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사람, 나의 스승 청화 스님

수선님 2020. 11. 22. 12:50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사람, 나의 스승 청화 스님

 

흠모(欽慕) / 청화 스님의 제자 성전 스님

 

불교방송 ‘행복한 미소’의 시그널뮤직을 타고 들리는 음성. “안녕하세요? 행복한 미소, 성전입니다.” 올해로 3년째 불교방송 ‘행복한 미소’의 진행을 맡고 있는 성전 스님은 그렇게 매일 아침 9시 5분이면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 스님은 그에게 주어진 55분의 시간을 위해 먼 남해 용문사에서부터 달려온다. 이른 새벽부터 멘트를 다듬고 발음을 연습하고 청취자의 사연을 하나하나 챙기며 9시 5분을 준비한다.


스님은 어느덧 방송경력 5년차 베테랑 MC이다. 그의 방송을 들으면 그 중도의 미학이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세련되거나 번지르르하지 않고, 그렇다고 어설프거나 투박하지도 않은, 굳이 표현한다면‘수행자다움’을 놓치지 않은 깔깔한 멋스러움이 있다.
실제로 성전 스님에게 있어 ‘수행자다움’이란 그가 삶을 다 던져 마침내 지켜가고 싶은 단 하나의 덕목이다. 바쁘게 자신을 몰아치면서도 문득 두렵게 돌아보는 자리, 산사와 도심을 오가면서도 혹여 놓칠까 단속하는 마음의 경계…. 그렇게 스님이 부단히 돌아가는 그 자리에는 큰 나무 하나가 있다.


태안사 올라가는 산길에 우뚝 서 있던 오백 년 된 소나무보다 더 곧고 푸른 한 분의 스승이 있다. 수행자다움에서 단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던 사람, 눈빛이 하도 맑아 ‘수행을 하면 저렇게 아름다워질까’ 환희심에 고개를 숙이게 했던 스승, 겸손에서 수행자다움을 배우게 했던 청화 스님이다. 성전 스님에게 청화 스님은 스무 해 전 그날처럼 지금도 가장 그립고 설레는 ‘님’이다. 그 처음의 설레임에 대해 스님은 언젠가 다음과 같은 글로 내비친 적이 있다.


“나는 처음으로 스승의 눈동자를 훔쳐보았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눈에서는 마치 굵은 빛의 입자들이 몽글몽글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내게 그런 사람의 눈동자는 처음이었다. 그 눈빛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투시하고도 남을 것 같은 밝음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 앞에 내 전부가 드러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렵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눈에서 쏟아지던 그 빛들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다.”

수행자에게 겸손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1989년 추석 전날 어스름 저녁빛을 타고 성전 스님은 태안사로 갔다. 장좌불와(長坐不臥), 일종식(一種食), 호남의 도인, 그리고 초인적인 수행으로 수많은 일화를 남기며 수행의 빛을 전해온 청화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자 나선 길이었다. 청화 스님은 대중과 함께 송편을 빚고 있었는데, 마치 그 모습이 송편을 빚는 것이 아니라 참선하는 듯 보였다고 했다. 스님은 맑고 고요한 정기로 온 산을 흔들어 일깨우는 태안사 산바람처럼, 성전 스님 가슴에 크나큰 파문으로 다가왔다.


숨막힐 것 같은 긴장과 설레임 속에 내던져진 채 앉아있는데, 청화 스님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떻게 왔나?” 성전 스님은 출가를 하려고 왔다는 그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수천 번도 더 상상했던 오늘이 아니던가. 또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고심하며 출가의 변을 준비했던가. 그러나 성전 스님은 입을 다물었다. 쏟아질 것 같은 맑은 눈빛 앞에서 무엇을 보태고 덜할까 그저 몸을 낮추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스님이 행자시절 처음 맡은 소임은 청화 스님 방에 불을 때는 일이었다. 그러나 성전 스님이 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항상 올라가보면 이미 아궁이에서는 불이 알맞게 타고 있었고, 빨래도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토굴은 언제나 정갈하고 맑아 숙연함마저 감돌았다.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겠다는 수행자로서의 원칙과 타인을 배려하는 자비심을 성전 스님은 그 곳에서 배웠다.


청화 스님은 말로써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미숫가루 한 끼로 하루의 공양을 막음하는 스승의 모습에서, 수행자란 음식이 아니라 정진에서 힘을 얻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맞절로써 맞이하고 존대하는 스승의 모습에서, 겸손이야말로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위의요 덕목임을 깨달았다.


