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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의 十地說 硏究
권탄준/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Ⅰ. 修行道의 階位性 문제
『화엄경』에 佛道의 수행과정이 체계적으로 설해져 있어서, 보살이 信을 근본으로 하여 發心하여 여러 단계의 수행을 거쳐서 成佛하게 되기까지의 내용이 잘 밝혀져 있다. 이렇게 성불하기까지의 과정 단계는 전통적으로 52位를 중심으로 하여 알려져 왔다. 그렇지만 『화엄경』에는 전통적인 52位說에서 언급되는 十信이나 等覺․妙覺이 실제로는 설해져 있지 않는 점 그리고 三賢十地의 계위설 등으로 52位說을 『화엄경』의 수행도에 적용한다는 것이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화엄경』에서 수행의 次第문제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보살도와 관계되는 내용을 설하는 제2회에서 제7회까지의 설법과 관계되는 사항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一連의 체계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설법이 설해지는 장소가 地上에서부터 天上으로, 그리고 다시 더 높은 天上으로 올라가며, 여래가 광명을 발하는 신체의 부위도 두 발의 발바닥에서 두 발의 발가락, 무릎, 이마의 白毫相의 순서로 차츰 높아진다. 그리고 여래가 발하는 光明도 그 숫자가 늘어나고, 따라서 비추는 세계도 넓어진다.
이와 같은 점을 놓고 볼 때에 各에서 설해지고 있는 信․十住․十行․十廻向․十地의 보살도가 차례대로 향상되어 가는 것이라는 점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이것은 성불을 향해 나아가는 보살의 수행이 단계적으로 높아져 감을 상징해서 나타내기 위해 『화엄경』을 편찬할 때에 의도적으로 구성된 것이라 보이는 것이다.
『화엄경』은 본래 正覺者 즉 如來의 出現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놓고, 그 여래출현을 가능하게 한 과거의 因行을 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의 次第順序를 갖추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十住․十行․十廻向․十地는 모두 그 내용이 10바라밀이 순서대로 설해지고 있는 것이며, 初發心住에서 시작해서 灌頂住에서 끝나는 十住와 歡喜地에서 시작하여 法雲地에서 끝나는 十地에는 분명히 그러한 뜻이 나타나 있다. 거기에다가 法門의 說處가 天界로 차츰 올라가는 등 때문에 ?화엄경?에 설해져 있는 수행도가 얕은 데에서 깊은 곳으로 나아가거나,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차례대로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점도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가장 높은 十地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信․十住․十行․十廻向의 수행을 차례대로 닦아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 聖位에 오르기 전에 三賢․四善根의 加行位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小乘의 수행도에 준거해서 『화엄경』의 대승보살의 수행도를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화엄경』의 대승보살의 수행도 체계를 흔히 三賢十聖이니 三賢十地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화엄경』의 수행도 체계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의문시된다.
우선 『화엄경』수행도를 順次的으로 닦아나아가는 것이라는 점을 가장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天界의 설법인데, 우선 이 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화엄경』은 釋尊이 성도직후에 菩提樹下에서 三昧에 들어 있으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신 채로 欲界 諸天에서도 동시에 모습을 나타내어 설법하신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最後의 入法界品을 제외한 7會는 時間的으로 先後의 것이 아니고 7會가 모두 동시에 설해지는데, 장소마다 會衆도 다르고 說法者도 다르며, 會座 間에는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이다. 결국 會座마다 同時에 十住․十行․十廻向․十地 등 각각 하나의 설법이 행하여지고, 하나의 會座에서는 거기에 설해진 十住나 十行 등 1項目만이 보살이 수행해야 할 내용이기 때문에 法門에 階位의 上下 次第順序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화엄경』의 설법이 보리수 아래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여러 天界에서 행하여지는 것은 불타가 깨달음을 이룩한 寂滅道場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은 어떤 곳에서의 설법도 바로 佛이나 佛世界 즉 깨달음의 세계를 설하는 입장을 떠나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가장 극명하게 시사하고 있는 것이 보살도가 시작되는 十住 初心에 깨달음을 이룬다고 하는 저 유명한 “처음에 發心하였을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고 하는 華嚴經說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放光하는 신체의 부위가 점차로 높아진다거나 광명이 많아지면서 더 널리 세계를 비춘다는 것은 佛德이 증가되어 수행이 향상되어 가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各位에서 보살이 들어가는 三昧에 따라서 出現하는 부처님 숫자가 증가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十住․十行․十廻向․十地 등을 順次的으로 수행하여 가는 階位로서만 볼 수 없고, 깨달음의 경지를 설한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화엄경의 52계위설은 수행의 성격 특히 修行道의 階位性에서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Ⅱ. 三賢의 道와 十地와의 관계
그런데 보살도가 시작되는 十住初에 成佛하였다면 十住․十行․十廻向․十地를 왜 다시 설하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李通玄長者가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보살이 地를 세운 온갖 법문의 증감도 마찬가지로 온갖 有情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닦아 나아가게 한 것이다. 만약 일반적으로 다 평등하기만 하다면 마음에 집착이 없어서 범부는 닦아 나아가려는 마음이 없게 된다. 그래서 발심해 닦아 나가다가 닦지 못한 데에 이르러야 비로소 만법에는 닦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實敎의 보살은 하나를 얻으매 일체를 얻음으로써 法體 속의 전후가 없는 데에 부합되는 것이다.”
