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

[뇌과학과 불교수행] ⑤ 제임스 오스틴(James Austin Ph.D.) - 선 체험으로 자아의 소실과 융합을 경험한 신경학자 / 이성동

수선님 2020. 4. 19. 13:06

[뇌 과학과 불교 수행, 그리고 심리치료]

이성동|정신과 전문의



 

<월간 불교와 문화>연재


 

⑤ 제임스 오스틴(James Austin Ph.D.)

선 체험으로 자아의 소실과 융합을 경험한 신경학자

불교의 선 체험과 뇌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현대의 뇌 과학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전통적인 입장에서 보면 뇌 과학이라는 자연과학적 입장만으로는 선적 체험의 전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스틴은 이에 도전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선적 체험이라는 주관적인 마음의 심상과 뇌 과학적 규명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다고 한다.


오스틴은 누구인가?


오스틴은 신경과 임상 의사로서 선 불교에 해박하면서도 실제 그 자신이 선 명상과 수행에 아주 열심인 학자다. 그는 하버드대학교 메디컬 스쿨 출신으로서 신경과 수련은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에서 받았다. 이후 대학에서 진료와 연구를 하였고 현재는 콜로라도 헬스 사이언스 센터의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스틴 연구의 특징은 그 자신의 명상 체험이 과학적 연구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주저인 『젠 앤드 브레인(Zen and Brain)』에 의하면 자신의 불교 체험은 안식년에 일본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일본 방문에서 처음 마음이 끌린 것은 미학적인 교토의 사찰과 정원이었다. 사찰과 정원에 스민 일본 선 불교의 향기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후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은 일본 임제종 선사인 코보리 스님과의 만남이었다. 그 스님과의 만남에서 오스틴은 불교 선의 정수를 맛보는 체험을 하게 되고 이 체험은 이후 신경과학과의 연관성 연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된다.


오스틴은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였지만 정통적인 기독교는 아니었다. 정통 교리인 삼위일체론을 거부하는 유니테리안파였다. 그 종파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신성만을 인정하였다. 이런 종교적 분위기 아래에서 또한 아마추어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색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갖고 성장하였다. 이런 예민한 색채 감각은 이후 견성에서 보이는 색채의 소실에 대한 체험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의사가 된 이후에는 임상 신경과 의사로서 환자 진료에도 열심히 임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자연과학자로서 그리고 임상 의사에 머문 것만은 아니었다. 선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뇌 과학과 선 체험의 연관성에 대한 깊은 공부를 하게 된다.

연구 배경


일본에서 코보리 선사의 영향을 받는 그는 지속적으로 선 명상 수행을 하였다. 그러면서 우연한 기회에 견성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러한 견성 체험은 이후 이루어지는 뇌 과학과 선 체험 연구에서 핵심적인 바탕을 형성하게 된다.


오스틴은 자신의 저서 『젠 앤드 브레인』에서 그 체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내가 겪은 그 사건은 이틀간의 집중 수행 기간 중 두 번째 날 오전 9시에 일어났다. 텅 비어있는 열차 승강장 너머 런던 하늘을 저 멀리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의식의 변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이전에 갖고 있던 신체적 및 정신적 자아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세 가지 새로운 체험들, 즉 절대적 실재, 내재적 정당성, 궁극적 완벽성이 이런 세상적인 기차역, 멀리 보이는 외부 환경, 저 너머 하늘의 모습을 순식간에 변환시켜버렸다. 절대 실재, 내재적 정당성, 궁극적 완벽성은 보이는 모든 것에 침투하였다. 연한 청회색 하늘과 도시 풍경의 모든 색은 방금 전의 것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낮 풍경의 세부적인 모습도 더 자세히 보이거나, 덜 자세히 보이는 것도 없는 듯하였다.


그다음 이런 자아가 사라진 거울 같은 첫 단계가 깊어져가면서 신선한 통찰의 두 번째 파도가 밀려들어왔고 이것은 첫 단계와 포개졌다. 이것은 시간, 공포, 습관화된 행동 욕구의 모든 뿌리를 녹여버렸다.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영원성, 공포의 완벽한 소실, 모든 행동 욕구의 상실, 지속된 깊은 평화의 자연스러운 뒤섞임이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조화된 궁극적 실재의 편재는 아무런 언어 없이 깊게 체험되었다.


견성의 이런 두 단계가 거의 끝날 때 무렵에서야 후기 시각 단계가 갑자기 시작되었다. 동시에 내장 속 깊숙이 느껴지는 차가운 텅 빔-자아, 시간, 공포, 행동 욕망이 모두 텅 비워진-이 모든 감정적인 요소를 떠나서 온몸을 깊이 휩싸 안았다. 그때였다. 휙 하고 흘러가는 순간 자아가 사라진 나는 이런 풍경들이 달빛에 잠겨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달빛 단계는 왔다가 지속해서 흘러가다가 그리고 사라져버렸다.”


