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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시모음

수선님 2023. 7. 2. 13:23

□ 안민학(安敏學)

 

〇석년화(惜年華)

春盡花衰綠葉齊(춘진화쇠록엽제) 봄이 다 가고 꽃은 지는데 푸른 잎은 싱싱한데

年光如夢使人迷(년광여몽사인미) 세월은 꿈같아 사람을 사람의 늙게 하는구나.

流鸎隔樹空相語(유앵격수공상어)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앵무새 공연히 지저귀니

滄海茫茫日又低(창해망망일우저) 푸른 바다는 망망한데 해는 또 지는구나.

 

〚작자〛 안민학(安敏學) 조선 중기의 문신(1542~1601).

자는 습지(習之)ㆍ이습(而習). 호는 풍애(楓厓). 제자백가에 통달하고 필법(筆法)이 뛰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소모사(召募使)가 되어 군량의 수송을 맡았다. 저서에 ≪풍애집≫이 있다.

 

□ 안정복(安鼎福)

 

〇 산거호(山居好)

山人每說山居好(산인매설산거호) 산에 사는 사람 산이 좋자 하네

始信山居好無窮(시신산거호무궁) 산 생활이 한없이 좋음을 이제야 알았다

今日山居何事好(금일산거하사호) 오늘의 산 생활은 무슨 일이 좋은가

世間名利耳專聾(세간명리이전롱) 세상의 명예와 이욕 들리지 않는 것이라네

 

〚작자〛 안정복(安鼎福) 조선 정조 때의 학자(1712~1791).

자는 백순(百順). 호는 순암(順菴)ㆍ한산병은(漢山病隱)ㆍ우이자(虞夷子)ㆍ상헌(橡軒).

이익의 문인으로, 그의 학문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특히 과거의 역사ㆍ지리학을 비판하고 우리 역사의 정통성과 자주성을 세웠다.

저서에 ≪동사강목≫, ≪순암집≫, ≪가례집해(家禮集解)≫가 있다

 

 

 

□ 안중근(安重根)

 

〇 금수강산(錦繡江山)

山不高而秀麗(산불고이수려) 산은 높지 않으나 수려하고,

地不廣而平坦(지불광이평탄) 땅은 넓지 않으나 평탄하다.

水不深而淸淸(수불심이청청) 물은 깊지 않으나 맑고,

林不大而茂盛(임불대이무성) 숲은 크지 않으나 무성하구나.

〚작자〛 안중근(安重根) 독립운동가(1879~1910). 남포에 돈의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쓰다가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 운동에 참가하고,

1909년 만주의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 양경우(梁慶遇)

 

〇 전가(田家)

枳殼花邊掩短扉(지각화변엄단비) 탱자꽃 옆에 사립문 닫혀있고

餉田村婦到來遲(향전촌부도래지) 새참 나르는 시골 아낙 늦게만 느껴진다

蒲茵曬穀茅檐靜(포인쇄곡모첨정) 멍석에는 곡식 말리고 처마는 고요한데

兩兩鷄孫出壞籬(양량계손출괴리) 병아리들 쌍쌍이 무너진 울타리 새로 나온다

 

○ 촌사(村事) - 마을풍경

枳殼花邊掩短扉(지각화변엄단비) 꽃핀탱자 울타리에 낮은사립 닫혀있고

餉田邨婦到來遲(향전촌부도래지) 새참내간 아낙네는 여태아니 돌아오고

蒲茵曬穀茅檐靜(포인쇄곡모첨정) 멍석위에 널린나락 추녀밑에 조용한데

兩兩鷄孫出壞籬(양량계손출괴리) 병아리떼 짝을지어 울타리틈 후벼대네

 

〚작자〛 양경우(梁慶遇, 156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

자는 자점(子漸), 호는 제호(霽湖), 점역재(點易齋) 요정(蓼汀), 태암(泰巖), 교리(校理)를

거쳐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이 되었다. 이조참의가 추증 되었으며, 문집에 <<제호집>.이 있다.