즉 十住․十行․十廻向․十地의 법문이 온갖 有情들을 성취하기 위한 방편일 뿐으로 가르침 자체에는 본질적으로 전후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十住初心은 具道成佛이고, 나머지는 資糧으로 본다는 것이다.
三乘의 敎는 地前의 三十心을 方便으로 삼아서 十地初에서 具道한 것을 十行․十廻向․十地․十一地가 資糧이 되어 자비와 지혜를 圓滿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사실 보리심에 淵元을 두고 보살의 萬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 三賢十地는 보리심의 開現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내용과 관련하여 法藏과 澄觀 모두 『起信論』에서 보리심을 三心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과 대비하여 三賢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보리심에는 直心․深心․大悲心의 세 가지 뜻이 있는데, 直心은 眞如法을 正念하는 것이고, 深心은 一切의 善行을 즐겨 닦는 것이고, 大悲心은 一切衆生을 구호하는 것이다. 이 三心의 각각 十住․十行․十廻向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十住․十行․十廻向의 성격가 차이점에 대해 알 수 있는데, 澄觀은 보리심과 三賢十地와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直心․深心․大悲心 등 三心은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나머지 둘은 겸하게 되고, 三賢에는 서로 조금 더하는 점이 있다. 十住는 直心이 더하기 때문에 이름이 解가 되니 解가 行願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먼저 밝혔다.
十行은 深心이 더한 때문에 이름이 行이 되니 앞의 理解에 의해서 行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十廻向은 大悲가 더한 까닭에 이름이 願이 되니 앞의 解와 行을 회향해서 중생이 離苦得樂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十地는 三心을 차례로 證得하였으므로 이름이 決定이며 大悲로 으뜸을 삼는다.”
즉 各修行位의 차이는 보리심의 三心 가운데 어느 一心이 더한가 하는 것에 따라서 생긴 구별일 뿐으로서, 모든 階位가 보리심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엄경에 설해져 있는 수행계위를 일반적으로 三賢十地라고 불러 온 것은 그만큼 十地의 수행이 높은 경지의 수행단계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사실 十地는 三賢의 位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점을 느낄수가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十地가 餘他의 十地說보다 훨씬 뛰어난 새로운 華嚴의 十地를 수립하기 위해 성립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佛德을 구현해 나아가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이어서 별개의 차원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화엄경에서 十住는 진리에 대한 이해의 측면이고, 十行은 진리에 대한 관찰과 실행에 十廻向을 중생에 대한 자비의 측면에 중점을 두어서 설한 것이고 十地는 지혜와 자비를 더욱 많이 길러서 무량한 佛德을 성취하는 것이지 따로 다른 법을 구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李通玄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는 점은 주목 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十地와 十一地도 十住와 十廻向法에 의거해서 三法이 그 功用을 성취하는 것이지 다시 별개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他化天에서 十地를 설할 때 다시 별개로 法事와 공양을 일으킴을 짓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이 지위의 대지혜와 대자대비를 오래 길러서 더욱 깊고 견고하게 하고 원만하게 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十地인 것이다.”
