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스크랩] 非說所說分 第二十一

수선님 2019. 2. 3. 12:00

 

21

"須菩提  汝勿謂  如來作是念  我當有所說法  莫作是念

何以故  若人 言如來 有所說法  卽爲謗佛 不能解我所說故

須菩提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

爾時  慧命  須菩提  白佛

"言  世尊  頗有衆生  於未來世  聞說是法  生信心不"

佛言

"須菩提  彼非衆生非不衆生  何以故  須菩提  衆生衆生者  如來說非衆生  是名衆生"

 

 

非說所說分 第二十一
須菩提야 汝勿謂하라 如來가 作是念호대 我當有所說法이라하라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若人이 言如來가 有所說法이라하면 卽爲謗佛이라 不能解我所說故니라 須菩提야 說法者는 無法可說을 是名說法이니라
爾時에 慧命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頗有衆生이 於未來世에 聞說是法하고 生信心不잇가 佛言하사대

須菩提야 彼非衆生이며 非不衆生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衆生衆生者는 如來가 說非衆生일새 是名衆生이니라

 

 

 

 

금강경 강의(21)/해안 스님


※ 경문.

 

"須菩提  汝勿謂如來作是念  我當有所說法  莫作是念

何以故 若人  言 如來  有所說法  卽爲謗佛

不能解我所說故  須菩提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

 

須菩提 야 汝勿謂如來作是念 하되 我當有所說法 이라하여
수보리 야 여물위여래작시념 하되 아당유소설법

莫作是念 이니라 何以故 오 若人 이 言 하되
막작시념 이니라 하이고 오 약인 이 언

如來 有所說法 이라하면 則爲謗佛 이라
여래 유소설법 이라하면 즉위방불

不能解我所說故 일러니라 須菩提 야 說法者 는
불능해아소설고 일러니라 수보리 야 소설자

無法可說 이 是名說法 이니라.
무법가설 이 시명설법.

 

 

謗 헐뜯을 방.㉠헐뜯다 헐뜯는 말

내가 말하는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不能解我所說故) :
제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의 '진실한 믿음의 마음을 낼 수 있겠읍니까(生實信不)'라는 말씀과도 비슷한데, 전자의 것은 相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를 믿을 사람이 없겠다는 의미이고,

여기서의 것은 부처님의 본질과 설법의 정의에 대한 풀이를 믿기 어렵겠다는 뜻이다.

법을 설한다고는 하나(說法者) :
나집본 이외의 유지본, 진제본, 현장본, 의정본 그리고 범본은 모두 _'법을 설한다는 것은, 법을 설한다는 것은' 라고 반복해서 설명하여, 그 의미로서 해석하고 있다.

 


 


※ 주석.

수보리야,
너는 여래가 이러한 생각을 하되(내가 마땅히 설한바 법이있다)고
이르지 말라, 이런 생각을 하지말라, 함은 어찌한 연고이냐,
만약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설한바 법이 있다 하면, 곧 부처를 비방 하는것이 되고,
능히 나의 설한바를 알지 못하는 소이 이니라.
수보리야 설법이란 것은 가히 설할 법이 없음이,이 이름이 설법이다.


※ 해설.

설법 이라는 것은 먼저 깨친자가 아직 깨치지 못한자를 위하여 깨치도록 말로 일러 주는것을 설법이라 한다.
그리하여 석가여래가 사심구년간에 걸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팔만사천의 법문을 설하신 것이

불교의 경전이다. 이러 하거늘,
이대문에 와서,부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만약 어떤사람이 여래가 설한바 법이 있다고 말하면,
이것은 곳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요,
나의 설한바 뜻을 알지못하는 소이라 하시고,
또 말씀 하시기를 설법이란 것은 가히 설할법 없음이,
이 이름이 설법이라고 하시었으니, 이것이 무슨 말씀일까.


저 위에서도 말한바가 있거니와,불법은 다른 학문이나 지식과 달라서,
배워서 아는것이 아니요,가르쳐서 아는것이 아니요. 아는 것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배워서 얻을수 없고,가르쳐서 얻을수 없고,아는것으로 얻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법이 필요치 않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법은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이자리에 무슨법이 있고, 법을 설할자가 있고,법을 들을자가 있을것인가,
그러므로 설법이 필요치 않다.