 

 

 

□ 양녕대군(讓寧大君)

 

〇 문녕월흉보(聞寧越凶報)

龍御歸何처(용어귀하처) 임이여 임은 어디로 가셨나요

愁雲起越中(수운기월중) 구름도 시름인양 영월에서 떠오르는데

空山十月夜(공산시월야) 쓸쓸한 가을밤을 지새워 가면서

痛哭訴蒼穹(통곡소창궁) 하늘을 우러러 목놓아 통곡하네

 

〚작자〛 양녕대군(讓寧大君) 조선 태종의 장남(1394~1462).

이름은 제(褆). 자는 후백(厚伯).

세종의 맏형으로 태종 18년(1418)에 세자로서의 실덕(失德)이 많아

궁중에서 쫓겨나 전국을 유랑하며 풍류로 일생을 마쳤다.

 

 

 

□ 양사언(楊士彦)

 

〇 추사(秋思)

高煙生曠野(고연생광야) 넓은 들판에 높이 연기 피어오르고

殘日下平蕪(잔일하평무) 지는 해 수평선 아래로 지는구나

爲問南來雁(위문남래안) 남으로 날아온 기러기에게 묻노니

家書寄我無(가서기아무) 혹 나에게 부쳐온 집 편지는 없느냐

 

〚작자〛 양사언(楊士彦) 조선 시대의 문신ㆍ서예가(1517~1584).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ㆍ완구(完邱)ㆍ창해(滄海)ㆍ해객(海客).

안평 대군, 김구(金絿), 한호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사대 서예가로 꼽히며

시에도 능하였다. 저서에 ≪봉래시집≫이 있다.

 

 

□ 양성지(梁誠之)

 

〇 차영소어(次咏小魚)

雨餘江上綠生鱗(우여강상록생린) 비 갠 뒤 강 위에 비늘 푸른 물고기들

同隊洋洋泳白蘋(동대양양영백빈) 큰 물에 떼지어 흰 마름풀 사이를 헤엄친다

想得盆池煦沫處(상득분지후말처) 생각난다, 분지의 따뜻한 포말이는 곳에서

涪翁經濟本斯民(부옹경제본사민) 부옹이 다니며 사람들 보살핀 곳이 이런 곳이리라

 

〚작자〛 양성지(梁誠之) 조선 성종 때의 문신ㆍ학자(1415~1482).

자는 순부(純夫). 호는 눌재(訥齋)ㆍ송파(松坡).

집현전 직제학, 홍문관 대제학 등을 지내면서

≪팔도지리지≫, ≪해동성씨록(海東姓氏錄)≫,

≪여지승람(輿地勝覽)≫ 따위를 편찬하였다. 저서에 ≪눌재집≫가 있다.

 

□ 양응정(梁應鼎)

 

〇 과어양교(過漁陽橋)

樹色煙光畵太平(수색연광화태평) 안개 낀 나무빛은 태평성대를 그린 듯 한데

河橋猶帶舊時名(하교유대구시명) 물가 다리는 여전히 옛 이름을 가지고 있구나

伊凉若是簫韶曲(이량약시소소곡) 이주가와 양주가가 태평가라면

豈使胡雛犯兩京(기사호추범양경) 어찌 오량캐 새끼가 두 서울을 범하였으리오

 

〚작자〛 양응정(梁應鼎) 조선 명종 때의 문인(1519~1581).

자는 공섭(公燮). 호는 송천(松川). 공조 참판을 거쳐 대사성을 지냈고,

시문에 능하여 이름이 높았다. 저서에 ≪송천집≫이 있다.

 

 

 

□ 어무적(魚無迹)

 

〇 미인도(美人圖)

睡起重門淰淰寒(수기중문심심한) 차가운 날씨에 잠 깬 미인이

鬢雲繞繞練袍單(빈운요요연포단) 잠옷 차림에 검은 머리 치렁치렁

閑情只恐春將晩(한정지공춘장만) 권태로워 다만 봄이 다 지날까봐

折得梅花獨自看(절득매화독자간) 매화가지 꺾어서 혼자서 바라보네.

