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행법(간화선)

참선이란 무엇인가

수선님 2020. 10. 1. 12:08

참선이란 무엇인가

 

1. 이 무엇인고의 화두하는 법
2. 참선은 무엇인가?
3. 참선의 종류
4. 참선의 자세
5. 화두의 중요성
6. 선종 발달사

 

제 一. 이 무엇인고의 화두하는 법

 

몸은 죽어 흩어진즉 각기 원소로 돌아가고 그 일체 원소는 곧 이 지구(땅)이며,이 지구(땅)는 우리 사람과 같이 아는 의식을 서 로 통치못하니 이 항상 아는 의식은 곧 지구(땅)가 아니로구나. 그러면 이 항상 불매하게 아는 이놈은 곧 이 무엇인고?(이 의심 이 화두임)


처음은 이론으로 화두를 캐는데 결국은 이론으로 캐인 끝에는 모르는 고로 이 모르는 간절한 의심을 어느듯 망상이 알지 못하는 모르는 사이에 빼앗아 가나니 빼앗기면 또다시 이론으로 이위에 쓴바와 같은 바를 되풀이 하면 반드시 지극한 의심이 잡히게 되 는데 이와같이 처음은 몇번이고 왕복하다가 긴급하게 머리의(두뇌) 감각으로 의심체를 증험하여 보면 의심체라는 놈이 별것이 아 니고 단지 두뇌 좌우에 감각기운 일점이니 이론으로 캐는 것을 그만두고 단지 혀신경으로 이 무엇인고만 하면서 두뇌좌우 감각기 운 일점만 들지니 이렇게 하면 곧 망상잡념이 감각기운 일점을 빼앗아 가나니 이렇게 빼앗기면 또 단지 이론으로 캐지말고 이 무 엇인고(무자화두 즉 어째서 또는 왜)만 하여도 두뇌좌우 감각기운 일점이 잘 일어날 터이니,


망상에게 빼앗기면 또 이상과 같이 왕복하되 감각기운 일점에 육체의 어디나 힘이 다가도록 힘을 쓸지며, 감각기운 일점을 전력을 다하여 잡념에 빼앗기지 않도록 보호할찌니 힘을 써서 감각기운을 보호하고 망상에게 빼앗기면 또 이상과 같이 할지니 보호하는 감각기운 일점이 어덴가 밀려나 가는 것을 알게 되느니라.

이렇게 되면 육체의 힘을 다하여 내어 밀며 가정력 가정력하여 또 힘을 더하고 또 힘을 더할찌니 그렇 게 하기를 약 20여일에 반드시 나가던 감각기운 일점이 나가지를 않고 멎게 되느니라.


멎었드래도 내어밀어 볼찌니 암만내어 밀어도 나가지를 않나니 이 나가지 않는 곳에서 약 일주일 가량만 더 내어밀어 정진하다 가 일체 마음을 쉬인 가운데 진정코 단좌하여(이때가 되면 머리 속 이 쇄락한 것이 가을 하늘과 같이 냉냉하며 차나니) 힘을 더 하여 내어 밀어도보고 또 그힘을 때어도 볼지니 이상하게 두뇌 좌우에 진리아니면 안되게 되어 있는 힘이 붙을지니 이 기틀에 힘 을 알면 반드시 힘을 더하여 내어밀어도 말고 떼지도 말지니 단지 정심단좌하여 밀지도 말고 떼지도 말며 모름직이 자연히 놓 아 쉴지니 두뇌좌우의 기틀에 힘을 너무 떼어도 힘이 더들어 붙고 너무 힘을 써도 더들어 붙나니 너무 힘을 쓰지도 떼지도 말며 단지 자연히 쉬여 두뇌힘이 점점 덜 들어 붙도록 공을 드릴지니 그 힘을 스승과 같이 의지하여 잡념이 들어오나 엿볼지니 잡념에 빼앗기면 단지 두뇌좌우 기틀의 힘에 응할지며 자연하여 쉬일지며 망상이 들어오나 엿볼지니라.


그러나 여하튼(진리기틀) 리기 곧 두뇌좌우의 힘에 힘은 더 들어 붙나니 이것이 곧 일개정절이니라, 점점 힘을 더는 곳이 점점 힘을 얻는 곳이며 극히 힘을 던 곳이 문 듯 힘을 얻는곳인 점점 힘을 덜곳이니라.

 

이 때부터는 육체에 힘을 놓아버리고 자연하여 쉬도록 할지며 이렇게 하면 자 연 눈 앞이 아른거리게 되는데 비유하면 문틈 햇빛에 가는 티끌먼지 일어남과 같아서 어지럽게 아른거리며 작고 가늘게 혹하여 맺힘이니라. 바람은 멎어도 파도는 오히려 높이 일고 진리는 나타나도 (정력) 생각은 오히려 잠겨 용이하게 물리쳐 제하지 못하 나니 여하튼 내 마음을 잃어버리며 자살 자멸하는 곧 일체를 관계말고 역등하여 없고 어두운데 향하여 쉬어 들어갈지니 이렇게 몇 달 익히면 의식이 전혀 행치않고 내가 참 인간에 있나하는 생각이 나며 사실 인간에 있는 줄 잘 모르나니 이것이 차 이개정절 야니라.

 

이 때는 단지 일체를 모르며 일체를 알지 않는 것을 위주하여 뭇 많은 여우가 나무위에를 알지 못하고 거꾸로 올라가듯 공부하 며 유쾌하게 마음세를 갖고 오로지 놓아 자연 할지니 놓아 자연하면 몸이 가서 머무르는데가 없음이요, 향한즉 등 지고 구하면 잃어버리나니 기틀을 멈추고 생각을 억지로 끊으면 오히려 멀어지게 되느니라 조롱하여 가고 조롱하여 오며 졸아가고 졸아오며 가늘게 인연따라 잔질 하면 자연 끊어지지 않고 멎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들물이 가을을 증험함과 같아서 나가지 않아도 스스로 나가고 쉬지 않아도 스스로 쉬며 순풍에 돛단배와 같나니라.

 

이 때 은연중 문득 정신을 번쩍차리고 가다듬으면 이때에 경계가 나 타나나니 앞에 불투명턴 경계가 사라지고 안경을 벗음과 같고 가렸던 안개가 없어짐과 같나니라. 옛을 의지하여 부동하게 잔질하며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 작고 가는 흐름이 아주 가늘게 붙어져서 흐름이 몰란결에 쉬어져 없어지고 능소가 절대대하여 오직 참하나의 몸이 이미 있을 뿐이니라. 차가 삼개정절이니라.

 

맑고 맑아 크게 비었고 밝고 역역 또렷또렷 하나니 비유해 맑은 하늘에 한 달이 홀로 밝았으나 오히려 계수나무 있음과 같아서 달의 몸을 그늘져 가리는 고로 그 빛이 제대로 밝지 못하나니 차시 정중에서 아무리 익혀야 잘 되지 않나니 움직이는 요중에서 한 번 시험하여 미세의 잠재함을 떠난 때를 반듯이 증험하리니 그 증험을 잘 응용하여 대발용맹 정체하여 공을 드리면 자연히 달 안에 계수 나무를 깍아 끊어버리나니 다시금 밝은 빛이 더 안달하여 이씨재상이 술을 마셨는데 장재상이 취하였나니 긴 하늘 만 리 본래 달이로다 작고 가늘며 지극히 작고 가늚의 밝지 못한 혹업을 끊어 물리치면 밝은 거울이 마땅히 대를 작하여 거울에 거 울이 빛움과 같느리라 다 본성의 밝은 스스로 비춰 둥글게 밝아 물건과 나의 본근원의 참 성품이 두루두루 충만하여 일만 형상 이 몰록 나타남ㅇ 맑고 맑은 큰 바다에 넓게 벌어지고 벌어진 인 (도장)과 같아서 알체 세간 세간을 떠난 법의 일을 모르는 바가 없고 못 비추는 곳이 없으며 안응하는 곳이 없나니라.

이 것이 곧 여래선 이니라.


(곧 여래선을 증명해 깨달은 바니라) 진리는 몰록 깨달었으나 깨달음의 행으로 녹일지어니와 일은 몰록 아니 제 하여 졌나니 이것은 깨달음으로 인하려 다음에 다할지니 단 범부의 정을 다 녹일지어니와 별다른 성현의 지견으로 제할바는 아니 니라. 육근(곧 몸의 일체감각)이 경계(깨달은바)를 섭하여 인연을 쫓지않음을 위지왈 정이요 마음과 경계가 함께 공하여 비춤에 혹함이 없음을 위지왈 혜이니 맑음이 더하여 지는 곳을 향하여 정과 혜로 닦아 익힘을 오래오래 순전하고 완전하게 익히며 항상 비춰봄을 잊니 아니하면 자연 망령된 습기와 곧 자기도 모르게 하는 허물의 혹하여 있는 업을 다 녹여 남음이 없느니라.


깨달은 바의 아는 바 견을 다 들어 내 놓아버리고 고요히 알며 운수대로 맡겨 절대 집착치 말지니 머무르는 바가없이 생하는 그 마음으 로 응하여 마음이 머물었느냐 마음 자리하고 경계냐 겅계 자리하여 단지 돌하면 돌, 나무하면 나무할지며 절대 딴 것을 봄이 없 이하여 때가 있음에 마음과 경계가 서로 대하여도 마음이 경계를 취함이 없고 경계가 마음에 임하지 못하나니 오랜 겁의 어두움 과 작고 가늚의 혹한 업이 녹아 다하여 남음이 없느리라.

 

닦음도 없고 증명함도 없으며 봄 도 살핌도 없어 닦음 없음으로 닦고 행하여 조금도 수고로움이 없는 마음의 힘이 위지 닦음이니 본 마음이 아님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어 비어 밝음 이 스스로 비춰 스스로 머무르는 바가 없는 마음이 신령하게 앎이 어둡지 아니하여 목석과 간지 않고 스스로 신해하여 아나리라 삼명육통 일체가 본래 갖추어져 족한바라 해가 지고 달이 뜨며 비가오고 구름이 다니게 함과 능히 정하고 능히 움직이며 혹 들어 가고 혹 나옴이 곳곳에 걸림없이 자재하여 어도에 걸림이 없나니라 이것이 통투 조사선하여 대장부 일을 마친 바이니라.절대여 래선은 요중에서 익힘이 이익이 많으리라 무명혹엽을 녹이는데 도움이 많으리라.

 

 

제 二. 참선은 무엇인가?

 

1). 참선의 정의

 

참선(參禪)이란 사려 분별을 끊고 마음을 집중하여 마음(眞如, 佛性, 空,
緣起)을 깨우치기 위해 닦는 불교수행 방법을 말한다.


<참(參)은 헤아린다, 연구한다는 뜻>이고 禪은, 어원적으로 보면
범어의 dhyana의 음역인 선나(禪那)에서「那」를 뺀 것이다. dhyana란
정려(靜慮), 사유수(思惟修)의 뜻이다. 주로 앉아서 수행하기 때문에
좌선이라 한다. 좌선은 인도의 모든 종교가 수행 방법으로 사용한 것으로
불교도 이를 종교적 실천법으로 채용하였다.

 

불교의 좌선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단좌정사(端坐靜思)하여
깨달음을 얻고, 그 직후 삼·칠일 동안 삼매(三昧)에 잠겨 있었던 데서
비롯된다. 그 뒤 불교의 중요한 실천 덕목이 되어 근본불교의 삼학(三學
: 戒·定·慧)과 대승불교의 육바라밀)의 하나로 정립되었다.


중국에서는 보리달마(菩提達磨) 이후 좌선을근본수행법으로 삼는 선종
(禪宗))이 성립되어 그 종풍을 크게 떨쳤다.

 

선종에서는 禪이 삼학과 육바라밀을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그리고 단좌
하는 것만이 아니 라행(行)·주(住)·좌(坐)·와(臥)의 모든 일상생활이 禪
수행으로간주되어 소극적 형식주의적인 좌선이 아니라 적극적 자유주
의적 좌선이 선양되었다.


중국의 육조 혜능은《육조단경》에서 <주심관정(住心觀靜)은 병일 뿐
禪이 아니다. 오래 좌정하여 몸을 괴롭게 한다면 도리어 어떤 이익이
있겠는가. 바깥의 일체 선악 경계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을 坐라 하고,
안으로 자성(自性)의 부동(不動)을 보는 것을 禪이라 한다>고 하여
형식주의적인 좌선을 타파하였다.

 

이러한 점은 초기 대승불교 경전인《유마경》의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어간다. 이것을 연좌(宴坐)라 한다>는 가르침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송대에 이르러서 대혜종고(大慧宗 )에 의하여 공안(公案)을
사용하는간화선(看話禪) 이 확립되었다.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공안〕을 뚫는 것이요,
묘한 깨달음은 마음길이 끊어져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선종의 많은 고승들이 좌선에 관한 글을 남겼으나,
한결같이 행·주·좌·와 중에서 앉아서 닦는 좌선이 집중 력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강조하였다. 처음 수행할 때는 좌선으로 시작하고,
차츰 삼매의 힘이 강해지면 어느 때에도 선정)에 들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고려 중기의고승 지눌(知訥)이 지은《진심직설
眞心直說》과 조선 중기의 고승휴정(休靜)이 지은《선교석 禪敎釋》등에는
이들 禪法에 관하여 자세한해설을 가하고 있다.


2). 참선의 역사

1926년경 인도 인더스강 유역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학술 조사하던
영국의 고고학자 팀이 인도 인더스강 유적 중 상류와 하 류의
고분벽화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 그림을 발견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인도에서는 2500∼3000년 전부터 결가부좌를 하고 참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요가수행을 하던 수행자들의 〈결가부좌〉와〈반가부좌〉
형식이 부처님 시대이전부터 부처님 시대를 지나 조사스님으로 전하여
졌으며 2540년이지난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불교를 모르는 타종교인이나일반인들은 결가부좌, 반가부좌를 한 그 겉
모습이 같은 점으로 보아 여러명상법과 불교의 禪을 혼동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내용 면으로보면 비교가 안될 만큼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인
식해야 한다. 그러면참선의 역사는 부처님이 확철대오하신 때부터 시작
되니 2540년이 되며,요가·명상법의 역 사는 4500∼5000년이 됨을 알 수 있다.


3). 참선의 목적

참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다. 무엇이냐 하면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왜 죽으며, 죽을인생이 왜 났는가? 오직 죽기 위해서만 난 것인가?
이 세상에는 죽는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는데, 눈앞에 닥쳐오는 일은
모두가 나를 늙게하고 병들게 하며 죽게 하는 일, 그것들 뿐이다.
참으로 그것뿐이며 왜그럴까? 가는 인생을 붙잡을 수도 없고 오는
인생을 막을 수도 없다.


과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렇게 목적 없이 왔다가 목적
없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렇게 목적 없이 왔다가 목적 없이 가야만 할
것인가? 먹고는 자고, 자고는 먹고 그리하다 보면 늙고, 병들고, 죽고,
그것뿐으로 끝장인지 또는 남아 있는지 참으로 궁금한 일이다. 영 원히
돌아올 수 없는 그 어딘가로 아주 가 버리고 마는 것만 같으니 걱정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는 뜻없는 세상이나마 영원히 죽 기는 싫고 하다못해 일
년이라도, 아니 한달, 아니 하루라도 더 살고만 싶다. 왜 그러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 그런 모양이 다. 이 최고 최대의 문제가 풀리기 전에
인생의 다른 할 일이란 무엇이 있으랴!

