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불교

티베트 불교/수행 체계

수선님 2022. 9. 1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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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연원
3. 특징
4. 구성
4.1. 예비수습
4.2. 삼사도(三士道)
4.3. 샤마타와 비파샤나(止觀)
5. 소(小) 보리도차제
6. 관련 문헌
7. 관련 영상

1. 개요

귀의의 대상인 삼보(三寶)를 나타낸 람림 전승의 촉싱(tshogs zhing) [1]

티베트 불교에는 날란다 사원 전통을 계승한 특유의 불교 교육 체계가 있는데 이를 장춥람림(Jangchub lamrim), 한역으로 보리도차제(菩提道次第)라고 한다. 이름을 풀이하면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매겨진 순서'라고 할 수 있다. 불법에는 완전하고 명료하게 의미를 드러낸 요의법(了義法)과 방편으로 설한 불요의법(不了義法)이 있다. 광대한 불법의 바다에서 대소승의 요의법만을 모아 간추린 요의법의 왕이 바로 《람림》이라고 할 수 있다. 《람림》에 의지하면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헤매지 않고 수행이 가능하다. 밀교의 매우 깊은 가르침에 의지하여 한 생에 깨달을 수 있는지 여부도 《람림》의 내용을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람림》의 내용은 크게 예비수습, 삼사도(三士道), 지관(止觀) 수행으로 구성된다. 《람림》의 구성에 따라 수행 순서도 예비수습 → 하사도 → 중사도 → 상사도 → 샤마타(지止) → 비파샤나(관觀) 순을 따른다.[2]
초펠, 게시 소남,《티벳 스승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개정판)

 

2. 연원

아띠샤의 초상 (티베트, 12세기 중반)

흔히 《람림》을 '아띠샤'나 '쫑카빠'와 같은 티벳의 카담파(Kadampa) 스승들이 만들었다고 여기곤 한다. 하지만 티베트 불교에서는 《람림》의 가르침이 석가모니로부터 유래했다고 본다. 대승 불교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불로부터 유래한 두 갈래 법맥이 있다. 석가모니불-미륵보살-아상가(무착)으로 이어지는 도의 광대한 실천을 중시하는 법맥(갸첸쬐규)과, 석가모니불-문수보살-나가르주나(용수)로 이어지는 공성의 심오한 견해를 중시하는 법맥(상모따규)이다. 달리 말하면 전자는 유식학파, 후자는 중관학파에 해당한다.

인도의 스승 아띠샤가 전자의 법맥은 스승 '쎌링빠'로부터, 후자의 법맥은 스승 '릭빼쿠쥭'으로부터 이어 받아 두 법맥을 통합하여《람림》이라는 하나의 큰 물결을 이루었다. 이에 관한 논서로 《보리도등론(Skt. bodhipathapradīpa; Tib. བྱང་ཆུབ་ལམ་སྒྲོན་, changchub lam drön, Wyl. byang chub lam sgron)》이 있다.

《보리도차제광론》의 저자 제 쫑카빠

아띠샤가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였지만 이후 담고 있는 분량에 따라서 '경을 자세하고 넓게 공부한 후 경에 의지해서 수행하는 자(까담슝빠)', '람림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자(까담람림빠)', '핵심적인 내용만 골라서 수행하는 자(까담담악빠)'라고 하는 세 갈래 법맥으로 다시 나뉘었다. 이를 다시 까담 전승의 후계자이자 겔룩의 창시자 쫑카빠가 통합하여 《보리도차제광론(Tib. ལམ་རིམ་ཆེནམོ་, Wyl. lam rim chen mo)》를 저술했다. 이 외에도 《람림》과 관련한 여러 논서가 있다.

하사(下士)는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 항상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중사(中士)는 다만 괴로움의 소멸만을 희구할 뿐 즐거움은 희구하지 않으니, 괴로움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상사(上士)는 항상 자신은 괴로워도 다른 이의 안락과 아울러 다른 이의 괴로움의 영원한 소멸을 부지런히 추구하니 다른 이의 괴로움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비달마구사론》(권오민 譯)
아띠샤 이전 불교 논서들에서도 보리도차제의 맹아(萌芽)를 엿볼 수 있다. 가령 《구사론》, 《유가사지론》〈섭결택분〉, 《보성론석》, 《청정도론》에 보리도차제의 삼사도(三士道)와 유사한 인간상의 분류가 등장하며, '탄트릭 아르야데와(성천)'에 귀속된 밀교 논서인 《Caryamelapakapradipa》에도 근기에 따라 소승, 바라밀승, 금강승으로 수행자를 분류한 대목이 나온다. 즉 석가모니 재세시부터 존재하던 차제설법(次第說法)을 부파불교에서 체계화하고, 다시 대승불교에서 인(人)ㆍ천(天)ㆍ성문ㆍ연각ㆍ보살의 오승(五乘)이나 보살정성(菩薩定性)ㆍ연각정성(緣覺定性)ㆍ성문정성(聲聞定性)ㆍ삼승부정성(三乘不定性)ㆍ무성유정(無性有情)의 오종성(五種姓) 등으로 분류한 뒤, 최종적으로 일불승(一佛乘)의 관점에서 이들을 통합하여 단일한 수행 체계로 정립한 결과물이 곧 보리도차제라고 할 수 있다.

3. 특징

게시 툽텐 소남 스님은 《보리도차제광론》에 의거하여 《람림》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람림》의 가르침에는 네 가지 큰 이익과 세 가지 특징이 있다.

《람림》의 네 가지 큰 이익은 다음과 같다.

1) 부처님의 일체 교설에 모순이 없음을 알게 함.
2) 일체 교설을 진정한 가르침(요의법)으로 받아들이게 함.
3) 부처님의 견해를 속히 얻게 함.
4) 일체 죄업들이 저절로 소멸됨.[3]

또한 《람림》의 세 가지 큰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현교와 밀교의 일체 내용을 모두 담고 있음.
2) 마음을 다스리는 순서를 우선으로 설하고 있기 때문에 실천하기 매우 쉬움.
3) 용수와 무착의 교의에 정통한 두 스승(릭빼쿠쥭과 쎌링빠)의 비전을 보충하였기에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 특별함.
 
