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선문염송(禪門拈頌)

수선님 2023. 2. 12. 13:59

선문염송(禪門拈頌)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의 승려 혜심(慧諶:1178∼1234)이 1226년(고종 13)에 수선사(修禪寺)에 있으면서 불조(佛祖)들의 염송 등을 모은 것을 후에 엮어 낸 책.
목판본. 30권 10책. 규장각 도서. 1636년(조선 인조 14) 대원사(大原寺)에서 간행되었다. 선림(禪林)의 고화(古話) 1,125칙(則)과 선사(禪師)들의 요어(要語)를 모은 법문(法門)의 전등(傳燈)이 되는 책이므로 오종논도(悟宗論道)의 자료로 삼았다. 이 책은 한국의 선적(禪籍)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권마다 몇 개의 고칙(古則)을 위로부터 두 자 공간을 띠고 셋째 자부터 써서 염송의 본문과 구별하여 그 고칙에 대한 염송을 첫째 자부터 쓰는 형식을 취하였다.

진각국사 혜심(慧諶) : 1178∼1234

진각국사 혜심은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의 제2세 법주로 보조국사 지눌의 뒤를 이어, 『선문염송(禪門拈頌)』이라는 걸출한 저술을 남긴 분이다. 국사께서는 철저한 수행을 바탕으로 지눌이 중흥시킨 고려 불교를 계승, 더욱 크게 일으킨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사께서는 1178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홀어머니의 반대로 출가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태학관(太學館)에 들어갔었다. 1202년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자 수선사의 보조국사 문하에서 득도하고, 지리산 금당암 등에서 수행에 정진했다. 보조국사께서 수선사를 맡기려 하였으나, 수차례 사양하였다. 1210년 보조국사 입적 후 문도들이 왕께 청해 그를 수선사의 2세 법주로 추대하였다.
국사는 선문(禪門)을 확고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해동 선불교의 중흥조일 뿐만 아니라, 권력과 정쟁에 몰두하던 승려들을 질책하는 준엄한 스승이었다. 동시에 권력의 주변에서 달콤함에 빠져 본분을 잊던 승려들을 단호하게 배척한 청정한 수행자였다.
국사는 왕명으로 단속사(斷俗寺)의 주지를 겸임하기도 하였으나, 일생을 수선사에서 수행과 교화에 몰두하였다. 1234년 6월 26일 속랍 57세, 법랍 32세로 입적하였으니, 자는 영을(永乙), 자호는 무의자(無衣子), 시호는 진각국사(眞覺國師)이다.
국사께서는 몽여(夢如), 진훈(眞訓), 각운(覺雲), 마곡(麻谷) 등 기라성 같은 문도들을 길러내어 고려 불교의 커다란 줄기를 이루었다.
저술로는 『선문염송』 30권, 『선문강요(禪門綱要)』 1권, 『어록』 2권과 『시집』 2권 등이 전한다.
『선문염송』은 각운, 진훈 등의 제자와 더불어 선사들의 어록과 이어오는 내력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편찬한 방대한 저술이다. 부처님에서부터 서천축의 28조, 중국의 6조, 여러 선지식 등의 순서로 배열하여, 선맥(禪脈)을 쉽게 살펴볼 수 있게 한 역작인 동시에 한국 선 불교의 가장 중요한 저술 가운데 하나다.
본래 초판본은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제자 몽여가 1125항목에 347항목을 더해 총 1427항목으로 다시 펴낸 것이 『한국불교전서』 제5책에 수록되어 있다.
『선문염송』은 징(徵)·염(拈)·대(代)·별(別)·송(頌)·가(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징은 화두에 있는 사건을 예로 들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 답하는 형식이며, 염은 한 가지 사건을 예로 들어 화두로 제시하고 풀이하는 것이고, 대는 화두 속에서 답을 못하는 자를 대신해 한 마디 하는 것이며, 별은 화두 속에서 문답의 주인을 달리해 대답하는 것이다. 또 송은 화두 속의 사건을 시로 낭송하는 것이며, 가는 송이 긴 것을 뜻한다.
『선문염송』은 『경덕전등록』이나 『벽암록』, 『종용록』 등을 능가하는 탁월한 저술로 평가받고 있으며, 선맥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1. 부처님의 일곱 걸음 이야기

본 칙
세존이 처음 탄생하실 때 두루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시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시고 한 손을 땅을 가리키시면서 “하늘 위나 하늘 아래나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고 하셨다.

염·송·어
운문(雲門)이 념(拈)했다.
“내가 그때 이 꼴을 보았더라면 한 방망이로 때려 죽여 개나 배불리 먹게하여 천하가 태평하게 했을 것이다.”

법안(法眼)이 말했다. “점잖은 운문이여, 부처님을 욕하지 말라.”
설두현(雪竇顯)이 법안(法眼)의 말에 답했다. “운문의 기세가 대단하기는 하나 불법의 도리는 없다.”
법용(法勇)이 다시 말했다. “설두는 남의 허물만 볼 줄 아는구나.”

금산원이 말했다.
“법안이 처음 운문의 법을 들을 땐 온 몸에 진땀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운문이 부처님을 비방했다’고 하더니 20년이 지난 뒤에야 알아채고 몹시 기뻐하며 법당에 올라 불법의 도리가 없구나” 하였는데 운문은 말하기를 “나의 평생 공부가 법안에게 엿보였도다” 하였다.

법안이 비록 운문을 엿보았으나 운문을 붙들어 일으키진 못했으므로 금산이 말하노라. “버마재비가 앞서 뛰니 참새가 뒤를 따른다. 그 뒤에 총안을 가진 사람은 돛이 젖는 줄도 모른다” 하리니 누가 이 말의 뜻을 알아차린다면 나 또한 30방망이를 맞아야 할 것이다.

정자본(淨慈本)이 말했다 “그대들은 보지 못하는가? ‘만일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며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부처를 보지 못하리라.’ 이미 형상으로 보려 하거나 소리로서 구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니 말해보라.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혜고가 말했다. “부처의 지견을 열고, 지견을 보이고, 지견을 깨닫게 하였으나, 수 천년 뒤에 절름발이 중에게 ‘한 방망이로 때려 죽여 개에게나 배불리 먹여주어 천하가 태평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들을 줄 몰랐구나.

말해보라. 석가노자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큰소리를 친 까닭인가?” “남의 남녀들을 들뜨게 한 탓일까?” 양구하다가 말했다.
“만고에 푸른 못에 비친 달이여! 두세 번 건져보아야 거짓인줄 아느냐?”

감 상
운문을 욕하지 말라. 지견으로 지견을 열었어도 누가 법의 왕을 알겠느냐. 운문 또한 까맣다. 운문의 경계를 넘어야 부처의 참뜻이 있나니, 모두 운문의 칼에 쓰러지는구나. 운문의 칼은 날카롭지만 그 칼을 불에 던져 진금(眞金)을 가려보라. 운문의 칼에 쓰러진 자들에게 새가 울고 봄바람에 꽃이 피는 소식을 어떻게 전할까.

 2. 염화미소

본칙
세존께서 영산(靈山)에서 설법하시는데 하늘에서 네 가지 꽃이 내리거늘 세존께서 그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니 가섭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는데 마하가섭에게 전해주노라” 하셨다.

염·송·어
*정혜신(定慧信)이 송했다.
봄 기운이 돌아오매
지맥이 먼저 아니

매화는 어느덧 눈 속에 터졌거늘
다른 꽃은 여전히 따뜻한 볕을 기다리네
가섭이여 가섭이여, 알았는가 몰랐는가
혼자서 편의한 체 빙그레 웃었는가

*승천회(承天懷)가 송했다.
부처께서 꽃을 들어 묘한 방편 보이시니
가섭이 미소지어 천기를 누설했네
이로부터 흘러들어 동토(東土)에 전해지니
공연한 사람들 시비 속에 빠뜨리네

감상
대중들에게 꽃을 들어 보이시고 부처님께서 미소지어 보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과연 이 미소의 참뜻은 무엇일까. 시비가 분분하다. 가섭에게 정법안장을 전하신다고 했는데 무엇을 전한 것인가. 아무 것도 전한 것이 없다. 오로지 부처님의 미소뿐이다.

부처님께서 꽃을 들고 미소지었을 때 대중들은 무슨 뜻인가 하여 당황하였을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답한다는 말인가. 놀람의 표정뿐 미소지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유독 가섭만이 미소지어 답했다. 부처님의 참 마음을 알았다는 뜻이다. 심법(心法)이다.

미소짓는 가섭의 마음은 일반 대중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가 지닌 본바탕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콜럼부스의 달걀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사람이 해 보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정혜신의 송은 눈 속에 피는 매화를 들어 봄 소식을 미소로 답한 가섭에게 묻는다. 그대는 무엇을 알았는가라고. 정말 알았다면 혼자만 웃지 말라고 한다. 따뜻한 볕만 기다리는 자는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의 경구다.

봄기운이 돌아옴을 아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다. 부처님이 꽃을 들었다는 것은 생명에 대한 상징을 보여준 것이다. 꽃은 꽃이로되 꽃이 아니다. 승천회는 송한다. 공연히 이거다 저거다 시비에 빠지지 말라. 부처님이 꽃을 들어 보이고, 가섭이 미소로서 응답하니 이미 천기가 누설되었고, 이 이야기가 전해지니 훗날 사람들의 논란이 많다. 백만 대중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 부처다. 부처님은 열반하실 때 나는 아무 것도 말한 바 없다고 하셨다. 오직 꽃을 들고 웃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남녀도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꽃과 미소로 족하지 않을까. 백만 대중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설법은 말이 아니고 꽃 한 송이 드러내 보일 뿐이다. 봄기운이 돌고 지맥이 꿈틀거리는데 어디 무슨 말이 필요한가. 꽃이 피면 새가 울고, 강물은 푸르게 출렁거릴 것이다. 꽃을 든 부처님 미소 말없는 말로서 봄 햇살처럼 만물에 퍼져 수천년 전해온다. 부처님의 대중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바로 그러했을 것이다.