 

〚작자〛 어무적(魚無迹) 조선 연산군 때의 시인.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잠부(潛夫). 호는 낭선(浪仙). 조선 연산군 때의 시인.

나라 정치의 잘못된 점을 제시, 고발하였다. 관노(官奴)로 면천(免賤)했다

 

 

 

□ 오 숙 (吳熽)

 

〇 만청(晩晴)

稍稍雲移影(초초운이영) 조금씩 구름은 그림자 옮아가고

微微樹帶陰(미미수대음) 희미하게 나무들은 그늘지는구나.

野含芳草性(야함방초성) 들판은 향기로운 풀 맛을 머금고

村見老農心(촌견로농심) 마을에는 늙은 농부의 마음 보인다.

山鳥歸林晩(산조귀림만) 산새는 저녁 숲으로 돌아오고

池魚樂水深(지어악수심) 못 속의 물고기 물이 깊어 좋아라.

登皐倚藜杖(등고의려장) 청려장 짚고 언덕에 오르니

聊復一閑吟(료부일한음) 애로라지 다시 한 번 한가히 읊어본다

 

〚작자〛 오 숙(吳熽) 1602(선조 35)∼1675(숙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예조좌랑, 병조정랑, 흥해군수, 진주목사,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역임했다.

 

 

 

□ 오순(吳洵)

 

〇 화오(花塢)

披書獨坐百花林(피서독좌백화림) 책을 펴 혼자 앉았으니, 온갖 꽃들의 숲

魏紫姚黃淺復深(위자요황천복심) 위자와 요황, 그 빛깔이 옅고도 깊다

讀了塵編欲吟賞(독요진편욕음상) 먼지 낀 책을 읽고, 시 지어 완상하려니

風吹紅雨滿衣襟(풍취홍우만의금) 바람이 불어와, 붉은 꽃비 옷깃에 가득 차네

 

〚작자〛 오순(吳洵) 고려 충숙왕 때 선비. 魁科(괴과,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했다.

 

 

 

□ 오윤겸(吳允謙)

 

〇 소공대(召公臺)

景物隨時好(경물수시호) 경물은 수시로 좋아지는데

民生到處哀(민생도처애) 민생은 가는 곳망다 애처롭다

未宣南國化(미선남국화) 남국의 교화를 펴지 못한채

空上召公臺(공상소공대) 나는 쓸쓸히 소공대를 올라본다

 

〚작자〛 오윤겸(吳允謙) 조선 인조 때의 문신(1559~1636).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楸灘)ㆍ토당(土塘). 광해군 9년(1617)에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임진왜란 때 잡혀간 포로를 데리고 왔으며,

영의정을 지냈다. 저서에 ≪추탄집≫이 있다.

 

 

□ 유근(柳根)

 

〇 봉증류천(奉贈柳川)

書來春去期相訪(서래춘거기상방) 소식은 오고 봄은 가니 만날 날 기약하나

却笑韶華不肯歸(각소소화불긍귀) 꽃 보고 웃으며 돌아가려하지 않네

桃萼漸紅梨雪爛(도악점홍리설란) 복사꽃은 붉어지고 배꽃은 찬란한데

寂寥微雨掩柴扉(적요미우엄시비) 쓸쓸하게도 보슬비는 사립문을 가린다

 

〚작자〛 유근(柳根) 조선 중기의 문신(1549~1627).

자는 회부(晦夫). 호는 서경(西坰). 1578년 문장으로 겐소(玄蘇)라는

일본 승려를 놀라게 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임금을 모신 공으로

부원군이 되었으며, 벼슬은 대제학과 좌찬성에 올랐다. 저서에 ≪서경집≫이 있다.

 

 

 

□ 유몽인(柳夢寅)

 

〇 이천(伊川)

貧女鳴梭淚滿腮(빈녀명사루만시) 가난한 아낙 베 짜니 눈물이 뺨에 가득

寒衣初擬爲郞裁(한의초의위랑재) 겨울 옷, 처음에는 낭군 위해 짜려 했었도다.

