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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심화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김병권

수선님 2022. 6. 5. 13:28

불평등 심화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김병권

특집 | 위기의 지구촌, 어떻게 구할 것인가

 

 

1. 서론-왜 불평등이 문제인가?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제나 중요한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었고, 그래서 경제사회정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의 불평등은 이미 일상화된 ‘만성적 질병’ 수준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불평등이 시대의 화두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2013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이라는 두꺼운 책을 통해 불평등을 세계적 이슈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개되었던 사회경제적 상황 때문이었다. 서민들의 소득은 정체해 있는 반면 상위 일부 계층으로 소득이 집중되는 불평등이 1980년대 이후 주요 선진국에서 가속화되었고, 소득이 정체된 서민들이 ‘빚을 내서’ 부동산시장에 뛰어든 결과 부동산 거품 붕괴→가계 파산→은행 파산→경제 마비로 이어진 경제위기가 바로 2008년 금융위기다. 

사실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자본주의적 경쟁과 성장의 동기로서 용인되었다. 이를 뒷받침하던 이론이 불평등에 관한 쿠츠네츠 곡선이었다. 국내총생산(GDP)개념을 만들어서 국민경제 성장을 계량화시키는 데 기여했던 경제학자 사이먼 쿠츠네츠는, 1950년대 당시 20세기 전반기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경제발전 초기에는 경제성장에 따라서 불평등이 악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후 경제발전이 중진국을 넘어 더욱 이뤄지면서 해소되는 경향이 있다고 확인했다. 이후 정책 전문가들은, 초기 경제발전 단계에서 비록 불평등이 발생하더라도 이는 경제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비용이고,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을 향해 경제발전이 지속되면 불평등은 줄어들 것이므로 결국 경제성장이 불평등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과거 한국사회에서 유행했던 先선장-後분배 논리도 유사한 맥락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결국 불평등을 자연스럽게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쿠츠네츠 곡선은 토마 피케티와 최근 불평등 연구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졌다. 1950년대까지의 서구 경제 자료를 보면 쿠츠네츠 얘기가 맞지만,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데이터를 연장해서 분석하면,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불평등이 다시 심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이 한참 진행된 선진국에서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 사회경제적 이동성 모든 측면에서 최근 40년 동안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일부에는 세계적 차원에서는 불평등이 줄어들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중국과 인도를 제외하면 세계적 범위에서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처럼 경제성장이 불평등을 완화시켜주는 것이 전혀 아니라면, 또한 불평등이 최근 세계 곳곳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이라면, 불평등을 위한 별도의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편,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사실 불평등 쿠츠네츠 곡선과 비슷한 사고방식이 유행했다. 쿠츠네츠 불평등 곡선을 응용해서 1970년대 이후 ‘쿠츠네츠 환경 커브’라는 것을 만들었던 것이다. 경제발전 초기에는 고도성장을 위해 환경악화를 감수하게 되지만, 경제발전이 일정 단계 이후를 넘어가면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 이후 밝혀졌다. 지금 현실을 보더라도 전 세계가 더 높은 성장을 추구하면서 기후위기라는 초유의 글로벌 위기를 맞게 되었지만, 이후 성장의 추이가 기후위기를 해소시켜줄 것이라는 어떤 암시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탈성장을 주장하는 일군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경제정책의 목표를 GDP 성장률에만 두는 ‘성장주의(growthism)’ 중독 때문에 기후위기가 악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한발 더 나아가서 불평등과 기후위기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서 각 국가 안에서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배출의 크기는 주로 소득수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함께 연구했던 경제학자 뤼카 샹셀은 경제적 불평등이 대체로 환경적 불평등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프랑스 기준으로 상위 20% 부유층이 해당 국가 온실가스 배출의 4분의 3의 책임이 있고, 하위 3분의 2는 고작 20%밖에 책임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소득과 부를 많이 누린 사람들이 기후위기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평등 해결은 그 자체만이 아니라 기후위기 해결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었다. 

