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개관
자이나교는 힌두교를 개혁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시작된 종교로서 인도 내에만 약 300만 명의 신도가 있다. 자이나교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를 통해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종교였다. 간디는 자이나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자인들(Jains: 자이나교 신도들) 사이에서 자라났고 그 교리를 기꺼이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아히스마(ahisma)라는 비폭력주의 사상이었다.
불교도들(Buddhists)이 부처(Buddha: the enlightened one, 깨달은 자)를 따르는 자들이듯이 자이나 교도들(Jains)은 '지나'(Jina: conqueror, 정복자)를 추종하는 자들이다. '지나'라는 말은 자이나교의 위대한 교사들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바르다마나(Vardhamana)의 칭호였다. 이 칭호는 또한 자유(liberation, 혹은 해방)와 완전을 위해서 그들의 열정과 감정을 정복한 남자나 여자들에게 붙여지는 칭호이다. 자이나교는 그 이름 가운데 이 종교가 절대적으로 윤리적 특성을 가진 종교임을 명시하는 요소가 있다.
'지나'(Jina)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상론한다면, 모든 존재에는 명아(命我, Jiva: living)적 요소와 비아(非我, ajiva:nonliving)적 요소가 있다. 전자가 고행을 통해서 순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후자의 형식을 벗고 그 본성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것이 해탈(Nirvana)이다. 이렇게 해탈에 도달해서 수도(修道)에 성공한 자, 곧 승자(勝者)를 '지나'(Jina)라고 한다.
고행 수도를 통해서 해탈에 이른 '승자'(Jina)들은 힌두교의 교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교리(heterodox)를 창안해 냈다. 그들은 베다 경전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카스트 제도와 희생 제사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무신론적이며, 인격적인 최고 영의 존재를 부정한다.
자이나교는 처음에는 힌두교 개혁운동으로 시작되었다. 힌두교의 최고 계급인 브라만(Brahman)이 제사 계급으로서 부패하고 무능한데 대하여 왕족 무사 계급(크샤트리아)이 개혁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무사 계급들은 후에 일어난 불교와 함께 힌두교의 개혁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였으나 다른 종교로 분리 독립하여 자이나교를 창시하였다 자이나교는 인도의 서남부에 자리잡은 소수 종교가 되었고, 불교는 세계적인 대종교(the great world religion)가 되었다.
위의 두 계급이 갈등하며 투쟁하는 동안 세 번째 계급인 바이샤는 농. 공. 상의 생업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여 자기들의 세력 확장의 기회로 삼고 부를 축적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얻었다. 그들은 부의 힘을 배경으로 성전을 크게 세우고 스투파(Stupa)라는 기념탑을 건축하였다.
자이나교의 고행과 채식주의와 생명 존엄 사상, 세계 평화 추구 정신에 입각한 비폭력. 무저항주의 사상은 전세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B. 교조 바르다마나(Vardhamana)
힌두교는 자연 발생적 민족 종교로서 창시자가 없다. 그러나 자이나교는 인도에서 최초로 교조가 있는 종교로 시작되었다. 그의 이름은 바르다마나(BC 599-727)이다.
바르다마나는 오늘날 인도의 비하르(Bihar) 지방 파트나(Patna) 가까이에 있는 작은 왕국 마가다(Magadha)의 바이샬리(Vaishali) 성에서 크샤트리아 계급인 싯다르타(Sidhartha)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불경에서 부처의 적수(opponent)로 니간타 나타푸타(Nigantha Nataputta)라는 인물이 자주 언급되는데 그 이름이 바로 자이나교의 교조인 바르다마나의 별칭이다.
바르다마나는 친가와 외가 모두 매우 권세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양 가문 모두 크샤트리아 계급으로 당시 실세였으므로 그는 왕자의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바르다마나는 30세 때 부모가 죽자 고행길을 떠났다. 12년 고행 수도 끝에 모든 카르마(Karma, 업)의 최종 단계를 끊고 열반(Nirvana)에 도달하여 케발린(Kevalin: 全知的 存在)이 되었다.
