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IENCE OF MIND
마음의 과학
Ernest Shurtleff Holmes,
Part II: The Lessons
Lesson one: Introduction
In presenting these lessons in Mental Science to the public,
it is my desire to make it possible for any one, who cares to take the time to study them, to demonstrate the truths that will be discussed. It is, perhaps, hard to set down in writing a complete teaching in Mental Science that will not appear difficult to understand; but this could be said as well of any science, and the Science of Mind is no exception to the general rule.
마음의 과학이란 주제의 강의를 하게 되면서 제 바람은 이 주제에 시간을 할애하여 공부하는 분들이 여기서 논의되는 진리를 입증하는 겁니다. 어쩌면 마음의 과학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전체를 기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단지 마음의 과학 분야에만 적용되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과학 전체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일 겁니다.
SCIENCE
과학
Science is knowledge of facts built around some proven principle. All that we know about any science is that certain things happen under certain conditions. Take electricity as an example; we know that there is such a thing as electricity; we have never seen it, but we know that it exists because we can use it; we know that it operates in a certain way and we have discovered the way it works. From this knowledge we go ahead and deduce certain facts about electricity; and, applying them to the general principle, we receive definite results. No one has ever seen the power or the energy that we call electricity; and the only proof we have that it really exists is that from it we receive light, heat and motive power.
과학이란 어떤 입증된 원리를 중심으로 세워진 사실들에 대한
학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의 과학을 안다고 했을 때 알 수 있는 전부는 일정한 상황에서 일정한 현상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전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우린 전기란 것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알고 있지만, 전혀 그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비록 볼 수는 없었지만 우린 그것을 사용할 수 있기에 그 존재를 압니다.
그리고 우린 일정한 방식으로 그 전기가 작동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작동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지식을 토대로 우린
더 나아가 전기에 대해 일정한 사실들을 유추합니다.
그리고 일반원칙에 전기를 대입함으로써 특정한 결과들을 얻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전기라
부르는 힘이나 에너지를 봤던 사람은 없고, 단지 그것에 대한 유일한 증거는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빛, 열, 원동력을 얻는다는 사실뿐입니다.
No one has ever seen any of the great causes that lie back of the manifestations of life, and perhaps no one ever will; but we know that such principles exist because we can use them.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생명이 드러난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위대한 원인자를 본 사람은 없고, 아니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린 그 생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생명 배후에 존재하는 원리가 있음을 압니다.
HOW LAWS ARE DISCOVERED
법칙이 발견되는 방법
The discovery of a law is generally made more or less by accident, or by some one who, after careful thought and observation, has come to the conclusion that such a principle must exist. As soon as a law is discovered experiments are made with it, certain facts are proved to be true, and in this way a science is gradually formulated; for any science consists of the number of known facts about any given principle. As more and more facts are gathered and proven, the science expands and gradually becomes accepted by all and used by those who understand it. In this way all of our sciences have been evolved until to-day we have the use of powers and unseen forces of which our ancestors never even dreamed.
법칙은 일반적으로 우연히 발견되거나, 아니면 면밀한 관찰과 깊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그 원리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하나의 법칙이 발견됩니다. 하나의 법칙이 발견되자마자 여러 가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어떤 사실들은 진실로 판명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과학은 점차적으로 정립됩니다.
어떤 과학 분야라도 그것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주어진 이론에 대해 행해진 많은 실험들이 축적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많은 결과들이 축적되고 입증되면서 그 과학은 점차 영역을 넓혀가게
되고 결국 모든 사람들이 그 이론을 받아들여 사용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과학 분야는 점차 발전해서 오늘날처럼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여러 가지 힘과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ROOF OF MIND
마음에 대한 증거
This is true of the Science of Mind. No one has ever seen Mind or Spirit, but who could possibly doubt their existence? Nothing is more self-evident than that we live; and since we live, we must have life; yet who has ever seen this life? The only proof of life we have is that we live; and the only proof we have of Mind is that we can think; so we are perfectly justified in believing that we have a mind and that we live.
이건 마음의 과학이란 분야에도 적용됩니다. 그 누구도 마음이나 스피릿(Sprit : 이 말의 일반적인 해석은 “영”이지만 어니스트 홈즈는
일정한 자의식을 가진 우리의 배후, 즉 신을 통칭하는 말로 쓰기 때문에 “영”이라는 해석보다는 그대로 스피릿으로 해석하겠습니다. 자세한 용어에 대한 풀이는 다음번 강의에 나옵니다)을 본 사람은 없지만 감히 누가 그
존재를 부인하겠습니까?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이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 있기에 우린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누가 생명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생명에 대한 유일한 증거는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에 대한 유일한 증거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갖고 있고 살아
있다는 것을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WHERE OUR THOUGHTS GO
우리의 생각이 가는 곳
As we watch the processes of thought we find that we think consciously, and we also find that something happens to our thoughts after we have thought them; for instance, they become memory. This proves that we have a deeper aspect of mind, which is called subjective, lying just below the threshold of the conscious. This subjective mind is the place where our thoughts go and from whence they eventually return to us again as memory. Observation proves this to be true; for it always happens this way.
우리의 생각을 잘 관찰해보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어떤 생각을 한 후에 그것에 일정한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생각이 기억이 된다는 거죠.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마음에는 더 깊은 측면, 그러니까 잠재의식이란 것이 존재하고
이것은 현재의식의 경계 밑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이 잠재적인
마음은 우리의 생각이 가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또 그건 다시 기억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이것은 항상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관찰을 해본다면 사실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Observation has proven that the subjective mind is the seat of memory and that it contains mental pictures, or impressions, of all that has ever happened to the individual. As these mental impressions come to the surface of the conscious mind they are called memories.
잠재의식을 잘 관찰해보면 그것이 기억의 장소이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었던 모든 정신적인 장면, 즉 인상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잠재의식이 지니던 정신적 인상은
현재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게 되고, 우린 그것을 일컬어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Moreover observation has shown that the subjective mind is the builder of the body. It has proven that it is not only the seat of memory; it is also the avenue through which Instinctive Man works. We mean by Instinctive Man that part of the individual which came with him when he was born--that inner something which makes him what he is. For instance, we do not have to consciously think to make the body function; so we say that the inner, or the Instinctive, Man, does this for us. This is true of most of the functions of the body; they appear to be automatic; they came with us and are nature's way of working through us. So we say that in the unconscious or the sub-conscious or the subjective, there is a silent process forever working away and always doing its duty, carrying on all of the unconscious activities of the body without effort on our part.
