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공간

4대 보살

수선님 2019. 6. 2. 12:49
4대보살


어리석은 사람이나 현명한 사람,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 고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 등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구제하려는 폭넓은 입장의 불교가 바로 대승불교이다.
이 대승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보살(bodhisattva)이다.
이 보살들은 대승불교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불교를 재편성하여 붓다의 정신을 되살리는데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보살에 대하여 역사상으로 변화되어 온 모습과 그 의미를 더듬어 보고,
끝으로 여러 보살들 중에서 특히 대승불교의 중요한 4대보살에 대하여 그 특징과 역할을 살펴보자.

1. 變遷相

역사상 보살이라는 말이 『도행반야경』이나 다른 대승경전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 말이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흥기하기 이전의 律藏이나 佛傳文學에서 언급되고 있는 보살과 대승불교 운동가들이 내세운 보살과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점이 있다.
즉 불전문학인 『자타카(jataka)』에서 등장하고 있는 보살은 장차 붓다가 될 수기를 받은 보살로서
주로 석가모니부처님의 과거 전생 때 因行을 쌓아 온 석가보살 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이에 비해 불전문학의 보살을 뒤이어 등장한 반야경의 보살들은 아직 수기를 받지 못한 보살들로서 장래에 성불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보살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스스로 붓다를 본받아 수행하면 자기들도 언젠가는 그와 똑같이 성불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요컨대 『자타카』나 부파불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보살은 성불이 확정된 붓다의 전생보살 한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고,
반야경 등 대승경전이나 대승불교에서 등장하고 있는 보살들은 극소수의 문수·보현·관음·미륵·지장보살등 대보살을 제외하고는
전혀 성불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평범한 보살들이다.
그들은 단지 대승을 실천하고 신봉할 뿐이다.
이런 두 종류의 보살 가운데 대승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또 多佛을 탄생시킨 보살은 성불이 보장된 전자의 보살이 아니라 후자의 보살들이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이 보살이라고 하는 自覺을 어디서부터 얻었을까?
대승의 보살들은 단지 그들이 보리심을 발함으로부터 자기가 보살이라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성불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보리심을 발하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불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엄밀히 말해서 어떠한 사람이라도 보리심을 발하기만 하면 보살이 될 수 있고, 장래에는 성불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다.

대승불교에서 일단 보살이라는 새로운 理想像이 등장하자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확대하여 수많은 보살들이 탄생하였음을 볼 수 있다.
시간적으로 석가보살이 과거에 많은 인행을 쌓음으로써 마침내 석가불이 된 것을 소급하여
이런 시간적인 상황을 미래로 투영한 곳에 미륵보살과 미륵불이 탄생할 수 있었고,
공간적으로는 사바세계에 석가불이 계시는 것을 소급하여 서방세계에는 법장보살이 아미타불이 되고,
동방에는 아촉보살이 아촉불이 되는 등 많은 보살과 붓다를 탄생시켰다.
또 덕과 힘을 상징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등장하고, 드디어 반야경 계통에서는 문수보살이, 화엄경 계통에서는 보현보살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허공장보살, 海意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등 수많은 보살들이 출현하여 대승경전을 장엄하기에 이른 것이다.
특수한 것으로 오직 한 사람의 비구로서 圓頂形을 가진 지장보살이 출현하기도 했다.
한 걸음 더 발전하여 실재했던 고승들에게 보살이라는 호칭을 붙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인도의 용수보살·마명보살·무착보살·세친보살과 중국의 敦煌보살(竺法護,230-308)·印手보살(道安,312­385) 등이다.


2. 의미

다음 보살이란 말과 그 의미를 보면, 보살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보리살타(bodhisattva)의 약어로 보고 있다.
보리는 지혜·깨달음 등으로 번역되고, 살타는 유정으로 번역된다.
『大智度論』 권44(『대정장』 25권, p.380중-하)에 보리살타의 句義를 해석하기를, “천축의 어법은 여러 글자를 화합하여 말을 만들고, 여러 말을 화합하여 句를 만든다. 菩를 한 자로 하고, 提를 한 자로 하여 이 둘이 합해지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 그 둘을 합하면 보리가 되는 것이다.
秦에서는 無上智慧라 한다.
살타는 중생을 이름하기도 하고, 혹은 大心이라 하기도 한다.
무상지혜를 행하기 때문에 대심을 발한다는 이름을 붙여 보리살타가 되고,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도를 행하게 하고자 원하기 때문에 보리살타라 이름한다.”고 했다.

