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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와 불교의 관계

수선님 2022. 3. 13. 12:42

목차

  1. [개요]
  2. [불법에의 연원]
  3. [종지(宗旨) 법신불 일원상(一圓相)]
  4. [불교와 원불교의 관계]

[개요]

소태산대종사가 1916년(원기1) 대각() 후 《금강경()》을 보고 석가모니불을 성중성()으로 찬탄하고 불법에 근본한 교법제정을 선포하면서 이루어진 연원 관계. 원불교의 종지인 일원상()을 법신불()로 파악하고, 근본 진리인 불법을 계승하며 전통불교의 제도를 혁신하여 시대화ㆍ대중화ㆍ생활화하는 새로운 교단을 창립했다. 이를 영산회상()에 대하여 새 회상으로 표현하며, 따라서 원불교는 새 불교로서 새 종교라 한다.

[불법에의 연원]

원불교를 창립한 소태산은 스스로 발심하여 어떤 스승의 지도 없이 오랜 구도고행 끝에 1916년 4월 28일 큰 깨달음을 얻는데, 이 날을 대각개교절()이라 부른다. 그는 당시의 시국을 살펴 지도강령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내걸어 동학 이후 당시 신종교의 개혁사조를 이어받고, 최조법어를 베풀었는데 후일에 정리된 바를 보면 ‘수신()의 요법’ㆍ‘제가()의 요법’ㆍ‘강자ㆍ약자의 진화상 요법’ㆍ‘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이라 하여 유교적 치세관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한 대각 초기에 소태산은 과거 성자들이 이룬 깨달음의 경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종교의 경전을 열람하다가, 불교의 《금강경》을 보고난 후 “나의 안 바는 옛 성인들이 또한 먼저 알았도다. 모든 경전의 뜻이 대개 적절하여 별로 버릴 바가 적으나 그 중에도 진리의 심천이 없지 아니한 바 그 근본적 진리를 밝히기로는 불법이 제일이라 서가모니불은 진실로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원불교교사》 제1편 제3장)고 찬탄했다.

이어서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모든 일이 은연중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장차 회상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대종경》 서품2)고 불법연원을 선언했다.

소태산은 1919년(원기4) 10월 6일에 저축조합의 이름을 고쳐 ‘불법연구회 기성조합’이라 하고, 모든 기록에도 불법의 명호를 쓰게 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배울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니, 그대들은 먼저 이 불법의 대의를 연구해서 그 진리를 깨치는 데에 노력하라.…근본적 진리를 발견하고 참다운 공부를 하기로 하면 이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불교는 장차 이 나라의 주교()가 될 것이요, 또한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니라”(《원불교교사》 제1편 제5장)고 했다.

그가 이렇게 불교의 장래를 내다 본 것은 불법이 천하의 큰 도라는 관점에 연유하며, 그 이유를 첫째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둘째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셋째 인과의 이치를 들어내고, 넷째 수행의 길을 갖춤으로써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대종경》 서품3). 또 불교는 무상대도()이기 때문에 한량없이 깊고, 한량없이 넓으며, 그 지혜와 능력은 말이나 글로는 다 기록할 수가 없다.

부처님께서는 생멸 없는 이치와 다생겁래에 한없는 생이 있는 이치를 알았으며, 우주만유의 본래이치를 알았으며, 시방세계 일체중생을 악도에서 선도로 구제하는 능력이 있으며, 중생이 받는 고락과 우연히 받는 고락까지 알았으며, 복락을 자유자재하며, 어두운 지혜를 다시 밝게 하며, 탐ㆍ진ㆍ치()에 끌리는 바가 없으며, 육도사생()의 이치를 다 알고, 자해타리()로서 자신의 복락을 삼으며, 우주만유가 다 부처님의 소유요, 시방삼계가 다 부처님의 집이요, 일체중생이 다 부처님의 권속이 된다(《대종경》 서품17)고 했다.

[종지() 법신불 일원상()]

소태산은 대각을 이루고 그 첫 소감을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대종경》 서품1)라고 했다.

그는 일원상을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라 규정하고, 모든 분별이 끊어진 돈공()의 자리이나 여기서 영지()의 광명을 따라 일체 현상이 생겨나고, 묘유()의 조화는 영겁을 통해 은현자재()하는 것이 일원의 진리라 했다(《정전》 일원상의 진리). 여기에 나타난 바와 같이 본원ㆍ심인ㆍ본성을 하나의 체성(), 하나의 근원으로 본 것이며, 돈공의 자리는 불변ㆍ불멸의 세계이고, 이 돈공에서 영지의 광명을 따라 나타나는 현상은 변화하는 인과의 현상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의 체성에 바탕 한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원상을 그는 법신불이라 하고, 원불교인들의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인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천지ㆍ부모ㆍ동포ㆍ법률의 사은과 수양ㆍ연구ㆍ취사의 삼학으로서 신앙과 수행의 강령을 정했으며, 모든 종교의 교지도 이를 통합 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자”(《정전》 교법의 총설)고 했다.