 

3. 오통(五通)

본칙
오통선인(五通仙人)이 세존께 묻되 “부처님은 여섯 신통이 있으시고, 나는 다섯 신통뿐이니 어떤 것이 나머지 한 신통입니까?”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선인아!’하고 부르시니 선인이 답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 한 신통을 그대는 나에게 물었는가?”하셨다.

염·송·어
* 장산천(蔣山泉)이 송했다
한 신통을 나에게 묻느냐 하니
우뢰차(雷車)가 구름 속의 불로 뛰쳐나온다
하늘과 인간에 빗발이 쏟듯하니
이룡이 황금 자물쇠를 당겨 끊는다.
오통의 신통변화 부질없이 영검하니
눈썹이 가랑이에 돋는 줄을 몰랐네

* 운개본(雲盖本)이 염하되 “세존이 이렇게 부르시고 선인이 이렇게 대답하니 어느 것이 그 한 신통인가?”하고는 한참 있다 말하되 “차녀(?女)는 벌써 하늘로 날아갔거늘 어리석은 서방님은 여전히 아궁이 앞에서 기다리는구나”하였다.

감상
천안(天眼), 천이(天耳), 숙명(宿命), 신족(神足), 타심(他心)통 등 다섯 신통을 얻었으나 부처님이 가진 마지막 하나의 신통을 얻지 못했으므로 선인은 그것이 무엇이냐고 이렇게 물었다. 과연 부처님이 가진 하나의 신통은 무엇일까. 부처님은 아무 것도 답변하신 것이 없다. 다만 물은 자에게 다시 물었을 뿐이다.

그를 부름으로써 그 나머지 하나의 신통을 가르친 것이니 말하지 않고 가르친 것이 부처님이다. 왜냐하면 ‘오통선인아’라고 불렀을 때, 그가 대답했다는 것은 바로 그가 마지막 하나를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장산천이 송한대로 ‘한 신통을 나에게 묻느냐’라는 반문이 바로 구름 속에서 우뢰차가 불로서 쏟아져나오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이룡이 황금 자물쇠를 끊듯이 오통의 신통변화란 마지막 하나의 신통이 없다면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운개본은 차녀를 예로 들어 이 말없는 설법을 가르친다. 사단(謝丹)이란 사람이 바닷가에서 큰 조개를 얻었는데 그 조개에서 미인이 나왔다. 그로부터 함께 살게 되었는데 어느날 차녀가 말하기를 “아궁이에 불을 좀 때시오. 나는 물을 길어 오겠소”하고 나가더니 끝내 돌아오지 않고 하늘로 날아갔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사단은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처님이 가진 마지막 하나의 신통은 이 차녀와 같은 것이다. 부처님이 “오통선인아”라고 불렀을 때 이미 하늘로 날아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오통선인은 “네”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듯이 답변한 것이다.
선정(禪定)을 아무리 닦더라도 그것을 깨부수지 못한다면 부처님의 마지막 하나의 신통을 얻지 못한다.

 

4. 양구(良久)

본칙
세존에게 어떤 외도가 묻되 “말 있음을 묻지 않고 말 없음을 묻지 않습니다” 하니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이에 외도가 찬탄하되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와 저의 미혹의 구름을 열어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듣게 하셨나이다” 하고 물러났다. 외도가 떠난 다음에 아난이 묻되 “외도가 무엇을 증득하였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나있까”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세상의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하셨다.

염·송·어
*원오근(圓悟勤)이 송했다.
말 있음과 말 없음을 묻지 않고
말하기 전에 화살을 던졌네.
양쪽을 모두 다 윽박질러 막으니
한 자루의 칼이 하늘 가에 싸늘하네.
채찍 그림자가 움직이기 전에 마을과 고을을 지나니
자비의 문이 열린 뒤이매
가파른 길이지만 걸리는 것은 없네.
하늘을 덮는 콧구멍을 뚫어야 하겠으나
누가 바람을 쫓는 천리마인가.

*현각(玄覺)이 징(徵)했다.
“어디가 세존이 채찍을 든 곳인가.”
*설두현이 염했다.
“사와 정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채찍 그림자 때문이다.”
*운문고(雲門?)가 말했다.
“사(邪)와 정(正)의 둘로 갈린 것은 분명 채찍 그림자 때문이다.”

감상
달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손가락이 없다면 어떻게 달을 볼 것인가. 채찍 그림자를 보고 달리는 말은 분명 천리마일 것이다. 채찍을 맞아도 달리지 못하는 말이 있다. 채찍을 들면 달리는 말이 있고,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말이 있다.

외도의 질문에 부처님은 침묵하셨다. 말 있음과 말 없음 사이에 양자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침묵 뿐일 것이다. 말을 해도 안되고, 말을 안해도 안되니 어떻게 할 것인가. 선가에서 이를 일러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한다. 말 이전의 세계 또는 말 이전의 순간을 깨달음이 증득의 한 표현이다.

이 증득의 순간은 말로 표현되는 순간 그 절대성을 상실한다. 말로써 그 온전함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외도의 질문에 부처님은 채찍을 들지 않았다. 말 없음으로 채찍을 대신하니 외도는 그 순간 말 있음과 말 없음을 뛰어넘는 자비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침묵은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별하니, 말 없음 또한 말 있음과 전혀 다른 차원의 우뢰와 같은 가르침인 것이다. 부처님의 침묵은 채찍 그림자가 움직이기 이전이니 어찌 말 있음과 말 없음으로 시비를 분별하리오.

5. 노모(老母)

본칙
성동(城東)의 노모(老母)는 부처님과 같은 세상에 태어났으나, 부처님 보기를 싫어하였으므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기만 하면 얼른 피했다. 그러나 피하면 피할수록 피해지지 않아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었으나 열 손가락에 모두 부처님이 보였다.

염·송·어
*설두현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여러 상좌들이여, 그가 비록 노파이지만 완연히 장부의 기상이 있다. 이미 피하기 어려움을 알았을 때엔 소리를 죽여 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지금에도 부처님을 보기 싫어하는 것을 허락하였거니와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는 말라. 왜냐하면 눈 밝은 이가 볼 때에 설두의 문하에서 너희들에게 노파선(老婆禪)을 가르쳤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산천(蔣山泉)이 염했다.
“그 노파가 퍽이나 억울하게 되었으니, 오직 피할 수 있는 한 가닥의 길을 몰랐기 때문이다. 여러분이여! 피할 길을 알겠는가? 만일 알았다면, 그대가 노파선을 알았다고 허락하리라.”

*장영탁(長靈卓)이 상당하여 말했다.
“석가노인의 가장 좋은 자비의 방편이 퍽이나 기묘하구나,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끝내 그를 도와줄 수 있겠는가? 알고자 하는가? 이미 피할 도리가 없는 곳이라면 합장하여 부처님을 우러러 뵙고, 향 한 촉과 촛불 하나로 공경할 것이지 무엇이 어려우랴? 어렵지 않다면 공왕전(空王殿) 안에서 스스로 보리라!”

감상
부처를 보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렇다. 부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부처를 부처로 보기 위해서는 부처를 부정하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이 바로 그러한 말이다.

설두는 말한다. 나의 문하에서는 노파선(老婆禪)을 가르치지 않는다. 늙은 노파 자식 귀여워하듯 선은 가르칠 수 없다. 장영탁은 말한다.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공양하라. 부정하고 부정한 다음에 긍정하라. 끝내 피할 수 없어 긍정한다면 제대로 바라보라.

보기 싫어한다는 것은 어쩌면 못내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정지용은 〈호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얼굴 하나야 / 손바닥 둘로 / 폭 가리지만 // 보고 싶은 마음 / 호수(湖水)만하니 / 눈감을 밖에”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린다고 어찌 부처를 보지 않을 것인가. 가리면 가릴수록 열 손가락이 다 부처인 것을 노파는 왜 몰랐을까. 아니다. 이 노파야말로 진정 부처를 보았을 것이다. 부정하지 않고 만나는 부처는 진짜 부처가 아니다.

6. 탄금(彈琴)

본칙
부처님께서 어느 사미에게 물으시되 “너는 속가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하였느냐” 하시니 “거문고를 즐겨 탔습니다” 하였다.

“거문고 줄이 늘어지면 어떻더냐?” 물으시니,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하였다.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떻더냐?” 하시니 “끊어집니다” 하였다.

“늘어짐과 팽팽함이 알맞으면 어떻더냐?” 하시니 “맑은 소리가 두루 퍼집니다”고 답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도를 배우는 법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염·송·어
지비자(知非子)가 송했다.

늘어지면 소리가 없고 금하면 촉박하나니 / 자기(子期)가 죽은 뒤에 백아(伯牙)가 통곡했네. / 그러나 줄 없는 거문고 한 곡조에 /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다섯음이 두루 갖출 것 같으랴.

만해(萬海)가 송했다.

달 아래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은 잊을까 함이러니, 춤 곡조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문고 줄은 무지개가 됩니다. / 거문고 소리가 높았다가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당신은 거문고 줄에서 그네를 뜁니다. / 마지막 소리가 바람을 따러서 느티나무 그늘로 사라질 때에 당신은 나를 힘없이 보면서 아득한 눈을 감습니다. 아아 당신은 사라지는 거문고 소리를 따라서 아득한 눈을 감습니다.

감상
백아는 거문고의 명인이었는데, 그의 거문고 소리는 오직 종자기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기의 음악을 알아들을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고 탄식하고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칙:탄금(彈琴)
이는 진정으로 자기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자기의 예술을 포기할 줄 아는 깊은 우정이 담긴 이야기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제자의 생활과 처지에 따라 방법을 달리한다. 속가에서 거문고를 탄 사미에게는 거문고를 통해 깨달음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그렇게 해야 그가 가장 잘 알아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비자의 송은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도 중요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문고 소리보다 더 깊고 그윽한 것임을 알려준다. 줄없는 거문고(無絃琴)는 사리분별을 초월한 부처님의 마음을 노래한다.

