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 보리심 수행

청전스님, 달라이라마를 말하다

수선님 2020. 8. 23. 12:29

“달라이라마 존자는 자비 그 자체”
[열린논단 특강 중계] 다람살라 한국인 수행자 청전스님, 달라이라마를 말하다
“인도에서 불교 사라진 이유는 ‘승단타락’…한국불교 이대로 가면 15년 내 자멸”
2016-12-19 (월) 12:04
이학종 기자 | urubella@naver.com

 

[열린논단 특강 중계] 다람살라 한국인 수행자 청전스님, 달라이라마를 말하다
“인도에서 불교 사라진 이유는 ‘승단타락’…한국불교 이대로 가면 15년 내 자멸”
 
 세계적인 종교지도자로, 살아 있는 부처님으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세계 인류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티베트의 달라이라마 존자에 관한 이야기를, 30년 넘게 달라이라마 존자의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며 정진해온 청전 스님에게 청해 듣는 시간이 지난 12월 15일 오후 6시 강남구 신사동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12월 열린논단 시간을 통해 마련됐다. 범계승들이 판을 치는 한국불교의 현실에 식상해있는 적지 않은 지식인 불자들이 이날의 자리를 빼곡하게 메웠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고승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청정과 청빈의 삶을 살아오고 있는 수행자로 평가받고 있는 청전 스님으로부터 듣는 흔치 않은 법석에 대한 기대의 반영이었다. 미디어붓다는 이날 청전 스님이 강연 형식을 진행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한다. 편집자
 
제가 출가를 해서 수행자로 살아오면서, 그것도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계시는 다람살라에서 오랜 기간 정진하면서 조금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다람살라로 찾아오는 언론과 인터뷰도 하게 되고, 보도에도 나오게 되고 그렇게 됐습니다.
 
저는 87년에 인도의 다람살라에 가서 수행을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77년도에 송광사로 출가해서 참선 공부를 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에 다닐 때 유신 반대투쟁에 간여도 있었고, 그러면서 서양중(신부를 지칭)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인연이 되어 불가로 출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출가를 해서도 내가 사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큰스님들에게 물어도, 어떤 답을 주시기는 했지만 그 답은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53년생 뱀띠로 올해 64세가 됩니다.
 
제가 86년도에 망월사에서 수행할 때였는데, 그해에 박종철 학생이 고문사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박종철 사건 때 우리 불교계에서는 그를 어떤 종교적이거나 인간적으로 비호하는 쪽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박종철 씨의 49재를 조계사에서 봉행하는 것도 무산됐습니다. 저는 당시의 그런 일을 보면서 (한국불교에 대해) 일어나는 분노를 젊은 나이에 이길 수 없었습니다.
 
나의 10년 출가의 삶에서 가야할 길도 없고, 유신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으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우연치 않게 남방불교권이나 인도에서 수행하는 말로만 이름을 듣던 스승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뵙는 것은 물론 태국이나 미얀마 등에서 존경받는 쟁쟁한 스님들을 다 만났습니다. 제가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만났을 때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은 한국에서도 (큰스님들에게) 다 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놀랍게도 그동안 어디서도 듣지 못한 답을 달라이라마 존자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답은 고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었지요. 당시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나이가 53세였습니다. 지금 87세이시니 무려 34년이나 흘렀네요.
 

강연을 하고 있는 청전스님.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만나 무려 1시간 30분이나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는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만나기가 몹시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무작정 다람살라 주석하시는 곳의 사무실로 찾아 갔더니 안거 중이라서 만나는 것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지요. 그러니까 그곳의 분들께서 매일 7시에 존자님께 차를 올리는 데, 그때 전달해드릴 테니까 정말 중요한 내용이 있다면 메모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존자님께서 메모로 답을 주신다면서 내일 10시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10시에 갔더니 아주 반가울 얼굴로 맞아주면서, 달라이라마 존재님께서 안거가 끝나면 저부터 만나겠다고 약속하셨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안거가 끝나는 날 드디어 존자님을 뵈었습니다. 내 인생의 변화를 준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얻은 것이지요. 저는 그분으로부터 놀라운 말씀을 여러 가지로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답변들이었습니다. 저는 존자님으로부터 들은 이 놀랍고 감동적인 말씀들을 언젠가 글로 남기려고 합니다.
 