그리고 또 이자리는,구태여 말하자면,
성현이니 범부니 부처니 중생이니, 내지 개미벌레 까지라도,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그러하거늘 누가 깬자 이고 누가 못깬 자이며, 누가 제도하고 누가 제도받을 자 인가,
그러므로 설법이 필요치 않다.

이러하므로 석가의 사십구년 설법이,어떠한 일정한 법이 있어 설한것이 아니요.
구태여 설법이라는 이름을 부치자면 가히 설할법이 없다는 말뿐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마다 주리면 밥먹고 목마르면 물마시는 것이 누구에게 있어서나 동일 하기 때문이다.

어찌 사람만 이러할 것인가,짐승이나,새나,벌레도,다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어찌 설법을 입으로만 하고, 말로만 하는것인가,
보라, 산과 물은 입이 있어도 상주(常住) 설법을 하고 있고,
꽃과 새는 말이 없어도 때를 따라 설법을 하지 않는가.


옛날 현사스님은 법을 설 하려고 단상에 올라 앉았는데,
마침 들보위에서 제비가 지저귀는것을 듣고 말없이 그대로 내려오셨다 한다.

그리고 구지선사는 천룡 스님에게 손가락 선(禪)을 얻어 가지고 일생을 두고 손가락 하나로써
중생을 교화 하고도 남았다 한다.

이것이 모두 설법인가,아닌가,
여래의 설 하신법은 천언 만언을 하실지라도 상이 없고 함이 없어,
종일 설하여도 설이 아닌 것이어늘,

상에 속는 부처인 중생들은,
떨어지면 하나 하나의 법을 삼아 병 을 만드므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망각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임을 알아야 한다.

 


※ 경문.

爾時  慧命  須菩提 白佛

"言 世尊  頗有衆生  於未來世  聞說是法  生信心不"

佛言

"須菩提  彼非衆生非不衆生

何以故  須菩提  衆生衆生者  如來說非衆生  是名衆生"

 


爾時 에 慧命 須菩提 白佛言 하사되 世尊 이시여
이시 에 혜명 수보리 백불언 하사되 세존

頗有衆生 이 於未來世 에 聞說是法 하고 生信心不 이까
파유중생 이 어미래세 에 문설시법 하고 생신심불

佛言 하시되 須菩提 야 彼非衆生 이며
불언 하시되 수보리 야 피비중생

非不衆生 이니 何以故 오 須菩提 야 衆生衆生者 는
비불중생 이니 하이고 오 수보리 야 중생중생자

如來說非衆生 이요 是名衆生 이니라.
여래설비중생 이요 시명중생.

 

 

慧命 ①불법()의 명맥 ②불법()을 이어 가는 비구()를 가리킴 ③지혜()를 생명()에 비유()하여 일컫는 말 

頗 자못 파.㉠자못 치우치다

혜명(慧命) :
원어는 아위스마트(ayusmat). 원래 '장수(長壽)의'라는 형용사이지만,

부를 때 이름 앞에 붙여서 경어로 쓰기도 하여,

장로(長老) · 대덕(大德) · 존자(尊者) · 구수(具壽) · 정명(淨命)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혜명에 관해서 장수(長水)의 '금강경소기료회(金剛經疏記料會)' 제2권에서는,

'색신은 食으로써 명(命)으로 삼고, 법신은 혜(慧)로써 명으로 삼는다.'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법신의 지혜를 수명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오십삼가주(金剛經五十三家註)' 제4권에서는, '진웅(陳雄)이 말하기를, <혜명 수보리를 법화경 신해품에서 살펴보면, 혜란 것은 德을 말하고 명이란 것은 수(壽)를 말한다. 즉 장로의 이명(異名)이다>

'라고 하고 있다.
[대비바사론 제18권 대정신수대장경 27, P.914]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존이 바라니사(婆羅泥斯; 鹿苑)에 도달했을 때 오인(五人)이 문득 부처님을 보고, 드디어 제(制)를 세워 말하기를
[··고타마는 해만다구(懈慢多求)로서, 광란하고 실지하고 헛되어서 얻을 바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 또 우리에게 다가와서 유혹하려고 한다.