한용운의 거문고는 세속의 고저장단이 아니라 “나의 노래는 님의 귀에 들어가서는 天國의 音樂이 되고 님의 꿈에 들어가서는 눈물이 됩니다.”라고 사랑과 절망을 연주한다. 한용운 또한 님이 침묵하는 시대를 통해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아득히 눈을 감는 님은 고통받는 백성들을 한없이 가엾어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부처님의 마음이다.

 

7. 법륜(法輪)

본칙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 문수가 부처님께 ‘다시 법륜(法輪)을 굴려 주옵소서’하니 세존께서 꾸중을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문수야 내가 49년을 세상에 머물렀으나 한 글자도 말한 적이 없거늘 네가 다시 법륜을 굴리라하니, 내가 법륜을 굴린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셨다.

염·송·어
지비자(知非子)가 송했다.
부처님이 문수를 꾸짖으시되 49년을 세상에 머물렀으나 법륜을 굴린 적이 없었느니라 황엽(黃葉)의 인연만을 따랐뿐이니 가섭만이 금란(金欄)을 얻었느니라.

당나라 〈속고승전(續高僧傳)〉에는 신라의 원광(圓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처음에 〈성론(成論)〉을 진술하고 마지막은 〈반야경〉을 강설하며 모두 명철하게 해석하여 아름다운 질문을 주고 받는데 말은 문채가 나고 깊은 뜻은 베 짜듯 짜내니 듣는 자들이 기뻐하고 만족하여 마음에 꼭 들었다. 이로부터 예전의 규례를 따라 사람들이 모르는 바를 계발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으니 법륜(法輪)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문득 강과 호수의 물을 기울여 쏟듯 하였다. 비록 이역이지만 설법에 통하여 도에 몸이 젖었기 때문에 모든 결함을 송두리째 없애버렸다. 그의 명망은 중국 남방 일대에 전파되어 험한 길을 돌보지 않고 보따리를 둘러메고 오는 자들이 많았다.

감상
부처님은 죽음의 순간 왜 사랑하는 그의 제자 문수에게 49년 동안 자신은 한 글자도 말한 적이 없다고 하였을까. 부처님은 한 글자도 말한 바 없다고 하였는데, 훗날 그의 제자 원광은 어떻게 법륜의 바퀴를 크게 굴려 험한 길을 돌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였을까.

법륜(法輪)이란 부처님이 가자 불법의 힘이 산악을 평탄하게 만들 수 있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윤보(輪寶)와 같음을 뜻한다. 한 마디 말도 없었음에도 왜 부처님의 말씀은 수천년동안 억조창생들에게 비할 바 없는 법륜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한 때 필자로서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지비자의 송을 들어보면, 부처님의 법은 오직 가섭에게만 전했다고 한다. 가섭에게 전한 법은 말없음의 심법(心法)이다. 오직 한 송이 연꽃을 들어보이고, 미소로서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이다. 심법은 심인(心印)으로만 전해진다.

수많은 깨달음의 잡다한 말들을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리라. 부처님은 마지막 말을 남기지 않음으로서 후대에 원광법사와 같은 무수한 제자들이 그 심법을 전할 수 있었다. 말을 끊어버림으로서 후세에 들끓는 논란의 근거를 제거하고, 꽃 한송이의 미소를 남김으로써 부처님은 참 생명을 가진 진리의 등불을 밝혀준 것이다.

8. 제상(諸相)

본칙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닌 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 하셨는데 법안(法眼)은 말하기를 ‘만일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닌 줄 알면 여래를 보지 못하니라’하였다.

염·송·어
장산천(蔣山泉)이 송했다.
“연잎같은 눈이 한번 껌벅일 때에 / 사방에 겨룰 이가 없으니 / 수미산엔 먼지 하나 없고 넓은 바다에는 방울물(涓滴)이 말랐네. / 방울물이 없으니 돌에 떨어져 잠잠하고 / 먼지 하나 없으니 하늘 높이 치솟네. / 험악한 산 밑에 초막을 짓고 / 그늘진 개울가에 씨를 심는다. / 곤할 때엔 평상에 다리를 뻗고 눕는게 좋고 / 주릴 때엔 밥이 있으니 입을 열어 먹는게 좋다. / 석가모니여, 아는가! 모르는가! / 눈밖에 서풍(西風)이 급하구나.”

숭승공(崇勝供)이 송했다.
“원래부터 형상이 있다 해도 관계치 않나니 허망하다면 태산같은 죄를 부른다.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니란 뜻을 알았다 한다면 여래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던가.”

천동각(天童覺)이 염(拈)했다.
“세존은 여래선을 말씀하셨고, 법안은 조사선을 말했다. 이 소식을 안다면 매우 기특한 일이요. 알지 못한다 해도 그렇다고 허락하리라.”

세존의 말과 법안의 말은 매우 다르게 전해진다. 세존은 형상을 부정해야 여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고, 법안은 형상을 보지 못하면 여래를 보지 못한다.

몇 년 전 성철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라고 말하여 세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이 말이 왜 그렇게 충격적인 화두가 되어 돌아온 것일까. 그것은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세존의 어법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과 물을 부정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산과 물을 긍정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이 무슨 모순인가 하여 사람들이 의아심을 갖게 된 것이다.

감상
세존의 말씀과 법안의 말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형상을 부정하고 그리고 끝내는 형상을 긍정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 정신이다. 불교가 생을 부정하는 종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불교의 근본정신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부정을 통해 긍정에 도달하는 것이 불교의 변증법이다. 형상을 다 부정해버린다면 어떻게 참된 형상을 볼 것인가.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으라는 생활철학이 바로 부정이 긍정으로 나아가는 불교의 참된 가르침이다. 참된 형상을 제대로 보라는 것이 세존의 말씀이요 법안의 가르침이다.

 

9. 약초캐기(採藥)

최동호 교수의 ‘新 선문염송’ <10>

본칙
문수(文殊)가 어느날 선재(善財)에게 약을 캐 오라고 시키면서 말하되 ‘약 아닌 것을 캐 오너라’ 했다. 이에 선재가 대답하되 ‘산중에 약 아닌 것이 없습니다’하니 문수가 다시 말하되 ‘약되는 것을 캐 오너라’ 했다. 선재가 땅 위에서 한 줄기 풀을 집어 올려 문수에게 주니 문수가 받아 들고 대중에게 보이면서 말하되 ‘이 약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하리라’ 하였다.

염·송·어
대홍은(大洪恩)이 송했다.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어째서 분분한고?/ 죽였다 살렸다 공연히 끝이 없네./ 내년에 또 다시 새 가지 돋아서/ 봄바람에 끝없이 흐느적거리리./

낭야각(耶覺)이 염했다.
‘문수의 말은 가히 성실하다 하겠으나 이마에 땀이 나고 입에서 아교냄새가 난다.

자수심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이 도리는 작자(作者)라야 바야흐로 아나니, 만일 무쇠 눈과 구리 눈동자가 아니면 종종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선재가 그렇게 약을 캔 것은 하나만 알고 문수가 그렇게 약을 가린 것은 둘만 알았다.’

그리고 불자(佛子)를 바로 세우고 말했다.
“이 약을 아는가”

감상
문수와 선재의 약초 캐는 이야기는 석가와 가섭의 꽃한송이의 미소를 연상시킨다. 어떤 것이 약이 되느냐, 그 약이 사람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문제는 가섭의 상징적 미소보다는 작위적 요소가 느껴진다.

문수가 선재에게 요구하는 약초 또한 반어적이다. 낭야각의 말대로 이마에 땀이 나고, 입에서 아교냄새가 난다. 자수심의 말대로 그들은 하나나 둘을 알았을 뿐이라는 지적이 그럴법하다. 자수심은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부처의 병과 조사의 병을 깨부셔야 한다고 말했다.

풀한포기로 무엇을 죽였다 살렸다 한다고 말한 것은 쓸데 없는 공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봄이 오면 새 움이 돋고, 새들이 울 것이기 때문이다. 시비만 분분하지 이 도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무쇠의 눈과 구리의 눈동자로 투철하게 보는 자만이 이 도리를 알 것이다.

문수가 선재에게 시킨 것은 ‘약 아닌 약’이라는 점은 깊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약 아닌 것이 없다’고 선재가 대답하자 문수는 ‘약이 되는 것’이라고 다시 말을 바꾼다. 선재가 캐온 ‘풀 한포기’가 약이 되고 안되고는 대중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중생의 마음이다.

어떤 이에게 약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독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 독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 약이 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는 약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약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고려대 국문과

 

10. 월상녀(月上女)

최동호 교수의 ‘新 선문염송’ <11>


본칙
사리불이 어느 날 성으로 들어가다 월상녀(月上女)가 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말하되 ‘어디를 가는가?’하니 여자가 대답하되 ‘나는 사리불님처럼 그렇게 갑니다’하였다.

다시 사리불이 묻되 ‘나는 성으로 들어가고 그대는 성에서 나오는데 어째서 나처럼 간다고 하는고?’하니, 여자가 도리어 묻되 ‘부처님의 제자들은 어디에 머무십니까?’하니, 사리불이 대답하되 ‘부처님의 제자들은 큰 열반에 머문다’고 하였다.

이에 여자가 말하되 ‘부처님의 제자들이 열반에 머물렀으므로 나도 사리불님처럼 그렇게 갑니다’하였다.

염·송·어
원오근(圓悟勤)이 송했다.
본래부터 맑은 본체 근원을 대했으니/ 들고 남이 같은 길, 이 문(門)뿐일세./ 여래의 큰 해탈에 머물렀으니/ 손바닥의 값진 보배 건곤을 비치네.