바르다마나는 모든 사물의 이치 중 모르는 것 없는 완지자(完知者)요, 육체적으로도 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잠자는 것을 극복할 정도가 되었다. 그는 열심히 이 종교의 포교에 힘썼다. 자이나교 교리를 전하는 자들을 '티르트한카라'(Thirthankaras)라고 한다. 그는 자신을 24번째요 마지막 티르트한카라라고 하였고, 자이나교의 시조로 선포하였다(He acclaimed a liader of an Order a Tirthankara).
바르다마나는 42세에 리쥬팔리카 강 유역 즈림비카그라마(Jrimbikagrama)에서 케발리가 된 후 넓은 지역을 방랑 고행하면서 많은 개종자를 얻으며 무리를 조직하엿다. 그가 BC 527년에 72세로 사망할 때까지 50,000명의 승려들과 약 517,000명의 평신도들과 5,400여 명의 케발리를 만들었다.
바르다마나는 마하비라(Mahavirah, 대영웅)라는 칭호로 불리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신의 속성을 가진 선재자가 성육해서 이 땅에 왔다고 하면서 그를 신격화해서 숭배하였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이 세상에는 경배할 아무런 대상도 없다. 따라서 어떤 대상도 경배하면 안 된다"고 교훈 하였다. 그 자신도 죽을 때까지 이러한 신조로 몸소 실천하느라고 어떤 대상에게도 기도하지 않았다.
바르다마나의 생애에 관한 전설들(legends)은 부처(Buddha)에 관한 전설들과 매우 흡사한 것이 많고, 형식을 갖추기 위해 생겨난 믿기 어려운 것(formalized and unreliable)들이 많다. 그러나 그가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던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르다마나는 처음에는 사자 모피(lion cloth) 옷을 걸치고 다니다가 13개월 초에는 아무 옷도 입지 않고 나체 상태로 금식하며 수도(修道) 고행(苦行)에 힘썼다. 오랜 금식 끝에 깨달음(覺, enlightment)을 얻고 '지나'(Jina)가 되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케발라"(kevala)라고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완전하고 분명하며 거칠 것이 없는 지식과 직관에 도달한 상태, 그리고 이러한 경지에 이르른 영혼을 케발린(kevalin: a perfected soul)이라고 한다. 그는 자이나교의 전통을 자기보다 훨씬 이전의 힌두교의 금욕주의 성자 파르스바(Parsva)와 네미(Nemi)에게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그는 금식하다가 결국 굶어 죽었다. 그가 죽은 곳은 그의 출생지 가까이인 파바(Pava)로, 자이나교의 성지 순례의 중심이 되었다.
C. 자이나교의 흥망성쇠
마하비라는 주로 크샤트리아 귀족 계급의 추종자들을 모아 평신도들로 구성된 일반 집단과 남녀 수도사들로 자이나교를 조직하였다.
그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 차츰 수도사 집단이 없어지고 개종된 브라만인 슈달마(Suddharma) 아래 오백 승려들만 남았다. 오늘날 남아 전해지는 자이나교의 모든 종파들의 영적 계보는 그로부터 내려온다.
마하비라 사후 약 200년이 지난 뒤 마우리야 왕조의 마가단 황제 챤드라 굽타(Maurya dynasty Magadhan Emperor Chandragupta, BC 321-297)는, 왕위에서 물러난 후 자이나교에 심취하여 자이나교 승려들을 동인도로부터 남인도로 인도하여 마이소레주(Mysore State)의 슈라바나 벨골라(Shravana Belgola)에 자이나교 센터를 설치하였다.
BC 310년경 무수히 많은 수의 자이나교 승려가 심각한 기근(famine)을 피해서 데칸(Deccan)의 남쪽 북인도 강가 계곡(Ganga Valley)으로부터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마이소레주의 슈라바나 벨골라에서 11번째 장로인 바드라바후가 지도자가 되자 마하비라 이래로 내려오던 전통과 흰옷을 입는 것 등을 버림으로써 세 가지의 분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하나는 디감바라(Digambaras, the sky-clad)이고 다른 하나는 스베탐바라(Svetambaras, the white-clad)이다. 두 종파가 시작된 것은 AD 1세기 부터이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흰옷파인 스베탐바라는 주로 북인도에 거주하며 AD 82년에 남부 자이나교와 의상 문제로 갈라진 후 다시 약 84파로 분열하였다. 청색옷파인 디감마바라는 남부 인도에 퍼진 자이나교파인데 북부 자이나교보다 더 엄격하고 더 금욕적이다. 그들은 나체로 살았으며 그들의 신상까지도 나체신상이다.