우리들은 능히 모두가 담론하거나 공경하거나 질문하거나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단지 평상시대로 그가

자리를 깔고 앉든지 말든지 그에게 맡겨 버리자··]라고.
그 때 세존이 가까 다가온 즉, 그에게 위덕이 갖추어져 있음을 보고, 그들은 본래의 생각을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을 맞이하러 나가 드디어 합장공경하여 귀명하였다. ··· 그 때에 부처님은 자리로 나아가 편안히 앉았는데, 그 위광기특(威光奇特)한 모습이 묘고산(妙高山)과 같았다.
그리하여 다섯 사람은 부처님을 공경하여 부르기를 구수(具壽;ayusmat) 또는 고타마라고 하였는데, 부처님은 이에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여래를 호칭함에 있어서 구수라고 하거나 족성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
라고.
이에 따르면 아위스마트(ayusmat)라는 호칭은 동년배나 그 이하의 사람에게 사용되었던 것 같다.


※ 주석.

저때에 혜명수보리 부처님께서 사루어 말하되 세존 이시여,
단지 중생이 오는 세상에 있어, 이 법을 설하심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오리까,

부처님 께서 말씀 하시되 수보리야 저희가 중생이 아니며
중생 아님도 아니니, 어찌한 연고이냐,수보리야 중생 중생이라 함은,
여래의 말로는 중생이 아니라, 이 이름이 중생 이니라.



※ 해설.

수보리는 후세 중생들이 이러한 심심 미묘한 법문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낼는지 걱정되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이 중생도 아니요, 중생 아님도 아니라고 말씀 하시고,
이 까닭은 중생 중생 이라고 여래가 말한것은,
중생이 아니고 그 이름만이 중생 이라고 말씀 하셨다.

이뜻은, 중생이 아니라고 함은, 사람마다 본래 성불을 하였으므로 중생이 아니라는 것이요,


중생 아님도 아니라는 것은, 자기 자성이 틀림없이 부처인줄은 알았으나,

마치 죽순이 대나무 구실을 못 하듯이
부처가 부처 노릇을 못하고, 육진경계(六塵境界)에 속아 탐진치(貪嗔痴) 의 번뇌를 이르키므로

중생 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생이 아닌자는 부처이니 부처가 부처를 믿거나,구할 필요가없고,

중생은 중생이니, 부처가 되기 위하여 부처의 말을 믿고,

육바라밀을 닦아 아뇩보리를 성취할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므로 아니라는 중생이나 옳다는 중생이나 다 이름만 중생이지 중생이 아닌 것이다.

 

 

 

 

【언해본】

“須菩提야! 네가 (너는) 如來가 이런 生覺을 하되, ??내(如來)가 마땅히 說法함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지 말라. 이(같은) 生覺을 짓지 말라(고 한 것은) 어째선 가???
“만약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如來가 說法함이 있는 것이다.??고 말하면 (그것은) 부처님을 헐뜯는 것이며, 내가 말하는 것을 能히 알지

못하는 까닭이니,
須菩提야! 說法(이란 것)은 가히 일컬어짐(說한 것)이 없는 것이라.
(다만) 그 이름이 說法인 것이다.”
그때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되,
“世尊이시여, 자못 (어떤) 衆生이 未來 世上에 이 (어려운) 法 이르심을 듣잡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말겠습니까???
부처님이 이르시되
“須菩提야! 저것이 (저들은) 衆生이 아니며, 衆生 아닌 것도 아니니, 어째선 가?
須菩提야! 衆生 衆生이(라고) 如來가 이르는 것이 衆生이 아니라, 이 (그) 이름이 衆生인 것이다.”

 

 


【범어본】스승은 물었다.
須菩提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내가 法을 敎示했다고 하는 그런 生覺이 如來에게 있다고 보는가?
須菩提는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法을 敎示했다고 하는 그런 生覺은 如來에게는 없습니다. 스승은 물었다.
須菩提여, 如來는 法을 敎示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잘못을 말한 것이 된다.

須菩提여, 그는 眞實이 아닌 것에 執着하여 나를 誹謗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須菩提여, 法의 敎示, 法의 敎示라고 하지만, 法의 敎示라고 하여 얻어질 수 있는 그와 같은 法은

어디에도 存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須菩提 長老는 스승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스승이시여, 지금부터 후세에 제2의 五百 년대에 정法(正法)의 파멸이 일어날 때, 이와 같은 法을 듣고 믿는 衆生들이 있겠습니까?
스승은 대답했다. 須菩提여, 그들은 衆生이 아닌, 즉 衆生이 아닌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須菩提여, 衆生, 衆生이라는 것은 모두 衆生이 아니다라고 如來가 說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衆生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몽고본】