신경과 의사로서 수련을 받은 그는 위에서 언급한 자신의 체험을 깊게 마음에 새기면서 평생에 걸쳐 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이런 연구의 결과는 1998년 『Zen and the brain: toward an understanding of meditation and consciousness』(MIT Press)이라는 방대한 저서로 나타났다. 이 책에서 그는 신경과학적인 지식과 자신의 명상 수행 체험의 연관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런던의 지하철에서 체험한 자아 소실의 순간에는 자아가 사라지는 것과 함께 시공간의 소실 또한 선적 체험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서 그는 자아라는 현상은 뇌 과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며, 또한 자아의 소실은 뇌에서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가라는 문제를 파고들어갔다.

연구 성과


뇌 과학과 명상의 연구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연구 방향은 명상의 상태에서 뇌는 어떤 변화를 겪는지에 대한 연구들이다. 이는 물론 상당한 정도의 진척이 있었다. 오스틴의 연구가 다른 연구자들과 다른 독특한 점은 자신의 명상 수행 체험이 연구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고, 그때 체험한 자아의 소실이라는 문제, 그리고 시공간의 소실이라는 문제, 또한 견성이후의 이상 체험 등(예를 들면 달빛 아래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 색채 감각의 소실 등)에 대한 뇌 과학적 설명을 이론적으로 밝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스틴에 의하면 우리의 자아라는 것이 형성되는 데 깊이 관여하는 뇌 부위는 중요한 네 가지 부위라고 한다. 그 부위는 뇌의 내측 후부 두정 피질 후부와 외측 피질 영역들과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 및 배내측 전전두엽 피질이다. 기저적 자아 형성은 뇌가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활발한 활동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처럼 유지되는 자아가 명상의 일정한 단계에서 소실되고 이와 동시에 시공간의 소실 또한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면서 견성의 순간 일어나는 여러 정신적 현상을 단계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이에 따른 뇌 변화의 상태를 추정하고 있다.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생각한다. 즉 범주 I, II, III, IV이다. ‘범주 I’은 합일과 융합의 정신세계 체험에서 생기는 통찰인데, 이것은 오스틴이 견성 시 체험한 것이라고 한다. 이 범주 I은 다시 A와 B 단계로 나누어진다. 아주 초반 단계인 ‘단계 A’는 견성의 아주 초기 단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단계 B’는 ‘단계 A’의 몇 초 후에 일어난다. 단계 B는 다소 진전된 단계다. 자신이 체험한 통찰의 두 번째 파도에 해당되는 단계다.


통찰의 다른 범주 II, III, IV에 대한 논의는 ‘잠정적’이다. 왜냐하면 이 범주들에 대해서는 오스틴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 없기 때문에 그 범주의 내용과 형식에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범주 II, III, IV 에 대한 논의들은 ‘잠정적’이고 추정적이다.


범주 II는 견성에서 볼 수 있는 ‘일원성’의 ‘의사-신체적(quasi-physical)’ 체험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이런 하위 유형은 자아의 (잔존적) 신체적 구성물을 의식의 보다 큰 개방 영역으로 ‘함입하는’ 체험으로 보인다. 범주 III의 ‘일원성’ 체험은 개인의 정신 영역에 기인되는 포괄적이고 직관적이고 창조적 기능에서 발생한다. 이런 하위 유형에서 주요한 실존적 통찰은 선(先) 인지적 차원의 직접적 이해를 촉발한다. 범주 IV의 경우는 대단히 고매하고 깊은 차원의 공 그 자체의 해탈 수준을 의미한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범주 II, III, IV 단계에 보다 깊은 연구에 대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또 그의 이론 중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편두통에 대한 새로운 이해다. 그 자신 편두통의 경험이 있었고, 또한 그의 아버지도 편두통에 시달렸다고 오스틴은 회상하고 있다. 선의 깨달음에 잘 도달할 수 있는 체질적인 요인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편두통의 여부와 연관 지어 생각하고 있다. 편두통 하나의 요인만으로 견성의 용이성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이 요인은 상당히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신경과 의사답게 편두통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연구를 하게 된다.


편두통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있다는 점, 또한 많은 신경과 의사들도 편두통을 경험하고 있다는 보고와 이런 체질의 사람들이 깨달음의 길에 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은 이전에 선적 체험의 요인들을 분석하면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힐데가르트 수녀의 경우를 그 한 예로 들고 있다.


힐테가르트 수녀는 종교적 명상의 순간에 신비 체험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녀의 종교 체험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수녀의 종교적 및 정신적 깊이는 중세 그리스도교 연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특히 신비 체험의 연구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 수녀 역시 심한 편두통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점에 대한 착안과 자신의 편두통 체험, 그리고 편두통에 대한 학문적인 자료 조사 등을 통해 뇌의 일정한 변화와 깨달음의 차원을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다.