요약하면, 2008년 이후 특히 사회적 난제로 주목을 받고 있는 불평등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경제성장 과정의 불가피한 산물이 더 이상 아니다. 또한 일정하게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기능을 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새로운 난제인 기후위기와도 긴밀하게 연계되어 상호작용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불평등은 독립적인 공공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별도의 사회적 도전과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이 글에서는 우선 세계적인 흐름에서 본 불평등 추이를 간단히 확인한 후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의 구체적 실정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분석하겠다. 다음으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약간의 정책을 제안할 것인데 그에 앞서 불평등 해소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험난한 과정인지 짚어본다. 이어서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최고임금제’를 제안하고, 자산불평등 해소를 위해 새로운 수준의 토지공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세대로 이어지는 자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정책대안으로 ‘청년기초자산제’를 예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2. 심화되는 불평등 현황과 문제점

1) 최근 불평등의 세계적 추이

21세기 글로벌 최대 이슈 중 하나는 경제 규모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정보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의 놀라운 혁신에도 불구하고, 불평등과 고용불안이 세기적인 수준에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현재 주요 선진국들에서 불평등은 소득 차원뿐 아니라 자산불평등에 이르는 모든 차원에서 심각해지고 있고, 더 나아가 능력주의의 역기능이 나타나면서 교육 불평등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기존의 복지국가 정책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현재의 불평등 수준은 지난 20세기 초반 이후 가장 심한 상태이어서 문자 그대로 세기적인 수준으로 심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한국 역시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로 가장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특히 1929년 대공황 이후에는 불평등이 급격히 완화되었던 것과 달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도 불평등 심화 행진은 줄어들지 않았다. 2008년 이후 세계경제는 일시적으로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로 급한 불을 껐지만, 이후 긴축정책이 수반되면서 장기적인 실물경제 약화→자산 거품 재연→노동시장 불안정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대침체(Great Recession)다. 그 결과 고용 불안정 심화→소득불평등 심화→자산불평등 심화→능력주의적 평등화 작동 중지→복지국가 처방효력 약화의 악순환이 계속되었고 그 끝점이었던 2020년 초반에 코로나19 재난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세기적 수준의 불평등 심화는 경제 사회적 문제로 국한되지 않았다. 시차를 두고 서구의 주요국가들에서 우익 포퓰리즘 득세 등 정치적 불안정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라는 저서에서 2차대전 이후 지난 70여 년 동안 주요국가 선거를 분석한 결과, 불평등의 심화와 정당들의 지지층 변화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민주당이나 유럽의 사회민주당 등 좌파 정당들이, 2차대전 후 1970년대까지는 대체로 저학력층 서민이나 노동자들을 대변했고, 서민과 노동자들도 대체로 이들에게 투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로 들어오면서 최근까지, 이들 좌파 정당들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주로 고학력 엘리트들로 변해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우파 정당들은 대개 소수 부자 엘리트들을 대변하고(상인 우파), 좌파 정당들은 대개 고학력 엘리트들을 대변하여(브라만 좌파), 결국 서민과 노동자 시민들을 아무도 대변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권이 불평등으로 힘들어하는 노동자와 서민 계층과 체계적으로 분리되면서 나타난 결과이고, 이것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기존 유력정당들이 좌우를 불문하고 모두 상위 20% 이내의 ‘엘리트’들을 대변하고 있다 보니, 아무도 하위 80%를 대변해서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정치적 지향을 보이지도 조직적 의지를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그 결과 하위 80% 시민들이 기존의 정치체제 전반을 불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반엘리트주의를 내세우고, 외국인 배타주의, 우월적 정체성주의를 호소하는 ‘우익 포퓰리즘’이라는 정치세력을 등장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트럼프의 등장에서 의회난입에 이르는 4년간의 정치 혼란은 그렇게 흔한 일은 분명 아니었다. 유럽에서 프랑스 사회당의 사실상 붕괴를 포함한 극우 포퓰리즘의 등장 역시 정치사적으로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부를 만했다. 이들 정치적인 사건들의 배경에는 불평등이 있다. 