존자님께 들은 여러 말씀 중에 오늘 이 자리에서는 한 가지만 소개하도록 하죠. 제가 우리나라에서 수행할 때 큰스님들을 만나면 거의 이런 질문을 합니다. "옛 스님들은 말 뿐이 아니고 이적도 보이고 신통도 보이는데 오늘날의 스님들은 왜 못하십니까?"라는 질문이지요. 그러면 답은 대부분 똑 같습니다. "옛 스님들은 도력이 세니까 그렇지?"이에요. 그러면 제가 다시 묻습니다. "도력이 센 것이란 무엇을 말합니까?"라고요. 그러면 아무도 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얻은 답은 우리나라 불교에서 밀교의 수승한 법이 끊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답은 긴 설명이 필요합니다만 오늘은 시간 상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서산, 사명까지는 밀교의 수승한 법이 내려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사실상 이런 위대한 전통은 끊어진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한국의 비구로서 어떻게 다람살라에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해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달라이라마 곁에 있는 것이 지금도 좋습니다. 달라이라마에 대한 저의 존경심과 사랑은 30년이 넘게 상향곡선이 계속되는 중입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지난 1988년 노벨평화상을 받으셨습니다. 나는 거기서 남미의 어딘가에서 큰 텔레비전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식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때 존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큰 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영어로 수상소감을 말해봐야 티베트 사람들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양해를 해주신다면 잠시 티베트어로 말하겠습니다.“
양해를 얻은 존자님께서는 상기된 얼굴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잃고 티베트에서 나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티베트에 있는 분들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인간은 누구라도 행복을 원하지 불행을 원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라가 아니고 법(진리)입니다. 특히 티베트에 사는 티베트 인들은 어떤 이유로서도 중국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생에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다음 생에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납시다. "