더 면밀히 조사해보면 이 잠재적인 마음이 몸을 만드는 장본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재의식은 기억의 자리일 뿐 아니라,
태초인간이 활동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태초인간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과 함께 존재했던 나의 일부이자, 나의 존재를 만드는 내부의 그 무엇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 몸의 활동을
위해서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몸은 저절로 그 유지와 활동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내부의, 즉 태초의 인간이
우리를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몸의 대부분의 기능이 다 그렇습니다. 그 기능들은 대부분 자동적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 기능은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를 통해 일하는 자연(본연)의
방법(nature's way)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 안에는 혹은 내면 안에는 어떤 애를 쓰지 않고도 몸의 무의식적인 활동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일을 언제나 하고 있는 조용한 움직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SUGGESTION BECOMES MEMORY
생각은 기억이 된다.
It has been observed that suggestions, planted in the subconscious, become memories, and eventually tend to externalize in the body. From this it has been deduced that the sub-conscious mind is the builder of the body and is the creative factor in man. It has also been proven that certain types of thought produce certain kinds of results. This shows that the subjective mind takes our suggestions and tends to act upon them, no matter what the suggestion may be.
또 자세히 살펴보면 잠재의식 안에 심어진 생각은 기억이 되고,
그것은 결국 몸으로 표현되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잠재의식은 몸의 창조자이자 인간 안의 창조적 원인이라는 사실이 유추됩니다. 또 자세히 관찰해보면 일정한 생각들은 일정한 종류의 결과들을 만든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잠재적 마음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품었던지 상관없이 우리의 생각들을 취해서 그것들에게 일정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While the Instinctive Man, or the Natural Man, must be perfect, it is known that the thoughts of the conscious man may hinder instinctive action, through adverse suggestion. That is, conscious thought, acting as memory, may build a false condition in the body, which condition we call disease. Conscious thought may also erase this memory and thereby heal the disease.
태초인간, 다시 말해 본성인간은 언제나 완벽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태초의 활동, 본성의 활동을 막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현재의식의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기억으로 활동하게 되는 현재의식의 생각은 몸 안에 잘못된 상황을 만들 수 있는데 우린 그것을 질병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현재의식의 생각은 또한 이 잘못된 기억을 지울 수도 있는데, 이것을 치유라고 합니다.
Through observations such as these, a science of the subjective mind has gradually been formulated, many facts have been put together; and, to-day, these facts constitute what we call the science of the subjective life in its relationship to mental healing.
이런 관찰들을 통해 잠재마음의 과학은 조금씩 정립되어갔고,
많은 결과들이 모여 오늘날에는 정신적 치유와 관련된 우리가
내면생명의 과학이라 부르는 분야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MENTAL MEDIUM THROUGH ALL
모두를 연결하고 있는 정신적 매개체
It has also been proven that thought operates in such a manner as to make it possible to convey mental impressions from one person to another, showing that there is a mental medium between all people. When we think of it, how could we talk with each other unless there were some kind of a medium through which we talked? We could not; and so we know that there really is such a medium. While there is a place where our bodies begin and leave off, as form, there does not appear to be a place where our thought leaves off. Indeed, the observations made and the facts gathered show that the medium between men's minds is omnipresent; that is, it seems to be everywhere present. Radio also shows this, for messages are sent out through some kind of a universal medium, and all that we can say of it is that we know the medium is there. So it is with Mind; all that we can say is that everything happens just as though it were there. We have a perfect right, then, to say that such a medium exists.
이렇듯 생각이 자신의 몸을 통해 표현된다는 사실에서 더 나아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정신적 인상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그랬다면 이것은 모든 사람을 연결해주는 어떤 정신적 매개체가 존재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만약 나와 상대방 사이에 소리를 전달해주는
매개체가 없다면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분명 우리 사이에는 소리를 전달해주는 매개체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형체를 갖추며 시작되고 형체가 끝이 나는 장소는 분명 확실히 알 수 있는 반면, 우리의
생각이 시작되고 사라지는 장소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있습니다. 많은 관찰들과 수집된 많은 현상들을 종합해보면 인간의 마음과 마음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있고,
그것은 편재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 모든 곳에 퍼져 있습니다.
라디오는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라디오에서 송파된 메시지는 어떤 우주의 매개체를 통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우주를 관통하는 매개체가 분명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마음에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마치 그 매개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당연하게 그런 매개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This opens up a far-reaching theory, for it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we are surrounded by a Universal Mind which is the Medium of the communication of our thoughts. Perhaps this is the Mind of God! Who knows? That It is there, we cannot doubt.
이것은 더 큰 영역의 이론에 눈뜨게 해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들이 교류할 수 있는 매개체인 우주적인 마음에 둘러싸여 있다는 결론으로 말이죠. 어쩌면 이건 신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다만 그것은 정말 존재하고 우리는 의심할 수 없습니다.
READING THOUGHT
생각을 읽기
Other observations have shown even more wonderful possibilities. It is known that certain people can read our thoughts, even when we are not aware of the fact, showing that thought operates through a medium which is universal, or always present. This also shows that the medium is subjective; for it retains our thoughts and transmits them to others. This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what we call our subjective mind is really the use that we, as individuals, make of something which is universal. Perhaps, just as radio messages are operative through a universal medium, our thoughts are operative through the medium of a Universal Mind. Indeed, this has been believed for thousands of years by some of the deepest thinkers.
연구를 계속 해나가다 보면 더욱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현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에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각은 모든 곳에 항상
존재하는 우주적인 매개체를 통해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우리의 생각을 보유했다가 다른 이에게 옮겨주는 것을 본다면 그 매개체는 내부의 것(잠재의식)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한 개인의 잠재적인 마음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우주적인 거대한 것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마도, 라디오가 우주의 매개체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은 우주의 마음(Universal Mind)이란 매개체를 통해 활동하는 건가 봅니다. 실제로 몇몇의 심원한 명상가들은 수천 년 동안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MENTAL LAW
마음의 법칙
As we think of the medium of radio transmission in terms of law, so we should think of the Mental Medium in terms of law; for it must be the law of mental action. While we might think of it as the Mind of God, we surely could not think of it as the Spirit of God; for the Mental Medium is automatic, while the Spirit must be Self-Knowing. We could not call the Universal Medium of Mind God, any more than we could call electricity God. It is but one of the many attributes of God or the Universe of Life. It is the avenue through which God operates as Law.
우리가 법칙과 관련해서 라디오 전송의 매개체를 생각한 것처럼
법칙과 관련해서 마음의 매개체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마음이 활동하는 법칙임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신의 마음(Mind of God)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신의 스피릿(Spirit of God, 이것은 신 그 자체를 뜻함)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피릿(Spirit)은 자의식과 분별력을 갖고 있는 반면 마음의 매개체는 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역주: 사고나 분별력을 갖고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반응하고 있기에) 우리가 전기를 신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의 우주적인
매개체를 신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신 혹은 생명이 지닌 수많은 보편적 속성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은 신이 법칙으로서 활동하는 길(방법)입니다.
