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1

나비춤과 바라춤

수선님 2019. 3. 24. 12:29

바라춤과 나비춤 사물춤


범무란?

불교의식무용이란 뜻을 지닌다. 그것은 범패(梵唄)가 불교음악을 뜻한 데서 대칭적으로 범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 연원은 몸의 동작의 표현으로 불덕(佛德)을 찬양한데서 비롯되고 이를 신업공양 (身業供養)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불교의식의 절차상에 이를 삽입하여 불교의식무용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의식무용이 언제부터 행하여져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대체로 이상의 불교의식무용은 범패의 음률에 맞추어 추는 춤이므로 8세기경 범패가 수용되면서부터 있어 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당시의 불교의식무용으로서의 범부가 어떤 형태의 춤이었는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고려시대에는 불교의식이 성행하였고 수많은 범패를 하는 의식승이 있었다고 하고 있으므로 이 당시에도 범무는 성행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에 전하는 범무의 구체적 모습을 담은 자료는 조선의 숙종(1675~1720)

때에 이르면 불교계는 의식집(儀式集)의 정비에 많은 힘을 기울이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식집의 정비는 의식음악으로서의 범패의 중흥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배불정책에 의하여 상류층에 기반을 잃은 불교계는 일반대중에게 기반을 내리기 위해 무엇보다도 신앙의례를 통한 불교의 전교(傳敎)가 절실히 요청된 데 기인한다. 즉 18세기에 간행된 범음집(梵音集)이 그와 같은 것이며, 그 뒤 몇 번이나 증보판이 나오고 이어 19세기의 작법귀감(作法龜鑑), 20세기의 석문의범(釋門儀梵)에 이르기까지 재편된 불교의식 집에서 범무는 불교의식무용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상과 같이 18세기 범음집이 편찬된 이래 오늘에 전하는 의식무용으로서의 범무는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나비춤을 들 수 있다. 이는 작법(作法)이라 하는 것으로 이 춤은 행위동작으로 불법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다른 춤에 비하여 의상도 특수한 내용을 지닌다. 춤의 동작은 완만한 것이 특징이며 두 사람 네 사람 여섯 사람 등이 서로 반반씩 마주보며 춘다. 한편 이 나비춤은 어떤 의식의 절차에 의해 추느냐에 따라 다음과 같은 명칭이 정해진다. 즉 정례작법(頂禮作法), 사방요신작법(四方搖身作法), 향화게작법(香花偈作法), 운심작법(運心作法), 자귀의불작법(自歸依佛作法), 모란작법(牧丹作法), 구원겁중작법(久遠劫中作法), 도량게작법(道場偈作法), 다게작법(茶偈作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춤의 사위는 거의 비슷하고 이 춤의 동작에서 중요한 것은 반신요배(半身搖拜)와 양쪽 발을 정자(丁字)로 하여 도는 데 있다. 이상의 여러 작법은 대체로 그 의식의 내용을 뜻하는 의식문(儀式文)을 범패의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나, 사방요신작법 ․ 정례작법 등과 같이 동작만 나타내는 춤도 있다. 그리고 이 춤에는 특수한 의상과 고깔을 쓰고 춘다는 특질이 지적되어 진다.

둘째 바라춤을 들 수 있다. 나비춤(作法)은 불법을 상징하는 의미의 춤인 반면 바라춤은 불법을 수호한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춤이다. 즉 의식도량(儀式道場)을 정화하여 성스러운 장소가 되게 하는 기능을 지닌 춤이란 것이다. 따라서 이 바라춤은 의식절차상 특히 도량정화와 깊은 관계를 갖고 추어진다.