 

하기야 우선 급한 일은 먹고사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왜
그렇게 불편하게 마련되었으며 먹지 아니하고서 몇 만년 살다가 죽으면
사는 동안이나마 편할 것인데도 전부가 맞지 않는 일뿐이다. 좀 쉬울
법한 일도 있으련만 그런 것 저런 것을 생각 할 여지도 없이 날마다 밥
세그릇씩을 먹어야만 사는 것인 인생이니 따분한 일이다. 거기에다
경쟁을 해야만 이런 생명이나마 끌 고 갈 수가 있게 되어 있으니 죽고만
싶을 뿐 살 의미는 발견할 수 없다.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이니
쓸데없는 고민보다 는 하고픈 대로 하다가 죽는 날 죽으면 그만이
아니냐고 생각하자니 목적 없는 싸움에 한량없는 생명을 자꾸만 죽여야
하니, 나 혼자 살겠다고 해서 살고만 싶어하는 남의 생명을 자꾸 죽여
버리니 참혹한 일이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맞지 않게만 마련했을까 ?
그렇다고 해서 나마저 죽자니 그것은 절대로 안 될 일이고 살자 하니
까닭을 모른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환멸의 현상태에서 실연한 사람이다.

물거품 같은 이 몸, 실로 믿을 길이 없으니 하루속히 도인을 찾아 뵈옵고
도를 배울 일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세속의 은혜 두 터운 부모 형제,
처자식과 이별하고 천하 명산을 다 찾아서 선지식을 뵈옵고자,
일편단심으로 온 정성을 다하여 때론 굶으며, 눈, 비바람을 피하지
아니하고 찬이슬 바람에 바깥 잠을 자 가면서 선지식을 찾노라니, 그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마는 이 역시 생사를 해탈하기 위한 하나의
작은 고개인 것이다.

 

그리하여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소문을 듣고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니
그 다행함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선지식을 섬기되 목숨을 구하여
받들며, 한마디 법을 듣기 위해서 불이나 물에도 뛰어들기 어려워하지
않으면 대도를 깨달아 생사 초월하는 법을 바로 배울 것이다. 그리하여
참선공부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처음에 선택한 화두 하나에만 매달려서
죽을 판, 살 판으로 애써 공부하여야 하고 1초 동안이라도 화두 이외의
틈이 있으면 공부가 아니다.

 

만약 1700종류의 화두를 낱낱이 조금씩 집적거려보고 따지다가 턱도 닿지
않는 사견(邪見)을 붙여서 <알았다> 한다면 그것은식심분별(識心分別)로 따진 알음알이에 지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죽 끓듯이 일어나는 번뇌 망상, 그것을 끊으려고 애쓰지 말 것이며 또한걱정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물을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점점 고요해질수 없지만 가만히 놓아두면 물결은 저절 로 가라앉아 없어지는 것과같아서 번뇌망상을 끊고자 하거나 걱정을 하는 것은 지혜가 아닌 것이다.다만 자기가 공부하는 화두 만 일심 전력으로 챙겨 참구해 가면 화두는
점점 자리가 잡혀 일체 망상이 뚝 끊어져 버리고 화두일념만 드러나서 이순일무잡한 화두의 의심만이 힘차게 뭉쳐 온 천지가 화두에 대한의심뭉치〔疑團〕 하나로 되어 그 밖에는 자기 존재마저 인식할 수 없게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화두를 생각하는 의심이 점점 커지고 분명해지며 힘차고
확실해져서 한없이 고요하고 안정된 가운데서 화두의심은 바람에 타는
산불과 같이 점점 크게 번지리라. 시간이 가는 것을 모르고 잠이 전연
없어지며 화두를 놓아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 이 급해 가는 것이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열흘 안으로 확철대오를 한다 하니 禪의 궁극적 목적은
화두타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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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바라밀(十波羅密)


대승불교 보살의 열 가지 수향 덕목. 우리나라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보살행이며,육바라밀의 연장이기도 하다. 대승불교의 보살행은 처음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선정 . 반야의 육바라밀로 완성시켰으나 뒤에
방편(方便) . 원(願) . 역(力) . 지(智)의 네 가지를 더하여 십바라밀을 만들었다.
이 중 방편은 보시·지계·인욕바라밀을 조반(助伴)하게 되고, 원은 정진
바라밀을, 역은선정바라밀을, 지는 반야바라밀을 조반 하게 된다.

 

 

(2) 선종(禪宗)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함. 달마대사가 중국에 전했으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교(敎)밖에 따로 전하였으며 문자를 세우지 아 니하고 성품을 깨달아 성불함
(以心傳心 敎外別傳佛立文字 見性成佛)을 종지로 하는 종파. 선종이란 말은
부처님의 설교를 소의( 所依)로삼는 종파를 교종(敎宗)이라 함에 대하여 좌선을
닦는 종파라는 뜻.육조 혜능 이후 임제, 위앙, 조동, 운문, 법안종의 5종가풍이
벌어져 극히 성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선덕여왕 5년 (784) 당 나라 마조스님의 법제자인 서당지장
선사에게서 법을 받아온 도의국사를 초조로 하는 가지산문을 비롯하여
실상산문,사굴산문, 동리산문, 성주산문, 사자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의 9산선문이 성립되어 번창하다가 고려 때에 차츰 쇠퇴해졌다.
후 에 보조국사가 일시 중흥시켰으나다시 쇠퇴하다가 고려 말기에 태고 보우
국사와 나옹스님이 중국의 임제정맥(臨濟正脈)을
받아 와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3) 선정(禪定)


불교의 근본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 반야(般若)의 지혜를 얻고 성불하기 위하여
마음을닦는 수행으로서, 생각을 쉬는 것을 의 미한다.
인간의 생활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불만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일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잡다한 생각을 쉬지못하고 어리석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망념과 사념(邪念)과 허영심과 분별심을버리면 이 세상이 곧 극락이고
이 마음이 곧 부처라 하였는데,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기위해서는 마음을 쉬는
공부인 선정을 닦을 것이 요구된다. 전통적으로 불교에서는 사선(四禪), 사정
(四定)에 멸진정을 더한 구차제정(九次第定)등의 수행방법이 제시되었다,

 

 

(4) 요가(yoga)


인도 고래의 풍습으로 원래 어원은 유즈(yuj)에서 옮겨진 것으로 본 뜻은 억제(抑制)또는 결합(結合)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곧 요가의 수행법은 정좌하여 잡념·
세상(細想)은물론 온갖 마음의 작용을 억제하면서 마음을 절대 평정한 상태에
두는 것을 목적 으로했기 때문에 억제의 의미를 지녔으며, 그러한 절대 평정한
마음은 드디어는 어떤 행위를전제로 하고 몸과 마음을 통제하여 마음의 표상을
어느 한 곳에다 집중하게 되므로결합의 의미를 낳게 되는 것이다.


山堂靜夜坐無言 산집 고요한밤 홀로 앉았네.
寂寂寥寥本自然 고요하고 고요해서 본자연이로다.
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서풍은 잠든 숲 깨워
聲寒雁 長天 한 소리 찬기러기 장천을 울며 가는고.
야보도천(冶父道川)

 

 

제 三. 참선의 종류

 

참선의 종류 참선의 종류에는 범부선, 외도선, 소승선, 대승선,
최상승선이 있다.


1). 범부선(凡夫禪)-- 중생이 현실적인 이익을


위하여 닦는 禪으로서 현재 미국,유럽 등 서양에서 유행하고 있으며,
지식인이나 일반인이 정신적 스트 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닦는 禪으로
우리나라 대기업체 사원연수과정에서 가르치는 禪을〈범부선〉이라 한다.
범부선이 미국과 유럽에서 굉장히 성행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禪을 통해서 풀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역량에 저장할 용량을
넘쳐서 자기가 알고 있는상식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스트레스가 쌓여 해소할 길이 없다. 등산, 낚시로
해소되지도 않고,근본적인 고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고로 가만히
앉아 범부선이라도닦아야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괴로운 일이
벌어지고, 무엇때문에 이렇게 번뇌가 많은 것인가? 사무실에서 서류정리
가 되지 않고집안이 정돈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이 될 것인가? 자기
가 필요한사물의 위치가 분명한 것처럼, 서류를 놓아야 할 자리가 기결,
미결,보류로 나뉘는 것처럼, 참선을 통해 이 마 음이 정리 정돈이 되면 말을
해도 논리적으로 할 수 있고, 생활도 질서 있게 할 수 있으므로
범부선이라도 꾸준히 하면 분명히 달라진다.

 

정리정돈이 잘된 상태이기때문에 좋은 효능이 나온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해소한다고 술을 먹지만해소되는 것이 절 대 아니다. 정신 건강학적으로 보
면 말을 많이 하는것도 좋은 점이 많다. 수다쟁이는 병이 별로 없다. 대화를
많이 나누라.자살하는 사람 의 85%가 내성적인 말없는 사람, 표현력이 부족
한사람이다. 자기 고민을 그날그날 방청소하듯 털어놓으니 병이 없다.
<좋다, 나쁘다>의 극단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참선을 해야 한다.
내성적인 사람일수록 참선을 통해 활발하고 표현력 있고, 말을 조리 있게
하여 자기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서양에서는
범부선이 상당히 번져 있다. 절대적인 구원을 말하고, 하나님, 부처님을
믿으라면 그들은 벌써 식상해서 믿지 않는 다. 정신적 지도자의
부재시대이기 때문에 자기문제에 이득이 금방 있다고 하고, 피부적으로
대화를 나눠 마음이 편해지고 나를 올바로 판단해 주고 한다면 그 사람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범부선을 많이 닦아야 한다. 〈범부선〉을 닦으면
백명 중에 백명이 다 효과를 본다. 그러니 이 사바세계에 범부선이라도
많이 번져야 한다. 범부선을 닦으면 첫째, 건강해진다. 전문 수행인이
아니라 일반 속세에서 생활하는 중생이라도 꼭 참선을 하면 이익 되는
단계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보약보다 좋은것은 정신적, 육체적 휴식이다. 보약은 벌써 늦은 것이다. 몸이 피곤하니졸리운 것이니 자기 몸 졸립다면 자 주고, 안 자고 버티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자기의 기(氣)를 많이 방출시켰으 면 보충시키려고 잠이 오는
것이다. 짜증날 때는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쉬어 주어야 한다. 몸뚱아리 를 과학적인 차원이 아닌 도(道)적인
차원에서 지혜와 혜안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고민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 면 얼굴부터 다르다. 〈범부선〉을 통해 얼굴이
맑고 밝고 환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절대 늙지 않는다. 항상 자기
마음을 닦는 사람, 정진을 많 이 해서 번뇌가 쉰 사람은 얼굴이
불그스레하면서 늘 건강하다. 약(藥)하고 인연을 맺으면 계속 맺게 되니
정신력으로 견뎌야 한다.

 

본래 몸이 없기 때문에 본래 병은 없는것이다. 그러니 참선을 많이 하여, 누가 뭐래도 여러분이 주인이 되어몸을 잘 다스 려야 한다. 썩은 나무에는 새가 날아와 노는 법이 없다.잎이 무성하고 푸릇푸릇해야 새가 날아오고 사람도 그늘에 쉬었다 가고하듯이 여러분이 건강해야 한다. 기를 잘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道
닦는 사람은 손톱만 깎아도 기가 빠지고 삭발해도 기가 빠지는데 고로목욕하고 삭발한 날은 참선을 하지 않는다. 뜨거운 물 에 찜질하는 것도기가 빠진다. 기가 빠지니 허기가 지고, 허기가 지니 기를 보충하려고고기를 먹고 고기를 먹으니 피가 탁해지 고 피가 탁해지니 정신이흐려지고 지혜가 없으니 판단력이 흐려지고, 판단력이 없으니 남에게속고,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된다. 큰 지혜라는 것은 참선을 통하지않고는 될 수가 없다.

 

인간은 원래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 존재이다.
변소길과 저승길은 혼 자 가는 것이니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만은
절대적인 존재로 알기 때문에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않고 사는데
치우쳐 살아가니, 道를 바르게 닦지 못하는 분이 안타깝다. 道라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인데 마음을 바르게 닦음으로써 道 닦는 사람은 적응을 잘
한다. 직장, 가정생활, 모든 면에 원만해 진다. 道人이라는 것은 적응을
잘 하는 것이다. 생각이 두 번 이상 떠오르면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데 이 참선은 두 생각도 넘기지 않고 한 생각에 돌이켜 보는
것이다. 똑같은 망상이 3번 이상 일어나면 그 다음에는 행동으로
옮겨지는데 이 망상과 이 행위를 『카르마(karma)』즉『업』이라고 한다.

禪에서는 생각이 없다. 여러분이 일체망상을 갖고자 하는 이것이 업을
짓고 있는 것이다 . 생각이 쉬어야만이 업장소멸이요, 생각을 쉬어야만이
근본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 업이 많은 사람은
무엇을 해도 안된다. 모든 판단은 여러분의 지혜로 하는 것이므로 참선을
꾸준히 닦아야 한다. 둘째, 머리가 맑아지고 두뇌가 좋아진다. 하루하루
청소를 하듯 정돈이 되니 항상 머리가 정리정돈이 되어 혼돈이 없으니
머리가 맑고 두뇌가 좋아지는 것이다. 마음은 무궁무진한 힘이 있는
것이니 마음을 비워야 한다. 셋째, 예지력이 생긴다. 어제의 생각이
옳으나 오늘은 틀리고, 내일은 또 맞고, 인생은 물건을 사고, 교환하고
하듯이 할 수 없으니 자기판단에 책임질 줄 아는 힘은 꾸준한 정진에서
나타난다. 우연이란 없다.

모든 것이 필연일 뿐, 뿌린 것만큼 거두는
것이다. 이 세상법은 노력해 야 한다. 이렇게 禪이 외국에서 많이
행해지는 이유는 물질문명과 더불어 심화되어온 사회적 고뇌로부터의
해탈을 禪에서 찾기 때문이다.
◎ 효능 ㄱ. 건강이 좋아진다.
ㄴ. 머리가맑아지고 두뇌가 좋아진다.
ㄷ. 예지력이 생긴다.
ㄹ. 판단력이좋아진다.
ㅁ. 관찰력이 생긴다.
ㅂ. 표현력이 생긴다.

 

 

2).외도선(外道禪)


부처님의인과법(因果法)을 믿지 않고,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잘못 알고집착하여 그것에 의해 닦아 가는 禪을〈외도선이라 한다.
천주교의묵상, 신선도, 단(丹), 인도의 요가수행자의 명상 따위를 말한다.
외도선은 몸에 집착을 가질 필요가 없는데 몸을 아 끼고 집착을 한다.
외도의 공통점은 부처님법을 비방한다. 계율을 지키는 것을 소승이라
하며 비방하고 <丹이나 氣를 돌린다> 하여 참선을 하는 자세로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색계(色界)나 무색계천(無色界天)을〈열반〉으로 잘못
알고 그 곳에 태어나고자 禪을 닦는다.

