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과 수행

[스크랩] [현응 스님 `깨달음과 역사`] “깨달음은 이루는 것 아니라 이해하는 것”

수선님 2019. 2. 3. 11:06

“깨달음은 이루는 것 아니라 이해하는 것”

현응스님 ‘깨달음과 역사’ 발간 25주년 학술세미나
“경전 근거 없다” 반론… “대승불교는 시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불교”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스님이 4일 열린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 주제의 세미나에서 기조발제자로 나서 "깨달음은 연기와 공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주장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고도로 수련된 높은 정신세계를 이루는 것이라 하지 않았다. 깨달음은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 깨달음은 ‘연기와 공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스님이 ‘깨달음의 신비화’를 경계하며 “깨달음은 연기와 공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현응스님은 4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깨달음과 역사’ 발간 25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기조발제자로 나서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를 주제로 발제했다. 이날 세미나는 법인스님(중앙종회의원), 진각스님(조계종 교육부장), 본해스님(전 중앙종회의원)이 마련한 자리다.


발제문이 “학술적 이론적 규명이 아닌, 한국불교 현실을 개선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전제한 현응스님은 “조계종단은 약 2000여 명의 스님들이 1년에 6개월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선원에서 안거수행을 하고, 수십 년 이상 참선 수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수십 년을 투자해도 현실적으로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을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수십년 투자해도 깨달았다는 사람 보기 힘들어"


이어 “깨달음은 불교도에게 선결과제이자 기본요건이기 때문에 깨달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에는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기 힘들다”며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논제를 제기했다.


스님은 율장의 하나인 마하박가를 예로 들며 “부처님은 깨달음을 고도로 수련된 높은 정신세계를 이루는 것이라 하지 않았다. 깨달음은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셨다”며 “만약 깨달음을 ‘올바른 이해’라고 한다면 그러한 깨달음을 얻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깨달음을 ‘몸과 마음의 완성된 그 어떤 경지’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에 대한 이해’로 볼 것인가에 따라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방법도 크게 달라진다”며 “부처님은 가르침을 청할 때 삼매와 선정을 통해 수련하라고 지도하지 않았다. 설법을 했으며 듣는 이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곤 했다”고 전했다.


깨달음을 얻는 방법의 역사적 변천 과정도 짚었다. 스님은 “부처님 당시의 초기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직접적인 설법과 그에 따른 질의응답, 대화와 토론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후 부처님의 설법내용을 기억하고 사유하는 방식에서 특정한 주제나 내용으로 재정리해 이것을 삼매(선정)와 결합한 위파사나 방식으로 성찰하는 식으로 변화해 갔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선불교의 흐름을 살피고 “조사스님들의 이야기와 대화를 탐구하는 본래의 간화선 또한 선정에 집중하는 선정 위주의 간화선으로 변했다. 부처님 당시의 사띠나 중국 선불교의 간화선은 모두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수행법이며, 이러한 수행은 연기(공)의 가르침을 파악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선정위주의 참선을 조계선이나 간화선이라 호칭하는 것은 부정확한 표현이며, 오늘날 한국불교가 선양하는 간화선은 몽산선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 후기 간화선이라고 주장했다.

 

 


"이해하는 깨달음에서 이르는 깨달음으로 변화"


이처럼 ‘깨달음은 연기와 공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정의한다면, 오늘날 평생을 수행에 매진하는 스님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해 현응스님은 “깨달음의 본래 성격을 깨뜨리면서 깨달음의 수준을 대폭 상향한 결과, 깨달음의 모습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용어로 표현되거나 언어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하고 불가지한 경지로 묘사되어 왔다”며 “불교 수행자들이 평생을 걸쳐 수행하는 까닭은 깨달음의 내용을 잘못 설정한 까닭”이라고 답했다.


또 ‘이해하는 깨달음으로 생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스님은 “이해하는 깨달음은 괴로움을 연기의 관점으로 비춰보아 실체성을 알아 그로부터 일차원적으로 원천적인 해탈된 마음을 얻는다”며 “설사 ‘이해하는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현실 역사 속에서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더라도 그 깨달음이 훼손 받지는 않는다”고 단언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깨닫기 위해서는 “불교 개론서를 통해 연기나 공에 대한 개념을 차분히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 다음 초기불교 경전으로 부처님의 다양한 가르침을 직접 공부하고, 연기를 대승불교적으로 해석한 반야부 경전이나 중관사상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으로 연기와 공에 대해 이해했다 하더라도 삶의 문제에 바로 적용해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깊은 탐구와 사유’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역사는 깨달음의 다른 이름"


현응스님은 “깨달음과 역사는 다른 차원의 영역이지만, 깨달음의 문제에는 필경 역사의 영역과 만나야 한다”며 “따라서 ‘역사’는 깨달음의 연장선에서 도달하는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라고 역설했다.


토론자로 나선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도 “한국불교에서 깨달음은 소수의 선택된 자들만이 체험할 수 있는 영역으로 ‘특권화’ 되어 있다”며 “깨달음이 단지 종교적 ‘체험’으로만 머문다면 불교는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교라는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현응스님이 주장하는 ‘이해하는 깨달음’이란 사물을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투철하게 보는 것’이며 이는 곧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을 ‘깊이 실천하는 것’이 바로 나와 세상을 두루 구제하고자 하는 보살행”이라고 정의했다.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은 토론에서 “깨달음과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간화선을 절대화하고 있는 조계종에서 간화선의 ‘변질’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 종단 내부, 그것도 사상과 수행의 주요 책임자 중 한 사람인 교육원장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현응스님의 사유는 깨달음을 탈신비화, 탈경계화, 탈종교화 하는 주장이며 이는 곧 ‘불교의 현대화’로 요약할 수 있다”며 “깨달음에 대한 스님의 통찰은 부처님과 예수님이 가르쳐준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음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일깨워준다”고 덧붙였다.

 


"깨달음 만능주의 깨자"


발제와 토론 후 진행된 종합토론에서는 ‘깨달음은 이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이제열 법사는 “깨달음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데 경전적 근거가 없다. 부처님이 선정을 통하지 않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주장이 어느 경전을 근거로 하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현응스님은 “쌍윳다니까야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고 법화경을 무시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대승불교는 시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불교다. 다양한 패러다임을 가진 사상들이 하나의 ‘불교’로 불리는 것은 연기성이 주는 다양한 교리적 재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매와 선정은 불교수행의 하나의 형태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선정과 삼매를 거치지 않아도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재성 교수는 “한국불교가 빈곤하다고 하는데 이는 한국불교 승가가 빈곤한 것인가, 아니면 불교가 빈곤한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현응스님은 “한국불교가 빈곤하다고 말한 것은 불교가 삶의 문제를 외면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론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시간에 걸친 세미나를 마무리하며 현응스님은 “오늘 발표는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방법론에만 머물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만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깨달음 만능주의’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 관련 기사 :

☞ [발제문 전문 보기_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
☞ 깨달음과 이해에도 차원이 있다…경전 부정 심각하다  


[출처: 불교포커스 | 2015.09.04]


출처 : 海印의 뜨락
글쓴이 : 석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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