저는 존자님의 이 말씀에, 저는 굉장히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위대한 말씀과 전혀 다른 이야기도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의 스님들이 다람살라를 찾아오는 초창기 일입니다. 어느 날 한국에서는 유명한 어느 큰스님이라는 분이 노란 비단옷을 챙겨 입고 다람살라에 오셔서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뵙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티베트의 독립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독립이 아닙니다. 법(진리)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겠습니다. 존자님과 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중국의 침공으로 쫓겨 나와 인도와 네팔 등지에 흩어져 살면서 중국에 원한을 갖는 티베트 인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중국을 괴롭힌 것이 무스탕을 근거로 하는 게릴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중국을 끝까지 괴롭혔습니다. 중국이 그들을 없애려고 해도 잘 안 되었습니다. 네팔 땅까지 쳐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니 중국의 입장에서는 무스탕의 게릴라들이 눈엣가시였습니다. 중국은 고심을 하다가 네팔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너희들이 무스탕의 게릴라들을 다 없애라. 아니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압박했지요. 네팔은 조그만 나라여서 언제까지 중국의 압력을 견뎌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네팔 정부는 다람살라로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찾아왔습니다. 네팔 정부의 공식사절단이 다람살라에서 존자님께 말하기를, “당신들 티베트의 게릴라들 활동 때문에 우리가 몹시 괴롭습니다. 중국의 압력이 너무 강합니다. 제발 우리 땅에서 나가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달라이라마께서는 당신들의 입장을 잘 알았다고, 당신이 나서 해결을 하시겠다고 하시고는 네팔 사절단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는 무스탕의 티베트인 게릴라들에게 당신의 메시지를 녹음해 보냈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에 의지해 살고 있는 무스탕 게릴라들은 대장이하 모든 대원들이 다 한 자리에 모여서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보낸 녹음 육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마지막까지 티베트의 독립을 위해 싸우라는 말씀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존자님이 보낸 육성의 내용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불살생을 첫 번째로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내 말을 따르십시오. 오늘부터 총을 버리고 내가 살고 있는 다람살라로 들어와 살던가, 아니면 고향으로 가십시오.” 
게릴라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잠시 후 게릴라 대장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대장으로서 (티베트의 독립의 당위성을 밝히기 위해) 독배를 마시고 이 자리에 죽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대장은 그 자리에서 독배를 마시고 자결을 했고, 나머지 게릴라들은 존자님의 뜻에 따라 해산했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 최근의 일 하나를 더 소개할까요. 여러분들도 들으셨겠지만 미얀마에서 불교도들이 회교도들 죽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는 이 소식을 듣고 대노하셨습니다. 물론 이 노함은 자비를 구현하기 위한 분노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불교도로서 살생은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불교의 이름으로는 살생도 전쟁도 없다며 이의 중단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를 잘 살펴보면 미사여구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종교가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살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는 그런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얀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인도의 무슬림들이 분노해서 부처님 성도지 부다가야에 폭발물을 설치해 터뜨리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달라이라마 존자님이 계시는 다람살라에 대한 공격도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람살라의 경계도 이전보다 더 삼엄해졌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이 법문을 할 때면 존자님의 곁에 가까이 앉기 위해 자리다툼이 벌어지곤 합니다. 물론 외국인들은 외국인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습니다. 존자님은 법상에 올라갈 때 반드시 경전을 들고 오르십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하신 법문 중에 기억이 남는 내용이 있습니다. 존자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달라이라마라는 칭호로서 이 세계를 다니며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교황을 비롯한 종교인, 학자, 스포츠인, 배우 등을 다양하게 만났습니다. 특히 요즘은 과학자들을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만난 가운데 최고의 어른, 영성가, 깨달은 분은 유감스럽게도 스님은 아니었습니다.”
존자님께서는 그러면서 ‘토마스 머튼’을 언급했습니다. 월남전 당시 반전 운동을 하다가 태국에서 의문사를 당한 토마스 머튼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천주교 문인으로 꼽히는 분입니다. 트라피스트회(기도·침묵 등을 강조하는 엄격한 수도회)의 수사로 평화·인권애호자였던 그는 미국의 냉전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평화주의자인 토마스 머튼은 교회로부터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나중에 미국 CIA에서 죽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저는 그때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그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토마스 머튼을 만나보고는 너무 훌륭한 분을 만난 기쁨에 아무도 못 오게 하고는 3일 동안을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불교수행자이지만 젊었을 때 신부가 되려고 했던 만큼 아직도 가톨릭적인 면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수도자의 3덕이라고 해서 정결(貞潔, 淸淨), 청빈(淸貧), 순명(順命, 하심)을 말합니다. 저도 기회가 있으면 가톨릭의 훌륭한 분들, 기독교나 원불교의 훌륭한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분들이 초청을 하면 여건이 허락하면 어디든 가서 강연을 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 훌륭한 분 한 분이 계십니다. 저는 이번에도 다르마프렌드(법우)로서 그 목사를 만납니다. 이 목사님은 하루 세끼 중에 저녁만 드신다고 합니다. 우리와 만날 때 그분은 음식을 맞추기 위해 채식을 합니다. 그분을 볼 때마다 저는 늘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그분들도 저를 보면서 스스로 부끄럽다고 말합니다. 그분이 이번에 한신대 교수로 나가게 됐다고 합니다. 그분은 기독교 목사인데도 불구하고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문을 열심히 들고 수행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번 틱낫한 스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월정사에서 진행했던 걷기명상 등의 프로그램 과정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지요.
 
저는 공부가 약하지만 수행을 하다보니까 모든 종교가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저는 저의 종교는 민중, 사람, 바로 당신이라고 말합니다. 유럽에서 강연을 할 때나 사람을 만나 대화할 때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박수가 나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도 자주 ‘나의 종교는 친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간디는 ‘진리가 나의 종교’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암살을 당하지요. 우리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알지만 늘 실천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이번에 한국에 와서 불교텔레비전에 출연해서 불자님들을 향해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책(경전)을 읽으십시오. 특히 법구경, 수타니파타, 입보리행론 등 3권을 반드시 읽으십시오. 이 경전은 어려울 때 우리를 지켜줄 책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너무 쉽습니다. 착하게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경전은 쉽지만 언제 어느 부분을 펴도 '아'라는 감탄이 나오는 경전입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과의 저와의 사이에는 저만이 아는 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한국인 최초로 성산 카일라스를 찾은 사람입니다. 그 때의 감동이 얼마나 강렬한 지, 정말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 느낌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달라이라마 존자님에게 묻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존자님을 만나서 나의 궁금증을 물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존자님께서는 놀랍게도 제 마음을 환히 꿰뚫어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카일라스에 겪은 이러이러한 현상들은 허상이 아니고 실제로 있는 일입니다.“
 
