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스크랩] 知見不生分 第三十一

수선님 2019. 2. 17. 12:33

 

31

"須菩提若人言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須菩提於意云何是人解我所說義不"

"世尊是人不解如來所說義何以故世尊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於一切法應如是知如是見如是信解不生法相須菩提所言法相者如來說卽非法相是名法相"

 

 

知見不生分 第三十一
須菩提야 若人이 言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하면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是人이 解我所說義不아 (不也니이다) 世尊하 是人이 不解如來所說義니
何以故오 世尊이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니이다 須菩提야 發阿?多羅三?三菩提心者는 於一切法에 應如是知하며 如是見하며 如是信解하야 不生法相이니
須菩提야 所言法相者는 如來가 說卽非法相일새 是名法相이니라

 

 

 

 

 

금강경 강의(31)/해안 스님


경문.知見不生分(지견불생분)第三十一

 

須菩提  若人言 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提  於意云何  是人解我所說義不

世尊 是人 不解如來所說義

何以故 世尊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提 야 若人 이 言 하되 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하면
수보리 야 약인 이 언 하되 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須菩提 야 於意云何 오 是人 이 解我所說義不 아
수보리 야 어의운하 오 시인 이 해아소설의부

不也 니이다 世尊 하 是人 은 不解如來所說義 니
불야 니이다 세존 하 시인 은 불해여래소설의

何以故 오 世尊 이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이오
하이고 오 세존 이 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이요 是名我見人見衆生
즉비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이요 시명아견인견중생

見壽者見 이니이다
견수자견 

주석.

수보리야 만약 사람이 말하되,
부처가 나라는 지견과 남 이라는 지견과 중생이라는 지견과,
수자의 지견을 말 하였다 하면, 수보리야, 뜻에 어떠하냐,
이 사람이 나의 말한바 뜻을 안다 하겠느냐,
아니라 하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사람이 여래의 설한바 뜻을 알지못한 것입니다.
어찌한 연고이냐 하면, 세존께서 설하신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아니요 이 이름이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인 것입니다. 



 해설.

상은 밖에 나타나는 것을 말하고,

지견은 손에서 헤아리는것을 뜻한 것이나,

안에 있으면 밖에 나타나고, 밖에 나타나면 안에 숨어있을 것이니,

상이 없으면 견(見)도 없는 것이요,견이 없으면 상도 없는 것이다.
저 위에서 말씀 하신 아상도, 곧 상이 아니요,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상이 아니라는 말씀이나,
말은 달라도 뜻은 한가지 이니,
구태어 문자해석에 구구할것은 없는 것이다. 



 경문.

 

須菩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一切法 應如是知 如是見 如是信解

不生法相  須菩提 所言法相者  如來說卽非法相 是名法相



須菩提 야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者 는
수보리 야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於一切法 에 應如是知 하며 如是見하며
어일체법 에 응여시지 하며 여시견

如是信解 하여 不生法相 이니須菩提 야
여시신해 하여 불생법상 이니수보리

所言法相者는 如來說卽非法相 이  是名法相 이니라
소언법상자는 여래설즉비법상 이요시명법상 

 

 

 

信解 ①신앙()과 이해() ②불법()을 믿어서 진리()를 터득()하는 일

法相 제법 곧 천지(天地) 만물(萬物)의 모양(模樣). 법상종(法相宗)

 

법상(法相) :
원어는 다르마-삼즈나(dharma-sa jn )이다. 모든 법의 모양을 말하고, 만유(萬有)의 그 모양 자태를 법상(法相)이라 하는데, 만유(萬有)는 그 본바탕은 한 가지이나 그 외부에 나타난 모양은 각각 다르다고 하는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법(dharma)은 이법(理法) · 경전(經典) · 설법(說法)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으나 특히 이법을 의미하는 때가 많다. 여기에서는 '실세가 없는 물건'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일체법(一切法)


일체법(一切法) :
"세존이시여, 무엇이 일체 법이며,
어떻게 일체법 가운데 걸림이 없는 모습으로 마땅히 배우며 아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일체의 모든 법이란 선법(善法) · 불선법(不善法) · 기법(記法) · 무기법(無記法) · 세간법(世間法) · 출세간법(出世間法) · 유루법(有漏法) · 무루법(無漏法) · 유위법(有爲法) · 무위법(無爲法) · 공법(共法) · 불공법(不共法)이다.
수보리야, 이것을 일체 모든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일체 모든 법에 걸림이 없는 모습 가운데서 배우고 알아야 하느니라."<바라밀경 구의품 제12>



 주석.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자는,
일체법에 응당 이와같이 알며, 이와같이 보며,
이와같이 믿어알아,법상을 내지 말지니라.
수보리야, 말한바 법상이란 것은,
여래의 말로는 곧 법상이 아니라.이 이름이 법상 이니라. 