THE WORD OF GOD AS LAW
법칙으로서 신의 말씀
Since man has a self-conscious mind, a subconscious mind and a body, we know that he is threefold in his nature. First, he is conscious mind or spirit; next, he is subconscious mind or mental law; and then, he is body. The conscious mind controls the subconscious; and in its turn, the subconscious controls the body.
인간에게는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마음, 잠재적인 마음, 그리고
몸이 있기에 인간은 본성상 세 가지 국면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로 현재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스피릿(역주 : spirit 분별하고 자의식을 가진 마음)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잠재의식적인 마음(의식적으로 조절하지 않고, 법칙처럼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법칙(mental law)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몸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의식은 잠재의식을 조절하고, 또 차례로 잠재의식은 몸을 조절합니다.
It is evident that man comes from God, Life or Nature, whichever we choose to call It. It is also evident that we can get from Life only that which is in It. Man must partake of the Divine Nature if he comes from It or is made out of It; for what is true of the Whole must also be true of any of Its parts. Something cannot come from nothing; something must come from something; for nothing comes from nothing and nothing is the result; but man is something, else he could not declare himself; and since he is something, he must be made from, or come out of, something; and that something must be what we call God.
신이라 부르든, 생명이라 부르든, 본성(Nature)이라 부르든,
그 명칭과는 관계없이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그 “생명” 안에 존재하는 것만을 그것으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신의 본성으로부터 유래하고 그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인간은 반드시 신의 본성과 조화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전체에 통하는 진실은 그것의 한 부분에도 통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도 “무(無)”로부터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것은 어떤 것으로부터 생겨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무(無)만이 무(無)로부터 생겨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선언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것이기에 인간은 어떤 것으로부터 만들어졌고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바로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존재입니다. (역주 : 이 말은 만약 창조의 근원이 갖고 있지 않은 속성이 외부로 표현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신으로부터 창조되었다면(펼쳐졌다면) 인간의 본성은 신이 갖고 있던 본성들이다. 신이 갖고 있지도 않던 특성을
창조해낼 수는 없다)
THREEFOLD NATURE OF GOD
신의 세 가지 속성
If we study the true nature of man, then, we shall have delved into the real nature of God, or First Cause, from which man springs; and as we have found that man is threefold in his nature, so we must also deduce that God is threefold in His Nature; that is, God is Spirit, or Self-Knowingness; God is Law and action; and God is Result or Body. This is the inner meaning of the teaching of "the Trinity." But let us elaborate: God, as Self-Knowing Spirit, means the Divine Being Whom we have always thought of and believed in; the Being to Whom we have prayed and Whom we have adored. God, as Law, means the way in which the Spirit works; and Law in this sense, would be the servant of the Spirit. God, as Body, means the manifestation of the Spirit. We might put it in another form and say, there is the Thing, the way that It works and the result of Its work. Still another form would be to say, Cause, Medium and Effect.
우리가 인간의 진정한 속성을 탐구하고자 했다면 인간의 근원이
되는 신, 즉 첫 번째 원인자의 진정한 본성을 탐구했어야만 할 겁니다. 우리는 인간이 본성상 세 가지 국면으로 이루어졌단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 역시 그의 본성상 세 가지 국면으로
이루어졌다고 유추합니다. (역주 : 부분에 통하는 진실은 전체에도 통하기 때문) 다시 말해 신은 스피릿(Spirit), 즉 분별력을 지닌 자의식입니다. 그리고 또한 신은 법칙이자 활동입니다. 또한 신은 그 활동의 결과로서 육체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가르침에 대한 내적인
의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지 말고 조금 더 의미를 명확히
만들어보겠습니다. 자의식을 가진 스피릿(Spirit)으로서 신은 신성한 존재를 뜻하며 우리가 신을 믿는다고 할 때 의미되는 그런 일상적인 의미의 신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올리고 예배를 올릴 때 그 스피릿(Spirit)에게 합니다. 다음으로, 법칙으로서 신이란 그 스피릿(Spirit)이 활동하는 방법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런
의미의 법칙이란 스피릿과의 관계에서는 주종관계에서 종의 역할을 합니다. 다음 육체로서의 신이란 이 스피릿이 외부로 나타난 것을 뜻합니다. 또 다른 식으로 이것을 풀이해 보자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이 활동하는 방법이 있고, 그것이 활동한 결과물이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세 가지 국면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식으로 말해보자면 원인(Cause)이 있고,
매개체(Medium)가 있고, 결과(Effect)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TRINITY OF BEING
존재의 삼위일체
A trinity of being appears to run through all Nature and all Life; for instance, there is electricity, the way it works and its result, which is light or motive power. There is the seed, the creative medium of the soil and the plant. Turn it as we may, we are confronted with the necessity of a trinity of being. There must always be the thing, what it does and the way that it operates. Always a trinity runs through life and through everything in it. But through the Trinity of God and man there runs a Self-Conscious Spirit, and this is what distinguishes man from the brute, or from a purely mechanical creation; and is the only thing that could make God a Self-Knowing Power.
존재의 삼위일체는 모든 자연과 모든 생명들에 다 적용되는 듯
보입니다. 전기를 예로 들어보면 전기가 있고,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가 있고, 빛이나 동력이라는 결과가 있기 때문이죠. 또 씨앗이 있고, 흙이라는 창조의 매개체가 있고, 식물이라는 결과가 있습니다. 시선을 돌려서 다른 곳 어디를 봐도 우리는 존재의 삼위일체의 필요성과 마주하게 됩니다. 반드시 무언가가 있으면 그것이 활동한 결과물이 있고, 또 그것이 활동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항상 모든
생명과 만물에는 삼위일체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오직 인간과 신의 삼위일체에만 특이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의식을 가진
스피릿은 오직 인간과 신을 통해서만 활동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인간을 짐승이나 완전히 기계적인 창조물과 구별되는 구별점이고, 이것이 바로 신을 자의식을 가진 권능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함입니다.
CONSCIOUS MIND IN GOD AND MAN
신과 인간 안의 의식적인 마음(분별력을 가진 자아의식)
In God and in man there is a power that, while it may not transcend law, yet consciously uses it for definite purposes. In God this knowledge must be complete, but in man it is, of course, but dimly perceived. Jesus, the wisest Man who ever lived, said that God and man are one in real nature, and no doubt this understanding was what gave Him His marvelous power.
신과 인간 안에는 권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법칙을 초월하지는
않겠지만 특정한 목적들을 위해 법칙을 의식적으로 이용합니다.
신 안에서는 이 앎이 완벽히 기억됩니다. 하지만 인간 안에서는
물론 인식되기는 하지만 아주 어렴풋이 기억될 뿐입니다.