바라춤도 그 춤사위와 의식절차의 관계상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즉 천수바라춤, 명 바라춤, 사다라니바라춤, 관욕게 바라춤, 내림게 바라춤, 막 바라춤 등이 그것이다. 이 바라춤은 나비춤과 같이 특수한 의상을 필요로 하지 않고 통상 입는 승려의 장삼과 가사를 걸치고 추게 된다. 추는 양식은 두 사람 ․ 네 사람 ․ 여섯 사람 등이 서로 짝을 이루어 마주보고 양손에 바라를 들고 범패(불교음악) ․ 호적 ․ 태징 . 삼현육각 등의 반주에 맞추어 추는 다소 요란한 춤이라 하겠다.

셋째 법고춤(法鼓)을 들 수 있다. 법고는 범종(梵鐘) ․ 목어(木魚) ․ 운판(雲板) 등과 아울러 불교악기의 사물(四物)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들 사물은 불교의식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불교악기이다. 이들 네 악기는 그 소리를 내는 기능에 따라 전설적인 내용이 부여되어 있다. 즉 법고는 네발 가진 짐승을 위하여 치는 것이고, 범종은 지옥중생을 위하여 치는 것이며, 목어는 물속의 중생(衆生)을 위하여 치며, 운판은 하늘을 나는 공중의 중생을 위하여 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물악기의 기능에 전설적 의미를 부여하게 됨은 사물악기를 동시에 칠 때에 모든 우주의 중생은 이들 사물악기의 소리를 듣고 정각(正覺)을 이루게 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독립적으로 불교의식에서 추는 법고춤은 불교의식에 있어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 용악환희라고 하는 뜻을 상징하는 춤이다. 따라서 이 춤은 어느 춤보다도 춤의 사위와 동작이 크고 활기에 넘친다고 할 수 있다. 의상은 바라춤에서와 같은 보통 승려의 의상을 입는다.

넷째 타주춤(打柱)을 들 수 있다. 이 춤은 불교에 있어 수행을 다짐한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춤이다. 즉 불교의 중요한 수행법인 팔정도(八正道)를 각각 팔각의 기둥위에 보이도록 표시하여 오른손에 채를 잡고 이 채로 팔정도의 기둥을 두드리며 주위를 돌며 추는 춤이다. 이 춤은 동작으로 보아서는 춤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춤의 사위가 단조로우나 나비춤과 같은 의상으로 정중한 동작을 나타내는 불교의식무용으로서는 중요시된다. 이상 네 가지로 나누어 살핀 범무가 지니는 의의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불교의 불법을 상징하고 불법의 수호를 기하며 불법의 환희를 나타내고 불법에 이르는 길을 다짐하는 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춤은 전체가 불교의식과 결부되어 불교의식에 근거하여 춘다고 하겠다. 따라서 나비춤 ․ 바라춤 등에 있어 다게작법․ 명바라 등의 구체적 명칭은 당해 불교의식을 지니는 춤이다. 이상의 범무는 한국문화의 기층적인 전통을 수용하면서 그를 바탕으로 한국불교의 의식무용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 의식무용

