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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함경 제 24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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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 계빈삼장 구담 승가제바 한역 |
9. 인품(因品) 제 4 ① |
[이 인품에는 총 열 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
대인경(大因經) 염처경(念處經) 고음경(苦陰經) 상 하와 |
증상심경(增上心經) 염경(念經)과 |
사자후경(師子吼經) 우담바라경(優曇婆羅經)과 |
원경(願經) 상경(想經)이다. |
97) 대인경(大因經) 제 1 [제2 소토성송] |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적에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에 머무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한가히 홀로 지내면서 연좌(宴座)하여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 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이 연기(緣起)는 매우 기이하고 지극히 깊으며 이해하기도 또한 매우 어렵다 한다. 그런데, 내가 관찰하여 본 바로는 지극히 얕고도 얕다.' |
이에 존자 아난은 저녁때 연좌에서 일어나,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한가히 홀로 있으면서 연좌하여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 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이 연기는 매우 기이하고 지극히 깊으며 이해하기도 또한 매우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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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그런데, 내가 관찰하여 본 바로는 지극히 얕고도 얕다.'" |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아난아, 너는 '이 연기는 지극히 얕고도 얕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무슨 까닭인가? 이 연기는 지극히 깊고 이해하기도 또한 매우 어렵느니라. 아난아, 이 연기를 참답게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며, 깨닫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 중생들은 베틀이 서로 얽매는 것 같고 넝쿨풀이 어지러운 것 같으며, 바쁘고 부산하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며, 왔다 갔다 하면서 생사(生死)를 뛰어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라. 아난아, 그러므로 이 연기는 지극히 깊고, 이해하기 또한 매우 어려운 줄 알아야 하느니라. |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늙고 죽음에 연(緣)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늙고 죽음에는 연이 있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또 어떤 이가 '늙고 죽음에는 어떤 연(緣)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생(生)에 인연한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생에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생에도 또한 연이 있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만일 어떤 이가 '생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유(有)에 인연한다'라고 이렇게 대답하라.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유에 연이 있는가'고 묻거든, 마땅히 '유에도 또한 연이 있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만일 어떤 이가 '유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고 묻거든, 마땅히 '수(受 : 取)에 인연한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수에 연이 있는가'고 묻거든, 마땅히 '수에도 또한 연이 있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만일 어떤 이가 '수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애(愛)에 인연한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아난아, 이것을 '애(愛)를 인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를 인연하여 유(有)가 있으며, 유를 인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인연하여 노(老) 사(死)가 있으며, 노 사를 인연하여 걱정[愁]과 슬픔[]이 있고, 울음[啼哭] 과 걱정[憂] 괴로움[苦] 번민[懊惱]은 다 노 사를 인연하여 있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구족하면 오로지 큰 고음(苦陰)만 생기느니라. |
아난아, 생을 인연하여 노 사가 있으면 이것을 '생을 인연하여 노 사가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생을 인연하여 노 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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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생이 없다면, 고기[魚]면 고기 종자[魚種], 새[鳥]면 새 종자[鳥種], 모기[蚊]면 모기 종자[蚊種], 용(龍)이면 용 종자[龍種], 신(神)이면 신 종자[神種], 귀신[鬼]이면 귀신 종자[鬼種], 하늘[天]이면 하늘 종자[天種], 사람[人]이면 사람 종자[人種] 등 아난아, 저마다의 중생들이 저마다의 곳[處]을 따라 생이 없을 것이다. 제각기 생이 없다면, 가령 생을 떠나더라도 노 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노 사의 원인[因], 노 사의 성취[習], 노 사의 근본[本], 노 사의 인연[緣]은 곧 이 생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생을 인연하여 곧 노 사가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유(有)를 인연하여 생(生)이 있으면 이것을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유가 없으면 고기면 고기 종자, 새면 새 종자, 모기면 모기 종자, 용이면 용 종자, 신이면 신 종자, 귀신이면 귀신 종자, 하늘이면 하늘 종자, 사람이면 사람 종자 등 아난아, 저마다의 중생들이 저마다의 곳[處]을 따라 유가 없을 것이다. 제각기 유가 없다면, 가령 유를 떠나더라도 마땅히 생이 있을 수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생의 원인, 생의 성취, 생의 근본, 생의 인연은 곧 이 유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유를 인연하여 곧 생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수(受)를 인연하여 유(有)가 있으면 이것을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수가 없어 제각기 수가 없다면, 가령 수를 떠나더라도 마땅히 다시 유가 있거나 유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유의 원인, 유의 성취, 유의 근본, 유의 인연은 곧 이 수(受)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를 인연하여 곧 유가 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애를 인연하여 수(受)가 있으면 이것을 '애를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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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여 수가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애(愛)를 인연하여 수가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애가 없어 제각기 애가 없다면, 가령 애를 떠나더라도 마땅히 다시 수가 있거나 수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수의 원인, 수의 성취, 수의 근본, 수의 인연은 곧 이 애(愛)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애를 인연하여 곧 수가 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이것을 애를 인연하여 구함[求]이 있고,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利]이 있으며,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分]이 있고, 분별을 인연하여 욕심[染欲]이 있으며,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著]이 있고, 집착을 인연하여 아낌[慳]이 있으며, 아낌을 인연하여 집[家]이 있고, 집을 인연하여 지킴[守]이 있다고 말한다. 아난아, 지킴을 인연하기 때문에 곧 칼과 몽둥이 싸움 아첨 속임 거짓말 이간하는 말이 있으며,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구족하면 오로지 큰 고음(苦陰)만 생기느니라. 아난아, 만일 지킴이 없어 제각기 지킴이 없다면, 가령 지킴을 떠나더라도 마땅히 칼과 몽둥이 싸움 아첨 속임 거짓말 이간하는 말이 있고,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칼과 몽둥이 싸움 아첨 속임 거짓말 이간하는 말과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키는 원인[因], 성취[習], 근본[本], 인연[緣]은 곧 이 지킴[守]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지킴을 인연하기 때문에 곧 칼과 몽둥이 싸움 아첨 속임 거짓말 이간하는 말이 있고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구족하면 오로지 큰 고음만 생기느니라. |