즉 十地는 十住․十行․十廻向을 아울러서 三位의 功用을 종합해서 대지혜와 대자대비를 더욱 깊고 견고하고 원만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새로운 차원의 계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에서의 내용을 종합해 본다면 화엄경에 설해진 보살도의 기본은 十地行임을 알 수 있다. 십지행은 보살의 발심에서부터 成道까지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보살도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진리에 대한 이해요, 둘째는 무엇인가를 身口意로 행하는 것이요, 셋째는 항상 대비이타의 廻向心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가 빠져도 참된 보살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십지보살은 항상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융합된 깨달음에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세 가지가 하나로 융합된 깨달음도 분해하면 위에서 말한 세 가지가 되기 때문에 그 세 가지를 각각 따로 설해서 地前의 行이라고 하는데, 十住, 十行, 十廻向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華嚴十地
華嚴十地說은 보살의 발심에서부터 성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열 가지 수행단계로 분류한 것이다. 화엄십지의 단계는 대승보살도로서의 특색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차례대로 단계적으로 되어있는 등 지극히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1. 歡喜地(기쁨의 경지)
보살은 대비심을 바탕으로 하여 菩提心을 일으키면 곧 범부의 지위에서 벗어나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여래의 집에 태어나며, 여래의 種性이 결정되어 반드시 무상의 菩提를 얻게됨을 설하고 있다.
보살은 이리해서 환희에 넘치게 되는데, 경전은 이러한 기쁨이 생기게 되는 까닭을 ‘부처님들을 念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念하기 때문에’, ‘보살들을 염하기 때문에’, ‘보살들의 실천을 念하기 때문에’ 등의 열 가지를 들고 있다.
그리하여 보살은 다음과 같은 십대원을 일으킨다.
① 諸佛供養願. ② 受持攝護願. ③ 轉法輪願. ④ 修行願. ⑤ 成就願. ⑥ 承事願. ⑦ 淨土願. ⑧ 不難願. ⑨ 利益願. ⑩ 成菩提願.
이 十大願은 보살도의 指向點을 열 가지로 제시하고 이를 수행해 나아가겠다는 굳은 發意와 결심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地에서는 無上菩提를 얻기 위해 일체를 大施大捨할 것을 설하여 布施행을 닦도록 하고 있다.
2. 離垢地(더러움을 떠난 경지)
離垢란 "허물을 여의는 것"이란 의미로서, 이구지는 주로 계율울 닦고 더러움을 완전히 떠나 중생에 따라 자비심을 기르는 수행의 경지이다. 離垢地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에게 十種의 深心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한다. 十種의 深心은,
正直한 마음, 柔軟한 마음, 堪能心, 調伏한 마음, 寂靜한 마음, 純善한 마음, 不雜한 마음, 顧變하지 않는 마음, 넓은[廣] 마음, 큰[大] 마음
이다. 이 十種深心은 歡喜地에서 離垢地로 들어가게 되는 전제 조건을 갖추도록 한 것이다. 十種의 深心을 일으킨 다음에는 허물을 여의기 위하여 十善道를 실천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十惡에 빠져들어 六道를 輪廻하는 衆生들이 十善의 실천을 통해 救濟받을 수 있다는 止惡的 입장이 두드러진다. 지계바라밀을 열심히 닦는 이 地는 수행을 시작함에 먼저 身․口․意의 삼업을 청정히 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3. 發光地(빛을 발하는 경지)
이것은 智慧의 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보살은 第二地에서 十善戒를 行하여 마음을 淨化하고, 離垢地의 行이 완성되면 第三地에 들어가기 위해 十種深心을 내야 한다.
淸淨心, 安住心, 厭捨心, 離貪心, 不退心, 堅固心, 明盛心, 勇猛心, 廣心, 大心
以上의 十種深心을 일으키고, 그 힘에 의해 第三地에 進入하게 된다. 발광지에서는 특히 聞法을 불도의 근본으로 규정하고, 한결같이 추구하여 불법을 체득 할 것을 강조한다. 發光地는 有爲法의 無常․苦․無我를 觀하는 것, 四禪, 四無色定을 닦는 것, 四無量心, 五神通, 四攝法의 실천 등이 說해져 있다. 이 地의 보살은 깊이 法을 구해서 法을 듣기 위해서는 모든 역경을 참고 견디는 인욕바라밀을 한결같이 수행한다.
4. 焰慧地(지혜가 불꽃처런 타오르는 경지)
염해지는 智慧의 힘이 점점 강하여지며, 번뇌를 모두 태워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第三地의 行이 完成되면 衆生界를 觀察하고 法界를 觀察하는 등의 열가지 세계에 대한 올바른 관찰을 修行함으로써 三地를 초월하여 四地에 들어간다고 한다.
