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비 스님은 … 1943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1958년 범어사에서 출가했고 1977년 당시 대강백으로 꼽힌 탄허 스님에게서 화엄경의 법을 전수받아 그 강맥(講脈)을 잇고 있다. 통도사 강주, 범어사 강주,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을 지냈다. 현재는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경전구절 한마디에 출가 결심
‘전법’ 평생 원력으로 삼고
염화실·강의로 ‘인불사상’ 강조
“좋은 것은 많이 나눌 수록 좋아”
법공양 저작권 없애기 운동도 진행
화엄경 강설 80권 집필 원력 세워
완간 목표로 매일 10시간 집필 몰두
“법공양이야말로 사람을 위한 길”
봄이 왔는지 매화향이 범어사 담 아래 그득하다. 신라 의상대사가 화엄 사상을 펼치기 위해 창건한 부산 범어사. 이곳에는 〈화엄경〉의 대가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조계종 대강백(大講伯) 무비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화엄경〉을 통해 ‘사람이 곧 부처’ 라는 인불(人佛) 사상을 펼쳐온 무비 스님은 한국불교 사상 처음으로 화엄경 80권 전체를 해설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매일 10시간 이상 밤낮 없는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부처님 법을 전하는 것은 무비 스님의 평생 원력이다. 스님은 2004년부터 인터넷카페 ‘염화실(cafe.daum.net/yumhwasil)’을 운영해 누구나 무비 스님의 인터넷 법문과 동영상뿐 아니라 다양한 불교자료를 퍼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2010년 3월부터 부산 문수선원에서 매월 첫째 주 월요일마다 경전연구모임인 문수경전연구회가 주관하는 화엄산림대법회의 법사를 맡아 화엄경 강의를 이끌어오고 있다. 강의마다 전국 각지에서 스님 200여 명이 범어사로 집결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경전 공부는 내게 있어서 행복”이라는 무비 스님은 시작과 끝이 변함이 없도록 법공양 전법을 평생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불교 대표하는 강백
무비 스님은 “돌이켜 보니 출가 전부터 경전과 인연이 깊었던 것 같다”고 했다.
스님이 14세가 됐을 즈음이었다. 스님이 살던 경상북도 영덕읍 남산동 이웃마을에 불국사 말사였던 덕흥사가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본 절에서 또래의 동자 스님을 만났다. 그때 동자 스님의 한마디가 무비 스님을 출가로 이끌었다.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다.”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의 티끌(먼지)이라는 뜻이다.
듣는 순간 마음에 와 닿은 무비 스님은 바로 출가를 결심했다.
“경전 한 구절을 듣고 발심 출가한 일, 취학 전 서당을 다니면서 한문 공부를 익힌 것, 그리고 출가 후 제방의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며 경전 공부했던 것을 돌아보면 경전과 제 인연이 보통 깊은 게 아니구나 싶습니다.”
17세가 되던 1960년, 무비 스님은 정식으로 출가해 법랍 58년이 된 지금까지 통도사·범어사 강주, 조계종 승가대학장, 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 등을 거치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대강백으로 사부대중에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집필·인터넷강의로 전법활동 활발
스님은 대만 성엄 스님의 〈108 자재어〉를 건넸다. 작년에만 이 책을 4만권 나눠줬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염화실 월간지 및 여러 경전들을 나눠준 양은 10만권이 넘는다. 그동안 스님이 직접 집필한 책들은 모아서 세어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스님의 전법활동은 책에서 멈추지 않는다.
스님이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 ‘염화실’은 회원만 2만 명에 달한다. 카페에 있는 불교 교리나 경전 내용을 읽는데도 몇 년이 걸릴 듯 했다.
무비 스님의 집필활동과 염화실 카페운영을 통한 전법은 2003년 건강 악화를 겪고 나서부터 시작됐다. 척추농양으로 큰 수술을 받은 후 하반신이 마비되는 생사의 고비를 넘긴 스님은 남은 삶은 덤이라 생각하고 살기로 했다. 거듭되는 혼절 속에 죽음을 보고 삶의 참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수술 1년 후, 스님에게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하나 ‘전법’ 뿐이었다. 움직일 수도 없고 외출은 더욱 불가능한 순간 스님이 선택한 것은 인터넷이었다. 컴퓨터를 배우고 방송하는 법을 익히고 녹음하고 새로운 장비와 기술을 익히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법을 전하기 위해 못할 일은 없었다. 하루 접속자만 천명이 넘으며 전문 자료를 위해 도서관이 아닌 염화실을 찾는 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염화실은 경전의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페에는 모두 120여개의 메뉴가 구성돼 있을 만큼 많은 경전을 다양한 각도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놓고 있다. 염화실에 들어가면 항상 20~30명의 회원들이 공부하고 있을 정도로 열의가 높다.