그 밖에 경론에서 말씀하신 도(道)에 어긋남이 없는 정도(正道)를 말하며, 그것에 부족함과 과함이 없고 수행 자체에 그 어떤 오류도 없다고 전해진다. 또한 상근기 중생만이 아니라 하근기, 중근기 등 각 근기의 모든 중생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람림》을 일체 교설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고 비유한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보리도차제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리도차제론》은 반야, 중관, 인명(因明, 불교인식논리학)을 모두 공부한 자가 반야와 중관의 견해를 바탕으로 경론에서 말씀하신 수행 차제(次第)를 한 생애에 집중하여 수행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체계화한 것이므로 우선 이 두 가지의 견해를 알지 못하면 보리도차제를 알 수 없다. 따라서 보리도차제를 배울 때에는 반야와 중관의 경론과 《보리도차제론》을 마치 어머니가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듯이 항상 함께 하여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게시 툽텐 소남스님은 《보리도차제론》의 모든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야와 중관의 경론을 배우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며 이러한 것을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면 먼저 도차제(道次第)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라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쫑카빠, 《보리도차제광론 1권》(박은정 譯)

4. 구성

4.1. 예비수습

헌신적인 제자의 전범(典範)인 제쭌 밀라레빠(Jetsun Milarepa)

예비수습에서는 우선 《보리도차제광론》의 근간이 되는 《보리도등론》에 대하여 세 가지 방식으로 소개한다. 세 가지 방식이란 다음과 같다.
  • 첫째, 《보리도등론》의 저자인 아띠샤의 공덕
  • 둘째, 법의 공덕
  • 셋째, 그와 같은 법을 설하고 듣는 방법

이와 같이 법을 설하는 방식은 비끄라마쉴라(Vikramasila) 승원의 방식을 따른 것이다.[4] 우선 '저자인 아띠샤의 생애에서 드러나는 그의 공덕'을 통해서 법의 정통성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법의 공덕'을 통해 가르침을 귀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5] 마지막으로 '법을 설하고 듣는 법'에서는 '법을 청문(聽聞)하는 법'인 청문의 이로움(공덕), 법과 설법자에 대한 공경, 청문법의 실제(법기法器의 세 가지 허물 끊기, 여섯 가지 인식)와 함께 '법을 설하는 법'인 법을 설하는 공덕, 부처와 법에 대한 공경심 일으키기, 설법자의 마음가짐과 몸가짐, 법을 설해야 할 대상과 설하지 말아야 할 대상 구별 등에 대해서 소개한다.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을 참고할 것.

다음으로 본 가르침으로 제자를 인도하는 순서는 크게
  • 모든 도(道)의 근원인 선지식을 의지하는 법
  • 선지식에 의지하여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것인가

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의지처인 선지식(스승)의 자격, 제자의 자격, 선지식을 섬기는 방법, 선지식을 섬김으로 인한 이익, 선지식을 잘못 섬김으로 인한 해악 등을 소개한다. 후자는 불교 수행을 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인 팔유가(八有暇) 십원만(十圓萬)을 설명하고 그것들의 가치, 얻기 어려움을 사유한 후 보편적인 도의 체계인 삼사도(三士道)를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미륵보살의 《대승장엄경론(Mahāyānasūtrālaṃkāra)》에서는 선지식의 요건을 10가지로 말하였다.
1) 계학: 자기 자신을 조복함.
2) 정학: 지(止, 샤마타)
3) 혜학: 인무아(人無我)의 지혜
4) 제자보다 뛰어난 공덕
5) 이타(利他)를 좋아하는 정진력
6) 교학: 경율론 삼장에 밝음.
7) 진여의 증득: 법무아(法無我)의 지혜
8) 언변이 좋음.
9) 중생에 대한 자애심: 사랑과 자비로 법을 설함.
10) 반복되는 설법을 싫어하지 않는 것.
10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계정혜 삼학과 진여의 증득, 중생에 대한 자애심 등 5가지 조건을 갖춘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그마저도 찾지 못하면 두어가지 조건이라도 충족하는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성천보살의 《사백론(Catuḥśataka)》에서는 제자의 조건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치우치지 않는 마음(편견이 없음)
2) 지혜(지성)
3) 구도심(求道心)

제자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아홉 가지 마음'[6]과 같은 신심(信心)과 공경심으로 신구의(身口意) 삼문(三門)을 다해 스승을 섬겨야 한다. 선지식 스승을 모시는 법은 마명(馬鳴, Aśvaghoṣa)의《사사오십송(事師五十頌, Gurupañcaśika)》 등 여러 경론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스승을 의지하는 수행법이 제대로 되면, 수행의 큰 문을 연 것과 같다. 이 때부터 제대로 수행의 길을 갈 수 있다.

가만(暇滿)의 몸이란 수행에 장애가 되는 요소가 없고 수행에 필요한 조건을 갖춘 귀한 몸을 일컫는다.

팔유가(八有暇)는 수행할 수 없는 장애로부터 벗어나 여덟 가지 여유를 갖춘 것을 말한다.
(1) 지옥에 태어나지 않은 것.
(2) 아귀로 태어나지 않은 것.
(3)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4) 오래 사는 신(장수천, 長壽天)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5) 부처의 가르침을 모르는 땅에 태어나지 않은 것.
(6) 부처의 존재를 모르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
(7) 감각기관에 장애가 없는 것.
(8) 그룻된 견해를 품지 않은 것.
십구족(十具足, 혹은 십원만十圓滿)은 수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열 가지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1) 인간으로 태어난 것.
(2) 불법(佛法)이 존재하는 땅에 태어난 것.
(3) 가르침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것.
(4) 오역죄(五逆罪)를 범하지 않는 것.
(5) 신심(信心)을 갖춘 것.
(6) 부처가 세간에 존재하는 것.
(7) 정법(正法)이 설해지고 있는 것.
(8) 그 가르침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
(9) 그 가르침을 받는 것.
(10) 후원자, 시주자 등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
앞의 다섯 가지 내부적인 조건을 자원만(自圓滿), 뒤의 다섯 가지 외부적인 조건을 타원만(他圓滿)이라고 한다.

4.2. 삼사도(三士道)

《람림》에서는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을 모두 취합하여 불교수행의 순서에 맞추어 하사도(下士道), 중(中)사도, 상(上)사도의 삼사도(三士道)로 정리했다.

1. 하사도
: 초기 불전에서 석가모니는 전문적인 수행이 어려운 일반 대중을 위해 보시(布施)하고 지계(持戒)하면 생천(生天)한다는 차제법문을 여러 번 설했다. 이처럼 다음 생에 인간, 천상과 같은 선취에 태어나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악도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하사도 수행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 제행무상(죽음과 무상 사유), 윤회개고(삼악취[7]의 고통), 인신난득(사람 몸 얻기 어려움)[8], 인과응보(인과에 대한 믿음), 귀의삼보(불ㆍ법ㆍ승 삼보에 귀의함) 등을 익히며 십선법(十善法)을 행하고 십악업(十惡業)을 멀리 한다.

"악업은 그 어떤 것도 짓지 말고,  선업은 원만히 행하라. 자기 마음을 완전히 교화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칠불통게(七佛通偈)[9]의 가르침처럼,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는 하사도의 가르침은 모든 수행의 토대가 된다. 또한 그 과보로 증상생(增上生)[10]을 누릴 수 있고, 해탈성불의 결정승(決定勝)[11]을 목표로 하는 수행자들은 팔유가[12] 십구족[13](八有暇 十具足)같은 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을 갖출 수 있다.
2. 중사도
: 아라한이 되어 개인의 해탈열반을 얻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다. 하사도의 십선법을 갖춘 상태에서 교법(敎法)인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을 배우고, 배운 바를 토대로 증법(證法)인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수행하여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등을 익혀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는다.
3. 상사도
: 부처가 되어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여 해탈성불로 이끄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다. 하사도의 십선법, 중사도의 계정혜 삼학을 토대로 보살승을 수행한다. 보살승에는 바라밀승과 금강승 두 가지가 있다. 바라밀승(대승 현교)의 육바라밀(六婆羅蜜) 및 사섭법(四攝法)[14]과 금강승(대승 밀교)의 밀법(密法)을 수행하여 지혜와 방편을 갖춤으로써 부처의 과위(果位)에 이른다. 상사도에 관한 추가적인 설명은 티베트 불교/자비와 보리심의 강조를 참조할 것.

