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종사제(四種四諦)란?
사종사제(四種四諦)라,
그러니까 우리가 불교가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냥 단조(單調)하지 않고 자꾸만
여러 가지 중생(衆生) 근기(根機)가 많아 놓으니까
그때그때 근기 따라서 하도 오묘하니까 인제
부처님께서 중생 근기 따라서 낮은 법문
어려운 법문 섞여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갈래를 좀 알기 위해서 이런
같은 사제법문도 그런 가르침의 깊고 옅은 정도 따라서
4가지로 구분해서 말씀했단 말입니다.
‘사제법(四諦法)’은 처음에는 성문승,
우리 근기로 해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이렇게 안 되겠습니까.
‘성문승(聲聞乘) 등(等) 소승천근(小乘淺近)의’
얕을 천(淺)자, 가까울 근(近)자, 소승의 옅은 그런
‘기류(機類)에 대(對)한 법문(法門)이나,’
중생에 대한 법문이나, ‘기(其) 리(理)는
대소승(大小乘) 일체불법(一切佛法)에 통(通)한다.’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사제법문은
어느 불법에나 안 통한 곳이 없습니다.
사제법문이 뜻이 안 들어가면
사실은 불법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열반경(涅槃經) 성행품(聖行品)의 소설(所說)에 의(依)하여’
불교 철학의 체계를 가장 잘 세우신 분이
부처님 뒤에 천태스님 아닙니까. 1,300년 전 분입니다.
천태대사는 열반경 성행품 가운데서 ‘소설(所說)에’
설하는 바에 의하여 ‘사종사제(四種四諦)를’
네 가지 차원의 사제를 ‘안립(安立)하고
차(此)를 장(藏)·통(通)·별(別)·원(圓)의 사교(四敎)에 배당(配當)했다.’
안립하고, 즉 규정하고, 규정(規定)이나 또는
하나의 체계를 세워서 하나의 논(論)으로 해서
작정(作定)하는 것을 안립(安立)이라합니다.
안립이란 말은 불교 외에는 잘 안 씁니다.
규정이나 그런 것으로 딱 성립을 시킨단 말입니다.
‘차를 장·통·별·원의 사교에 배당했다.’
감출 장(藏)자, 통할 통(通)자, 나눌 별(別)자, 둥글 원(圓)자,
장통별원(藏通別圓)이라,
여러분들 가운데는 앞으로 강원에 안 갈 분도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감안해서 좀 복잡하지만
상식적인 의미에서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말을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까도 말했지만 심천(深淺) 따라서
깊고 얕음에 따라서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
그와 같이 사교로 구별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은 장교 소승교 말입니다.
아까 말한 [아함경]과 같이 우리 중생경계에서 있다 없다하는
- 중생의 보는 경계에서 있다 없다 하는 -
선(善)도 있고 악(惡)도 있고 시(是)도 있고 비(非)도 있고
그와 같이 선악시비(善惡是非)를 논하는 즉 말하자면
상대유한적(相對有限的)인 중생 차원에 맞추어서
말씀한 가르침 이것이 장교입니다. 삼장교(三藏敎)라고도 합니다.
경(經)과 논(論)과 율(律) 즉 경·율·논,
경장 논장 율장 이렇게 3장이 겸해 있는
일반 중생차원에 맞춘 가르침 이것이 장교란 말입니다.
허나 그 다음에 조금 더 중생 그릇이 익은 다음에는
그런 것은 다 허망하다.
]B>다 허망(虛妄)무상(無常)한 것을 말씀한 가르침이 통교입니다.
따라서 [반야심경(般若心經)]이나 [금강경(金剛經)]이나
그와 같이 공(空) 사상(思想)을
주로 말씀한 가르침은 통교(通敎)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계행(戒行) 지키고 우리가 무어라고
시비(是非)하고 하는 것은 보통은 장교에 해당합니다.
또는 모든 것이 허망무상하다.
이와 같이 공사상을 주로 한 오온(五蘊)이 다 개공(皆空)이라,
일체만법(一切萬法)은 다 비어있다.
나도 비어 있고 아까말한 사제법문도 비어 있고,
그와 같이 말한 일체 아공(我空) 법공(法空)이란 말입니다.
나도 비어 있고 일체법이 다 비어있다. 이와 같은
가르침에 의지해서 가르친 법문이 통교란 말입니다.
이것이 여기 있는 통교란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별교(別敎)라,
장교 통교 이것은 삼계 내에서 비록 아까 말한 통교가
이것이 약간 높다 하더라도 이것도 역시 삼계를 벗어난
법문이 아니라 삼계 내에서 한 법문입니다.
허나 별교 이것은 삼계를 초월해서 말입니다.
삼계를 넘어서 일체만법의 본체를 들어서 하신 법문!
이것이 여기 있는 별교입니다.
그 다음 원교(圓敎)는 일체만법이,
장교나 별교나 통교나 원래 둘이 아니다.
모두를 합해서 원융무애(圓融無礙)하니 말입니다.
아주 원만무결(圓滿無缺)한 법문 이것이 원교입니다.
따라서 아까 말한 바와 같이
부처님 가르침은 이와 같이 장교, 통교, 별교, 원교
4가지 범주로 해서 구분해서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풀이할 적에 역시 어떤 범주에서 하는 것인가?
어떤 규범에서 하는 것인가?
규범 따라서 풀이가 달라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의 소중한 사제법문도
장교에서 보는 견해, 또는 통교에서 보는 견해,
이와 같이 각기 교(敎)에서 보는
견해에 따라서 차이(差異)가 있단 말입니다.
같은 법문이지만은 우리는 기왕이면
원교에서 보는 견해를 우리 것으로 삼아야 한단 말입니다.
이것이 생멸사제라,
또 무생사제라, 무량사제라, 무작사제라,
좀 어려우나 이것은 중요한 것이니까 여기다 인용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나중에 경도 보고 아까말한 바와 같이
판단의 기준을 어디다가 삼아야 할 것인가?
판단의 기준을 정확히 두기 위해서 또는
남이 말한 법문을 정확히 알아먹기 위해서
이것은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어렵지만 이렇게 낸 것이니까
지금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다음 시간에 사제법문을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 계속 -
- 청화스님 법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