世尊께서 말했다. 수부티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如來가 “나는 이와 같이 法을 說한다”라고 思惟하리라고 生覺하면 수부티여,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思念되지 않는다. 如來의 敎說하신 바의 法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수부티여, 이와 같이 如來는 法을 敎說하신다고 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無實과 錯亂에 사로잡혀서 나를 誹謗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부티여, 說法, 說法이라고 말하고 生覺할 수 있는 法이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구수 수부티는 世尊이신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世尊이시여, 未來에 그 어떤 有情이 이와 같이 說하는 法을 듣고서 믿고, 존경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世尊께서 말했다.
수부티여, 그들은 有情이 아니고 非情도 아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부티여, 有情은 有情이 아니라 다만 그 이름이 有情이기 때문이니라.

 

 


【티베트본】

世尊께서 말씀하셨다
“쑤부띠여, 어떻게 生覺하느냐? 如來가 이처럼‘ 나는 법을 설한다’고 生覺한다고 여긴다면 쑤부띠여,

그것은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如來가 설한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이다.

쑤부띠여, 누군가가 이처럼 ‘如來가 법을 설한다’ 고 한다면 쑤부띠여, 그는 허망과 잘못에 사로잡혀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누군가 법을 설한다’라고 하는 것도 ‘누군가 법을 설한다’라는 것을 인식하는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世尊께 長老 쑤부띠는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世尊이시여, 미래에 이처럼 설한 법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내는 어떤 뭇 삶이 나타나리라고 보십니까?”
世尊께서 말씀하셨다
“쑤부띠여, 그들은 뭇 삶도 아니고 뭇 삶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뭇 삶이라고 하는 것은 如來가 그들을 ‘뭇 삶이 아니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뭇 삶이라고 한다.

 

 


【용성】

須菩提야 네가 如來께서 이 生覺을 하되 내가 마땅히 말한바 法이 있다고 이르지 말라.

이 生覺을 짓지 말지니 어떠한 緣故인가 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되 如來께서 말한바 法이 있다고 하면

곧 부처님을 誹謗함이라 能히 나의 말한 바를 알지 못하는 緣故니라.
須菩提야 法을 말하는 자는 法을 가히 말할 수 없는지라. 이 이름이 法을 말함이니라.
저때에 慧命 須菩提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世尊님이시여 자못 衆生이 있어 저 未來世上에 이 法 說하심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리이까 말리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須菩提야 저가 衆生이 아니며 衆生이 아닌 것도 아니니 어찌한 緣故인가 하면 須菩提야 衆生이란 자는 如來께서 衆生을 말씀하심이 아니라 이 이름이 衆生이니라.

 

 


【운허】

“須菩提야, 如來가 生覺하기를??내가 말한 法이 있다??하리라고 너는 말하지 말라. 그런 生覺을 하지 말지니, 무슨 까닭이냐?
어떤 사람이나 如來께서 말씀하는 法이 있다고 말하면 이것은 부처님을 誹謗하는 것이요, 나의 말하는 뜻을 모르느니라.
須菩提야, 法을 말한다는 것은 말할 만한 法이 없을 새 法門을 말한다고 이름하느니라.”
그때에 智慧의 生命인 須菩提가 부처님께 여짜오되,
“世尊이시여, 어떤 衆生이나 이다음 世上에 이런 法門을 듣삽고 믿는 마음을 낼 이가 있겠나이까???
부처님이 이르사되,
“須菩提야, 저들은 衆生도 아니요 衆生 아님도 아니니 왜냐하면,
須菩提야, 衆生 衆生이란 것은 如來가 말하기를 衆生이 아닐 새 衆生이라 이름하느니라.

 

 


【신소천】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이러한 生覺을 짓되 내가 마땅히 法을 說함이 있다 한다고 하지 마라. 이 生覺을 짓지 말지니라.
어찌한 緣故이냐? 만약 사람이 말하되 如來가 法을 說함이 있다 하면 곧 부처님을 훼방함이 되는 것이니 나의 說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緣故이다.
須菩提야! 法을 說한다 함은 法이 없음을 가히 說함일지니, 이 이름이 法을 說함이다.
저 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하되,
世尊이시여! 자못 衆生이 오는 世上에 있어서 이 法 說하심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오릿까?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須菩提야! 저가 衆生이 아니니 衆生 아님도 아니다.
왜 그러냐? 須菩提야! 衆生 衆生하지만 如來 말로 하자면 衆生이 아니니, 이 이름이 衆生이니라.