〈외도선〉의 자세 또한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외형적 모습으로는 참선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으나 내용 면 에서는 불교의 禪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요즘 널리 알려진 다른 수행(단전호흡, 요가, 명상 등…)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 기들 나름대로는 진리를 통했다고 하지만 거의가
외도선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3). 소승선(小乘禪)
한 마디로사념처(四念處)이다.
사념처란 신·수·심·법념처(身, 受, 心,法念處)를 말한다.
《아함경》에 여러 선법이 나와 있 지만 모두 사념처에
포함된다. 예비수행으로 알려진 오정심관(五停心觀) 중에서 수식관,
부정관은 신념처에 포함되고 자비관, 인연관, 관불관은 법념처에
포함된다. 사념처관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몸 〔身〕은 깨끗지못하다고 관하는 것 (觀身不淨) 느낌
〔受〕은 괴로움이라고 관하는 것 (觀受是苦) 마음〔心〕은 무상하다고
관하는 것 (觀心無常) 법〔法〕에는 상주불변의 아(我)가 없다고 관하는
것이다. (觀法無我)

 

둘째는, 팔리경전《대념처경 大念處經》에 의한 것으로 몸동작과 호흡을
관찰하거나 느낌,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관찰하 는 것이다.
소승선을 닦으면 아공(我空)을 증득한다고 하는데, <아공이란 제법은
오온이 인연의 화합에 의해 잠시 형성된 존재이므로 상주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요,
마음 밖에는 한 법도 없고 꿈과 같이 존재한다>는 도리를 모르고 모든
법이 객관적 으로 실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증득하는 과위(果位)가
대승선이나 최상승선보다 하열한 것이다. 소승선을 수행하면 아라한 이나
연각 을 증득하는데 모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상근대지(上根大智)는수식관에서도 보리를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열반경》에서 분 명히밝혔는 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12인연을 하품(下品)으로 관하면아라한과를 증득하고 중품(中品)으로 관하면 연각을 증득하며상품(上品)으로 관하면 불과(佛果)를 증득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사념처관이 소승선이 아니라 관(觀)하는 공능의 차이에 의해 과(果)의차별이 벌어지는 것이다.

 

4). 대승선(大乘禪)

대승선은규봉스님이《도서都序》에서, <대승선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깨닫아 닦는 선>이라고 했지만 의미를 넓혀서 그 행법을 수행하면 아공,
법공을 깨닫 고 구경에는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는 禪이 대승선이라고
정의할 수있다. 소승선이 <모든 법은 오온의 화합에 의해 거짓 존재한는
것을 알았지마는 마음 밖의 객관적인 존재, 실체를 인정하는 것>과는
달리 법공이라는 것은 <모든 법이 오직 마음이 지어낸 바요, 마음
밖에는 한 법도 없다>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만법유식(萬法唯識), 심생종종법생 심멸종종법
멸(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등등의 여러 경전 구절 들이 법공,
유심(唯心)의 도리를나타내는 것들이다. 반야부 경전의『반야공관』,
원각경의『공관·가관·중도관 (空·假·中道觀 :三觀)』,
능엄경의『25관법』, 관무량수경의 『16 관법』, 해심밀경의『유식관』,
화엄경의『사법계관』, 그리고『삼매』로 표현한
반주삼매경의『반주삼매』, 수능엄삼매경의『수 능엄삼매』, 문수설
반야경의『일행삼매』, 등등의 여러 禪法이 소개되어 있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후대의 대선지식들에 의해
구체적인 방법이 체계화 되었다.

 

인도 유식학파에서는『유식관』을
세웠고, 마명보살은《대승기신론》에서 지·관(止·觀)의 방법을
제시하였고, 천태스님은《마 하지관》을 저술하여 지·관의 구체적인
방법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화엄학파의 초조(初祖)
두순(杜順)은《법계관문》을 저술하 여 진공관(眞空觀),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 의 『법계삼관』을
주창하였다. 중국에서 禪宗이 흥함에
따라〈천태〉,〈화엄〉,〈삼론〉,〈법상종〉등의 모든 종파가 약화되어
갔으며 결국에는 명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더불어 각 종 파에서 행해지던
관법도 서적에 의해서만 알 수 있을 뿐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공부 방법은
지금에 와선 잘 알 수 없다.

 

 

5). 최상승선(最上乘禪)


부처님 당시에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연꽃을 들어 보여 부처님의 일대시교인
8만대장경 밖에 따로 전한, 일체 모든 방편을 초 월하여 바로 자기
성품을 가리켜 <직지인심 견성성불 直指人心 見性成佛>하게 하는 禪을
말한다. 그런데 요즘 禪이 너무 남용되어 아무 것이나 <禪이다>라고
하는데 최상승선만이 禪이라 할 수 있고 나머지는 앞에 외도선, 범부선,
소승선, 대승선이라고 명칭을 붙여써야만 바른 정법의 혼란을 막을 수
있고, 禪이라 쓸 때는 최상승선을 나타내는 것으 로 인식이 되어지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하여야 한다.

<최상승선이란 일체의 상대적인 망상이붙지 못하는 절 대적인 진리체의 자리를 가장 가깝게 표현한 것> 으로화두를 통하여 깨쳐야만 알 수 있는 것이지, 1분에 7만 번 요동치는 우리중생의 상대적인 망상심(妄想心)으로는 부처님이 제시하신 절대적인 진리자리를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다. 좌선할 때 뇌를 과학적으로 실험한특징 벌써부터 일본 의학계에서는 뇌파와 정신 전류 현상을 이용하여 좌선할
때 나타나는 과학적인 특징을 여러 갈래로 정리하여 발 표하였다. 그많은 실증 가운데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사실만이라도 살펴본다는 것은과학문명시대에 사는 현대인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유익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눈을 감고 평정한 상태에서 나타나는뇌파인 알파(α)파는 눈을 반 정도 뜨고 한가지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좌선 중에도 현저히 나타난다.

 

더욱이 전혀 좌선을 체험해 보지 못한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좌선의 초보적인 방법만을 지도하고 좌선을 하게한 후 뇌파를 측 정하였더니 역시 알파(α)파가 나타난다는 놀라운사실도 밝혀졌다. 〈한스벨가〉라는 독일의 정신의학자가 1929년에사람의 시 각중추를 통하여 나타난 두뇌의 활동을 연구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알파(α)파는 뇌의 활동이 안정될 때 나타나는 뇌파이고,
베타(β)파는 뇌의 활동이 활발할 때 나타나는 뇌파> 라고 하였다.

눈을감고 안정된 상태로 있으면 규칙적으로 파도치는 파형이 알파(α)파가
되고 눈을 뜨고 활동을 시작하면 알파 (α)파는 갑자기 사라지고 진폭이
작은 파형인 베타(β)파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좌선을
수행할 때 눈을 반이라도 뜨고 있으므로 베타(β) 파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 실제에서는 예상 밖으로 완전히 뒤집혀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좌선을 수행한 사람에 있어서는 좌선을 시작한 후 1분 이내에
뇌파가 평정한 상태로 변하 게 된다는 것이다. <눈을 반쯤 뜨고
있으면서도 외부와의 긴장된 관계가 없는 느긋한 정신이 좌 선을 시작한
1분 이내에 이루어진다는 사실> 은 실로 놀라운 발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외부의 물체를 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에 집착하거나
지배되지 않는 상태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실증된 것> 이다.

좌선을 할때 세타(θ)파가 나타나기도 하나 잠을 잘 때에 나타나는 세타
(θ)파와는다르다고 한다. 좌선을 하고 있을 때 졸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것으로 좌선을 오랫동안 수행한 사람에게서만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좌선을 끝낸 뒤에도 좌선의 여운이 남아 30∼40초가 지나도록
알파(α)파가 가시지 않는다고 하며, 좌선을 다년간 수행한 사람
가운데는 좌선의 여운이 무려 5분 동안이나 계속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을 밝혀 보고자 좌선을 오래 수 련한 사람과
좌선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조건으로 그냥
앉혀 놓고 실험해 본 결과, 좌선을 경험해 보 지 못한 사람들에게서는
알파(α)파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눈을 뜨고 있을 때의 베타(β)파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간혹 1∼2초 정도 알파(α)가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으로 禪의 묘미라고 하는 삼매(三昧)의 경지를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는 귀중 한 사실까지 얻어냈다. 좌선을 할 때는 잠을 잘 때와는
달리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가 잠에서 깨어 있을
때보다 더 강하다> 고 한다. 뇌파와 함께 『정신전류현상』의 실험을
병행하여 좌선의 뇌과학적인 현상을 더욱 명백하게 밝혀 놓았다.
우리들이 흥분할 때에는 손바닥에서 땀이 흐르고, 그 땀에는 많은 염분이
있으므로 전기 저항은 당연히 감소될 것이다.


이『정신전류현상』은
사람이 눈을 뜨고 있을 때에만 나타나며, 잠이 들어 있을 때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잠이 든 사람 앞에서 아무리 이야기를 한들
그가 들을 수가 없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잠을 잘 때
나타나는 알파(α)파나 세타(θ)파 등이 나타나고 있을 때
이『정신전류현상』도 나타나는가, 나타나지 않 는가를 조사해 보면
<좌선 중에 자는가, 자지 않는가>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좌선을
하는 동안 『정신전류현상』이 나타난 다면 <자는 것같이 보여도 자는
것이 아니다>라는 실증이 될 것이다. 종립 光東 女高 참선지도 분석

결과수업 전의 參禪지도는 수업 분위기 조정과 학생들의 學習能力向上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지도 결과가 나왔다. 또 계속적인 參禪지도로 參禪의
生活化 가능성이 보임으로써 參禪지도가 全人敎育의 정서적 측면을
보강할 수 있다고 확인됐다. 이와 같은 내용은 종립 光東女高가 지난
83학년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졸업 시까지 3년 간 계속 지도 관찰한
결과를 분석함으로 써 밝혀졌다. 지도결과에 따르면 <수업 전에 參禪을
함으로써 수업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응답한 학생이 1학년 때 48.2%,
2학년 때 66.6%, 3학년 때 76.1% 로, 全敎師가 수업시간 마다 계속
지도하고 參禪生活이 익숙해짐에 따라 좋은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됐다.


3학년에 와서도 무관심한 반응을 나타낸 18%정도의 학생과
부정적인 응답을 한 6%의 학생은 종교적 선입관이나 參禪상태 평가 에
대한 불만 등이 심리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생각되며, 이에
대한 해소 방안은 발전 단계에서 계속 연구되어야 할 과 제로 남아 있다.
參禪을 통해 체험한 결과 가운데


①【나의 참선태도는】이라는 질문에
대해 <參禪이 비교적 잘되는 편>이라고 대답한 학생이 3학년 에
67.1%이고 잘하려고 노력하는 학생까지 합치면 88.1 %로서 대부분의
학생이 參禪에 익숙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②【학교에서 하는 참선을
통하여】라는 질문에 대해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때가 많다>고 대답한
학생이 3 학년에서 70%에 이른 점으로 보아 바람직한 결과로 해
석되었다.


③【수업 전에 실시하는 참선 이외에 개인적으로 참선을 해 본
경험이 있는가】하는 질문에는 〈시험을 치르기 전에〉〈집에서 수양을
위해〉〈학교생 활 중 마음이 불안정할 때〉〈기타〉등, 3학년 385명 중
100명이 응답함으로써 參禪의 생활화가 심화된 현상 으로 해석됐다. 이와
같은 결과는 全人敎育의 정서적 측면을 參禪지도로 보완할 수 있으며,
불교적 인격도야의 방법으로써 학교에서의 參禪지도 가 효과적인
방법임을 증명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타】난에 명기한 일상생활
가운데의 參禪사례는
▲ 집안이 어수선하고 고민이 있을 때
▲ 부모님의꾸중을 듣거나, 의견 대립으로 화가 나서 흥분 되었을 때
▲ 입시준비하다 정신 집중이 안 될 때 등이다.
마지막으로 參禪지도의 필요성을확인하는 검사에서는 <參禪지도를
계속해 주기를 원하는 학생> 이1학년 때 61.5% 에서 3학년 때 93.5%로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이 가 운데 79%는 보다 철저하게 지도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것은參禪지도의 결과로 <參禪의 생활화>가 뿌리를 내린 증거로 판단
되며,光東女高의 특색 사업으로 확신을 가지고 계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
도록하는 자료가 되었다. 광동여고는 지난 83년 3월부터 이와 같은 全敎師의
參禪지도를 同敎의 특색사업으로 정하고 수업에 임하기 전에 參禪을
실시해 왔다. 매 학기초에 전교생에게 參禪의 기본자세와 효능에 대한
반복 교육을 하고, 수업시간 전에는 參禪지도 요원의 지도로 자율 적인
參禪의 생활화를 꾀했다. 또 교과 담임교사는 매시간 지도와 평가를
담당했다.

 

이러한 결과, 작게는 학생들이 수업시간 외의 경우에도 자신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參禪을 할 정도로 參禪의 생활화운동에 진전 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크게는 불교교리를 바탕으로 한 인격완성이란
불교종립학교의 건학이념구현을 정서적 측면에서 충실히 보 강할 수
있었다고 결론지어졌다. 한편 이러한 결론은 전교사의 불교지도에 대한
관심, 즉 전교사의 校法師化가 전제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결과라고
판명되었 다.

 

광동여고는〔參禪〕이라는 명칭 대신에〔入定〕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교내생활 가운데 參禪을 통해 심신을
안정시키고 조용한 수업분위기 조성으로 효과적인 학습태도를 갖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參禪의 생활화> 지도는 물론 궁극적인
목표가 <신앙의 생활화>를 인도하자는 것이지만 40% 이상이 타종교
학생일 뿐만 아니라 매시간 수업에 임하는 교사들의 신념과 자연스럽고
적극적인 지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점이기도 했다. 그
러므로 이번 연구에서는 효과적인 수업분위기 조성이라는 측면을 보다
강조했었다. 참선지도 결과 인식 변화 (단위%) 설문 내용1학년2학년3학년
수업분위기가 좋아졌다486676
마음이 안정을느꼈다266470
비교적 잘 되는 편이다206467
철저한 지도를 바란다.346679

 

      ♠ 주 해


(1) 오정심관(五停心觀) 1. 탐심(貪心)많은 중생은
부정관(不淨觀)을 닦는다.
2. 진심(瞋心)많은 중생은 자비관(滋悲觀)을닦는다.
3. 어리석은 중생은 인연관(因緣觀)을 닦는다.
4. 정신이 산란한중생은 수식관(數息觀)을 닦는다.
5. 나에 대한 집착심이 강한 중생은계분별관(界分別觀)을 닦는다.
(인연관과 계분별관이 서로 비슷하기때문에 계분별관 대신 불 상관
(佛相觀)을 넣기도 한다.) 이 오정심관이란말은 5가지의 중생심을
정지(停止)시킨다는 뜻이다. 곧, 중생의근본번뇌인 탐·진·치
(貪·瞋·痴) 삼독(三毒 )과 산란심(散亂心)과그리고 중생의 업장을
5가지 관심법(觀心法)으로 다스리는 것이다.탐·진.·치·산란심·
업장은 어떤 중생이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탐심이 더 많은 중생은 그 탐심부터 먼저 다스리고
진심이 더 많은 중생은 진심을 먼저 다스리고, 후에 다른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다. ※ 부정관 (不淨觀) 중생은 탐심을 그 삶의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탐욕에는 재물욕,성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財 色 食 名
睡) 등의 오욕(五欲) 이 대표적이다. 부처님은 이 탐욕을 다스리는
방법으로써 〈부정관〉을 닦으라 하였다. 부정관은 곧 <그 몸이 부정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생명체가 이 세상에 존재한 것은
그 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몸은 곧 자기 생명체이니 몸을 지극히소중하게 생각한 다. 그 몸은 금덩이나 보물덩이보다 소중하게생각하면서 그 몸, 그 생명이 요구하는 욕심을 채우려고 갖가지의 수단,방법을 가 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 욕심 때문에 한량없는 나쁜 짓을저지른다. 그런 탐욕심을 다스리는 방법으로서 <이 몸은 부정한 것>
이라고 관하는 것이다. 그 관법은 고요히 앉아서 이 몸의 존재를三단계로 나누어 관찰한다.

