有犢子部本宗同義。謂補特伽羅非卽蘊離蘊。依蘊處界假施設名。諸行有暫住。亦有刹那滅。諸法若離補特伽羅。無從前世轉至後世。依補特伽羅可說有移轉.”
30) 각묵, 금강경 역해, 서울: 불광출판부, 2001, pp.82〜83.

 

 

“수행인에게도 사상이 있으니 마음에 주체와 대상이 있어 중생들을 가벼이 여기며 오만한 것을 我相이라 하고, 계를 지키는데 자부심을 가져 파계한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人相이다. 三途의 괴로움을 싫어하고 천상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이 衆生相이며, 긴 수명을 사랑하여 복업을 부지런히 닦으면서 모든 집착을 잊지 않는 것이 壽者相이다.”31)

31) 혜능, 『金剛般若波羅密經口訣』, “修行人亦有四相心有能所輕慢衆生名我相恃持戒輕破戒者名人相厭三途苦愿生諸天是衆生相心愛長年而勤修福業諸執不忘是壽者相.”; 강경구, 『금강경한글 번역 및 해석의 현황과 특징』 , 『동아시아불교문화』 제6집,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0, p.92, 주)3 재인용.

 

 

위의 용성의 사상에 대한 설명 가운데 ‘공부하는 사람의 사상’은 혜능이 설명하고 있는 ‘수행인에게 있는 사상’과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용성은 ‘공부하는 사람의 사상’은 물론 ‘범부사람에게 있는 사상’과 ‘반야를 깨친 보살에게 있는 사상’에 이르기까지 피력하고 있다. 이는 범부로서 나타날 수 있는 상에서 수행을 행하고 있는 수행인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상 더 나아가 보살에게 조차 있을 수 있는 미세한 상에 이르기 까지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중심체로서 존재하는 실체로서의 그 어떠한 ‘나’도 부정한다는 『금강경』의 본 뜻에
따른 해석이라기보다는, 자기 본위적인 관념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의 相에 대한 부정을 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해설한 해안과 백봉 또한 용성이 풀이한 그 내용의 대의를 취하거나 그 내용의 일부를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운허에 와서는 그 해석이 앞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우선 我相에 대해 운허는 ‘五蘊으로 된 이 몸을 참말 나라고 집착하는 것’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오온이 화합하여 조직된 것에 實我가 있다고 고집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 자기 중심체라고 여기는 그 어떠한 것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강경』의 본 뜻을 드러내고 있는 설명이라 생각된다.

중생상에 대해서도 오온과 관련하여 해석하고 있는데, ‘나는 五蘊을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집착’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오온의 상속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게 된다면, 이것 또한 범어 원어로 살펴본 중생상이 ‘지금 그 생명의 당체가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해석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인상과 수자상은 역시 운허 이전의 해석과 같이 人과 壽者의 한자 뜻을 바탕으로 한 해석으로, 이전의 해석과 대의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운허가 아상과 중생상의 해석에서 오온에 착안함으로써 자기의 중심체에 대한 실체성을 부정한다는『금강경』의 본 뜻을 살리게 되었으며, 인상과 수자상에 대해서는 오온을 자기라고 실체시 했을 때 나타나게 되는 상으로서 해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운허의 사상에 대한 해석은 월운에게로 이어지며, 월운은 <나>를 실체시하여 나가 있다고 생각할 때 너를 의식하게 되고 나와 너가 갈릴 때에 절대한 참 이치는 보지 못한다고 하여 四相이 모두 나라는 고집에서 비롯한 것이라 하고 있다.

 

 

“네 가지 모양다리는 무엇인가?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니, 이는 모두가 (나)라는 고집이 남아 있는 현상들이다.

 

첫째, 아상(我相)이란 (나)가 있다는 고집이니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다섯 가지 쌓임 즉 五온(蘊)의 임시 집합체일 뿐이요, 실체가 없거늘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에게 공통된 병폐이다.


둘째, 인상(人相)이란 나는 사람이요 축생이나 귀신이 아니다. 나는 지금의 이 몸으로 장차 인연 따라 六취(趣)에 왕래하게 될 것이다 하는 막연한 고집이다.


셋째, 중생상(衆生相)이란 나는 五온의 뭇 인연에 의하여 살아가는 존재라는 고집이니, 나에게는 괴로움이나 즐거움 따위가 끊임없이 닥쳐온다고 생각하는 상태이다.


넷째, 수자상(壽者相)이란 나는 일정한 기간 동안은 살아 있게 되리라는 막연한 고집이니, 속담에 하루 죽을 줄 모르고 천 년 살 줄만 안다고 하는 예와 같다.