저는 사실 카일라스에서 도솔천도 봤고 아미타불도 봤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이것을 증명해주신 것입니다. 저는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인생을 바꾸는 찬스를 얻은 것이지요. 이런 찬스를 누구나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기회를 얻고자 하신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성지순례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 성지순례를 하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성지순례 대신 성지여행을 하는 분은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는 왜 성지순례를 하나? 업장소멸을 하기 위해서”라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서 돈 내는 것으로는 업장소멸이 안 됩니다. 이린 방법은 사실 서양종교에서 중세에 한 번 써먹은 방법입니다. 성지순례는 신구의 3업을 맑힐 수 있는 수행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성지순례는 비행기 타고 가서 좋은 여관에서 좋은 음식 먹으며 편하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신구의 3업을 맑히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몸으로 지은 허물(신업)은 절로서 맑혀라(전체투지). 입으로 지은 허물(구업)은 염불이나 진언으로 맑혀라. 마음으로 지은 허물(의업)은 참선이나 간경으로 맑혀라.” 
그런데 이 세 가지 업을 한꺼번에 맑힐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지순례입니다. 자기희생과 간절한 원을 실천하는 성지순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변화가 왔다면 참으로 가피를 입은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오랜만에 해인사에 들렀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석상을 많이 설치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해인사에는 대장경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막말로 하면 쓰레기 문화와 같은 것을 입구에서부터 줄지어 세워놓은 것을 보고 실망을 했습니다. 내가 해인사 살 때 성철, 일타, 혜암 스님 등 큰스님들이 다 계셨습니다. 89년 선방에 살 때는 입승이 혜국, 선원장이 무여 스님이셨습니다. 인연 있는 수행자분들에게 이번에 와서 앞으로 한국으로 나와 살겠다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나오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한국불교가 예전과는 달리 많이 변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디서든 죽지 않습니다. 비구는 어디서든 청정하고 청빈하면 됩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청정과 청빈이 힘이고, 이 힘은 천신까지도 개혁할 수 있는 위력을 갖습니다.
 
요즘 불교가 위기라고 합니다. 참으로 위기입니다. 그럼 어떤 부분이 위기일까요. 수행자의 배가 부른 것이 위기입니다. 티베트에는 적게 먹고, 적게 자고, 적게 말하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종교가 타락할 때 신전과 신상이 커집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이 경전에서 말하는 것과는 달리 앞에 꾸밈이 많아집니다. 한국불교에 와보니 스님들의 이름 앞에 무슨 꾸밈이 그렇게 많은지 놀랐습니다. 방장도 많고 큰스님도 많고, 조실, 회주 등도 많습니다. 저는 ‘비구 OO입니다’라고 자신의 법명 앞에 ‘비구’를 붙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온갖 꾸밈의 칭호를 붙이는 분들만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호칭이 수행자 비구에게 왜 그렇게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그런 호칭이 붙는 자리를 차지하는데 금권까지 들어간다고 합니다. 저도 이제 한국으로 들어올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이런 승가에서 그분들과 공동체로 살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그래서 오면 적정처(寂靜處)를 마련해 입 닫고 살기로 각오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강원도를 둘러보았습니다. 
 