 

 


【권상로】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이런 生覺을 하시되 내가 마땅히 說한바 法이 있다고 하지 말라 이런 生覺을 하지 말지니 어쩐 緣故냐 하면 만일 사람이 如來가 說하신 바 法이 있다고 말하면 곧 부처님을 誹謗하는 것이 되니 能히 내가 말한바 뜻을 알지 못하는 緣故니라
須菩提야 說法이라는 것은 法을 가이 설한 것이 없는 緣故니라
그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살워 말씀하되 世尊이시여 자못 衆生이 저 未來世에 이렇게 法 전하심을 듣고 信心을 내겠습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저는 衆生도 아니며 衆生 아님도 아니니 어쩐 緣故냐 하면 須菩提야 衆生 衆生하는 것은 如來가 말씀하시되 衆生이 아닐 새 이러므로 이름을 衆生이라 하나니라

 

 


【명봉】

須菩提야! 네가 如來가 이런 生覺을 作하되 내가 마땅히 法 說한 바 있다하지 말아라. 이런 生覺을 짓지 말지니 어쩜인고 만약 사람이 如來께서 法 說하는 바 있다면 곧 부처님을 誹謗함이요 能히 내가 說한 바를 알지 못한 緣故니라.
須菩提야! 法 說한다는 자는 法 가히 說할 것이 없는 것이 이 이름 法 說함이니라.

 

 


【기산】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이 生覺을 하되 내가 마땅히 說한 바의 法이 있다고 이르지 말라.

아예 이런 生覺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如來가 說한 바의 法이 있다고 말하면 곧 부처를

誹謗함이 되나니 能히 나의 說한 바를 해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說法이란 것은 法을 가히 說한 것이 없는 것을 說法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때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여쭈되,
世尊이시여! 아니 어떤 衆生이 未來 세에 이렇게 說하신 法을 듣고 信心을 내오리까 안 내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須菩提야! 저 衆生은 衆生도 아니며 衆生이 아닌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須菩提야! 衆生을 衆生이라 하는 것은 如來가 衆生이 아닌 것을 衆生이라고 이름하여 說하기 때문이다.

 

 


【해안】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이러한 生覺을 하되 내가 마땅히 說한바 法이 있다고 이르지 말라 이런 生覺을 하지 말라 함은 어찌한 緣故이냐? 만약 사람이 말하되 如來가 說한바 法이 있다 하면 곧 부처님을 誹謗하는 것이 되고 能히 나의 說한 바를 알지 못하는 所以 이니라.
須菩提야! 說法이란 것은 가히 說할 法을 없음이, 이 이름이 說法이니라.
저 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世尊이시여! 단지 衆生이 오는 世上에 있어 이 法 說하심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오리까?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須菩提야! 저희가 衆生이 아니며 衆生 아님도 아니니 어찌한 緣故이냐 須菩提야!

衆生 衆生이라 함은 如來의 말로는 衆生이 아니라 이 이름이 衆生이니라.

 

 


【청담】

“須菩提야! 너는 말하지 말라 如來가 ??내가 說明한 바 法이 있다고 生覺하리라??는 이런 生覺 내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
‘如來가 說明한 바 法이 있다.??고 하면 곧 부처님을 誹謗하는 것이고, 나의 말한 바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야! 法을 말한다는 것은 法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說法이라 이름하느니라.”
그때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자못 어떤 衆生이 이 다음에 世上에 이런 法門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는 이가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須菩提야! 衆生이다 衆生이다 하지만 如來는 衆生이 아닌 것을 衆生이라 이름하여 말하느니라.??

 

 


【탄허】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이 生覺을 짓되 내가 마땅히 說法한 바가 있다 한다 말하지 말라 이 生覺을 짓지 말지니 어찌 쓴 緣故뇨.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되, 如來가 說法한 바가 있다 하면 곧 불을 誹謗함이 되는 지라 能히 나의 說한 바를 알지 못하는 緣故니라.
須菩提야! 說法이란 것은 法 가히 說할게 없음을 이 說法이라 名하나니라.
저 때에 慧命인 須菩提가 佛께 사뢰어 말씀하시되, 世尊이시여! 자못 어떤 衆生이 未來세에 是法 說함을 듣고 信心을 내나잇가 않나잇가
불이 말씀하시되,
須菩提야! 저가 衆生이 아니며 衆生 아님도 아니니 어찌 쓴 緣故뇨.
須菩提야! 衆生이란 것은 如來가 說하되 衆生이 아닐 새 이 衆生이라 이름한 것이니라.