이상의 네 가지는 비록 넷이 있으나 결국 <나>가 있다는 생각 하나로 공통되나니 <나>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 너를 의식하게 되고 나와 너가 갈릴 때에 절대한 참 이치는 보지 못하고 뒤바뀐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이와 같이 뒤바뀐 생각에 빠진 이를 어찌 보살이라 하겠는가?”32)

32) 김월운 강술, 『금강반야바라밀경강화』, 서울: 보련각, 1977년 5월 25일 초판발행, 1986, pp.99∼100.

 

 

1974년에 발행한 상역과해 금강경에서는 용성의 금강경의 한글역과 해설을 발행하면서, 용성의 해설 전에 그 동안 금강경에 대한 한글역자들의 해설을 바탕으로 중요한 용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와 함께 四相에 대한 견해도 그 동안의 견해를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아상(我相): 나 라는 상(相)이니 나 개인을 근본으로 하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조직된 것을 실아(實我)가 있다고 하고 또 내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며 증득한 것을 집착하여 잊지 않고 이를 인정하여 나 라고 하는 것이다.


인상(人相): 내가 아닌 남이라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 오온의 화합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 가운데 우리는 사람이니 지옥취나 축생취보다 다르다고 집착하는 견해이고 나는 오도(悟道)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집착이다.


중생상(衆生相):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 중생들이 잘못된 소견으로 자기의 몸은 오온이 가(假)로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라 고집하는 견해


수자상(壽者相): 청정 열반을 즐기어 잊지 못하고 영원히 거기에 주하려는 상(相)이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길든 짧든 간에 일정한 목숨을 받았다고 생각함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가화합(假和合)된 개체라는 생각인 바 개체위에 명(命)이 있다고 하는 관념(觀念)을 말한다.”33)

33) 용성 백상규 역경, 도문 간행,『상역과해 금강경』, 서울: 제일문화사, 1974년 6월 27일 발행, pp.23∼24.

 

 

1974년에 발행된 『상역과해 금강경』은 편집의 순서와 형태를 보면 분명 용성, 해안, 백봉, 운허의 그 동안의 해설을 바탕으로 누군가가 중요한 용어에 대해 정리하여 그 용어에 대한 해설을 먼저 싣고, 그 다음에 경구의 본문에 대한 용성의 해설을 싣고 있다. 그러므로 정리되어 실은 용어 해설은 용성의 견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주의하게 살펴본 사람의 경우는 그 용어의 해설도 용성의 해설로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동아시아불교문화』 제6집에 실린 강경구의 『금강경』한글 번역 및 해석의 현황과 특징 이라는 논
문을 보면, 강경구는 백용성의 아상에 대한 해석이라고 하면서 앞에서 언급한 정리된 아상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백용성은 아상과 관련하여 최소 3가지의 의견을 제시한다고 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강경구가 인용한 아상의 내용은 백용성의 견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인용된 아상의 내용이 백용성의 견해라고 간주하고 한국의 많은 주석가들이 백용성의 해석의 일부 혹은 전체를 그대
로 계승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더 나아가 김월운의 해석도 백용성과 흡사하여 두 가지의 의견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즉 사상을 실체가 있다는 고집으로 보는 견해와 나와 남을 가르는 태도로 보는 견해가 나란히 제시되어 있다고 하였다.34)

그러나 위에서 용성․해안․백봉․운허의 사상에 대한 해설에서 보는 것과 같이, 강경구의 논리전개는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김월운은 백용성의 견해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고, 운허의 견해를 바로 이어받아 해설하
고 있다. 아상에 대해 자기본위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혜능에서 시작하여 용성, 해안, 백봉에 이어지고 있으나, 운허에 와서야 자기 중심체로 여겨지는 실체성을 가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인상에 대해 나와 남을 가르는 태도로 보는 견해는 해안의 해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34) 강경구,『금강경』한글 번역 및 해석의 현황과 특징 ,『동아시아불교문화』제6집,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0, pp.94∼95.

 

 

3. 게송의 한글역

 

구마라집이 게송으로 한역한 것에 대해 용성, 해안, 백봉 등은 게송의 형태로 번역하지 않고 있다. 다만 백봉의 경우 한글역의 번역 부분에서는 게송의 형태로 번역하고 있지는 않으나 강설부분에서는 게송임을 언급하고 있다. 운허는 구마라집이 게송으로 한역한 것은 물론 한역부분에서 게송이 아닌 경구에 대해서도 게송의 형태로 번역하고 있다. 운허가 게송의 형태로 한글역한 것은 다음과 같다. 운허의 게송 형태의 번역과 용성의 산문 형태의 번역을 함께 예시하였다.

