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명상 수행의 바다

수선님 2022. 11. 6. 14:40

맛지마니까야 엔솔로지

명상 수행의 바다

 

전재성 역저, 2003, 한국빠알리성전협회

 

1. 어떻게 온갖 번뇌를 끊어 없앨 것인가?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을 쓰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가 생겨나고 생겨난 번뇌는 더욱 증가한다. 그러나 이치에 맞게 정신을 쓰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는 끊어진다.

 

 

2. 물 없는 목욕으로 마음의 때를 씻어내야

 

  바후까 강과 아디학까 강, 가야 강과 쑨다리까 강, 싸라싸디 강과 빠야가 강, 또한 바후마띠 강에 어리석은 자 항상 뛰어들어 목욕해도 언제나 검은 행위를 씻을 수 없네. 쑨다리까 강이 무슨 소용인가? 빠야가 강이, 바후까 강이 무슨 소용인가? 강들은 악업을 저지르는 자를 씻지 못하네. (…) 마음이 청정하고 행위가 맑은 자는 항상 자신의 계행을 원만히 하네. 바라문이여, 여기에 참으로 목욕하라. 그러면 모든 존재들이 그대에게서 안녕을 얻으리. 거짓을 말하지 않고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인색하지 않으면 가야 강으로 갈 필요가 있을 것인가? 가야 강은 그대에게 우물에 지나지 않네.

 

3. 어떻게 올바른 견해를 확립할 것인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알고 악하고 불건전한 것의 뿌리를 알고, 착하고 건전한 것을 잘 알고 착하고 건전한 것의 뿌리를 잘 알면, 그만큼 올바른 견해를 지닌다.

 

4. 명상수행의 기초를 어떻게 다질 것인가?

 

  우리를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비탄을 뛰어넘게 하고,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게 하고, 바른 방도를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길이 있다.

  몸을 깊이 관찰하고 새김으로써 순수한 새김이 이루어지면, 집착의 조건인 시간과 존재에 대한 관념이 일어나지 않고, 지금 여기의 알아차림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순수한 새김은 다른 느낌이나 마음이나 사실에도 적용된다.

 

5. 험난한 삶의 역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나는 참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나는 참으로 구차한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구차한 삶을 살았다. 나는 참으로 삼가는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삼가는 삶을 살았다. 나는 참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

 

6.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

 

  어떤 인상에 관해 그 인상에 정신적 활동을 일으켜 자신 안에 탐욕과 관련되고, 성냄과 관련되고, 어리석음과 관련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들이 일어나면, 그것을 멈추고, 그것과 다른 선하고 건전한 어떤 인상에 관련된 정신활동을 일으켜야 한다. 이빨을 이빨에 붙이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항복시키고 제압해서 없애버리면, 탐욕과 관련되고, 성냄과 관련되고, 어리석음과 관련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들은 버려지고 사라진다. 그것들이 버려지면 안으로 마음이 확립되고 가라앉고 통일되고 검증된다.

 

7. 가르침을 잘못 붙잡으면 뱀에게 물린다.

 

  어떤 사람이 뱀을 찾아서 가는데, 큰 뱀을 보고는 그 몸통이나 꼬리를 잡으면, 그 뱀은 되돌아서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다른 사지를 물 것이고, 그 때문에 그는 죽거나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을 맛볼 것이다. 뱀을 잘못 붙잡았기 때문이다.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두 손과 두 발로 열심히 저어,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서 '이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갈 곳으로 가면 어떻까?'라고 생각한다면, 그 뗏목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인가?

 

8. 진리는 심원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내가 증득한 이 진리는 심원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여 사고의 영역을 뛰어넘고 극히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9. 거룩한 진리란 무엇을 두고 말하는가?

 

  모든 움직이는 생물의 발자취는 어떠한 것이든 모두 코끼리의 발자취에 포섭되고 그 크기에서 그들 가운데 최상이듯이, 벗들이여 이와같이 착하고 선한 법이라면 어떠한 것이든 모두 네 가지 거룩한 진리 즉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생성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징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거룩한 진리에 포섭된다.

 

10. 어떻게 고귀한 앎과 봄을 성취할 수 있을까?