다람살라에 살다보면 가끔 BBC, NHK 등 세계 유수의 언론들과 만날 기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달라이라마 인터뷰하러 오는 기자들입니다. 그러면서 달라이라마 존자님께 공부하러 온 여러 외국인 수행자들을 찾습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다람살라에서는 으레 저를 지명하곤 합니다. 그들은 제가 다람살라에 오래 살았다는 것을 알고, 왜 여기에서 오래 사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이곳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달라이라마의 어떤 점이 좋아서 그런가라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분은 위선이 없는 성직자입니다. 성직자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포장지가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위선입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는 손톱만큼의 위선도 없습니다.”
사실 위선이 없는 것은 올바른 수행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 같은 것입니다. 성철스님이나 법정스님이 위선이 있었습니까? 대다수 수행자들은 높은 자리에 오르면 거만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도들에게 반말을 하고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일체의 위선이 없는 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달라이라마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스님이십니다. 시간나면 명상하고, 경전보고, 법문할 때 반드시 텍스트가 있습니다. 법문에는 반드시 경전을 인용하십니다. ‘고인이 말하되~’라는 애매한 방식의 설법은 없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두 번째로 참 겸손한 스님이십니다. 여러분들도 생애에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친견할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이런 기회를 자주 가졌지만 말이죠.
 
한국의 불자님들은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문이 끝나면 존자님을 향해 앞으로 나갑니다. 그분들은 인사도 하고, 아이러브유도 하고, 때론 훌쩍이기도 합니다. 그럴 땐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는 일일이 작은 불상을 주십니다. 지금은 건강문제로 한국불자들만을 위한 법회를 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렇게 못하시고 계시지만.
 
한번은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제게 슬쩍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은 두 번이나 받아갔어. 저 사람은 벌써 세 번째야.” 정말 놀라울 정도로 기억을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 뒤로는 한국의 불자님들께 이야기를 합니다. 절대 두 번 받으려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것이지요. 존자님의 기억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오래 전에 MBC에서 존자님 취재를 왔습니다. 그들은 델리에서 영어를 잘하는 학생을 한 명 데리고 왔습니다. 총 네 사람이었는데, 그때 달라이라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년 전에 내게 질문했죠? 무엇이 진리입니까? 라고요.” 세상에 그것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놀라운 말씀 하나 드릴까요. 한국불교에 ‘달라이라마 방한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내년에 초청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는 달라이라마가 한국에 오지 못하는 이유를 대개 중국의 방해 때문에 못 오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럴까요? 중국이 방해합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답은 아닙니다. 그럼 누가 방해할까요? 바로 조계종총무원에서 방해합니다. 그들은 다 반대합니다. 제가 확인한 것입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초청하자고 하면 이렇게 반응합니다. :어어, 그 사람이 오면 경제에 발전이 안 돼.“ 이럽니다. 물론 중국에서 반대를 하지요. 이번에도 일본에서 몽골로 가셨을 때 난리가 났었지요. 물론 유럽도 불편하게 하고. 호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호주에 가셨을 때도 중국에서 경제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럴 때 호주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경제 제재를 하고자 한다면 하십시오. 우리는 경제보다 달라이라마 모시고 정신적 가치를 고양하는 것을 중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고자 한다면 경제제재 하십시오.“
 
제가 2000년에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모시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도 비자를 발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단이 됐습니다. 누가 막았을까요. 바로 영부인 이희호 여사 등 청와대 내 개신교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어디에 가시든 불교 이야기를 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불교단체나 불교신자들만 모인 곳에서는 불교 이야기를 하시지만, 그 밖의 자리에서는 종교를 초월하십니다. 또한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고 감동해 불교로 개종을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히려 당신의 전통적 신앙을 중시하라고 권하십니다.
 
