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장. 닭과 개가 짖는 소리 서로 들리나>
小國寡民 使有什伯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작은 나라와 적은 백성. 많은 도구가 있으나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이 죽음을 중히 여기고 멀리 이사가지 않는다.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탈 일이 없고, 군사와 무기가 있어도 내보일 일이 없다. 다시금 새끼를 묶어서 의사 소통을 한다. 음식을 달게 먹고, 의복을 아름답게 걸치며, 거처를 안락하게 여기며, 풍속을 즐긴다. 이웃나라가 서로 마주보고,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지만, 백성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小國寡民 使有什伯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모소진지)
노자가 이상적으로 꿈꾸는 공동체이다. 나라와 백성은 작고 적을수록 좋다. 나라가 크고 백성이 많을수록 다스림도 복잡해지고, 백성들 사이에도 이해와 득실관계가 좀더 미묘해지고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많은 도구가 있으나 사용하지 않게 한다는 것은, 36장에서“나라에 이로운 도구를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라고 한 맥락과 같다. 도구를‘언어와 문자, 세속적인 지식’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그런 즉, “사람들에게 이로운 도구가 많을수록 나라는 더욱 혼미해진다. 사람들에게 잔재주가 많을수록 부정한 물건이 많아지고, 법이나 명령이 화려할수록 도적은 많아진다.” (57장)
‘백성들이 죽음을 중히 여기고 멀리 이사가지 않게 한다’는 75장에서 얘기했듯 지배계급의 착취와 수탈이 극심한 탓에 백성이 목숨을 가벼이 여기므로, 착취와 수탈이 없으면 절로 목숨을 중히 여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고로 착취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다 목숨을 상하게 되는 일도 없는 것이다.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이므로 남의 것을 엿볼 까닭이 없다. 그러므로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탈 필요가 없고, 무기와 군사를 동원해 세를 과시하며 을러댈 이유도 없다.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사인복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 불상왕래)
고대 중국에서 문자가 생기기 이전에는 새끼를 꼬아서 의사를 표시하고 전달했다. 그러므로 다시금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언어와 문자는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분별지인 까닭에 사람을 혼란과 망상에 빠뜨리게 하므로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은 감각적이고 차별적인 삶에서 벗어나 道를 섬기는 삶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다섯 가지 색은 눈을 멀게 만들고 다섯 가지 음은 귀를 멀게 하며 다섯 가지 맛은 입을 버리게 한다.”(12장) 무위의 삶은 차별심이 없는 까닭에, 이것은 짜고 저것은 맵다 하지 않고 어떤 음식도 맛있게 먹으며, 이것은 남루하네 저것은 화려하네 차별하지 않고 어떤 옷도 감사하게 걸치며, 머무는 곳 또한 누추하고 불편하다는 차별심 없이 모든 거처를 편안히 여기고,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새롭고 신기한 바깥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전통적인 풍속을 소중히 여긴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마주 보고 개와 닭이 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얘기는, 서로를 넘볼 일이 없어 평화롭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권력욕의 화신인 천자와 제후들의 다툼으로 인해 춘추전국시대의 국경에는 늘 긴장이 흐르고 병사와 무기로 가득했을 것이다. 46장에서 말하듯, 세상에 道가 없으므로 오랑캐 말이 성밖에서 새끼를 치는 것이다. 피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지만 무위의 道를 섬기는 자의 눈에는 이 모든 짓이‘달팽이 뿔위에서의 싸움’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허망하고 부질없는 유위의 삶을 접으면 평화가 찾아온다. 상대를 무너뜨리고 없애야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모순된 관계가 아니라, 모두가 우주의 중심이며 세계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공존의 관계가 뿌리를 내린다.
80장의 내용을 道家가 지향하는 이상사회로만 여겨버리면 노자의 참뜻이 왜곡될 터이다. 이제껏 그래왔듯 이 장 또한 비유와 상징으로 여기고, 비유와 상징의 수풀에 가려진 길을 확인해야만 한다. 佛家의 선지식의 가르침을 좇아 그 길을 따라가 보자.
달마 대사가 이르길,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느니(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牆壁 可以入道).”
혜능 선사가 이르길,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온갖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自在)하느니라. <유마경(維摩經)>에 말씀하시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外能善分別諸法相 內於第一義而不動)’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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