 

  "그대들은 어떻게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내고 있는가?", "그대들은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이와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동안, 인간의 상태를 초월하여 고귀한 분이 갖추어야 할 앎과 봄의 지극한 탁월함에 도달하여 평온을 누리는가?"

 

11. 사후에 의식은 공중에 떠돌다 윤회하는가?

 

  조건에서 의식이 생겨나며, 조건 없이는 의식도 일어나지 않는다.

 

  의식은 어떠한 것도 그 조건에 의존하여 생겨나며, 그것이 일어나는 조건에 따라 이름지어진다. 예를 들어 수행승들이여, 불이란 그 연료에 따라서 이름지어지는 것과 같다. 불이 장작으로 인해 타게 되면 장작불이라 불린다. 불이 나무조각으로 인해서 타게 되면 모닥불이라 불린다. 불이 섶에 의해 타게 되면 섶불이라고 불린다. 불이 쇠똥으로 인해서 타게 되면 쇠똥불이라고 불린다. 불이 왕겨로 인해서 타게 되면 왕겨불이라고 불린다. 불이 쓰레기로 인해서 타게 되면 쓰레기불이라고 불린다.

 

  무명 ↔ 형성 ↔ 의식 ↔ 명색 ↔ 여섯감역 ↔ 접촉 ↔ 느낌 ↔ 갈애 ↔ 집착 ↔ 존재 ↔ 태어남 ↔ 늙고,죽음,우울,슬픔,고통,근심,불안(괴로움의 다발)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생겨남으로써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함으로써 저것이 소멸한다.

 

12. 현재 괴롭더라도 미래에는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배우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은 거룩한 이를 인정하지 않고, 거룩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에 이끌리지 않고, 참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참사람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에 이끌리지 않는다. (…) 그에게 원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번영하고, 원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쇠퇴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알지 못하는 자에게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거룩한 이를 인정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알고, 거룩한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인정하고, 참사람을 알고, 참사람에 이끌린다. (…) 그에게 원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쇠퇴하고, 원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번영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아는 자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네 가지 종류의 삶의 수용

  ① 현재에도 괴롭지만 미래에도 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삶의 수용

  ② 현재에 즐겁지만 미래에 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삶의 수용

  ③ 현재에 괴롭지만 미래에 즐거운 결과를 초래하는 삶의 수용

  ④ 현재에도 즐겁지만 미래에도 즐거운 결과를 초래하는 삶의 수용

 

13. 병아리가 안전하게 껍질을 깨고 나오다.

 

  이 세상에 고귀한 제자가 계행을 지키고 감각능력의 문을 수호하고(집착하지 않고 절제함), 식사하는데 분량을 알고, 항상 깨어있으면, 그 고귀한 제자는 학인으로서 길을 가는 자이다. 그의 알이 썩지 않았다면, 그는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으며, 올바로 깨달을 수 있으며, 위없는 안온을 얻을 수 있다.

 

14. 땅과 물과 불과 바람에 대한 명상이란?

 

  "라훌라여, 어떠한 물질이든지 과거이건, 미래이건, 현재이건, 내적인 것이건, 외적인 것이건, 거친 것이건, 미세한 것이건, 열등한 것이건, 수승한 것이건, 먼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같이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땅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이미 생겨난 즐겁고 괴로운 감촉은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마치 땅에 깨끗한 것을 버리더라도, 더러운 것을 버리더라도, 똥을 버리더라도, 오줌을 버리더라도, 침을 버리더라도, 고름을 버리더라도, 피를 버리더라도, 그 때문에 땅이 번민하거나, 수피스러워하거나 기피하는 것이 없다.

 

15. 독 묻은 화살을 맞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은 영원하다든가,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든가, 세상은 유한하다든가, 세상은 유한하지 않다든가, 영혼은 육체와 같다든가, 영혼은 육체와 다르다든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든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든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든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든가'라는 논쟁은 유익하지 않고, 청정한 삶과는 관계가 없으며, 멀리 떠나고 사라지고 소멸하고 멈추고 삼매에 들고 올바로 원만히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생성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설명했다. 나는 왜 이러한 것들을 설명했는가? 그것은 유익하고 청정한 삶과 관계가 있으며, 멀리 떠나고 사라지고 소멸하고 멈추고 삼매에 들고 올바로 원만히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태어남, 늙음, 죽음, 우울, 슬픔, 고통, 근심, 불안 들을 설명했다.