〈화엄경〉 〈능엄경〉 〈법화경〉 〈금강경〉 〈천수경〉 〈유마경〉 〈육조단경〉 등 각종 경전에 대한 무비 스님의 강의는 물론 범어사 강사인 용학 스님의 〈대승기신론〉 등 여러 스님들의 경전 강의도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일타 스님의 〈발심장〉, 고우 스님의 〈선요〉, 통광 스님의 〈선교결〉, 월암 스님의 〈간화정로〉 등 내로라하는 스님들의 강의도 올라와 있고, 〈임제록〉 〈신심명〉 〈증도가〉 등도 상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염화실 방송국 코너에서 〈금강경〉 〈대승찬〉 〈법화경〉 등 그동안 무비 스님이 했던 인터넷 강의 내용이 법문·녹취·자료 형태로 올라와 있다. 도반들의 광장 코너에는 염불과 독경 등 기초교리 외에 한문과 컴퓨터를 공부할 수 있는 메뉴와 회원들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다양한 메뉴가 마련돼 있다.
무비 스님은 “아프고 나서 염화실을 운영하면서 나 스스로 많은 것을 얻었다”며 “염화실은 내 공부의 장이기도 하고, 내가 이해한 불교를 내 방식으로 표현해보면 얼마나 먹혀드는가를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은 숨어서 알뜰히 불교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져 정말 보람 있고 기쁘다”고 말했다.
법공양위한 저작권 없애기 운동 펼쳐
무비 스님은 현재 거동은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아프다고 했다. 추운 날에는 무릎과 발 끝에 찌릿하는 통증 때문에 걷기도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스님에게 육신의 고통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플 수록 더 집중 합니다. 책을 보고 더 공부합니다. 없어질 몸 아껴서 뭐 할 겁니까?”
스님은 공부하고 강의하면 아픈 것도 잊는다고 했다. 진통제가 따로 없다. 공부가 약이었다. 잠시라도 잠에 들면 시간이 아깝다고 했다. 손에서 책을 놓는 법도 없다.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그리고 경전 집필을 위한 시간 말고는 두문불출했다.
하지만 시간을 아끼며 공부와 집필만 하는 중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자리를 내준다.
문수선원에서 사경을 마친 노보살들이 찾아와 무비 스님께 삼배를 올리며 그동안 정성껏 적은 사경책을 보이자, 함박웃음 가득한 얼굴로 칭찬하며 적은 내용에 대해 꼼꼼히 살피는 스님의 모습은 다정함과 따뜻함 그 자체였다.
“저에겐 큰 보람입니다. 불자들이 사경을 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데 칭찬을 아껴 뭐하겠습니까? 부처님 말씀을 따라 적고 공부하는 것 그것 자체가 기적이며 법을 듣고 보는 것이 기적이지요.”
이런 보람 때문에 무비 스님은 공부를 한다고 했다. 더 많은 불자들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나눠 주기 위한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런 까닭에 스님은 ‘법공양을 위한 저작권 없애기 운동’을 펼친다고 했다.
“법공양을 위한 저작권 없애기 운동 중인데 혼자서는 참 어렵습니다. 성엄 스님의 〈108 자재어〉는 대만을 찾아오는 한국인 교화를 위해 만든 것인데, 읽어보니 내용이 너무 좋은 겁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눠 주고 싶은데 판권에 걸릴까 혹시나 싶어 찾아봤죠. 근데 판권에 대한 내용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복사를 해서 나눠줬습니다.”
스님이 건네주었던 〈108 자재어〉의 책 원본 뒷면, 그리고 스님이 복사해 나눠 준 책과 스님의 집필 본에도 ‘이 책의 복사를 환영합니다. 널리 법공양하면 공덕이 무량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법공양에 판권이 무슨 말입니까. 좋은 것은 나눠야 합니다. 복사를 많이 해서 널리 알리도록 해야죠. 판권 소유라는 말은 법공양에는 없어야 합니다.”
대중의 눈높이 맞춘 〈화엄경 강설〉 집필중
이렇게 스님이 법공양을 통해 전법 하는 이유는 사람을 위해서라고 했다. 사람이 부처이기 때문이다. ‘인불(人佛)사상’, 무비 스님이 염화실과 문수선원 강의를 통해 전하고 있는 내용이다.
‘사람이 부처다’라는 말 한마디에 삶이 바뀐 사람도 있다. 한 불자는 4년 전 아기를 낳고 자살충동을 느낄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문수선원을 찾아 사경도 하고 강의도 들었다. 그런데 우울증이 낫기도 전에 둘째가 생긴 걸 알았다. 죽고 싶었다. 원하지 않았던 아기였기에 고민이 많았다. 그때 무비 스님의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말에 그 불자는 뱃 속의 아이도 부처님이란 걸 깨닫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스님의 법문을 듣고 태교를 했다.