청량화(淸량和)가 염했다.
‘하나는 들어가고 하나는 나가는데 어째서 같이 간다 하는가? 알겠는가!’하고는 주장자를 번쩍 들어 말하되 ‘사리불과 월상녀가 몽땅 내 주장자에 있으니 이를 안다면 가는 길이 어긋나지 않거니와 그렇지 못하다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리라’했다.

지해청(智海淸)이 말했다.
‘여러분이여, 돌고 도는 기미를 파악해서 대운(大運)을 관찰하면 음양의 움직임이 완전히 드러나고 요긴한 길목에 의거해서 사방에서 오는 이를 지키면 육합(六合)의 유정이 모두 갖추어진다.

그러므로 사리불이 원래 큰 지혜이건만 도리어 미혹한 무리가 되었고 월상녀는 부인이지만 완연히 장부의 기상이 있다. 말해보라. 승부는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의 마음대로 점검해 보라’하고 선상(禪床)을 치고서 내려갔다.

감상
승부는 어디에 있는가. 월상녀의 한판승이다. 사리불은 나고 드는 것만 보았지 부처와 함께 있는 열반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어리석은 질문이 되는 것이다. 월상녀가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 준다. 부처님이 머무는 곳에 열반이 있으니 가는 곳이 어디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대는 어디를 가는가? 사리불이 물었던 질문을 오늘의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던져 볼 수 있다. 진정한 도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그대가 가는 곳이 바로 부처님이 계신 곳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비록 법당 앞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 속에는 부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들고 나는 것이 오직 이 한 길 뿐이요, 살고 죽는 것이 오직 이 길 뿐이다. 월상녀야말로 이 진리의 길을 깨우친 대장부이다.

고려대 국문과

 


11. 눈썹 쓰다듬기(撥開)


본칙
아육왕(阿育王)이 빈두루존자(賓頭盧尊子)에게 “듣건대 존자께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친히 보셨다 하는데 그 말이 옳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존자가 손으로 눈썹을 쓰다듬고 한참 있다가 말하되, “알겠는가?” 하였다. 왕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존자가 말하되,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친히 보셨습니다” 하였다.

염·송·어
법진일(法眞一)이 송했다.
“아육왕이 존자에게 부처를 보았나! 하니
존자는 손을 들어 눈썹을 쓰다듬네
무엇하러 영산까지 가서 찾으랴!
마주쳐 만난 것이 누구인줄 아는가!”

취암진(翠岩眞)이 염했다.
“더 말해 보라. 어디서 보겠는가! 설사 눈 내리는 하늘이 까마득하고 호수의 빛이 호탕할지라도 꿈속이라고는 말하지 말라.”

승천기(承天琦)가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대중이여! 말해 보라. 존자는 어디서 부처님을 뵈었던고? 눈썹비비는 곳에서 본 것이 아닐까? 큰 방앞에서 본 것이 아닐까? 불당 안에서 보지 않았을까? 삼문(三門) 안에서 보지 않았을까? 만일 이 소식을 봤다면 존자께서 부처님 오시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그대들도 하도록 허락하거니와, 만일 보지 못했다면 부처님 오시는 것을 친히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열재(悅齋居士)가 송했다.
“아뇩달지의 용이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청했으나
참된 법으로 부처님께 공양함을 알지 못했네.
은근한 뜻 오로지 눈썹 위에 있으니
큰 보시의 법문이 활짝 열려있네.”

감상
아육왕은 불교를 전파하는데 온갖 힘을 기울인 왕이고, 빈두루존자는 흰눈썹과 수염이 유난히 길었던 고승이다. 부처님을 기리는 마음이 끝이 없는 아육왕이 빈두루존자에게 과연 부처님을 친견했을 때 느낌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어했기에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부처는 앞에 놓고 부처를 친히 보았느냐고 물었다면 그것은 잘못된 질문일 것이다. 내가 부처라고 빈두루존자는 말하지 않았다. 오직 눈썹을 다듬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했다는 것일까? 빈두루존자는 부처님을 마음 속에서 보았고, 아육왕은 눈썹을 쓰다듬는 빈두루존자만 보았으니, 부처님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다. 내가 보았다면 아육왕 당신도 보았다고 말한 것이 빈두루존자의 마지막 말이다. 부처님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 속에 있다는 빈두루존자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12. 오온이 다 공하다(蘊空)

본칙
계빈국왕이 사자존자에게 와서 칼을 빼들고 묻되 “스님은 오온이 공한 경지를 증득하셨습니까?”하니 존자가 대답한다. “증득하였습니다.”

왕이 다시 묻되 ‘오온이 공함을 깨달았으면 생사를 여의였습니까?’하니 ‘여의였습니다.’하였다.

왕이 다시 말하되 ‘스님의 머리를 베고자 하는데 주시겠습니까?’하니 존자가 대답하되 ‘몸도 내 것이 아니거늘 머리를 아끼겠습니까?’하였다. 이 왕이 존자의 머리를 치니 흰 젖이 한 길을 뿜어 올랐고 왕의 팔이 저절로 떨어졌다.

염·송·어
불안원(佛眼遠)이 송하였다.
“양자강 언덕 위에 버들 푸른 봄빛인데
버들꽃은 강 건너는 이의 근심을 없애누나.
외마디 호적 소리에 정자의 이별이 저무니
그대는 소상(蕭湘)으로 나는 진(秦)으로 간다.”

육왕심(六王諶)이 송하였다.
“오온이 모두 공하고
한 칼이 날카롭다
망설이거나 주저하면
얼음 녹듯 기와 풀리듯 하리라.
백 천가지 삼매가 원융하여 걸림이 없고
만 가지 신통이 자재하다.
사빈존자께서는 까닭없는 것을 찾고
계빈국왕은 참을성이 없구나.”

취암지(翠岩芝)가 염했다.
“그 당시, 조사는 목을 내밀고 왕이 칼을 들어 치려고 할 때 누군가가 멈추시라고 간했더라면 오늘까지 아무도 그 공안(公案)을 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납승들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파초(芭蕉)가 말했다.
“보물을 팔려는데 눈 먼 페르시아사람을 만났구나.”

냥야(瑯揶)가 염했다.
“계빈왕의 한 자루 좋은 칼을 가졌으나 칼끝에 눈이 없었으니 무엇에 쓰랴. 존자의 좋은 사자 기질 도로 던질 줄 몰랐으니 딱하구나.”

감상
계빈왕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것은 좋으나 그렇다고 목을 날리게 할 것까지는 없지 않는가. 이차돈의 죽음에 의해 신라의 불교가 흥성해졌고, 사자존자의 죽음으로 불교가 왕권의 위엄을 넘어섰다고 하는 점도 있으리라.

앙코르와트의 위대한 업적도 왕의 권위에 굴하지 않는 한 고승을 처단하면서 무너졌다는 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상을 정복한 밀림의 왕이 오직 한 사람의 고승의 목을 베고 문둥병환자가 되어, 위대한 제국마저 정글에 버려지게 되었다는 사례는 왕의 권위는 진정한 권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다. 계빈국왕이여 존자의 목을 칠 것이 아니라 그대의 목을 쳤다면 그대는 영원히 살았을 것이다.

13. 거룩한 진리(聖諦)

본칙
달마대사에게 양무제(梁武帝)가 묻되 “어떤 것이 거룩한 진리의 제1의(義)입니까?”하니 달마대사가 대답하되 “확연히 거룩한 진리는 없습니다”하였다.

무제가 다시 묻되 “짐을 대하고 있는 자는 누구시오?”하니 조사가 대답하되 “모르겠소”하였다. 이 말씀을 무제가 알아 듣지 못하니 조사께서 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가셨다.

염·송·어
설두헌이 송했다.
“거룩한 진리의 확연한 길을
어떻게 분명히 할꼬.
상대하여 묻는 이가 그대는 누구인가 하니
도리어 모른다 하네.
이로 인해 가만히 강을 건너가니
그 어찌 가시밭길을 면할 수 있었으랴.
온 나라 사람 뒤쫓아도 돌아오지 않나니
천고만고에 공연히 생각만 나네.
생각하지 말라.
맑은 바람이 대지에 스침이 더 할 수 있으랴?”

보령용(保寧勇)이 송했다.
“시뻘겋게 달구어 한 망치 두드리니
둘레에는 무수한 불똥이 튕기었네.
완벽하고 탐탁한 금강 송곳을
문밖에 걸어 두고 살 사람을 기다리네.”

승천회(承天懷)가 송했다.
“남국의 큰 스님은 두 눈이 푸르렀고
양나라 어진 임금 한쪽 눈만 밝았네.
‘모르겠다’, ‘쓸모없다’는 쓸모가 없었는가.
외로운 발길 돌려 서천(西天)으로 돌아갔네.”

혼성자(混成子)가 송했다.
“확연히 거룩한 진리가 없다는 말 믿는 이 드무니
중대한 교훈 몰라 큰 기회를 놓쳤네.
벽을 향해 구(九)년 앉기 원수같은 고통이었는데
또 어찌 신발짝 들고 서천으로 갔을까.”

감상
양무제는 달마의 반어법을 알아듣지 못했다. 오히려 무제는 달마가 자신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같아 화를 내고 너라는 놈은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을 것이다.

달마는 9년의 면벽 끝에 만난 무제에게 너무나 큰 가르침을 준 것이다. 거룩한 진리는 언어 밖에 있는 것이며, 형상 이전의 실체로서 체득되는 것이다.

거룩한 진리란 중생의 근본 마음이며 성인들의 실제(實際)이다. 그것은 형상이나 말로서 구해지는 것이 아닌 까닭에 달마는 무제의 질문에 답변하여 말하되 모른다고 한 것이다.