아난아, 집[家]을 인연하여 지킴이 있으면 이것을 '집을 인연하여 지킴이 있다'고 하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집을 인연하여 지킴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집이 없어 제각기 집이 없다면, 가령 집을 떠나더라도 마땅히 지킴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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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지킴의 원인, 지킴의 성취, 지킴의 근본, 지킴의 인연은 곧 이 집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집을 인연하여 곧 지킴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아낌[慳]을 인연하여 집이 있으면 이것을 '아낌을 인연하여 집이 있다'고 하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아낌을 인연하여 집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아낌이 없어 제각기 아낌이 없다면, 가령 아낌을 떠나더라도 집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집[家]의 원인, 집의 성취, 집의 근본, 집의 인연은 곧 이 아낌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아낌을 인연하여 곧 집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집착[著]을 인연하여 아낌[慳]이 있으면 이것을 '집착을 인연하여 아낌이 있다'고 하느니라. 아난아, 만일 집착이 없어 제각기 집착이 없다면, 가령 집착을 떠나더라도 아낌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아낌의 원인, 아낌의 성취, 아낌의 근본, 아낌의 인연은 곧 이 집착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집착을 인연하여 곧 아낌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욕심[欲]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다'고 하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욕심이 없어 제각기 욕심이 없다면, 가령 욕심을 떠나더라도 집착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집착의 원인, 집착의 성취, 집착의 근본, 집착의 인연은 곧 이 욕심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분별[分]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으면 이것을 '분별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다'고 하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분별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분별이 없어 제각기 분별이 없다면, 가령 분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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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더라도 욕심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욕심의 원인, 욕심의 성취, 욕심의 근본, 욕심의 인연은 곧 이 분별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분별을 인연하여 곧 욕심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分]이 있으면 이것을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이 있다고 하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이익이 없어 제각기 이익이 없다면, 가령 이익을 떠나더라도 분별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분별의 원인, 분별의 성취, 분별의 근본, 분별의 인연은 곧 이 이익[利]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익을 인연하여 곧 분별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구함[求]을 인연하여 이익[利]이 있으면 이것을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이 있다'고 하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구함이 없어 제각기 구함이 없다면, 가령 구함을 떠나더라도 이익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이익의 원인, 이익의 성취, 이익의 근본, 이익의 인연은 곧 이 구함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구함을 인연하여 곧 이익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애(愛)를 인연하여 구함이 있으면 이것을 '애를 인연하여 구함이 있다'고 하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애를 인연하여 구함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애가 없어 제각기 애가 없다면, 가령 애를 떠나더라도 구함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구함의 원인, 구함의 성취, 구함의 근본, 구함의 인연은 곧 이 애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애를 인연하여 곧 구함이 있기 때문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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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아, 욕애(欲愛)와 유애(有愛) 이 두 법은 각(覺)을 인(因)하고 각을 연(緣)하여 오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각에 연(緣)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각에도 또한 연이 있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각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갱락(更樂)을 인연한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갱락을 인연하여 각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눈[眼]의 갱락이 없어 제각기 눈의 갱락이 없다면, 가령 눈의 갱락을 떠나더라도 눈의 갱락을 인연하여 생기는 낙각(樂覺) 고각(苦覺) 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 있을 수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귀 코 혀 몸도 또한 그러하며, 만일 뜻의 갱락이 없어 제각기 뜻[意]의 갱락이 없다면, 가령 뜻의 갱락을 떠나더라도 뜻의 갱락을 인연하여 생기는 낙각 고각 불고불락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각의 원인, 각의 성취, 각의 근본, 각의 인연은 곧 이 갱락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갱락을 인연하여 곧 각(覺)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갱락에도 연(緣)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갱락에도 연이 있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갱락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명색(名色)을 인연한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명색을 