 

 


【광덕】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生覺하기를 ‘내가 마땅히 說한 바 法이 있다’한다고 이르지 마라.

이런 말하지 말지니 어찌한 까닭이냐?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如來가 說한 바 法이 있다’고 한다면 곧 如來를 誹謗함이 되나니 내가 說한 바를 알지 못한 緣故니라.
須菩提야! 法을 說한다는 것은 法이 없음을 가히 말하는 것이니 그 이름이 法을 說함이니라.”
그 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世尊이시여, 자못 어떤 衆生이 未來 세에 이 法 說하심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須菩提야! 저가 衆生이 아니며 衆生 아님도 아니니, 어찌한 까닭이랴?
須菩提야! 衆生 衆生이라 하는 것은 如來가 衆生 아님을 말하는 것이니 그 이름이 衆生이니라.”

 

 


【월운】

“須菩提야, 如來가 生覺하기를 ??내가 말한 法이 있다??하리라고 生覺치 말라. 그런 生覺을 말지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如來께서 말씀하신 法이 있다??한다면 이는 부처님을 誹謗하는 것이니, 나의 말뜻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야, 法을 말한다는 것은 말할 만한 法이 없으므로 法을 말한다 하느니라.”
그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어떤 衆生이나 오는 世上에 이런 法門을 듣고 믿음을 낼 이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須菩提야, 저들은 衆生도 아니요 衆生 아님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須菩提야, 衆生이라 한 것은 如來가 말하기를 衆生이 아니므로 衆生이라 하느니라.”

 

 


【무비】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마땅히 說한 바 法이 있다??고 이르지 말라.

이런 生覺을 하지 말지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약 사람이 말하길, 如來가 說한 바 法이 있다고 하면

이는 곧 부처님을 誹謗함이니라. 能히 내가 說한 바를 알지 못한 緣故니라.
須菩提야! 說法이라는 것은 法이 가히 說할 것이 없음을 이름하여 說法이라 하느니라.”
그 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매우 적은 수의 어떤 衆生이 未來세에 이 法 說하심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須菩提야! 저들은 衆生이 아니며 衆生 아님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須菩提야! 衆生 衆生이라 함은 如來가 說하되 衆生이 아니고 그 이름이 衆生이니라.”

 

 


【석진오】

須菩提여, 그대는 如來가, “내가 마땅히 法을 說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라고 이와 같은 生覺을 한다고 말하지 말며, 生覺하지 말라.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如來에게는 說하는 바 法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즉 부처님을 誹謗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내가 說하는 바를 理解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須菩提여, 法을 說한다라고 하지만 法이라고 하여 가히 說할 것이 없고, 그 이름이 說法인 것이다.
그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했다.
世尊이시여, 만일 衆生이 있어서 未來세에 이 法의 說함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했다.
須菩提여, 그들은 衆生도 아니고 衆生이 아닌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須菩提여, 衆生, 衆生이라고 하는 것은 如來께서 說하시기를, “衆生이 아니라 그 이름이 衆生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홍정식】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나는 應當 法을 說하는 바 있다고 生覺을 한다고 말하지 말며, 그런 生覺도 하지 마라. 어째서냐 하면, 만일 사람이 말하기를 如來가 說하신 法이 있다고 하면 이것은 곧 부처님을 헐뜯는 것이 되고, 내가 말한 것을 能히 알지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法을 說한다 하더라도 說해질 法은 없다.

이것을 法을 說한다고 이름하게 된다.
그때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世尊이시여, 많은 衆生들이 未來에 이 法을 說하신 것을 듣고 믿음의 마음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須菩提야, 저들은 衆生도 아니요, 衆生 아닌 것도 아니다. 무슨 까닭으로서 인가

須菩提야, 衆生이라는 것은 如來가 衆生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衆生이라고 이름되는 것이다.

 

 


【김기추】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이러한 生覺을 짓되 내가 마땅히 法을 말함이 있다고 이르지 말라.