하사도, 중사도, 상사도를 차례대로 세간도, 나한도, 보살도라고 부를 수 있다. 혹은 인천(人天)승, 성문연각승, 보살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라도 절차에 따라 첫 단계인 하사도부터 수행하여야 한다. 하사도 수행이 완성되어야 그 다음 단계인 중사도 수행에 들어갈 수 있고, 중사도 수행이 무르익어야 그 다음 단계인 상사도를 닦을 수 있다. 중사도의 수행자는 하사도의 심성을 갖추고 있고 상사도의 수행자는 하사도와 중사도에서 익혔던 심성과 통찰 모두 그대로 갖추고 있다. 이렇게 보리도차제의 수행은 누적적(累積的)이다.
김성철, 《Systematic Buddhology와 『보리도차제론』》
김성철, 《티베트 불교의 수행 체계와 보살도》

 

자신의 수행 동기가 진정 무엇인지 늘 자문(自問)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수행 동기에 따른 실천이 없다면 진정한 동기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자신이 "보리심을 발하였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정신적 행복보다 육체적 쾌락을 추구한다면, 일체 중생을 위한 수행은 커녕 이번 생을 위한 수행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생을 위한 공부는 엄밀히 말해 람림 기준에서는 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 다음 생을 준비하는 하사도(下士道)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불교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생을 위해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더라도 이번 생의 이익이 있으며, 비록 마음 동기는 이번 생에 한정되어 있지만 수행의 공덕과 인연법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다음 생과 해탈성불을 이루는 것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15]

하사도에서 이번 생은 버려야 할 법, 다음 생은 취해야 할 법으로 이번 생보다는 다음 생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 반면 중사도에 이르면 다음 생 또한 버려야 할 법이 되며 윤회로부터의 해탈이 취해야 할 법이 된다. 마지막으로 상사도에서는 자기 자신만의 해탈 역시 버려야 할 법이 되며 일체 중생의 해탈성불이 취해야할 법이 된다.

 

성불(成佛)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원만한 이타행(利他行)이 목적이다. 성불하지 않으면 흠결 없이 원만구족한 이타행을 이룰 수 없다.

《보리도차제광론》은 궁극적으로 보리심을 발하여 대승의 상사도에 입문할 것을 권장한다. 하사도, 중사도도 상사도와 무관한 별도의 과정이 아니라, "상사도와 공통적인 도(道)로서의 하사도", "상사도와 공통적인 도로서의 중사도"로서 상사도 과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쫑카빠는 《보리도차제광론》에서 보리심을 발하여 대승에 입문해야 하는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아라한(성문승‧독각승)의 경지를 이루어도 궁극에는 대승(구경일승究竟一乘)에 들어가야 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지혜로운 이들은 처음부터 발보리심(發菩提心)으로 대승(大乘)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마명보살의 《섭바라밀다론(攝波羅密多論)》에서『일체중생의 뜻을 이루는 데 힘없는 두 가지 승(성문승‧독각승)을 완전히 버리고 처음부터 대승의 대자비의 가르침에 따라서 몸과 말과 생각을 번뇌의 허물 하나도 없이 오직 이타를 위하는 한 맛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했고,『행복과 불행의 모든 법은 꿈과 같음을 보고(모든 법이 무자성이다. 실체가 없다), 무지(無知)의 허물로 떠돌고 있는 낮은(천한) 중생들을 볼 때 최상의 행인 이타의 기쁨 버리고 자신의 뜻을 위해 어떻게 정진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한 것과 같다."(게시 소남 걜첸 譯)

 

■ 출리심과 보리심은 모순되는가?

처음에는 진정한 보리심을 내기 힘들지만 단계별 수행을 통해 세속에 대한 집착을 여의고 출리심(出離心)[16] 자비심(慈悲心)을 증장하면서 점차 진정한 보리심을 발하게 된다. 언뜻 생각하기엔 윤회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출리심과 일체중생을 위해 윤회계에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보리심이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진정으로 윤회의 고통을 인식하고 윤회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 후 다른 이들을 돌아보면, 그들이 겪을 윤회의 고통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자애와 연민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다. 즉 보리심은 달리 표현하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일체 중생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자비심을 발하여 출리심을 확충(擴充)한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주요 종교, 문화들에서 강조하는 보편적 법칙인 황금률의 실천이기도 하다.

게시 텐진 남카스님은 출리심과 보리심이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출리심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고 보리심의 대상은 타인이기 때문에 모순되지 않는다. 보살 수행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윤회에 대한 집착이 조금도 없지만, 다른 이를 위해서라면 윤회지(輪廻地)는 물론 지옥과 같은 악도(惡道)도 마다하지 않는다. 스스로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출리심이 없다면 다른 중생을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자비심도 생길 수 없다. 마치 의사가 스스로 병을 싫어하지 않으면, 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다.#

■ 보살은 윤회하는가?

윤회한다는 것은 곧 윤회의 원인인 번뇌가 남아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번뇌를 제거한 성문아라한, 연각아라한, 8지 이상의 보살아라한은 더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즉 보살 8지부터는 윤회하지 않지만 원력(願力)으로 윤회지(輪廻地)에 머물며 중생을 구제한다. 아라한, 벽지불, 대력(大力)보살은 이미 윤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승만경》에서는 그들이 받는 죽음을 윤회 내에서 범부 중생들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죽음과 구별하여 ‘부사의변역(不思議變易, acintya-pāriṇāmikī)'이라고 표현하였다. 흔히 전자를 분단생사(分段生死), 후자를 변역생사(變易生死)로 칭하기도 한다.

■ 무여열반과 유여열반

게시 소남 걜첸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소승과 대승의 무여열반(無餘涅槃), 유여열반(有餘涅槃)의 정의가 서로 다르다.

소승은 오온의 몸(=물질+정신)을 기준으로
① 번뇌를 모두 소멸했지만 과거 업과 번뇌로 인한 몸은 남아있는 유여열반과
② 번뇌와 몸 둘 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회신멸지灰身滅智)에 든 무여열반으로 나눈다

대승의 중관학파는 공성을 깨달은 지혜를 기준으로 아래 둘로 나눈다.
① 근본지根本智(무여열반) → ② 후득지後得智(유여열반)

여기서 '여(餘)'='남은 것'이란 자성(自性)으로 현현하는 것,[17] 주관과 객관의 이원적(二元的) 모습을 가리킨다. 중관학파에서는 공성삼매에서 모든 차별상이 사라지고 근본지로 오직 공성만을 인식하는 것을 무여열반, 삼매에서 나와 후득지를 통해 자성으로 현현함을 인식하는 것을 유여열반이라고 한다.