 

16. 불이 꺼진다면, 그 불은 어디로 간 것인가?

 

  (…)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물질로써, 느낌으로, 지각으로, 형성으로, 의식으로 여래를 묘사하지만, 여래는 그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여래는 그 모든 것의 뿌리를 끊고, 밑둥치가 잘려진 야자수처럼 만들고, 존재하지 않게 하여,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합니다. 참으로 여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바닥을 알 수 없어 마치 커다란 바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게는 사후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으며, 사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란 말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17. 숯불구덩이에 몸을 태워도 그 쾌감에 만족하랴

 

  (…) 이와같이 뭇 삶들은 감각적 쾌락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의 갈애에 사로잡혀, 감각적 쾌락의 타는듯한 고뇌에 불타, 감각적 쾌락을 추구합니다. 뭇 삶들은 감각적 쾌락을 추구할수록, 더욱 더 감각적 쾌락의 갈애가 증가하고, 더욱 감각적 쾌락의 타는듯한 고뇌에 불타게 되지만, 다섯가지 감각적 쾌락 때문에 그 쾌감에만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감각적 쾌락의 생성이나 소멸이나 유혹이나 재난이나 그것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감각적 쾌락의 갈애를 버리고 감각적 쾌락의 타는듯한 고뇌를 버려서 갈증없이 안으로 마음의 고요를 성취했거나 성취하고 있거나 성취할 것입니다.

 

18. 그대여, 나는 멈추었다. 너도 멈추어라!

 

  수행자여, 그대는 가면서 '나는 멈추었다'고 말하고, 멈춘 나에게 '그대는 멈추어라'라고 말한다. 수행자여, 나는 그대에게 그 의미를 묻는다. 어찌하여 그대는 멈추었고 나는 멈추지 않았는가? 앙굴리말라여, 나는 언제나 일체의 살아있는 존재에 폭력을 멈추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살아있는 생명에 자재함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

 

19. 귀족만이 아름다운 불꽃을 지필 수 있는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자들이 사라수, 사라라수, 전단수, 또는 발담마수의 부싯목을 가져와서 불을 지펴서 불빛을 밝힌다면, 바로 그 불꽃만이 화염이 있고 광채와 광명이 있어, 바로 그 불꽃으로만 불을 지필 수 있는가? 천민 가문에서 태어난 자들도 개먹이통, 돼지먹이통, 세탁통이나 엘란다나무의 부싯목을 가져와서 불을 지펴서 불빛을 밝힌다면, 바로 그 불꽃만이 화염이 없고, 광채와 광명이 없어, 그 불꽃으로는 불을 지필 수 없는가?

 

20.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가?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봉사들이 줄을 선 것과 같이, 앞선 자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선 자도 보지 못하고 뒤에 선 자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21. 괴롭거나 즐겁거나 모두 전생의 업 때문인가?

 

  한 남자가 강열한 욕구와 강열한 관심을 갖고 한 여자에게 마음이 묶여 그녀를 사랑하는데, 그녀가 다른 남자와 수다를 떨고 농담하고 웃고 있는 것을 본다고 하자. 그는 강렬한 욕구와 강열한 관심을 갖고 한 여자에게 마음이 묶여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다른 남자와 수다를 떨고 농담하고 웃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우울, 정망이 생겨날 것이다.

 

22. 어떻게 분열을 막고 평화를 가져올 것인가?

 

  대면하게 함으로써 송사를 그치게 할 수 있고, 기억을 환기시킴으로써 송사를 그치게 할 수 있고, 과거의 착란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송사를 그치게 할 수 있고, 그 밖에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대중의 의견을 따름으로써, 상대에게 죄악을 물음으로써, 풀로 덮어둠으로써 송사를 그치게 할 수 있다.

 

23. 무엇을 계발하고, 계발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을 원인으로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 늘어나고, 착하고 건전한 것이 줄어들면 그러한 신체적 행위는 계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원인으로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 줄어들고, 착하고 건전한 것이 늘어나면 그러한 신체0적 행위는 계발해야 한다.

