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 보리심 수행

세계불교석학에게 듣는 불교학의 미래 - 제프리 홉킨스

수선님 2020. 9. 6. 14:51

미국인 최초로 몽골사원에 머물다

─ 선생님은 어떻게 티베트불교와 만나게 되었나요? 특히 티베트불교학과의 만남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제프리 홉킨스 교수(이하 홉킨스): 하버드대학교 영문과 1학년 때, 메사추세츠주 숲 속에 홀로 은거했던 헨리 데이빗 쏘로우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영문과 수업을 들으면서 허만 멜빌의 『타이피(Typee)』라는 책을 읽게 되었지요. 마케이서스섬에 있는 누쿠히바라는 곳에 사는 마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때 누쿠히바의 타이피라는 곳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되어 그곳에 가려고 했는데 타히티에만 갔다가 돌아와야 했어요. 그 외에도 쏘로우의 영향을 받아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휴학한 뒤 복학하기까지 여러 가지 영적인 체험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뒤 불교와 만나게 되었지요.


하버드 3학년 가을학기가 끝날 무렵, 친구 중 한 명이 제가 미치지 않았나 걱정을 하면서 뉴저지주에서 티베트 사람들과 함께 불교공부를 하는 몇몇 미국인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사실 그는 티베트 사람이 아니라, 게쉐 왕걀이라는 칼믹 몽골사람이었어요. 친구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세 부족에서 온 칼믹 몽골인들이 모여 사는 뉴저지주로 갔는데, 그때는 게쉐 왕걀과 별로 시덥지 않은 대화를 하고 하버드로 돌아왔어요.


하버드로 돌아오기 전에, 게쉐 왕걀은 저에게 자비심을 기르기 위해 “일곱 가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수행의 정수”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제게, “네가 만일 이 사원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이 수행은 보스턴에서 지하철을 타고서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보스턴의 지하철에 앉아 있을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대신에 숲 속에 은거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학교로 돌아와 이 일곱 가지 자비심 고양의 명상법을 수행하다 보니 이 수행법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수행법은 제가 문자 그대로 놓아 버릴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 많은 한계에 맞닥뜨리게 해 주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 수행법에 압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매일 수행을 하면서, 결국, ‘이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결정했죠. 그리고는 다시 게쉐를 찾았습니다.
저는 지리학 시험 하나를 남겨둔 채 학교를 떠났습니다. 평생을 절에서 보내기로 마음먹고는 집안에 남아 있는 제 존재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뉴저지로 갔지요. 그곳 몽골 사원에 머물렀는데, 그것으로 저는 미국인 최초로 그 사원 안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 뒤 로버트 서먼, 크리스 조지도 저와 함께 사원 안에 같이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5년을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우연하게 일어났던 일들이 저를 티베트불교로 인도했습니다. 저는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에 대단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교학이 아니라 수행법에 더 매력을 느끼셨다는 말씀인가요? 
홉킨스: 물론입니다. 저는 수행에 더 매력을 느꼈어요. 그리고 언제나 교학을 수행의 일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행은 제 책 『자비심 기르기』의 정수죠.  그리고 제 저서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른바 ‘철학’이지만 그것은 수행으로서의 철학입니다. 철학을 통해 세계관을 바꾸고 형성한다는 면에서, 제게 철학은 명상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티베트불교의 매력은 무진장한 양의 교학과 수행의 기술들

─ 최근 동양의 종교인 불교가 서양에서, 특히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 불자들의 관심이 높습니다. 미국인들에게 티베트불교가 끼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홉킨스: 불교의 어떤 면이 나의 관심을 끌었을까요?  흠...  첫째로, 불교의 자비심, 사랑, 현상과 실재 사이의 괴리에 대한 고찰 등등이 제가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들입니다. 그리고 불교에는 (괴로움까지도 창조했을) 창조신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제 관심은 심리적인 수행,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정신적인 고양을 이룰 수 있는 심리적인 수행입니다. 