소승 유부(有部)의 경우 무여열반에 들면 의식의 흐름(心相續)은 단절된다고 본다. 그러나 나가르주나는 《육십송여리론》에서 오온의 소멸이 곧 열반이라는 소승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궁극적 진리의 차원에서 발생과 소멸 등의 개념으로 대상화(objectify)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無生無滅) 그러한 일체법의 실상(實相), 즉 공성을 깨달을 때 비로소 열반에 든다고 말했다. 또한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만약 유부의 주장대로 의식이 단절된다면, 사람이 성취할 것으로 무여열반을 세우지 못하는 모순이 있게 된다. 즉, 사람에게 무여열반이 존재하지 않고, 무여열반을 증득할 때는 사람이 없는 것이 되므로 이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제14대 달라이라마,《달라이라마의 보리도등론》(양승규 譯)

게시 텐진 남카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유부에서도 열반은 의식(마음)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열반을 얻었을 때 의식이 사라진다면 의식의 특징, 작용인 열반도 있을 수 없으므로 스스로의 교리에도 모순된다. '의식의 특징으로서의 열반'이 있을 수 없는 회신멸지(灰身滅智)가 열반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르마끼르띠는 《석량론》에서 의식의 흐름이 단절될 수 없음에 대해 논증했다. 의식 자체의 연속성에 의해 이전 찰나의 의식이 조건이 되어 다음 찰나의 의식이 발생하는 식으로 매 찰나의 의식들이 발생하며, 의식이 없는 물질이 의식을 대치할 수 없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을 방해하는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열반 이후에도 번뇌와 대치하는 청정한 의식의 흐름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다.

■ 구경삼승과 구경일승

중관학파에서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도 최종적으로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되어 번뇌장(煩惱障) 뿐만 아니라 소지장(所知障)까지 제거하고 부처를 이룬다고 본다. 모든 중생은 동일한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화경》 등의 경전에 의거한 이러한 견해를 구경일승(究竟一乘)이라 한다. 이와는 달리 《해심밀경》 등의 경전에 의거하여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 수행자들의 종성(種姓)이 각각 다르고, 한 번 얻은 과위(果位)는 바뀔 수 없다고 보는 견해를 구경삼승(究竟三乘)이라고 한다.

게시 텐진 남카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소승과 대승의 유식학파에서는 구경삼승을 주장한다. 각자의 인연에 따라 성문, 연각, 보살의 길을 따르며 모든 중생이 성불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승의 중관학파에서는 구경일승을 말하기에 모든 중생이 반드시 성불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생마다 각자의 종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이다. 만일 성문승의 종성을 가졌더라도 성문승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 향상하여 보살승으로 나아가 성불할 수 있고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 구경일승에서 설하는 바이다.

성문의 아라한이나 연각의 벽지불 같은 경지를 추구하여도 구경일승의 교리에 따라 언젠가는 성불할 것이므로 굳이 당장 보리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도(外道)가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같은 무색계정(無色界定)을 추구한 결과 수 대겁 동안 선정삼매에 드는 것처럼, 아라한이나 벽지불 역시 열반하여 공성(空性) 삼매에 들게 되면 언제 삼매에서 벗어날지 알 수 없으며 그만큼 성불은 미뤄질 뿐이다.[18] 때문에 대승의 바라밀승과 금강승 법을 만난 매우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발심(발보리심)하여 보살도를 수행해야 한다고 대승의 선지식들은 말한다.

4.3. 샤마타와 비파샤나(止觀)

명상 중인 제14대 달라이 라마

티베트 불교에서 전승되는 기본적인 수행방법은 산스크리트어로 샤마타(shamatha) 비파샤나(vipashyana)[19], 즉 지관(止觀) 수행이다. 티베트어로 샤마타는 '평화롭게 머묾'이란 뜻의 시녜(zhi gnas), 비파샤나는 '더 나아가서 봄', '더 뛰어나게 봄'이란 뜻의 학통(lhag mthong)이라고 한다. 지관수행은 초기불교에서부터 전승된 가장 보편적인 수행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남방불교에는 위빠사나로 전승되고 있고, 대승불교에서도 유식(唯識)학파 등에서 지관수행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불교에서 지관수행은 천태(天台) 등에서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승지관의 전통은 티베트 불교 외에는 거의 단절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불교에서도 강원에서 지관 수행을 강조한 《대승기신론》이나 《선종영가집》 등의 논서를 배우지만, 실제 수행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고 간화선을 위주로 수행한다. 따라서 한문문화권에서 대승교학은 교학의 이해로만 그치고 실천으로 증험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유식, 중관과 같은 교학은 수습하여 증득하지 않으면 본질을 체득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대승지관의 전통을 다시 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승의 정신에 입각한 지관수행은 남방의 위빠사나와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양승규, 《티벳의 지관 수행 체계 연구》

지관 수행을 다루는 티베트 불교 논서로는 까말리쉴라의 《수습차제》, 쫑카빠의 《보리도차제광론》 등이 있다. 이들 논서의 지관 수행 부분은 《반주삼매경》, 《삼매왕경》, 《해심밀경》과 같은 대승 경전과 중관, 유식의 논서를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특히 《보리도차제광론》에서 다루는 지관쌍운(止觀雙運)의 수행론은 《유가사지론》〈성문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문지》(안성두 譯)

현교의 지관수행 뿐 아니라 밀교의 생기차제나 원만차제 수행 역시 샤마타와 비파샤나를 함께 닦는 지관쌍운의 원리를 따른다. 예를 들어 생기차제에서 종자자(種子字)나 밀교 본존의 상호(相好) 등에 집중하는 것은 샤마타에 해당하며 본존을 관상(觀想)할 때 물에 비친 달 그림자나 무지개, 거울 속에 비친 이미지 같이 무자성(無自性)인 공(空)으로 관(觀)하는 것은 비파샤나에 해당한다.

5. 소(小) 보리도차제

쫑카빠는 람림과 관련하여 《소보리도차제(보리도차제 오도송)(lam rim bsdus don)》, 《중보리도차제(lam rim ‘bring po)》, 《대보리도차제(보리도차제광론)(lam rim chen mo)》, 《삼종요도(도의 세 가지 핵심)(lam gtso rnam gsum)》, 《공덕의 근원(yon tan gzhir gyur ma)》 등의 논서를 저술하였다. 그 중 람림의 핵심을 요약한 《소보리도차제(보리도차제 오도송)》의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광성사 주지 게쉬 소남 걀첸 스님이 번역하고 목차를 달았다.

1. 문수보살님께 귀의하기
스승이신 문수사리께 귀의합니다.[20]

2. 최고의 능인(能仁)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경 올리기
한량없는 원만한 선행으로 이루어진 몸[身]
무량한 중생의 희구(希求)를 채워주는 말씀[口]
모든 존재를 여실히 보는 마음[意]
석가족의 수장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경합니다.

3. 미륵보살님과 문수보살님께 예경 올리기
비할 바 없는 설법자의 수승한 제자
승리자의 중생제도의 행 모두 짊어지고
무수한 중생계에 화신으로 나투신
미륵보살과 문수보살께 예경합니다.