이 세상에 살았던 가장 지혜로운 자였던 예수는 진정한 본성 안에서 신과 인간이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에 대한 앎은 그에게 기적 같은 힘을 주었습니다.
UNITY
하나 됨
It is well to remember that the enlightened in every age have taught that back of all things there is one Unseen Cause: In studying the teachings of the great thinkers we find that a common thread runs through all--the thread of Unity. There is no record of any deep thinker, of any age, who taught duality. one of the great teachings of Moses wa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and the saying, "I AM that I AM," was old when Moses was yet unborn; for it had been inscribed over the temple entrances for generations. We may go back much farther than Moses and find the same teaching, for it crops out from the literatures and sayings of the wise of all ages. Jesus taught this when He said, "I and the Father are one," and in the saying, "The Father that dwelleth in me."
다음을 기억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 세상을 살았던 지혜로운
자들은 모든 것 이면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원인(One Unseen Cause)이 존재했다고 말했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가르침들을 연구해보면 그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시대 어떤
깊은 사상가도 근원의 이중성(역주 : 모든 만물의 근원이 하나에서 기인했다는 믿음과는 상반된 둘 이상의 근원을 갖는다는 믿음)에 대해 가르친 기록은 없습니다. 모세의 위대한 가르침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우리의 주 하느님은 한분의 주이더라.” ;
그리고 아직 모세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의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I AM that I AM” 우리는 모세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가서도 문헌이나 과거의 현자의 말에도 같은 가르침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그리고 “내 안에 살고 계신 아버지”라고 표현했던 것도 이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This teaching of Unity is the chief cornerstone of the Sacred Scriptures of the East as well as of our own Sacred Writings. It is to-day the mainspring of the teachings of the modern philosophies, such as Christian Science, Divine Science, The Unity Teachings, The New Thought Movement, The Occult Teachings, The Esoteric or Inner Teachings, and even of much that is taught under the name of Psychology. Without this basic teaching of Unity these movements would have but little to offer. Science has found nothing to contradict this teaching, and it never will, for the teaching is self-evident.
이 일체성에 대한 가르침은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의 경전에서도
주요한 기초입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성과학, 유니티 티칭,
신사상 운동, 오컬트 티칭, 비의 가르침, 내부 가르침, 게다가 심리학이라는 이름 아래 가르쳐지는 오늘날의 현대철학이 바로 이
가르침으로부터 생겨났습니다. 일체성에 대한 기초적인 가르침이 없다면 이들 사상들은 가르칠 것이 없을 겁니다. 과학은 이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찾아내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침은 자명한 것이기 때문이죠.
WORSHIP OF GOD
신에 대한 숭배
That there is a God or First Cause no one can doubt. That the Being Whom we call God really exists from eternity to eternity is self-evident. In every age people have worshipped some kind of Deity. It is true that as the evolution of man has progressed the idea of God has expanded, and the more that people have realized of life, and of nature and her laws, the clearer has been the concept of Deity, for this is the logical result of an unfolding mentality.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신 혹은 첫 번째 원인이 존재했습니다.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존재는 실제로 영원에서 영원의 시간 동안 존재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어떤 시대에서도 사람들은 어떤 신성이든지 꼭 숭배했습니다. 인간이 진화하면서, 신에 대한 관념도
점차 확장됐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명과 자연과 자연의 법칙을 많이 깨달아갈수록 신성에 대한 관념도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정신력이 펼쳐질 때(unfold 계발될 때)의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MANY GODS
많은 신들
The first stages of human thought brought out the idea that there were many gods, the natural outcome of a life which experienced many kinds of misfortune and difficulties. As there were many gods so there were many devils or evil powers; but as the understanding of man grew he began to realize that there could not be so many powers, since the Cause back of everything must be a Unity, else It could not exist. More than one power would indicate a universe divided against itself, and this kind of a universe could not hold together. However, it has taken a long time to come to this conclusion, and in the stages between many weird ideas have been formulated and believed in. At first there were many gods and many devils; but as thought progressed, this was narrowed down to one God and one devil or evil power. Duality has been believed in since time immemorial, and, indeed, is still believed in by many. By duality we mean a belief in more than one Power back of all things.
처음에 인류는 태초의 근원에 아주 많은 신들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 많은 신들이 있는 것처럼 많은 악마와 사악한 힘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해력이 점차 넓어지자 그렇게 많은 권능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들 이면의 원인은 반드시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우주에 하나의 권능이 아닌 그 이상의 권능이 있다면 우주 역시도 그 권능의 숫자만큼 분리된 우주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이런 종류의 우주는 하나의 우주 전체를 포함할 수 없습니다. (역주 : 무한이 둘 이상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만약 두 개의 우주가 있다면 두 우주는 모두 유한한 우주여야만 하기 때문에 우주의 성격과는 모순된다.) 결국 이런 하나의 권능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아주 기괴한 생각들을 만들어 믿었습니다. 처음 사람들은 많은 신과 많은 악마가 산다고 믿었다가, 생각이
조금씩 발전해나가자 하나의 신과 하나의 악마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랜 과거의 사람들은 이런 이중성(Duality), 즉 우리의 근원에 두 가지의 힘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중성이란 모든 것 이면에 하나 이상의 권능이 있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BELIEF IN DUALITY--ITS RESULTS
이중성에 대한 믿음과 그 결과
The belief in duality has robbed theology of power and has polluted philosophy with untruths; it has divided science against itself and has made countless thousands go through life with saddened hearts.
이런 이중성에 대한 믿음은 신학에서 힘을 빼앗고 철학을 비진리(非眞理)로 오염시켰습니다. 그리고 과학을 분열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이 슬픈 가슴을 안고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DUALITY IN THEOLOGY
신학에서 이중성
The belief in duality has given rise in theology to the idea of a God and a devil, each with equal power to impose upon man a blessing or a curse, and men have worshiped a devil just as truly as they ever worshiped God. Even to-day this monstrous thought is robbing men of their birthright to happiness and a sense of security. Even to-day, and openly, men still teach that there is an evil power in the universe, that there is damnation to the souls of those who do not fall down and worship--they know not what. But the time is rapidly coming when such teachings will be thrown on the scrap heap and numbered among the delusions of a frantic mentality. It has been the habit of many religious teachers of all times to hold the crowd in awe before a mighty throne of condemnation and utter destruction, till the poor, ignorant population have rent the air with their lamentations of complete despair. This, indeed, was a good method to compel the attention with the hope of salvation through some sacred rites to be performed by those whom God had appointed. In justice to such an awful performance, we would better give to these religious teachers the benefit of the doubt and say that they themselves have believed in the atrocious teachings which they have so unhesitatingly given out.