현재 무비 스님은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을 집필중이다. 〈화엄경〉 강설을 책으로 자세히 내는 것은 한국 최초의 일이다. 그동안 아무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화엄경〉은 너무나 방대하다고 했다. 80권 목표에 현재 18권이 출간 됐으며 스님은 38권의 원고를 마무리 했다. 80권 완결 후 ‘보현행원품’은 따로 추가 할 예정이라고 했다. 보살행을 설명하는 보현행원품이 〈화엄경〉의 결론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보살행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스님의 전법 원력은 현재 집필 중인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책에도 세세히 드러난다. 한글을 알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쉽게 적었다고 했다. 책의 크기도 한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고 가볍다. 언제 어디서든 가방에 넣어 다니며 편하게 읽도록 한 스님의 배려다. 책 마지막에는 〈화엄경〉 구성표가 있어 정리도 가능하다.
“이 책의 특징은 누구든지 한글만 알면 도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번역도 다 해놓고 한자음도 다 달았습니다. 설명도 하나하나 해뒀구요.”
책 집필 기간을 10년이라 들었다 묻자, 스님이 껄껄 웃었다.
“10이란 수는 완전한 수입니다. 1년도 10년이고 100년도 10년, 12개도 9개도 10이라 합니다. 다 십년인데 한해 한해가 다 십년인 것을…오온을 초월한 세계에서는 그러한데 10년이란 그 의미를 정말 10년이라 받아들였던 겁니까?”
〈화엄경〉의 ‘이십표무진본(以十表無盡本)’, 10이라는 숫자는 다함이 없는 근본, 우주의 조화법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그 내용이 떠올랐다.
법공양 활동 위한 단체 만들기 발원
화엄경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스님은 보살행이라고 했다. 한국 불교의 치료는 보살행 실천만이 답이라 했다.
무비 스님은 현재 한국의 불교에 대해서도 보살행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대승불교라 할 수 없다는 일침도 가했다.
“소승선사(小乘禪師)라는 말을 아십니까? 자신의 해탈에 빠져 안위함과 편안함에 중생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소승 선사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2000여명의 스님들이 결제 중입니다. 결제가 끝나면 스님들은 육환장(六環杖) 짚고 다니며 육바라밀을 행해야 합니다. 중생들에게 회향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 불교의 스님 중에서는 실천을 하는 스님을 만나 보질 못한 거 같습니다. 99%가 내가 보기엔 소승선사, 소승 아라한입니다.”
무비 스님은 보살행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살아 있는 관세음보살이라 불리는 대만 자제 공덕회 증엄 스님을 보십시오. 그래야 합니다. 그 모습이 대승불교의 모습입니다. 테레사 수녀도 보살이며 이태석 신부 같은 분이 보살입니다. 중생이 아프면 가서 치료하고 중생이 배고프면 자신이 굶어도 먹을 것을 줘야 합니다. 보살은 그렇습니다. 불자들은 착각 합니다. 보살이 부처가 되기 전의 단계라고 말입니다. 보살은 부처의 경지를 이미 졸업 한지 오래입니다. 보살이 이 세상에 있는 건 중생들이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지장보살이 문수보살이 부처님이 되려 하셨습니까? 보살행은 대승 불교의 핵심입니다.”
이태석 신부와 테레사 수녀는 불교가 아니라는 기자의 말에 스님은 반문했다.
“그럼 무엇이 불교입니까? 중생이 아파도 수행하고 앉아 있으면 그게 불교입니까? 불교가 무엇입니까?”
무비 스님의 불교는 이미 절 안에 있지 않았다. 중생과 함께 하고 그 가운데서 보살행을 실천 하는 것이 불교라 했다. 한국불교를 위한 치료약은 ‘보살행’이라고 했다.
스님은 앞으로 법공양을 활발하게 펼칠 수 있는 단체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오는 부처님 오신날 즈음부터 35년간 인연을 이어온 모임과 함께 할 계획이다. 법공양을 최우선 활동으로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을 비롯해 무비 스님에게 배운 제자들이 참여한다. 또한 아픈 사람들을 위해 치료비도 지원하고 불교를 빛낸 이들을 칭찬하고 포상도 할 계획이다.
“대승적 차원으로 하는 법공양이 목표입니다. 샘처럼 마르지 않는 부처님의 진리를 담는 일인데 대승적이어야죠. 부처님은 법공양이 그 어떤 공양보다 수승하다고 하셨습니다. 복지도 중요하지만 아프고 병들고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그것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오로지 부처님 법이거든요. 법공양이야말로 불교적인 복지이며 사람을 위한 길입니다. 이 말에 지금까지 뒤돌아 본적 없이 달려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 무비 스님은 월정사 탄허 스님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워 그 강맥(講脈)을 잇고 있다. 1977년월정사에서 열린 탄허 스님의 화엄법회에 참가한 무비 스님과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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