 

1. 생체부정(生體不淨) 이 몸이 당초에
연꽃송이 같이 깨끗한 곳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
정·모혈(父精·母血)이라는 애욕의 부정한 인연 에 의하여 그것이 응
결되어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대장과 소장의 중간 음식물이 소화되는
부정한 위치에 서서 10개월( 十朔) 동안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자라났
다. 그것이 생체부정이다

 

2. 현상부정(現相不淨) 현재 이 몸이 안으로
오장 육부가 있고 밖으로 귀·눈·입·코·팔 ·다리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귀에는 귀청, 눈에는 눈꼽, 입에는 침(唾 液), 그리고
똥·오줌(大·小便)이라는 부정물(不淨物)이 늘 흐르고 있 으며 안으로
위장·대장· 소장에서 늘 음식물이 소화되고 부패하여
똥·오줌(大·小便)으로 화하는 부정물이 가득차 있다. 그리고 머리·
얼굴 ·손·발·몸에는 늘 더러운 때와 먼지, 땀이 뒤덮여 있다. 여인
들은 그 몸을 화장하고 분을 칠하고 향수를 바르며 곱게 가꾸지만 그
몸자체가 그렇게 아름답고 깨끗하고 향기로운 것이 아니다. 옛 도인은 그
몸을 <똥·오줌을 담은 포대며 피·고름 주머니다> 라고 하였다. 피가
살아 활동할 적엔 더러운 줄 모 르지만 일단 피의 활동이 정지되면
고름이요, 썩고 냄새나는 부정물이다. 그런 피로 채 워진 것이 몸이며
썩어 소화 된 음식물의 기운에 의하여 그 생명이 지 탱되는 서글픈
존재이다. 이것을 현상부정(現相不淨)이라고 하였다.

 

3.구의부정(究意不淨) 곧 마지막 부정이라는 뜻이다. 곧, 육신은 늘 젊고
건강한 것이 아니 라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른다. 일단 죽으면 몸 은
검푸른 빛으로 변 하며 피는 응결되어 썩기 시작하고 오장 육부 사지
(四肢) 백체(百體) 가 다 같이 썩어 문드러 진다. 죽어서 부패하는
현상을 깊이 관찰한 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피와 살가죽은 다 사라지고
힘줄에 싸인 뼈만 남았다가 다시 힘줄도 없어지면 뼈마디만이 앙상하게
남는다. 그런 3단계의 현상을 관하는 것을 <부정관>이라고 한다.

부처님 당시에 출가하여 도를 배우려는 자는 이 <부정관>을 먼저 닦게
했다. 7일, 14일, 업이 둔한 자는 21일 내지 49일 혹 6개월, 그래도
탐심이 정화되지 않으면 1년, 2년까지도 하게 했다. 특 히 출가한 자는
재물(財), 권리, 명예, 향락, 호화, 사치에 대한 탐욕은 속히 소멸되는데
성욕, 곧 남녀의 애욕은 좀처럼 정화되 지 않는다. 그 애욕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비구는 어떤 아름다운 여인을 상상하고 아홉 가지 모양의
부정상(不淨相)을 관한다.

 

1) 창상(脹想) : 사람이 죽어서 그 시체가 팅팅 부어오르는 모양을 관 함이다.
2) 괴상(壞想) : 시체의 살가죽이문드러지고 오장이 썩어 물 나는 모양 을 관함이 다.
3) 혈도상(血途想): 시체의 온 몸에 피, 고름이 흘러 더러워진 모양을 관함이다.
4)농란상(膿爛想) : 시체가 검푸르며 퉁퉁 부어 오르는 모양을 관함이 다.
5) 청어상(靑瘀想) : 시체에서 고름이 흐르고 썩어 내리는 모양을 관함이다.
6) 담상( 想) : 고대 인도에서는 시체를 어떤 숲속이나 들에버리는데 새·짐승
·구더기가 파먹는 모양을 관함이다.
7) 산상(散想) :살과 가죽은 흩어지고 힘줄에 뼈만 얽혀 있는 모양을 관함이다.
8)골상(骨想) : 백골이 앙상하게 남은 모양을 관함이다.
9) 소상(燒想) :그 백골도 차츰 녹아서 소멸되는 모양을 관함이다. 이러한 구상
(九想)을관하면 남녀의 욕정이 소멸된다. 이러한 三相의 <부정관>과 九想의
<부정관>을 닦으면 온갖 탐심, 허 영, 애욕이 소멸되고 무량겁으로
쌓아 온 업장이 소멸된다고 하였다. 옛적 부처님 제자는 반드시 이
<부정관>을 닦았고 역대 도인들도 이 <부정관>을 많이 닦았다.

이것이 오정심관(五停心觀)의 제일관문이다. ※ 자비관 (慈悲觀) 우리
인류의 본능으로서 탐욕 다음 가는 생리적 반사작용으로 성냄(瞋心)을
들게 된다. 탐심은 무엇인가 자기가 늘 부족함을 느끼면서 그것을
충족시키려는 욕구인데 진심은 자기의 뜻과 감정에 거슬릴 때에 그에 반
발하는 심적작용(心的作用)이다. 탐욕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라면
진심(瞋心)은 밖으로 물리치는 힘이라 하겠다. 물리상(物理 上)에도
인력·척력(引力·斥力)의 작용이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은 일상생활 중
탐심과 진심의 작용이 가장 치열하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마음을 타는
불에 비유했다. 그러므로《화엄경 보현행품 華嚴經 普賢行品》에, <한번
진심을 일으키면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 라고 하였다.
중생의진심을 뒤집으면 자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 비심으로써 진심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 방법은 고요히 앉아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성내거나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자> 라고 생각한다.

 

그관법(觀法)의 범위에 있어서
1) <나를 미워하는 자, 나를 해치려는 자를
나는 사랑하며 그를 감 화 시키자> 라고 관 하여 덕을 성취한다.
2)<한 집안 사람을 비롯한 일가친척을 다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는 다>
라고 관하여 그 덕을 성취한다.
3) <이 세상 그 누구에게나 미워하거나원한을 맺지 않고 다 사랑 하고
불쌍히 여기자> 라고 관하여 그 덕을성취한다. 이런 3단계의 자비관을
성취하면 그는 곧 큰 보살이요성자이다. 그는 한량없는 죄업이 소멸되고
한량없는 복덕을 성취하게 된다. 그러나 중생으로서 그런 觀을 성취하기
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불상관(佛相觀) 업장(業障)이 무겁고 두터우면
사람은 어리석고미련스럽고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장애가 많다.


수도(修道)가 되지않는 다. 부정관·인연관 등을 닦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그 업장이 두터운 때문이니 그 업장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으로
불상을관한다. 그 관법은 좌선하는 식으로 앉아서 부처님의 모습을 관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장육금신(丈六金身)의 32상을 관하는데 부처님의 〈전체
몸〉을 보기는 어렵다. 물론 눈을 감고 명상으로 관하 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절에 모신 불상을 대상으로 관한다. 불상 전체를 관하여 그 형상이
드러나기는 어려우므로 어떤 일부분 을 관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의
정상육계상(頂上肉 相 : 정수리에 우뚝 솟은 살상투의 모양)만을
관상한다. 그래서 그 모양이 눈 으로 보듯이 나타나거든 다음에 부처님
눈을 관상하여 그 모습이 드러나거든 다시 그 귀를 관상하며 그 모습이
드러나면 부처님 얼굴을 관상하여 그 모양이 드러나면 업장이 많이
소멸된다. 다시 불상전체(佛像全體)를 관하여 불상전체가 뚜렷이
나타나면 무 량한 죄업이 소멸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다
드러나기는 어렵고, 일부분이 나타나더라도 분명히 나타나기가 어렵다.

부처님 당시에 두 비구가 있는데 업장이 두터워서 다른 공부를 시키면
그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불상관>을 시켰다. 얼마 동안 그 관법을
닦는데 하루는 한 비구가 얼굴에 밝은 빛을 띠우며 기쁜 빛을 나타냈다.
부처님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 비구가 대답했다. "예, 부처님 얼굴이
뚜렷이 드러나며 밝은 황금색이 찬란하며 정상육계상과 미간백호상 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기뻐하였습니다." "그렇게 너는 불상을
바로 보았으므로 무량한 업장이 소멸되었느니라." 또 한 비구는
<불상관>을 닦다가 하루는 울부짖었다. 부처님은 그 비구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울부짖느냐?" "부처님의 모양이 숯덩이처럼 검고 불에 탄
모양으로 나타나 보였기에 놀라 워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 "너는 업보가
너무나 두터워서 불상이 그런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니 좋은 불상이
나타날 때까지 성의껏 공 부하여라." 하고 지시하였다 한다. 같은 불상을
관하지만 그 사람의 업에 따라서 그 빛이 희거나 금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푸르고 검게 보이 기도 하며 그 형상이 완전히 보이기도 하고 일부분만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불상관법>은 부처님 당시에 중생의 근기에
따라 지시한 방편인데 대승불교 시대에는《16관경》에, 발원하면서
아미타 불상관·관음관·세지관 등을 하였으며, 《관불삼매해경
觀佛三昧海經》에는 12품 가운데 셋째는 불상을 관하는 것이요 넷째는
불심을 관하고 다섯째는 부처의 4무량심(四無量心)을 관하고 여섯째는
부처의 4위의(四威儀-行. 住. 坐. 臥)를 관하고 일곱째는 부처의
마음장상(馬陰藏相)을 관하고 여덟째는 불본행(佛本行)을 관하고
아홉째는 등상(等相)을 관하고 열째는 7불(七佛)을 염하고 열한번째는
시방불(十方佛)을 염하고 열두번째는 부처의 밀행(密行)을 관하는 법을
설했다. 이《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는, <부처가 부왕과 이모
교담미부인을 위하여 「관불삼매」에 머물러서 해탈을 얻는다>고
하였다.

 

관불삼매는 석가·아미타불 등 의 불신상호(佛身相好)와 공덕을
마음으로 생각하며 관찰함이다. 《관불삼매해경》에, <만일 능히
진심으로 생각을 한군데 집중하여 안에 두고 단정히 앉아 일념으로
부처의 색신(色身)을 관하면 이 사람의 마음은 불심과 같으며 번뇌에
있어도 모든 악에 덮어 가리지 않게 되리라> 하였고,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마땅히 무량수불의
신상광명(身相光明)을 관하라. 이 관을 하면 일체불신(一切佛身)을
관하는 것과 같다. 불신을 관함으로써 불심을 보게 된다. 불심은 대자,
대비가 그것이다. 인연이 없는 중생을 사랑하는 것으로써 모든 중생을
포섭하나니 몸을 놓아 버 린 뒤에 모든 부처님 앞에 나서
무생인(無生忍)을 얻게 되리라. 그러므로 생각을 한 군데로 모아
무량수불을 관할지어다> 라고 하였다. 관불(觀佛)은 처음엔 부처의
색신상호(色身相好)를 관념(觀念)하고 깊이 들어가선 법신상(法身相)을
관하며 또는 신통(神通)·지혜(智慧)·자비(慈悲)·십력(十力)·사무애지
(四無碍智) 등을 관하므로무량한 업장을 소멸하고 무량한 공덕을 성취한다고
하였다.


※ 인연관(因緣觀) 위에서 중생 생명의 원동력이며, 인류의 생리적 본능인
탐심과진심을 다스리는 법을 해설했다. 그 탐·진 2심과 아울러 3독이 라
이르는 치(痴) 또한 생명의 원동력이며 그 탐·진보다 더 뿌리가 깊은
것이다. 치(痴)는 불성(佛性)의 광명을 덮어 가리우는 무지(無知)로서
탐·진을 낳는다. 그러므로 치(痴)는 부모(父母)요 탐·진은 그
아들이다. 치는 탐·진보다 다스리기가 어려우며 대승보살도 이 치의
뿌리를 다 뽑지 못하며 육도만행(六度萬行)을 닦아 무량한 지혜와 공덕을
성취하여 최후에 성불할 적에 이 치의 근본종자가 녹아 빠진다는 것이다.

이 우치심(愚痴心)을 다스리는 법(法)은 <인연관>이다. 위의
부정관(不淨觀)은 이 몸에 대한 현상적관법(現像的觀法)이고 자
비관(慈悲觀)은 윤리적, 실천적 관법인데 인연관(因緣觀)은
원리론적(原理論的), 이론적(理論的)관법이다. 불교(佛敎)에서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요소(四大要素)가 화합하여 인체가
되었다고 한다. 가죽, 살, 근육, 뼈 등은 지대(地大)에 속하고 피와
담즙, 정액, 침, 오줌 등은 수대(水大)에 속하고 더운 기운은
화대(火大)요, 움직이는 기운은 풍대(風大)이다.

 

이런 여러 가지 물질이종합되어 사람 형체를 이룩하였으니 그것이 다 본디부터 실제로 있는것이 아닌 거짓모습이다. 이와 같이 우주만유가 다 인연 따라 나고 인연따라 소멸되는 무상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이치를 깊이 관찰하면
모든 것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저절로 소멸되고 지혜가
열리게 된다. 더 깊이 이 인연법을 관찰하면 법의 본바탕을 보 게 되며
큰 보살의 지혜를 얻게 된다. 우주만상과 인간만사는 모든 인연 따라
나고 또 소멸된다. 인연 따라 이룩된 현상은 실상( 實相)이 아니요, 거짓
모습이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그 거짓모습에 집착되거나 속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슬기로워진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는
<인연관>을 하라는 요지(要旨)이다. 이상과 같이 <부정관>으로
탐심을 항복 받고 자비관으로 진심(瞋心)을 조복 받고 <인연관>으로
우치심(愚痴心)을 다스린다. 이러한 방법으로 범부의 근본번뇌인 3독을
다스리게 하였다.