인연하여 갱락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행하는 바와 연하는 바에 명신(名身)이 있나니, 이 행을 떠나고 이 연을 떠나더라도 상대가 있는 갱락[有對更樂]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행하는 바와 연하는 바에 색신(色身)이 있나니, 이 행을 떠나고 이 연을 떠나더라도 증어갱락(增語更樂)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가령 명신(名身)과 색신(色身)을 떠나더라도 마땅히 갱락이 있어 갱락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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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갱락의 원인, 갱락의 성취, 갱락의 근본, 갱락의 인연은 곧 이 명색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명색을 인연하여 곧 갱락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명색에도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명색에도 연이 있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명색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식(識)을 인연한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식이 어머니 태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 몸을 이루는 명색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만일 식이 태에 들어갔다가 곧 나온다면 명색이 정(精)을 만나겠는가?" |
"만나지 못합니다." |
"아난아, 만일 어린 소년과 소녀의 식(識)이 처음부터 끊어지고 부서져서 없다면 명색이 더 자랄 수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명색의 원인, 명색의 성취, 명색의 근본, 명색의 인연은 곧 이 식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식을 인연하여 곧 명색이 있기 때문이니라. |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식에도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식에도 또한 연이 있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식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명색을 인연한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명색을 인연하여 식이 있는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식이 명색을 얻지 못하고, 만일 식이 명색에 서지도[立]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면, 식은 과연 남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괴로움이 있겠는가?" |
"없습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식의 원인, 식의 성취, 식의 근본, 식의 인연은 곧 이 명색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명색을 인연하여 곧 식이 있기 때문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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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아, 이것을 명색을 인연하여 식이 있고, 식을 인연하여 또한 명색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말을 보태고 거듭 말을 보태어 설명하고, 전하고 전하여 설명하며, 주장할 만한 것이 있게 되니, 그것은 곧 '식과 명색은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아난아, 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神)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 하는가?" |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오직 원하옵건대 그것을 해설하여 주십시오.. 저는 지금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는 곧 말씀하셨다. |
"아난아,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리라." |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아난아, 어떤 사람은 각(覺)을 신(神)이라 보고, 어떤 사람은 각을 신이라 보지 않으면서 신(神)은 능히 깨닫고 또 신법(神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본다. 또 어떤 사람은 각(覺)을 신이라 보지 않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 |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거든 마땅히 그에게 '3각(覺) 곧 낙각(樂覺) 고각(苦覺) 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 있는데, 너는 이 3각에서 어느 각을 신이라고 보는가?'라고 물어야 하느니라. 아난아, 마땅히 다시 그에게 말해야 한다. 만일 낙각을 깨닫는다면 그 때 그는 2각 곧 고각 불고불락각이 멸하고 오직 낙각만을 깨닫을 것이다. 낙각은 무상(無常)의 법이요 괴로움[苦]의 법이며 멸하는[滅] 법이니, 만일 낙각이 이미 멸해 버리면, 그는 신이 멸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난아, 만일 다시 1각 곧 고각이 있으면, 그는 그 때에는 2각 곧 낙각 불고불락각이 멸하고 다만 고각만을 깨닫는다. 고각은 무상의 법이요 괴로움의 법이며 멸하는 법이니, 만일 고각이 이미 멸해 버리면 그는 신이 멸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난아, 만일 다시 1각 곧 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 있으면, 그 때 그는 2각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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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각 고각이 멸하고 다만 불고불락각만을 깨닫는다. 불고불락각은 무상의 법이요 괴로움의 법이며 멸하는 법이니, 만일 불고불락각이 이미 멸해 버리면 그는 신이 멸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난아, 그가 이와 같은 무상의 법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떠나고서도 마땅히 다시 각을 신이라고 보겠는가?" |
"아닙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그가 이와 같은 무상의 법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떠나기만 한다면 다시는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지 못할 것이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각을 신이라고 보지 않으면서, 신(神)은 능히 깨닫고 신법(神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네게 만일 각이 없다면 깨달을 수가 없어 응당 이것은 내 소유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아난아, 그가 다시 이렇게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면서도 신은 능히 깨닫고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볼 수 있겠는가?" |
"아닙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그는 이와 같이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면서 신은 능히 깨닫고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지 않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보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네게 만일 각이 없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신이 각을 떠나면 응당 신은 청정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해야 하는니라. 아난아, 그가 다시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볼 수 있겠는가?" |
"아닙니다." |
