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 236. ★ 중생은 왜 이 몸을 즐겁다라고 여기는가?

수선님 2019. 2. 17. 12:25

[문] 몸은 괴로운 성품일 뿐 아니라 몸으로 인하여 즐거움도 있다.

만약에 몸이 뜻을 따르지 못하게 한다면 5욕을 누가 누리겠는가?

 

[답] 4성제(聖諦)의 괴로움을 성인은 실로 괴로운 것인 줄 알지만, 우매한 범부는 즐겁다 한다.

성인은 실로 의지할 만하거니와 어리석은 이는 미혹하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

 

이 몸은 실로 괴롭거늘

큰 괴로움이 그쳤으므로 작은 괴로움을 즐겁다 여긴다.

 

예컨대 죽임을 당하게 된 사람이 형벌로 목숨을 대신하게 되면 몹시 기뻐하는 것과 같다.

형벌이 실로 괴롭거늘 죽음을 대신하였기 때문에 즐겁다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괴로움은 즐겁고 묵은 괴로움은 고통스럽나니,

마치 처음 앉았을 때엔 즐겁다가 오래 되면 곧 괴로움이 일어나고,

처음으로 다니거나 앉거나 누었을 때는 즐겁다가 오래되면 역시 괴로운 것과 같다.

 

구부리고 펴고 숙이고 우러르고 바로 보고 곁눈으로 보고 헐떡이고 숨을 쉴 때에도

괴로움은 항상 몸을 따르니,

처음 태에 들어 출생할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즐거울 때가 없다.

 

 

 

만일 그대가 음욕을 느낌으로써 즐겁다 한다면 음욕의 법이 중해진 까닭에 밖의 여색을 구하니,

얻어지는 것이 많을수록 병은 더욱 중해질 것이다.

 

마치 소양병을 근심해 불을 쏘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불에 쪼여서 긁으면 당시에는 조금 즐거운 듯하나 이내 큰 아픔이 더욱 깊어지는 것과 같다.

 

이처럼 작은 쾌락도 역시 병의 인연으로 있는 것이지, 실제로 즐거운 것이 아니다.

 

병 없는 사람이 그를 본다면 가엾다는 생각을 내듯이

음욕을 여읜 사람이 음욕에 빠진 이를 관찰하는 것 역시 이와 같아서

이 어리석은 자가 음욕의 불에 타서 많은 고통 받음을 가엾이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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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갖가지 인연으로 몸의 괴로운 모습과 괴로움의 원인을 안다.

 

 

 

수행자는 오직 몸은 부정하고 무상하고 괴로운 물건인 줄을 알지만,

부득이 하여 그것을 양육하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부모가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포악하더라도 자기가 낳았기 때문에 반드시 잘 양육해 길러주는 것과 같다.

 

몸은 진실로 나가 없나니, 왜냐하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중풍 병에 걸린 사람은 구부리거나 쳐들거나 가거나 오지 못하며,

목병을 앓는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몸은 자유롭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대로 가져다가 써야 하는데 몸은 그렇지 못하다.

자재롭지 못한 까닭에 나 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수행자는 이 몸이 이렇게 부정하고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 없다고 사유한다.

이러한 한량없는 허물이 있으니, 이러한 갖가지 방법으로 몸을 관찰하는 것을 신념처라 한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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