염혜지는 여러 가지 세계를 잘 관찰하는 데 힘입어 十種智를 얻게 되며, 이 지혜의 힘으로 일체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고 더욱 정진바라말에 힘쓰게 된다. 第四地에서는 四念處, 四正勤을 비롯하여 五根, 五力, 七覺支, 四如意足, 八正道 등의 37菩提分法의 修行을 강조한다. 여기서 第四地가 慧學의 입장을 굳게 지키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5. 難勝地(이기기 어려운 경지)
衆生에 대한 慈悲心이 없는 聲聞 緣覺 二乘은 성취하기 어려운 수행의 경지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난승지에서는 功德의 힘이 强盛해져서 일체의 魔群도 破壞할 수 없다. 第五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十種의 平等心을 성취하는 것이다.
즉, 부처님의 여러 가지 교법을 대함과 중생을 교화함 등에서 어떠한 차별심도 없이 평등한 마음으로 대처 할 수 있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 그러므로 第五地의 보살은 특히 선정바라밀에 힘쓴다.
난승지의 보살은 四諦 등 진리를 보는 여러 가지 방법을 두루 알고, 현실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하여 智力이 증대하고 중생에 대한 大悲心이 증대하여 보살이 짓고 있는 모든 善根을 衆生濟度로 廻向하며, 敎化의 方便으로 世間智에 따라 各種 技術도 열심히 익힌다. 이와 같이 난승지에서 비로소 자리와 이타의 실천이 함께 어우러져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승지는 보살의 실천기반이 확고해지는 경지라 할 수 있다.
6. 現前地(걸림없는 지혜가 나타나는 경지)
緣起法에 通達하고, 眞實의 智慧가 現前하기 때문에 現前地라 한다. 第六地에 들기 위해선 모든 존재의 본질이 평등하다는 것을 열 가지 관점(十種 平等法)에서 관찰해야 한다. 즉, 실체성이 없다는 것, 특정한 모습이 없다는 것, 생성과 소멸의 현상을 초월해 있다는 것, 특정한 모습이 없다는 것, 본래 청정하다는 것, 언어나 개념으로 이해 할 수 없다는 것 등에서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평등해서 같다는 것을 이해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살은 일체의 法性이 평등하다는 것을 觀해서 이를 터득하여 마음이 밝고 영리하며 자유롭게 된다. 그리하여 大悲心을 가지고 世間의 生滅相을 관찰해 가는 중에,자기 자신과 세간의 모든 존재가 아집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며, 三界는 虛妄해서 다만 이 마음이 만들 뿐이라고 觀하게 된다.
또한 緣起觀에 의해 空․無相․ 無願의 3解脫門이 現前하게 된다. 이리하여 보살은 유위법에 머무르면서도 유위법에 걸림이 없는, 즉 유위에 즉해서 무위를 관하는 무애지인 반야바라밀의 광명이 현전하게 된다. 이 후부터는 오로지 지혜와 방편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모든 선근이 더욱 밝고 깨끗해진다.
7. 遠行地(멀리 나아가는 경지)
三界를 멀리 버리고 佛陀의 지위에 다가간다는 의미이다. 第七地에 들어가려면 空․無相․無願을 善修하지만 慈悲心으로 不捨衆生하고, 諸佛의 平等法을 얻었지만 항상 佛陀에게 供養하길 즐기고, 空智門에 入觀하더라도 부지런히 福德을 모으고, 三界를 遠離했더라도 三界를 莊嚴하며는 등의 十種의 方便智慧를 일으켜야 한다.
第七地의 보살은 念念中에 大悲心을 앞세우고 十波羅蜜과 十方便行을 具足하는데 이 때에 四攝法, 37菩提分法, 3解說門 등 一切行을 구족해서 功德行이 圓滿해지고 자비에 바탕을 둔 방편 지혜가 더욱 밝아진다. 그러나 第七地의 보살은 탐욕 등의 모든 번뇌를 벗어났으나 佛智를 간절히 구하는 誓願을 아직 만족시키지 못하므로 번뇌가 없는 것도 아니다.
8. 不動地(부동의 경지)
보살은 第七地에서 方便慧를 修習함으로써, 無生法忍을 성취하면 즉시 第八 不動地에 들어간다. 無生法忍을 얻는 것이 第七地에서 第八地로 비약할 수 있는 조건이다. 八地는 不動이므로 無差別의 寂滅世界이다. 일체의 功用을 버리고 無功用이 되며, 身․口․意의 三業이 止息하고, 바로 寂滅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에 諸佛이 보살 앞에 나타나서 未完의 깨달음을 성취케하고 衆生救濟를 가르친다. 이처럼 諸佛이 주는 起智門과 觀智門에 의해 보살은 大誓願을 일으켜 究境의 涅槃에 들어가길 포기하고 大方便善巧智에서 생기는 無功用의 覺慧를 일으킨다. 世間의 成․住․壞․空을 觀하고, 三界의 차별에 따라 중생을 敎化 成熟시키며, 중생을 救濟하기 위해 佛身을 自在롭게 나타낸다.