이런 이중성에 대한 믿음은 신학에서는 신과 악마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신과 악마는 동등한 힘을 가지면서
신은 축복을 악마는 저주를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을 숭배하는 것처럼 동등하게 악마를 또한 진실로 숭배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 이런 기괴한 사상은 인간에게서 행복에 대한
본래의 권리와 안정감을 빼앗아갑니다. 오늘날까지도 일부의 사람들은 이 우주에는 악마라는 힘이 있어서 만약 우리가 무릎을 꿇고 숭배하지 않는다면 저주가 퍼부어질 거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들은 이제 한 더미 쓰레기가 돼버려 미친 사람이 떠드는 이야기로 분류되는 날이 급속도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많은 종교적 지도자들은 죄와 형벌의 신을 만들어 그
왕좌의 공포 아래에 사람들을 모아, 그들이 절망의 목소리로 절규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
Be this as it may, the time has now come for a clearer understanding of the true nature of the Deity, in Whom we all believe, and Whom we all seek to know and to understand. That there is a God no sane person would deny; that there could be a God of vengeance and hate, having all the characteristics of a huge man in a terrible rage, no person can well believe and keep his sanity. We will say, then, and without mincing matters in the least, that the most we had better believe about such a God is that there is no such being.
어쨌든 이제 새로운 때가 도래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믿고 있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려고 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신성의
진정한 본성을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신이 있습니다.
아주 극한의 분노를 가진 증오와 질투의 신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런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DUALITY IN PHILOSOPHY
철학에서 이중성이 끼친 영향
As the belief in duality has robbed theology of its greater message, so it has robbed much of the philosophy of the ages of a greater truth; for in philosophy the belief in duality has created a confusion that is almost as great as that in theology. It has made a philosophy of good and evil in which men have come to believe. True philosophy in every age, however, has perceived that the Power back of all things must be one Power; and the clearer the thought of Unity, the greater has been the philosophy. It has shone forth as a beacon light toward which weary souls have traveled, hoping to find reality. To the great philosophers of all times we owe the advancement of the world; for they have been the great way-showers and helpers of mankind. In reverence, we humbly bow before them as Messengers of the Most High; for God has spoken through their lips and has told us that we are not creatures of the dust but that we are Divine Beings, made in the image of Perfection and with an endless destiny.
이중성에 대한 믿음이 신학이 가진 더 위대한 메시지를 없앴던 것처럼 철학분야에서도 더 위대한 진리를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에서 이중성에 대한 믿음은 신학에서 그것이 만들어낸 혼란만큼 큰 혼란을 철학에서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선과 악이라는 이원성을 믿었고, 그런 믿음은 철학에서도 선과 악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대의 진정한 철학은 항상 모든
사물들 배후의 권능은 하나의 권능임을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체성에 대한 생각이 명확할수록, 그 철학도 더 위대했습니다.
그런 철학이야말로 실체를 찾는 여정에 지친 영혼들이 걸어가야 할 곳을 비춰주는 등대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인류의 조력자이자 위대한 선구자였기에 우리는 세상의 진보에 대해 그 철학자들에게 빚이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존경의 뜻으로 가장 지고한 존재의
메신저(Messengers of the Most High)였던 그들 앞에 겸손하게 고개를 숙입니다. 신은 그들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우리는 먼지들의 조합이 아닌, 신성한 존재라고 말해줬기 때문입니다. 완벽함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신성한 존재, 끝없는 운명을 지닌 신성한 존재, 바로 그것이 우리입니다.
DUALITY AND SCIENCE
이중성과 과학
The belief in duality has robbed science, in that it has created Spirit and matter; i.e., a dual universe. However, modern science is rapidly giving out a different idea of the universe; for with the passing of matter into a hypothetical and theoretical ether there is but little left on which to hang any belief in materialism. We now are told that all matter is in a constant state of flow; that it all comes from one source; and that it will eventually return to that source.
이중성에 대한 믿음은 과학에도 영향을 줘서, 영과 물질이 따로
존재하는 이중적인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가정적이고 이론적인 에테르란 곳의 발견으로 물질주의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주에 대한 이중적인 생각을 빠르게 포기하는 중입니다. 이제 현대과학에서 모든 물질은 변화하는 유동적인 상태에 있다고 말해지고, 그 모든 것들은 하나의 원천에서 오고, 다시 결국에는 그 원천으로 돌아간다고 말해집니다.
AN AWAKENING
새로운 자각
The world is waking up to the fact that things are not at all what they appear to be; that matter and form are but the one substance appearing and disappearing; and that form is simply used to express something which is formless, but self-conscious life. What this life is, science does not attempt to explain. This has been left to theology, and whether or not it has been delegated to those competent to handle the problem time alone will tell.
세상은 이제 객관적인 사물들은 단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물질과 형태는 단지 하나의 본질이
눈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형태는 단지
형태 없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의식을
가진 생명입니다. 과학은 이 생명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신학에 맡겨졌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당한 사람에게 맡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직 시간이 그 답을 내줄 겁니다.
PHILOSOPHY LEADS MAN'S THOUGHT
철학이 인간의 사상을 인도한다.
Philosophy has always transcended science and always will; for philosophy deals with causes while science deals with effects. A scientist observes the result of nature's work while a philosopher speculates as to its cause. Many things which philosophy has taught for thousands of years are to-day being demonstrated by science. The two should really go hand in hand; for one deals with causes and the other with effects. True philosophy and true science will some day meet on a common basis; and, working together, will give to the world a theology of reality. Then, indeed, will "God go forth anew into Creation."
철학은 과학이 지닌 한계를 항상 넘어서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왜냐하면 철학이 다루는 것은 과학처럼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는 자연의 활동의 결과를 관찰하는 반면 철학자는 그것의 원인을 살핍니다. 철학자들이 수천 년 동안 가르쳤던 많은 것들이 최근에는 과학자에 의해서 증명됐습니다. 하나는 원인을 다루고 있고 다른 하나는 결과를 다루기 때문에 이 둘은
정말 함께 발전해야만 합니다. 진정한 철학자와 진정한 과학자는 언젠가는 한 곳에서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함께 활동하면서
실체에 대한 신학적 이론을 제공할 겁니다.
그런 후에 정말로 “신은 새로운 창조로 나아갈” 것입니다.
A DEEP INQUIRY
깊은 탐구
The deep thinkers of antiquity as well as the philosophers of all ages have meditated long and earnestly on the nature of the Divine Being. Knowing that there could be but one Ultimate Reality back of all things, they have pondered deeply upon the nature of that Reality; and it is a significant fact that all of the greatest thinkers have come to about the same conclusion.