이런 生覺을 짓지 말지니 무슨 까닭으로써 이냐. 만약 사람이 이르되 ‘如來가 法을 말한 바가 있다’면 곧 부처를 誹謗함인 짓이라. 能히 나의 말하는 바를 알지 못함인 까닭이니,

須菩提야! 法을 말함이란 것은 좋이 말할 法이 없음이 이 이름이 說法이니라.??
저 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 사뢰되,
“世尊이시여, 오는 世上에 衆生이 있어서 이러한 法 말씀을 듣고 자못 믿는 마음을 내오리까???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須菩提야! 저가 衆生이 아니며 衆生 아님도 아니니 무슨 까닭으로 써 이겠느냐.

須菩提야! 衆生을 衆生이라 함은 如來가 말하는 衆生이 아니요, 이 이름이 衆生임을 말함이니라.??

 

 


【이기영】

“須菩提여, 너는 如來가 生覺하기를 ‘내가 마땅히 法을 說하는 바 있어야 한다’ 하리라고 生覺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만약 사람이 말하기를 ‘如來에게는 說하는 바 法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는 곧 부처를 誹謗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나의 說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때문이니라.
須菩提여, 法을 說한다 하나 가히 說할 만한 法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일컬어 說法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世尊이시여, 未來세에 많은 衆生이 있어 이러한 法을 說하심을 듣고, 信心을 일으키오리까, 아니오리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須菩提여, 저들은 衆生이 아니며, 衆生이 아님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須菩提여, 如來는 衆生, 衆生하는 자를 衆生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니라. 이를 衆生이라고 이름 부르는 것이니라.”

 

 


【송찬우】

“須菩提야, 너는 如來께서 이러한 生覺을 한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生滅하는 妄想心으로 說法하는 바가 있다.>라는 이러한 生覺일랑 하질 말라.
무슨 意味 때문에 너에게 이러한 生覺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

가령 어떤 사람이 如來께서 生滅하는 마음으로 說法하시는 바가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부처님을 誹謗하는 것이 되는데, 왜냐하면 如來는 모든 法은 畢竟 空寂한 모습임을 通達하여 끝내 生滅하지 않는 마음으로 모든 衆生을 解脫시킨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나의 生滅의 執着 없이 行하는 說法의 참모습을 理解하지 못하고

부처님은 法을 說함으로써 法에 대한 生滅心의 執着이 있다라고 誹謗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現在 행해지는 說法 그 이면엔 生滅心으로 說法하는 따로의 實在하는 法이란 없다.

이처럼 說法과 無說이 둘이 아닌 眞性 無聖의 境地, 즉 단지 衆生의 妄心을 除去해 주는 說法을 眞實한 說法이라고 부른다.”
이때 智慧가 完全하게 소통하여 단지 智慧만을 목숨으로 여기는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世尊이시여! 적지 않은 衆生들이 未來의 世上에 이처럼 深奧한 法의 說明을 듣고 나서 믿는 마음을 낸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須菩提야, 정말로 어떤 衆生이 있어 이 法을 믿는다고 하자.

그는 凡夫의 自體로 實在하는 衆生도 아니며, 그렇다고 衆生 아님도 아니다.

무슨 意味 때문에 凡夫로 實在하는 衆生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시 그를 衆生이라고 부르는가.
須菩提야, 實在하는 衆生이 아닌 데서 그를 衆生이라 하는데, 如來께서는 凡夫 衆生이 아닌 가운데서 그 이름만을 衆生이라 說明하기 때문이다.”

 

 


【이제열】

“須菩提야, 너는 이렇게 生覺하지 말라. ‘내(如來)가 마땅히 法을 說한 바 있다’고 너는 그런 生覺을 짓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如來가 法을 說한 바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如來를 誹謗하는 것이며, 내가 말한 바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야, 法을 說한다고 하나 가히 法이라 하여 說할 것이 없는지라, 이름하여 法을 說한다고 말할 따름이니라.”
그 때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자못 어떤 衆生이 있어서 다음 世上에 이 眞理의 말씀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須菩提야, 저들은 衆生이 아니요, 衆生이 아님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須菩提야! 衆生 衆生 하는 것은 如來가 衆生이 아닌 것을 이름하여 衆生이라 하였을 따름이니라.”

 

 


【문제현】

“須菩提야! 너희들은 如來에게 法을 說했다는 生覺이 있다고 하지 말라. 이런 生覺을 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만약 어떤 사람이 如來가 法을 말한 바 있다고 하면 곧 모든 부처를 誹謗하는 것이기 때문이니,

내가 말한 뜻을 깨닫지 못한 것이니라.
須菩提야! 法을 말하는 이는 가히 法을 말함이 없어야 法을 말한다 이름할 수 있느니라.”
그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世尊이시여, 未來의 世上에 이 法 말씀하신 것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낼 衆生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須菩提야! 저들은 衆生도 아니며 衆生 아닌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須菩提야! 如來가 衆生이라고 한 衆生은 衆生이 아니니, 이름하여 衆生이라 할 뿐이기 때문이니라.”