즉 세계를 衆生身, 國土身 등의 十佛世界로 觀하고, 命․心․財․業․生․願․信解․如意智․法 등 十種自在를 얻어 佛陀의 智慧를 완성하고, 佛陀의 境界를 現前하며, 구제해야 할 중생에 따라 成正覺을 보인다. 不動地의 보살은 最勝의 智를 성취하고, 佛地에 무한하게 다가서는 것이다.
9. 善慧地(깊은 지혜의경지)
부동지의 보살은 八地보다 더욱 殊勝한 지혜가 얻어지기 때문에 善慧地라 한다. 如來의 智慧를 修習하기 위해서 神通을 廣大하게 하려 하고, 諸佛의 威神力과 無所畏와 不共法을 닦으려 하고, 諸佛의 轉法輪力에 順行하려 하고, 大悲大願을 버리지 않으려 하는 등의 念願을 일으켜 九地에 들어오게 된다.
보살은 第九地에서 有爲와 無爲의 法行 등 존재하는 것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아는 열 가지 法行을 알고, 중생과 번뇌의 諸相을 알고, 기타 各種의 相에 통달한다. 중생의 차별상을 알아 敎化 調伏 解脫을 시킨다. 善慧地의 보살은 大法師가 되어 차별과 평등을 알고, 陀羅尼를 具足하고, 自在롭게 說法하며 중생을 濟度한다. 그래서 法無碍智․義無碍智․辭無碍智․樂說無碍智의 四無碍智를 갖출 것이 要望된다. 그러면 자유롭게 佛陀의 境界에 들어가고 如來를 親近하며, 지혜는 점차 佛智에 가까워진다.
10. 法雲地(법구름의 경지)
第十地의 보살은 十方의 無量世界에 一時에 두루 널리 法雨를 뿌리므로 法雲地라 한다. 第九地의 보살이 無量한 智慧에 의해 여래의 十力 등 不共佛法을 관찰할 때 이 보살을 一切智慧를 얻은 受職位 보살이라 한다. 이 受職位(灌頂地)의 보살이 諸佛에게 灌頂을 받으므로 佛陀의 地位에 들어간다. 이 地位가 法雲地다. 法雲地의 菩薩이 具備한 德은 佛陀가 具備한 德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菩薩位이다. 그것을 灌頂位라 표현한다. 이것은 보살의 受職會上에서 十方의 一切諸佛이 眉間에서 淸淨한 光明을 發하고 이 光明이 보살의 頂上에 들어갈 때, 보살은 한량없는 三昧를 얻어 受職位를 얻게 된다. 이것이 無生法忍을 초월한 一切智의 경지, 즉 佛智인 것이다.
Ⅳ. 화엄 십지설의 성격
화엄십지설은 불교 수행론 체계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戒定慧에 의해 조직되어 있다. 왜냐하면 제1지에서는 총론격으로 열 가지 커다란 誓願을 설하여 보살도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제2지 이하는 이 願을 실현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인 것으로서 제2지에서는 戒를, 제3지에서는 定을, 제4지 이상 제10지에 이르기까지는 증장되어 가는 지혜를 위주로 하여 체계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십지설은 계․정․혜의 체계 위에 10바라밀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 커다란 특색이라 할 수 있다. 10바라밀은 6바라밀에 方便, 願, 力, 智의 4바라밀을 더한 것이다. 제1지에서는 보시바라밀, 제2지에서는 지계바라밀 …… 제10지에서는 智바라밀을 설하여 십지의 각 단계는 십바라밀의 각각에 상응하고 있기 때문에 최초 화엄십지설의 구상 때에 이미 십바라밀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반야십지설과는 아주 대조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승불교는 보살도의 불교이고 보살도의 특징은 이론이 아닌 실천행으로서 그 수행 덕목이 6바라밀 행임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반야십지설을 보면 특히 반야바라밀에 중점을 두어서 주로 이것을 수행하여 그릇된 견해나 망상을 타파함으로서 열반을 증득하여 성불하는 것이 중심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와는 달리 화엄십지설은 6바라밀을 전부 동등하게 취급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더욱 확장시켜 10바라밀로 하고 있다. 화엄십지설에 보이는 보살도는 知見의 성숙과 자비의 실현이라고 하는 두 가지 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두 가지는 相卽不離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諸法如實相이나 연기의 도리에 대한 바른 파악이나 이해를 통해서 지혜가 얻어짐과 동시에 중생에 대한 자비와 구제가 실현된다. 십지의 수행도가 향상되는 만큼 보살의 지혜도 증장되어 가고 대비심에 바탕을 둔 중생의 교화구제 활동도 깊어간다.