모든 시대의 철학자들뿐 아니라 고대의 깊은 사상가들도 신성한
존재의 본성에 대해서 깊고 성실한 명상을 했습니다. 만물 배후에는 하나의 궁극적인 실체(One Ultimate Reality)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들은 실체의 본성에 대해 깊게 사색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내린 결론이 같은 결론이었단 것을 우린 주의
깊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THE GREAT DIFFICULTY
커다란 장애물
The difficulty that has beset the path of true philosophy has been the necessity of explaining a multiplied Creation with a Unitary Cause. Nothing is more evident than that we live in a world of constant change. Things and forms come and go continuously; forms appear only to disappear; things happen only to stop happening; and it is no wonder that the average person, unused to trying to discover causes, is led to feel and to believe that there is a multiple cause back of the world of things.
진정한 철학자들이 그 실체를 연구하는 중에 만나게 되는 어려움은 단일한 하나의 원인자로 부터 수많은 창조물이 생겼다는 것을 설명하는 겁니다. 우리가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뚜렷한 진실은 없습니다. 사물들과 형체를 이룬 것들은 왔다가
가기를 계속 반복합니다. 형태들은 눈에 보였다가 이내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현상들은 일어났다가 이내 멈춰버립니다. 그래서
원인을 밝히려고 애써본 적 없던 일반인들이 현상세계의 배후에는 다양한 근원이 존재한다고 믿고 느끼는 것은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The philosophers of all times have had to meet the difficulty of explaining how one Cause could manifest Itself in a multiplicity of forms without dividing or breaking up the one. This has not been easy, yet, when understood, the explanation becomes very apparent.
근원 원인자(One Cause)가 그 본연의 자신을 나누거나 깨지 않고서, 어떻게 수많은 형태들로 나타낼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모든 세기의 철학자들에게 던져진 가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이해한다면 그 설명은 아주 명확합니다.
THE VOICE OF GOD IN CREATION
피조물을 통해 들리는 신의 음성
The argument has been something after this manner: The Ultimate Cause back of all things must be one, since Life cannot be divided against Itself; the Infinite must be one, for there could not be two Infinites. Whatever change takes place must take place within the one; but the one must be Changeless; for, being one and only, It cannot change into anything but Itself. All seeming change, then, is really only the play of Life upon Itself; and all that happens must happen by and through It. How do these things happen through It? By some inner action upon Itself. What would be the nature of this inner action? It could not be physical, as we understand physics, but would have to be by the power of the inner Word of Life; that is, the Voice of God, God standing for the First great and only Cause of all that Is.
논쟁은 이런 식으로 일어났습니다. 생명은 더 이상 쪼개질 수 없어야 하기 때문에 만물 배후의 궁극의 원인자(The Ultimate Cause)는 반드시 하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두 개의 무한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무한은 반드시 하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발생하는 어떤 변화도 반드시 그 하나의 근원 안에서 일어나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 하나의 근원은 변하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이고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존재가 될 수는 없고 언제나 하나의 근원상태여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변화처럼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은 단지 그 근원생명이 스스로에게 펼치는
활동일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은 반드시 하나의 근원에 의해서, 그리고 그 근원을 통해서 일어나는 겁니다. 어떻게 하나의 근원을 통해 모든 일들이 일어날 수 있나요? 그건 바로 내부의 활동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이 내부의 움직임의 속성은 무엇일까요?
그건 우리가 물리에서 배우는 물질적인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내부의 생명의 말씀의 힘에 의해서 일어나는 움직임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의 음성이고, 여기에서 신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 첫 번째의 위대함과 유일한 원인을 뜻합니다.
THE WORD OF GOD
신의 말씀
It is impossible to conceive of anything other than the Word of God being that which sets power in motion. This is why the Scriptures announce that,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All things were made by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thing made that was made." God speaks and it is done.
권능을 활동하게 하는 것은 신의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은 신과 함께였고 말씀은 신이었다. 모든 것들은 그에 의해서 지어졌고, 그가 없었다면 지어진 것 중 어떤 것도 지어지지 않았더라.” 신이 말하면 그것은 이루어집니다.
It is evident that First Cause must be Self-Existent; that is, It must be Causeless. Nothing came before That Which was First; and, while it may be a little hard to understand this, yet we can all grasp the fact that whatever the Being is Whom we call God, It must be Self-Existent.
첫 번째 원인자는 분명 자존(自存, 상위의 어떤 원인에 의지하지 않는다)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것보다 더 앞선 원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것 이전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상식적으로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라면 그 존재는 스스로 존재할 거라는 생각은 쉽게 하고 삽니다.
SPIRIT KNOWS ITSELF
스피릿은 스스로를 자각한다.
God speaks and it is done; but if God speaks, His Word must be Law. The Word of God is also the Law of God. God is Word, God is Law and God is Spirit; this is self-evident. We arrive at the conclusion that God, as Spirit, is Self-Conscious Life. That Spirit is conscious is proven by the fact that we have evidence of this consciousness strewn through all time and space. God must know that God Is. This is the inner meaning of the teaching of the "I AM," handed down from antiquity. "The Spirit is the Power that knows Itself," is one of the oldest sayings of time.
신이 말하자 그 일이 이루어진다고 했을 때, 신이 말한다면 그 신의 말씀은 분명 법칙일 겁니다. 신의 말씀은 또한 신의 법칙입니다.
신은 말씀, 즉 신은 법칙이자 신은 스피릿입니다. 이것은 아주 명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피릿으로서 신은 스스로를 자각하는 생명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스피릿이 의식을 가졌다는 것은 모든 시공간 속에 이 의식이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보면 금방 이해될 수 있습니다. 신은 분명 자신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태고로부터 주어졌던 “I AM”에 대한 내적인 가르침이 바로 이것입니다.
즉 “스피릿은 스스로를 인식하는 권능이다.”라는 것이 가장 오래된 격언입니다.
LAW, SERVANT OF THE WORD
법칙, 말씀의 종
Spirit knows Itself, but the Law is the servant of the Spirit and is set in motion through Its Word. It is known that all law is some form of universal force or energy. Law does not know itself; law only knows to do; it is, therefore, the servant of the Spirit. It is the way that the Spirit works; and is the medium through which It operates to fulfill Its purpose.
스피릿은 스스로를 인식하지만 법칙은 다릅니다. 법칙은 스피릿의 종이어서 스피릿의 말씀(신의 말씀)에 의해서 활동하게 됩니다.
모든 법칙은 우주의 포스 혹은 에너지의 어떤 형태라는 사실을
우린 압니다. 법칙은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만 압니다. 그래서 우린 그것을 스피릿의 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법칙은 스피릿이 활동하는 길이자 스피릿이 그 목적을 달성하는 매개체입니다.
Did God make law? As it is not possible to conceive a time when law did not operate, it is impossible to conceive that it was ever created; therefore, law must be coexistent and coeternal with Spirit. We might say that law is one of the attributes of Spirit.