소태산은 28년간 활동하고 1943년(원기28) 열반하게 되는데 이보다 앞서 1941년(원기26)에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라”(《정전》 게송)는 전법게송()을 내리게 된다. 그가 일생동안 가르친 것이 일원의 진리요 그 진리의 핵심을 게송으로 나타낸 것이다. 원불교의 종지로,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일원상’은 불교의 핵심진리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불교와 원불교의 관계]

원불교는 소태산에 의해 새로 창립된 새 불교다. 원불교가 새 불교인 이유를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① 근본진리인 불법의 일치: 일반적으로 불교사상의 핵심을 연기(), 공(), 선() 등으로 집약하고 있으나 이를 두 가지로 크게 나누면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로 요약된다. 불교의 기본사상은 연기의 원리이다. 연기의 원리가 《구사론()》이나 유식학()에서는 인연과 법칙을 중심해서 전개되었으며, 《중론()》 등에서는 공사상으로 전개되었고, 화엄()ㆍ천태() 등에서는 법신사상()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야()의 공사상이 실천적인 면에서 선종()에 수용되어 견성이라는 선불교를 형성했으나 공사상의 기저에는 불생불멸하는 영원성과 인연과 법칙이 깔려 있는 것이다(한종만, 〈불교와 원불교의 관계〉). 이렇게 보면 불교의 근본진리는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진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의 근본적 진리와 소태산이 대각한 일원의 진리는 궁극적 경지에서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태산은 석가모니를 진실로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하고, 그에게 연원을 정했으며, 불법을 주체삼아 회상을 건설한다고 했다.

원불교는 법신불을 일원상으로 상징하여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다. 소태산은 “우리회상에서 일원상을 모시는 것은 과거불가에서 불상을 모시는 것과 같으나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광대무량 하여 능히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했나니 곧 천지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대종경》 교의품3)라고 했다. 불교의 색신신앙을 절대적 진리 자체인 법신신앙으로 돌린 것이다.

불교의 법신론은 색신() 신앙에서부터 다양한 보신불론()을 거쳐 화엄ㆍ천태의 법신론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법신론은 석가모니라는 색신불타를 절대적 진리 자체인 법신으로까지 승화시킨 것이다. 법신은 체성적인 면, 보신과 화신()은 작용적인 면의 의미를 지닌다. 강열한 신앙심을 고취하는 데는 절대적 진리 자체인 체성적인 법신신앙 보다는 작용적인 보신과 화신의 위력신앙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보신과 화신의 위력은 그 바탕인 법신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신과 화신불 신앙은 결국 법신불 신앙에 귀착되는 것이다.

화신불 신앙에 중점을 두다보면 법신불에 대한 신앙심은 약화될 수 있다. 여기에 법신불 신앙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절대적 진리 자체인 법신불 신앙이 일반 민중에게 강렬한 신앙심을 고취하는 데 일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미래의 종교 신앙 방향에 있어서 장엄신앙을 극복하고 절대적 진리 자체인 법신불 신앙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일원상은 곧 청정법신불을 나타낸 바로서 천지ㆍ부모ㆍ동포가 다 법신불의 화신이요, 법률도 또한 법신불의 주신 바라고 소태산은 말했다(《대종경》 교의품9).

소태산은 법신불을 기점으로 하여 보신ㆍ화신의 경지까지를 법신불화 했다.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만유로서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다”(《대종경》 교의품4)고 밝혔다. 우주만유가 다 법신불이라는 것이다. 화엄ㆍ천태에서 우주만유가 법신이라는 원리는 밝혔으나, 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지는 못했다. 불교는 석가모니불이 신앙의 초점이 되기 때문이다.

② 불교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종단: 불교의 틀을 벗어났다고 하는 것은 불교의 제도와 방편의 혁신과 미래를 지향하는 새로운 틀을 짰다는 의미이다. 소태산은 불교에 대한 교설 중에서 대체적으로 ‘불교’와 ‘불법’을 구분하여 사용했다. 불교의 근본진리를 불법으로, 역사적으로 전개되어진 전래 불교를 불교로 구분했다(《대종경》 서품2ㆍ3ㆍ15ㆍ16). 그리고 불법에는 변함이 없으나 역사를 통해 형성되어온 불교에 대하여는 비판과 아울러 강력한 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조선불교혁신론》을 저술하여 과감하게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이를 혁신하여 불법의 시대화ㆍ대중화ㆍ생활화를 주창했다. 부처님의 무상대도에는 변함이 없으나 부분적인 교리와 제도는 이를 혁신하여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편벽된 수행을 원만한 수행으로 돌리자고 강조했다(《대종경》 서품16). 소태산은 불교 사원에서는 염불종은 염불을, 교종은 간경을, 선종은 좌선을, 율종은 계율 지키는 것을 위주로 하여왔다고 지적하고, 각종파의 통합을 주장했다.