※ 계분별관(界分別觀) 계라 하는 것은 범주(範疇)를나타내는 것으로 5온, 12처, 18계를 말한다.


5蘊 : 色·受·想·行·識*

12處 : 眼 耳 鼻 舌 身 意 ---- 감관 色 聲 香 味 觸 法 ―― 대상 *

18界 : 眼 耳 鼻 舌 身 意 ―― 감관 色 聲 香 味 觸 法 ―― 대상 眼識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 ―

 

인식 부처님은 일체의 모든 존재를 5온으로분류하시기도 하고, 때론 12처로, 때론 18계로 분류하기도 하셨다.

《구사론 분별계품》에 의하면, <심소(心所: 마음의 작용)에 어리석은
이들을 위하여 5온을, 물질에 어리석은 이들을 위하여 12처를, 물질과
마음에 어리석은 이들을 위하여 18계를 설하셨다> 하였다. 5온, 12처,
18계를 아무리 분석하고 살펴보아도 여기에   <상주불변하는『나』가
없고『내것』이 없음>을 알아『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無我를
증득하기 위해 이 <계분별관>을 닦는다.

 

※ 수식관 (數息觀) 마음


공부를 하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산란심이다. 그 산란심을
다스리고 조복 받는 법은 수식관이다. 좁은 의미의 수 식관이라 함은
숨쉬는 것을 세는 것이고 넓은 의미의 수식관은 육묘문(六妙門 :
數·隨·止·觀·還·淨)을 포괄한다.


범어로는아나파나사티(anapana­satti) 라고 하며 한자로 안반 수의
(安般守意)로음역(音譯)하였다. 아나(ana, 安)는 숨을 들이쉬는 것이고
아파나(apana,般)는 숨을 내쉬는 것이며, 사티(satti, 守意)는 집중의 뜻이다.
숨을들여 마시고 내쉬는 것을 1호흡이라고 한다. 그 법은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로 앉아서 숨을 천천히 들여 쉬고 또 내쉬고는 하나, 반복해서
둘 ……, 이렇게 열까지 센다. 열까 지 세고는 다시 하나부터 반복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30분 동안만 하여도 어지러운 생각이 고요히
잠자고 마음이 안정되어진다.

 

그렇게 몇 시간을 계속하면 정신통일
경지에 이르게 된다. 《아비달마론 阿毘達摩論》의 <수식관>에 보면
부처님도 여러 가지 마음 수련법을 닦다가 최후에 정신통일로
금강정(金剛定) 에 들려고 할 적에 수식관을 닦았다고 하였으며 옛적
많은 도인(道人)들도 세속의 5욕경계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부정관>을
닦 고 정신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식관>을 닦았다.
육묘문(六妙門)이란 넓은 의미의 수식관(數息觀)으로
수(數)·수(隨)·지(止)·관(觀)·환(還)·정(淨)이다.


1) 수(數)는숨쉬는 것을 세는 것이니 먼저 말한 바와 같다.
2) 수(隨)는 숨쉬는 것을따라다니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니 들이쉴 적엔
들이쉬는 것을 따라 가며생각하고 내쉴 적엔 내쉬는 것을 따라가며 생각하는
것이다.
3) 지(止)는그렇게 숨쉬는 것만 따라가며 생각하면 밖으로 반연하는 생각이
다 쉬게된다. 그것을 止라고 한다.
4) 관(觀)은 밖으로 모든 반연하는 생각이
쉼과 동시에 안으로 어떤 이 법(理法)을 관하는 것이다. 관은 심성이
밝으 므로 어떤 이법의 대상 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예컨대
공(空)·무상(無常)·무아(無我)의 진리〕
5) 환(還)은 중생심을 돌이켜견도(見道)에 들어감이다..
6) 정(淨)은 본디 청정한 심성의 본체가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수식관을
일심으로수련하여 그 공부가 성숙하면삼명육통(三明六通)이 다 성취된
다고 하였다.

 

1. 三明


1)숙명명(宿命明) : 중생들의 과거세의 일을 아는 능력.
2) 천안명(天眼明): 중생들의 미래세의 일을 알고 공간적으 로 우주의 모든
곳을 볼 수있는 능력.
3) 누진명(漏盡明) : 모든 번뇌가 다해 생사를 초월 하는 능력.

2. 六通 ― 위의 三明에천이통(天耳通)·타심통(他心通)·신족통(神足 通)
을 더한 것.
4)천이통 : 보통 귀로는 듣지 못할 소리를 듣는 능력.
5) 타심통 : 다른중생의 생각을 아는 능력.
6) 신족통 : 마음대로 몸을 변화하거나 이동할수 있는 능력.
2) 아라한(阿羅漢) 소승(小乘)의 교법을 수행하는
성문(聲聞)의 수행자들이 얻는 네가지 성위 가운데 최고의 경지. 다시는
미망(迷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불생(不生)이라고 하며, 그릇된
것을 떠났다는 뜻에서 이악(離惡)이라고도 한다 . 우리나라 불교는 크게
보아 대승불교의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특별히 아라한을 신봉하는
습속(習俗)이 유행하지 않았으나, 오대산의 신행결사 때 아라한을 그려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또 스님들의 조석예불문(朝夕禮佛文)에 아라한을
칭송하는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아라한을 주로 <석가모니에게
직접 배운 제자들>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십대제자를비롯해서 석가모니 당시에 감화를 받았던 여러 제자들을
가리킨다. 특히,제일결집 때 왕사성에 모였던 500명의 장로들을 숭배하는
관습이 있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수하였다는 사상적 가교의
역할을 하였다.우리나라의 절에는 대부분 나한전이 건립되어 있 어서 십육
나한이나오백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3) 연각(緣覺) 불교에서 수행자를 3종으로
분류한 삼승(三乘) 가운데 하나. 벽지불 또는 독각이라고도 한다. 삼승은
성문과 연각과 보살의 3가 지 수행부류를 말한다. 연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도를 깨닫는 성문과는 달리 외부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인연 의 법칙을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자>이다. 그리고
남을 구제하는 부처와는 달리 자기만의 깨침을 목적으로 삼아 산림(山
林)에 은둔하여 세상 사람들을 지도하거나 제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一衣又一鉢 옷 한 벌 바리때 하나여 出入趙州門 조주의 문을 들며
날며 했구나. 踏盡千山雪 천 산의 눈을 다 밟은 뒤에 歸來臥白雲
흰구름에 누워 돌아온다. ― 碧松智嚴 ―


제 四 참선의 자세

 


1. 몸 다스리는 법

 

가부좌하고 있는 그림자만 보아도 마왕(魔王)이 오히려 놀라거늘
하물며 단정히 앉아 경동(傾動)하지 않음을 보랴!


― 大智度論 ―

 

1) 결가부좌 (結跏趺坐)

오른쪽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로 올려놓고 다시 왼쪽 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겹쳐서 올려놓은 좌법을 항마좌(降魔
坐)라 부르고 수행 중의 좌법이라 하고, 이와는 반대로 왼쪽
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고 다시 오른쪽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 놓는 좌법을 길상좌(吉祥坐)라 하여 법을
성취하신 부처님의 좌법이라 한다. 이 자세는 요가 수행자들의
기본자세이고 방석이 없이 바위 위에서나 밀림속에서 고행하는
남방불교권의 인도나 티벳,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에서 행해지는
기본적인 자세이다.

 

그러나 한국 수행자들은 다리에 살이 많고 하체가
짧기 때문에 <결가부좌>가 쉽지 않다. 또 되더라도 오래 유지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반가부좌>로 좌선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연스럽지 못한 일은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이고 화두만 잘하면 되는
것이지, 극도로 육체를 학대 하는 요가수행법처럼 육신에 고통을 주는
것은 수행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가부좌>가
무리가 없는 사람 은 해도 좋다. <결가부좌>를 하기 힘든 사람들은
아래에 설명한 <반가부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리하게
<결가부좌> 를 고집하다가는 정진에 더 큰 장애가 될 뿐이다.

 

(2) 반가부좌 (半跏趺坐)


왼쪽 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로 올려놓거나, 오른쪽 발을 왼쪽 넓
적다리 위로 올려놓는 좌법을 <반가부좌>라 한다. <결가부좌>
가 오랜동안 자연스럽게 되는 사람은 많지 았으므로 이 <반가부좌>
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3) 손의 자세


반가부좌한 상태에서 오른손이 아래로 가고 왼손이 위로 올라가
도록 다리의 자세처럼 하며 타원을 그리듯이 양손의 엄지끼리 거
의 맞닿는 것처럼 한다. 이러한 손의 형상을 법계정인(法界定印)이라
부른다. 그러나 너무 손의 자세에신경을 쓰다 보면 긴장이 되고 정진의
능률이 오르지 않 으므로 손은편한 자세로 하여도 무방하다.

 

(4) 허리의 자세


엉덩이를 뒤로 쭉 빼서 허리를 세우면 허리가 자연스럽게 쭉
펴지며 어깨에 힘을 주지 말고 부드럽게 가슴을 펴면 된다. 반
가부좌를 할 때 좌복을 1/3정도를 접어서 엉덩이 쪽으로 살짝
걸쳐놓고 하면 허리를 펴기가 더 수월해진다.

 

(5) 얼굴의 자세


턱은 당기고, 시선은 약 90㎝ 정도 앞바닥을 보면 눈이 자연스럽게
반개(半開 : 눈을 반쯤 뜬것)가 된다. 입은 자연스럽게 다물 고 하는
것이 좋다. 혀는 입천장 위에 말아서 감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침이 많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특별 한 뜻은 없다. 입에
침이 나오면 조용히 삼키는 것이 좋다.


2. 호흡하는 법

 

호흡은 코만을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쉬는 것이 좋다. 참선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지는 원인의 대부분이 부자연스런 호흡에 있다 . 숨이 막힐
정도로 오랫동안 들이쉬거나 마시거나 참는 것은 몸에 부조화(不調和)를
일으켜 거의 대부분 병을 얻으니 금기(禁忌 )해야 한다.
호흡은 가장 자연스럽게!!!
이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는 말이다.


3. 경 행(經行)

 

참선을 하는 수행자가 좌선하다가 졸리운 것을 방지하거나 몸을 풀어주기
위해 가볍게 걸으면서 닦는 수행법.
현재 우리 나라 선원에서는 50분 좌선 뒤 10분의 경행이 행하여지고
있다. 수행자들은 선원 내에서 천천히 걸으면서 좌선으로 굳어진 몸을
풀게 되는데, 이때에도 참선의 근본과제인 화두(話頭)를 의심하여 철저히
점검하게 된다.〈좌선〉은 정(靜)의 상태 에서 행하는 공부인데 대해,
〈경행〉은 동(動)의 상태에서 행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행선(行禪)이라고도 한다. 경행의 방법은 두 손을 모아 쥐어 복부에
두며,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화두를 한번씩 염하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50분 동안 좌선한 뒤에 도 잡념이 일어나지 않거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경우에는 좌선으로 계속하게 된다.

4. 참선할 때의 마음가짐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며, <나도 참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여야 한다. 누구나가 초보 자로부터
시작하여 선사가 되고 조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마음가짐을 참선할 때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

 

5. 참선 전후의 운동

 

(1) 목을 돌린다.
우선 적당한 크기와 두께의 부드러운 방석 위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왼손을 오른손 위에 자연스럽게 얹어 놓고, 양손 엄지손 가락 끝은 살짝
가볍게 맞물려 닿게 한 모양이 타원형을 이루게 한다.
목에 힘을 넣지 말고 왼쪽으로 서너 번 기울이고 같은 방법으로 목을
오른쪽으로 서너 번 기울인 다음, 목을 왼쪽에서 오른쪽으 로 서너 번
돌리고 같은 방법으로 목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너 번 돌린다.

 

(2) 상체를 좌우로 움직인다.
양무릎이 방석 바닥에서 뜨지 않게 앉은 채로, 손은 그대로 풀지 말고
상체에 힘을 넣지 않은 상태로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의 갈비뼈가
시원하도록 왼쪽으로 서너 번 굽히고, 같은 방법으로 오른쪽으로 서너 번
굽힌다.

 

(3) 상체를 앞으로 굽힌다.
방석 위에 앉은 채로 두 다리가 바닥에서 뜨지 않도록 발가락을 위로
보게 앞으로 뻗은 다음 두 팔을 앞으로 뻗어서 양손 끝이 두 발가락에
닿도록 몸통을 앞으로 서너 번 굽힌다. 그 다음은 같은 방법으로 주먹을
쥐고 몸통을 앞으로 굽혀 주먹이 발가락에 닿도록 서너 번 굽힌 후, 또
같은 방법으로 손목 역시 발가락에 닿도록 몸통을 서너 번 굽힌다.

 

(4) 이마를 무릎에 닿도록 굽힌다.


1) 몸통을 앞으로 굽히는 자세로 두 손으로 두 무릎이 바닥 에서 뜨지
않도록 누르고 이마가 무릎에 닿도록 몸통을 앞으로 굽힌다.
2) 두 발을 각각 좌우로 천천히 펼 수 있는 데까지 서너 번 펴 본
자세에서 몸통을 전후 좌우로 서너 번 씩 굽 힌 다.

 

(5) 몸통을 뒤로 젖힌다.


앉은 자세로 두 손과 두 어깨를 뒤로 젖히면서 배와 가슴은 앞으로
내밀고 몸통을 뒤로 활과 같은 모양이 되도록 젖히고 나서, 몸을 앞으로
약간 구부리면서 입으로 탁한 기운을 내뿜는다. 이것을 서너 번
반복한다.

 

(6) 무릎을 꿇고 앉아서 몸통을 뒤로 젖힌다.


두 무릎이 바닥에서 뜨지 않도록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몸통을 뒤로
서너 번 젖힌 후, 같은 방법으로 머리가 바닥에 닿도 록 천천히 서너 번
반복한다.


(7) 무릎으로 자리의 바닥을 두드린다.


좌우 한쪽 무릎마다 자리의 바닥을 서너 번 두드린 후, 두 무릎을 합쳐서
자리의 바닥을 서너 번 두드리고 일어날 때는 두 손을 써도 무방하다.

이상의 모든 준비운동은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지 말고 가능한대로 천천히
익숙해지도록 각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 준비운동의 효과


좌선을 하기에 앞서 위와 같은 여러 가지 동작을 함으로써 몸의 급소가 부드러워져서좌선을 할 때의 자세가 자연스럽게 되고 편해진다.
평상시에도 이와 같은 운동을 하면 변비증이나 위장병 증세에 매우 효과적이며, 미용에도많은 도움이 된다. 어깨가 쑤시고 허 리가 아픈 증세에도 도움이 되고 불면증과 노이로제증상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탁월한 효과가 있으니 건강관리를 위하여 꾸준 히 실행하여보는 것이 좋다.


6. 참선할 때의 요령

 

(1) 장소
장소는 조용한 선방에서 도반들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재가자들이 집에서 수행할 경우, 능력이 있다면 조용한 방 하나 를 택해
선방으로 꾸며서 좌복과 죽비(竹 )를 준비하고 법복으로 갈아입고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2) 음식
음식을 먹을 때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망상과 욕심으로 먹는 것이고,
둘째는 지혜와 도심(道心)으로 먹는 것이다.


