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 불교에 묻는다] 전현수 원장의 ‘노동과 불교적인 정신건강’
‘지금’ ‘일’에 집중하는 것이 수행이며 정신치료
지난 5월부터 ‘노동의 가치, 불교에 묻는다’는 주제로 명사 초청 특별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안성 도피안사(주지 송암스님)에서 지난 15일 전현수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이 ‘노동과 불교적인 정신건강’을 주제로 강의했다. 내용을 소개한다.
정신의학에서 보는 정신건강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인생의 목적이 뚜렷하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혹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낼 수 있고, 자신의 처지에 맞는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며, 맡은 일을 하는데 있어 지속적이고 인내심이 있으며, 인생의 즐거움을 여러 가지로부터 얻을 수 있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정신질환자는 생각이 많아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내밀하게 살펴보는 정신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볼 때 정신과 환자들은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신과 환자는 첫째 생각이 많다. 둘째 과거와 미래에 살고 있다. 그런데 정신과 환자들이 보이는 두 가지 특징인 생각이 많은 것과 과거와 미래에 사는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생각은 주로 과거와 미래에 가 있다. 현재에 집중해 있을 때 생각은 없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현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은 과거.미래에 바탕에 둔 생각에 빠져있지 않고 현재에 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할 일을 하고 피곤하면 쉬는 것이 정신건강이다. 선가에서 이야기하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 도(道)’라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해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바탕위에서 앞으로 나아간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정신건강에 대해 ‘일하고 사랑하는 데 있어 장애가 없는 상태’로 정의했다. 사실 일하고 사랑하는 데 장애가 없으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갈 때 정신이 건강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 道’와 의미 통해
지난 것에 애태우지 않고 올 것을 바라지 않아야
일을 할 수 없거나 일을 하지 않거나 일하는 데 의미를 찾지 못 하는 사람은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이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 회사나 일을 보는 시각이 자기 위주이고 좁은 경우가 많다. 회사에 대해 자기만 손해보고 고생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 회사가 해주는 것도 많다. 우선 일 할 수 있게끔 해준다. 하루하루 일찍 일어나게 해주고 밤에 잠이 잘 오게 해준다. 주말이 기다려지게 해준다. 사람들도 만나게 해주고 인간관계도 맺게 해준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게 해주고 남들에게 떳떳하게 해준다. 직장과 나는 서로 주고받는 관계다. 서로 고마운 관계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정신장애는 자신의 문제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생각이나 과거나 미래 속으로 빠져들어 간 경우다. 이 경우 문제를 풀고 나서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일을 통해 자신의 문제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막고 문제의 해결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당장 직장을 찾아 일할 수 없으면 운동을 하거나 집안일을 함으로써 생각을 줄이고 현실감을 찾고 나도 뭔가 하고 있다는 보람도 느끼고 인생에 있어 균형감도 찾을 수 있다. 사람들과의 접촉도 늘리고 인간관계도 가질 수 있다.
일하는데 장애 없는 게 건강
불교 경전인 〈디가니까야〉 ‘교계 싱갈라 경’ Singalovada Sutta, 장아함에는 ‘선생경’으로 번역)에 나와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부처님은 노동이나 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본다.
* (싱갈라경=선생경) 유마힐 註
‘교계 싱갈라 경’에서 게으른 자의 여섯 가지 위험에 대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장자의 아들이여, 게으름에 빠진 자에게는 다음의 여섯 가지 위험이 있다. 너무 춥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덥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이르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늦었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배고프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배가 부르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그가 이와 같이 해야 할 일에 대한 핑계거리를 많이 갖고 사는 동안 아직 벌지 못한 재산은 벌지 못하며 번 재산은 다 써 버리게 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것이 게으름에 빠진 자의 여섯 가지 위험이다.”