明朝裂與催租吏(명조열여최조리) 아침이 되어 끊어서 관리에게 건네니

一吏纔歸一吏來(일리재귀일리래) 한 관리 가자 돌아가자 다른 관리 찾아오는구나

 

〚작자〛 유몽인(柳夢寅) 조선 중기의 문장가(1559~1623).

자는 응문(應文). 호는 어우당(於于堂)ㆍ간재(艮齋)ㆍ묵호자(默好子)

. 설화 문학의 대가였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인조반정으로 벼슬을 내놓고

전전하다가 역모로 몰려 사형당하였다. 저서로는 ≪어우야담≫, ≪어우집≫가 있다.

 

 

 

□ 유방선(柳方善)

 

〇 설후(雪後)

臘雪孤村積未消(납설고촌적미소) 섣달 외딴 마을, 쌓인 눈 녹지 않았는데

柴門誰肯爲相敲(시문수긍위상고) 그 누가 기꺼이 사립문 두들기는가

夜來忽有淸香動(야래홀유청향동) 밤 되어 홀연히 맑은 향기 풍겨오니

知放寒梅第幾梢(지방한매제기초) 핀 겨울 매화꽃 몇번 째 가지인지 알겠노라

 

〚작자〛 유방선(柳方善) 조선 전기의 학자(1388~1443).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 유일(遺逸)로 천거되었으나 벼슬하지 않았고, 시문(詩文)과 여러 학문에 능하였으며, 서거정 등 이름난 선비를 키웠다. 저서로 ≪태재집≫이 있다.

 

 

□ 유성룡(柳成龍)

 

○ 충효지외무사업(忠孝之外無事業)

林間一鳥啼不息(임간일조제불식) 숲 속엔 새 한 마리 쉬지 않고 우는데,

門外丁丁聞伐木(문외정정문벌목) 문밖에는 쩡쩡 벌목하는 소리 들리네,

一氣聚散亦偶然(일기취산역우연) 만물의 원기 모였다 흩어지는 것도 공교로우나,

只恨平生多愧怍(지한평생다괴작) 단지 한스러운 것은 평생 부끄러운 일 많이 한 것일세.

勉爾子孫須愼旃(면이자손수신전) 권하노니 자손들아 꼭 삼가 하여라.

忠孝之外無事業(충효지외무사업) 충효 밖에 달리 해야 할 일은 없는 것임을!

 

〇 풍산도중(豐山途中)

花山東畔一回頭(화산동반일회두) 화산 동쪽 언덕에서 한 번 돌아보니

雲日蒼茫樹木幽(운일창망수목유) 구름 낀 해는 아득하고 나무가 울창하다.

蔓草已能工結恨(만초이능공결한) 덩굴풀 처럼 이미 교묘히 맺힌 나의 한

澄江那得解消愁(징강나득해소수) 맑은 강은 어떻게 시름을 씻어 줄까.

人間得喪元無定(인간득상원무정) 인간의 상실감 시름 원래 정해 있지 않아

宇內形骸正若浮(우내형해정약부) 천지 안의 이 몸이 바로 부평초이로다.

千古至人留一法(천고지인류일법) 천고에 철인이 한 가지 방법을 남겼나니

只將身世倚虛舟(지장신세의허주) 다만 빈 배에 몸을 의지하는 것어라.

 

〚작자〛 유성룡(柳成龍) 조선 선조 때의 재상(1542~1607).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이황의 문인으로, 대사헌ㆍ경상도 관찰사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권율 같은 명장을 천거하였으며, 도학ㆍ문장ㆍ덕행ㆍ서예로 이름을 떨쳤다. 저서에 ≪서애집≫, ≪징비록≫, ≪신종록(愼終錄)≫가 있다.

 

 

 

□ 유숙(柳淑)

 

〇 추일우중유감(秋日雨中有感)

他鄕作客頭渾白(타향작객두혼백) 타향의 나그네 되어 머리가 다 희었는데

到處逢人眼不靑(도처봉인안불청) 이르는 곳마다 사람 만나도 반기지 않는다.