모른다고 하고, 없다고 한 것은 그 말을 통해 거룩한 진리의 참 뜻을 전한 것이다. 참 뜻을 전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온 나라사람이 붙잡아도 떠나갈 뿐이다. 설두는 위의 송을 마치고 좌우에게 물었다. “여기에 조사가 있는가?”하고 잠시 둘러보고 스스로 대답해 “있다면 이리 와서 내 발을 씻어다오”하였다. 설두의 발을 씻을 수 있는 자가 달마의 깨달음을 얻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14. 달마의 법을 얻다(法印)

본칙
달마대사에게 혜가(彗可)가 물었다.
“부처님의 법인(法印)을 들려주십시오.”
“부처님의 법인은 남에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의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
“마음을 가져 오너라. 편안케 해주리라.”
“마음을 찾아 얻을 수 없습니다.”
달마가 말하되 “네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느냐.”

염·송·어
지해일(智海逸)이 송했다.
“팔 끊기는 눈에 섰기보다 더 어렵거늘
마음을 찾을 수 없을 때 비로소 마음이 편하였네.
만경(萬頃)의 끝없는 갈대밭 속에
도사린 어부(漁夫)마다 낚시대 가진 줄 뉘 알았으랴.”

무진거사(無盡居士)가 송했다.
“마음을 찾을 수 없을 때 마음이 편해지니
도살장과 음녀집이 소림을 계승했네.
그렇지만 자손들은 곧은 길을 싫어해서
여러 곳을 헤매면서 선지식을 찾아가네.”

광령조(廣靈祖)가 상당하여 말했다.
“여러분, 말해보라. 마음이 있어야 편안한가? 마음이 없어야 편안한가? 마음이 있다 하자니 혜가는 말하기를 ‘마음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 없다’ 하였고 마음이 없다고 하자니 달마가 말하기를 ‘그대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하였다.

그러나 혜가는 벌레가 나뭇잎을 먹는 것 같았고 달마는 우연 글자를 이룬 것 같다는 후대의 아손들이 거짓과 메아리를 주고받으면서 있다거나 없다거나 한다. 그러므로 있다고 말하려 하나 형상도 이름도 없고, 없다고 말하려 하나 성인은 그로서 신령스럽다.…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말해보라.”

감상
달마가 9년동안 소림에서 면벽하고 있을 때 신광(神光)이란 좌주가 찾아왔다. 그는 탄식하기를 ‘공자나 노자의 교는 예법과 법규일 뿐이고 노자나 주역의 서적은 묘함이 극진하지 못했다. 요즘 달마대사의 소식을 들으니 지극한 사람으로 내지 않은 곳에 계시니 현묘한 경지에 나아가리라’고 했다. 신광은 달마에게 부처님의 법을 듣기 위해 추운 겨울날 키높이 눈 속에 서 있었고, 그래도 부족하자 팔도 끊어 스승에게 바쳤다. 혜가에게 준 달마의 가르침은 일견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신광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온갖 번뇌와 망상을 깨뜨려 버린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것은 현묘한 경지까지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의 법인은 남에게 들어서 얻는 것이 아니다. 네 자신이 찾아보라고 달마는 말한다.

마침내 마음을 찾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가서야 달마는 그에게 깨달음을 인가한다.
‘만경의 끊없는 갈대밭 속에 도사린 어부마다 낚시대’를 가졌구나. 돌 부딪치는 불빛과 번개불이 번득이는 곳까지 나아가도 달마의 말을 알아 듣기 쉽지 않으리라.’

15. 달마의 골수를 얻다(得髓)

본칙
달마 대사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시기가 가까워진다. 그대들은 제각기 얻은 바를 말해 보라”

도부(道副)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엔 문자에 집착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은 것으로써 도를 삼아야 되겠습니다.”
조사께서 “그대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고 말씀하셨다.

총지(摠持) 비구니가 말했다.
“제가 알기에는 경희(慶喜)가 번뇌없는 국토를 보는 것 같아서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않습니다.”
조사께서 “그대는 나의 살(肉)을 얻었다” 하셨다.

도육(道育)이 대답하되 “사대(四大)가 본대 공하고, 오온(五縕)이 있지 않으니, 제가 보는 바로는 한 번도 마음에 들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조사께서 “그대는 나의 뼈를 얻었다” 하셨다.

마지막으로 혜가(慧可)가 나와서 세 번 절하고 제자리에 서 있으니, 조사께서 “그대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하셨다.

염·송·어
남명전(南明泉)이 송했다.
“문채없는 인장을 몸소 제시하던 날
도육과 총지가 모두 무시했네.
깊은 산 눈 속에 서 있던 사람만이
세 번 절하고 눈썹이 곤두섰네.
눈썹을 곤두세운 이여!
가죽을 얻었다, 골수를 얻었다 함이 당나라를 속였네.
소실(小室)의 바위 앞엔 티끌 하나 없거늘
뉘라서 신 한 짝 들고 인도로 갔다 하는가.
꽃들이 해 아래 방글거리며 봄이 깊었고
낙엽이 바람 아래 나부끼니 가을이 늦었네.
조사께서 오셨다. 빨리 살펴라.
대중은 보았는가?”

취암종(翠岩宗)이 염했다.
“나는 여기에 가죽도 뼈도 살도 골수도 없으니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해보라 당시에 양(梁)왕의 앞에서 끌어낸 것이 가죽인가? 골수인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뜻을 알겠는가.”

감상
깨달음은 깨달음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말이 필요없다. 부처님이 가섭에게 꽃 한 송이를 보이고, 부처님의 질문에 문수가 침묵한 것처럼 달마가 혜가에게 법을 전하는 이치는 그와 같다.

살이다, 가죽이다, 뼈다, 골수다 하는 것은 필요없는 분별을 일으키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당나라를 속인 자는 천하는 속인다. 그런데, 정작 그대는 양 무제 앞에서 무엇을 끌어내었는가. 돌아보지 않고 갔다는데, 관속에 남긴 짚신 한 짝은 또 무슨 연고인고. 꽃들이 해 아래 방글거리니 조사 아닌 조사가 또 다시 찾아 왔구나. 사방 둘레를 살펴보라. 조사가 오셨구나.

16. 바람과 깃발(風幡)

본칙
6조 혜능대사가 인종법사(印宗法師)의 회상에 있을 때 두 스님이 바람과 깃발을 보고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바람이 움직인다’하고 다른 하나는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였다.

이에 6조가 말하되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하니 두 스님이 깜짝 놀랐다.

염·송·어
대홍은(大洪恩)이 송했다.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니 어디서 찾으랴.
바람과 기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남의 말만 따르는 일, 큰 잘못이다.
한 마디가 근기에 맞는다 해도 크게 어긋나리라.
잘못이여, 잘못이여!
콧구멍이 하늘을 흔들어서 구멍을 내었네.”

안탕천(雁蕩泉)이 송했다.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라니
벼 베는 낫의 날이 초생달 같구나.
조사의 정확한 말 뜻 뉘라서 알꼬.
남악과 천태 사이엔 만 겹의 산이 있네.”

원통수(圓通秀)가 송했다.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라니
이것을 밝힐지라도 마음을 깨닫기는 쉽지 않으리.
이러쿵 저러쿵한 말 알려 말고
찰간대 위를 조용히 살펴보라.”

장노색(長蘆 )이 송했다.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닌 것이 찰간 깃대 끝에 한가로이 보이네.
원통(圓通)의 불법이란 별난 것이 아니라서 여전히 콧구멍은 눈앞에 있네.”

감상
바람이나 깃발을 보지 말고, 콧구멍을 보라. 마음이다 아니다 또한 부질없다. 찰간대 위에 움직이지 않는 한가로운 마음이 있다.

마음을 깨닫는데, 마음이라고 하면 벌써 마음이 아니다. 바람이 깃발을 흔드니 깃발이 휘날리는데, 휘날리는 것만 본다면 마음은 마음이 아니다. 휘날리지 않는 마음의 자리를 찾는 것이 마음을 깨닫는 길이리라.

눈앞의 콧구멍도 보지 못하는데, 무슨 마음의 깨달음이 있겠는가.
청마(靑馬)는 〈깃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지어의 손수건’.

여기서 끝내야 하는 시를 그는 여기서 끝내지 못하고 더 나아가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이라고 부연했다.

하늘에 깃발을 맨 처음 단 그는 6조 혜능이 아닐까. 발레리는 명시 〈해변의 묘지〉에서 ‘바람이 인다…살려고 애써야겠다’고 했다.

17. 벽돌 갈기(磨塼)


본칙
마조(馬祖)가 좌선을 많이 했는데, 회양(懷讓)선사가 어느 날 벽돌을 들고 가서 그의 암자 앞에서 갈았다.

이를 본 마조가 물었다.
“벽돌은 갈아서 무엇하십니까?”
“거울을 만들려 한다.”

마조가 다시 물었다.
“벽돌을 갈아서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벽돌은 갈아서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찌 부처가 되겠는가?”

마조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찌 하여야 되겠습니까?”
“수레에다 소를 메워 끌게 하는데 수레가 가지 않거든 소를 때려야 되겠는가? 수레를 때려야 되겠는가?”

염·송·어
법진일(法眞一)이 송했다.
“좌선해서 부처되려는 짓 헛일이 분명하니
수레가 안 가거든 수레를 치지 말라.
지껄이고 침묵한 것, 모두가 선정(禪定)인데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하는 것 잘못이다.”

열재거사(悅齋居士)가 송했다.
“수레를 치고 소를 치는데 어느 것이 옳은가
귓밥을 만지다 코끝을 잃었네.
다시 한 가닥 그대에게 보이노니
문수보살 이름은 경희(慶喜)로다.”

송원(松源)이 송했다.
“평생의 속마음 속임없이 털어 놓아
허물이 하늘 땅에 가득하였네.
귀찮은 마조가 소란을 피운 뒤에
지금껏 저울눈을 잘못 알고 있다네.”

