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공간

<능가경(楞伽經)과 능엄경(楞嚴經)> amisan511에서 퍼온 글

수선님 2020. 2. 23. 12:08

<능가경(楞伽經)과 능엄경(楞嚴經)>

능가산을 배경으로 능가경을 설하는 붓다

<능가경>과 <능엄경>, 이 두 경전의 이름이 비슷해서 초심자는 혼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능가경>은 유식계통의 경전이고, <능엄경>은 능엄주(楞嚴呪)와 백산개다라니(白傘蓋陀羅尼)로 유명한 밀교계통의 경전이다. <능가경>은 세존과 대혜(大慧, Mahāmati) 존자 간의 문답이고, <능엄경>은 세존과 아난(阿難陀, Ananda) 존자와의 문답이 주요내용이다.

(1) 능가경(楞伽經, 산스크리트어 Lankavatara-Sutra)

<능가경>은 능가산(楞伽山)에서가 설한 경전이라는 말인데, ‘능가(楞伽)’라는 말은 도달하기 어렵고(不可到), 들어가기 어렵다(難入)는 뜻이다. 이는 여래의 심오한 경지는 도달하기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말해 놓은 것이다. <능가경>은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열반경>, <승만경>, <해심밀경> 등 여러 경전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풍부하게 받아들여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는 경전이다. 따라서 일관된 사상의 전개가 아니라 대승의 여러 가르침의 요지를 두루 모은 듯해 경 전체의 흐름이 불연속적이다. 그러나 기본 취지는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유심(唯心)을 체득해 자내증(自內證)하라는 가르침이다

원제는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이고, 줄여서 <입능가경(入楞伽經)>, 또는 <능가경>이라 한다. 유식유가행파에 영향을 주었으며, 선(禪)의 철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래서 참선하는 경이라 해서 선경(禪經)이라고도 한다.

4세기경에 형성된 듯한데, 일부는 그 이전에 형성된 듯하다. 구성은 붓다가 나바나왕(羅婆那王)의 권청에 의해 랑카(楞伽:현재의 스리랑카)에 건너가 스리랑카 능가산을 배경으로 불제자 중 대표적인 질문자인 대혜(大慧, Mahāmati)의 물음에 대해 대승불교의 여러 교설을 설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대혜와 세존이 질문하고 응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능가경> 한역본으로는 현재 세 가지가 전한다.

• 유송(劉宋)시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번역한 <능가아발타라보경(楞伽阿跋陀羅寶經)-4권>, 일명 송역(宋譯)이라 한다.

• 북위(北魏)에서 보리유지(菩提流支)가 번역한 <입능가경(入楞伽經)-10권>, 일명 위역(魏譯)이라 한다.

• 당나라시대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7권>, 일명 당역(唐譯)이라 한다.

이 중에서 유송시대 구나발타라역본이 가장 원초적인 형태를 전하고 있지만 완역본이 아니다. 따라서 널리 읽히는 것은 보리유지가 번역한 <입능가경>과 실차난타가 번역한 <대승입능가경>이다. 우리나라에선 신라 때에 <입능가경>이 가장 많이 유통됐고, 최근에는 7권본의 <대승입능가경>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

• 그 외에 법성(法成)에 의해 번역된 티베트역이 현존한다.

• 또 한역본으로는 담무참(曇無讖)의 <능가경-4권>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원효(元曉) 대사가 중국의 많은 주석가들에 앞서서 이 경의 중요성을 이해해 널리 인용했다. 이에 관한 원효 대사의 주석서로서는 <능가경소(楞伽經疏)>, <능가경요간(楞伽經料簡)>, <능가경종요(楞伽經宗要)> 등이 있었으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존하는 원효 대사의 저술들 속에는 <능가경>이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어 그 중요성이 입증된다. 원효 대사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유통된 적은 없지만, 최근에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 경전의 현존하는 판본으로는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속의 것과 조선 후기에 사찰[용복사(龍腹寺)]에서 간행한 것들이 있다.

<능가경>의 핵심 사상은 "잠재의식"과 "종자식"이다. 사람이 어떤 사상(事象)을 만났을 때, 언제 한번 본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것은, 과거세에 그러한 인연이 있었는데, 비록 자신의 영혼이 과거에 죽었어도, 마치 식물의 씨앗인 종자가 남아 이것이 자라듯이 모든 사람들에겐 과거세의 종자가 남아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을 종자식(種子識-아뢰야식)이라 한다. 이렇게 자신의 잠재의식과 종자식을 관해 유식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 그리고 이것을 "선관법(禪觀法)"으로 수행해 체득하겠다는 것이 바로 선종의 좌선이다. 이 방법은 그야말로 오랜 세월을 거쳐 고도의 수행단계가 설정돼야 한다는 것이 <능가경>의 요지이다. 그리고 이것을 일러 점차 수행을 통해 깨닫는다고 해서 점오(漸悟)라 한다.