조선시대에서는 왕조초기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나라에서 시행된 불교의식의 뚜렷한 행사는 찾아 볼 수 없고 다만 민간에서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 등 재(齋)를 각 사찰에서 베푸는 정도에 불과했다. 당시 이들 불전에서 재의식을 거행할 때는 대부분 영산작법(靈山作法)으로서 범패(梵唄)와 범음(梵音)에 의하여 바라무(**羅舞) 법고무(法鼓舞) 착복무(着服舞) 등을 들 수 있다. 이 의식무용은 인도의 묘음(妙音)보살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조자건(曹子建)이라는 법승이 불경을 독송하다가 엄비(掩鼻)의 소리로 범음(梵音)을 지었다 한다. 우리나라는 신라 흥덕왕(興德王)때 진감국사(眞鑑國師)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지리산 옥천사(현 쌍계사(雙溪寺))를 창건하고 열반할 때까지 범패를 구전으로 교수(敎授)하여 조선기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범패는 성음(聲音)으로 불전에 공양드리는 것이며 작법(作法)은 동작으로서 불전에 공양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세속에서는 무용을 불가에서는 작법이라 한다. ○ 바라무(**羅舞, 바라춤) : 이 춤에는 천수(千手)바라춤과 명(鳴)바라춤 사다라니(四茶羅尼)바라춤 관욕게(灌浴偈)바라춤이 있었는데 모두 악귀를 물리치고 도장(道場, 도량)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정화하는데 뜻을 두고 있으므로 반드시 비구승(比丘僧)만이 추는 춤이었다. ○ 법고무(法鼓舞) : 법고는 대종(大鐘) 운판(雲板) 목어(木魚) 등과 같이 불교 사법악기(四法樂器) 중 하나다. 이중 대종은 지옥중생을 위하여, 목어(木魚)는 수중중생(水中衆生)을 위하여, 운판은 허공중생(虛空衆生)을 위하여, 그리고 법고는 축생(畜生)의 구제를 위해서 치는 것이다. 법고춤은 법고를 치는 동작 그 자체가 무용이다. ○ 착복무(着服舞) : 나비 모양의 의상을 입고 범패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가끔 삼현육각(三絃六角)에 맞추어 추는 대목도 있었다 한다. 이 춤은 정중하고 조용한 동작으로 사미니(沙彌尼)가 추는 것이 특징이다. 이 춤의 내용은 도장게작법(道場偈作法), 정례작법(頂禮作法), 향화게작법(香花偈作法), 사방요신(四方搖身), 운심게작법(運心偈作法), 기경작법(起輕作法) 등으로 춤의 형태는 같으며, 다게작법(茶偈作法), 지옥고작법(地獄苦作法), 자귀의불작법(自歸依佛作法), 삼귀의작법(三歸依作法), 목단찬작법(牧丹讚作法), 구원각중작법(久遠却中作法), 오공양작법(五供養作法), 만다라작법(慢茶羅作法, 타주(打柱))등이 있었다. 춤사위에 대한 구체적인 것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승무(僧舞) : 이 춤은 조선 중기 이 후에 운수승(雲水僧)이 탁발(託鉢)수단으로 전락하여 민속무용으로 변모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비단 승무만이 속화(俗化)되었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의아하다. 또한 그 내용 자체도 파계승의 번뇌와 고민을 그린 내용으로 볼 수 있어 순수한 불교 의식무용으로서는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이상의 바라 ․ 법고 착복무(着服舞) 등은 조선왕조 말기까지 각 사찰에서 민간을 상대로 전승되어 왔으나 기록된 문헌을 발견치 못해 그 원형을 상고하기 어렵다.

즉, 불교의 재(齋)의식과 문묘(현 성균관)와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 추는 춤을 말한다. 불교 의식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재계이다. 이 때에는 주로 음악과 무용을 병행하였다. 이와 같은 불교 의식에서 사용되는 음악을 범패라고 하며, 이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을 작법이라고 한다. 범패란 성음, 즉 소리로써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것이고, 작법은 신업, 즉 몸동작으로 공양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작법에는 나비춤, 바라춤, 법고춤이 있다. 작법은 규모가 크고 의식이 호화로운 영산재의 식당작법에서 추어진다. 작법은 종교 의식에 수반되므로, 속되지 않고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불교 의식무용에서 반주로 사용되는 악기로는 법음과 북, 징, 호적 등이 사용된다. 그러면 의식 무용인 작법의 종류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① 나비춤

나비춤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고승(高僧) 조식(曺植)이 범패 정립시 계시 속에 물고기와 나비 떼의 춤에서 불덕(佛德)을 보고 만든 춤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하얀 장삼과 화사한 고깔과 띠 가사를 입고 추는 춤의 형상에서 왔다고도 한다.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등 8정도(八正道)를 쓴 1 m높이의 기둥을 가운데 두고 한번씩 두드리며 추는 나비춤은 사유마다 의미가 있는 어려운 춤이어서 배우기 힘들다 한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 내에 어느 한 분 스님이 범패와 작법의식 전반을 거행할 수는 없고 적어도 네 분 이상 힘을 합해야 범패(북, 징, 호적)와 나비, 법고, 바라춤을 감당할 수가 있을 것인데 점점 배우고자 하는 스님이 사라져 가 그 맥) 송암 스님외 지화(紙花)의 명장이신 월화(月華) 스님, 김도봉(金道峰) 스님 정도가 있다.