 

 

운허; 울긋불긋 겉모양에 속지말아라
        모두모두 거짓이요 헛된것일세
        온갖모양 보려해도 볼수없으면
        역력한 여래얼굴 분명하리라.
용성; 무릇 상이 있는 바는 다 허망함이니 만일 모든 상이 상 아님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35)

35)『金剛般若波羅蜜經』(大正藏8 749,上),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운허; 금빛같은 저몸매도 부처아니니
        맑고묘한 그말소리 부처런말가
        빛과소리 사특한길 따라만가면
        억천만겁 다하여도 부처못보리.
용성; 만일 색으로써 나를 보난고?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거나하면 이 사람이 사도를 행하는지라 능히 여래를 보지못하리라.36)

36) 위의 책(大正藏8 752,上),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운허; 있고없는 모든법은 꿈결같아서
        그림자와 꼭두각시 물거품과같고
        이슬이나 번개같아 허망하거니
        변함없는 참된이치 밝게보아라.
용성; 일체하염이 있는법이 꿈과 꼭두각시와 물버큼과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또는 번개 같으니 맛당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37)

37) 위의 책(大正藏8 752,中),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운허는 445조의 싯구 형태로 번역하면서 싯구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뜻에 맞추어 내용을 첨가하고 있다. 내용이 첨가됨으로써 뜻이 더욱 분명해지고 운율은 더욱 리듬감을 가지게 된다. 더군다나 첫 번째 경구인 “凡所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는 구마라집이 게송으로 한역한 것도 아니며, 범어 원전 또한 게송의 형태가 아니다. 그럼에도 게송의 형태로 번역한 것은 운허의 뜻이 포함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문장은 『금강경』경구 가운데에서도 자주 회자되고 있는 경구이다. 운허가 『금강경』의 다른
산문 경우와는 달리 이 경구만이 특별히 445조의 싯구 형태로 번역한 것은, 대중들 간에 자주 회자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번역한 것이라 생각된다. 운율을 넣어 싯구 형태로 번역함으로써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고 또한 잊어버리지 않고 자주 입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는 외국어로 된 경전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그 의의가 경전의 유포는 물론 부처님의 말씀을 대중들에게 널리 전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Ⅲ. 운허의 『금강경』한글 번역의 의의

 

들어가는 말에서 『금강경』의 한글역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본 것과 같이, 『금강경』은 1461년 간경도감이 설치되고 1464년에 최초로 『금강경언해』가 나온 이후로 1922년에서야 용성선사에 의해 한글로 번역 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조선의 선사들은 우매한 중생들을 제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조선의 유교적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지식인 또한 스스로 종교적인 지식을 독점하고 대중들을 일깨우는 것에는 게을리 하였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용성이 불경을 역경하게 된 동기도 알려진 것과 같이, 감옥에 구금되었을 때 카톨릭과 개신교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해서 대중들과 함께 하는 것을 목도한 후부터 라고 한다. 그 만큼이나 당시의 선사들은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것이 대중들을 일깨우게 되는 중요한 방편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1922년에 용성이 『금강경』을 한글로 옮긴 이후에 그 누구도 『금강경』을 한글로 옮기지 않았으며, 60년대에 들어와서야 1965년에 백봉 김기추, 해안에 의해서, 그리고 그 이듬해 1966년 운허에 의해 한글로 번역되었다.

 

용성, 백봉, 해안의 한글역이 전체적으로는 한글로 번역되고 있으나 불교용어에 있어서는 한자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한 점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으나 용성의 경우는 최초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불경의 한글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라 할 것이다.

용성, 백봉, 해안이 불교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한글로 번역하고 있지만은 그들 모두는 그 한글역에 대하여 풀이를 행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금강경』의 뜻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는 당시 『금강경』을 통하여 수행을 하던 선 수행자나 재가 불교인으로서 수행에 임하는 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
을 것이라 생각된다.