"아난아, 그러므로 그는 응당 이와 같이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어떤 사람이 신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라 하는가?" |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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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오직 원하옵건대 그것을 말씀하여 주소서. 저는 지금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해 그 뜻을 분별하리라." |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아난아, 어떤 사람은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지 않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또한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도 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보지 않은 뒤에는 곧 이 세간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는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는 곧 피로해하지 않으며, 피로해하지 않은 뒤에는 곧 열반에 든다. 그래서 '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
아난아, 이것이 거듭 거듭 말을 보태어 설명하고, 전하고 전하여 설명하며, 주장할만한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 곧 받아들임[所受]이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이렇게 바르게 해탈하면, 그는 다시 여래는 마침이 있다라고 보거나 여래는 마침이 없다라고 보거나, 여래는 마침이 있으면서 마침이 없다라고 보거나, 여래는 마침이 있는 것도 마침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보는 일이 없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신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것이라 하는가?" |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오직 원하옵건대 그것을 해설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리라." |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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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아난아, 어떤 사람은 소색(少色)을 신(神)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지만 무량색(無量色)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소색(少色)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지만, 소무색(少無色)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으며, 또한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지만, 무량무색(無量無色)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지금 소색을 신이라 하여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요, 만일 소색(少色)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나니,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느니라. |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지만,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지금 무량색을 신이라 하여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요, 만일 무량색(無量色)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나니,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느니라. |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지만, 소무색(少無色)을 신(神)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지금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요, 만일 소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나니,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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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느니라. |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으며, 또한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지만, 무량무색(無量無色)을 신(神)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요, 만일 무량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나니,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느니라. 이것을 어떤 사람은 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고 하느니라. 아난아, 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이 없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그것을 해설해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리라." |
존자 아난이 분부를 받아 경청하였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아난아,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소무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느니라. |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요, 만일 소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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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나니,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요, 만일 무량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나니,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요, 만일 소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나니,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요, 만일 무량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나니,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아난아, 이것을 어떤 사람은 신이 없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다시 아난아, 7식주(識住)와 2처(處)가 있다. 어떤 것을 7식주라 하는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有色衆生]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인간과 욕계천(欲界天)이다. 이것을 제1식주(識住)라 한다.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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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또 아난아,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초선천(初禪天)에 태어나 요절하지 않고 사는 범천(梵天)을 말한다. 이것을 제2식주라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황욱천(晃昱天)이다. 이것을 제3식주라 한다. 또 아난아,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변정천(遍淨天)이다. 이것을 제4식주라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색(色)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여, 약간의 생각도 없어, 무량공처(無量空處)인 이 공처를 성취하여 노니나니, 곧 무량공처천(無量空處天)이다. 이것을 제5식주라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무량공처(無量空處)를 벗어나 무량식처(無量識處)인 이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나니, 곧 무량식처천(無量識處天)이다. 이것을 제6식주라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무량식처를 벗어나 무소유처(無所有處)인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나니, 곧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이다. 이것을 제7식주라 한다. |