자이나교의 또 다른 분파는 스트하나크바시(Sthanakvasi) 분파인데 AD 1474년에 북부 힌옷파에서 개혁 분리되었다. 우상 경배를 극구 배격하며 다시 11분파로 갈라졌다.
불교를 신봉하던 아수카(Asoka) 황제의 손자 삼프라티(Samprati)가 자이나교로 개종함과 동시에 자이나교는 전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까지 전파되었다.
구자라트와 마르와르(Gujarat & Marwar) 공주의 후원에 의해서 자이나교의 중심이 바하르의 성지로부터 구자라트의 새로운 중심지로 옮겨졌다. 자이나교의 경전을 결정짓는 역사적 회의가 AD 514년에 신 본베이주 바브나가르(Bhavnagar) 근교 발라비(Vallabhi)에서 열렸다.
이때부터 13세기까지가 자이나교의 황금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 자이나교는 정치적으로 인도 전역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서부, 중부, 남부 인도의 모든 왕조 가운데 대부분의 수상이 자이나교 신도라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한다.
구자라트에서는 쿠마라팔라 왕 때 자이나교가 국교로 되었다. 온 나라에 동물 살해를 금지하고 자이나 신당을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지었다.
그 후 자이나교는 알라우딘(Alauddin)이라는 이슬람 정복자의 침략에 의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D. 자이나교의 경전들
그 후 마하비라로부터 여러 세대를 지나오면서 자이나교의 많은 부분이 구전에 의존해서 내려왔다. 이러한 구전 내용을 최후로 가장 완벽한 지경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바드라바후(Bhadrabahu)였다.
BC 3세기 초에 그가 죽은 후 바로 경전이 재구성되었는데 그 본체 부분을 안가스(Angas)라고 하며, 전체가 12부분의 교훈들(Agamas)이 있었다고 하는데 제 12부는 없어지고 현재는 11부분만이 전해진다.
스베탐바라(Svetambara)파와 스타나카바시파는 이 경전을 인정하나 디감바라(Digambara)파는 이 경전을 인정하지 않고 대신에 디감바라 정경(Digambara Canon)만을 인정한다. 이 경전들 이 외에도 싣한타스(Siddhantas)라고 하는 잡서 경전이 있다.
위의 12안가스(Angas)는 그 이전에 전해 내려오던 푸르바스(Purvas)라는 14권의 경전을 개작한 것이다. 자이나교의 경전들이 집대성된 시기는 AD 1세기경이지만 영구한 문서 형태로 완성된 것은 AD 5세기에 이르러서였다. AD 524년경에 발라비(Vallabhi)에서 정경을 확정하는 회의가 있었다. 자이나교의 경전 대부분이 당시 인도 북부 및 중부에서 통용되던 프라크리트(Prakrit)어로 쓰여졌고, 이 경전을 해석한 주석들은 모두 산스크리트(Sanskrit)어로 쓰여 있다. 따라서 오늘날 극소수의 학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이나교도들이 경전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경전의 일부가 현대 인도어로 번역되고 있다.
E. 자이나교의 교리
자이나교의 교리적 기원은 제1대 티르탄가라(Tirthankara)인 리샤바(Rishabha) 마하비라이지만, 교조는 제 24대 티르탄가라인 마하비라이다. 즉 힌두교의 브라만 사상보다도 더 상고로 올라가서 물활론적(animistic) 힌두교 안에 포함된 관념들이 자이나교의 정통 사상이다.
그러므로 자이나교는 힌두교 내의 다신교 신앙을-그것이 자연적 신앙이든 초자연적 신앙이든-모두 거부한다. 그들은 어떠한 신에게든 제사하거나 기원하는 것도 거부한다. 그러나 마하비라는 사후에 신격화되어 신자들로부터 다른 23승리자들, 혹은 성자들(Tirthankara)과 함께 예배와 기도를 받고 있다.
1. 철저한 인본주의 자력 종교
자이나교는 영원, 자존, 최고의 실유로서의 창조자 하나님을 부인한다. 그 대신 그들은 인간 존재의 영원성, 생명의 보편성, 신회되고 해탈된 인간 영혼이 하나님을 대신함을 믿는다. 그들은 시조를 신으로 격상시켜서 믿고 24티르트한카라 등 많은 구원자를 설정하였다.