 

24. 공(空)은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저절로 드러난다.

 

  거기에 없는 것을 공으로 관찰한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있다'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것이 진실한 것이며 전도되지 않은 것이며 청정한 것이며 공의 현현이다.

 

25. 아주 놀랍고 예전에 없었던 것이란 어떠한 것인가?

 

  이 세상에서 여래에게는 느낌이 자각적으로 일어나고 자각적으로 지속되고 자각적으로 사라진다. 지각이 자각적으로 일어나고 자각적으로 지속되고 자각적으로 사라진다. 사유가 자각적으로 일어나고 자각적으로 지속되고 자각적으로 사라진다.

 

26. 자신을 길들이는데 어떤 길라잡이가 있는가?

 

  감각적 쾌락 속에서 살면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면서, 감각적 쾌락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감각적 쾌락의 열기에 불타면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러한 자가 욕망을 떠나야 알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볼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도달할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실현할 수 있는 그것을 알고 또한 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깨어있음에 전념하라. 낮에는 경행과 좌선으로 모든 장애에서 마음을 청정히 하라. 밤의 초야에는 경행과 좌선으로 모든 장애에서 마음을 청정히 하라. 밤의 중야에는 오른쪽으로 사자와 같이 누워 발에 발을 겹치고 일어날 때를 생각하며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린다. 그리고 밤의 후야에는 일어나서 경행과 좌선으로 모든 장애에서 마음을 청정히 하라.

 

27. 그대는 하늘에서 온 천사를 보지 못했는가?

 

  갓난 아이로서 침대에서 스스로의 똥과 오줌으로 분칠하고 누워있는 자를 본 적이 있는가? 팔십이나 구십이나 백세가 되어 늙고, 허리가 서까래처럼 구부러지고, 지팡이를 짚고, 몸을 흔들며 걷고, 병들고, 젊음을 잃고, 이빨이 빠지고, 머리카락은 희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대머리가 되고, 주름이 지고, 검버섯이 나고, 사지에 얼룩이 진 자를 본 적이 있는가? 병들고 괴로워 하는데 중태이고, 스스로의 똥과 오줌으로 분칠을 하고 다른 사람이 일으켜 주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앉혀 주어야 하는 자를 본 적이 있는가? 죽은지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 되어서 부풀게 되고 푸르게 되고 고름이 생겨난 시체를 본 적이 있는가?

 

  천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는 방일하네.

  비속한 몸을 받는 사람들

  그들은 오랜 세월 슬퍼한다.

 

  천사의 경고를 받고 나서야

  이 세상에서 참사람들은

  언제나 고귀한 가르침에

  교훈을 찾고 방일하지 않는다.

 

  집착에서 두려움을 보고

  태어남과 죽음의 원인에

  집착하지 않아 해탈하고

  태어남과 죽음을 부수었다.

 

  안온에 도달하여 행복하고

  지금 여기에서 열반을 얻어

  모든 원한과 두려움을 뛰어넘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28.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이미 지나간 것, 그것은 이미 버려졌고,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현재 일어나는 상태를 그때 그때 잘 관찰하라. 정복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그것을 알고 수행하라. 오늘 해야할 일에 열중해야지, 내일 죽을지 어떻게 알 것인가? 대군을 거느린 죽음의 신, 그에게 결코 굴복하지 말라. 이와같이 열심히 밤낮으로 피곤을 모르고 수행하는 자는 한밤의 슬기로운 님, 고요한 님, 해탈의 님이라 불리리.

 

29. 참다운 인식과 해탈은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가?

 

  즐거운 느낌에 닿아 환락하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으면, 탐욕에 대한 잠재적 경향이 잠재하지 않게 된다. 그 괴로운 느낌에 닿아 슬퍼하지 않고 우울해하지 않고 비탄해하지 않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지 않고 미혹에 빠지지 않으면, 분노의 잠재적 경향이 잠재하지 않게 된다.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 닿아 그 느낌의 생성과 소멸과 유혹과 그것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면, 무명의 잠재적 경향이 잠재하지 않게 된다.

 

 

 

 

 

 

 

 

 

[출처] 명상 수행의 바다|작성자 길앞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