특히 <능가경>이 다른 불교사상과 관련해서 내용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여래장(如來藏)사상과 아뢰야식사상을 결합시킴으로써 후대 <대승기신론>사상의 선구가 됐다. 여래장과 아뢰야식이 하나라는 말이다. “요컨대 미혹의 세계가 벌어지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한 것이 유식사상이라면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가능성과 그 근거를 설명한 것이 여래장사상이고, 바로 그것을 설한 경전이 <능가경>이다.”- 계환 스님

• 8가지 마음의 작용[팔식(八識)]을 설하고, 세 가지 자성(自性), 즉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 등을 밝히고 있는데, 이를 유식삼성(唯識三性)이라 한다. 이러한 점은 <해심밀경> 등 유식계통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후기의 유식학설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 중관과 유식사상을 함께 설하고 있다.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교설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방편에 불과하고, 실은 오직 일불승(一佛乘) 뿐이라는 것을 설해,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사상에 귀착시키고 있다.

• 달마 대사가 처음 중국에 건너왔을 때 이 경을 ‘여래심지(如來心地)의 요문(要門)’이라 해서 이를 의지해 수행의 지침을 삼도록 했다. 그리하여 초조 달마가 2조 혜가(慧可)에게 심인(心印)을 전해 줄 때에 <능가경> 4권을 전했다고 한다. 또한 달마 대사가 중국에 와서 세운 초기 선종을 ‘능가종’이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이 <능가경>이 선종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반증하는 예라 할 수 있다.

• 선경(禪經)으로 인정 받아오다가, 5조 홍인(弘忍) 대사에 이르러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능가경> 대신에 간명한 내용으로 돼있는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도록 권해 다시 <금강경>이 선수행의 큰 역할을 하게 됐다. 따라서 5조 홍인(弘忍) 대사 이전에는 <능가경>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 특히 이 경이 강조하는 것은, 중생의 어리석음의 근원은 무한한 과거로부터 쌓아 온 습기(習氣)로 인해 모든 것이 오직 자기 마음의 드러난 바를 알지 못하고 일체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 의식의 본성이며, 이것을 철저하게 안다면 주객관의 모든 대립을 벗어나 무분별의 경게에 이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 <능가경>은 <십지경(十地經)>, <해심밀경(解深密經)>과 더불어 대승불교 유심사상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경전이며, <금강경>, <원각경>, <능엄경>과 함께 선종에서 매우 존중되고 있다.

선을 닦아야 여래의 심지를 얻는다고 했다. 때문에 경전 속에서 설해지는 여러 가지 교설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만이 비로소 획득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견해는 <능가경>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입장임을 알 수 있다.

• <능가경>의 중요한 교의의 하나는 장식(藏識-아뢰야식)의 설명이다. 4권 경의 첫 품인 ‘일체불어심품’에는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 결국 마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면서 일체 현상을 낳는 신비로운 마음을 장식이라 말하고 있다. 모든 사물과 현상의 근원이 되는 마음은 일체 정신작용을 저장하고 있는 창고와 같은 것으로 이것이 바로 장식(아뢰야식)이라 했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오직 장식 밖에 없으며 나머지 모든 것은 장식이 나타내 놓은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 했다.

장식이 모든 것을 낳는 것은 마치 큰 바다가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고 하고, 사람들이 장식을 모르는 것은 파도만 보고 바다 전체를 알지 못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 장식의 신비로운 이치를 깨닫기 위해 선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선을 넷으로 구분 설명하고 선을 닦아야 여래의 심지를 얻는다고 했다.

• <능가경>에서 선의 단계를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 관찰의선(觀察義禪), 반연진여선(攀緣眞如禪),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는 4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 기준이 바로 무아(無我)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관점에다 두고 있다.

• <능가경>은 대승불교 중에서도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서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에 입각해 그 이전의 여러 학파의 설을 풍부하게 채택하고, 이들 학설이 종교경험과 어떻게 맺어져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오법(五法), 삼성(三性), 팔식(八識), 이무아(二無我) 등 대승경전에 나오는 여러 사상들을 종합 융화하고 있다.