─ 지금까지 여러 미국 친구들이 불교에서 찾을 수 있는 고요함, 마음의 평온함 때문에 불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점들 역시 서양인들에게 흥미를 끌 만한 요소라고 생각하십니까?
홉킨스: ‘서양인’이란 누구를 가리킵니까? 저는 ‘서양인’이란 개념을 싫어합니다.  ‘서양인’이란 개념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를 관심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말입니다. 여하튼, 불교가 티베트 밖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이유는, 또는 불교를 믿는 신자 이외의 사람들이 불교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는 너무나 많은 동기와 방법이 있을 겁니다. 때문에 저는 ‘제가 어떻게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해 대답한 것입니다. 제가 그것에 대해서만 확실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은 불교의 성대한 의식, 제의, 다양한 계층구조, 평화로움 등에 매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 왜 서구인들에게 불교 사상이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홉킨스: 아마도 그것은 티베트불교가 엄청난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다른 불교 전통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티베트불교에는 어떠한 중앙통제력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부파 안에서도 중앙통제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티베트인들의 누구에게도 허가를 받지 않고 새로운 불교센터를 열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몇몇 요소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 요소들이란 다채로움, 성적인 자세를 모방한 여러 그림들, 특히 무상요가에서는 술이 특정한 단계에서 사용됩니다. 사람들이 곧잘 ‘오!  티베트불교에는 섹스와 종교가 공존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티베트불교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섹스는 섹스입니다. 제가 느끼기로는, 만일 어떤 이가 무상요가딴뜨라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는 어쨌든 섹스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어떤 이가 딴뜨라를 수행하든 하지 않든, 섹스를 하는 도중에 마음을 관찰함으로써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불교의 수행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의 수행이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술이 불교 수행의 일부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꿈요가’라는 수행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잠자는 동안 불교를 수행하는 것을 말하나요? 정말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각설하고, 티베트불교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무진장한 양의 교학, 수행의 기술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이 없다면, 나머지 요소들은 그저 휘광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교학과 수행이 어떻게 마음에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하라

─ 현재 서구에서 불교가 급성장하고 확산되고 있는 저변에는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Dalai Lama)와 베트남의 선승 틱낫한(Thich Nhat Hanh)의 지도에 영향받은 바가 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불교학자들의 불교학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때문에 불교가 미국인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시는지요?

홉킨스: 그렇습니다. 아카데미와 대중, 이 둘은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죠. 그런데 대부분의 불교학자,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 불교 수행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자신들이 공부하는 대상에 관심이 없는 척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마치 자기 주제에 대한 무관심이 학문의 기본자세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저는 미국의 불교학이 아직 유아기이고 사람들이 종파적으로 편중되었다고 말하면 불교학을 망치게 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태도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미국의 불교학이 아직도 유아기라고 생각하시나요?
홉킨스: 그렇습니다. 

─ 그렇다면 미국 불교학의 미래의 모습은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홉킨스: 저는 미래의 불교학은 어떻게 교학과 수행이 마음에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하는 데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가, 어떻게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불교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때로 불교학자들이 ‘불교에는 관심이 없고 열 가지 악업을 열심히 닦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십악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볼까요?