“한번은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은 왜 가만히 앉아서 절을 받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수행자에게 겸손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그날부터 저는 종일 겸손이란 말을 외우고 다녔습니다. 스님의 공부를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겸손한 스승 앞에서 결코 거만한 제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사실 보는 사람의 착각인지 몰라도, 성전 스님은 언제나 이상하게도 행복해 보였다. 항상 웃고 있는 듯한 특유의 미소가 그에겐 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가도 누군가 ‘스님!’ 하고 부르면 이마에 잔주름을 잡으며 올려다보는데, 그렇게만 해도 미소가 되어버리는 그런 얼굴이었다. 겸손을 염불처럼 외우며 살아온 오랜 삶과 수행의 흔적이었을까.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스님을 ‘미소스님’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마치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아니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처럼 스님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름이었다.


“어느 날 방송국으로 감사의 편지가 왔어요. 한 남자분이 보냈는데 무작정 고맙다고 했습니다. 흔히 잘 나가는 아내와 살면서 늘 힘들고 갈등이 많았는데, 어느 날부터 아내가 달라졌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제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스님 방송을 들으면서 매일매일 다시 태어났다고….”


성전 스님은 글도 참 잘 쓴다. 스님의 글은 봄날 숲길처럼 청량하다. 누구나 겪는 하루의 일상이지만 스님 곁을 지나는 순간 그것들은 무수한 의미를 갖고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스님의 글을 읽다보면 무심히 버려두었던 소소한 일상들이 새삼 아련할 만큼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책도 쓰고 방송도 하고, 하하.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다 지금 여기에 있는지. 아마도 월간 「해인」을 맡았던 것이 새로운 전기가 됐던 것 같은데요. 스님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여기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여기에 있지만, 언젠가 또 떠나겠죠?”


 

세상의 은혜를 어찌 갚을 것인가

 

성전 스님은 은사처럼 살고 싶었다고 했다. 미숫가루 한 되로 한 철을 나고, 장좌불와에 무섭게 정진하는 스승. 어느 날엔가 은사의 토굴을 찾아갔을 때 먼지가 뽀얗게 쌓인 신발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서늘해 했던가. 들고 남이 없었던 초인적인 수행자. 그러면서도 남들을 위해 가끔은 당신의 원칙을 놓아버리고 먹는 시늉이라도 해주었고, ‘장좌불와’를 묻는 제자에게 “늙어서 가끔은 눕지요” 하며 미소 짓고, 강원에 공부하러 간 제자에게는 빳빳한 돈으로 용돈을 부쳐주었던 한없이 부드러운 스승이었다.


“미워하기가 사랑하는 것보다 힘들고, 남의 아픔을 당신의 아픔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 했던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리고도 마지막 가시는 길에 ‘세상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한 것이 미안할 뿐’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스승을 만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행운입니다.”


5월의 햇살 아래서 청화 스님의 맑은 미소와 제자의 환한 미소는 그렇게 조용히 조우하고 있었다. 이제 곧 스님이 있는 남해 용문사에서 차 덖는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스님은 이번에는 불교방송 청취자들까지 초대해 차를 나누려고 한다. 그만큼 성전 스님의 날들은 더 바쁘고 분주해질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힘들다 고단하다 여기지 않으려 한다. 함부로 어떤 마음도 일으키지 않으려 한다.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 앞에 한없이 더 겸손해지고만 싶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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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스님 _ 1924년 출생. 1948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40여 년간 장좌불와, 일종식 수행을 한 당대의 선승이다. 60세가 넘어서 설법을 시작했고, 이후 성륜사, 태안사 조실로 취임해 수행자의 사표(師表)로서 지혜의 법등을 전해왔다. 2003년 11월 12일 세수 80세, 법랍 56세로 원적에 들었다. 부처 되는 길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길이요, 공부임을 일깨워주었던 참스승이다.

성전 스님 _ 1989년 태안사에서 청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 강원을 졸업했다. 이후 여러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였고, 이후 월간 「해인」 편집장과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불교방송 ‘행복한 미소’를 진행하고 있으며, 『행복하게 미소 짓는 법』을 집필하는 등 방송과 책을 통해 수행자의 삶과 향기를 전해오고 있다.

 

월간불광 2008.6월호

 

 

 

 

 

 

 

[출처]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사람, 나의 스승 청화 스님 |작성자 둘이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