<지혜와 도심으로 먹는다는 것>은 육신을 거두기 위하여 주는 대로
생기는 대로 받아먹을 뿐이고, 음식에 탐욕을 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망상과 욕심으로 먹는다는 것>은 오직 입에 맞는 것만 찾아서 양껏
먹고도 허덕거리는 것을 말한다. 음식 먹는 것만 보아도 수행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음식을 먹고 바로 참선을 하면 위에 부담이 되고 심하면 병까지도 얻을
수 있으므로 충분히 소화가 된 다음에 참선을 하는 것이 좋다. 보통 식사
후 90분이 지나서 하는 것이 좋으나, 가벼운 음식을 먹었을 경우에는
60분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녹차 등을 마 셔서 소화를 충분히 시킨 후에
참선을 하는 것이 좋다.

 

육식은 절대 금물이며 참선하는 수행자는 채식을 위주로 먹어야 한다.
술을 먹고서 참선을 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참선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게 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악신들이 술냄새를 맡는 순간에 범접할
수 있으므로 절대로 술을 혀끝에 대서도 안 된다. 담배 또한 물론 금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강장제 등의 자극적인 의약품들도 될 수 있으면 참선하는 동안에는
피해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또한 인스턴트 식품 도 꼭 피해야
효과적으로 참선을 할 수가 있다. 옛날의 선사들은 쌀, 보리, 콩, 감자,
옥수수, 고구마, 미역, 김, 과일 등을 섭 취하였어도 몸을 잘 보존하고
크게 마음을 깨달았는데 요즘에는 서양식 인스턴트 식품들을 너무 많이
먹기 때문에 참선을 해도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가 어렵다.

 

(3) 수면


활동에너지를 생활하면서 다 소모해 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잠을 자는 것이다. 억지로 무리하게 잠을 참으려고 하지 말고
젊은 사람의 경우에는 6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그 이상 자는 것은 몸이
아픈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치로 보며 일생을 8 0년으로 친다고 하면,
1/3은 잠으로 보내는 것이 되니 어느 생 어느 곳에서 발심을 하여 참선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참선할 시간을 늘리는 것이니
가급적 발심 수행하는 사람은, 잠이 오면 송곳으로 허벅다 리를 찌르면서
스스로를 경책하고 참선하던 옛 조사들의 가풍을 머리에 새겨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참선 수행에 매진해야 한다 .


또한 많은 사람들이 밤잠도 자고 낮잠도 즐겨 자는 경우가 있는데 습관이
되면 건강하던 사람도 습관을 고치기가 어렵고 허송세 월 하여 일생을
허비하기 좋으니 졸음을 참고 낮잠을 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4) 복장


참선할 때는 헐렁한 면으로 만든 법복이 효과적이다. 만약 법복이
없다면 헐렁하고 넓은 바지나 가벼운 복장이 좋다. 꼭 끼는 청바지나
스타킹 등을 착용하고 하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효과적인 참선을 할 수
있다.


부득이 양복이나 정장, 평상복을 입고 참선을 해야 할 때에는 넥타이,
허리띠는 헐겁게 풀어서 편하게 하고 시계, 반지, 목걸이 등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들은 모두 풀어놓고 한다.


7. 참선시의 세부적인 요령

 

(1) 목욕


음식물을 먹은 후에는 개운하게 양치질을 하고 쉬었다가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상황에 따라 샤워를 가볍게 한 후에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사우나에서 너무나 땀을 많이 빼면 몸안의 진액이 빠지기 때문에
사우나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목욕을 오 래 하면 기가 빠지므로 그것
또한 피해야 하고 가볍게 끝내는 것이 좋다.

 

(2) 참선 전에 해야 할 일


참선을 하기 전에는 대소변을 모두 본 후에 편하게 해야 능률이
오르는데 소변을 참으면 마음에 부담에 되어 정신 집중이 안 된 다. 물론
대변은 시원하게 해결한 후에 반드시 휴지로만 닦지 말고 물로 항문이나
생식기를 씻어 주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악 귀들은 대소변 냄새 등을
맡으면서 수명을 연장하기 때문에 악신들이 쫓아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변 후에〈뒷물 〉을 하고, 그것이 위생적으로도
청결하여 참선도 잘되고 선신이나 신장들의 옹호를 받는 바가 된다.

여행한 후에는 한잠 푹 자서 피로를 풀고 참선을 해야 능률이 오르지, 몇
시간 동안 자동차 등을 탄 후에 참선을 하기 위해 앉 아 봐야 능률도
오르지 않고 혼침만 온다. 그러니 여행 후나 몸이 많이 피로한
상태에서는 참선을 피하고 먼저 피곤함을 풀어 주 는 것이 좋다.
TV나 영화를 본 후에는 참선을 하려고 하여도 뇌세포가 왕성하게
활동하였기 때문에 TV나 영화에서 봤던 장면이 계속 떠오르고 참선이 잘
안 되니 될 수 있으면 TV나 영화는 삼가는 게 좋다.

 

전화통화를 바로 한 후에 참선을 하면 대화내용이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기쁜 일은 기쁜 대로 번뇌로 남아 있고 기분 나쁜 일은 그대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참선하기 전에는 전화통화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집에서 규칙적으로 참선할 때는 전화코드를 뽑아 놓고 하는
것도 요령 중의 하나이다.

 

선방생활에 대하여

 

선을 교육하고 실수하는 불교의 전문교육기관. 우리나라에선 통일신라
말에 선종이 전래된 후 설치되어, 승려양성에 중요한 수 행기관으로서 큰
구실을 하여 왔다. 사찰 내에서 선당 . 선방 . 좌선당이라고도 하였다.
그 유래는 석가모니 당시의 비구들이 우기(雨期) 이외에는 한 곳에 살지
않고 탁발을 계속하다, 우기가 되면 작은 벌레나 초목 을 밟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외출을 금하고 한 곳에 머물며 안거(安居)한 것에
연유한다. 당시에는 4월 15일부터 7월 15일 까지 3개월 동안 좌선을
하거나 교리를 연구하게 되어 있었다.

 

그 뒤 부파불교 및 중국불교에서는 불교 교단이 일정한 사원과 토지 등을
소유하고 그 재산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탁발 은 꼭 하지 않아도
되었고, 연중 사원에 상주하며 선과 경, 논 등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10월 16일부터 이듬해 정월 1일까지 한 차례 더 동안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 안거의 전통을 선종에서 이어받아 선원은 중요한
수행기관으로서의 구실 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말에 선종이 생겨남과 동시에 전국에 수많은 선원이
세워졌고, 여름과 겨울의 안거를 인정하여 실시하되 하안거를 정법이라
하여 승려의 나이를 뜻하는 법랍은 이로써만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선원의 교육목표는 불교의 진리를 좌선을 통해서 내관(內觀)하고
스스로를 살펴 자기의 심성을 철견함으로써 견성성불하며 중생 제도를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일정한 교육기간이 정해져 있는 강원과는 달리
선원은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의의가 더 컸다.


더욱이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수선사(修禪社)를 세우고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창한 이래,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 강원은 선원의
예비문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어 강원수료자가 선원에 들어가
평생수행을 하기도 했다.

 

이 당시 선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강원의 사교과(四敎科)와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하여 비구계를 받은 20세 이상이 된 자 에게
부여되었다. 그리고 하안거는 4월 15일에 시작하여 7월 15일에 끝내고,
동안거는 10월 15일에 시작하여 1월 15일에 끝나도 록 하였다. 그리고
결제안거 90일로써 법랍 1세로 하고, 법랍은 하안거의 수에 의하여
계산하도록 하되, 다만 본사의 허락을 얻 으면 동안거도 법랍에 가산할
수가 있었다.

 

선원에서의 하루 수행시간은 8시간 이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조선승려수선제요>에 의하면 해인사 퇴설당 선원은 하안거 때
8시간, 동안거 때 11시간, 월정사 및 범어사의 선원은 하안거·동안거
모두 10시간씩, 대원사는 8시간, 파계 사는 6시간으로 되어 있다.
수행방법은 자선자수 자력자식(自禪自修 自力自食)을 기본으로 하며,
안거는 좌선을 위주로 하되 선리(禪理)를 연구하고 대·소승률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禪수행의습독서로서는《금강경》.《능엄경》.《禪要》.《節要》.《都序》
.《書狀》.《치문》.《自警文》.《初心》.《염송》등이 채택되었고, 권장
경전으로는《화엄경》.《원각경》.《법화경》.《기신론》등을 배우기도
했다. 또한, 조실의 설법 중에는 일 체의 질문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의심이 있을 때는 설법이 끝난 뒤 방장실에 들어가 질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선원의 청규(淸規)는 엄하여 파계·사행 등 모든
폐습이 일체 엄금된다.

안거기간 중에는 일체 동구 밖에는 나갈 수 없으며, 오직 부모나 스승의
중병이나 사망 시, 그 밖의 부득이한 일이 있을 때만 조실의 허락을 얻어
외출할 수 있다. 만약 선원 자체에서 정한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3차례 권유하고 이에 불응하면 퇴방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결제의 시작 7일, 해제 직전의 7일, 결제와 해제의 중간인 반살림
때의 7일 동안은 전혀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며, 매월 1일과
15일에는 조실이 상당하여 설법을 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전통은
현재에도 거 의 그대로 준수되고 있으나, 옛날처럼 강원의 대교과를 마친
뒤 선원에 들어가는 전통은 현재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강원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선원에 들어가서 20하안거를
수행하고 법랍이 20년 이상 되어야만 얻을 수 있던 대선사· 대교사의
당호나 10년의 법랍이 있어야만 될 수 있는 주지의 자격은 현재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원은 해인사·범어사·통도사·통도사
극락암·봉암사·송광사·망월사·상원사·내원사·석남사 ·대원사 등에
있으며, 이곳에서 공부하는 수행승들에 의하여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그 정진의 기강이나 노력, 시간 등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참다운 불교수행처가 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의 선원이기도 하다.

 

결제가 끝나고 해제가 되면 해제와 동시에 조실을 제외한 모든 직책이
소멸되며 선객수좌스님들은 각자의 인연 사찰로 해산된다 . 또한 해산된
이후 각자 믿는 선지식을 찾아가 탁마를 받기도 하고 만행(萬行)을 하며
자유롭게 수행을 하는 기간(해제기간)을 90일로 정하며, 또한
해제기간에도 사찰의 사정에 따라 해제 시 운영하는 결제를 산철결제라
한다. (산철결제는 보통 45일 ∼ 60 일)

 

용상방(龍象榜)이란?

 

불교사찰에서 결제(結制) 또는 큰 불사(佛事)가 있을 때 각자의 소임을
정하여 붙이는 방.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 여 놓고 소정의
행사가 끝날 때까지 각자의 맡은 바 책임에 충실을 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백장(百丈)이 처음으로 이 제도를 실시하도록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선종의 전래와 함께 이 방이 채택 되었다.
용상방의 각 소임을 정할 때에는 대중들 가운데 인품을 갖춘 적절한
인물을 선정하여 적재적소에 기용하도록 되어 있다.
초기의 용상방에는 대체로 23개의 직명을 기록하였다.

 

장로(長老) : 지혜와 복덕을 함께 갖춘 비구로서 곧 선종(禪宗)의 주 지(住持)를
비칭한다.
수좌(首座) : 선원(禪院)의 가장 우두머리 직책으로 선에 관한 지도 를 맡는다.
감원(監院) : 절 전체의 살림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유나(維那) : 사찰 안의 사무적인 일을 총괄하여 맡아보는 직책이다.
전좌(典座) : 선원 대중들의 좌구·침구·음식등을 관장하는 직책이 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별좌(別 座)라고 한다.
직세(直歲) : 1년 동안 절 안의 공용도구·건물 등을 관리하고 파손 된 것을 보수하는
직책이다.
고두(庫頭) : 금전과 곡물 등을 관리하는 직책으로 오늘날의 경리나 회계에 해당한다.
서장(書狀) : 문서를 맡아보는 직책으로 서기에 해당한다.
장주(藏主) : 대장경 등이 보관된 서고를 관리하는 직책으로 지장(知 藏)이라고도 한다.

지객(知客) : 손님을 보살피는 직책이다.
시자(侍者) : 웃어른을 모시는 직책으로, 주로 장로를 모시게 된다.
요주(寮主) : 요사채를 보수하는 소임을 맡는다.
당주(堂主) : 환자를 간호하는 직책이다.
욕두(浴頭) : 대중의 목욕물을 준비하는 소임이다.
수두(水頭) : 대중이 항상 사용할 수 있는 물을 준비하는 소임이다.
탄두(炭頭) : 숯과 땔나무를 준비하는 소임이다.
노두(爐頭) : 화로의 불을 담당하는 소임이다. 선종 사찰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일부터
화로에 불을 피 워 이듬해 2월 1일 에 끄게 되는데, 그 화로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직책.
화주(化主) : 인가나 거리를 다니면서 여러 사람에게 시주를 얻어 법연(法緣)을 맺어
주고, 동시에 사 찰에서 사용할 비용 을 마련하는 소임이다.
원두(園頭) : 과일과 채소를 맡아 가꾸는 직책이다.
마두(磨頭) : 방앗간을 관리하는 소임이다.
장주(莊主) : 농사일을 맡아 하는 소임이다.
정두(淨頭) : 변소를 청소하고 세정(洗淨)할 물을 긷는 소임이다.
정인(淨人) : 승려들을 받들어 섬기는 직책으로 사찰에 있는 속인이 맡는다.

이와 같은 초기 총림(叢林)의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채택된 뒤, 우리나라
사찰의 운영과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 직책이 추가 또 는 변경되었고,
차차 선원과 강원과 큰 법회 때의 용상방이 차이를 나타내게 되었다.

선종에서는
선원의 우두머리인 조실(祖室) 또는 방장(方丈)을 비롯하여,
수좌(首座),
참선을 하는 노덕(老德) 스님인 선덕(禪德), 유나(維那),
선방 승려의 회장 격에 해당하는 입승(立繩), 대중의 잘못을 살펴 시정하는
찰중(察衆), 각종 의식법요(儀式法要)를 집행하는 병법(秉法),
감원과 같이 사찰의 살림을 총괄하는 원주(院主),
지객(知客), 병법을 보좌하여 법요를 집전하는 지전(知殿),
병을 간호하는 직책인 간병(看病), 대중이 마실 차를 준비하는 다각(茶角),
모든 의식이 있을 때 타종을 하는 종두(鐘頭),
북을 울리는 소임인 법고(法鼓), 각종 재가 있을 때 상에 올린 음식을 각각
조금씩 걷어 옥외의 일 정한 장소에 가져다 놓는 헌식(獻食),
양곡을 맡아 출납하는 미두(米頭), 대중의 취사장을 감독하는 별좌(別座),
밥을 짓는 공사(供司, 供養主), 반찬을 만드는 채두(菜頭, 菜供)
국을 끓이는 갱두(羹頭), 시자, 화주, 욕두, 수두, 마두, 정두, 원두, 탄두,
노두, 나무하고 불을 지피는부목(負木), 정인 등의 직책으로 용상방이 짜여진다.