4. 용수보살님과 무착보살님께 예경 올리기
매우 알기 어려운 반야경의 뜻을
바르게 설해주신 세상의 장엄이자
삼계에 완전히 널리 알려지신
용수보살과 무착보살의 발 아래 제가 예경합니다.

5. 아띠샤 스승님께 예경 올리기
두 분의 큰 스승으로부터 바르게 전승된
심오한 견해와 광대한 수행의 법맥
틀리지 않고 완전한 가르침의 보배 지니신
스승 아띠샤께 예경합니다.

6. 선지식들께 예경 올리기
광대무변한 가르침을 보게 하는 눈이자
행운아를 해탈로 가게 하는 최상의 문을
대자비와 뛰어난 방편으로 바르게 설해주신
선지식들께 예경합니다.

7. 보리도차제 전승의 특징과 비유
세상 모든 지자(智者) 가운데 최고이자
중생계에 널리 알려지신
나가르주나와 아상가 두 분으로부터
바르게 전승된 《보리도차제》는
해탈을 구하는 이들의 모든 원 이루어주기에
여의주와 같은 수승한 가르침이며
훌륭한 모든 경론(經論)의 핵심 모았기에
바다와 같은 큰 가르침이나이다.

8. 보리도차제의 네 가지 위대함
모든 가르침을 어긋남 없이 깨닫게 하고
모든 경론을 요의법으로 알게 하며
부처님의 뜻을 쉽게 깨닫게 하여
큰 허물의 절벽에서도 보호하나이다.

9. 보리도차제를 문사수행으로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
그러므로 인도와 중국, 티베트의 행운아들이
실천하는 최상의 요의법인 삼사도의 차제를
기뻐하지 않을 현자가 어디 있겠는가!

10. 팔만사천대장경의 핵심인 보리도차제를 설하거나 듣는 공덕
모든 경전의 핵심을 모으고 모은 《보리도차제》를
단 한번 설하거나 듣기만 하여도
정법을 설하고 듣는 공덕 크게 쌓을 수 있기에
그 뜻을 새겨야 하네.

11. 예비 수행 - 도의 뿌리인 스승을 의지하는 방법
현생과 내생의 모든 선한 인연의 뿌리는
바른 길 보여주신 선지식임을 알아
부지런히 생각과 행으로 이치대로 의지해야 함을 알고
목숨을 다해 말씀대로 실천하는 공양으로
스승을 기쁘게 해야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21]

12. 하사도 - 유가구족의 몸을 의미 있게 보낼 것을 권함
여의주보다 더 소중하고 단 한번 얻은 유가구족의 이 좋은 몸은
얻기는 어렵고 번개처럼 사라지기 쉬우니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 세속의 모든 일
겨가 바람에 날려가듯 부질없음을 알고
밤낮으로 삼사도의 핵심을 지녀야만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3. 삼보에 흔들림 없이 귀의하고 귀의의 학처를 배울 것을 권함
죽은 뒤 삼악도에 태어나지 않을 자신이 없고
오직 삼보만이 이 두려움에서 구제해 주시니
항상 삼보에 흔들림 없이 귀의하고
귀의의 학처(學處)[22] 에서 물러남 없이 정진해야 하네.
그 또한 선업과 악업의 인과를 바르게 알아
취하고 버리는 것을 이치대로 실천하는 것에 달려있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4. 성불의 길로 가는 자의 자격을 갖출 것을 권하심
최상의 경지 일체종지 이루기 위해서는
유가구족(有暇具足)의 몸 없이 제대로 나아갈 수 없으니
이 좋은 몸 받을 수 있는 부족함 없는 선업을 쌓아
죄와 훼범의 허물에 물든 삼문[身口意]을 정화하고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니
항상 사대치력(四對治力)으로
간절히 참회수행을 해야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5. 중사도 - 고제와 집제의 허물에 대해 사유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
윤회의 허물[苦諦]을 힘껏 사유하지 않으면
해탈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 생기지 않고
어떻게 윤회하는지[集諦] 사유하지 않으면
윤회의 뿌리를 끊는 방법 모르기에
윤회에서 벗어나려는 출리심을 일으키고
윤회에 묶이는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6. 상사도 - 육바라밀의 바탕인 보리심의 공덕
보리심(菩提心)은 대승의 기둥이고
위대한 육바라밀행의 바탕과 의지처이며
두 자량 모두 보리도로 바꾸는 연금액과 같이
광대무변한 선근을 모으는 복덕의 원천이라네.
이와 같이 알고서 용감한 보살들께서는
보배와 같은 보리심을 수행의 핵심으로 여기시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7. 보시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보시행 하는 방법
보시(報施)는 중생의 원을 들어주는 여의주와 같고
인색함의 끈을 잘라내는 최상의 무기라네.
두려움 없는 용기를 일으키는 보살행이며
시방에 명성을 널리 알리는 바탕이라네.
이와 같이 알고서 지혜로운 이는
자신의 몸과 재물, 선근 모두 베푸는 뛰어난 행을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8. 지계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지계행 하는 방법
지계(持戒)는 악행의 때를 씻어내는 물이며
번뇌의 열을 식혀주는 달빛이라네.
대중 가운데 수미산처럼 웅장하고
힘으로 누르지 않아도 모두가 공경하게 되네.
이와 같이 알고서 현자들은 수지(受持)한 계율을
자신의 눈동자처럼 청정하게 지키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19. 인욕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인욕행 하는 방법
인욕(忍辱)은 용감한 보살들에게 최고의 장엄이며
번뇌의 불길을 잡는 최고의 고행이라네.
분노의 뱀을 잡아먹는 가루라와 같으며
거친 말의 무기를 막아내는 견고한 갑옷이라네.
이와 같이 알고서 다양한 방법으로
인욕행을 닦아 익혀야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0. 정진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정진하는 방법
물러서지 않는 견고한 정진(精進)의 갑옷을 입으면
교학과 수행이 상현달(上弦月)처럼 차오르고
말과 행동 모두 의미 있게 되며
시작한 모든 일이 뜻대로 다 이루어지네.
이와 같이 알고서 보살들께서는
게으름 모두 없애는 위대한 정진행을 하시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1. 선정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선정 닦는 방법
선정(禪定)은 마음을 다스리는 왕처럼
입선(入禪)하면 흔들리지 않는 수미산 같고
방선(放禪)해도 선(善)의 모든 대상에서 벗어나지 않아
몸과 마음을 큰 경안(輕安)에 이르게 하네.
이와 같이 알고서 최고의 선(禪) 수행자들은
산란함의 적을 물리쳐 늘 선정을 닦는다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2. 지혜바라밀의 네 가지 특징과 지혜 닦는 방법
지혜(智慧)는 심오한 공성을 보는 눈이며
윤회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길이라네.
모든 경론에서 공덕의 원천이라 찬탄하며
무지의 어둠 밝히는 최고의 등불로 알려졌다네.
이와 같이 알고서 해탈을 원하는 지자는
이 반야의 지혜를 수많은 정진으로 닦는다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3.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 함께 닦아야 하는 이유
선정만으로는 윤회의 뿌리 자를 수 없고
선정 없이 지혜만으로도 번뇌를 제거할 수 없기에
공성을 확실히 깨닫는 지혜
흔들림 없는 사마타(止)의 말에 오르게 하고
예리한 무기 같은 양극단 여읜 중관의 논리로
변집견(邊執見)의 모든 대상 제거하여
이치대로 분석하는 힘으로 공성을 깨닫는 지혜 증장시켜야 하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4. 샤마타와 비파샤나 함께 닦는 방법
집중명상을 익힘으로 선정을 얻는 것은 물론
분석명상으로도 공성에 대한 흔들림 없는 선정 얻을 수 있기에
부지런히 지관 함께 닦는 것[止觀雙修]은 경이롭다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5. 지혜와 방편 함께 닦는 행운아들의 수행 자세
등지(等至)에서 본 하늘 같은 공성과
후득지(後得智)로 본 신기루 같은 공성 이 둘을 수습해
방편과 지혜 함께 닦는 보살의 바라밀행을 찬탄하시네.
이와 같이 삼사도와 지관 함께 닦는 도를 알아
지혜와 방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행운아들이 수행하는 방식이라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6. 밀교 수행
원인승(原因乘) 현교와 결과승(結果乘) 밀교의 두 가지 대승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공통도를 바르게 일으켜
선장 같은 훌륭한 밀교의 스승에 의지해
바다 같은 밀경(密經)에 들어가 요의법을 행함은
이 유가구족의 몸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라네.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실천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행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소서.