 

2) 소득 불평등 심화와 소득주도 성장의 좌절

불평등 문제에서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영역이 소득불평등이다. 소득불평등은 특히 선진국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1980년대부터 확대되기 시작했고,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다양한 원인 진단이 있었지만, 대체로 세 가지 차원에서 짚어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은 1980년대부터,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부터 노동소득이 생산성에 비례해 오르지 않게 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2차대전 이후부터 한동안은 노동소득이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과 나란히 증가했다. 

하지만 1980년대 어느 시점 이후부터 생산성 향상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소득은 정체되기 시작한다. 이는 반대로 자본소득이 생산성 향상 이상으로 증가해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소득불평등, 특히 시장소득 불평등 확대의 첫째 요인이다. 이런 경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바뀌지 않고 계속된다. 

그렇다면 시장소득 측면에서 노동소득이 생산성과 동반해서 상승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유력한 설명의 하나는 노동자의 협상력 약화다. 단적인 지표로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기준으로 약 25% 이상 되었던 노동조합 조직률이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10% 수준에 머물게 된 데서 드러난다. 한국 역시 19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 조직률이 급증했던 1990년대 초반이 시장소득 지니계수가 가장 낮았지만, 이후 노동조합 조직률 약화와 지니계수 상승이 함께 움직였다. 이는 넓게 보아 노동조합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약화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단체활동이 활발하던 시기는 소득 평등화 정도가 가장 높았던 2차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였다. 단체활동과 이웃들과의 친교가 활발했던 시기가 평등화 시기와 겹치는 것이다.

한편, 재분배로 인한 가처분소득을 감안했을 때에도 소득불평등이 악화된 이유로 지목되는 것은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방향으로 조세 시스템이 변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한때 90%에 가까운 수준에 이르렀던 소득세 최고세율은 1980년대 급락하기 시작해서 현재는 대체로 30~50% 수준까지 낮아졌고, 기업의 법인세 역시 마찬가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부유층의 소득은 계속 상승했지만, 세금으로는 제한되게 회수되었고, 저소득층의 재분배는 약화되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되었던 정책이 경제학자 미하일 칼레츠키의 경제사상을 이어받은 포스트 케인지언(후기 케인즈학파)들이 내놓은 ‘소득주도성장’이었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불평등 심화와 장기침체에 대응하여, 단기적으로는 부족한 수요를 채우고 경기회복의 탄력을 붙이기 위해서, 임금과 생산성 향상의 연결고리를 다시 회복함으로써 소득과 수요창출 과정을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공정성장, 혁신성장과 함께 주요 정책으로 채택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당시 정책 책임을 맡았던 홍장표 경제수석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① 근로소득/ 생활소득 증진(최저임금, 생활임금, 비정규직차별 철폐, 노사민정 사회협약, 생활소득-주거비, 통신비, 가계부채 부담 경감), ② 자본소득세 강화(법인세 최고세율 원상회복, 대기업 비과세 감면 혜택 축소, 고소득 자영업자 세율 포착 제고, 소득세 누진성 강화), ③ 일자리 창출과 고용질 개선(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청년 취업 지원, 중소기업 좋은 일자리 만들기), ④ 공생과 협동의 산업생태계(하도급 거래 공정화, 대중소기업 성과배분제도 개혁, 중소기업/소상공인 사업 보호), ⑤ 기업의 사회적 책임(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지수 평가 및 활용).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득주도성장은 초기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국한되면서 자영업과 노동자의 갈등을 유발시키는 모양새가 되었고,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면서 사실상 중도에 포기되었다. 그 보완책으로 근로장려세제(EITC)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수습된다. 

 

지난 10년간의 소득불평등 추이를 살펴보면, 지니계수 측면으로는 일정하게 개선되는 모습이 관찰된다. 일단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2013년까지 다소 완화되는 경향으로 보이다가 다시 정체 상태로 들어갔고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정부의 재분배 정책이 반영된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다소 개선이 있었는데, 그조차도 충분하지는 않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 자료에 따를 때 상위 10%의 소득 비중 변화로 보면 한국은 44.9%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매우 불평등한 국가다.