자이나교가 힌두교의 차이점은 힌두교가 초자연적 능력을 믿는 유신 사상이라면 자이나교는 초자연적 능력이나 초월적 신적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은 카르마(karma) 법칙의 불변성 구원(Mok놈)의 방편으로서의 지성과 자기 의존을 믿는다. 자이나교도에게 무신론적이라고 하면 그들은 격노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현대 종교학적 의미에서 유신론적 요소는 극히 적고 무력하다.
2. 이원론적 세계관(The Dichotomous World view)
자이나교의 우주관은 두 독립된 범주들의 영원 공존 우주관이다. 즉 지바(Jiva-living, 생)와 아지바(Ajiva-nonliving, 비생)의 범주이다. 전자는 영혼(Purusha)이 있는 실체이고 후자는 물질(Prakriti)뿐인 실체이다.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 있고 미래에 있을 생물(animate)과 무생물(inanimate)로 이분된다. 이것은 정신(mind)과 물질(matter)의 이분법(dichotomy)적 세계관이다. 영혼(jiva)은 식물, 불, 물, 바람, 땅의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과 무생물을 통하여 창조주 없는 우주가 존재한다.
자이나교의 철학이 불교나 힌두교와 비교해 볼 때 우주를 생물(animate-jiva-soul)과 무생물(inanimate-ajiva-nonsoul)의 두 본체(substances)로 보는 이원론적 체계(system)가 불교나 힌두교의 체계들(systems)과는 중요한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모든 실체들(substances) 속에는 언제나 각각의 개체적 특성(individual characteristics)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실체들이 존재한다는 개념은 우리들의 인지(認知, perception)나 깨달음(自覺,awareness)을 통해서 파악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자이나교의 인식론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실재론자의 철학(philosophy of realist)이라고 한다.
우주에 살고 있는 영혼의 수는 무한(infinite)한데, 그들 중 대부분은 영원히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birth, death, rebirth) 윤회(Samsara)의 과정 안에서 끊임없는 윤회를 강요당할 것이다. 이 세상은 자체가 흥왕과 쇠퇴를 반복하게 되어 있다(This world is itself subject to a process of growth and decline). 이 세계는 우주의 일부분이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무수한 우주적 기복(cosmic cycles)을 되풀이하면서, 문명의 발달과 쇠퇴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현재 우리는 문명이 하강하는 단계 가운데 다섯 번째 단계에 와 있다.
명백한 운명론이나 체계에 의한 결정론 등은 자이나교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배척되고 있는데, 그것은 자이나교의 다면적 이론(무다무-tavada: theory of many-sidedness)과의 차이 때문이다. 이 이론은 어떤 진리 체계이든지 간에 그것이 만들어진 시각에서 볼 때만이 진리라고 한다. 문명의 흥왕성쇠는 그 문명이 속한 세계관의 시각에서 볼 때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결정되어 있는 것을 이해하기 쉽지만, 개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인간이 그 자신의 구원의 범위를 넘어서면 어떤 부분적인 진리 체계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해방된 영혼은 온전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알게 된다. 이에 대하여 잘 알려진 우화가 여섯 장님과 코끼리에 대한 것인데, 이 우화가 바로 자이나교의 우주관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진리 체계도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측면에서는 모두 옳게 보이고 진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직 니르바나(Nirvana) 안에서의 영혼만이 완전하고 완성된 지식을 갖는 것이다.
3. 영혼(The soul)
영혼의 본질적 특징은 자각(consciousness)과 지식(knowlidge)이다. 영혼의 원초적 상태에서는 영혼은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어 있었고 그 앞에서 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영혼은 존재의 지식(the knowledge of existence in all its various aspects, and at all times, past, present and future)을 지배한다.
영혼의 지식이 불완전하고 미비한 점이 있는 것은, 현재 이 세상에서는 영혼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육체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혼은 초기 존재에서 취했던 형태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가장 낮은 단계에서의 영혼은 감각(touch)이라는 한 가지 인식(sense)만을 가진다. 이것은 땅, 물, 공기, 불, 식물의 세계를 포함한다.