27. 회향
자신의 《보리도차제》 수행을 더 익히고
다른 행운아들 이롭게 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기뻐하신 원만 구족한 이 가르침을
알기 쉬운 말로 설한 이 인연 공덕으로
모든 중생 이 청정한 가르침과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존귀하고 거룩하신 쫑카빠 스승님께서 이와 같이 회향하셨으니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 그 분처럼 회향하나이다.

 

게쉬 소남 걜챈 스님의 《보리도차제 오도송》해설 중 참회와 지관수행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수행의 길로 나아갈 때 최선을 다해 악업을 버리고 선없을 쌓는 수행을 부지런히 행하기는 하지만, 순간순간 방일(放逸), 즉 게으름과 번뇌가 치성한 탓으로 저절로 악업을 쌓기가 더 쉬워서, 우리들의 신구의 삼문은 항상 죄와 훼범의 허물에 물들어 있다. 그리고 업의 장애와 번뇌의 장애 둘 중 특히 업의 장애를 소멸하는 것이 핵심이기에 항상 의지처에 의지하는 힘, 후회하는 힘, 결심하는 힘, 대치(對治)를 실천하는 힘인 네 가지 대치의 힘으로 업장을 소멸하는 참회수행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대치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의지처에 의지하는 힘이다. 우리가 짓는 죄에는 위로는 불보살을 대상으로 지은 죄와 아래로는 중생을 대상으로 지은 죄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가지 죄를 참회하기 위해 귀의와 보리심에 의지해야 한다. 귀의해서 불보살께 지은 죄를, 보리심에 의지해서 중생에게 지은 죄를 없앨 수 있다. 상구보라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의미이기도 하다.

둘째, 마음 속 깊이 후회하는 힘이다. 실수로 독약을 먹었을 때 후회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처럼 잘못한 죄에 대해 절절하게 후회해야 한다.

셋째, 목숨 다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힘이다. 처음부터 죄를 짓지 않기는 쉽지 않지만 한 두 가지라도 버릴 수 있다면 미련 없이 버리고, 그럴 수 없다면 단 하루만이라도 계를 받아 지은 죄를 참회하고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거듭거듭 결심하는 힘을 말한다.

넷째, 대치(對治)를 실천하는 힘이다. 죄를 참회하기 위해 신구의로 하는 모든 수행을 말하는 것으로, 그 중 대표적으로 여섯 가지 실천행이 있다. (1)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 (2) 진언을 외우는 것, (3) 경전을 독송하는 것, (4) 공성을 깊이 사유하는 것, (5) 공양 올리는 것, (6) 부처님의 몸에 의지하는 것이다.

과거에 지은 악업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이 별로 나지 않는다면 목숨 다해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마음 역시 진심으로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대치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은 죄를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위해 악업의 과보를 깊이 생각해서 확신을 얻어야 하며, 이 또한 인과에 대해 깊이 생각해 확신을 얻음에 달려 있다.

 

보리도차제(람림) 수행자들의 수호존 [23]
"등지(等至)[24]에서 본 하늘 같은 공성과 후득지(後得智)[25]로 본 신기루 같은 공성 이 둘을 수습해 방편과 지혜 함께 닦는 보살의 바라밀행을 찬탄하시네"라는 게송의 의미에 대해 소남 걀첸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성 하나에 집중하는 등지로써 공성을 보는 방식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우리가 허공을 보는 방식과 같다.

일반적인 세속의 텅 비어 있는 '공간(공계空界)'은 경전에서 말하는 '허공'이 아니다. 공간은 유위법(有爲法)이고, 허공은 무위법(無爲法)이다. 우리가 보는 공간을 토대로 만지거나 부딪힘이 없는 그 자체가 경전에서 말하는 허공이다. 허공은 공간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가진 여러 특징들 중 하나이다. 공간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허공은 눈으로 볼 수 없다.

허공은 하늘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세속에서 허공을 본다, 하늘을 본다고 할 때는 유위법의 허공과 유위법의 하늘로 바로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경전에서 말하는 허공과 하늘은 무위법의 허공과 무위법의 하늘을 말한다. 즉 공간을 토대로 부딪힘이나 만질 수 없는 그 자체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생각만으로 인식해야 하는 대상을 말하는 것이다. 공간과 허공은 체성일(體性一) 반체이(返體異)(ngo bogcig ldog patha dad)로 물과 얼음처럼 하나이다. 염주는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염주의 무상(無常)과 염주의 공성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등지로 공성을 보는 방식은 위에서 말한 허공을 보는 방식과 같다. 등지로 본 허공과 같은 공성은 공성에 대해서 집중명상으로 보는 방식, 즉 삼매에서 보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후득지로 본 신기루와 같은 공성은 등지에서 후득지로 나올 때, 또는 입선(入禪)에서 방선(放禪)으로 나올 때, 즉 삼매에서 일상으로 돌아올 때 모든 대상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가 없는 환상이나 신기루와 같이 무자성(無自性)으로 보기 때문에 후득지로 본 신기루와 같은 공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등지와 후득지의 관점에서 허공과 신기루와 같은 공성을 보는 두 가지 수행방식을 닦고 또 닦아 익숙해지는 수습을 통해 보시 등 다섯 가지 방편바라밀과 공성을 깨닫는 지혜바라밀, 즉 방편과 지혜를 함께해 보살도를 닦고 저 언덕인 부처의 경지로 가는 것이 모든 불보살이 칭찬하는 바이다.