불교의 각 종파를 크게 3대별하면, 좌선을 주로 하는 선종, 경전 연마와 관법을 주로 하는 교종, 계율을 중시하는 율종으로 정ㆍ혜ㆍ계() 삼학()으로 종이 분립되어 있으나 소태산은 이 삼학을 병진 하도록 했다. 좌선과 염불로 사물과 잡념에 끌리지 않는 수양력(정)을 얻게 하며, 경전 연마와 화두단련으로 이무애 사무애()하는 연구력(혜)을 얻게 하며, 계율을 지키고 선행을 실천하여 취사력(계)을 얻게 했다. 이 같은 조선불교의 부분신앙, 부분수행에서 벗어나 전체신앙, 전체수행을 강조하고 각 종파불교를 통불교로 개혁 혁신한다고 했다.

소태산은 미래의 불법은 재래와 같은 제도의 불법이 아니라 사농공상을 여의지 아니하고 또는 재가출가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불법이 될 것이며, 부처를 숭배하는 것도 국한된 불상에만 귀의하지 않고 우주만물 허공법계를 다 부처로 알게 되므로 일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아니하고 세상일을 잘하면 그것이 곧 불법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 했다(《대종경》 서품15). 법통 전승에 있어서도 재가출가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대상에 있어서도 처처불상 신앙을 하게하며, 생활과 수도를 일치 시켜야 한다고 했다.

소태산은 불교를 무상대도로 보았고, 석가모니불을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하고 연원을 정한 후에 불법을 주체삼아 회상을 건설할 것이라 했다. 연원을 정한다 함은 하나의 종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같은 내용의 진리를 주체 삼는다는 의미요, 이를 전승하여 더 보완하고 완성시키자는데 뜻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기존의 불교식 제도와 방편으로는 불법을 널리 펼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불교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종단을 창립한 것이다. 소태산이 불교를 무상대도라 규정한 것은 다른 종교들과 비교한 후에 내린 결론이다. 첫째 불법이 진리의 본체를 가장 잘 드러냈다는 점, 둘째 소태산 자신의 깨달음의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다는 점, 셋째 그러한 내용을 통해서 만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불교를 무상대도라 한 것이다.

③ 새 불교 새 종교라는 의미: 새 불교라는 의미는 무상대도인 불법에 기초하나 제도와 방편은 역사적 종교인 불교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종단을 창설했다는 의미이다. 뿐만 아니라 원불교는 과거 모든 종교의 장점도 이를 통합 활용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새 종교라 하는 것이다. 구태여 그 비유를 들자면 브라만교와 불교의 관계, 천주교와 개신교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불교는 B.C. 6세기경 인도에서 발생되면서 그 이전의 전통사상의 영향을 크게 입었다. ‘업보ㆍ윤회’와 ‘수행ㆍ해탈’의 사상이다. 인도에서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생각은 불교보다 수백년 전인 베다시대부터 브라만시대에 걸쳐서 일관되어진 사상이었다. 그리하여 우빠니샤드 시대에 윤회설이 확립되었다. 이 사상이 불교에 수용되어진 것이다. 특히 연기사상과 연결되어 업의 생성과 함장() 그리고 이의 발현 과정에 따른 인과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갖가지 연기설을 전개시켰다.

우빠니샤드 철학에서는 사무색정()의 선정공부를 한다. 석가모니가 출가해서 브라만식 선정을 했고, 사무색정 중에서 최고 경지인 비상비비상처정()에 까지 이르렀다. 이와 같이 불교 이전에 윤회설과 좌선법이 있었고 불교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티베트의 라마교는 이름이 다르다고 하여 불교가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며, 남방불교 입장에서도 북방의 대승불교는 훗날에 일어났으니 불교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불교의 교명과 관련하여 정산종사는 손님이 묻는 원()에 대하여 “원은 형이상으로 말하면 언어와 명상이 끊어진 자리라 무엇으로써 이를 형용할 수 없으나, 형이하로써 말하면 우주 만유가 다 이 원으로써 표현되어 있으니, 이는 곧 만법의 근원인 동시에 또한 만법의 실재인지라, 그러므로 이 천지 안에 있는 모든 교법이 비록 천만 가지로 말은 달리 하나 그 실에 있어서는 원 이외에는 다시 한 법도 없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손님이 그렇다면 원도()라고 이름하는 것이 모든 교법을 포용하면서 불교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벗어나는데도 좋지 않은가라는 이어진 질문에 대해, “불()은 곧 깨닫는다는 말씀이요 또는 마음이라는 뜻이니, 원의 진리가 아무리 원만하여 만법을 다 포함했다 할지라도 깨닫는 마음이 없으면 이는 다만 빈 이치에 불과한 것이라, 그러므로 원불() 두 글자는 원래 둘이 아닌 진리로서 서로 떠나지 못할 관계가 있으며, 또는 과거의 불교로 말할지라도 근본 교의가 일부에 치우치는 것은 아니건마는 그 제도 여하에 따라 세상 사람들이 자연 일부의 교의로 오인한 것이니 그 제도를 새로이 하면 불법의 정체가 진리 그대로 원만하게 세상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정산종사법어》 경륜편1)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