제7지에서 제10지에 이르기까지에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방법을 모색하고, 끝까지 이상을 실현하려고 염원하며, 惡을 타파하려는 용기를 가지고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사람들을 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方便․願․力․智의 4바라밀을 차례대로 닦아 나아간다. 제7지 이하는 구체적으로 敎化衆生의 내용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화엄십지설은 화엄경의 보살도를 수행하는 보살이 성문․연각보다 뛰어남을 주장하고 잇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의 보살도는 일체 중생의 성불을 표방하고 있는 대승불교이면서도 성문․연각은 물론 중생들과는 거리가 멀고 또 그들이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곳곳에서 설하고 있다. 화엄십지설이 이렇게 소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 가장 우수한 지도자, 그리고 일체 중생의 의지자가 되려고 하는 보살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이 경우 설법을 듣는 자로서 보살만이 언급되고 있는 것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화엄경에는 성문․연각을 소승이라고 경시하면서도 대․소승의 모든 가르침이 십지의 보살 행위 가운데에 설해져 있다. 즉, 십지의 행법은 대승보살이 대․소승의 모든 가르침을 얕은 것에서부터 깊은 것으로 점차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경론에 따라서는 空, 有, 中道, 戒, 定, 慧 등 어느 하나에 중점을 두어 설하는 것이 보통인데 화엄십지설은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이 불타가 설한 모든 가르침을 망라하고 있다. 이로 보아 화엄십지설은 대소승의 여러 교의를 대승정신 아래 종합하고 통일시켜 중생구제의 입장에서 새로운 대승보살도를 조직하려는 의도에서 성립된 것이라 생각된다.
화엄경의 보살도는 空觀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大悲의 입장이 반야경의 그것보다도 한층 강조되어 널리 설해짐과 함께 대비구제의 수단방법이 매우 적극적으로 행하여진다. 이는 화엄경의 공관이 반야경의 眞空觀을 이어받으면서도 거기에서 저절로 일어 나오는 妙有建立의 방면에 더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화엄의 수행도에서는 그 자재한 지혜․신통의 작용에 의해 어떠한 시간 장소에서도 일체중생에 적응해서 그 몸을 나타내어 한없이 중생을 교화해 나가는 것이다.
화엄의 이러한 보살도의 성격은 空觀의 실행이 다만 관념적 內觀에 그치거나 한 개인의 공덕성취에 있는 것이 아님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화엄 十地에도 보면 初地에서 十大願을 일으켜 보살도를 닦아 나아가지만, 각 地의 끝마다 심지어는 최후의 단계인 제10지의 끝에서도 ‘일체중생의 길잡이가 되며 依支者가 되리라’고 서원을 일으켜 同體大悲에 입각한 중생구제의 悲願을 끝이 없이 실현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十地의 보살행을 모두 수행한다고 해서 보살행이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보살행은 중생이 있는 한 끝날 수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중생의 願行 성취는 필연적으로 객관적인 정토 건설행으로 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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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의 해석과 관련하여 원효와 법장 등 모두가 화업경의 내용을 인용하여 해석하고 있는바,
「기신론」이 인용한 화엄경의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및 십지(十地) 등 52위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십신(十信)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 52위증 처음의 10위. 부처의 교법을 믿어 의심이 없는 지위.
1. 신심(信心) 어떻게 믿을 것인가를 아는 것.
2. 염심(念心): 부처를 어떻게 염하여 간직할 것인가를 아는 것.
3. 정진심(精進心): 믿음을 향하여 어떻게 정진할 것인가를 아는 것.
4. 혜심(慧心): 어떻게 지혜를 닦을 것인가를 아는 것.
5. 정심(定心): 어떻게 마음을 안정시킬 것인가를 아는 것.
6. 불퇴심(不退心): 어떻게 물러서지 않는 믿음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아는 것
7. 호법심(護法心): 어떻게 진리를 지킬 것인가를 아는 것.