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송암 스님은 말한다. 그나마 반가운 것은 오히려 무용 쪽에서 어렵게 이 과정을 습득, 무대화하는 작업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키와 맞먹는 넓은 소매를 펼치면 그대로 나비가 나래를 편 듯한 형상이며 오색무지개를 상징한 색띠와 노오란 바탕에 꽃고깔은 그 화려함이 그지없으며 춤사위 또한 빠른 동작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완만하고 조용한 동작으로 추는 듯 안 추는 듯 이루어짐이 그 특징이며 범패에 맞추어 추거나 태징, 또는 삼현육각 등에도 맞추어 추기도 하고 아예 악기나 아무런 반주 없이 그냥 춤추어지기도 한다.

의식의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은 종류로 구분되며 도량게작법을 많이 춤춘다.

①도량게작법(道量偈作法)

②다게작법(茶偈作法)

③사방요신작법(四方搖身作法)

④정례작법(頂禮作法)

⑤향화게작법(香花偈作法)

⑥운심게작법(運心偈作法)

⑦지옥게작법(地獄偈作法)

⑧자귀의불작법(自歸依佛作法)

⑨만다라작법(曼茶羅作法)

⑩기경작법(起經作法)

⑪삼귀의작법(三歸依作法)

⑫모란찬작법( 丹讚作法)

⑬구원집중작법(久遠執中作法)

⑭오공양작법(五供養作法)

⑮타주(打柱)


② 바라춤

"엎어놓으면 하늘이요, 젖혀놓으면 땅이어 천개의 손이 합장하듯 넓게 중생 제도를 기원한다" 바라춤은 불교의식 무용에서 가장 춤사위가 화려하다. 하얀 장삼에 붉은 가사 녹색 띠를 두른 복식과 두 손에 바라를 들고 장중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몸을 놀리는 이 춤은 색감(色感)과 움직임이 모두 들뜨지 않은 속에서 화려함을 끌어낸다. 발은 외로 도나 언제나 고무래 정자(丁字)로 떼어놓고 무릎과 허리를 동시에 굴절시키며 바라를 놀린다. 무릎과 허리 놀림이 덩실덩실하고 발놀림이 또박또박 장중하다. 특히 이때 발의 움직임은 보통의 무용에서의 발동작은 하나(첫 박자)에 호흡을 들이마시면서 무릎을 쭉펴 딛음으로서 몸의 움직임이 상승되어 보이듯이 하는 것과는 달리 반대로 하나(첫 박자)에 무릎의 굴신을 주어 내려앉는 듯한 몸짓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일반 무용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바라를 든 두 손 두 팔은 물결처럼 덩실거리는 몸의 움직임과 함께 좌우로 벌렸다․합쳤다를 반복하고 한 팔씩 전후로, 상하로 반복해서 돌린다. 바라를 맞부딪치거나 비벼서 내는 소리가 춤의 리듬 속에 장중한 멋을 더해 주며 바라가 지닌 쇳소리는 종이나 요령처럼 쨍그렁 거리지도, 징처럼 크지도 않으면서 부드럽게 쓰다듬는 맛이 있다.

그 소리는 정말 죽은 자의 넋이라도 달래 가며 제도할 수 있을 것 같이 깊고 따뜻하다. 바라춤이 지니고 있는 따뜻하면서도 활달한 몸짓과 소리는 이러한 바라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나 한다.

또한 불교의 공양의식 중에 나오는 춤이면서도 장중하고, 활달하되 가볍지 않고 잘 정련되어 한국무용 무대와 직접 연결된 만큼 춤으로서의 형식과 멋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이러한 바라춤은 악귀(惡鬼)를 물리쳐서 도량(道場)을 청정(淸淨)히 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뜻으로 추게 되며 다음과 같은 종류로 구분된다.