※유식삼성(唯識三性)---모든 법의 모습을 세 가지로 나눈 것으로, 삼성(三性)은 인식의 범주를 세 가지로 분류했음을 말하는데, 이를 인간에 적용할 경우, 중생의 세 가지 마음의 성품(性品) - 인간성을 말한다.

①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 인간은 아집과 법집 등의 번뇌를 야기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설명한 것이다. 즉, 중생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치우치게 보고 집착한다. 사실은 없는 것인데 착각해서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② 의타기성(依他起性) - 인간의 정신생활과 그 밖에 있는 외부의 물질계를 포함한 모든 자연계는 유일한 원인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다인(多因)과 다연(多緣)이 집합해 성립했음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즉, 의타기성은 말 그대로 다른 것에 의지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삶이 이런 것이고, 우리가 보통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다.

③ 원성실성(圓成實性) - 원성실성은 중생의 망상분별을 떠난 참다운 성품자체를 말한다. 즉, 원만성취가 이루어진 무한 공덕을 갖춘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말한다. 모든 것이 평등한 진여 그 자체가 원성실성이다. 말 그대로 원만하게 이루어진 실다운 성품이라는 뜻으로, 모든 존재의 바탕이 되는 참다운 성품(性品)을 이르는 말이다.

※능가경 사종선(四種禪)---<능가경>에 제시한 4종선을 말한다.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 관찰의선(觀察義禪), 반연여선(攀緣如禪), 여래선(如來禪) 등 네 가지이다.

①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 - 성문, 연각, 외도 등의 수행자들이 인무아(人無我)를 관찰함에 있어서 무상과 고의 부정에만 집착하는 것인데, 이는 관(觀)과 다르지 않으니 상(想)이 제거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어리석은 범부(소승불교도 및 외도)들이 행하는 선이라고 이름 한 것이다.

② 관찰의선(觀察義禪) - 의미를 관찰하는 선정으로서 공관의 선정, 법무아(法無我)를 관찰해 점차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③ 반연여선(攀緣如禪) - 진리에 안주해 망상을 낳지 않는 선정, 망상이 생하지 않는 진여에 입각한 선을 말한다.

④ 여래선(如來禪) - 여래지(如來地)에 들어가서 자각성지상(自覺聖智相)의 3종 낙주(樂住)를 얻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삼매를 포괄하는 최고의 선정. 자각성지상(自覺聖智相)이란 보살 마하살이 홀로 고요한 곳에서 스스로 깨닫고 관찰하며 다른 것으로 말미암지 않나니 망상을 떠나서 더더욱 위로 승진(昇進)해 여래지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2) 능엄경(楞嚴經, 산스크리트어 Śũraṅgama-sũtra)

원제는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印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이라는 긴 이름이지만,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 더 줄여서 <수능엄경>, 더 줄여서 <능엄경>이라 약칭하고 있다.

<능엄경>은 인도의 나란다사(那爛陀寺)에 비장된 이후로 인도 안에서만 유통시키고 타국에는 유출하지 못하도록 왕명으로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당나라 이전까지는 중국에 전래되지 못하다가 당(唐) 중종(中宗) 때인 705년 인도 승려 반랄밀제(般剌蜜帝)에 의해 전래되고 방융(房融)과 함께 한역됐다고 한다.

그러나 내용으로 봐서 중국에서 많이 가필돼 오히려 중국에서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AD 720년경 중국 선종에서 찬술한 위경(僞經)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경이 우리나라에 언제 전래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서도 존숭돼, 고려 및 조선 시대에 걸쳐, 한문본과 언해본이 여러 차례 간행됐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판본도 아주 다양하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고려 고종 때 간행한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에 수록돼, 해인사에 그 목판이 전하고 있으며, 조선 초기에는 세조의 불경간행 사업에 의해 간경도감본(보물제1515호)를 비롯해 여러 언해본, 한문본 등 10개의 판본이 전래되고 있다.

<능엄경>은 우리나라 불교 신행(信行)에 크게 영향을 미쳐왔으며, 현재 우리나라 전문 강원에서는 <금강경>, <원각경>, <대승기신론>과 함께 4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채택돼 있다.

• 경의 의미는, 무한히 큰 절대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이 되기 위해 닦는 보살들의 완전무결하고 견고한 육도만행(六度滿行 - 육바라밀을 완전하고 원만하게 수행하는 일) 수행법을 설한 경이란 말이다.