② 두 번째 단계에서의 영혼은 감각과 맛 두 가지 인식을 갖는데, 벌레들과 조개류가 포함되다.
③ 세 번째 단계에서의 영혼은 감각과 맛과 냄새 세 가지 인식을 갖는데, 여기에는 개미들, 바퀴벌레들, 나방들(moths)이 속한다.
④ 네 번째 단계에서의 영혼은 감각과 맛과 냄새와 시각 네 가지 인식을 갖는데, 말벌류(wasps), 메뚜기들, 나비들이 여기 속한다.
⑤ 다섯 번째 단계에서의 영혼은 감각, 맛, 냄새, 시각, 청각 등 다섯 가지 인식을 갖는다. 여기에는 네 종류가 있는데 지옥 악마 존재, 고등동물, 인간, 천상의 존재가 있다.
영혼은 제1단계에서 시작해서 다른 단계로 끊임없이 여행을 한다.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면서 카르마(Karma, 業)라는 냉혹한 법칙(inexorable law)에 따라서 움직인다.
4. 業과 轉生(Karma and Reberth)
업(Karma)의 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는 자이나교가 힌두교와 같다. 이 교리에 의하면 모든 행동, 사상, 언어, 행위는 반드시 다른 행동, 사상의, 언어, 행위를 생산하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교리를 카르마적 연결(Karmic bondage) 혹은 단순히 카르마(Karma, 業)라고 한다.
자이나교는 윤회(transmigration)와 전생(rebirth) 교리에 동의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주어진 영혼의 상태는 업(Karma) 때문에 항상 영접의 긴 세월 동안 계속된다는 교리를 따르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자이나교의 카르마 교리(the Jain doctrine of Karma)는 힌두교와 차이점이 있다. 힌두교에서는 카르마를 순수한 자연 법칙으로(purely as a law of nature) 보고 있으나 자이나교에서는 카르마가 마치 옹기에 붙어 있는 진흙처럼 다섯 종류로 나누어져 영혼에 붙어 있는 물질의 작은 입자로 보는 것이다.
노력과 수련과 지식에 의해서 인간이 업(Karma)을 조종(control)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자이나교의 입장이다. 이기적이고 부주의하고 잔인한 행동들은 영혼을 아래쪽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무거운 카르마가 쌓인 결과이다. 그러나 좋은 행위로부터 증가하는 카르마는 금방 흩어지기 때문에 심각한 결과가 오지 않는다. 고행은 영혼을 가볍게 해주므로 이미 쌓여 있는 업을 흩기 위해서는 고통을 자초해서 당하는 것이 유익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Mok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혼을 물질로부터 자유럽게 해주어야 한다. 영혼이 가볍게 되면 위로 떠올라서 우주의 높은 꼭대기에 이르게 되는데, 높이 올라간 영혼일수록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축복을 받는다. 마하비라와 같은 영웅들의 영혼은 실제로 이와 같은 생의 구원을 성취한 것이다. 그것은 카르마가 지상에서 그들과 결합된 상태에서 금식과 참회(penance)를 통해서 업을 없애고 열반(Nirvana)이라고 하는 영원한 안식처가 있는 신들의 최고 높은 하늘에 즉시 올라가는 것이다.
자이나교는 운명론적인 것이 아니고 무신론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최고 신 개념, 창조주, 우주의 섭리자, 초자연적 존재 개념이 없다. 다만 티르탄가라스만은 예외이다. 전생(轉生, rebirth)이나 카르마라는 불가사의하고(subtlety) 또 괴변스러워 보이던 교리가 자이나교에서 정교하게 잘 다듬어졌다.
자이나교의 세계관은 염세주의적(pessimistic)이다. 이 세상은 비참하고, 슬프고, 인생의 행복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또한 이 세상의 삶에 대한 보상의 길도 없(no way compensated)다.
5. 구원의 길
우주에 있는 영혼의 수가 무한하고(this infinite number of souls in the universe) 전생의 싸이클의 길이가 또한 무한(infinite Iength of the cycle of reberth)하기 때문에 영혼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희귀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기간 동안을 매우 좋은 기회로 여기고 세 가지 보화(three jewels)를 가짐으로써 구원(Moksha)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 세 가지 보물이란 정지(正知, right knowledge), 정신(正信, tight faith), 정행(正行, tight conduct)을 말한다.