해설.

사람이 항시 자기를 미(迷)하고 ,물건만 쫓아 다니면,
경계를 당할때 마다, 마음이 항시 시끄럽고,
천파만랑(千波萬浪)의 파도(波濤)중에서도,
자기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마음이 항시 고요하여,
편안한 것이다. 그러므로
잘 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일체경계에 부딪칠때 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이렇게 믿어 마음을 동하지 말지니라,
마음을 동하지 말라는 말도,중생들의 말로는 벌써 동한 것이 된다.

이것으로써 하권 첫머리에서 수보리가 물은바
(잘살려는마음을 내었다면 어떻게 응당 머므르며,
어떻게 그마음을 항복받으오리까)를 매잘라 말씀 하신 것이다.

 

 

 

 

제 31 : 지견불생분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이 아견(我見)·인견(人見)·중생견(衆生見)·수자견(壽者見)을 말씀하셨다.」
한다면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내가 설한 뜻을 이해한다고 하겠는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하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오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은 곧
'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아니라 단지 그 이름을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라 부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킨 이는 온갖 법에 대하여 응당
이렇게 알며 이렇게 보며 이렇게 믿고 해석하여 알아
법상(法相)을 내지 말 것이다.
수보리야, 이른 바 법상이라 하는 것은 여래가 말씀하시기를
진정한 법상이 아니라 설하노니
다만 이름을 법의 상(法相)이라 부르는 것이니라.』

 

 

법상을 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不生法相) :
법상(法相)이라는 것은 우주 만유의 본체보다도 현상을 세밀하게 분류,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불생법상(不生法相)이라는 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사람은
일체법(一切法)에 있어서, 마땅히 세존이 설하는 '아견 · 인견 · 중생견 · 수자견'의 가르침을 크게 파악하여 이를 바르게 알며, 믿고 이해하고, 법상에 대한 그릇된 고집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즉 '아견 · 인견을 버려야 하며, 중생상에서 벗어나야 하며, 수자상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의 네개를 아인사상(我人四相) 또는 사상(四相)이라 하는데, 이것은 중생들이 범하기 쉬운 집착상을 경계하는 말이다.
아상(我相)은 '나'라는 相에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데 오온(五蘊)이 가합하여 이루어진 가변의 존재인 자기 자신을 마치 무슨 실재가 있고 또 "내가 있다"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견해이다.
인상(人相)은 아상처럼 집착하는 모습의 하나인데, '남'을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행동과 생각을 말한다.
중생상(衆生相)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등 현실주의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을 규정하는 말이며,
수자상(壽者相)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길든 짧든간에, 그 일정한 수명을 하늘에서 받아 그 수명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의 집착을 말한다.

 

 

 

 

 

 

 

 

【언해본】

“須菩提야! 만약 (어떤) 사람이 이르되 ??부처님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말씀하신다.??고 하니,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냐?
이 사람은 내가 이른 뜻을 아느냐, 모르냐?”
“아닙니다(모르는 것입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께서 이르신 뜻을 알지 못하니,
어째서인가? 世尊께서 이르신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라, (다만) 이

이름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신 것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일으킨 이는 一切法에 (대하여) 마땅히 이같이 알며, 이같이 보며,

이같이 믿고 깨달아서 法相을 생겨나게 하지 아니(않아야) 할 것이니,
須菩提야! 이른바 法相은 如來가 말씀한 것이 곧 法相이 아니라, (다만) 이 이름이 法相(法相)인 것이다.”

 

 


【범어본】

須菩提여, 實로 누군가가 如來는 我見 說하고, 衆生見·壽者見·人見을 說한다고 했다고 하자.
須菩提여, 그는 올바른 말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須菩提는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善逝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올바르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如來가 說하신 그 我見은 見이 아니다라고 如來가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我見이라고 말해지는 것입니다.
스승은 말했다.
須菩提여, 實로 菩薩乘에 나아간 자는 一切法을 알지 않으면 안 되고, 보지 않으면 안 되고, 信解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그는 法相에조차도 머무르지 않도록 알지 않으면 안 되고, 보지 않으면 안 되고, 信解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法相, 法相이라는 것은 須菩提여, 法相이 아니다라고 如來가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法相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몽고본】