이 인용구에서는 보리살타의 의미를 해석함과 아울러 보살의 적극적인 실천행까지 보충해서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보살은 자기 자신의 깨달음을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깨달음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좀더 구체적인 의미를 보면, 『大毘婆沙論』 권176(『대정장』 27권, p.887중)에 “보리를 구하고자 잠시라도 마음을 놓지 않는 자를 보살이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보살이란 깨달음(보리)을 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보살은 반드시 부처의 지혜를 얻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즉 붓다의 예비 후보자라는 의미이다.

이 보살이라는 말이 구역에서는 중생, 開士, 覺有情 등이라고 하다가 401년에 구마라집(344-413)이 장안에 옴으로써 보살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3. 4대보살의 특징과 역할

대승불교 이전 불전보살의 탄생은 業力의 힘으로 生하는 반면에, 대승보살의 탄생은 願力의 힘으로 생하는 願生菩薩들이다.
이런 원력사상을 중심으로 4대 보살의 특징을 살펴보자.

3.1. 문수보살

문수보살의 梵名은 Manjusri-bodhisattva이다.
음역하면 文殊師利, 曼殊室利라 하고, 의역하면 妙吉祥, 妙樂, 法王子라 한다.
『法華嘉祥疏』 2에는 “문수를 중국말로 번역하면 妙德이라 하는데 그것은 똑똑히 불성을 보기 때문에 덕이 원만하지 않음이 없고
번뇌가 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묘덕이라 한다”고 했다.

문수보살은 대승불교를 흥기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실존 인물로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차후에 밝히기로 하고, 여기서는 문수보살이 상징하는 의미와 그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에 제불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지혜의 힘에 의해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대웅전에 주불이 석가모니부처님이시고 좌우부처에 문수와 보현을 脇侍로 모셔 놓고 있는데
이 문수는 바로 주불인 석가모니부처님의 佛智와 佛慧를 나누어 표시해 주고 있다.
또 문수의 지혜는 매서운 칼에다 비유하기도 하는데 아무리 많은 無明의 실타래가 있을지라도 날카로운 칼날 하나를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이
지혜의 칼날은 중생의 무명을 일시에 끊어버리기 때문에 문수의 지혜를 매서운 칼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수도량에 가보면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계시는데 그 사자의 의미는 威猛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문수보살의 주처는 강원도 오대산이고, 중국은 청량산이다.

3.2. 보현보살

보현보살의 범명은 Samantabhara-bodhisattva이다.
음역하면 輸跋陀 또는 三曼多跋陀羅라 하고, 의역하면 보현 또는 匯吉이라 한다.
이 보살의 身相과 공덕이 일체처에 두루하기 때문에 보현이라 하고, 또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기 때문에 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문수보살과 함께 석가여래의 脇士로서 白象을 타고 여래의 오른편에 모셔져 있는 보살이다.
문수보살이 왼쪽에서 여래의 智·慧·證을 나타내고 있다면, 보현보살은 오른쪽에서 여래의 理·定·行의 덕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 두 보살은 본존여래의 理智·定慧·行證의 원만함을 대변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여래의 화도와 섭익을 선양하고 있는 보살들이다.
그러므로 문수와 보현을 일체보살의 上首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엄경』 ‘보현행원품’ 권40에 여러 부처님께 예경하는 원(禮敬諸佛) 등 보현보살의 10종 광대원은 모든 보살의 행원을 대표하기 때문에
원력사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3.3.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의 범명은 Avalokitesvara-bodhisattva이다.
이를 음사하면 阿縛盧枳底濕伐羅菩薩이다.
한역하면 구역에서는 觀音, 觀世音이라 하고, 신역에서는 觀自在, 觀世自在, 觀世音自在 등이라고 한다.
『법화경』 권7, ‘관세음보살보문품’(『대정장』 9권, p.56하)에
“무진의 보살이 부처님께 관세음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관세음이라고 하느냐고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이 갖가지 고뇌를 받고 있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한 마음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하게 한다”고 한 바와 같이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서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보살이다.
『법화경』의 ‘보문품’이나 『화엄경』의 ‘입법계품’에서는 관음보살의 주처를 바닷가의 깎아지른 듯한 푸른 대나무 언덕 위에 있는 보타락가산이라고 했다.
이 말에 의거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의 보리암이라든가 서해의 강화 보문사,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 등 해안 근처에 관음도량이 많이 건립되어 있다.
『대아미타경』(『대정장』 12권, p.327상)에서는 극락정토에서 대세지보살과 함께 아미타불이 협시로서 중생의 교화를 돕고 있다고 한다.
 
 
 
 
 
 
 
 
 
 
 
 
 
 
 
 
이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dlwps/15391744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