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적에도 무겁더냐?
경허 큰스님은 제자 만공을 데리고 탁발을 나가시곤 하였다. 어느 해 여름 두 스님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탁발한 곡식을 걸망에 짊어지고 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탁발을 하느라 돌아다녔으니 몸은 고단하고 걸망은 무거웠다. 젊은 만공이 먼저 지쳐 경허 큰스님께 통사정을 했다. “스님, 걸망이 무거워서 더 이상 걸어가기가 힘듭니다. 잠시만 쉬었다 가시지요.”
경허 큰스님이 제자 만공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중에 한가지를 버려라.” “두 가지 중에 한가지를 버리라니요?”
“무겁다는 생각을 버리든지, 아니면 걸망을 버리든지 하란 말이다.” “에이 참 스님두, 하루 종일 고생해서 탁발한 곡식을 어찌 버리란 말씀이십니까요? 아 그리구 무거운 건 무거운건데 그 생각을 어찌 버립니까요?"
경허 큰스님은 휘적휘적 앞서가기 시작했다. 제자 만공이 허겁지겁 숨을 헐떡이며 뒤따라 갔다. “스님, 정말 숨이 차서 그렇습니다. 잠시만 쉬었다 가시지요.”
“저 마을 앞까지만 가면, 내 힘들지 않게 해줄 것이니 어서 따라 오너라.” 제자는 마을 앞까지만 가면 힘들지 않게 해준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스승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마을 앞에는 우물이 있었고 그 근처 논밭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 아낙이 우물에서 물을 길러 물동이를 이고 스님들 앞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경허 큰스님이 느닷없이 그 아낙에게 달려들어 입을 맞추어 버렸다.
에그머니나! 아낙이 비명을 지르며 물동이가 박살이 났다.
이 모습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이 손에 손에 몽둥이를 들고 삽을 들고 괭이를 들고 “저 중놈들 잡아라!” 외치며 달려왔다.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자 만공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죽어라 뛰었다.
경허 큰스님은 벌써 저만치 앞서서 달아나고 있었다.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달렸을까.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저만치 솔밭에서 경허 큰스님이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허 너도 용케 붙잡히지 않고 예까지 왔구나.” “스님, 속인도 해서는 안될 짓을 왜 하셨습니까요?” “그래, 그건 그대 말이 맞다. 헌데 도망쳐 올적에도 걸망이 무겁더냐?” “예에?”
그 순간 만공은 깨달았다. 모든 것이 마음의 장난이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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