6. 관련 문헌

《람림》과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문헌으로 아띠샤의 《보리도등론(Skt. bodhipathapradīpa; Wyl. byang chub lam sgron)》과 이에 관한 쫑카빠의 주석인 《보리도차제광론(lam rim chen mo)》을 들 수 있다.

아띠샤의 《보리도등론》 외에 《람림》전승에 영향을 준 문헌으로는 샨티데바의 《입보살행론(입보리행론)(Skt. Bodhicaryāvatāra) 》, 까말라쉴라의 《수습차제(Skt. Bhāvanākrama; Wyl. sgom rim) 》, 도룽빠(Grolungpa)의 《땐림 첸모(bsTan rim chen mo)》등이 있다.

겔룩의 《람림》관련 8대 논서인 《ལམ་རིམ་ཁྲིད་ཆེན་བཅོ་བརྒྱད་ནི། , 람림 티첸 걔》는 다음과 같다.

  • 쫑카빠 대사의 대·중·소 『람림』 3가지
    『བྱང་ཆུབ་ལམ་རིམ་ཆེན་མོ། 람림 첸모』
    『ལམ་རིམ་འབྲིང་པོ། 람림 딩뽀』
    『ལམ་རིམ་ཉམས་འགུར། 람림 냠구르』
  • 제3대 달라이라마 쏘남갸초의 『ལམ་རིམ་གསེར་ཞུན་མ། 람림 세르슌마』
  • 제5대 달라이라마 롭상갸초의 『ལམ་རིམ་འཇམ་དཔལ་ཞལ་ལུང། 람림 잠뻴섈룽』
  • 빤첸 롭상최겐의 『ལམ་རིམ་བདེ་ལམ། 람림 데람』
  • 제쭌 롭상예셰의 『ལམ་རིམ་མྱུར་ལམ། 람림 뉴르람』
  • 닥뽀 나왕닥빠의 『ལམ་རིམ་ལེགས་གསུང་ཉིང་ཁུ། 람림 렉쑹닝쿠』

아티샤의 까담 전승은 겔룩 뿐만 아니라 티벳의 모든 종파에 영향을 끼쳤다. 각 종파의 관련 문헌은 람림 혹은 람림의 하위 분류인 땐림(bsTan Rim, 修學次第)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인 문헌으로 닝마의 《공덕보장론(yon tan mdzod)》,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kun bzang bla ma'i zhal lung)》, 까규의 《감뽀빠의 네 가지 법(dwags po chos bzhi)》, 《해탈장엄론(dwags po thar rgyan, or dam chos yid bzhin nor bu rin po che'i rgyan) 》, 사캬의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남(zhen pa bzhi bral) 》, 《툽뻬 공빠 랍뚜 쌜와(Thub pa'i dgongs pa rab tu ga sal ba)》, 《삼현분장엄보론(snang gsum mdzes rgyan) 》등이 있다.
David Jackson, 《Tibrtan Literature》<The bsTan rim ("Stages of the Doctrine") and Similar Graded Expositions of the Bodhisattva's Path>
이 생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그대는 종교적인 사람(佛弟子)이 아니다.
존재의 세계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그대는 출리심(出離心)을 얻은 게 아니다.
자신의 목적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그대는 보리심(菩提心)을 얻은게 아니다.
파악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그대는 아직 지견(知見)를 얻은 게 아니다.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남(ཞེན་པ་བཞི་བྲལ་)》[26]
- 문수보살이 사첸 꿍가 닝뽀(sa chen kun dga' snying po) 에게 전해준 짧은 게송
국내에 번역된 관련 서적들은 다음과 같다.
(※상당 수 서적은 절판된 점 참고 바람)

#아티샤

#까말라쉴라

#겔룩

#까규

#닝마

#사캬

7. 관련 영상

https://youtu.be/BQAFfpNk_Vw

https://youtu.be/4s0zWURbNPQ

https://youtu.be/yZbcuLudqeY

https://youtu.be/DTxDT0t5MIw

https://youtu.be/YCj7yeXHmnU


게시 소남 걜첸, 대한불교진흥원 헬로붓다 아카데미 "뿌리는 같아도 다른 꽃이 핀다"
《티베트 불교의 과거와 현재》
《티베트 불교의 대표 가르침 보리도차제광론》
《쫑카빠 대사의 도의 세 가지 핵심》
 
 

[1] '복전(福田, 혹은 자량전資糧田)'이란 뜻의 티베트어. 중생이 예배와 공양 등을 하여 공덕 자량을 쌓을 수 있는 대상이므로 복전(자량전)이라 한다. 법맥과 전승마다 촉싱의 구성은 다르다. 불교의 복전 개념과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삼보 뿐만 아니라 중생 또한 공덕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는 복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입보살행론》〈인욕품〉에서는 수행자에게 있어 부처 뿐만 아니라 중생 또한 동등한 복전이기에 중생을 부처와 같이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이 나온다.[2] 샤마타, 비파샤나는 상사도의 선정바라밀, 지혜바라밀을 더욱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3] 《람림》을 의지하면 스승에 대한 잘못된 견해나 그 죄를 사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러한 죄업이 소멸된다. 또한 무상에 대하여 배움으로써 이번 생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이기심으로 생긴 죄업이 없어지고 무아를 생각함으로써 자아까지도 없애는 등 지은 죄가 저절로 소멸되는 위대함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4] 나란다(Nalanda) 승원의 경우 스승의 '말의 청정함', 제자의 '마음의 청정함', 설하는 '법의 청정함'이란 세 가지 방식으로 법을 설한다.

[5] '법의 공덕' 네 가지는 상기한 '《람림》의 네 가지 이익' 항목에서 간략히 언급했다.

[6] 효자와 같은 마음, 금강석과 같은 마음, 대지와 같은 마음, 산과 같은 마음, 종과 같은 마음, 청소부와 같은 마음, 버팀목과 같은 마음, 충견과 같은 마음, 배(船)와 같은 마음

[7] 불교의 세계관인 육도 중에 악업으로 인해 환생하는 지옥, 아귀, 축생을 지칭함

[8]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비유에서 알 수 있듯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생은 무수히 많은 악업을 짓고 선업은 적게 행하여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기 매우 어렵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쉽다. 그러니 인간으로 태어난 귀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수행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

[9] 티베트어 칠불통게로 한역(漢譯) 칠불통게와 대체적으로 일치하지만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 참고로 한역 칠불통게는 제목 그대로 과거칠불이 공통적으로 설한 게송으로 알려져 있지만 티베트에는 과거칠불들이 각각 설한 일곱 개의 서로 다른 게송들이 전해지며, 그 중 한 게송이 한역 칠불통게 내용에 해당하는 게송이다.

[10] 일시적인 행복으로서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를 벗어나 인간, 천신의 몸을 받음.

[11] 궁극적인 행복으로서 '영원한 행복=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과, '완전한 행복=중생구제를 위해 일체종지를 이루는 성불'을 의미함.

[12] 팔유가(八有暇)는 수행할 수 없는 장애로부터 벗어나 여덟 가지 여유를 갖춘 것을 말한다. (1) 지옥에 태어나지 않은 것. (2) 아귀로 태어나지 않은 것. (3)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4) 오래 사는 신(장수천, 長壽天)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5)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는 땅에 태어나지 않은 것. (6) 부처님의 존재를 모르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 (7) 감각기관에 장애가 없는 것. (8) 그룻된 견해를 품지 않은 것.