아난아, 어떤 것을 2처(處)라 하는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생각[想]도 없고 감각[覺]도 없으니, 무상천(無想天)이다. 이것을 제1처라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나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인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나니, 곧 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想處天)이다. 이것을 제2처라 하느니라. |
아난아, 제1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인간과 욕계천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識住)를 알고, 식주의 성취[習]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
"아난아, 제2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초선천(初禪天)에 태어나 요절하지 않고 오래 사는 범천(梵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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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
"아난아, 제3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황욱천(晃昱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
"아난아, 제4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변정천(遍淨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
"아난아, 제5식주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색(色)이란 생각을 벗어나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여, 약간의 생각도 없으면 무량공처(無量空處)인데 이 공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무량공처천(無量空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
"아난아, 제6식주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무량공처(無量空處)를 벗어나면 무량식처(無量識處)인데, 이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무량식처천(無量識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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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
"아난아, 제7식주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무량식처(無量識處)를 벗어나면 무소유처(無所有處)인데,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
"아난아, 제1처라는 것은 색이 있는 중생으로서 생각[想]도 없고 감각[覺]도 없는 것이니, 곧 무상천(無想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처(處)를 알고, 그 처의 성취를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처를 좋아하고 그 처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
"아난아, 제2처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무소유처(無所有處)를 벗어나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인데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想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곳을 알고, 그 곳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처를 좋아하고 그 처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저 7식주(識住)와 2처(處)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아 해탈을 얻으면, 그를 비구 아라하(阿羅訶)라 하고 혜해탈(慧解脫)이라 부르느니라. |
아난아, 8해탈(解脫)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색(色)을 색(色)으로 관찰하나니, 이것을 제1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안으로 색상(色想)이 없이 밖으로 색을 관찰하나니, 이것을 제2해탈이라 한다. 다시 정해탈(淨解脫)을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나니, 이것을 제3해탈이라 한다. 다시 일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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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색상(色想)을 벗어나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약간의 생각도 없는 무량공처, 이 공처를 성취하여 노니나니, 이것을 제4해탈이라 한다. 다시 일체의 무량공처(無量空處)를 벗어난 무량식처(無量識處),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나니, 이것을 제5해탈이라 한다. 다시 일체의 무량식처를 벗어난 무소유처(無所有處),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나니, 이것을 제6해탈이라 한다. 다시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난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나니, 이것을 제7해탈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는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상(想)과 지(知)가 멸한 해탈(解脫)을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고, 지혜로 모든 누진지(漏盡知)를 관하여 아나니, 이것을 제8해탈이라 하느니라. |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저 7식주와 2처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아 해탈을 증득하고, 또 이 8해탈을 순역(順逆)으로 해서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또한 지혜로 관찰하여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그를 비구 아라하라 하고 구해탈(俱解脫)이라 부르느니라." |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이 대인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5,472자이다.] |
98) 염처경(念處經) 제 2 [제2 소토성송] |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적에 도읍인 검마슬담(檢磨瑟曇)에 머무셨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걱정과 두려움에서 제도하며, 고뇌를 없애고 슬픔을 끊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도(道)가 있으니, 곧 4념처(念處)이니라.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 무소착(無所着) 등정각(等正覺)께서는 다 5개(蓋)1) |
1) 범어로는 pannca varan ni이며, 5장(障)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심성(心性)을 장애하여 선법(善法)을 낼 수 없게 하는 5법(法)을 말함. 첫째 탐욕개(貪欲蓋)로서 5욕(欲)에 집착하기 때문에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둘째 진에개(瞋恚蓋)로서 성냄 때문에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셋째 수면개(睡眠蓋)로서 마음이 흐려지고 몸이 둔해짐으로 인하여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넷째 조희개(調戱蓋)로서 마음이 들뜨고 희동함 때문에 심성을 장해하는 것이다. 다섯째 의개(疑蓋)로서 결연한 의지가 미약하여 법에 후퇴함으로써 심성을 장애하는 것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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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覺支)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無上正盡之覺)을 얻으셨다. 또 미래의 모든 여래 무소착 등정각께서도 다 5개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는 지금 현재의 여래 무소착 등정각으로서, 나도 또한 5개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몸[身]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念處)이고, 이와 같이 각(覺)을 각(覺) 그대로 관하며, 마음[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고, 법(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이니라. |