• 원래 경 이름에서 대불정(大佛頂)의 대(大)는 바탕이 크고 두루 하다는 의미이고,

• 불정(佛頂)은 마지막 깨달음을 뜻하며, 밀인(密因)은 비밀하게 숨어 있는 원인 또는 종자를 말하는 것이다.

• 수증(修證)은 그 밀인을 수행해 증득한다는 뜻으로 55단계 보살행을 닦아서(修) 마지막 깨달음을 성취함(證)을 말한다.

• 요의(了義)란 진리를 끝까지 사무치게 추구해 그 열매를 거두어들여 걸림 없는 경지에 이름을 말하며,

• 제보살만행(諸菩薩萬行)은 보살이 55단계의 과정을 통과하고 깨달음을 증득(證得)하기 위해 수억 겁의 긴 기간 동안 수많은(萬) 이타행(利他行)을 수행(修行)해 보리를 성취한다(行)는 뜻이다.

• 수능엄의 수능(首楞)은 산스크리트어 수랑가마(Śũraṅgama)를 음역한 것으로서, 온갖 일이나 이치를 다 통달해서 구경(究竟-최종의 극치)을 성취함을 뜻하고, 엄(嚴)은 지극히 견고함을 뜻하므로, 수능엄(首楞嚴)이란 온갖 일을 다 끝내서 견고히 성취함, 온갖 삼매의 깊고 낮은 갖가지 진리를 다 성취해서 안다는 의미가 된다. 이와 같이 모든 것에 구경이고, 견고한 것이 수능엄인데, 이것은 바로 불성(佛性), 여래장성(如來藏性)을 의미한다.

• ‘능엄(楞嚴)’이란 용맹스러운 행위, 또는 아주 건전한 행위, 건사한 분별, 건전한 분별력, 이런 뜻이다. 이와 같이 아주 건전한 사상을 가진 사람의 분별력을 ‘능엄(楞嚴)’이라고 한다.

이 경은 밀교계통 경전이며, 부처님 말씀을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해 얻는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아난(阿難陀) 존자가 점심 공양을 받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등가(摩登伽)’라는 처녀에게 물 한잔을 얻어 마시게 되는데, 그녀는 아난 존자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바라문 여인 마등가는 집에 돌아와 주술을 잘하는 어머니를 졸라서 결국 아난 존자로 하여금 집으로 오게 만들어버린다. 그때 붓다께서는 천안통(天眼通)으로 아난 존자가 마도(魔道)에 걸려서 위기에 처한 것을 아시고 ‘능엄주(楞嚴呪)’를 외워서 구출해 내었다. 그 후 아난은 마등가의 유혹에 홀린 것이 자신의 수행부족임을 알고, 세존께 도를 닦는 방법을 여쭙게 됐는데, 그때 세존과 아난 존자와의 문답이 <능엄경>의 주요내용이다.

선정의 힘과 백산개다라니(白傘蓋陀羅尼)의 공덕력을 찬양하고, 이 다라니에 의해 모든 마귀장을 물리치고 선정에 전념해 여래의 진실한 경지를 얻어 생사고뇌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후 목적임을 밝혔다.

이 경은 밀교사상이 가미돼 밀교적인 색채가 짙지만 선정(禪定)이 역설돼 있기 때문에 밀교 쪽보다는 선가에서 환영을 받아 중국에서 이 경의 주석은 모두 선문에 의해 이루어졌다.

<능엄경>은 천태, 화엄, 유식, 밀교, 선종, 정토 등 여러 불교사상을 수행의 입장에서 회통시킨 경전이며, 그 내용이 붓다가 여러 경전에서 설한 것을 총정리한 것이기에 다른 경전에서보다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며 총체적인 수행서라 할 수 있다. 전체 10권으로 이루어졌는데, 제7권에서 능엄신주(楞嚴神呪)를 설명하고 있으며, 제8권에서는 보살의 수행단계로 57위(位)를 설하고, 제10권에서는 오음(五陰)의 근원을 설하고, 경을 마친 뒤 이 경의 공덕에 관해 부언하고 있다.

<능엄경(楞嚴經)>을 바탕으로 공부하는 참선수행법에 능엄선(楞嚴禪)이 있다. <능엄경>에서 설하는 25가지 수행방법인 이십오원통(二十五圓通) 중, 25번째 관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 수행법이 그 핵심 내용이다.