① 천수(千手)바라춤, 명(鳴)바라춤

② 사다라니(四茶羅尼)바라춤, 관욕게(灌浴偈)바라춤

③ 막바라춤, 내림(來臨)바라춤.

그중 천수바라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엎드려 바라옵나니, 대중께오선

신비하고 묘한 불법 대다라니를

동음으로 창화해 주시옵소서.


이 밖에도 70여가지나 되는 범패의식의 제반 절차나 소리, 춤 등은 한 사람이 모두 배워 행하기가 힘들 정도로 종류와 격식이 많다.

그 모든 것을 행하려면 단순히 의식수행의 차원이 아니라 득음(得音)을 해야 하는 본격적인 예(藝)의 경지와 신명이 필요하다고 중요 무형문화재 50호인 범패의 예능 보유자 박송암(朴松岩)스님은 말한다. 그의 바라춤은 법당에서 일반 예술 무대로 선을 보이며 하나의 훌륭한 예술 춤으로 승화되고 범패의 허소리에서 서도잡가가 나갔고 짓소리에서 가곡이 파생되었다고 스님께서 주장하셨듯이 한국 전통예술의 보존, 전승뿐 아니라 한국 전통 춤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③ 법고춤

법고춤은 작법(作法)속에서도 특히 불교의 4법 악기(四法樂器)

4법 악기(四法樂器):법고(法鼓), 대종(大鐘), 운판(雲版), 목어(木魚)

를 두드리면서 치르는 의식중 축생의 구제를 위하여 북을 치는 의식을 따로 떼어 붙인 이름이다.

법고를 두드리며 불덕(佛德)을 찬양하고 세간중생(世間衆生)의 제도를 기원하는 스님들의 움직임은 저절로 장엄한 춤이 된다. 큰절에서는 저녁예불에도 쓰이고 영산재 같은 큰 재의 작법에는 필히 춤추어지기에 바라춤, 나비춤과 함께 작법의 3대 춤으로 지목 받을 만큼 비중 있는 춤이다. 또한 한국춤의 창작(創作)에도 많은 영감을 주어 승무의 북 놀이 에나 3고무, 5고무 등의 창작 춤을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커다란 법고 앞에서 합장 삼배하고 북 가락을 든 두 손을 크게 들어 북의 몸체를 쓰다듬듯 울려 북소리를 깨우고 한 손씩 번갈아 4장단을 치다가 연풍대처럼 몸을 돌리면서 북을 두드리는가 하면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두드려 점차 속도와 강약을 줄여 차분하게 끝을 맺는다. 의상은 팔을 들면 발끝까지 닿을 정도로 유난히 소매가 넓은 하얀 장삼에 붉은 색 가사 초록색 띠 등의 화사한 복식이 느리고 장중한 움직임이나 몰아치는 빠른 동작으로 하여금 색깔과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게 한다.

북 가락이나 몸짓은 어디까지나 예불의 법도(法道)그대로이지만 같은 북소리에 단순한 가락이면서도 힘과 멋이 느껴지며 북 가락과 함께 합장하여 나아가고 물러서며 북을 치는 몸의 움직임과 장삼자락의 흔들림이 시원시원 거침이 없다. 이러한 법고춤은 일정한 장단과 리듬이 없이 범패를 반주로 하여 춤을 추며 대부분 법당 안에서 진행되지만 요즘은 무대에서 보여 지기도 한다.

악기는 징, 바라, 호적을 주로 사용하며 부처님께 드리는 신공양(身供養)이기 때문에 역시 관중을 의식하지 않고 조용한 가운데 경건하게 예배하는 자세로 가야 함을 법고춤의 명인 스님들의 춤에서 엿볼 수 있다.

 

 

 

 

 

 

 

 

 

 

 

불종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01193704043/7190761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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