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모든 니까야의 공통된 특징

수선님 2022. 2. 6. 13:15

모든 니까야의 공통된 특징

 

어느 날 양나라의 초대황제인 무제가 달마대사에게 물었습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고 탑을 세우고 사경(寫經)하고 승려들을 출가시키는 일을 수없이 했는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합니다.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달마대사는 왜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했을까요.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의 주석에 따르면 달마대사가 양무제에게 보시한 공덕이 없다고 대답한 것은 보시했다는 ‘아상(我相)’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비슷한 상황에서 부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숫따니빠따(3편 5, Magha sutta)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영취산에 계셨다. 그때 마가라는 브라흐민 청년이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는 부처님께 인사를 드린 후 이렇게 말하였다.

‘고따마 존자님, 저는 시주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보시를 하고 재정적으로 후원을 하며 다른 사람들의 요청에 귀를 잘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나는 올바르게 재물을 벌어서 바르게 벌어들인 이익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줍니다. 고따마 존자님, 저의 이와 같은 보시에 의해 많은 공덕을 쌓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젊은 브라흐민이여, 누구든지 남에게 관대하고, 구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고, 남에게 너그럽게 베풀면 많은 공덕을 얻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브라만 계급의 청년 마가가 부처님에게 자신이 지은 보시 행위가 공덕을 쌓는 것인지 묻는 장면입니다. 만약 달마대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앞에서 본 것처럼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많은 공덕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아 스님은 이에 대하여 부처님의 사유방식은 항상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꿰뚫고, 전혀 수식이 없는 간단명료한 답변을 주셨다고 주석에 써 놓았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질문자의 근기에 따라, 현실적인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는 초기경전에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부처님의 원음이 담겨 있는 초기경전을 ‘니까야’라고 합니다. 니까야란 ‘모음’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빠알리 경전에는 다섯 니까야가 있습니다.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長部)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中部)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 Nikāya, 相應部)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 增支部)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小部)

이 다섯 가지가 그것인데 이 가운데 쿳다까 니까야(소부)를 제외한 4부 니까야는 ≪아함경≫으로 한역(漢譯)되어 있습니다.

 

다섯 니까야와 4 아함경은 구성에 차이가 있는데, 둘을 합쳐 5부4아함(五部四阿含)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쿳다까 니까야(소부)를 제외한 4부 니까야를 아함경과 대비해볼 경우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는 장아함(長阿含)에 해당되고,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는 중아함(中阿含)에,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 Nikāya)는 잡아함(雜阿含)에,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는 증일아함(增一阿含)에 해당되지만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니까야에는 수많은 경(숫따, sutta)이 있는데, 문자적 의미에서 ‘숫따’는 ‘실’이나 ‘줄’이라는 뜻으로, 마치 실로 보석을 꿰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꿰어 묶는다는 뜻입니다.

이 빠알리 니까야는 2500년 전 인도 비구와 비구니 승단, 그리고 그 주변의 많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가르침입니다. 이 니까야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첫째, 부처님의 일생과 가르침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까지 훤하게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삶과 수행, 사상, 견해, 사유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의 가르침이 니까야에는 들어 있습니다.

 

둘째, 부처님의 사유방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사유방식이라든지 중도적인 견해를 잃지 않는 태도, 선명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가르침의 방식, 그리고 사람들을 대할 때 자비로 대하는 것, 진리를 꿰뚫어 보는 바른 통찰력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전형적인 문구의 되풀이, 반복이 수없이 이어집니다. 이것은 구전(口傳)을 하기 쉽도록, 다시 말해서 외우기 쉽도록 하기 위해 정형구가 생겼을 것입니다.

 

넷째, 모든 경들은 전형적인 서론과 결론부분에 똑같은 정형구를 갖습니다. 서론에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가 나오고, 어느 때 부처님이 어디에 계셨다, 그리고 누가 누구와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결론에서 똑같은 정형구로 끝납니다.

예를 들면, 많은 신도님들이 다 아시는 ≪금강경≫의 경우 처음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거룩한 비구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들고 걸식하고자 사위성에 들어가셨다. 성 안에서 차례로 탁발하신 후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공양을 드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라고 시작하고,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설하시고 나니 수보리 장로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와 모든 세상의 천신 인간 아수라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라고 끝맺고 있습니다.

 

다섯째, 가르치신 장소가 다양합니다. 부처님은 당신의 가르침이 필요한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원정사나 죽림정사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숲, 길가, 강변, 산, 회당, 동산, 불을 섬기는 사당, 재가의 집, 마을, 브라흐민 장원, 여러 다른 나라들 등 다양한 곳이 가르침의 무대가 됩니다.

 

여섯째, 설법하신 대상도 다양합니다. 출가 비구와 비구니는 너무나 당연하거니와 국왕, 왕비, 왕자, 대신, 왕족, 부유한 장자, 브라흐민, 다른 교단의 수행자들, 상인, 마을사람, 노인, 젊은이, 촌장은 물론 사회적 약자에 해당되는 여인, 과부, 노예나 창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설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특수한 신분에만 해당되는 특수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일곱째, 많은 경전들의 한결같은 내용은 열반과 수행을 위한 가르침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덟째, 청법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부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느 누구라도 가르침을 청하면 거절하지 않고 간곡하고 자상하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열반하시기 전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입멸이 임박한 부처님에게 수밧다라고 하는 수행자가 가르침을 청하자 아난다가 수밧다를 막았지만,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가르침을 들으려는 사람을 막지 말라고 하시고 그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아홉째, 부처님은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쉬운 가르침부터 차례대로 점차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각자의 지적 수준에 맞추어서 설법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보시’와 ‘지계’와 같은 쉬운 가르침부터 시작하여 이해정도에 따라 점차적으로 어려운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마지막 단계의 가르침을 사성제로 보고 있습니다.

 

열째, 만약 어떤 사람이 특정인에 대한 비난을 부처님께 말씀드리면 부처님은 그 특정인에 대해 무턱대고 나무라지는 않으셨습니다. 남의 비방만 듣고 질책하시는 일은 없었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본인에게 정말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였는지 직접 확인한 후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고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남을 모함하지 않도록 옳고 그른 것을 확실히 하셨습니다.

 

열한번째, 비구 승가대중에게 설법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화를 통해 가르침을 주십니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이해 정도를 짚어보고, 그에 따라 정확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를 통해 부처님의 뛰어난 식견과 통찰력과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열두번째, 부처님의 가르침은 극단에 흐르지 않고 언제나 온건하고 부드럽고 자비가 넘칩니다.

 

니까야는 부처님의 육성과 가장 가까운 가르침입니다. 이 교설을 근간으로 하여 교리가 발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친견할 수 없는 이 시대의 불자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니까야나 ≪아함경≫을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이 글은 2014년 9월 초하루 법문으로, 다음 블로그 진흙속의 연꽃을 운영하시는 이병욱 불자님의 글을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http://blog.daum.net/bolee591/16154822

 

 

 

 

 

 

 

[출처] 모든 니까야의 공통된 특징|작성자 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