진정문(眞淨文)이 상당하여 말했다.
“조사가 서쪽에서 와서 교리 밖에 따로 전한 것은 마치 소에 수레를 끌렸을 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소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과 같다. 대중이여, 사람마다 한 마리의 검은 암소(水 牛)를 가지고 있어서 수레를 끄는데, 털빛과 마음씨가 제각기 다르다. 붉은 것, 흰 것, 푸른 것, 누른 것, 검은 것이 있으니 지금 채찍 맞기를 기다리지 말고 각자 수레를 끌고 방으로 가서 차나 마셔라.”

감상
앞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채찍으로 수레만 때릴 것이니 어찌 수레가 앞으로 나가겠는가. 좌선을 통해 부처가 되겠다고 산간 계곡에 한량없이 앉아 있는 납자들이여, 제 마음의 소를 채찍으로 후려쳐라.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벽돌을 갈아 거울로 만들려는 수많은 경문주석가들이여, 부스러지는 흙덩이에서 무엇을 찾겠는가. 만일 수레를 쳐서 소를 나아가게 한다면, 채찍 그림자를 보고도 달리는 말이 될 것이다. 마음 속의 검은 암소 마음씨가 제각기 다르다. 헛되이 수레를 치지 말라.

18. 달 밝은 강(江月)

본칙
영가(永嘉)의 증도가(證道歌)에 말하되 “강위에 달 밝고 돌 사이 바람 맑으니 긴긴 밤 맑은 하늘 아래 무엇을 할꼬? 불성(佛性)과 계주(戒酒) 마음 자리에 새겼고, 안개·이슬·구름·노을은 몸 위의 옷이로다” 하였다.

염·송·어
지해일(智海逸)이 말했다.
”여러 선사들이여, 강에 달 비치니 한산(寒山)은 손뼉치고, 습득(拾得)은 깔깔 웃는다. 솔바람이 부니 서른 세 조사가 손을 잡고 돌아간다.

‘긴긴 밤에 무엇을 할꼬, 하니 징세사(徵世師) 부처가 무안하구나. 당당하기는 왜 그리 당당한고! 불성과 계주 마음 자리에 새겼다느니’ 하고 주장자를 들어 올리고 말하되 ‘산하대지도 마음 자리에 새긴 것이 아니요. 주장자도 마음 자리에 새긴 것이 아니다. 안개·이슬·구름·노을이 옷이라면 몸은 어디에 있는가? 어찌하여야 한 조각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전하는 말에 ‘해가 솟아도 바위틈은 어둡고 구름이 나면 골짜기가 어둡다. 그 틈에 부잣집 아이들이 있는데 모두가 바지가 없다고 했다’고 했느니라.”

승천종(承天宗)이 말했다.
“‘강 위에 달비치…무엇을 할꼬’ 까지 듣고 또 약산(藥山)의 ‘한가히 앉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고 했으니, 여기에 들어갈 곳을 찾으면 그는 건곤을 평정할 수 있으리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본성과 계주를 마음 바탕에 새겼다’라는 말을 빌어 주장자를 높이 들고 말하되 ‘마음 바탕에 새긴 것이 아니니라. 안개·이슬·구름·노을이 몸 위의 옷이니라’하고 ‘건곤이 확 티었거늘 안개와 이슬이 어디서 생겼다는 말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정기를 모아야 돌부처를 뵈올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이 주장자를 두 손에 전해 주리라’하고는 주장자를 던져 버렸다.”

황룡천(黃龍淸)이 상당하여 말했다.
“강 위에 달이 밝고 솔바람 맑으니
긴긴 밤 맑은 하늘 밑에 그 누구이던가.
안개·이슬·구름·노을 막을 수 없어 속에서
불여귀(不如歸)를 우짖네. 어디로 돌아가야 할꼬.
연잎은 둥굴둥굴어서 거울 같고,
마름 뿔은 뾰족뾰족해서 뾰족한 송곳같네” 하였다.

감상
영가 현각이여, 당당하고 거침이 없구나. 깊게 눌러 앉은 도심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네. 몸과 마음이 따로 놀면 밝은 달이나 맑은 강바람이 부는 소용이 있겠는가.

안개, 이슬과 구름, 노을 몸 위에 걸쳐 툭 터진 천지자연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니라. 해인신(海印神)이 “고기잡이 노인이 낚싯대를 끌고 깊은 강에 들어가니 갈매기떼 놀라 깨어 사방으로 날아가네.”라고 말했으니, 놀란 갈매기떼가 지금도 도처에서 날아 오른다.

 

19. 세번 부르다(三喚)


본칙
충국사(忠國師)가 어느날 시자(侍者)를 부르자 시자가 대답했다.
이와 같이, 세 차례 불러 세 차례 대답하니, 국사가 말하되 “내가 너를 배반한다고 여겼더니 네가 도리어 나를 배반하는구나” 하였다.

염·송·어
보령수(保寧秀)가 송했다.
“국사의 말씀이 헛되지 않거늘
시자는 세 번 불러도 소식이 없네.
평생의 심정은 다 쏟아 바쳤으니
안면 있는 이가 안면 없는 이만 못하네.”

승천회(承天懷)가 송했다.
“국사가 세차례 부른 것은 까닭이 있겠거늘
시자는 소리 내여 하나하나 대꾸했네.
그 속의 분명한 뜻 알지 못하여
도리어 배신자 되어 일생 일 그르쳤네.”

열재거사(悅齋居士)가 송했다.
“세 번 불러도 아무도 그를 몰라서
지금껏 천년 동안 그에게 속았네.
꽃 지고 물 흐르니 내가 그대를 저버리고
달 밝고 물 맑으니 그대가 나를 저버린다.”

지문조(智門祚)가 상당했는 때 어떤 중이 물었다.
“국사가 시자를 세번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아기를 귀여워하면 추한 줄을 모른다.”

다시 물었다. “국사가 시자를 져버렸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맛 좋은 음식이라도 배부른 사람의 입에는 맛이 없느니라.”

다시 물었다. “시자가 국사를 져버린 뜻은 무엇입니까?”
“뼈를 갈고 몸을 부숴도 갚을 길이 없느니라.”

감상
국사는 왜 자기의 부름에 세 번이나 응답한 시자에게 자기를 져버렸다고 말한 것일까. 앞 뒤의 문맥이 잘려 있어 실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분명히 국사가 시자의 깨달음을 시험한 경우였을 것이다.

국사의 부름은 네가 진리를 아느냐 또는 네가 내 마음을 아느냐 하는 것이었으리라. 시자가 바보같이 세 번씩이나 대답만 하고 있으니 국사는 시자에게 배반 당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제자를 시험하니 스스로 내가 너를 배반하였다고 하였고, 그 시험에 참뜻은 알지 못하니 네가 나를 배반했다고 하는 것이다.

스승이 이렇게 부른다면, 대답을 할 것이 아니라, 대번에 달려들어 코를 비틀어 놓아야 할 것이다. 사자는 금덩어리를 물고, 개는 돌덩이를 쫓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20. 여릉(廬陵)의 쌀값


본칙
어떤 중이 어느 날 청원(淸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여릉(廬陵)의 쌀값은 어떤가” 청원이 말끝을 흐렸다.

염·송·어
천장초(天章楚)가 송했다.
“여릉의 쌀값이 어떤고 하니
싸거니 비싸거니 팔 겨를이 없네.
팔 겨를이 없다니 어름어름 하지마소.
겨울에 밭을 갈고 봄에는 씨뿌린다.”

황용남(黃龍南)이 송했다.
“여릉의 쌀값이 해마다 바뀌는데
길가에서 들은 소문 거짓일까 두려워
큰 시세는 샛길에서 물을 필요 없나니
비싸고 싼 것은 장사꾼을 찾아가라.”

운문고(雲門 )가 송했다.
“청원(淸源) 노장이 어쩔 줄 몰라
불법을 물었는데 쌀값으로 대꾸하네.
털끝만치 어긋나면 뒷공론만 만드니
눈도 코도 없건만 사람을 놀래주네.”

운대정(雲臺靜)이 송했다.
“여릉의 쌀값을 어떻게 대꾸할꼬.
선객을 만나면 끝없이 서성대네.
옛사람의 분명한 속마음을 알려는가.
산전(山田)에 보리 익어 가을 풍경이 족하네.”

무진거사(無盡居士)가 송했다.
“청원(淸源) 한 가닥이 소림에서 나왔는데
신의(信衣)가 와서 마음만을 전하네.
평상시에 법문한 것 아는 이가 없어서
모두가 여릉의 쌀값을 알고자 하네.”

열제거사(悅齋居士)가 송했다.
“여릉의 쌀값이 얼마나 되는가?
보름에는 달이 크고 그믐에는 적다네.
다시 강변에 혼자 깬 사람 있어
눈을 뜨고 새벽까지 꿈을 꾸고 있다네.”

감상
봉지쌀을 사다 먹던 시절이 있었다. 쌀가마니로 부의 척도를 가늠하던 시기가 있었다. 쌀값에 따라 민심이 좌우되고, 정치가 뒤바뀌는 시절 쌀값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절박한 관심거리였다.

평상시 아무리 불법을 가르쳐주어도 모르던 어떤 청맹과니가 물었다.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무어라고 답할까. 청원거사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쌀값은 오르내리고, 보름달은 크고 그믐달은 작다. 쌀값을 물어보지 마라. 네 마음이 쌀값이다. 쌀값을 모르느냐. 바보도 알 것이다. 불법의 참뜻은 쌀값이다. 쌀값을 알려고 분주하게 다니는 자는 헛것을 좇게 된다. 그런 자는 쌀값도 모를 것이다.

진정으로 쌀값을 알려고 하는 자는 불법을 생각하라. 불법의 참 뜻이 거기에 있다. 소문을 좇아다니거나 샛길에서 묻지 마라. 불법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장사꾼에게 묻지 마라. 불법은 값이 없다. 눈도 코도 없는 쌀값이 불법을 묻는 사람들의 코를 비뚤어 놓는다.