어떤 것을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다니면[行] 다시는 줄을 알고, 머물면[住] 머무는 줄을 알며, 앉으면[坐] 앉은 줄 알고, 누우면[臥] 누운 줄 알며, 자면 자는 줄 알고, 깨면 깬 줄 알며, 자다 깨면 자다 깨는 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內身]을 몸[身]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外身]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明]이 있고 통달함[達]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들고 남[出入]을 바르게 알고, 굽히고 펴거나 낮추고 우러르는 것을 분별하고 잘 관하여 몸가짐과 거동에 질서가 있고, 승가리(僧伽梨)와 옷과 발우를 잘 지니고, 다니고 머물거나 앉고 눕거나 자고 깨거나, 말하고 침묵하는 것을 다 바르게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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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기면 착한 법[善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하나니, 마치 목수나 목수의 제자가 먹줄을 나무에 퉁기고는 곧 날카로운 도끼로 쪼아 곧게 다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착한 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잇몸 천장에 붙인 채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하나니, 마치 두 역사(力士)가 나약한 한 사람을 붙잡고 곳곳으로 끌고 다니며 마음대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잇몸 천장에 붙이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고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들숨[入息]을 생각하되 곧 들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고, 날숨[出息]을 생각하되 곧 날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며, 들숨이 길면 곧 들숨이 긴 줄을 알고, 날숨이 길면 곧 날숨이 긴 줄을 알며, 들숨이 짧으면 곧 들숨이 짧은 줄을 알고, 날숨이 짧으면 곧 날숨이 짧은 줄을 알며, 온몸으로 숨을 들이쉬는 것을 배우고, 온몸으로 숨을 내쉬는 것을 배우며, 몸의 행[身行]을 그치고 숨 들이쉬는 법을 배우고, 입의 행[口行]을 그치고 숨 내쉬는 법을 배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목욕하는 도구를 만드는 어떤 사람이 그릇에 가루비누[澡豆]를 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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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섞어서 덩어리로 만든 것을 물에 가져다 담그면 그 물이 윤택해지는데 두루 충만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산의 샘물이 청정하여 흐리지 않고 충만하게 흘러 넘쳐 사방의 물이 흘러들어갈 길이 없으면, 곧 그 샘 밑바닥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물은 밖으로 흘러 넘쳐 산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되 두루 충만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기쁨[喜]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樂]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기쁨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푸른 연꽃이나 붉고 빨갛고 흰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 물밑에 있으면, 그 뿌리와 줄기와 꽃과 잎은 모두 촉촉하고 윤택하며 두루 충만하게 되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기쁨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기쁨이 없는데서 생겨난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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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이 몸 속에서 청정한 마음으로 뜻을 터득하여 두루 충만하게 성취하여 노닐면, 청정한 마음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마치 어떤 사람이 7주(肘)나 8주 되는 옷을 입으면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그 몸을 감싸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청정한 마음이 온몸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광명상(光明想)을 생각하여 잘 받아 지니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여, 앞에서와 같이 뒤에서도 또한 그러하고 뒤에서와 같이 앞에서도 또한 그러하며, 낮에와 같이 밤에도 또한 그러하고 밤에와 같이 낮에도 또한 그러하며, 아래서와 같이 위에서도 또한 그러하고 위에서와 같이 아래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렇게 뒤바뀌지 않고, 마음에 얽매임 없이 광명심을 닦으면 마음은 끝내 어둠에 덮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觀相]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나니, 마치 어떤 사람이 앉아서 누운 사람을 관찰하고, 누워서 앉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거나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온갖 더러운 것으로 충만해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 털 손톱 이 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 가죽 살 힘줄 뼈 심장 콩팥 간 허파 큰 창자 작은 창자 지라 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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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똥 골 뇌수[腦根] 눈꼽 땀 눈물 가래침 고름 피 기름 골수 침 쓸개 오줌이 있다.' |
마치 그릇에 몇 가지 종자(種子)를 담은 것 같아서 눈이 있는 사람은 다 분명히 보나니, 곧 벼나 조의 종자나 갓 무우 겨자의 종자와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고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더러운 것이 충만해 있다고 관찰한다. |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 털 손톱 이 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 가죽 살 힘줄 뼈 심장 콩팥 간 허파 큰 창자 작은 창자 지라 밥통 똥 골 뇌수 눈꼽 땀 눈물 가래침 고름 피 기름 골수 침 쓸개 오줌이 있다.' |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
'내 몸에는 흙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 허공의 요소[空界] 의식의 요소[識界]가 있다.' |
마치 백정이 소를 잡아 껍질을 벗겨 땅에 펴고 그것을 여섯 동강으로 가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한다. |
'내 몸에는 흙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허공의 요소 의식의 요소가 있다.' |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저 송장이 하루 이틀, 혹은 엿새나 이레가 되어 까마귀나 소리개[鵄]에게 쪼이고 승냥이나 이리에게 먹히며, 불에 타고 땅에 묻혀 다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관찰한 뒤에는 자기에게 견준다. |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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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해골이 푸른빛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반쯤 남은 뼈사슬이 땅에 뒹구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이 가죽과 살과 피가 분리되어 오직 힘줄만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마디가 분리되어 여러 곳에 흩어져 발뼈 장딴지뼈 넓적다리뼈 허리뼈 등뼈 어깨뼈 목뼈 머리뼈들이 제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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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가 마치 소라[螺]처럼 희고 집비둘기처럼 푸르며, 피를 칠한 것처럼 붉고 썩어 문드러지고 부서져 가루가 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면, 이것을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念處)라 하느니라. |