 

3) 자산불평등 심화 

다음으로 자산불평등 상황을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근로장려세제 확대 등에 의한 직간접적 효과 등으로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자산불평등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는 지난 10여 년 동안 大-침체국면에서 세계적으로 재정지출이 아니라 통화정책(초저금리와 양적 완화)을 중심으로 경기부양을 한 결과, 실물경제가 아니라 자산시장으로 자금이 대거 유입됨으로써 자산가격 폭등과 자산불평등 심화시킨 탓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금융시장의 무책임한 대출을 기반으로 한 부동산 거품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음에도, 부동산 거품은 글로벌 수준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2008년 이후 경기회복이 확대재정정책에 기반한 실물경제 회복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시중은행의 신용팽창→자산시장으로의 재유입 순환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수준에서 부동산과 주식, 심지어 가상화폐 시장까지 자산 거품이 확대되었다. 한국은 증권시장의 거품은 최근에 불거졌지만, 부동산시장 거품은 이미 2015년부터 시작되었고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리고 최근 1년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부동산/주식/가상화폐 등 자산시장 모든 분야에서 거품이 확대되었다.

특히 한국은 부동산 중심의 자산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토지개혁의 성과로 한때 자산 평등화의 모범국가였던 한국은,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 자료에 따르면 경제규모(국민순소득(NNI) 기준) 대비 전체 순자산 크기는 9.18배로서, 세계에서 자산에 의한 불평등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는 나라에 속한다. 한마디로 국민소득보다 자산규모가 심각하게 커지게 되면 ‘땀보다 땅이 돈을 버는’ 사회경제 구조가 뿌리내리게 된다.

자산 가운데에서도 토지자산의 비율이 매우 높은데, 2018년과 2019년 한국의 GDP 대비 토지자산의 배율은 각각 4.3, 4.6으로 16개국 가운데 압도적인 1위(2019년 기준으로 8,767조 원)였다. 이 규모는 “영국의 1.5배, 독일의 2.9배 수준이고, 인구밀도가 한국과 비슷한 네덜란드의 2.4배 수준이다. 핀란드, 멕시코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은 핀란드의 5배, 멕시코의 15배 수준”에 이른다.

앞서 말한 대로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소득주도성장 등의 요인으로 소득 지니계수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자산 지니계수는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를 때 2017년 0.584에서 2020년 0.602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부동산 자산불평등은 전체 자산불평등보다 더욱 심한데, 개인소유 토지자산 불평등이 2018년은 0.809, 2019년은 0.813으로 추정되었다. 문재인 정부 정책이 실질적으로 ‘부동산 주도 불평등 성장’으로 귀결된 것이다. 자산불평등은 곧바로 소득불평등으로 연결된다. 잠재자본이득과 귀속임대소득의 합으로 정의되는 부동산소득이 소득 지니계수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2008년에 30.4%였던 부동산소득의 불평등 기여도가 2018년에 37.5%까지 올라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완화하려면, 부동산 개혁을 핵심으로 하는 자산불평등 해소가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2020년 이후 30대 중반 이상의 부동산 투기, 20~30대 직장인의 주식 투기, 20대를 중심으로 한 코인 투기 등 모든 사회계층에서 투기 열풍이 거세다. 2020년 한 해 동안 부동산 연간 15%, 주식 연간 2배, 코인 연간 15배가 상승했다. 주식투자자들이 약 1천만 명(계좌 수 4천만 계좌), 코인 투자자들은 약 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갈수록 벌어지는 자산불평등 심화로 인해 자산을 가지고 있지 못한 계층들이 무리하게 빚을 얻어 자산 투기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거품붕괴와 가계 파산, 경기 침체로 이어질 위험성을 높이게 된다. 