 

21. 소금과 장(鹽醬)


본칙
강서 마조(江西 馬祖)에 대하여 회양(懷讓)선사가 말하기를 “도일(道一)이 강서 지방에서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면서도 전혀 아무런 소식을 전해 오지 않는구나” 하고는 스님 한 명을 마조에게 보내면서 당부하기를 “그가 상당(上堂)하기를 기다렸다가 나서서 묻되 ‘어떻소’하기만 하고 그가 무어라 하면 기억해 가지고 오라” 했다.

그 스님이 분부대로 가서 물으니 마조가 대답하되 “오랑캐의 난리가 있은지 30여년 동안 일찍이 소금과 장(鹽醬)이 없었던 일이 없었네” 하였다.

염·송·어
죽암규(竹庵圭)가 송했다.
“오랑캐 난리 난지 30년 동안
소금과 장이 없을 적이 없었으니
강서의 마대사가
남악의 회양화상이로다.”

열재거사(悅齋居士)가 송했다.
“반야다 보리다 말을 말아라.
말로써 친해질 때 길은 더욱 멀도다.
황금 털빛 사자후를 보려하는가!
짐작대로 자고(鵠)새의 울음소리로다.”

운문고(雲門日木)가 말했다.
“달마가 인도로부터 문채(글) 없는 인장을 하나 가지고 와서 2조(二祖)의 얼굴에다 한번 찍으매, 찍기를 다하고 2조가 이 인장을 얻어서는 털끝만치도 변역시키지 않고, 3조의 얼굴 앞에다 찍어 다하니, 이로부터 한 사람이 허(虛)를 전하매 만 사람이 실(實)을 전하며 대를 바꾸면서 주고받아 강서의 마조에 이르러 이 인장을 회양 화상에게 얻고는 말하되 ‘오랑캐 난리가 있은 지 30년 동안 일찍이 소금과 간장이 없은지 없다’ 하였다”하고 할을 한 번 하고 다시 말하되 “인장에 문채가 생겼구나”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조사의 문하에 남의 코를 꿰뚫는 소식은 모두가 이 한 구절에서 나왔다. 그대들은 이 한 구절이 어디에서 나왔다고 여기는가? 소를 때리고 수레를 때리는 데서 나왔느니라” 하였다.

감상
남악에 회양선사가 있으니 강서에 마 대사가 있구나. 달마가 무문인(無文印)으로 깨달음을 전하니, 선가의 인장은 모두가 무문인이라. 깨달음의 법(心法)은 한오라기라도 가감할 수 없는 오직 문채 없는 인장(無文印)이라야 가하다. 무문인은 변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조가 뭐 하는지 궁금하여 회양이 사람을 보내 물으니 마조가 대답한 것이 소금과 장이다.

회양이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역시 너로구나 하였으리라. ‘30년 난리에도 저는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마조가 스승에게 답한 것이다.

두 산봉우리가 우뚝하니 30년 난리에도 천하가 편안하다.

 

22. 달구경(翫月)

본칙
마조(馬祖)가 달구경하다가 곁에 있는 제자 세 사람에게 말하되 “이럴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장(智藏)이 대답했다. “공양하는 것이 매우 좋겠습니다.” 회해(懷海)가 대답했다. “수행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보원(普願)은 소매를 저으며 가버렸다.

이에 선사가 말하되 “경(經)은 장(藏)으로 들어가고 선(禪)은 해(海)로 들어갔는데 보원만이 홀로 사물 밖으로 뛰어났구나.”

염·송·어
동림홀(東林 )이 송했다.
“경은 장(藏)으로, 선은 해(海)로 드는데
보원만이 혼자서 사물을 뛰어넘네.
돌(口出)!
벽을 비추는 달만 있을 뿐
잎새를 나부끼는 바람은 없네”

장산근(蔣山勤)이 송했다.
“교교(皎皎)하며 하늘에 푸른 기운 엉키고
침침(沈沈)하며 흰 빛을 뿜어내나니
가을빛과 뒤섞여 밝고 밝은 것
밤새도록 하늘에 두둥실 떴네.
수행과 공양이 원기(圓氣)에 맞건만
듣자마자 떠남은 세상을 초월하네.
망아지 한 마리 분명히 자별하여
만고에 건곤을 안정시키고
한 마디로 죽였다 살렸다 하네”
또 말하되 “보다 높은 곳에 눈을 돌리라” 하였다.

천장월(天章月)이 한 가운데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마대사가 금강같은 안목을 갖추고 보원에게 다른 두 사람을 초월하는 안목이 있음을 가려냈으나 홀로 사물 밖으로 뛰어났다는 티는 면치 못했네. 대중 가운데 보원을 뛰어넘을 자가 없는가? 있다면 나오라. 그대들을 위해 점검해 주리라.

만일 없다면 산승(山僧)이 그대들을 위해 주를 내지 않을 수 없다. 혹 어떤 이가 말하기를 천장에게 묻기를 ‘이럴 때 어찌할꼬’하면 천장은 대답하기를 ‘산승은 전과 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노라’하리라. 말해 보라. ‘천장과 남전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고?’하고, 양구했다가 ‘누른 꽃은 제대로 누른 꽃이요, 푸른 대는 제대로 푸른 대니라’하고 참하였다.”

감상
밝은 달밤 마조는 달구경을 했다. 환한 보름달이었을 것이다. 망연히 달을 바라보는 마조는 혼잣말처럼 이런 밤에는 어찌하는 것이 좋을 것일까 하고 중얼거렸다.

옆에서 시종하던 제자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는다. 혹시 심법이 다른 이에게 넘어가지 않을까 해서다. 스승이 갑자기 시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 지장은 공양이(어쩌면 곡차 공양일지도 모른다) 좋다고 했고, 스승이 수행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회해는 수행이 좋다고 했으나, 답하지 않고 사라져버린 보원이 뛰어나다고 마조가 말한 것은 무슨 연고일까.

이따위 허튼 수작을 하는 스승의 코를 비틀어 놓지 않은 것이 다행이리라. 그러나 그들 모두 마조의 질문에 코가 꿰인 것이니 ‘보다 높은 곳에 눈을 돌리라’ 하거나 ‘산승은 전과 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노라’하여야 하리라.

 

23. 서강의 물 마시기


본칙
마조에게 방거사(龐居士)가 물었다. “만 가지 법과 짝이 되지 않는 이가 누구입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신 뒤에야 말해 주리라.” 이 말을 듣고 거사가 당장 깨달았다.

염·송·어
투자청(投子靑)이 송했다.
“부모를 오랫동안 헤어졌으니
모시게 되면 힘을 다 해야 되리라.
나무 허수아비가 밤중에 지껄이니
밖의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라.”

석문이(石門易)가 송했다.
“천지에 홀로 가는 사람에게 묻노니
전부를 내어주며 친하다 외치누나.
서강 물 다 마시어 한 방울도 없으니
목구멍이 길목임을 뉘라서 알았으랴.”

백운연(白雲演)이 송했다.
“한 입에 서강의 물 다 마시라니
낙양의 모란꽃이 새로이 잎을 피네.
흙을 뒤지고 먼지를 날려도 찾을 수 없네.
고개를 들자마자 제 자리에서 만나네.”

죽암규(竹庵珪)가 송했다.
“큰 바다에는 파도가 얕고
작은 사람의 마음은 깊다.
바다는 마르면 바닥이 보이나
사람은 죽어도 마음은 알 수 없다.”

불과근(佛果勤)이 심요(心要) 법문을 할 때 말했다.
“이 얼마나 가깝고도 긴요한 말씀이거늘 어째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다시 다른 사람을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속으로 빠져 들어가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리라.

대다수 학자들이 으레 그렇게 따지면서 지껄여, 들어맞기를 바라니 이 어찌 생사를 벗어나려는 견해라 하겠는가! 생사를 벗어나려면 꼭 마음 자리를 틔우라. 이 공안은 마음 자리를 틔우는 열쇠이며, 약숟갈이라.

오직 분명히 하기를 바라야 한다. 말 밖에서 뜻을 얻어야 비로소 의심 없고 경지에 이르리라?”

감상
말 밖에서 뜻을 얻어야 생사를 벗어나는 마음 자리를 얻는다. 마조의 과장된 말 속에서 방거사는 어떤 말 밖의 뜻을 얻어 당장에 깨달았다는 것일까.

투자청은 “밖의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고, 석문이는 “목구멍이 길목”이라고 하였다. 한용운이 ‘만해(萬海)’인 것은 고행 끝에 득도한 그가 법회에 나갔을 때 증명법사인 만화(萬化) 스님이 “한 입으로 온 바닷물을 다 마셔버렸구나(一口汲盡萬海水)”에서 비롯된다.

마조의 말 한 마디에 서강의 물을 목구멍으로 다 마신 방거사야말로 천지에 홀로 가는 사람이다.

24. 일면불(日面佛)


본칙
마대사(馬大師)가 불편하거늘 원주(院主)가 와서 물었다. “화상(和尙)! 요즘 병세가 어떠하십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

염·송·어
장산천(蔣山泉)이 송했다
“일면불 월면불이여.
외로 돌고 오른쪽으로 구른다.
당나라에서 북을 치면 신라에서 활을 쏘고
시냇물은 앞뒤 개울에 있는데
지는 꽃은 분분하네.
귀먹어리는 천둥소리 듣지 못하며
공연히 구름 위에 번개빛만 보더라.”

운대정(雲臺靜)이 송했다.
“일면불 월면불을 알려면
좌우로 두리번거리지 말라.
화살은 당장에 신라를 지났거늘
허공에는 공연히 번개만 치네.”

법진일(法眞一)이 송했다.
“일면불과 월면불이
분명히 나타났으니
늪 밑의 가을 하늘
눈앞에서 뉘 가리리”.