신이 법칙을 만들었나요?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을 생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법칙이 언젠가 창조됐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법칙은 분명 스피릿과 항상
함께였고 함께 영원합니다. 법칙은 스피릿의 한 속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The Spirit operated through law which is some part of Its own Nature; therefore, all action must be some action of Spirit as Law. The Word of Spirit sets Its purposes in motion through the law; and since the law must be as Infinite as the Spirit, we could not think of a time when it was not, or a time when it would cease to be; neither can we imagine the law ever failing to operate when set in motion.
스피릿은 그 자신의 본성의 한 부분인 법칙을 통해 활동합니다.
그래서 모든 활동은 법칙으로서 스피릿의 활동임이 틀림없습니다. 스피릿의 말씀은 법칙을 통해서 그 목적을 활동하게 합니다.
그리고 법칙은 스피릿처럼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법칙이 없었던 시기를 생각하거나 그것이 앞으로 멈추게 될 시기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활동에 실패하게 될 법칙을 생각할 수도 없겠죠.
We have, then, an Infinite Spirit and an Infinite Law; Intelligence and the way that It works; God, working through Law, which is unfailing and certain.
그래서 우리는 무한한 스피릿과 무한한 법칙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근원적 지성과 그 지성이 활동하는 길을 갖고
있습니다. 그 지성은 바로 신이고, 신은 법칙을 통해 일하며 어떤 경우에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고 확실합니다.
FORMS OF SPIRIT OR CREATION
스피릿이 형태를 입다, 창조
Next, we come to the forms of Spirit, which forms we call matter. But what is matter? Science tells us that matter is eternal and indestructible; that, at first, it is an invisible cosmic stuff; and that it gradually takes form through some law working within it. The worlds were formed by the power of His Word. We know that right now worlds are being formed in the vast reaches of space, and worlds are also ceasing to be; that is, they are gradually losing their form. In this way Creation is eternally going on. This proves a definite purposefulness, a definite law set in motion to work out this purposefulness, and a definite form as the result of the operation of this purposefulness. In other words, it shows that there is an Intelligence inherent in the universe which knows what It is doing, and how to do it, and which knows why It does it; and that there is a law obeying Its will. It also shows that there is something upon which It operates. This "something" we will call matter in its unformed state. Perhaps this is "the ether" of science; it is impossible to say; but surely there is something upon which the Spirit works. The teaching of the great thinkers of all times is that we live in a threefold universe of Spirit, Soul and Body--of Intelligence, Substance and Form.
다음으로 이제 스피릿의 형체에 대한 차례입니다. 우린 이 형태를 물질(matter 여기서는 물리학의 물질이라는 의미보다는 에테르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물질이란 무엇일까요?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물질은 영원하고 불멸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 물질의 최초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 질료라고 합니다. 그래서 점차 그것이 법칙을 통해서 형태를 얻게 됩니다.
세상은 스피릿의 말씀(신의 말씀)에 의해 형체를 입었다고 창세기에서는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 세상들은 저 넓은 영역 안에서 형태화 되고 있고, 또 다른 세상들은 또 형태를 입기를 그만둬, 형체를 점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창조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 창조에는 하나의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동하는 하나의 뚜렷한 법칙이 있고,
이 목적의식의 활동의 결과로서 하나의 뚜렷한 형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른 말로 해보겠습니다. 이 우주에는,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 있고,
왜 그것을 하는지를 알고 있는 하나의 지성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뜻을 따르는 하나의 법칙이 있습니다.
또한 그 지성이 활동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린 그 무언가를
바로 아직 형체를 갖지 않은 상태에 있는 물질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과학자들은 이걸 “에테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라 부를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스피릿이 활동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전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우리가 스피릿, 영(Soul), 몸의
세 가지 우주 안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지성과 본질(Substance)과 형체(Form)의 우주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역주 : 형이상학자마다 쓰는 용어는 많이 다릅니다.
어니스트 홈즈와는 다르게 일반적으로 Soul을 하나의 개성을 갖춘 의식인 individual의 의미로 쓰고, spirit을 지성을 갖추지 못한
하나의 force로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어니스트 홈즈는 spirit를 하나의 지성을 갖춘 신과 동격의 단어로 씁니다.)
MEANING OF CREATION
창조란?
With this in mind, we shall be better able to realize that Creation does not mean making something out of nothing, but means the passing of Substance into form through a law which is set in motion by the Word of Spirit. Creation is eternally going on; for we could not imagine a time when the activity of Spirit would cease. It is "the same yesterday, to-day and forever."
이것을 마음에 간직한다면 우리는 이제 창조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했을 겁니다. 창조란 스피릿의 말씀에 의해서 활동하게 되는 법칙을
통해서 그 안에 담고 있는 본질(Substance)이 형체를 띠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창조란 영원히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피릿의 활동이 멈추는 때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제, 오늘, 영원 항상 같더라.” (히브리서 13장 8절)
The whole action of Spirit must be within Itself, upon the Law, which is also within Itself, and upon the Universal Stuff, or matter, which is also within Itself. The three must in reality be one; hence, "The Trinity."
스피릿의 활동 전부는 법칙을 기반으로 우주 질료, 즉 물질 위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스피릿의 활동 역시, 스피릿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법칙 역시 스피릿 안의 것이고, 물질 역시 스피릿 안의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셋은 실제로 하나이고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말합니다.
THE WORD ALONE IS CONSCIOUS
말씀만이 의식을 가진다.
One of the main facts to bear in mind is, that, of the three attributes of Spirit, the Word alone is conscious of Itself. The Law is force, and matter is simply stuff ready to take form. Since law or energy is proven to be timeless, that is, not added to or taken from; and since matter is known to be of the same nature, we have a right to suppose that both matter and law are coexistent and coeternal with Spirit. But Spirit alone is Conscious. Law, of itself, is only a force, and matter has no mind of its own. Law is not a thinker but is a doer, while matter cannot think but is thought upon.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스피릿의 세 가지 속성 중에서 말씀만이 홀로 스스로를 인식한다는 겁니다. 법칙은 단지 힘(에너지)일 뿐이고 물질은 형체를 입을 준비가 된 질료일 뿐입니다.
법칙, 즉 에너지는 시작도 끝이 없다는 것을 이미 증명했기 때문에, 그리고 물질 역시도 같은 성질이란 것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물질과 법칙이 스피릿과 함께 존재하고 함께 영원하다고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스피릿만이 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법칙, 그 자체는 단지 포스(에너지)일 뿐입니다. 그리고 물질은
그것 스스로 어떤 마음도 지닐 수 없습니다. 법칙은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실행하는 자이고(생각의 주체가 아니라 생각이 실행되는 매개체이고) 또, 물질도 스스로 생각할 수 없고 법칙 위의 상념일 뿐입니다.