불경을 공부하는 강원에서는
수시로 자문을 구하기 위하여 초빙되는 증명(證明),
강원의 운영과 행정책임을 맡는 원장(院長),
교육전반을 관장하는 강주(講主),
강주의 일을 돕는 중강(仲講),
입승, 찰중, 지전, 원주, 지객, 지장, 간병, 다각,
승려들이 초하루와 보름에 머리를 깎을 때 삭도(削刀)를 책임지 는 삭발,
강원의 재정을 맡아보는 회계,
사무를 관장하는 서기(書記),
종두, 미두, 별좌, 욕두, 수두, 탄두, 노두, 정 두, 마두, 공양주, 채두, 화주, 시자,
청소, 부 목, 학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잡인의 출입을 금하고 주위를 정숙
하게 하는 경비 등이있다.

이밖에도 국가적·종단적 차원에서 행하는 대법회 때에는 38개 직책으로
구성된 용상방이 짜여지며, 이들 대법회를 치르기 위한 준비과정에서는
21개 직책으로 짜여진 육색방(六色榜)을 따로 두어 완벽한 준비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 다. 현재 우리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모든 용상방의
직책을 모두 종합하면 약 80여종에 이른다.

토굴생활 하는 법

 

혼자 생활한다는 것은 수행자에게는 필수적인 생활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롭고 쓸쓸하고 무섭고 긴장된 순간순간이지만 그 속에 서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성찰하고, 인간세상의 희로애락 속에 빠져 번뇌망상과
행동으로 저지른 모든 업이 부질없이 느껴지며 자신을 참회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정말 대근기가 아니면 토굴생활은 할 수가 없다.
누구나 선방에서 정진을 하기를 원하고 선방에서 정진을 경험한 뒤에는
토굴을 원한다. 그것은 이상이지 현실은 아니다. 누구나 깊은 산중에서
정진을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토굴생활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갖추어야 한다.

 

1. 주변에 민가가 없어야 한다. 사람소리, 닭소리 등 자극적인 소 리를
들으면 마음이 부담된다.


2. 절대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을 보면 안 된다. 묵언(默言)은 당연 한
것이다.


3. 물이 좋아야 한다. 수돗물은 안 된다. 하루, 이틀이 아닌 장기 간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석간수(石間水 - 바위에서 나오 는 물)나
약수물,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물 등, 물이 좋아야 한 다.


4. 반드시 식량 등 모든 생활을 돌봐 줄 수 있는 외호대중이 있어 야
한다.


5. 음식은 가급적 직접 해먹지 말고 사찰에 양해를 얻어 양식을 넉넉히
보시하고 하루 한끼 정도 날라다 먹도록 해야 한 다.

山前一片閑田地 저 산밑의 한뙈기 묵은 밭을
叉手 問祖翁 차수하고 노인께 물었더니
幾度賣來還自買 몇 번 팔았다가도 다시 산 것은
爲憐松竹引淸風 대숲과 소나무의 맑은 바람 때문.
― 五祖法演 ―

 

 

제 五. 화두의 중요성

 

화두의 정의

 

<화두(話頭)란 여래체(如來體)의 자리를 가장 가깝게 제 시한 진리의
자리로서 수행자가 참구해야 할 절대적인 근본자리를 화두라 한다.>

화두(話頭)라는 것은 지난번에 말씀드린대로 수행자가 참구해야 될 가장
절대적인 <근본자리>입니다. 망상이 계속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망상을
잡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 망상은 화두만 바르게 하면 붙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두는 근본체자리, 여래체 자리입니다.


화두라는 것은 방편이 아닙니다.

 

<화두가 왜 방편이 아닌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야 방편인데 여러분들이 많은 망식 속에
쌓여있지만,〈망상〉그 마음 속에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근본이 망상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화두라는 것은 망상은 망상대로 그대로
인정해 주고 화두는 화두일 뿐입니다.〈화두〉하고 〈망상〉은 둘이
아닙니다.


<화두는 망상이다.> 그 말은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러나 옳은 것도 아닙니다.
화두의 정의는 지난번에 배운 대로 <화두(話頭)란 여래의 체 자리를 가장
가깝게 제시한 진리의 자리로서 수행자가 참구해야 할 절대적인 근본자리>를
말합니다.


화두가 방편입니까?, 아닙니까?

 

【화두는 <여래의 체 자리>를 가장 가깝게 제시한 절대적인 근본자리인데
추번뇌·세번뇌가 1초에 7만 번씩 겹으로 뛰는 망상 심을 가진 중생으로서
<방편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부터가 맞지가 않으며 화두는 방편이
아니고 절대적인 자리로 수행자의 생명과 같다. 그러므로 방편이 아니다.】

다시 이 부분을 강조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교하면 참선을 얘기하고,
참선하면 화두를 얘기합니다. 불교=참선=화두 이렇게 됩니다. 기독교를
믿어야될 지, 천주교를 믿어야될 지, 불교를 믿어야될 지, 불교 속에서도
기도를 해야될 지, 염불을 해야될 지 , 참선을 해야될 지, 또 참선 중에서도
관법, 소승관법을 해야될 지, 염불선을 해야될 지, 화두선을 해야될 지 잘
모릅니다.

 

화두선을〈최상승선〉이라고도
하고,〈간화선〉,〈조사선〉,〈격외선〉이라고도 그럽니다. 화두는 체(體)를
나툰 화두하고 용( 用)을 나툰 화두가 있습니다.
體를 나툰 공안 입장에서 보면 다 쳐버립니다. 그리고 또 用을 나툰 공안에서
보면 그쪽을 쳐버립니다.

 

<이쪽이 먼저냐, 저쪽이 먼저냐>는 여러분들 생각에 달렸는데 用을
통해서도 體로 들어갈 수 있고, 體를 통해서도 用으로 갈 수 있습니다.
공안 중에서도 전제(全提)와 단제(單提)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가 방편입니까? 아닙니까?

 

【화두는 여래체의 자리를 가장 가깝게 제시한 절대적인 근본자리인데 1초에
7만 번이 겹으로 뛰는 망상심을 가 진 중생으로서 <방편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부터 가 맞지가 않으며 화두는 방편이 아니고 절대적인 자리 로
수행자 의 생명과도 같다. 그러므로 방편이 아니다.】

 

이 부분을 여러분이 꼭 암기하셔야 합니다. 참선을 해서 깨치고 못 깨치고
보다도 여기에 대한 논리와 이론이 명확히 서지 않으 면 여러분은 다 속게
됩니다. 선지식을 구분하는 눈도 없고 화두에 대한 정의도 모르는데 어떻게
화두를 바르게 참구하겠습니까?

 

<화두가 방편입니까? 아닙니까?>하고 물었을 때 방편이라고 하면<왜
방편인가>, 아니라면 <왜 아닌가>에 대한 명확한 이 론을 논리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화두가 방편인가, 아닌가?>의 물음 하나로 충분히 상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90% 이상이 화두가 방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방편이라고 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책자 상으로 보았고,
강사스님들한테 들었고 또 그 스님들도 책자 상으로 그렇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뜻을 보아야 합니다.

 

〈여래의 체〉란 절대적인 자리, 불성자리를 말합니다.

<불성이다, 견성이다> 하는 말이 흔하고 신선감이 없으니까 여래의 체,
여래의 당처, 부처님의 근본자리, 여러분의 마음이 부 처님의 당처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근본당처를 참구해 가는데 어떻게 방편이 될 수 있습니까? 1초에
7만 번 겹으로 뛰는 망상심 으로 <방편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화두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알고 계시면 정확한
것입니 다. 이 한도 내에서 선지식들이 여기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명확히
답해주실 분이 몇 분이나 계실지 궁금합니다.

 

선지(禪旨)는 <터졌느냐, 못 터졌느냐> 하는 것이지 중간이란 없는 것입니다.
미도자(迷道者:도에 어두운 미욱한 자)인가?
오도자(悟道者:도에 눈을 뜬 자)인가?


한 마디 말이 맞으면 천 년을 내려가는 것이고, 틀리면 오늘 한 말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화두에 대한 정의 를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공안(公案)이란 말이나 화두란 말은 똑같습니다. 화두란 말씀 화(話), 머리
두(頭)를 써서 근본 뜻을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서 그 당시의 소승선, 대승선,
범부선, 외도선 등 여러 가지 모든 방법으로 수행을 하셨지만 확철대오를 못
하셨습니다. 화두의 역사는 부처님이 확철대오하신 순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삼처전심(三處傳心)―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 分半座), 염화미소,
곽시쌍부(槨示雙趺)―으로부터 공안법이 탄생된 것입니다.

 

눈이 어두운 사람이 <중국에서부터 화두가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내려온
것으로 방편이다>라고 하는데 틀린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근본자리에서
볼 때 삼천 년 전과 현재, 미래가 서로 구분되어 있습니까? 부처님이
확철대오하신 순간부터 바른 법이 시 작되었고 그것이 최상승 화두법입니다.
그 후 중국으로 또 한국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학자나 대부분의
스님들이 시대적 ·공간적으로 연대를 따져서 화두가 방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학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를 체득한 분들이 가르 치는
것이고 체득한 분들의 경지를 간파하는 것이지 학문과 이론으로, 문헌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화두는 방편이 아닙니다.”

염불이나 기도로도 뛰는 번뇌를 어느 정도 조복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염불·기도로는 근본미세망념(根本微細妄念)까지는 제거할 수 없습니다. 화두
참선만이 근본 뿌리를 자를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데 나무 잎사귀를
하나하나 따고, 나뭇가지를 꺽 고 그러고서 톱으로 밑둥을 자른다고 해도 10년
후고 100년 후고 나무 뿌리가 있는 이상 싹이 나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현실생 활 속에서 괴로울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거나, 천수경을 독송하고
기도를 하여 순간적으로는 괴로움을 잊어버릴 수 있지만 절 박한 현실에
부딪치면 다시 번뇌가 우글우글 일어납니다. 그러나 화두라는 것은 근본을
뽑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비유하자면 나 무를 뽑을 때 포크레인으로 뿌리째
잡아 가지고 나무를 쭉 뽑아 햇볕에 쨍쨍 말리면 나무가 완전히 말라죽는 것과
같습니다.

 

화두법이란 무시겁 이래 번뇌 망식까지도 다 끊는 것이고, 염불 주력을 하는
것은 나무 밑둥아리는 그대로 놔둔 채 눈가리고 아 옹하듯 나뭇가지 몇 개 베고
나서 <나무 이젠 벴습니다> 하고 속이는 것과 똑같습니다.

 

2. 화두와 분류 및 전제와 단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근본당처>를 의심하는 데에 있습니다. 무명 이전의
근본당처를〈體〉라 합니다. 무명 이전의 자리를 깨달아야 아는 것으로
이론적, 학문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相〉은 그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고, 用은 쓰는 것 입니다.

 

보름달〈體〉이 떠 있고 여러 모양의 그릇이 놓여 있고, 그릇에 달이비춰있다고 할 때, 큰그릇에는 크게 달이 비춰지고 작은 그릇에는 작게 달이비춰집니다. 그 달의 형상을 〈相〉이라 하고, 담겨져 비춰진달들을〈用〉이라 합니다.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천강유수천강월(千江流水千江月)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천 강 흐르는 물에 천 개의 달이요,
만리에 구름이 없으니 만리의 하늘이로구나.)

 

〈體〉는 근본 주인,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 하나뿐 인
것입니다.〈相〉과〈用〉은〈體〉에서 나옵니다. 體가 따로 있고 相 과 用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또 用을 더 설명하기 위해 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體를 보아야 用을 쓰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산스님이 앙산스님과 차밭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소리만 들리고 그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
나와라 보고 싶구나!

앙산스님이 차나무(茶樹)를 흔들어 대답하니 스님이 말했다. ― 용(用)만
얻었고 체(體)는 얻지 못했다.

앙산스님이 도리어 물었다.
저는 그렇다 치고 스님께서는 어떠십니까?

위산스님은 아무말 없이 가만히 계셨다.
스님께서는 體만을 얻었고 用은 얻지 못했습니다.

이에 위산스님이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20방망이는 맞아야 되겠구나.

― 祖堂集 ―

 

 

일구(一句)를 體, 이구(二句)를 相, 삼구(三句)를 用이라고 합니다. 일구
가운데에 삼구가 갖추어졌다는 것은 體 가운데 相과 用이 다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體를 본 다음 用을 잡아 쓰는 것이지 삼구로만 아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주장자를 한번 치는 것은 體를 나타내는 것이고, 세 번 치는
것은 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두 번 치는 법은 없습니다. 이렇게 선가(禪家) 는
논리가 간단 명료합니다. 중생들은 體를 보지 못 했기 때문에 어리석어서
무명업식으로 불타는 삼계〔火宅〕에서 빠져나오려 고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여러 비유를 드신 것이 팔만
사천 법문입니다.

 

여러분은 근본당처를 압니까? 모릅니까?
모르니까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무엇인가?
'이…'하고 생각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가?

 

『이 뭣고』할 때 <이∼>하고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 하는
생각을 쫓아갈 때 움직이는 근본이 있습니다. 그 당처가 무엇인가? 사람은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못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내일 일, 집 걱 정을 안 하셨죠? 한 가지로 집중하면 번뇌가 쉬고 다른
생각이 붙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걱정들은 뛰는 망식입니다. 이런 망 식이
쉬면서 편안해지고 이것이 행복입니다. 번뇌가 뛰면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1초에 7만 번 뛰는 번뇌가 화두를 바르게 참구함으로써 7천 번, 7백
번으로 주는 줄 모르게 점점 줄게 되고 번뇌가 붙지를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번뇌의 적과 싸우는 병사와 똑같습니다. 화두는 방편이 아닙니다. 지금
부처님이 나타나셨다해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나의 근본 안에 있는
것인데 밖에서 구하려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형상이나
음성으로 나를 보려고 하는 자는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여래를 보지 못
한다>고 하셨습니다.

 

* 조주스님

 

중국의 조주스님을 부처님의 후신이라고 했습니다. 깨달음이 깊고 투철하여
조주고불(古佛)이라고 했습니다. 조주스님은 60세에 확철대오해서 20년간이나
숨어 지내시다 80세부터 후학을 지도하시고 120세에 열반하셨습니다.
1700공안 중에 많은 것이 조주스 님과 관련된 것입니다

 

-------------무(無)자 화두--------------

 

봄날 툇마루에 조주스님이 앉아 계시는데, 마침 그때 개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고 한 스님이 조주스님께 합장하고 물었다.

"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느니라(無)."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스 님은 왜 없다고
했는가?

화두참구는 조주스님의 의도, <조주스님은 왜 없다고 했는가, 그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하고 뜻을 참구하는 것입니다. <없 다>고 한 말에 걸려
논하는 것은 사구(死句)로 죽은 것입니다.

 

 

--------------뜰 앞의 잣나무------------------

 

한 스님이 조주스님께 물었다.
"불법의 올바른 대의가 무엇입니까"
(정원의 잣나무를 가리키며)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이 화두도 조주스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조사 서래의(祖師西來意)--------------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생모: 판자(板子) 이빨에 털이 났다.