[13] 십구족(十具足, 혹은 십원만十圓滿)은 수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열 가지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1) 인간으로 태어난 것. (2) 불법(佛法)이 존재하는 땅에 태어난 것. (3) 가르침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것. (4) 오역죄(五逆罪)를 범하지 않는 것. (5) 신심을 갖춘 것. (6)부처님께서 세간에 존재하는 것. (7) 정법(正法)이 설해지고 있는 것. (8) 그 가르침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 (9) 그 가르침을 받는 것. (10) 후원자, 시주자 등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 앞의 다섯 가지 내부적인 조건을 자원만(自圓滿), 뒤의 다섯 가지 외부적인 조건을 타원만(他圓滿)이라고 한다.

[14] 사섭법(四攝法)은 다른 중생을 섭수(攝受)하는 네 가지 법을 말한다. 섭수란 자비로 거두어 보살피고 그 마음을 성숙시킴을 뜻한다. 네 가지 법이란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를 일컫는다. 보시섭은 육바라밀의 보시바라밀과 같은 의미이다. 애어섭은 바라밀을 대중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행섭은 대중들이 바라밀과 같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게 돕는 것이다. 동사섭은 본인 또한 대중들과 함께 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다.

[15] 특히 삼보와 같은 복전(福田)에 의지하는 업(삼보에 예경, 헌공, 성지순례, 탑돌이 등)은 (1) 출리심, (2) 보리심, (3) 공성의 지혜에 의지한 업처럼 윤회로부터 멀어지는 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보리도차제광론》등에서 언급하고 있다.[16] 고성제(苦聖諦), 특히 행고(行苦)를 절감하고 진정으로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단순한 염세주의와는 구분하여야 한다. 진정한 출리심은 윤회의 본질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깊게 사유하여 그 결과 세속적 욕망 대신 해탈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17] '자성으로 현현한다'는 말은 의지하여 발생한 일체법이 본래 무자성이지만 마치 자성이 있는 것처럼 각각의 차별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단, 소지장(所知障)을 제거한 부처의 경우 이종현현(二種現顯)이 사라지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있는 그대로 여리(如理)하게 볼 수 있다. 이종현현이란 세속제와 승의제가 전혀 별개처럼 나타나 보이는 현상이다. 또 세속제를 직관하는 동안에는 승의제를 보지 못하고, 승의제를 직관하는 동안에는 세속제를 직관하지 못한다. 세속제와 승의제를 동시에 직관하는 능력은 오직 부처만이 갖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처는 세속제인 돌멩이와 승의제인 돌멩이의 공성을 동시에 현량(現量)으로 직관할 수 있다. 범천,《다 함께 잘 사는 길(대승불교 교학체계)》

[18] 티베트 불교에서는 반열반 이후에도 아라한의 심상속(心相續)은 계속 이어지며, 의생신(意生身)을 갖고, 색구경천 정토에 머물며, 공성삼매 속에 있고 적절한 때 부처가 아라한을 삼매에서 나오게 하여 보살도를 행하여 성불하도록 이끈다고 설명한다.

[19] 빨리어로는 사마타(samatha), 위빠사나(vipassana).

[20] 참고로 티베트의 역경사들이 인도의 경, 율, 론 중 논장(論藏)을 번역하면서 도입부에 삽입하는 일종의 정형구도 '스승이신 문수사리께 귀의합니다'이다. 논장은 주로 계정혜 삼학 중 혜학(慧學)을 다루기 때문에 지혜의 본존인 문수보살께 귀의하는 문장을 삽입한 것이다. 그러나 《소보리도차제》는 쫑카빠가 직접 지은 저작이므로 이러한 역경 시 관례와는 무관하다. 쫑카빠는 실제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그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21] "해탈을 원하는 저 또한~"이란 후렴구 원문은 "수행자 나(쫑카빠) 또한 이와 같이 실천하였으니 해탈을 구하는 그대도 그렇게 행해야 하리라."이다.

[22] 귀의할 때 배우고 실천해야 할 가르침을 의미한다. 귀의의 학처는 수행 체계의 귀의 설명에서 이미 간략히 상술하였으며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등의 경론을 참고바람.

[23] 상부: 쫑카빠 대사와 두 수제자. 가운데: 관세음보살의 분노존 마하깔라(mahakala, 大黑天) 하부: (左) 야마(yama, 閻魔) (右) 쿠베라(kubera, 毘沙門天). 분노존이란 중생의 거친 업과 장애를 없애고, 수행에 방해가 되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불보살이 분노한 모습으로 화현한 본존을 의미한다. 마하깔라, 쿠베라, 야마는 각각 상사도, 중사도, 하사도의 수행자를 수호한다.

[24] samāpatti. 도달. 성취. 입정(入定). 명상을 즐기는 상태. 명상의 단계. 명상의 성취. 등지(等至). 정수(正受). 입정(入定). 삼마발저(三摩跋底).

[25] 근본지(根本智)의 반대로, 여량지(如量智), 권지(權智), 또는 속지(俗智)라고도 말함. 근본지에 의하여 깨달은 후, 다시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켜 의타기성(依他起性)에 의해 깨달아 아는 지혜.

[26] 2015년 사캬 법왕인 사캬티진 존자가 방한하여 직접 법문을 설하였다.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라 (상)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라 (하)

[27] 파봉카 린뽀체의 《손 안의 해탈》에 따르면 부처님 당시에는 ‘룽균(구전口傳, ལུང་རྒྱུན་)’만 있었으나 후대 사람들이 구전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티균(광해廣解, ཁྲིད་རྒྱུན་)’이 나타났고, 티균은 다시 ‘쎼티’, ‘마르티’, ‘냠티’, ‘뇽티’로 나뉘어진다. ‘쎼티(བཤད་ཁྲིད་)’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깊게 설명하여 가르치는 것이고, ‘마르티(དམར་ཁྲིད་)’는 이렇게 구구절절이 설명하기보다는 의술이 뛰어난 의사가 시체를 해부하여 제자에게 오장육부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듯 문장의 핵심을 직접 일러주는 것이다. ‘냠티(ཉམས་ཁྲིད་)’는 스승이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여 제자의 근기에 알맞게 가르치는 것이며, ‘뇽티(མྱོང་ཁྲིད་)’는 스승이 제자와 같이 살거나 가까이 있으면서 제자가 하나를 완벽하게 깨우칠 때까지 다음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티균’의 방법으로 배우는 것은 업을 녹이는 특별한 비법이며, 불보살들의 불가사의한 가피를 입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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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수행 체계 - 나무위키

아띠샤의 초상 (티베트, 12세기 중반) 흔히 《람림》을 '아띠샤'나 '쫑카빠'와 같은 티벳의 카담파(Kadampa) 스승들이 만들었다고 여기곤 한다. 하지만 티베트 불교에서는 《람림》의 가르침이 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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