淸夜沈沈滿窓月(청야침침만창월) 밝은 밤 어둑한데 창에 가득한 달빛

琵琶一曲鄭過庭(비파일곡정과정) 비파곡 한 곡조 정과정을 연주해보노라.

 

〚작자〛 유숙(柳淑) 조선 후기의 화가(1827~1873). 자는 선영(善永)ㆍ야군(野君). 호는 혜산(蕙山). 작품에 <추산소림도(秋山蕭林圖)>, <하산욕우도(夏山浴雨圖)>가 있다.

 

 

 

□ 유순(柳洵)

 

〇 서관벽상(書館壁上)

踏盡膠膠撩撩機(답진교교료료기) 어지럽고 시끄러운 세상 일 거의 밟아보고

夢中飛步入經帷(몽중비보입경유) 꿈속에 날듯 걸어서 글방으로 들었소.

隨年白髮徒千文(수년백발도천문) 세월 따라 백발은 부질없이 길어지고

難作淸朝補衰絲(난작청조보쇠사) 나는 맑은 조정의 옷 깁는 실 못 된다오

 

〚작자〛 유순(柳洵) 조선 전기의 문신(1441~1517). 자는 희명(希明). 호는 노포당(老圃堂). 연산군ㆍ중종 때 벼슬을 하였으며, 1487년 형조 참판 때에 중국을 다녀왔다. 중종반정에 공을 세웠으며, 의약과 지리에도 뛰어났다. 왕명으로 서거정 등과 ≪연주시격≫을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 유영길(柳永吉)

 

〇 차촉석루운(次矗石樓韻)

玉窓雲暖小桃嚬(옥창운난소도빈) 구름 따뜻한 고운 창문으로 작은 복사꽃 찡그리는데

惆愴江梅已送春(추창강매이송춘) 강가 매화꽃은 이미 봄을 다 보내는다니 서글러라

畵舸晩移芳洲洎(화가만이방주계) 고운 배는 저녁에 향기로운 풀 우거진 물가로 떠가고

白鷗爭拂鏡中人(백구쟁불경중인) 흰 갈매기는 다투어 거울 같은 물게 비친 나를 스쳐간다

 

〚작자〛 유영길(柳永吉,1538,중종33∼1601,선조34)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덕순(德純)이고 호는 월봉(月蓬)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병조참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600년 예조참판으로 치사하였다.

 

 

 

□ 유희경(-劉稀慶)

 

〇 감회(感懷)

碧空雲盡月輪孤(벽공운진월륜고) 푸른 하늘에 구름 걷히고 둥근 달만 외롭고

虛閣支頤夜坐勞(허각지이야좌로) 빈 누대에 턱고이고 밤에 피곤하게 앉았노라

同里故人多不賤(동리고인다불천) 마을 친구들 천하지 않은 자들도 많은데

此身何事困泥途(차신하사곤니도) 이몸은 무슨 일로 진흙에 빠진듯 곤궁한가.

 

〚작자〛 유희경(-劉稀慶) 조선 선조 때의 학자(1545~1636).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村隱). 예론과 상례(喪禮)에까지 두루 통달하여 국상과 서민들의 장례에도 그에게 자문하였다. 광해군 때에 폐모를 상소하라는 이이첨의 청을 물리치고 은거하였다. 저서로 ≪촌은집≫, ≪상례초(喪禮抄)≫가 있다.