3. 불평등 해소를 위한 몇 가지 방안

1) 불평등의 역사적 성찰과 교훈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현재 직면한 불평등 해소를 몇 가지 시장실패 교정수단이나, 흔히들 말하는 ‘포용정책’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번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면 절대로 간단한 몇 가지 정책으로 이를 치유할 수 없다고 주장한 학자가 있다. 역사학자 발터 샤이델(Walter Scheidel)은 2017년에 쓴 책 《불평등의 역사(The Great Leveler: Violence and the History of Inequality form the Stone Age to the Twenty-First Century)》를 통해서 불평등이 인류사의 최대 난제임을 파헤친다. 그는 우선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면서 쏟아내는 대부분의 정책은 실제 역사에서 어떤 식으로 검증되었는지 잘 살펴보지 않은, “역사 인식 결핍증을 앓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요즘 불평등 완화 대책이라고 쏟아지는 것들과 같은 방식의 “주변적 개혁으로는 오늘날 시장소득과 부의 분배 추세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아주 확고하게 못 박고 있다.

불평등의 역사적 경험을 성찰한 그의 종합적 결론은, “오직 특정 유형의 폭력만이 줄기차게 불평등을 끌어내렸다”는 것이고, 그중 4가지 핵심 폭력 기제로 압축되는 요인만이 심화되는 불평등을 무너뜨렸다고 정리한다, 즉, “가장 강력한 평준화는 예외 없이 가장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 네 가지 다른 종류의 격렬한 분출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어 왔다. 요컨대 대중 동원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붕괴, 그리고 치명적 대 유행병이 그것이다.” 또한 그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재난과 같은 거시경제적 위기가 평등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금융위기는 역효과를 미치는 경향까지 있다고 결론지으면서, “경제위기는 심각한 충격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폭력적 압력 없이는 혼자 힘으로 불평등을 줄이지” 못한다고 결론 맺는다.

더 어두운 진단은 ‘민주주의’ 역시 불평등을 줄일 수 없다는 그의 결론이다. 그는 “민주주의가 시장이나 가처분소득 불균형에 미친 일관된 효과가 없다”고 정리하면서, 100여 년 전 미국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D. Brandeis)가 한 얘기, “우리는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채택할 수도 있고, 소수의 손에 막대한 부가 집중되게 할 수도 있지만, 둘 다 가질 수는 없다”는 말은 역사에서 틀린 것으로 판명 났다고 탄식한다. 민주주의 아래에서도 불평등은 잘도 번성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전망한다. “전통적인 격렬한 평준화 동력은 현재 휴면기에 들었고, 가까운 미래에 귀환할 가능성은 낮다. 그만큼 강력한 대안적 평등화 기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한데, 선진국의 경우 1929년 대공황 이후 미국의 뉴딜 시기였다. 그는 “대공황은 미국의 경제적 불균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유일한 거시경제적 위기”였는데 물론 미국에 국한되었고, 이어진 2차대전이 없었다면 불평등이 다시 커졌을지도 모른다는 단서까지 달았다. 또 하나의 특이한 예외는 동아시아의 토지개혁이다. 특히 샤이델은 유독 한국의 토지개혁에 대해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전체 토지의 절반이 조금 넘는 땅은 주인이 바뀌었다. 재분배 효과는 지대했다. 지주는 소득의 80%를 잃은 반면, 농촌 가구의 하위 80%는 20~30%를 얻었다. 1956년 가장 부유한 6%의 지주는 겨우 전체 토지의 18%만을 갖고 있었고, 소작인 비율은 49%에서 7%로 떨어졌다. 1945년 0.72 또는 0.73으로 높았던 토지 소유 지니계수는 0.30대까지 하락했다.” “많은 토지를 소유한 엘리트가 완전히 소멸되고, 훗날 교육에 대한 폭넓은 접근기회로 지속된 고도의 평등한 국가가 탄생했다.”

요약하면,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한 사회에서 불평등이 한번 악화되면 이를 바로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이다. 소소한 시장실패 교정이나 약간의 재분배 개선만으로는 불평등악화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심화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개혁 차원에서 종합적인 대처가 필요할 수 있다.