편두통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단순히 어떤 체질의 소유자가 명상적 체험이 용이한가에 대한 문제 규명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뇌의 변화와 일정한 수준의 명상 체험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과학적 연관성에 대한 그의 시각을 들여다보는 좋은 창구이기도 하다.


런던 지하철 역사에서 일어난 자아의 소실, 시공간의 소실 체험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과 뇌 과학적 분석은 그의 저서에서 백미를 이루는 부분이다. 다소 난해하게 여겨지는 점들이 있고 동의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다고 하여도 이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흥미롭다.


이런 자신의 체험에서 그는 한 장의 사진에 주목한다. 그 사진은 앤설 애덤스(Ansel Adams)의 사진 작품으로 제목은 ‘Moonrise, Hernandez, New Mexico 1941’이다. 그 사진에서 오스틴은 자신의 깨달음의 체험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 순간 모든 색채가 사라지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 사진에서 그는 견성의 순간 체험되는 색채의 소실, 어스름한 분위기의 드러남, 빛들임 등등의 체험 현상들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앤설 애덤스의 사진은 실제로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사진이다.


오스틴은 이런 사진과 동시에 자신의 체험과 연관되는 것으로 일본 선사들의 체험적 서술 및 그들의 선 불교적 작품들을 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견성의 체험과 달의 이미지를 연관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일본 선사의 선시와 서예 작품을 인용하고 있다.

연구 의의


오스틴의 연구는 다른 뇌 과학자의 연구보다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자아의 문제에 대해 아주 깊이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자신 견성 체험에서 자아의 소실과 깊은 차원의 융합 체험을 하였다. 그가 자아를 강조하는 이유는 자아는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많은 불교 문헌들과 신경학적 문헌들은 자아의 핵심적 기능과 그 층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주장하는 자아성(selfhood)의 개념은 뇌가 신체 이미지- 신체 자아-를 그 잠재적인 주요 축으로서 표상함으로써 시작된다.


자아를 소마와 정신으로 구별하는 이런 단순함을 넘어서게 되면 우리는 개별적인 의식 상태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몰입 초기, 표층적 상태에서는 신체 자아의 감각이 사라져버린다. 그렇지만 견성의 후기 상태에서는 신체적 자아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견성의 통찰로 인해 현실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론적 개념들이 대부분 변화해버린다고 한다.


그의 최근 저서의 제목이 『Selfless insight: Zen and the meditative transformations of consciousness』이라는 점 또한 그가 자아라는 문제에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는 일상적인 자아가 깊은 견성의 체험에서 사라져가고 더 높은 차원의 융합 속에서 모든 탐진치가 떨어져나가는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선다는 것이 오스틴의 주장이다. 이런 체험에서 우리는 부처님의 진정한 깨달음의 일부라도 맛볼 수 있고 이것을 뇌 과학의 조망 속에서 살펴볼 수 있고 이런 과학적 연구가 결코 불교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


불교의 선 수행 체험과 뇌 과학 연구는 일정 부분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이런 수행이 실제로 매 단계의 깊이마다 어떤 차이가 명확히 규명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대선사의 경지에서 어떤 뇌의 변화가 생기는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현실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부처님의 해탈 경지에서는 과연 어떤 뇌변화가 일어났던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설사 이것이 불가능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과학적 도전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또 불교의 수행 명상뿐만 아니라 초월 명상, 쿤달리니 명상 등 다른 명상과의 비교 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 연구 방법에 따라서 상당하게 차이가 있는 연구 결과도 예상되지만 서로 다른 명상의 수준을 비교하는 것도 앞으로의 명상과 뇌 과학 연구에서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뇌 과학 기법의 발전도 이루어져야 할 과제다. 결국은 명상의 차원에서 살아 있는 뇌의 변화를 시시각각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뇌를 전체 해부학적인 수준에서, 그리고 조직학적 차원에서, 또한 기능적 차원에서, 더 나아가서 분자적 차원에서 각각 어떻게 평가하고 측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뇌 과학 전공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 이성동|정신과 전문의로 명일 M의원 원장이자 공학사(컴퓨터 및 정보통신)이다. 옮긴 책으로는 『육체의 문화사』, 『스타벅스로 간 은둔형 외톨이』, 『달라이 라마-마음이 뇌에게 묻다』, 『정신분석가-카렌 호나이의 생애』, 『정신분열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신분열병의 인지행동치료』, 『불교와 과학, 진리를 논하다』, 『선과 뇌』, 『선과 뇌의 향연』 등이 있다.

 

 

 

 

 

 

출처: http://cafe.daum.net/daman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