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었을까?

수선님 2019. 10. 6. 11:44

▲ 바이올린 켜는 아인슈타인. 그는 모짜르트 광팬이었다. ‘모짜르트의 음악은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우주 자체의 내적 아름다움을 반영한 것같이 보인다’고 말했다.


'스피노자의 신'

상대성이론을 만들어 세계를 보는 인류의 시각을 극적으로 바꿔놓은
20세기 최고의 과학 천재 앨버트 아인슈타인.


이 최고의 과학자가 과연 신이란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과연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을까?
만약 신을 믿는다면 그 신은 어떤 신일까?


이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마침내 아인슈타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돌직구를 날린 사람이 나타났다. 질문은 전보문으로 날아들었다.
1929년 미국 뉴욕의 유대교 랍비인 골드슈타인이
아인슈타인에게 전신으로 보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50단어로 답해 주십시오.
회신료는 선불되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독일어 25단어로 된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법칙적 조화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은 믿지만,

인류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은 믿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위의 전보문 내용을 어느 편지에서 더욱 자세하게
부연 설명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신관이다.


"두 종류의 신이 있다. 우리는 굉장히 과학적이어야 하고,
정확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만약 신이 우리와 함께 하는 인격적 신이라면, 그리고 바닷물을 가르고 기적을 보이는 신이라면, 나는 그러한 신은 믿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에 자전거를 사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신, 이런저런 소원을 들어주시는 신이라면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질서와 조화, 아름다음과 단순함 그리고 고상함의 신을 믿는다.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스피노자는 우주는 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란 어떤 사람인가?

아인슈타인과 같이 유대인인 바뤼흐 스피노자는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로 범신론자이다.
범신론이란 '
자연의 밖에 존재하는 인격적인 초월자를 인정하지 않고,
우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이며,
신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고 있는 그 자체다'라는 관점이다.


세계 내의 '모든 것이 하나'라고 믿는
스피노자는 "우주는 신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따르면 우리는 대상으로서의 초월적 신이 아니라,
바로 '신' 안에 살고 있는 셈이다.


'유신론자' 아인슈타인​

이같은 스피노자의 철학은 유대교에서 이단으로 찍혀 추방되었고,
인격적인 초월신을 부정하는 그의 '우주교'는 기독교로부터 일종의 무신론이라고 비난받았으며, 이 같은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는 아인슈타인에게는 무신론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신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들으면 그러한 비판에도 나름 근거가 있는 듯이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또 어느 편짓글에서 인간이 믿는 신에 대해 "내게 신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과 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성서'에 대해서는
"훌륭하지만 상당히 유치하고 원시적인 전설들의
집대성이며,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덧붙이더라도 이 점은 변하지 않는다"

라고 단언했다.

나아가, "유대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가장 유치한 미신들이 현실화된 것에 불과하며, 유대인은 결코 선택된 민족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아인슈타인이 확고한 무신론자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신의 개념을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어쨌든 아인슈타인에게도 종교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가 믿는다고 말한 신은 스피노자의 신이며, 스피노자의 신은 '우주'이다.
따라서 삼단논법로 보자면 아인슈타인의 신은 '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우주와 신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우주가 이해 가능하고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은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조화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주는 유한하나 끝은 없다'

참고로,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우주의 모습은
'유한하나 경계가 없는 우주'였다.
그는 무한한 우주가 불가능한 이유로,
중력이 무한대가 되고,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들어오는 빛의 양도 무한대가 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공간의 한 위치에 떠 있는 유한한 우주는 별과 에너지가 우주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줄 아무런 것도 없기 때문에 역시 불가능하며,
오로지 유한하면서 경계가 없는 우주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질량이 공간을 휘어지게 만들고, 그래서 우주 전체로
볼 때 우주는 그 자체로 완전히 휘어져 들어오는 닫힌 시스템이다. 따라서 유한하지만, 경계나 끝도 없고, 가장자리나 중심도 따로 없는 우주다.


이것이 바로 깊은 사유 끝에 아인슈타인이 도달한 우주의 모습이었다.

독일 물리학자 막스 보른은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는 우주의 개념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세계의 본질에 대한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의 하나"

라고 평했다.

이 같은 우주가 아인슈타인에게는 그의 말마따나 '신'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종교인이 자신의 신앙 대상에 대해 갖는 경외감보다
더 깊은 경외감을 우주에 대해 갖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그 신을 알기 위해 도정에 자신의 평생을 오롯이 바쳤다.
죽기 직전까지 그는 종이 위에서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
대통일장 이론 방정식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그의 열망은 다음 말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나는 신의 생각을 알고 싶다. 나머지는 세부적인 것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은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그의 신은 우주였고, 종교는 '우주교'였다.


[출처: 서울신문에서 .] 이광식 칼럼니스트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었을까?
천재 과학자의 고백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모두가 인정하는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그는 ‘사랑’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1905년, 26세였던 아인슈타인은 대학 졸업 직후 스위스 특허국에서
보조 심사관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1년 동안 업무 외 시간을 활용해
논문 6편을 완성했는데, 이것은 시대의 획을 긋는 사건이 됩니다.