8. 회향심(廻向心): 어떻게 실천의 방향을 잡을 것인가를 아는 것.
9. 계심(戒心):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아는 것.
10. 원심(願心): 어떻게 소원해야 할 것인가를 아는 것.
(2) 십주(十住)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 중, 제11위(位)에서 20위까지. 10신위(信位 를 지나서 마음이 진제(眞諦)의 이치에 안주(安住)하는 위치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주(住)라 함.
1. 발심주(發心住): 10신(信)의 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의 관법이 완성되어 진무 루지(眞無漏智)를 내고, 마음이 진제의 이치에 안주하는 것.
2. 치지주(治地住): 항상 공관(空觀)을 닦아 심지(心地)를 청정하게 다스리는 것.
3. 수행주(修行住): 만선(萬善) 만행(萬行)을 닦는 것.
4. 생귀주(生貴住): 정히 부처님의 기분(氣分)을 받아 여래 종(宗)에 들어가는 것.
5.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부처님과 같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방편행을 갖추 어 상모(相貌)가 결함(缺陷)이 없는 것.
6. 정심주(正心住): 용모가 부처님과 같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똑같은 것.
7. 불퇴주(不退住): 몸과 마음이 한데 이루어 날마다 더욱 자라나고 물러서지 않는 것.
8. 동진주(童眞住): 그릇된 소견이 생기지 않고, 보리심을 파하지 않는 것이, 마 치 동자가 천진하여 애욕이 없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10신(身) 영상(靈相) 이 일시에 갖추어지는 것.
9. 법왕자주(法王子住):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지해(智解)가 생겨, 다음 세상 에 부처님 지위를 잇는 것.
10. 관정주(灌頂住): 보살이 이미 불자가 되어, 부처님의 사업을 감당할만하므로, 부처님이 지수(智水)로써 정수리에 붓는 것이, 마치 인도에서 왕자(王子)가 자라면 국왕이 손수 바닷물을 정수리에 부어 국왕이 되게 하는 것과 같으므 로 이렇게 이름.
(3) 십행(十行)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를 52위(位)로 한 것 중에서, 10신(信). 10주(住)에 서 나아가 제21위(位)에서 30위까지의 이름. 보살이 10주위(位)에서 불자(佛子) 의 인가를 얻은 뒤에 다시 나아가 이타(利他)의 수행을 완수하기 위하여 중생 제도에 노력하는 지위를 10으로 나눈 것.
1. 환희행(歡喜行): 큰 시주(施主)가 되어 일체를 버리고 언제나 후회없이 베풀 어 다른 사람을 환희케 하는 것.
2. 요익행(饒益行): 깨끗한 계율을 지켜, 모든 마(魔)를 굴복시키고, 일체중생이 위없는 계율을 세우게 하여, 물러섬이 없게 하며, 자타(自他)를 유익하게 하 는 것.
3. 무진한행(無瞋恨行): 인욕(忍辱)을 닦게하여 노여움을 버리고, 자타를 해치지 않으며, 원한을 능히 참게 하는 것.
4. 무진행(無盡行): 수행을 무량겁(劫) 점진하여 진리를 구하고 중생을 제도하여 널리 선법을 행하는 것.
5. 이치란행(離癡亂行): 항상 바른 마음으로 살면서 정념(正念)하여 산란함이 없이 일체의 진리에 있어 어지럽게 함이 없게 하는 것.
6. 선현행(善現行): 일체법에는 소유하는 것이 없음을 알고 삼업(三業)을 없애어, 집착과 속박됨이 없이 일체중생을 교화시키는 것.
7. 무착행(無著行): 부처를 공양하고 진리를 구하여 마음에 싫어함이 없이, 제법을 관하여 일체의 집착을 없게 하는 것.
8. 존중행(尊重行): 선근 지혜의 법을 존중하고 모두를 이루어, 이것으로 하여금 더욱 자타의 이(利)를 닦는 것.
9. 선법행(善法行): 여러 가지 선법을 성취하여, 정법을 수호하고 부처의 마음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
10. 진실행(眞實行): 부처의 진실한 설법을 성취하여, 설한바와 같이 능히 행하고, 부처가 행한 바와 같이 능히 설하여, 말과 행동이 상응하여 따르게 하는 것.
(4) 십회향(十廻向)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 52위(位) 중에서, 제31위에서 제40위까지. 10행 위(行位)를 마치고, 다시 지금까지 닦은 자리(自利)이타(利他)의 여러 가지 행 을 일체 중생을 위하여 돌려주는 동시에, 이 공덕으로 불과(佛果)를 향해 나아가 오 경(悟境)에 도달하려는 지위.