어떤 것을 각(覺)을 각(覺)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을 땐 곧 즐거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고, 괴로운 감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로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닫는 줄 안다. 즐거운 몸[樂身] 괴로운 몸[苦身]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몸[不苦不樂身]과 즐거운 마음[樂心] 괴로운 마음[苦心]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마음[不苦不樂心]과 좋아하는 음식[樂食] 괴로운 음식[苦食] 괴롭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음식[不苦不樂食]과 즐거운 무식[樂無食] 괴로운 무식[苦無食]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식[不苦不樂無食]과 즐거운 욕심 괴로운 욕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욕심과 즐거운 무욕각[樂無欲覺] 괴로운 무욕각[苦無欲覺]도 또한 그러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닫는 줄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각[內覺]을 각 그대로 관하고, 바깥 각[外覺]을 각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각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각을 각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각을 각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각을 각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
어떤 것을 마음[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욕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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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면 욕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성냄[恚]이 있고 성냄이 없는 것과 어리석음[癡]이 있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과 더러움[穢]이 있고 더러움이 없는 것과 모임이 있고 흩어짐이 있는 것과 낮춤이 있고 높임이 있는 것과 작음이 있고 큼이 있는 것과 닦고[修] 닦지 않음과 정[定]하고 정하지 않은 것도 또한 그러하며,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 있으면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해탈한 마음이 있으면 해탈한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마음[內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고, 바깥 마음[外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마음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
어떤 것을 법(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눈은 색을 연(緣)하여 안의 번뇌[內結]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結]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약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도 또한 그러하며, 뜻은 법을 연하여 안의 번뇌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안의 6처(處)이니라. |
또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은, 비구는 안에 진실로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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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만일 이미 생긴 욕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성냄[瞋恚] 수면[睡眠] 들뜸[掉悔]도 또한 그러하며, 안에 진실로 의심이 있으면 의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의심이 없으면 의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의심이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의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5개(蓋) 이니라. |
또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은, 비구는 안에 진실로 염각지(念覺支)가 있으면 염각지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염각지가 없으면 염각지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염각지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염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또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택법(擇法) 정진(精進) 기쁨[喜] 쉼[息] 정(定)도 또한 그러하며, 비구는 안에 진실로 사각지(捨覺支)가 있으면 사각지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사각지가 없으면 사각지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사각지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사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7각지(覺支)이니라.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법을 법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7년 동안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念處)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법(現法)에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餘]이 있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얻을 것이다. 7년 6년 5년 4년 3년 2년 1년은 그만두고,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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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7개월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재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7개월 6개월 5개월 4개월 3개월 2개월 1개월은 그만두고, 어떤 비구 비구니가 이레 낮 이레 밤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법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이레 낮 이레 밤이나 6 5 4 3 2일은 그만두고 하루 낮 하룻밤도 그만두고,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잠깐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물러, 아침에 이렇게 행하면 저녁에는 반드시 승진(昇進)하게 될 것이요, 저녁에 이렇게 행하면 아침에는 반드시 승진하게 될 것이니라." |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이 염처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137자이다. 『중아함경 』 제24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8,609자이다.] |
출처 : 通達無我法者
글쓴이 : 통달무아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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