수부티여, 이와 같이 如來는 我見을 說하고, 有情見·壽命見·人見을 說하신다라고 말하면 수부티여, 그는 바른 말을 한 것인가?
수부티가 말했다.
世尊이시여,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善逝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世尊이시여, 如來께서 我見이라 說하신 것은 我見이 아니라고 如來는 說하신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我見이라고 말해지는 것입니다.
世尊께서 말했다.
수부티여, 이 菩薩乘에 바르게 들어가서 이와 같이 一切法을 알 것이며, 볼 것이며, 믿고 理解해야 할 것이다. 그 어떠한 法想에도 머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부티여, 法想, 法想이라 말해지는 것은 法想이 아니라고 如來는 說하신 까닭이다.

그러므로 法想이라 말해지는 것이다.

 


【티베트본】

“쑤부띠여, 어떤 사람이 이처럼 ‘如來께서는 自我에의 見解를 말씀하시고, 뭇 삶에의 견해를 말씀하시고

개인에의 견해를 말씀하신다’고 말한다면, 쑤부띠여, 그는 또한 올바로 말하는 것인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世尊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善逝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世尊이시여, 如來께서 自我에의 見解를 설하신 것은 見解가 아니라고 如來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自我에의 見解라고 하는 것입니다.
世尊께서 말씀하셨다. “쑤부띠여, 여기 菩薩乘에 入門한 자는 모든 법을 알고 보고 信解해야 한다. 무엇보다 法에의 알음얼에 머물지 않고 알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법에의 알음얼, 법에의 알음얼’이라고 하는 것은 법에의 알음얼이 아니라고 如來께서 말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에의 알음얼, 법에서 알음얼’이라고 한다.

 


【용성】

須菩提야 만일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께서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말씀함이라 하면 須菩提야 뜻에 어떻다 하느냐.
이 사람이 나의 말한 뜻을 아느냐 마느냐? 없습니다 世尊님이시여! 이 사람이 如來의 말씀하신 바 뜻을 알지 못함이니 어찌한 緣故인가 하면 世尊님이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을 말씀하심은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라 이 이름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니라.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發한 자는 저 一切法에 應當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어 法相을 내지 아니할지니라. 須菩提야 말한바 法相이란자는 如來의 말씀이 곧 法相이 아니라 이 이름이

法相이니라.

 


【운허】

“須菩提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부처님이 내라는 所見?사람이라는 所見?衆生이라는 所見?오래 산다는

所見을 말씀하였다면,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이 사람은 내가 말하는 뜻을 아는 것이냐?”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 까닭을 말하오면 世尊께서 말씀하시는 내란 所見·사람이란 所見·衆生이라는 所見·오래 산다는 所見은 내란 所見·사람이란 所見·衆生이라는 所見·오래 산다는 所見이 아닐 새 내란 所見·사람이란 所見·衆生이라는 所見·오래 산다는 所見이라 이름하나이다.”
“須菩提야, 아누다라삼먁삼菩提 마음을 낸 이는 온갖 法에 마땅히 이렇게 알며 이렇게 믿어 解釋하고 法이란 固執을 내지 아니하느니라.
須菩提야, 法의 模樣다리라고 하는 것은 如來가 말하기를 法의 模樣다리가 아닐 새 法의 模樣다리라

이름하느니라.

 


【신소천】

須菩提야! 만약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말했다 하면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이 사람이 나의 말한 바 뜻을 아는 사람이겠느냐?
아니올시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의 말씀하신 바 뜻을 알지 못함이올시다. 왜 그러하옵니까?

世尊께서 말씀하신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곧 我見· 人見· 衆生見·壽者見이 아니옵고 이 이름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發한 자는 一切法에 應當히 이러히 알며 이러히 보며 이러히 믿고 알아

法의 상을 내지 말 것이다.
須菩提야! 말한 바 法相이란 것도 如來가 곧 法相이 아니요 이 이름이 法相이라 말함이다.