 

2) 소득불평등을 해소를 위한 노력, 최고임금제

시장 안에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시장 참여자들의 소득에서 아랫부분은 좀 더 올리고, 너무 위로 치솟은 부분은 아래로 내려서 개인 간 능력이나 특성에 따른 격차를 크지 않게 가져가는 것이다. 아래를 올리는 것이 최저임금제도라면 위를 깎아 내리는 것이 최고임금제도이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 정책 구현 과정에서의 각종 오류로 인해 이제 다시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올려 격차를 줄이자는 얘기를 할 에너지 자체가 상당히 소진된 상황에서, 반대로 최고임금을 내리자는 정책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최고임금제도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정책이다. 하지만 2014년 미국 북서부 연안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인 포틀랜드시에서는, “경영자들에게 과도한 연봉을 주는 회사들의 법인세율을 올리는” 법률을 채택했다고 한다. 포틀랜드 새 법령에 따르면, 평소 시 당국에 법인세 10만 달러를 내던 회사가 2018년부터 경영자와 중간직원 간 급여 비율을 100배 초과하면 11만 달러를, 250배를 넘기면 12만5천 달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할 기업들로는 세계적 소프트웨어 회사 오라클, 하니웰, GE를 포함하여 500개 이상의 기업이 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불평등은 마찬가지로 노동소득의 심각한 격차 확대로 나타났다. 2020년 1월 정의당이 매출 순위 50대 대기업을 뽑아서 분석해 본 결과, 등기 임원의 평균 연봉은 13억 2천만 원이었다. 최저임금의 무려 7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중에서 주요 그룹의 핵심 계열사는 현대자동차 158배, GS칼텍스 138배, LG전자 121배, SK하이닉스 94배로 컸고, 국책은행은 기업은행 18배, 산업은행 17배였으며, 공기업은 한국전력 9배, 한국가스공사 9배, LH 9배였다. 한국의 임금소득 격차도 도저히 양해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벌어졌음을 대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소득 격차에 대해 이미 지자체에서부터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부산, 경기, 창원, 전북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공기관 최고경영자의 보수를 최저임금의 7배 이내로 제한하는 조례를 중앙정부의 입법 없이 자율적으로 만들어서 시행하는 중이다. 지자체가 조례로 통과시킨 공공기관 최고임금 7배 제한뿐 아니라, 국회의원 보수 5배 제한, 그리고 민간기업 최고임금 30배 제한 등으로 확대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2020년 총선공약으로 ‘최고임금법’을 제안한 정의당은 아무리 성과와 능력에 따라 임금을 받는 시장경제라 하더라도 수백 배에 달하는 임금 격차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수준이며 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식 밖의 임금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에서는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성장도 사회통합도 보장할 수 없다고 공약에 명시하고 있다. 공약자료집에 따르면 “점점 심각해지는 불평등 문제로 인해 대한민국이 미래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청년들은 N포 세대를 넘어 스스로를 질식세대, 실신세대로까지 부르며 좌절하고 있다. 점점 심각해지는 불평등 문제를 방치하고서는 청년들에게 미래를 말할 수 없다.”면서 최고임금제가 청년의 사회진출 이후에 다양한 기회의 창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입법 형식이 아니라 조세제도를 통해 최고임금 상한을 두는 방안을 경제학자 주크먼과 사에즈가 제안했는데 이 역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최고 부자들에게 부유세와 자본소득세를 배합해서 ‘압류에 가까운 수준’까지 최고 세율(대체로 75%)을 부과하자고 주장한다. 심지어 세금이 너무 높아서 돈 버는 것을 포기하고, 그래서 결국 세금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말이다. 아니 오히려 그걸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확실히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지를 위한 재원 마련 이전에, 심각한 불평등을 억제할 강력한 수단으로서 세금을 말하는 것이다. 입법의 형식이든 아니면 과세의 방식이든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아래를 높이는 것이 부담된다면, 위를 깎는 것을 적극 고려해볼 때다. 

