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어떤 건가요***
...법륜 스님...
관념서 벗어나 세상을 보면
있는 그대로 사물이 보이듯
고정관념·자기기준 벗어나
살아가는게 깨달음 얻는 길
가톨릭 신자인데 얼마 전부터 불교 공부를 시작
했습니다. ‘깨달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들이 세 살 때 병원에서
성장한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못할 거라고 말했
지만 다행히 치료가 잘 돼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 나고 마음 아팠
는데 지금은 그냥 지나간 일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것도 깨달음이라 볼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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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과거
일이 잊힌 것이지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관점입니다. 아이가 여전히 환자
임에도 ‘아, 이 아이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
이다’라고 생각이 바뀌면 병을 낫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급하기보다 오히려 이런 아이를 보살필
수 있다는 것을 은혜로운 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면 똑같은 일이 괴로움이 아니라
행복의 선물로 느껴집니다. 바로 이런 것을 깨달았
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그 어려움이 오히려 큰 복임을 느낀다거나, 아기를
못 낳아서 울고불고 하던 사람이 아이 없음이 오히려
하느님 은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건 깨달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무지가 걷힘으로써 불행인 줄
알았던 그 일이 행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천재지변으로 아비규환에 빠진 지역을 방문한다고
합시다. 만약 개인적인 일로 가는 사람은 혹시라도
변을 당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하기 마련이지만 남을
돕기 위해서 가는 사람은 대개 크게 걱정하지 않고
길을 나섭니다.
사람은 이기적일 때 더 괴로움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것이 행복이고 남을 위한 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마음 작용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 가운데 ‘누가 네게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같이 가주어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자니까 하는 수 없이 억지로 끌려간
다면 나는 그에게 종속된 존재에 불과하지만 십리를
가주겠다는 마음을 내버리면 그 순간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종에서 주인으로 일대전환
이고 진정한 의미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깨달음 내용입니다. 개신교회 얼마나
다녔는지 천주교회에 다녔는지 절에 다녔는지 하는
게 심판 기준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심판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에 관계없이
매우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진리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구절은 깨달으면 자유로
워지고 행복해진다는 말이고, 진리에 눈을 뜨는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런 진리를 조금이라도 깨달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고민이 없어집니다. 사람도 사물도 세상도 정말로
집중해서 관찰하다 보면 어떤 상태에서 아무 성질
없이 텅 빈 본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돼지는 욕심으로 보이고 뱀은 독한 놈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뱀은 뱀이고 돼지는 돼지일 뿐입
니다. 안개 걷히듯 관념이 걷히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러니 내 눈으로 세상 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내 발로 서고 내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내 발로 서지도 못하고 내 눈
으로 보지도 못한 채 그냥 세상 흐름을 따라 굴러
다니는 존재입니다. 마치 홍수가 났을 때 쓰레기가
강물에 휩쓸려가듯 그냥 정신없이 달려가기만 할 뿐
무엇 때문에 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세상에
휩쓸린다는 것은 자기 카르마의 흐름에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혼돈에서 깨어나려면 정진을 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의 흐름, 자기 카르마
물결에 휩쓸리지 말고 나 스스로 내 인생을 행복
하게 가꿔야 합니다.
고정관념과 자기 기준을 내려놓고, 나만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나를 바꾸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좋아집니다. 삶에 다양한 길이 있는데 자기를
옥죄고 괴롭히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전환,
그런 변화가 바로 깨달음의 길입니다.
-법보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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