첫째, 살생. 다른 사람의 명성을 죽이는 일.
둘째, 도둑질. 예를 들어 몇몇 티베트어 텍스트를 읽고 아이디어를 얻고는, 그 아이디어의 근거를 그 텍스트로 돌리지 않는 일.
셋째, 성적인 잘못.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습니다.
넷째, 거짓말. 말할 것도 없죠.
다섯째, 이간질. 한 학자에 대해서 다른 학자에게 말하고, 다른 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 학자에게 전하는 것.
여섯째, 악담. ‘오! 그 사람의 작업들은 그저 헛것에 불과해.’ ‘그 사람은 무능력해,’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몰라.’
일곱째, 의미 없는 대화. 우리들이 모였을 때, 우리들이 공부하는 깊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대부분 의미 없는 이야기들만 하는 것. 예를 들어, 누구는 어디에 취직했다, 누구는 어느 대학에 들어갔다, 누구는 돈을 많이 받는다더라, 누구는 적게 받는다더라, 또는 전혀 상관없는 전쟁, 정치 등의 이야기들.
여덟째, 욕망. 당연히 다른 사람의 연봉을 탐냅니다. 솔직히 내 경우에도 (은퇴하기 전에) 이러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때때로 다른 사람의 연봉을 시기하기도 했어요. 어느 날 그것이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몇몇은 나보다 높은 연봉을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살기에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구요. 그러면 된 겁니다.
아홉째, 망녕된 말. 다른 학자들을 모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
열째, 잘못된 견해. 물론, 이러한 나쁜 행위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내게는 모든 사람이 나쁜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모두가 그러니까요. 정말 흥미로운 것은 어떤 사람이 선한 행위를 할 때입니다. 어떤 사람도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좋은 점만을 짚어서 이야기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나쁜 점만을 말하고, 좋은 점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면, 최소한 해치지는 말아야

 

─ 선생님은 오랫동안 달라이 라마와 함께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달라이 라마가 미국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또한 달라이 라마께서는 삶 속에서 보살도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를 위해서 불자들이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홉킨스:달라이 라마는 1979년에 미국에 처음 오셨습니다. 미국을 처음 방문할 때에 그는 특별한 계획이나 메시지를 준비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랑, 자비, 이타심, 그리고 이러한 상태를 개발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첫 번째 미국 방문에서 그는 점차적으로 이러한 마음의 상태들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를 구체화 했고, 연속적인 전 세계 순방에서, 샨띠데바의 가르침인 나와 남을 동일화 하는 수행법, 그리고 나와 남의 자리를 바꾸어 보는 수행법을 자비와 이타심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또한, 자비심을 일으키는 일곱 가지의 인과를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일상의 수행에 관한 한, 달라이 라마의 가장 상세한 수행법은 최근 출판된 『사랑을 넓히는 방법(How to Expand Love)』에 나와 있어요. 물론 이러한 수행법은 형식을 달리하더라도 여러 책에서 조금씩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 현세에서 보살도를 실천하는 것은 자비를 수행하는 것인가요?

홉킨스:자비를 수행하는 것? 그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자비심을 고양하는 수행을 하는 것, 자비를 실천하는 것도 포함되죠.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이 만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면, 최소한 해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문화는 불교의 교리를 포함해야

─ 선생님이 천착하시는 티베트불교학의 세계화를 위한 앞으로의 과제, 혹은 연구방향은 무엇인가요? 티베트 불교학의 이해를 위한 핵심을 알려 주십시오.
홉킨스: 대부분의 기자들은 종종 미래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뉴저지의 티베트 절에서 5년 동안(1963-1968) 머물 때, 티베트불교가 이처럼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지 않았습니까? 지금 현재 예측 가능한 미래 가운데 하나라면, 티베트불교와 현대 과학의 협력일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과 티베트 스님들, 불교학자들은 두 가지 주제에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첫 번째는 마음의 심층 상태, 두 번째는 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측정해서, 이를 통해 자비, 이타심, 그리고 반야지 수행의 구체적으로 증명 가능한 영향들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지의 핵심적인 모습들이 다양한 뇌의 활동을 측정하는 장치들에 의해 밝혀지리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뇌의 독특한 변화들이 이미 보고되었고, 이러한 보고들은 매우 중요했다는 점만 이야기하고 싶어요.

─ 그렇다면, 불교학자들이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홉킨스: 수행의 과정과 단계에 대해 설명하는 명상가들 또는 학자들이 이바지할 바가 있습니다. 직접 수행을 하면서 번역을 하는 수행가들은 더욱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어요.