 

3) 자산불평등 해소를 위한 노력, 토지공개념과 기초자산제

불평등이 사회적 최고 과제가 되고 있고, ‘갓물주’ ‘땀보다 땅’ ‘영끌’ 같은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 ‘투기억제’ 정도 수준에서 정책적 대응이 그칠 수는 없게 되었다. 특히 고공행진을 하는 부동산 가격은 청년을 포함한 서민들의 주거권을 자체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전체 국토 차원에서 보면 부동산이 수도권의 집중과 지역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측면에서도 자산불평등은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 부동산 불평등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해가는 세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청년의 삶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가장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미래세대를 위한 핵심과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할까? 이 문제를 뿌리에서부터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최근 ‘토지공개념’을 확실히 부활시키자는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사실 토지공개념은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검토되어 왔고, 심지어 2018년 개헌안에 포함되기도 했다. 비록 폐기되었지만 개헌안에서 제128조 2항을 신설하여,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법률로써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명확히 ‘토지의 공공성’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만’이라는 엄격한 단서를 사용했지만, 제한을 두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토지공개념은 여러 전통이 있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주장한 것을 확인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폴라니는 노동, 화폐와 함께 토지가 본래 상품화될 수 없는 것인데 상품화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토지란 단지 자연의 다른 이름일 뿐인데, 자연은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토지, 노동, 화폐는 분명 상품이 아니다. 매매되는 것들은 모두 판매를 위해 생산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가정은 이 세 가지에 관한 한 결코 적용될 수 없다.”

그는 또한 토지의 시장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토지의 탈시장화, 공유자원화를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토지는 인간존재에 대해 절대적 기능들을 여러 가지 수행해주고 있으며, 경제적 기능이란 그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토지는 인간의 삶에 안정성을 가져다준다. 토지는 인간 삶의 터전이며, 그의 육체적 안전의 조건이며, 계절도 아름다운 경치도 모두 거기에 담겨 있다. 토지가 없이 삶을 영위한다는 말은 차라리 손발이 없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상상하는 것보다 더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 토지를 인간에서 떼어내고 사회 전체를 부동산시장의 작동조건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라는 유토피아적 아이디어의 절대적 핵심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자산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특별히 토지공개념을 새롭게 개념화시킬 필요가 있다. 우선 국토는 국민 전체에 속하며, 부동산은 원칙적으로 모두의 것이라는 기본정신에서 토지공개념을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공공재정을 투입하여 국가보유 토지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가야 하고, 개인은 꼭 필요한 이상을 소유할 경우 다른 사회구성원의 접근기회를 제한하므로 무거운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또한 토지와 부동산은 세대 간에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부동산 정책은 수도권 편중을 억제하고 국토 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토지와 부동산은 물과 대기 등 다른 자연자원과 마찬가지로 기후위기를 막고 생태환경을 지키는 원칙과 부합하게 활용되어야 한다. 이렇게 새로운 토지공개념은 토지 투기 억제를 넘어서, 부동산 불평등을 줄일 수 있도록 공공토지 확대, 국민 주거권 보장, 국토 균형발전, 세대 정의, 기후위기 대처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정책 지평을 확대시켜야 한다. 

자산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 새로운 방식의 토지공개념 도입과 함께 고려해야 할 정책이 ‘청년기초자산제도’이다. 기본자산제도라고도 부르는 이 제도는 기본소득제도와 함께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토마 피케티가 2019년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and Ideology)》에서 강조해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누진적 부유세와 상속세로 걷은 국민소득의 5%를 재원으로 만 25세가 된 청년들에게 성인 개인 자산 평균(20만 유로)의 60%인 12만 유로(약 1억 6천만 원)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보편자본(Universal Capital Endowment)’이라고 이름 지었다. 물론 이 금액은 저자 스스로가 엄밀하게 계산한 것은 아니고 일종의 실험적 사례라고 선을 긋기는 했지만, 피케티가 고려한 자산불평등 해소 방안으로서의 기초자산은 이전 제안자들에 비해 훨씬 큰 규모임에는 틀림없다. 

피케티 계산을 우리나라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국민총소득이 약 1,900조 원(2018년 기준)이므로, 이의 5%면 약 95조 원을 기초자산으로 분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럴 경우 현재 만 20세(약 60만 명)에게 프랑스와 유사한 규모인 약 1억 6천만 원의 지급이 가능해진다. 참고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를 때, 순자산 기준으로 (개인이 아니라) 가구 평균 자산(2016년 기준)은 약 3억 원 정도가 되므로 가구 순자산 기준 50%(1억 5천만 원)와 거의 동일하게 되는 셈이 된다. 아무튼 피케티의 제안은 이제까지 나온 기초자산 제안 중에서 가장 과감한 것이다.