 

 

--------------이 뭣고(是甚?) ---------------

 

남악회향스님이 육조스님을 찾아뵈니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숭산에서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什?物 恁? 來〕
이 말씀에 대답을 못 하고 돌아가 8년만에 크게 깨치고 다시 육조스님께 왔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설사「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說似一物 卽不中〕

"닦아서 증득하는 것인가, 아닌가." 〔還可修證否〕
"닦아 증득함은 없지 않으나 물들여 더럽혀짐은 없습니다."

〔修證 卽不無 汚染 不可得〕

"더럽히고 물들이지 못 하는 이것이 모든 부처님이 호념 하시는 바라, 네가
이미 이러하고 나도 이미 이러하다. "

이것이『이 뭣고』화두가 생긴 유래입니다.
이런 식으로 1700가지의 공안이 있는데 기록상 1200가지가 내려온다고합니다. 이 공안을 하나하나 답을 한다고 해도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의심만 바르게 해서 깨달으면 나머지1700공안을 동시에 전부 꿰뚫어 보게 됩니다.

 

화두는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로 끝장을 내야 합니다. 금생이 아니면
내생, 내생이 아니면 그 다음 생에도 하나를 갖고 참구해야 합니다. 이 화두가
안 된다고 다른 화두로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우물을 파다가 1∼2 미터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옆을 파고 또 다른 곳을
판다면 언제 물을 보게 되겠습니까? 화두는 다 똑같은 것입니다. 요새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다 화두가 아닙니까? 이 노트가 무엇 인가? 저 빌딩은
무엇인가?> 등등, 이렇게 화두를 만들어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것은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이 법은 삼세제불이 바르게 가르쳐준 근본자리입 니다. 예컨대, 내가 미국을가보지 않았다고 해서 미국이 없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을가본 사람이 가보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르게깨달으려면 화두를 해야 하고, 바른 선지식을 만나야 하고 바른 선지 식의 참구지도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님이 준 화두는 그 스님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스님이 더듬어 왔던 경 계이기 때문에 점검할 수가 있는것입니다.

 

『無』『이 뭣고』『판치생모』등은 점검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개발해 서 하면 바르게 점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
소견이 붙으면 안 됩니다. 화두는 반드시 화두를 참구해서 도통한 스님한 테
직접 타야하고 화두를 쉽게 타려고 하지 말고 1∼3년 정도 기본적 수행으로
번뇌가 쉰 다음 타야 합니다. 화두는 깨달음의 종 착역입니다. 사바세계에서
화두보다 더 좋은 수행방법은 없습니다.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고 합니다. 깨치느냐, 못 깨치느냐는 시간과
여러분의 노력에 달린 것입니다. 화두법을 만난 것은 큰복입니다. 출가를 해도
화두법을 만난 사람이 출가를 해야 하는 것이지 방편이라고 하는 사람은
견디지를 못합니다. 선지 식을 믿지 않습니다. 화두법이 아니고서는
육도윤회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소승법, 대승법으로는 세번뇌를 조복 받지
못합니다. 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몸뚱아리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 뭣고』는 수준이 낮고『無』자는 수준이 높다고 하는데 똑같은
것입니다.『이 뭣고』가 흔하니까 약해 보인다고 하는 것이 지, 화두는 똑같은
것으로 낮고 높음이 없고 쉽고 어려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당처를 의심하는
것이고, 조주의 뜻을 알 때 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조주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가?>하는 말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판치생모』 라 한 조주의 뜻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에
전제·단제(全提·單提)가 있는데 앞의 상황을 설명한 것을 전제라 하고 끝날 때
한 주제만을 설명한 것을 단제라 합니다. 그러니까 전제를 통해서 단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 全提: 부처님께서 <일체중생이 불성이 있다>고 하셨 는데 조주는 어째서
無라 했는가?

* 單提: 어째서 無라 했는가?

단제를 하기 위해서는 초보자는 꼭 전제를 한 다음에 단제에 들어갑니다. 바로
단제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상황을 생각해야 합 니다. 그러니까 전제를 생각한
다음에 단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단제 자리에는 여자·남자가 없습니다. 단제자리는 빈부 귀천이
없습니다. 전제자리가 업이요 망식입니다. 전제자리에 서 보면 고통이
있습니다. 착한 일을 하면 선업을 쌓고 악한 일을 하면 악업을 쌓고, 자기가
남을 해꼬지 하면 과보가 따르고 복 을 지으면 복을 받습니다.

전제자리는 돈이 있는 사람이 있고 무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식한 사람이
있습니다. 중생들은 전제자리에 단제가 끌려 다닙 니다. 전제로 저지른 업에
의해서 다음에는 몸을 또 받습니다. 그러나 도를 통하면 단제가 주인이 되어
하고 싶은 대로 단제에 전제가 끌려 다니면서 몸을 받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전제자리는 자기망상인데 망상으로 진여자성이 몸을 받아서
고생하고 쫓아다니는데 나중에 단제에 단제를 참구 해서 『오매일여』정도에
들어가면 단제가 주인이 되어 원하는 판단에 의해서 전제를 끌고 들어가 몸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전제와 단제, 그러니까 여러분은 전제로 몸을 받을 것을 화두를 열심히 하고
도를 닦아서 단제가 주인이 되어 원(願)에 의해서 몸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호흡법이나 요가나 기공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화두법만이 이 법이 있습니다.

 

3. 화두 참구법 --------

 

화두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이∼뭣고』화두입니다.
이∼ 하는 그 놈에 대한 게송이 있습니다.

 

원각산중생일수(圓覺山中生一樹)
개화천지미분전(開花天地未分前)
비청비백역비흑(非靑非白亦非黑)
부재춘풍부재천(不在春風不在天)


(원각산 가운데 나무 한 그루
우주가 생기기 전에 꽃이 피었네.
파랗지도, 희지도 또한 검지도 않으며
봄바람 속에도 있지 않고 하늘에도 없구나.)

 

<송장덩어리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무엇인고?>
<이∼ 하는 이 놈이 무엇인고?>
<이∼>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 자리는 삼세제불조사도 붙지 못하는
자리입니다.
<이∼> 하는 그 순간에도 전제와 단제가 있습니다. 부처님 만한 이론가가
없습니다. 부처님 만한 분명한 교육자가 없습니다. 주먹구구식은 안 통합니다.
화두는 언어도단 심행처멸(言語道斷 心行處滅) 즉, 말로써 표현할 길이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 는 자리입니다.

 

화두는 방편이 아닙니다. 세번뇌를 조복받는 것은 화두법밖에 없습니다.
몸뚱아리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무엇인고? 송장덩어리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무엇인고? 그 놈, 마음이야 마음. 마음을 모른단 말 입니다.

 

<송장덩어리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전제입니다. 영화에서 예고편을 보여주듯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한 것입니다. 단제는『이∼뭣고』입니다 . 화두는 단제를
의심하라고 했습니다. 혼선이 오면 지금까지 참선교육 받은 것이 모두
허사입니다.

 

전제는 상황을 설명한 것,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수식어가 되고, 결론을
이야기하는 목적어는 단제입니다. 전제를 인식했으면 바로 단제만 알면
됩니다.『이∼뭣고』화두하는 사람이 <이 몸뚱아리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무엇인고?> 끝까지 이렇게만 해서 는 견성을 못합니다. 사이사이 세번뇌가,
전생 번뇌까지 엄청나게 먼지 일어나듯 막 일어나서 안 됩니다. <몸뚱아리
끌고 다니 는 이 놈이 무엇인고>하고 알았으면 바로 『이∼뭣고』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이∼뭣고』만 하면 또 안 됩니다. 왜냐하면〈이〉는 단제가 됐고『이
뭣고』는 전제이니까 자리가 잡히면〈뭣고〉를 떼 어버리고〈이〉만 해야
됩니다.〈이〉를 잘하다 말고 법문들은 게 습관이 되어서〈뭣고〉를 하려고
할 때 망상이 들어옵니다.〈 이〉만 바르게 하면〈뭣고〉는 필요
없습니다.〈이〉가 잘 안 되니까〈뭣고〉를 한번 정도 넣어주는 것은
몰라도,〈뭣고〉를 계 속해서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여기서 획기적인 것은 상황에 따라 전제와 단제는 수시로 바뀐다는 것, 자기가
알고 있는 인식에서 바뀐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 도 모르는 사람한테는
<송장덩어리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가르쳤지만 이젠 길이
들었으니까 『이∼뭣고』로 딱 시켜야 된다는 것,『이∼뭣고』를 알았으면 그
다음엔〈이〉로 시켜야 된다는 것, 여기까지 인식이 되었으면 그
다음엔〈이〉 마저도 전제가 된 거고 알 수 없는 고물고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고 놈이 단제가 되니까 그걸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
두참구법의 생명입니다.

 

<이∼ 하는 이것이 영원하고 단제니까, 이것을 해야겠구나>하는 순간에도
미세한 번뇌, 밀밀한 번뇌가 1초에 칠만 번 요동칩 니다. 그 번뇌 가운데 딱
하나만은 진짜가 있습니다. 그 하나만을 빼 두고 <이∼>하는 순간에도 칠만
개의 번뇌가 있으니까 막 연히〈이〉해서는 견성을 못 합니다〈이〉가
단제라고 했지만 단제를 참구하라고 해서 고것만 참구해서는 견성을
못합니다. 그러 니까 그 중에서 구분을 지어서 다시 자기가 알고 있는〈이〉는
전제로 변해 버리면서 변치 않고 줄기차게 힘차게 분명하게 하나 가 있습니다.
그것 하나만이 단제입니다.『이∼뭣고』참구법은 이렇게 깁니다. 막연하게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이∼뭣고』화두를 <이∼, 이∼만 하면 된다, '이'를 의심하십시오> 하는
것은 막연합니다. 그래서 한국불교는 힘이 없습니 다. 화두법이 위파사나보다
천 배, 만 배가 나은데도 위파사나한테 당하는 이유는 세밀한 논리가 없이
막연하기 때문입니다.

 

참선은 10년, 100년, 한 철, 두 철 양(量)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참구하는
질(質)에 있습니다. 단제자리에는 괴로움도, 공 포도, 죽음도 붙지 못 합니다.
여러분들이 집걱정, 돈걱정, 잡다한 걱정을 하는 것은 다 전제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근본 단 제자리는 망상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슬픔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부처님도 오지 못 하고 조사도 건드리지 못 합니다. 그래서
천마외도가 훼방을 놓을래도 길이 없고, 범천과 제석천이 칭찬을 할래도
칭찬할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단제자리에는 기쁘다든 지 슬프다든지 하는
기운이 들어올 수 없으며 천마외도가 훼방을 놓으려고 해도 그 자리에 어떻게
마장이 옵니까!!! <마가 생겼 다, 마장이 있다> 그것도 전제자리에서 망식
기운에 있는 것이지 근본에서는 어른거리지 못합니다.

 

정리해 보면『화두는 체를 나툰 화두와 용을 나툰 화두로 구분할 수 있다.
공안도 전제가 있고 단제가 있다. 화두의 생명은 단 제에 있다. 단제는 단제일
뿐이다.』

 

 

第 六. 선종발달사


禪은 처음에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에게 전하셨다.〔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을 마하가섭 에게 부촉 하노라〕

 

1. 마하가섭

2. 아 난

3. 상나화수

4. 우바국다

5. 제 다 가

6. 미 차 가

7. 바수밀다
8. 불타난제

9. 복타밀다

10. 협 존 자

11. 부나야사

12. 마 명

13. 가 비마라
14. 용수보살

15.가나제바

16. 라후라다

17. 승가난제

18. 가야사다

19. 구마라다
20. 사 야 다

21.세친보살

22. 마 나 라

23. 학 륵 나

24. 사 자

25. 바사사다
26. 불여밀다

27. 반야다라

28. 보리달마가중국으로 건너와 중국인 제자인 혜가대사에게 전법을 하니,

29. 혜 가

30. 승 찬

31. 도 신

32. 홍 인

33. 혜 능 (중국1조 달마 6조 혜능) 순으로 계승되었다.

 

 

우리나라 선종의 시작은 혜능(638-713) 이전으로, 31대 도신(580∼651)시대,
구산선문이 형성되기 이전에 신라 법랑법사가 들여 왔다는 학설이 있는데,
비유하자면 첫번째 禪法의 씨는 뿌려졌는데 봄이 되기 전에 뿌려 추위에
얼어죽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당시는 교종이 도처에 자리를 굳게 잡고
있었기 때문에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기본사상이 뿌리 를 내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신라 41대 선덕여왕 5년(784) 도의국사가 당나라에 들어가
35대 마조대사의 제자인 서당 지장선사에게 불립문 자 견성성불(不立文字
見性成佛)사상을 배워 귀국한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인데 도의국사가 뿌린
씨는 잘 간수되어 구산선문(九 山禪門)으로 발전되었다.

 

이후 구산선문이 고려에 들어와 쇠퇴하였으나 고려 충렬왕 때
태고보우국사(1301∼1382)가 46세 때 중국 원나라에 건너가 56대
석옥청공선사로부터 정식으로 법을 인가 받고 57대 조사가 되어 48세(1349)에
귀국하였으니 한국 선종의 중흥기가 시작되었다.


선의 황금시대는 58대 환암혼수 59대 구곡각운 60대 벽계정심 61대 벽송지엄
62대 부용영관 63대 청허휴정(서산대사)으로 내려오면서 선종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禪이 대중에게 널리 인정 받게 되었다. 그리고 64대조는
서산대사의 제자로 알려진 사명대사가 아니고


64대 편양언기선사(1581∼1644)이며 65대 풍담의심(1592∼1665)
66대 월담설제 67대 환성지안 68대 호암체정 69대 청봉거안
70대 율봉청과 71대 금호법첨 72대 용암체정 73대 영월봉율
74대 만화보선으로 내려온다.

 

근세에는 75대조인 경허선사의 출현으로 만공, 혜월, 혜봉, 용성, 한암, 수월 등
6대 선지식이 출현하시어 선풍을 드날렸다. 그 리고 경허선사의 전법을 6대
선지식 중 만공선사가 받으셨으며 76대 만공선사는 제자인 보월선사에게
인가를 하셨고 보월은 금오 선사에게 전법하였으나 전법받은 보월선사가
스승(만공)보다 먼저 세상을 버리고 열반을 하였으니 다시 만공선사가 77대
전강선 사에게 법을 전하였다는 것과 경허가 혜월선사께, 혜월선사가
운봉선사께, 그리고 운봉선사가 향곡선사에게 전법하여 내려왔다는 3가지 설
중에서 두가지 선맥(전강-송담, 향곡-진제)이 오늘날 선객 사이에 크게 논란도
되고 인정도 되는 것이 종단의 현실이 다.

 

그러므로 오늘날 고도과학문명이 발달된 세계 속에서 우리 나라에만 정통선,
부처님의 心印을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최상승 화 두선이 계승되고 있다는
점과 재가불교단체 중 수선회(修禪會)가 정통선(正統禪)을 이념으로 가르치고
실천한다는 점을 모두 명 심하여 크게 신심을 일으켜 정진해야 한다!

 

 

 

 

 

[출처] 참선|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