 

1966년에 초판 발행된 운허의 『금강경』번역은, 선행하는 세 분들의 번역과 비교해 볼 때 확실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먼저 운허가 사용하고 있는 번역용어는 당시 그 시대에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한글용어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자투의 불교용어를 최대한 뜻에 맞추어 한글용어를 채택하고 전체적인 문맥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문장을 구성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반대중들에게 널리 전해야겠다는 운허스님의 간절한 발원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되며, 오늘날에도 선별하여 이어가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앞에서도 지적하였지만, 구마라집은 nimitta, saṃjñā, lakṣaṇa 등 세 용어에 대해 동일하게 相으로 한역하였고 용성, 백봉, 해안이 모두 相으로 번역하였지만, 운허는 『금강경』의 문맥과 전체적인 뜻에 맞추어 모양, 모양다리, 고집, 몸매 등으로 구분하여 번역하고 있다. 오늘날 범어 원전의 뜻과 비교해 볼 때 매우 근접한 번역임을 알 수 있었다.
즉 nimitta는 ‘모양다리’라고 번역하였으며, saṃjñā에 대해서는 모양다리, 고집, 모양 등으로 각각 문맥에 따라 달리 번역하였으며, lakṣaṇa의 경우도 몸매라고 번역하였으나 모양이라고 번역한 경우도 있다. 특히 모양이라고 번역한 경우는 두 경우인데, 구마라집의 한역에서 ‘是實相者則是非相是故如來說名實相’과 ‘凡所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의 경우이다. 實相의 경우 相의 범어 원어는 saṃjñā이며, 뒷 문장에서의 相의 원어는 lakṣaṇa이다. 이 경우 용성, 해안, 백봉 등은 모두 상으로 번역하고 있고 운허는 모양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그 의미 내용은 모두 nimitta, saṃjñā, lakṣaṇa 등 세 용어의 의미 내용을 넘어서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 『금강경』해석의 특징적인 모습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용성과 백봉과 해안 등은 모두 nimitta, saṃjñā, lakṣaṇa의 세 용어에 대해 구마라집과 같이 相으로 번역하였으나, 운허는 문맥과 전체적인 뜻에 맞추어 달리 번역하였다는 것에서 상당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四相의 해석에 있어서도 운허는 앞서 행한 풀이와는 달리하고 있는데, 특히 我相을 ‘五蘊으로 된 이 몸을 참말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라고 하여 我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금강경』본래의 뜻에 부합하고 있다. 또한 중생상에 대해서도 ‘나는 오온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집착’이라고 하여 오온의 상속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게 된다면, 범어 원어로 살펴본 중생상이 ‘지금 그 생명의 당체가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해석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38) 월운 편, 『譯經發願文』, 『운허선사어문집』, 서울: 동국역경원, 1989, p.203.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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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On Un-hea's the korean translation of the Diamond Sutra

 

Kim Chi-on

(Professor, Jingak Buddhist College, Jingak Buddhist Order)

 

The Diamond Sutra(金剛經) had been, for the first time, translated into Korean at the Gangeongdogam(刊經都監) - Royal institution for publishing Buddhist canons - where founded in 1461.

Since first translation, the Diamond Sutra was re-translated by Yong-seong at 1922. Subsequently, it was translated by Baek-bung and Hea-an in 1965, then, Un-hea in 1966.

Translations by Yong-seong, Baek-bung and Hea-an were, comparatively, used Chinese terminology in the chinese translation of the diamond Sutra. on the other hand, Un-hea's made use of current korean idioms for his translation.

Kumārajīva translated all three Sanskrit words of nimitta, saṃjñā and lakṣaṇa into appearance(相), and so did Yong-seng, Baek-bung and Hea-an, as well.

Un-hea, however, translated those words in accord with context and general meanings in Diamond Sutra.

For example, nimitta was translated into form, and saṃjñā into form, stubbornness, appearance, and Lakṣaṇa into figure or appearance in a diverse textual context.

As far as the Four appearances(四相) are concerned, Un-hea, differently with his forerunners, interpreted in his own ways.

Especially Un-hea interpreted Ātma-saṃjñā(我相) into the attachment of Five khandhas as real Self. This interpretation corresponds to real meaning of the Diamond Sutra.

In Sattva-saṃjñā(衆生相), Un-hea interpreted Sattva-saṃjñā(衆生相) as the attachment that we exist dependent on the Five khandhas. This interpretation does not differ from meaning of Sanskrit.

Geneally speaking, Un-hea, unlikely other translations, used easy and various terminology for translation that was widely used in that time.

Therefore, his translation could be evaluated high in public estimation as for the context and meaning of the Diamond Sutra. Key words

the Korean translation of the Diamond Sutra, Yong-seng, Un-hea, appearance(모양), form(모양다리), stubbornness(고집), figure(몸매), Ātma-saṃjñā, Sattva-saṃjñā, the interpretation of Four appearance

 

 

논문투고일 : ’14. 3. 26 심사완료일 : ’14. 6. 2 게재확정일 : ’14. 6. 2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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