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공간

[스크랩] 도망칠 적에도 무겁더냐?ㅡ(만공스님)

수선님 2019. 2. 3. 10:59

 

도망칠 적에도 무겁더냐?

 

 

 

경허 큰스님은 제자 만공을 데리고 탁발을 나가시곤 하였다.

어느 해 여름 두 스님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탁발한 곡식을 걸망에 짊어지고 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탁발을 하느라 돌아다녔으니 몸은 고단하고 걸망은 무거웠다.

젊은 만공이 먼저 지쳐 경허 큰스님께 통사정을 했다.


“스님, 걸망이 무거워서 더 이상 걸어가기가 힘듭니다.

잠시만 쉬었다 가시지요.”

 

경허 큰스님이 제자 만공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중에 한가지를 버려라.”

“두 가지 중에 한가지를 버리라니요?”

 

“무겁다는 생각을 버리든지, 아니면 걸망을 버리든지 하란 말이다.”

“에이 참 스님두, 하루 종일 고생해서

탁발한 곡식을 어찌 버리란 말씀이십니까요?

아 그리구 무거운 건 무거운건데 그 생각을 어찌 버립니까요?"

 

경허 큰스님은 휘적휘적 앞서가기 시작했다.

제자 만공이 허겁지겁 숨을 헐떡이며 뒤따라 갔다.


“스님, 정말 숨이 차서 그렇습니다. 잠시만 쉬었다 가시지요.”

 

“저 마을 앞까지만 가면, 내 힘들지 않게 해줄 것이니 어서 따라 오너라.”


제자는 마을 앞까지만 가면 힘들지 않게 해준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스승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마을 앞에는 우물이 있었고

그 근처 논밭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 아낙이 우물에서 물을 길러 물동이를 이고

스님들 앞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경허 큰스님이 느닷없이

그 아낙에게 달려들어 입을 맞추어 버렸다.


에그머니나!

아낙이 비명을 지르며 물동이가 박살이 났다.

 

이 모습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이

손에 손에 몽둥이를 들고 삽을 들고 괭이를 들고

“저 중놈들 잡아라!” 외치며 달려왔다.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자 만공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죽어라 뛰었다.

 

경허 큰스님은 벌써 저만치 앞서서 달아나고 있었다.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달렸을까.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저만치 솔밭에서 경허 큰스님이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허 너도 용케 붙잡히지 않고 예까지 왔구나.”

“스님, 속인도 해서는 안될 짓을 왜 하셨습니까요?”

“그래, 그건 그대 말이 맞다. 헌데 도망쳐 올적에도 걸망이 무겁더냐?”

“예에?”

 

 

그 순간 만공은 깨달았다. 모든 것이 마음의 장난이라는 것을…

출처 : 큰 길에는 문이 없다 하네(마음 글 법담)
글쓴이 : 룸비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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