 


【권상로】

須菩提야 만일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이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을 說하셨다하면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뇨

이 사람이 나의 說한바 뜻을 아느냐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이 如來의 說하신 바 뜻을 알지 못하나이다 어쩐 緣故냐 하면 世尊이 말씀하신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은 곧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이 아닐 새 이를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이라 이름 함이니다 須菩提야 아녹다라 삼막 삼菩提心을 發한 자는 저 일체 法에 마땅히 이렇게 알며 이렇게 모며 이렇게 믿고 알아서 法相을 내지 아니할지니라 須菩提야 法相이란 것은 如來가 說하시되 곧 法相이 아닐 새 이를 이름하여 法相이라 함이니라

 


【명봉】

須菩提야! 만약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께서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說했다고 하면 뜻에 어떠한고,

이 사람이 내가 說한 바 뜻을 아는가?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이 如來의 說하는 바 뜻을 알지 못함이리다. 어쩜인고 世尊께서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說하심은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님을 이 이름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할 새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發한 자는 一切法에 應當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어 알아서, 法의 相을 生하지 않느니라.
須菩提야! 法의 相이라 말한 밧자는 如來께서 곧 法의 相 아님을 이 이름 法의 相이라 說하시나니라.

 


【기산】

須菩提야!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님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있다고 말한다고 하면,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이 사람이 내가 說한 바의 뜻을 解得함이 되느냐 안 되느냐?
안됩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께서 說하신 바의 뜻을 解得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世尊께서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므로 이것을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이름한 것이라고 說하시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發한 자는 저 一切法에 마땅히 이같이 알고 이같이 信解하되 法相을 내지

말지니라.
須菩提야! 말한 바 法相이란 것은 如來가 곧 法相이 아니므로 이것을 法相이라 이름한다고 說한 것이다.

 


【해안】

須菩提야! 만약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말했다 하면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냐? 이 사람이 나의 말한 바 뜻을 안다 하겠느냐, 아니라 하겠느냐?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이 如來의 說한바 뜻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어찌한 緣故이냐 하면 世尊께서

說하신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곧 我見· 人見· 衆生見·壽者見이 아니요 이 이름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인 것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發한 자는 一切法에 應當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어

알아 法相을 내지 말지니라.
須菩提야! 말한 바 法相이란 것은 如來의 말로는 곧 法相이 아니라 이 이름이 法相이니라.

 


【청담】

“須菩提야!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이 나라는 所見?남이라는 所見?衆生 살이라는 所見?오래 산다는 所見을 말했다??고 하면,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이 사람이 내가 말한 뜻을 안다고 하겠느냐.”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한 것이옵니다. 왜 그러냐 하오면

世尊께서 말씀하신 나라는 所見?남이라는 所見?衆生 살이라는 所見?오래 산다는 所見은 곧 그것이 나라는

所見?남이라는 所見?衆生이라는 所見?오래 산다는 所見이 아니오니, 이런 것을 나라는 所見?남이라는 所見?衆生 살이라는 所見?오래 산다는 所見이라고 하시었기 때문이옵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의 마음을 일으킨 이는 一切의 法에 대하여 마땅히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 이렇게 믿고 깨달아서 法이란 生覺을 내지 말 것이니라.
須菩提야! 法相이라 하는 것은 곧 法相이 아니니 이런 것을 如來가 法相이라 말하느니라.”

 


【탄허】

須菩提야! 만일 사람이 말하되 불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說한다 하면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이 사람이 나의 說한바 의를 아느냐 모르느냐
모릅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이 如來의 說하신 바 의를 알지 못하나니 어찌 쓴 緣故뇨. 世尊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說함은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닐 새 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名함이니이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發한 이는 一切法에 應當 이같이 알며 이같이 보며 이같이 信解하여 法相을 내지 말지니
須菩提야! 말한바 法相이란 것은 如來가 說하되 곧 法相이 아닐 새 이 法相이라 명함이니라.

 


【광덕】

“須菩提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如來가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말하였다.’하면,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이 사람이 내가 말한 바 뜻을 아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의 說하신 바 뜻을 알지 못함이옵니다. 어찌한 까닭인가 하오면 世尊께서 말씀하신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고 그 이름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옵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發한 자는 一切 法에 應當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고 理解하여, 法相을 내지 말지니라.
須菩提야! 말한 바 法相이란 것도 如來가 곧 法相이 아니요 그 이름이 法相임을 말하느니라.

 


【월운】

“須菩提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부처님이 我見?人見?衆生見? 壽者見을 말씀하셨다??고 한다면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이 사람은 내가 말하는 뜻을 안다 하겠느냐???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世尊께서 말씀하신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므로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의 마음을 낸 이는 온갖 法에 마땅히 이렇게 알며 이렇게 보며 이렇게 믿고 解釋하여 法相을 내지 않느니라.
須菩提야, 法相이라 하는 것은 如來가 말하기를 法相이 아니므로 法相이라 하느니라.”