부처님은 또한 이 경에서 바람직한 주인과 하인이나 고용인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셨다. “장자의 아들이여, 주인은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아래 방향인 하인과 고용인들을 섬겨야 한다. 힘에 맞게 일거리를 배당해주고, 음식과 임금을 지급하고, 병이 들면 치료해주고, 특별히 맛있는 것을 같이 나누고, 적당한 때에 쉬게 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주인은 아래 방향인 하인과 고용인들을 섬긴다. 그러면 하인과 고용인들은 다시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주인을 사랑으로 돌본다.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자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일을 아주 잘 처리하고, (주인에 대한) 명성과 칭송을 달고 다닌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경우로 주인은 아래 방향인 하인과 고용인들을 섬기고, 하인과 고용인들은 다시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주인을 사랑으로 돌본다. 이렇게 해서 아래 방향은 감싸지게 되고 안전하게 되고 두려움이 없게 된다.”
게으른 자는 위험한 사람
부처님은 노동은 꼭 필요한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게으름을 피운다고 봤다. 노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너무나 당연하니 자세히 말씀 안 하셨을 것이다. 노동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주인과 하인이나 고용인과의 관계는 부처님 당시에는 지극히 수직적인 관계였던 것 같다. 수직적인 관계이긴 하나 서로가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줌으로써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오늘날의 고용관계는 평등관계고 계약관계다. 이 관계에서도 부처님이 말씀하신대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에 맞게 하고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주려고 서로 노력한다면 둘 관계에서 부처님 말씀대로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 노동의 불교적 가치와 의미를 앎으로써 노동을 쉽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노동을 하면서 불교적 수행을 겸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노동을 한다는 것은 현재에 머무는 것이다. 현재에 머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상윳따 니까야〉 천신품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경에서 천신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숲 속에 사는 수행자는 하루에 한 끼만 먹고도 어떻게 얼굴이 그렇게 맑고 깨끗합니까?” 부처님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숲 속에 사는 수행자가 하루에 한 끼만 먹고도 얼굴이 그렇게 맑고 깨끗한 것은 지나간 것에 마음을 애태우지 않고 앞으로 올 것을 바라지 않고 현재를 잘 지키기 때문이다.” 불교 수행을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불교 수행을 현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에 집중하는 게 수행
노동을 현재에 집중하는 것의 의미를 알고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만든다면, 노동을 한 만큼 현재에 집중한 것이고 현재에 집중한 만큼 불교적 수행의 시간이 된다. 정신치료적으로 볼 때 현재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치료적이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갖고 있는 존재다. 마음은 언제나 어딘가에 가 있다. 마음이 가 있는 대상이 건전하면 우리는 편안하고 행복해지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마음이 가 있는 대상이 불건전하면 우리는 불안정하고 괴로워지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불건전한 대상을 자세히 보면 대개 과거와 미래다. 과거는 우리로 하여금 화나게 하거나 아쉬움을 준다. 미래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의 마음이 과거와 미래에 가 있는 한 우리는 안정되고 편안할 수 없다. 마음이 가 있는 건전한 대상은 현재다. 지금 이 순간에 하는 일에 마음이 가 있으면 현재에 있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일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으면 현재에 마음이 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려면 과거나 미래 속으로 가지 않고 현재에 머무르도록 해야 한다. 노동이나 일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일을 지금 말한 대로 하면 일을 할 때 싫고 힘든 것이 없어진다. 한 시간 일하고 나면 한 시간 수행한 것이 된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해 일하다가 자신 속에서 생각이나 느낌과 같은 다른 현상이 일어나면 그 현상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이 쌓이면 내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불교의 삼법인(三法印)인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날 만하니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받아들이게 된다.
일이 수행으로 전환되면 일이 아닌 하루 일과 모두가 수행으로 전환될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밤에 잠을 잘 때까지 현재에 집중하고 하루가 수행이 되면서 순간순간에 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쓸 데 없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최선의 삶을 살고 후회가 없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불교신문 2270호/ 10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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