장영탁(長靈卓)이 송했다.
“일면불 월면불이여.
큰 바다에 파도가 번득이고
수미산이 우뚝 솟았다.
뒤통수를 후려치니
이마에 땀이 솟았다.
눈 밝은 납자도 분간키 어려워서
고개 들고 하늘에 치솟은 매를 찾고 있구나.”

개암붕(介菴朋)이 송했다.
“일면불 월면불이여.
우뢰가 번개를 치는 구나.
비가 개이고 구름이 흩어지니
긴 강이 비단같다.”

죽암규(竹庵珪)가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병이 고황에 스며들었구나.”

감상
마조의 병이 깊어지자 원주가 문안을 드렸다. 마조는 병에 대해 말하지 않고 원주에게 마지막 화두를 던졌다. 다 죽어가는 사람이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라니 웬 엉뚱한 어법인가.

월면불은 그 수명이 하루 낮 하루 밤이고, 일면불은 1800세이다.

마조가 단명불과 장면불을 다 들어 보인 것은 무슨 뜻일까. 첫째 해와 달을 보듯이 부처님을 생각하라는 뜻이고, 둘째, 삶의 길고 짧음은 문제가 아니라는 뜻도 된다.

밤낮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석하면 열반이 멀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김소월은 사랑하는 마음을 ‘자나 깨나 / 앉으나 서나 / 그림자같은 벗이 하나이 내게 있습니다’ 라고 했다.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달을 보고 부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마조의 마지막 가르침이 아닐까.

25. 눈 비비기

본칙
길주(吉州) 탐원산(耽源山)의 진응(眞應) 서사가 국사의 곁을 하직하고 본사로 돌아가려 하면서 마조(馬祖)를 뵙고, 땅 위에다 원상(園相) 하나를 그리고, 방석을 펴고 절했더니, 마조가 물었다. “그대는 부처가 되고 싶은가?”

선사가 대답했다.
“소승 눈을 비빌(目) 줄을 모릅니다.”

마조가 말했다.
“내가 그대만 못하구나.”
그러자, 선사는 아무 시늉도 하지 못했다.

염·송·어
설두(雪竇)가 염했다.
“비록 사나운 범이라도 새끼를 잡아먹지 않는다지만 오늘 말이 풍부하지 못한 바에야 어쩌랴. 여러분은 탐원을 알고자 하는가? 고작해야 몸을 숨기고 그림자를 드러내는 바보일 수밖에 없다.

감상
탐원은 원상(圓相)을 그려 마조의 코를 납작하게 하고 싶었다. 아니 스승에게 자기의 깨달음을 알린 다음 하직을 고하고 싶었다. 원상은 모자라지도 않고 남지도 않고 완전히 둥근 상으로 진여(眞如), 불성(佛性), 실상(實相) 등을 상징한다.

원상을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마조에게 절했으니 마조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조는 여기서 역습으로 나갔다.

네가 이러고 앉아 있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었다는 뜻이냐. 아니면 부처가 되고 싶다는 뜻이냐. 탐원도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 또한 독하게 마음먹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승은 눈을 비빌 줄 모릅니다.”

아마도 탐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저는 헛것을 일으킬 줄 모릅니다’ 라고 답한 것이다. 마조의 질문에 정면으로 답한 것은 아니지만, 탐원은 ‘이제 저는 헛것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라고도 답한 것이리라.
이에 대해 마조의 답변이 뛰어나다.

“내가 그대만 못하구나.”

말의 표현으로 보자면, 마조가 제자인 탐원의 깨달음을 크게 칭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너는 훌륭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구나’ 하는 뜻이다. 이 말뜻을 탐원이 알아들었기 때문에 그는 아무 시늉도 할 수 없었다.

왜 그러할까. 설두의 염이 날카롭다. 탐원은 일원상에 몸을 숨겼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탐원이 그가 그린 일원상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마조의 답은 그러므로, 새끼를 잡아먹은 범과 같다는 것이 설두의 통찰이다.

“내가 그대만 못하구나” 라는 마조의 답은 “아직 그림자에 갇혀 있으니 더 정진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26. 들오리(野鴨子)

본칙
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가 마조를 따라 길을 가는데 들오리떼가 날아갔다.
마조가 물었다. “저게 무엇인고?”
선사가 대답했다. “들오리입니다.”
마조가 물었다. “어디로 갔는고?”
선사가 말했다. “날아갔습니다.”
마조가 재빨리 선사의 코를 비틀자 선사가 소리지르니 마조가 말한다.
“어디로 날아갔느냐?”

염·송·어
설두현(雪竇顯)이 송했다.
“들오리가 얼마나 되던고?
마조가 보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네.
이야기는 산, 구름, 바다, 달의 뜻 다하였거늘
여전히 알지 못해 날아가 버렸네.
날아가려 하는데 곧 붙들었으니 말해보라.”

장산근(蔣山勤)이 송했다.
“들오리 앞개울을 지나갔는데
천 봉우리 찬 빛이 늠름하다.
돌아볼 때 돌아 갈 줄 몰라서
곁에서 충격 주어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네.
의심은 깨트리어 어지러움 사라지니
산들바람 솟구쳐 하늘로 치솟았네.
구름 낀 산, 달 뜬 바다 모두가 딴 일이니
한 마디 종지에 맞는 때만 나라가 조공을 바쳐 온다.”

불감근(佛鑑勤)이 송했다.
“마대사가 그대의 무식함을 가엾이 여겨
오리를 들추어서 소식을 전해 주었네.
코끝에 선지피가 흐르게 될지라도
노파의 애끓는 마음 공연히 다했으리.”

감상
마조를 친견하고 곧 시자가 된 백장은 3년이 지나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대중공양을 할 때 백장이 호떡 뚜껑을 열 때마다 마조는 호떡을 하나 꺼내들고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백장은 겨우 3년이 지나서야 그 뜻을 알았다. 들오리 이야기가 그 결정적인 국면을 보여준다. 하늘에 날아가는 것이 들오리인 줄 누가 모르겠는가? 다 아는 일을 물어보는 것은 짐짓 깨달음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함인 것이다. 호떡을 꺼내들고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듯이 저것이 무엇인가라고 묻고 그 다음 그것 어디로 날아 가는가까지 물어도 백장은 스승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했다.

꽉 막힌 백장의 코를 피가 나도록 비틀어줌으로써 마조는 스승으로서 일을 다 했다. 코가 비틀리고 피가 터지는 순간 아픔과 더불어 등골이 서늘함을 깨달은 것이 백장이다.
코가 비틀리고, 엉엉 울고 난 백장은 동료를 통해 마조의 시험을 확인한 다음 세상이 떠나가도록 웃었다고 한다. 오늘 백장은 이제 어제의 백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여우(野狐)

본칙
백장(百丈)이 매일 설법을 하면 의례 한 노인이 법문을 듣다가 대중을 따라 흩어졌다. 어느날은 가지 않고 있기에 선사가 물었다.
“서 있는 이는 누구인가?”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과거 가섭불(迦葉佛) 때에 진작 이 산에 살았었는데 어떤 학인이 묻기를 ‘크게 수행하는 이도 인과에 떨어집니까’하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하고서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지금 바라옵노니 화상께서는 한 마디 말씀을 해주십시오.”

선사가 말하되 “물어 보라”하니 노인이 다시 묻되 “크게 수행하는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느니라.”

노인이 말 끝에 크게 깨닫고 하직을 하면서 아뢰었다.
“저는 이미 여우의 탈을 면했습니다. 이 산 뒤에 시체가 있사오니, 죽은 중을 천도하는 법식에 의해 주옵소서.”

선사가 유나(維那)를 시켜 종을 쳐 대중에게 알리게 하고, 공양 끝에 시달림 운력을 부쳤으나 대중은 어리둥절하였다.

염·송·어
천복일(薦福逸)이 송했다.
“떨어지지 않음과 어둡지 않음은
앞 뒤의 백장이 한 말인데
반 근이라 하면 저울 눈이 모자라고
여덟 양이라 하니 덜 맞도다.
덜 맞음이여!
남겨 두어서 천하의 납자들이 들추게 하라.”

상방익(上方益)이 송했다.
“떨어지지 않는다 어둡지 않는다.
또박또박 분명히 이야기 하였으니
달은 싸늘한 못에 비치고
바람은 묵은 회나무(檜)에서 난다.
날랜 매는 하늘 높이 솟았거늘
미친 개는 흙덩이를 쫓는구나.
말은 허물이 적어야 하고
행동은 후회가 적게 하라.”

심문분(心聞賁)이 상당하여 말했다.
“이 한 토막의 이야기를 총림에서 따지는 이가 심히 많으나 여우떼만 늘어날 뿐 말 끝은 본체(本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서암(瑞岩)이 오늘 구업을 겁내지 않고 여러분을 위하여 분명히 설파하리라. 알기를 바라는가? 오백생 동안 굴욕을 받은 것은 그 떨어질 락(落)자를 몰랐기 때문이요, 천 백 대중이 계교하여 찾는 것은 그 어두울 매(昧)자를 몰랐기 때문이다. 모두 말하건데 이 두 글자의 수수께끼에 얼마나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빠졌던고? 지금 이 두 글자의 떨어질 곳을 알기를 바라는가 하고 주장자를 한 번 세웠다가 내리고 다시 한번 할을 한 뒤에 말하되 ‘벗아났다! 살펴서 주관하라!’ 하였다.”

감상
크게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인과에 떨어져 여우가 된다. 책을 잘못 읽어 지식에 중독된 자도 또한 그와 같다. 수행한다는 것은 인과에 어둡지 않기 위함이다.

근자에 여우의 탈을 쓴 수행자가 도처에 우글거린다. 친일로 굴욕을 치룬 이광수는 훗날 자신의 선은 야호선(野狐禪)이라고 했다. 오백생의 인연이 참으로 깊은 탓이다. 살펴서 어둡지 않게 자기를 주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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