THE THOUGHT OF GOD
신의 생각
ust what is meant by the Word of God? This must mean the Inner Consciousness, or Self-Knowingness, of Spirit; the Thought of God. The word "thought" seems to mean more to us than any other word; it seems to cover the meaning better, for we know that thought is an inner process or consciousness.
신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스피릿의 내적인 의식 혹은
스피릿의 자각, 즉 신의 생각을 뜻할 겁니다. “생각”이란 단어는
어떤 다른 단어보다 많은 뜻을 가진 듯 보입니다. 생각은 내적인
과정 혹은 내적인 인식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은 더 좋은 뜻을 포함하는 듯합니다.
The Thought of God must be back of all that really exists, and, as there are many things that really exist, there must be many thoughts in the Mind of the Infinite. This is logical to suppose; for an Infinite Mind can think of an infinite number of ideas. Hence the world of multiplicity or many things. But the world of multiplicity does not contradict the world of Unity; for the many live in the one.
신의 생각은 분명히 실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배후일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많은 사물들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무한한 마음 안에는 많은 생각들이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무한한 마음이 무한히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당연한 이성적 결론입니다. 따라서 다양하게 많은 세상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다수의 세상이 있다는 말이 전체를 포괄하는 단일한 하나의 실체만이 존재하는 말과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의 근원 안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ETERNAL CREATION
영원한 창조
There may be confusion in the minds of men but not in the Thought of God; and so we have a universe expressing the limitless Ideas of a Limitless Mind, and without confusion. We have, then, a Cosmic World, and an infinite and endless Creation. This is the inner meaning of those mystic words, "World without end." Creation always was and always will be. Things may come and things may go, but Creation goes on forever; for It is the Thought of God coming into expression. This is, indeed, a wonderful concept, for it means that there will always be a manifestation of the Divine Ideas. We need not worry about whether it will ever cease; it cannot cease so long as God exists; and since God will be forever, there will forever be some kind of manifestation.
인간의 마음속에는 혼란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신의 생각 안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계 없는 마음(Limitless Mind)의 무한한 생각들을 표현하는 하나의 우주를 갖고 있고, 그것에는 어떤 혼란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무한하고 끊임없는 창조를 하는 우주세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끝없는 세상”이라는 신비적인 문구의 내밀한 의미입니다. 창조는 항상 계속 되어 왔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루어질 겁니다. 어떤 것들은 다가오고 어떤 것들은 또 사라지지만 창조는 언제나 영원히 계속됩니다. 바로 그 창조란 것이 계속 표현되는 신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경이로운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의 이상의 실현이 언제나 있을 것이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조가 언제 멈추게 될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이 존재하는 것을 멈출 때에만 창조가 멈추게 될 것인데 신은 언제나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의 이상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게 한다는 뜻의 창조는 언제나 계속될 겁니다.
THE UNIVERSE IS ALIVE
살아 있는 우주
The universe is alive with action and power, with energy and life. We touch it only in parts, but from these parts we do catch a glimpse of the nature of the Whole. "He hath not left Himself without a witness." 7 Modern science is revealing many things that the great thinkers of the ages have announced. one of them is that matter is in a constant state of flow; it is like a river flowing in, out and on; it is operated upon by an unseen force or law and takes its form through some agency which science supposes to be the Will and Purpose of Spirit. This we call the Word. All things were made by the Word.
우주는 움직임과 힘을 가진 채, 에너지와 생명을 가진 채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그 거대한 우주를 다 접해보지는 못하고 단지 아주
작은 부분만을 느껴보겠지만 우리는 정말 그것으로부터 우주 전체를 힐끗 보게 됩니다. “그분은 증인이 없이 그 자신을 홀로 남겨두지 않았더라.” 세기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공언했던 수많은 진리들을 현대의 과학자들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 발견들 중 하나는 물질은 끊임없이 유동적인 상태에 있다는 겁니다. 마치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강물처럼. 그것은 보이지 않는 힘과 법칙에 의해서
작동되면서 과학자들이 스피릿의 의지와 목적으로 가정한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 형체를 띱니다. 이것을 우리는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들은 말씀에 의해서 창조됩니다.
CONCLUSION
결론
To sum up: There is a power in the universe which acts as though It were Intelligent and we may assume that It is. There is an activity in the universe which acts as law. We know this to be true. And there is a formless stuff in the universe, forever taking form, and forever changing its form; this also is self-evident. We have every right, then, to assume that there is a threefold nature of Being which we will call Spirit, Soul and Body. We will think of the Spirit as the great Actor, the Soul as the medium of Its action, and the Body as the result of this action. We will think of Spirit as the only Conscious Actor, the only Power that knows Itself. We will think of Soul as a blind force, obeying the Will of Spirit; and we will think of Body as the effect of the Spirit, working through law, thus producing form. We will say that neither the Law nor the stuff from which form comes has any conscious intelligence, but must, because of its nature, take the form of the Word. This simplifies the whole matter and enables us to see that in the entire universe one Power Alone really acts, the Power of the Word of God.
요약해보면, 우주에는 마치 지성을 갖추고 있는 존재처럼 활동하는 하나의 권능이 있고,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에는 법칙에 의해서 작동되는 활동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진실인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주에는 형체를
띠었다가 이내 다시 변화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 형체 없는
질료가 있습니다. 이것 또한 자명한 진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존재의 본성은 스피릿, 영, 육신이라는 세 가지의 본성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당연히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또 우리는 스피릿은 가장 커다란 행위자로 생각해볼 수 있고, 영은 그 활동의 매개체로 볼 수 있고, 육신은 그 활동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피릿을 의식을 지닌 유일한 행위자, 스스로를 인식하는 유일한 권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영이란 것은 스스로의 분별력을 갖추지 못한, 스피릿의 의지를 따르는 하나의 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피릿의 결과로서 육신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법칙을 통해 활동하면서 형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압니다. 또 법칙이나 형체가 생겨나는 질료는 어떤 의식적인 지성을 갖추지 못하고 그 본성상 말씀의 형체를 취해야만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 전체를 간단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이 우주 전체에는 오직 하나의 권능만이 실제로 활동하고 있고, 그것은 신의 말씀의 권능이란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The chart in lesson one of this series is an attempt to portray the Threefold Nature of the Universe; to show how the Spirit, acting through Law, becomes Form; for this is the inner meaning of Creation.
이 시리즈에 실린 차트는 우주의 세 가지 본성을 표현한 것으로
법칙을 통해 활동하는 스피릿이 형체를 띠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의 내적인 의미입니다.
The Science of Mind, by Ernest Shurtleff Holmes [1926], at sacred-tex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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