 

 

□ 유호인(兪好仁)

 

〇 군자사(君子寺)

煙樹平沈雨意遲(연수평침우의지) 이내 낀 나무 어둑하나 비 내릴 기미 없고

晩來看竹坐移時(만래간죽좌이시) 늦어 돌아와 대숲 바라보며 오랫동안 앉았다

老禪碧眼渾如舊(노선벽안혼여구) 늙은 선사의 푸른 눈은 전과 다름없는데

更檢前年此日詩(갱검전년차일시) 지난 해 읽은 시를 오늘 다시 자세히 살펴본다

 

〇 등조령(登鳥嶺) - 兪好仁

凌晨登雪嶺(능신등설령) 이른 새벽에 눈 내린 고개에 오르니

春意正濛濛(춘의정몽몽) 봄뜻이 참으로 흐릿하구나

北望君臣隔(북망군신격) 북으로 바라보니 군신이 막히었고

南來母子同(남래모자동) 남으로 오니 어미 자식이 함께하네

蒼茫迷宿霧(창망미숙무) 흐릿한 밤 지난 안개에 헷갈리고

迢遞倚層空(초체의층공) 높고 험한 층층 하늘에 기대네

更欲裁書札(갱욕재서찰) 다시 편지를 쓰려 하나니

愁邊有北鴻(수변유북홍) 시름 가에 북으로 가는 기러기 있네

◀이 시는 조령에 올라 지은 시

 

〚작자〛 유호인(兪好仁, 1445, 세종 27~1494, 성종 25):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극기(克己), 호는 임계(林溪)·뢰계(뢰溪). 조선 전기의 문인.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시 ·문 ·서에 뛰어나 당대 3절(絶)이라 불리었고 성종으로부터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당시 4대 학파 중 사림파에 속하였다.

 

 

 

□ 윤두수(尹斗壽)

 

〇 남대지(南大池)

欹枕初驚白雁秋(의침초경백안추) 베개 기울어 놀라니, 흰 기러기 나는 가을

憑君同上李膺舟(빙군동상리응주) 그대 편으로 같이 이응주에게 올립니다

片雲只是催詩興(편운지시최시흥) 조각구름은 시를 재촉하는 흥취이라

莫向輕陰浪作愁(막향경음랑작수) 뜬 구름 향하여 부질없이 근심하지 마오

 

〚작자〛 윤두수(尹斗壽) 조선 선조 때의 문신(1533~1601). 자는 자앙(子仰). 호는 오음(梧陰). 문장이 뛰어났고, 글씨에도 문징명체(文徵明體)를 본떠 일가를 이루었다. 저서에 ≪연안지(延安志)≫, ≪평양지(平壤志)≫, ≪기자지(箕子志)≫가 있다.

 

 

 

□ 윤상 (尹祥)

 

〇 주흘산령(主屹山靈) - 흘산의 신령각

作鎭南州界 (작진남주계) 이곳은 남녘 지방 요새가 되었는데

儲祥衆嶽中 (저상중악중) 모든 산 가운데 상서로움 품었어라

春秋修祀事 (춘추수사사) 봄가을로 신령에게 제사를 드리지만

焉報庇民功 (언보비민공) 백성에게 주신 도움 어떻게 보답할꼬

 

◀ 주흘산 : 문경시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작자〛 윤상(尹祥, 1373~1455) 본관은 예천(醴泉). 초명은 윤철(尹哲). 자는 실부(實夫), 호는 별동(別洞). 윤충(尹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호조참의 윤신단(尹臣端)이다. 아버지는 예천군의 향리인 윤선(尹善)이다. 사성을 거쳐 대사성에 발탁되었으며 저서로는 『별동집(別洞集)』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윤선도(尹善道)

 

〇 당성후만흥(堂城後漫興) - 尹善道

入戶靑山不待邀 (입호청산불대요) 맞아들이지 않아도 청산은 창으로 들고

滿山花卉整容朝 (만산화훼정용조) 산에 가득한 꽃들은 단정히 조회하네

休嫌前瀨長喧耳 (휴혐전뢰장훤이) 앞 여울 물소리 시끄럽다 싫어마소

使我無時聽世囂 (사아무시청세효) 시끄러운 세상 소식 듣지 않게 해준다오

 

〇 우음 (偶吟) - 尹善道

金鎖洞中花正開(금쇄동중화정개) 금쇄동 가운데 꽃이 바야흐로 피고

水晶巖下水如雷(수정암하수여뢰) 수정암 아래 물은 우레 같네

幽人誰謂身無事(유인수위신무사) 은자가 할 일 없다고 누가 말했는가?