청년기초자산제는 당초 정의당이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에서 주요공약으로 내세운 바가 있는데, 2021년 현재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들이 공약으로 앞다퉈 다양한 버전을 제안하는가 하면, 아예 입법 발의까지 되고 있다. 우선 지난 4 · 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청년 무이자 대출’ 성격의 청년출발자산을 공약으로 제안했다. 그는 청년출발자산은 서울에 거주하는 19세부터 29세에 해당하는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에게 단 한 번에 한해 최대 5천만 원을 지원한다. 혜택을 받은 청년은 30세부터 10년간 원금만 갚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일찍이 2020년부터 ‘국민기본자산제’라는 이름의 정책을 가다듬어 온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모든 신생아에게 3천만 원을 지급하고 이를 공공기관에 신탁한 뒤, 스무 살이 되는 해에 5천만 원 이상의 자산을 모든 청년이 수급받게 하자는 영국식 아동신탁기금의 유사 버전을 제안해놓고 있다. 또한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정세균 전 총리 역시 사회 초년생에게 1억 원씩 지급하는 ‘미래씨앗통장’을 공약하고 있는데, 그가 말하는 ‘사회적 상속제도’는 출생 때부터 국가가 20년 동안 돈을 적립해 스무 살이 되는 사회 초년생에게 1억 원을 지급하는 ‘미래씨앗통장’ 정책이다. 그는 상속세가 1년에 10조 원 정도 된다면서 이를 차곡차곡 쌓아가면 20년쯤 뒤에는 350~400조 원쯤이 돼 사회적 상속제도를 정착할 수 있는 재원이 충분히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지난 6월, ‘청년기본자산지원에 관한 법률안’(청년기본자산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출생 시점부터 청소년기까지 월 20만 원을 국가 적립하고, 적립금 통합기금 운용을 통해 성인(18세)이 되었을 때 약 6,000만 원의 기본자산을 마련해준다. 다만 자산의 사용을 고등교육, 주거, 창업 등의 용도로 한정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비추어볼 때 현재 기초자산제(또는 기본자산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공감대가 있다고 판단된다. 세부적인 정책 설계로 논의를 좁혀가야 할 시점이다. 


4. 맺는말

지금까지 다양한 불평등 해소 방안들 가운데에서, 소득불평등 해소 방안의 하나로 ‘최고임금제’에 대해 살펴보고, 자산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토지공개념과 기초자산제에 대해 간단히 확인해보았다. 당연하게도 현재의 심각한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이 이 정도 정책만으로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 최근 저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2차대전 이후 1952년에 시작하여 1976년에 기본법으로 정비된 독일식 공동결정제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에서 제도화된 3분의 1 이사회 노동자 참여권리를 중요하게 불평등 해소방안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나아가 그는 2020년대 시점에서 자신의 공동결정제 모델을 더욱 전진적으로 이렇게 제안한다. 첫째 “영세 기업은 물론 모든 민간기업 이사회 내에서 의결권 절반을 임금 노동자들이 갖는 공동관리”를 하자. 둘째 “임금 노동자들은 자사의 주식을 취득함으로써 절반 의결권에 더해서 다수파가 될 수도 있다.”

피케티가 제안한 공동결정제도는 물론이고, 최고임금제도나 기초자산제도 역시 정치적으로 쉽게 수용되기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정책일 수 있다. 하지만 발터 샤이델의 지적대로 불평등 해소는 뉴딜정책이나 토지개혁과 같은 파격적인 개혁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만큼 이제는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것을 방치하지 말고, 과감한 정책들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다. ■    

 

김병권 bkkim21kr@naver.com
서강대학교 경제학 석사, 성공회대학교 박사 수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사회혁신공간 데어 상임이사, 서울시 협치자문관 역임. 주요 저서로 《사회적 상속》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맞선 그린뉴딜》 《사회혁신》 등 다수가 있다. 현재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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