인생길에는 사실 시행착오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재세 당시 얼마나 많은 분을 만나서 공부하고, 이 길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번에 한국에 올 때 두 분의 티베트 노스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80세 이상이 된 노스님들이십니다. 이 분들을 모시고 직지사, 범어사 등을 돌았습니다. 그런데 두 노스님께서는 해인사에 가서 법열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두 분은 지금도 해인사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티베트에도 경판이 있었는데, 문화혁명 때 다 불탔다고 안타까워 하십니다. 제가 생각해도 중국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는 문화혁명과 아편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혁명 때 주요 타깃이 불교였습니다. 특히 티베트 불교는 처참히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사상의 공성이 무아와 무상, 고인데 그것이 무너졌다고 불교가 사라지겠습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인도에 왜 불교가 사라졌을까요? 이교도가 침략해서? 그렇다면 불교는 진리가 아니겠죠. 무슬림이 파괴해서라고요? 아닙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유는 승단이 타락해서 사람들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국정부의 통계조사에서 한국의 불자수가 762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제일 많은 종교는 개신교 968만, 가톨릭은389만 명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10년 만에 무려 300만 명 이상이 줄어들은 것입니다.
민중이 외면하는 종교, 희망을 주어야 할 집단이 타락하니 그 집단에 대한 거부감이 민중을 돌려세운 것입니다. 저는 한국불교가 자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10년에서 15년 정도 지나면 나라에서 절을 운영할 지도 모릅니다. 성당이 텅텅 비는 서양처럼 한국의 사찰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앞으로 누가 명안종사가 되겠다고 출가를 하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출가할 때는 좋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구산스님 스승으로 출가했습니다. “학생은 전생에 천축국 승려였구만.”이라는 구산스님의 말 한 마디를 듣고 출가를 결심했으니까요. 저는 비록 공부가 많이 안 됐지만, 부처님 제자라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오늘 제가 불교평론 열린논단을 통해서 말씀 드린 내용들이, 경청해주신 여러 분들에게 불교가 무엇인지,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날 청전스님의 강연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불자들이 운집했다.

 
<일문일답>

-달라이라마 존자님 이외에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라즈니쉬 강의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제가 생각하는 선지식은 아니지만 좋은 말씀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87년 쯤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분이 한 강연에서 '타임 이즈 골드? 노. 타임 이즈 라이프!"라고 말씀했습니다. "시간이 금이라고요? 아닙니다. 시간은 인생입니다."라는 말이죠.