바른 지식은 자이나교의 신조를 아는 것이고, 바른 신앙은 그 신조를 믿는 것이고, 바른 행위는 그 신조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앞의 둘은 세 번째 것 없이는 소용이 없다. 행함이 없는 지식과 믿음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이나교의 수도승과 수녀, 평신도 남녀들은 행위를 최상의 덕목으로 삼고 비폭력적 행위를 힘써 수련하는 것이다.
자이나교에서는 영혼이 모든 속박을 벗어나는 최종 해방을 열반(Nirvana)이라고 하는데, 열반 이외에는 생명체 존재(animate)가 무생명체 존재에 계속 속박당하게 최종 해방을 방해하는 물질을 카르마(Karma)라고 한다. 카르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매우 미세하고 미묘한 물질이다. 이것은 행동, 말, 생각 등에 명백히 보이는 결과(visable effects)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결과(invisible effects)를 만들어 낸다.
영혼의 행위들은 물질과 결합하여 선과 악의 물질적 구별을 나타내주고 이 세상의 모든 수난의 유래를 설명한다.
자이나교 철학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재난의 원천을 이해하고 그 재난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한 준비로 9범주를 작성하였다. 그 9범주는 육체적. 정신적 상태들과 태도들의 분류로서 구원에 이르기까지 영혼과 연락된다. 구원은 영혼이 복(punya)과 화(papa) 같은 카르마적 세력들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상태이다. 영혼이 방해 세력들의 저지선을 뚫고 열반(Nirvana) 분쇄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F. 자이나교의 신앙 생활
자이나교에서는 어떠한 생명이든지 해하거나 죽이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자이나교 경전에 명시된 불상해(Ahimsa)로서 자인신학(Jain theology)과 자인 윤리(Jain ethics)의 기초이다.
"이것은 지혜의 진수이니 무엇이든지 죽이지 말라"(the Sacred Books of the East: 45: 247). 자이나교에서는 상해(傷害)를 모든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로 여긴다.
다음으로 중요한 윤리는 고행(Tapas: 금식을 포함하는 고행)이다. 이 고행의 목적은 욕망과의 싸움이다. 카르마가 이 욕망이라는 더러운 길로 인간의 영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외면적 참회와 내면적 참회가 있는데 전자에는 금식, 소식(적게 먹는 것), 절식(맛있는 음식을 절제하는 것), 소음(적게 마시는 것), 굴욕(mortification), 고독 등이 있고, 후자에는 예의, 봉사, 소유감 포기, 공부, 묵상, 죄의 회개 등이 있다.
불상해(Ahimsa)의 근본 원리와 진실, 부도(도덕질하지 않음), 정결, 불착(애착을 버리는 것) 4규율을 합해서 5대 서약이 자이나교의 신앙 생활의 내용이다.
자이나교에서는 절기와 순례를 엄격하고도 엄숙하게 지키고 있다. 그 중에는 연말의 금식적 파이주사나(Paijusana)가 대표적인 것이다. 이 절기가 다가오면 자이나교의 평신도들은 8일 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회와 강연회에 참석한다. 금식이 마치는 마지막 날에는 삼반트사리(Samvantsari)라고 부르는 금식, 묵상, 자백의 날이 있다.
자이나교에서는 회개(Pashadha)를 중요시하여, 가장은 월 2회 임시 승려가 되어 고행. 봉헌하게 하고, 이것이 어려우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1회 하게 하지만, 최소한도로 삼반트사리 때 년 1회 회개를 하는 규정이 있다. 대다수의 자이나교도들은 년 1회 회개하는 규정을 따르고 있다.
순레는 행위를 중요시하는 자이나교에서는 절대 필수의 신앙 생활로 규정하고 있다. 사츠룬자야(Satrunjaya), 사메타 시카라(Sameta Sikara) 등의 5대 산을 성산(聖山)으로 정하고 그 산들을 순례해야 한다. 그 중 제1성산인 사트룬자야(Satrunjaya)는 바브나가르(Bhavnagar)로부터 34마일 떨어져 있는데, 제1대 티르탄가라(Tirthankara)인 아디나타(Adinatha)가 참회한 성지이다. 이 산의 높이는 41977피트이고 860여 신당에 11,000여 형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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