‘이근원통’이란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眼耳鼻舌身意) 6근 가운데 이근(耳根, 귀, 청각), 즉 귀로 듣는 소리를 자각하는 수행법이다. 소리를 들을 때 듣는 자, 즉 무엇이 듣는지 그 자성(본성)을 깨닫는 이치로, 이것을 반문문자성(反聞聞自性) 또는 반문문성(反聞聞性)이라고 한다. 들은 것을 되돌려서(反聞) 자신의 자성, 자신의 본성이 듣게 해(聞自性) 자각함으로써 번뇌를 잊고 불성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능엄경>에서는 이근(耳根) 하나가 원통해지면 나머지 5근도 모두 원통해져서 해탈을 이루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원통(圓通)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안근(眼根)이나 비근(鼻根)이 아닌 이근이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눈은 담장 밖의 것을 보지 못하고, 입과 코도 마찬가지며, 몸은 접촉하는 대상과 합해야 앎이 생기고, 마음과 생각은 분잡해서 단서가 없지만, 이근은 담장에 막히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모두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오직 이근만이 전체를 통하는 진실한 것이다. 이근이 탁 트여서 원통해지면 나머지 5근도 모두 원통해져서 각각 자성을 반조해 불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근원통 수행은 바깥에서 나는 소리(外耳聲)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소리(內耳聲)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바깥의 소리란 바람소리, 물소리, 또는 타인이 염불, 독경하는 소리 등에 집중하는 것이다. 흔히 물가 바위 위에서 스님들이 좌선을 하는 것도 이에 연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소리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즉 다라니나 나무아미타불 등 염불소리, 독경소리를 자신의 본성이 듣는 것이다. 즉, 자기 목소리를 자기가 들음으로써 ‘누가 이 소리를 내고 누가 이 소리를 듣는가?’, ‘듣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자각을 통해 번뇌를 단절하고 자성이 곧 불성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능엄선 수행법은 처음에는 소리에 집중(觀)하고, 그 다음에는 ‘돌이켜서 듣는 그 놈을 자성이 듣는(반문문성)’ 것인데, 중국 명ㆍ청(明淸) 대에 형성된 염불시수(念佛是誰-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 화두도 ‘반문문자성(反聞聞自性)’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인가라는 반문을 통해 본래면목을 깨닫는 것이다.

<능엄경>에서는 ‘이근원통 반문문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아난아! 소리도 사라지고 메아리도 없어지게 되면 너는 들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은 것이 없다면 듣는 성품(자성)이 이미 없어져서 고목과 같을 것이니, 종(鐘)을 다시 친들 네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있음과 없음을 아는 것도 그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너에게서 그 듣는 성품 자체가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듣는 것이 참으로 없다고 한다면 무엇이 있어 그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 저절로 소리가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지, 소리가 생겼다가 없어짐이 너의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은 아니니라.”

선불교에서 <능엄경>을 중시한 것은 중국 송(특히 남송) 대부터로 선원에서 선승들이 능엄주를 외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능엄주를 외우면 보다 쉽고 빠르게 능엄삼매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불교에서 <능엄경>을 강조한 이는 고려 중기 청평거사 이자현(李資玄)이 있으며, 근ㆍ현대에는 용성(龍城) 스님과 성철(性徹) 스님께서도 <능엄경>을 중시해 제자들에게 능엄주를 외우라고 강조하셨다. 능엄주(楞嚴呪)에 마음을 집중시켜 능엄삼매를 얻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이다.

※ 백산개다라니(白傘蓋陀羅尼) - 백산개는 흰 비단으로 덮개를 만든 양산으로서 왕위를 상징하는데, 불지공덕(佛智功德)이 수승함을 전륜성왕에 비유한 것이다.

※능엄신주(楞嚴神呪)---원명은 대여래불정능엄신주(大如來佛頂楞嚴神呪)인데, 줄여서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 더 줄여서 능엄신주 혹은 능엄주라 한다. <능엄경> 10권 중 제7권에 능엄신주가 실려 있다. 능엄경과 능엄신주 관계는 천수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 관계와 비슷하듯이 경의 핵심이다.

특히 성철 스님이 선방에서 참선하는 수좌들과 신도들에게 능엄신주 기도를 시켜서 유명해졌고, 지금도 성철 스님이 주석했던 해인사 백련암에서는 새벽기도 때 능엄신주를 독송하고 있다. 능엄주(楞嚴呪)에서 능엄이란 말이 ‘용맹’이라는 의미여서 능엄주가 좋지 않은 것, 내가 살아가는데, 또 공부하는데 장애가 되는 그런 마(魔)의 요소들을 쳐부순다든지, 항복을 받는다든지 하는 그런 의미가 이 ‘용맹’이라고 하는 뜻 속에 포함이 돼 있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시산회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yc012175/15945004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