─ 하지만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요즘 미국에서의 티베트 불교학의 흐름은 주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 쪽으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홉킨스: 그렇습니다. 미국 불교학계에서는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쪽으로 옮겨 가고 있어요. 여기서 ‘문화’는 불교의 교리체계를 배제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문화라고 할 때는 불교의 교리까지 포함하는 것이 옳아요. 티베트에는 교리체계에 대한 연구, 논쟁, 명상들이 정말 많이 행해졌고, 행해지고 있으며, 티베트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요. 그런데 현재 ‘문화’라고 말할 때는 이상한 이유를 대면서 ‘문화’라는 말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어요. 이것은 과거에 많은 학자들이 불교 연구를 오로지 불교의 교리체계에 대한 연구하고만 직결시켰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티베트 불교학자들은 그 분야 이외의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러다 보니 ‘문화’라는 말을 교리체계 이외의 다양한 분야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총체적’ 관점이란 말도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저는 그러한 주장이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도대체 누가 그렇게 총체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의 왜곡은 ‘나는 선대의 연구가들이 하지 않았던 분야를 하고 있다’는 태도에 기인합니다. 그리고 이 시계의 추는 다시 교리체계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불교 교리체계의 바다는 거대하며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불교전통이 모두 진정한 수행법

─ 티베트불교가 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티베트 승려들의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승려 교육을 위한 방법론 중에서 특히 비중을 두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요?
홉킨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묻는 것인가요? 우선, 스님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사원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왜냐 하면 (영어에서) 승려라고 할 때는 비구니를 배제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죠. 요즘 다람살라에 있는 비구니 사원 돌마링에서는 게쉐학위(주: 겔룩파 최고 학승의 학위, 현재의 박사학위와 동격)의 취득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현재 비구니 게쉐도 있나요?
홉킨스: 아직은 없어요. 준비를 하는데 지금까지 9년에서 10년의 세월이 흐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 저는 사원의 교육체계는 티베트불교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불교사원의 교육체계만이 불교를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겔룩파의 사원 교육체계 내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사원의 교육체계보다 명상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었어요. 재가자로 살면서 성관계를 하며 가족을 만들라고 오히려 권장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이는 부분적으로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사람들은 사원 안에서 많은 관계를 맺거든요. 스승과 제자, 도반들 등 많은 관계 속에서 그들은 사랑과 자비, 그리고 이타심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미국 내의 새로운 사원체제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 현재 세계적으로 참선, 명상, 위빠사나(Vipasyana), 요가 등 여러 가지 수행법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진정한 수행이란 무엇인가요?
홉킨스: 모든 불교 전통이 모두 진정한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가운데 어떠한 특정 전통이 다른 전통보다 맞을 뿐이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수행법이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에 실패하고 나서, 그 수행법이 진정한 수행법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제3자가 특정한 수행법을 이러한 사람에게 권유하거나, 그 사람이 그의 과오들을 통해서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워요. 그렇지만 저는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아, 이 수행법은 지금 나에게 알맞은 수행법이다’ 알 수 있다고 봅니다.  ‘나는 우선 깨닫기 위해서 사랑과 자비, 이타심을 개발해야 하며, 나는 육바라밀을 수행해야 하며, 알맞은 수행법을 찾기 위해서 반야지, 무상함 등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 관점에서는 이 모든 수행법들이 매우 효과적인 수행법들입니다. 

─ 전문 수행자가 아닌 일반 불자들이 생활 속에서 제대로 된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유념해야 할까요?
홉킨스: 제 경우에, 가장 중요한 점은 항상 (수행할) 시간은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내가 바쁘든 간에,

거기에 여전히 5분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1분도 수행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만일 당신이 수행을 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하루 가운데 수행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서, 지하철을 타고서,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여러 방법의 수행을 할 수 있어요. 달라이 라마께서 “네가 즐기는 데 사용하는 시간을 조금만 줄여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바쁘고 헐떡거리더라도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본다면, 하루가  모두 바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 이종복 본지 해외통신원
정리 편집부

 

 

 

 

 

 

 

 

 

[출처] [공유] 세계불교석학에게 듣는 불교학의 미래 / 제프리 홉킨스 |작성자 향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