1. 구호일체중생 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육도사섭(六渡四攝) 등을 행하여 일체 중생을 구호(救護)하고 원친(怨親)없이 평등하게 대하는 것.
2. 불괴회향(不壞廻向): 삼보(三寶)에 대하여 부서지지 않는 신심을 얻고, 이것 을 선근(善根) 중생에게 선리(善利)를 획득케 하는 것.
3. 등일체제불회향(等一切諸佛廻向): 삼세(三世)의 부처가 회향한 바와 동등하게 생사에 집착함이 없이 깨달음을 향하여 수행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
4.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 회향하는 힘으로 수행한 선근을 가지고 널리 일체의 삼보와 중생이 있는 곳에 나아가, 그들을 공양하고 이익케 하는 것.
5. 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廻向): 다함이 없는 일체의 공덕으로 이것을 기쁘게 따르고 회향하여, 불사(佛事)를 행하고, 그것으로 무진 공덕의 선근을 믿는 것.
6. 입일체평등선근회향(入一切平等善根廻向): 수행하여 베푸는 등의 선근을 회 향하여 부처를 위하여 지켜지고, 능히 일체의 경고한 선근을 이루는 것.
7.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 일체의 선근을 증장시켜, 이를 회 향하여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
8. 진여상회향(眞如相廻向): 진여의 참된 마음에 따라 이루어진 여러 가지 선근 을 회향하는 것.
9. 무박무착해탈회향(無縛無著解脫廻向): 일체의 법에 집착과 속박됨이 없이 해탈심을 얻어, 그것으로 선법(善法)을 회향하여, 보현(普賢)의 행을 행하여 일 체의 덕을 갖추는 것.
10. 입법계무량회향(入法界無量廻向): 다함이 없는 일체의 선근을 수습하여, 이것 을 회향하여 무한한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
(5) 십지(十地)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 52위(位) 중, 제41위로부터 제50위까지의 10위는 불지(佛智)를 생성(生成)하고, 능히 주지(住智)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온갖 중 생을 짊어지고 교화 이익하는 것이, 마치 대지(大地)가 만물을 싣고 이를 윤익 (潤益)함과 같으므로 지(地)라 이름.
1. 환희지(歡喜地): 처음으로 참다운 중도지(中道智)를 내어 불성(佛性)의 이치를 보고, 견혹(見惑)을 끊으며 능히 자리이타(自利利他)하여 진실한 희열(喜悅)에 가득 찬 지위.
2. 이구지(離垢地): 수혹(修惑)을 끊고 범계(犯戒)의 더러움을 제하여 몸을 깨끗하게 하는 지위.
3. 발광지(發光地): 수혹을 끊어 지혜의 광명이 나타나는 지위.
4. 염혜지(焰慧地): 수혹을 끊어 지혜가 더욱 치성하는 지위.
5. 난승지(難勝地): 수혹을 끊고 진지(眞智) 속지(俗智)를 조화하는 지위.
6. 현전지(現前地): 수혹을 끊고 최승지(最勝智)를 내어 무위진여(無爲眞如)의 모양이 나타나는 지위.
7. 원행지(遠行地): 수혹을 끊고 대비심을 일으켜, 2승의 오(悟)를 초월하여 광 대무변한 진리 세계에 이르는 지위.
8. 부동지(不動地): 수혹을 끊고 이미 전진여(全眞如)를 얻었으므로, 다시 동요 되지 않는 지위.
9. 선혜지(善慧地): 수혹을 끊어 부처님의 10력(力)을 얻고, 기류(機類)에 대하여 교화의 가부(可否)를 알아 공교하게 설법하는 지위.
10. 법운지(法雲地): 수혹을 끊고 끝없는 공덕을 구비하고서 사람에 대하여 이익 되는 일을 행하여 대자운(大慈雲)이 되는 지위.
(6) 등각(等覺)
보살이 수행하는 지위 중에서 제51위(位)의 이름. 이는 보살의 극위(極位)로서 그 지혜가 만덕(萬德) 원만한 부처님과 대개 같다는 뜻으로, 이 보살의 각(覺) 은 부처님의 묘각(妙覺)까지 1등급이 있으므로 등각이라 한다.
(7) 묘각(妙覺)
보살 수행의 52위인 마지막 지위, 불과(佛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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