-또 다른 분이 있다면?
"마더 테레사입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정말 성인이십니다. 제가 가톨릭 수도원에서 강의할 때는 꼭 마더 테레사 수녀의 이야기를 합니다. 모든 것이 존경을 할만한 분입니다. 제가 한 때 서양중이 되려고 했기 때문에 더 인상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신부가 되려다 못되면 신랑이 된다는데, 저는 중이 된 사람이지요.(웃음)"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뵈러 갈까 하다가 못가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스님께서는 다람살라에서의 지난 30년 수행기간 동안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화 낸 것 정말로 보신적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때때로 화를 냅니다. 이유는 수행이 부족해서이겠지요. 티베트 불교에는 입장과 위치를 바꿔놓고 하는 수행법이 있습니다. 톱롱수행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분노를 치밀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과거 어느 생애 나의 부모였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분노와 좋지 않은 부분들을 바꿔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수행 안합니다. 저는 여전히 분노도 있고, 욕심도 남아있거든요.(웃음) 사실 저는 아직 화가 납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화는 분노의 화가 아니라 방편의 화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에서 공부하고 수행하는 티베트 승려들을 만나 야단을 친 일이 있습니다. '너희들만 호화호식하고 티베트에서 고생하는 분들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존자님께 낸 이 화는 분노가 아니라 자비의 방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존자님 지도로 30년 수행을 했는데도 아직도 분노와 욕망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옛날에 티테트 스님과 한국 스님을 때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다들 병원에 갔으니까요.(웃음) 나중에 참회했지만 그땐 내가 공부가 덜 되었을 때였으니까 잘못을 한 것이지요. 이처럼 분노를 극복하는 은 대단한 수행입니다. 분노의 뿌리를 알아야죠. 무영이 있는 한 분노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우리나라 불교교단이 너무나 혼탁해서 앞이 안 보인다고 하셨는데 저희도 공감합니다. 한국불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한 가지만 알려주십시오. 
"그 답은 부처님게서 일생동안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알고, 법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자등명 법등명이죠. 저는 한국불교가 다시 싹이 나려면 신도나 학자도 아니고 승가가 다시 맑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승가가 청정성을 되찾기 전에는 한국불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승가가 다시 맑아져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생명력이고 수행자의 향기입니다. 법의 향기는 바람도 거스르지 못합니다. 지금도 드러내지 않고 맑게 수행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희망을 봅니다. 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우리 불교에 어른이 없습니다. 한 마디하면 들어야 할 어른이 없습니다. 요즘 어떤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이는 거의 없습니다. 불교의 승려가 정치권과 결탁을 해서 그들의 선거 캠프에까지 들어갈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몇 해 전 박근혜 대통령을 데려다가 개신교 목사들이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했던 일이 있습니다. 역사에 늘 그런 놈들은 있었습니다. 불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맑은 스님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이 이 탁한 무리들을 정화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법정스님과 가까이 했습니다. 법정스님께서는 제게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법정스님께서는 제게 입보리행론을 번역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불교에서 불자들이 입보리행론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입보리행론을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수행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수행을 하고 계십니까?
"제가 하는 수행은 족첸수행법인 '통렌'이라는 수행법입니다. 선불교와 비슷한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부처님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수행은 의식을 규명하는 것인데, 족첸의 가장 큰 특징은 불성(여래장)에 입각하여 입각하여 이 것을 개발하는 요가(Atiyoga)에 강조점을 찍는 다는 점입니다. 이 수행 전통은 전전기 때 확립된 것이므로 에 강조점을 찍는다는 점입니다. 이 수행 전통은 딱히 그 법맥을 이은 인도스승이 빠드삼바바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족첸수행법은 1차 삼예논쟁에서 이단으로 배격된 중국측 마하연 화상의 돈오 사상을 따른다는 비난을 받았을 정도로 선과 유사성이 많습니다. 어떤 학자는 족첸 수행법을 티베트이 선종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제가 신라, 고려 조선까지 수행법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놀랍게도 밀교수행의 전통이 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수행법은 고도의 테크닉도 필요하고,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예비수련도 필요합니다. 티베트 불교 수행을 말한 김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티벳트 승려들이 더러 한국에 와서 이벤트를 하는데, 이것은 쉽게 말해서 비지니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교마다 예식과 의식이 있습니다. 왜 그것을 한국에 와서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한국에서도 영산재라는 훌륭한 수행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은 의식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표현하는 대단한 것인데, 만약 영산재를 티베트의 승려에게 하라면 되겠습니까. 여러분 이벤트에 빠지지 마십시오. 이름있는 라마들와서 이벤트하고 가는 것,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도 우려하고 계십니다. 티베트 불교도 타락한 점이 있습니다. 이미 거기도 배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바른 신심이 필요합니다. 법이 필요합니다. 정지와 정념을 놓지지 않아야 합니다. 사띠를 하는 것은 의심을 갖고 화두를 드는 것과 같습니다. 흔히 어느 수행이 가장 빠르냐고들 하는데, 그런 상업적이 말이 어디 있습니까. 강물이 흘러가듯 매일 매순간 하는 것입니다. 또 무슨 진언이 좋으냐고 묻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선지식들이 얼마나 신자들을 잘못 이끌었지 알 수 있습니다. 염불하면 된다고요? 녹음기를 틀면 되겠습니까. 간절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불자들에게 살아가는데 유용한 실질적으로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시지요.
"한 가지만 말씀드려볼까요. 잠잘 때 누구나 벼개를 베지요? 오늘부터 잠 잘 때 나는 부처님의 무릎을 베고 잔다는 의식을 가지고 잠에 들어보세요. 첫째 악몽이 없고 잠이 잘 옵니다. 티베트 불교가 바로 이런 식으로 불자들을 수행의 세계로 유도합니다. 기자들 다람살라에 와서 제게 '여기 와서 무엇을 배웠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제가 "배우기는 뭘 배워. 존자님의 대 자비심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법(진리)을 공부하세요. 다르마를 꼭 공부하세요. 인도에 가서 수행할 때 찾아온 첫 걸림돌이 내가 불교를 참 모르는구나, 였습니다. 티베트 속담에 법을 모르고 불교수행 하는 것은 손가락 없이 바위산을 오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수행자로서 살아온 삶에 대해 스스로 평가한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누가 뭐래도 난 부처님 제자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부끄럽지만 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은 청전스님의 강연을 현장에서 정리한 것이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제의 내용에서 표현상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청전스님의 강연요지에 벗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는 점을 양지해드립니다. 혹시 잘못된 점이 있다면, 전적으로 정리한 기자의 잘못임을 밝혀드립니다.

 

 

 

 

 

 

[출처] 청전스님, 달라이라마를 말하다|작성자 까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