 

 


【김용옥】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나는 마땅히 說할 法을 가지고 있노라’고 이 같은 生覺을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

이 같은 生覺을 지어서는 아니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어떤 사람이 如來가 說할 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곧 부처를 誹謗하는 자라. 내가 說한 바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
須菩提야! 法을 說한다 해도 說할 法이 아무것도 없나니, 그래서 비로소 法을 說한다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에,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世尊이시여! 퍽이나 많은 衆生들이 未來의 世上에서 이 法이 說하여지는 것을 믿고 마음을 내겠습니까?

아니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須菩提야! 그들을 衆生이라 해서도 아니 되고 衆生이 아니라 해서도 아니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須菩提야! 衆生, 衆生이라 하는 것은 곧 衆生이 아님을 如來가 說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衆生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조현춘】

“須菩提야! 如來가 ‘나는 法을 說한다’ 는 生覺을 하겠느냐 ? 그렇게 生覺하지 마라.
부처님께서는 ‘法을 說한다’ 는 生覺을 하신다고 말하는 사람은 如來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여, 如來를 誹謗하는 것이다.
須菩提야! 法을 說하되 說한다는 生覺에 걸리지 않아야, 참으로 法을 說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에 智慧가 밝아진 須菩提께서 부처님께 여쭈시었다.
“부처님이시여. 未來의 衆生이 이 經을 들으면 믿겠습니까?”
“須菩提야! 그들을 衆生으로 보는 生覺에도 걸리지 않아야 하며, 衆生으로 보지 않는다는 生覺에도 걸리지 않아야 한다
須菩提야! 如來가 말하는 衆生을 衆生으로 보되 衆生이라는 生覺에 걸리지 않아야 참으로 衆生을 제대로 본다고 할 수 있다.”

 

 


【백성욱】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설한 바 법이 많다고 生覺한다고 하지 말아라.

이런 生覺을 짓지 말아라 왜 그런고 하니, 만약 어떤 사람이 如來가 설한 바 법이 있다면 그것은 부처님을 욕한 것 밖에 안 되느니라.
須菩提야! 설법이라는 것은 법 설한 것이 가히 없는 것이 그것이 이름이 설법이니라.
이때 혜명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루어 말하되,
世尊님. 자못 衆生이 오는 世上에 있어서 이 법 설하는 것을 듣고서 참 믿는 마음이 나겠습니까?
부처님이 말하되,
須菩提야! 저는 衆生이 아니며 또한 衆生 아님도 아니다. 왜 그런고 하니,

須菩提야! 衆生 衆生이라는 것은 如來가 說한 衆生이 아닐 새 이것이 이름이 衆生이니라.

 

 


【김운학】

須菩提야, 너는 如來가 生覺하기를 내가 마땅히 법을 설한 바 있다고 이르지 말라.
그런 生覺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만일 사람이 있어 如來가 법을 설한 바 있다고 말하면 곧 부처님을 誹謗하는 것이 된다. 내가 설한 것이 없고 그 이름이 설법인 것이다.
이 때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에게 여쭈어 말하기를 世尊이시여, 자못 衆生들이 다음 世上에 있어서 이 법 설함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부처님이 말하기를 須菩提야, 저들은 衆生이 아니며 衆生이 아님도 아니니, 왜냐하면 須菩提야, 衆生 衆生하는 것은 如來가 설한 衆生이 아니라 이 이름이 衆生이기 때문이다.

 

 


【오진탁】

須菩提여! 그대는 내가 스스로 說法을 한다고 生覺하리라고 짐작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如來는 說法한다고 말하면 그는 如來를 誹謗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말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다.
須菩提여! 如來의 說法은 어느 하나도 말할 바가 없기에 이를 說法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그때 慧命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을 올렸다.
"世尊이시여! 자못 衆生이 未來에 이 가르침을 듣고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이 말씀했다.
"須菩提여! 그는 衆生이 아니며 衆生이 아닌 것도 아니다.
왜 그럴까? 須菩提여!
衆生은 衆生이 아니므로 그를 衆生이라 일컫는다고 如來는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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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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