그는 ‘특수상대성이론’과 ‘질량 에너지 등가 공식(E=mc2)’을 발표했는데, 1921년에 아인슈타인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됩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아인슈타인에게 종교와 신에 관해 그의 견해를 물었습니다. 마침 아인슈타인은 막 손님을 배웅하던 참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었습니다.

“기자 선생, 당신은 누가 커피잔을 여기에 놓았는지 아십니까?”
기자는 답했습니다. “당연히 선생님이지요.”
아인슈타인은 말했습니다.
“커피잔 같은 작은 물건이라도 배치하는 데에는 어떠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세요. 우주에는 크고 작은 행성들이 있는데
각 행성은 일정한 궤도를 따라 빈틈없이 움직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안배하는 힘은 바로 신입니다.”


“아마 기자 선생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는 신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제가 어떻게 신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선생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의 감각 기관은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20Hz~20,000Hz 범위의 파장만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아인슈타인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과학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이 아직 신의 존재를 증명해 낼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오감에 한계가 있어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없으며, 과학 또한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의 존재를 확신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는 ‘사랑’의 폭탄을 제작해 이 행성을 파괴하고 있는
증오와 이기심, 탐욕을 제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작지만 강력한 ‘사랑’의 발사기를 가지고 있어,
사랑의 힘을 방출할 수 있습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pixabay)


몇 년 전, 유엔은 갤럽을 이용해 “지난 300년 동안 가장 유명했던 과학자
300명은 신을 믿었을까 아닐까”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신앙을 확인할 수 없는 38명을 제외한 나머지 262명 중 불신자는 겨우 20명으로 7.6%였고, 신자는 242명으로 92.4%였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딸에게 쓴 편지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사랑은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힘이며, 사랑은 신이고, 신은 사랑이다.”
“만일 우리 인류가 계속해서 생존해 나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생명의
의의를 찾아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과 세상의 생명을 구해내고자 한다면, ‘사랑’이 유일한 답일 것이다.”

하지만 명성이 자자했던 아인슈타인도 당시 진화론이 성행하는 분위기에 도덕과 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대중 앞에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뉴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기묘한 안배가 전지전능한 신의 작품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주의 모든 유기와 무기 만물형상이 모두 영원하신 신의 지혜와 권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 (pixabay)

아인슈타인이 쓴 27편의 편지에는 신과 종교, 원자탄 등에 관한 관점이
담겨있습니다. 이 편지는 지난 6월 1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42만 달러(450만 원)에 팔렸습니다.

다음은 아인슈타인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상대성 이론을 발표할 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단다. 이 편지에서 내가 인류에게 전하려는 바도 세상 사람들의 관념, 편견과 충돌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가 발전하여 내가 이 편지에서 말하는 바를 이해할 때까지,
수년에서 수십 년 나는 네가 이 편지들을 잘 간직했으면 한다.

우주에는 지극히 거대한 힘이 존재하는데,
과학은 아직도 그 힘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찾지 못했다.
그 힘은 만물을 주재하고, 우주 모든 현상의 배후에 존재하며, 인류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이 우주의 힘은 바로 ‘사랑’이란다.
우주를 탐색할 때, 과학자들은 이 강력하고도 보이지 않는 힘을 소홀히 했단다.
‘사랑’은 그를 주고받는 사람을 밝혀 주는 빛이다.
‘사랑’은 서로 끌어당기게 하는 중력이다.
‘사랑’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물건을 몇 배나 좋게 하고, 인류가 무지와 이기심으로 소멸하지 않도록 하는 힘이다.
‘사랑’은 드러낼 수 있고, ‘사랑’은 나타날 수 있다.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살고 죽는다.
‘사랑’은 신이고, 신은 ‘사랑’이다.
이 힘은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고 생명에 의의를 부여해 준단다. 우리는 이 힘을 너무나 오랫동안 소홀히 해왔다.
이 우주에서 마음대로 운용할 수 없는 유일한 힘이기에,
‘사랑’을 두려워했다.

인류가 ‘사랑’을 이해하게 하려고 내 유명한 공식인 E=mc2에서 간단한 치환을 했단다.
우리가 ‘사랑’에 빛 속도의 제곱을 곱하여 얻어진 힘이 이 세상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사랑’은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힘이다.
사랑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우주의 힘들을 이용하고 통제하려고 해도,
이 힘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데에 쓰인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영양을 주는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만일 우리 인류가 계속해서 생존해 나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생명의 의의를 찾아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과 세상의 생명을 구하고자 한다면,
‘사랑’이 유일한 답일 것이다! 현재 우리는 ‘사랑’의 폭탄을
제작해, 이 행성을 파괴하고 있는 증오와 이기심, 탐욕을 제거할 능력이 아직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사랑의 힘을 방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작지만 강력한 ‘사랑’의 엔진을 가지고 있단다.

딸아, 우리가 어떻게 이 우주의 힘을 주고받는지 배우면,
우리는 무소불능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랑’에 대해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생명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내 모든 생각을 좀 더 일찍 표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지금 사과하면 늦은 거겠지.
그러나 시간은 상대적이니, 네게 말해야겠구나.

너를 사랑하고 네게 고맙다.
너를 통해 생명의 최종 답안을 얻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