 


【무비】

“須菩提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말하였다??한다면 어떻게 生覺하느냐. 이 사람은 나의 말한 바 뜻을 理解하느냐.??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그 사람은 如來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世尊께서 말씀하신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고 그 이름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를 發한 사람은 모든 法에 應當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어서 法이란 상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須菩提야! 말한 바 法相이란 如來가 說히되 곧 法相이 아니고 그 이름이 法相이니라.”

 


【석진오】

須菩提여,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님은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말씀하셨다”라고 말한다면,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이 사람은 내가 說한 뜻을 理解하는가, 하지 못하는가?
世尊이시여, 그러한 사람은 如來께서 말씀하신 뜻을 理解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世尊은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즉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여, 阿?多羅三?三菩提의 마음을 낸 자는, 一切法에 있어서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信解하여, 法相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法相이란, 如來가 法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것을 法相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홍정식】

須菩提야, 만일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말했다 고 하면, 須菩提야, 네 生覺에는 어떠하냐, 이 사람이 내가 말한 뜻을 안다고 하겠느냐?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가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째서냐 하오면 世尊께서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그것이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다 라고 說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고 이름됩니다.
須菩提야, 아누다라삼먁삼菩提의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一切法에 대해서 應當 이같이 알고, 이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고 알아, 法相을 내지 않는다. 須菩提야, 이른바 法相을 내지 않는다. 須菩提야, 이른바 法相이란 것을 如來가 法相이 아니다 라고 說하였다. 이것이 法相이라고 이름되는 것이다.

 


【김기추】

“須菩提야! 만약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이 我의 知見, 人의 知見, 衆生의 知見, 壽者의 知見을 말하였다면,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겠느냐. 이 사람이 내가 말한 바 義趣를 앎이겠느냐???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의 말씀하신 바 義趣를 알지 못함이오니, 무슨 까닭으로써 이겠습니까? 世尊께서 말씀하신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옵고, 이 이름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낸 자는 온갖 法에 應當 이러히 알지며 이러히 볼 지며 이러히 믿어서 法의 모습을 내지 말지니. 須菩提야! 말한 바 法의 모습이란 如來가 말한 곧 法의 모습이 아니요, 이 이름이 法의

모습이니라.??

 


【이기영】

“須菩提여, 만약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말씀하셨다’라고 한다면, 須菩提여, 네 生覺이 어떠하냐? 이 사람은 나의 말한 바 뜻을 안다고 하겠느냐?”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그 사람은 如來가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하나이다. 왜냐하면 世尊께서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고, 그 이름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고 하는 것이나이다.”
“須菩提여, 阿?多羅三?三菩提心을 發한 사람은 一切法에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信解하여 法相을 내지 말지니라.
須菩提여, 이른바 法相이란 것을 如來는 法相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니, 이것을 法相이라고 부르는 것이니라.”

 


【송찬우】

“須菩提야, 가령 어떤 사람이 부처님은 四相의 문제를 說法하실 때 부처님의 說法하는 見解엔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 實際로 있다고 여기고 그런 說法을 한다 하자.
須菩提야, 너의 意圖론 어떻게 여기느냐. 이 사람은 내가 四相을 說法한 眞實한 意圖를 올바르게 理解했다고 여겨지느냐.”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께서 衆生들에게 方便으로 說法하신 四相의 意味를 아직 理解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世尊께서 평소에 늘 말씀하시기를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인 이 같은 四相의 見解는 우리의 眞實한 本性에 있어선 實際로 없다. 그것은 단지 허구적인 名稱으로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의 見解일 뿐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를 成就하리라고 發心한 자라면 一切法 四相에 있어서 이 같이 알고 이 같이 믿고 理解하여 一切法 四相에 있어서 아, 法相의 執着心을 일으키지 않아야만 한다.
須菩提야, 여기에서 말하는 一切의 아, 法相은 實在하는 아, 法相이 아니며, 그것은 단지 名稱이 아, 法相일 뿐이므로 아, 法相이라는 執着心을 일으키지 않아야만 한다.”

 

 


【이제열】

“須菩提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如來가 ‘나라는 知見’과, ‘남이라는 知見’과 ‘衆生이라는 知見’과 ‘오래 산다는 知見’을 말했다고 한다면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그 사람이 내가 말한 眞理를 바로 아는 것이겠느냐?”
“아니옵니다. 世尊이시여. 그 사람은 如來께서 말씀하신 眞理를 알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世尊께서 말씀하신 ‘나라는 知見’과 ‘남이라는 知見’과 ‘衆生이라는 知見’과 ‘오래 산다는 知見’은 곧 ‘나라는 知見’과 ‘남이라는 知見’과 ‘衆生이라는 知見’과 ‘오래 사는 知見’이 아니요, 그 이름이 ‘나라는 知見’, ‘남이라는 知見’, ‘衆生이라는 知見’, ‘오래 산다는 知見’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일으킨 이는 온갖 法을 應當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고 깨달아서 法이라는 生覺을 내지 말 것이니라.
須菩提야, 금방 말한 바 ‘法이라는 生覺’도 如來가 곧 ‘法이라는 生覺’이 아닌 것을 말함이요, 다만 이름이 ‘法이라는 生覺’일 따름이니라.”

 


【문제현】

須菩提야!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님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말하였다고 하면,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이 사람이 내가 말한 뜻을 알았다 하겠느냐?”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그 사람은 如來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世尊께서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한 것은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니, 이름하여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하셨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 마음을 낸 이는 모든 法에 마땅히 이러히 알고, 이러히 보고, 이러히 믿고, 깨달아서 法相이 남이 없느니라.
須菩提야! 法相이라고 말한 것도 如來가 法相도 아닌 이것을 이름하여 法相이라고 할 뿐이니라.

 


【김용옥】

“須菩提야! 누가 부처님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說했다고 말한다면,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뇨? 이 사람이 내가 說한 바의 뜻을 理解했다고 生覺하느냐?”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께서 說하신 바의 뜻을 理解하지 못하였나이다.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世尊께서 말씀하신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오이다. 그래서 비로소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이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의 마음을 낸 사람은 一切의 法에서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깨달을 지니, 마음에 法의 상을 짓지 말라.
須菩提야! 말한 바의 法의 상이라고 하는 것은 如來는 곧 말하였다. 法의 상이 아니라고 그래서 우리는 法의 상이라 이름하는 것뿐이니라.”

 


【조현춘】

須菩提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을 實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須菩提야! 이 사람은 如來의 말을 제대로 理解했느냐?”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이 사람은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理解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을 보되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라는 生覺에 걸리지 않아야, 참으로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을 제대로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의 마음을 낸 사람은 모든 法에 대해 마땅히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고 理解해야 한다. 法相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須菩提야! 如來가 말하는 法相을 보되 法相이라는 生覺에 걸리지 않아야, 참으로 法相을 제대로 본다고 할 수 있다.

 


【백성욱】

須菩提야! 만약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이 말하시기를 내가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설했다고 하면 須菩提야! 뜻의 일은 어떠한고? 이 사람이 나의 설한 바 뜻을 알았느냐 말았느냐?
아닙니다. 世尊님. 이 사람은 如來의 설한 바 뜻을 몰랐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世尊이 설하신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곧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닐 새 이것이 이름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心을 낸 자는 一切法에 뻑뻑이 이와 같이 알 것이며 이와 같이 볼 것이며 이와 같이 믿고 해석해서 법이라는 生覺을 내지 말 것이니라
須菩提야! 말한 바 法相이라는 것은 如來가 설하신 法相이 아닐 새 이것이 이름이 法相이니라.

 


【김운학】

須菩提야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이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을 말했다 하면 須菩提야, 네 生覺에는 어떠하냐?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바 뜻을 알았느냐?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이 사람은 如來가 설한 바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世尊이 설한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은 곧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이 아니요 이 이름이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입니다.
須菩提야, 阿?多羅三?三菩提의 마음을 일으킨 자는 一切法에 대하여 응당 이같이 알며, 이 같이 보며 이같이 믿고 알아서 法相을 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須菩提야, 말한바 法相은 如來가 설한 法相이 아니라 이 이름이 法相인 것이다.

 


【오진탁】

"須菩提여! 부처님이 自己, 사람, 衆生, 存在에 대한 迷惑을 말했다고 어떤 사람이 전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그는 내가 말한 뜻을 제대로 理解하고 있는가?"
"아닙니다, 世尊이시여! 그는 如來의 말씀을 제대로 理解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自己, 사람, 衆生, 存在에 대한 分別은 곧 自己, 사람, 衆生, 存在에 대한 分別이 아니므로 이를 自己, 사람, 衆生, 存在에 대한 分別이라 이름한다고 世尊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여! 最上의 올바른 깨달음에 契合하는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해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理解하여 조금도 分別하지 않는다.
須菩提여! 이른바 眞理란 곧 眞理가 아니므로 이를 眞理라 일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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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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