竹杖芒鞋日往來(죽장망혜일왕래) 대나무 지팡이에 짚신 신고 날마다 왕래하네

◀ 이 시는 우연히 읊조린 것으로, 59세 때 지은 것이다.

 

〚작자〛 윤선도(尹善道, 1587~1671) : 조선 중기의 시조작가이자 문신. 서울 출생.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이다. 그는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에 뛰어나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 윤소종(尹紹宗)

 

〇 능연각(凌煙閣)

定策雖群彦(정책수군언) 책략을 세운 것은 여러 선비지만

酬功在一人(수공재일인) 공을 갚음은 한 사람에게 달려있도다

民心去隋久(민심거수구) 민심이 수 나라 떠난 지 오래이고

天命向唐新(천명향당신) 천명이 당 나라로 향하여 새로워졌구나

滌蕩三邊日(척탕삼변일) 삼변을 소탕한 날이여

丹青萬古春(단청만고춘) 단청은 만고의 봄이도다

英雄何代乏(영웅하대핍) 영웅이 어느 땐들 부족하랴

往事不順珍(왕사불순진) 지나간 일 진기하게 여길 필요 없도다

 

〚작자〛 윤소종(尹紹宗, 1345년(충목왕 1)~1393년(태조 2)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헌숙(憲叔), 호는 동정(桐亭). 고려후기 전교시승, 성균사예,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 이개(李塏)

 

〇 선죽교(善竹橋) - 李塏

繁華往事已成空 (번화왕사이성공) 번화했던 지난 일은 이미 헛것이 돼 버린 채

舞館歌臺野草中 (무관가대야초중) 춤추던 집이나 노래하던 무대 들풀 속에 묻혔네

惟有斷橋名善竹 (유유단교명선죽) 오직 남은 잘린 다리 그 이름은 선죽교로

半千王業一文忠 (반천왕업일문충) 반 천 년의 왕업은 한 사람의 문충뿐이구나

◀ 이 시는 선죽교에서 지은 것으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충절(忠節)을 기리는 회고시(懷古詩)이다.

 

〇 이화(梨花)

院落深深春晝淸 (원락심심춘주청) 원은 깊고 깊어 봄 낮은 맑은데

梨花開遍正冥冥 (리화개편정명명) 배꽃은 두루 피어 막 어두워지는 구나

鶯兒儘是無情思 (앵아진시무정사) 꾀꼬리는 진정 무정한 심사러니

掠過繁枝雪一庭 (략과번지설일정) 무성한 가지를 스쳐가니 온 뜰이 눈이로구나

〚작자〛 이개(李塏, 1417~1456) 요약조선 전기의 문신.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청보(淸甫)•백고(伯高), 호는 백옥(白玉).시문(詩文)이 청절(淸絶)하고 글씨를 잘 썼다. ≪악학습령 樂學拾零≫ 등의 가곡집에 시조 2수가 전한다.

 

 

 

□ 이건(李健)

 

〇 해남도중(海南途中)

三湘魚雁絶(삼상어안절) 삼상에 물고기와 기러기 보이지 않고

萬里鶺鴒孤(만리척령고) 만리를 떠도는 할미새는 외로워라

去去多歧路(거거다기로) 갈수록 더욱 갈림길이 많아지니

何時得坦途(하시득탄도) 어느 때라야 평탄한 길 걸을 수 있을까

 

〚작자〛 이건(李健) 조선 효종 때의 문인(1614~1662). 자는 자강(子強). 호는 규창(葵窓). 선조의 손자이며 인성군(仁城君) 공(珙)의 아들이다. 시ㆍ서ㆍ화에 뛰어나 삼절(三絕)이라 일컬었다. 저서로 ≪규창집≫이 있다.

 

 

 

□ 이건창(李建昌)

 

〇 매화(梅花)

盡日淸齋坐小龕(진일청재좌소감) 종일톡 청결한 집 작은 방에 있으니

時聞廚婢語呢喃(시문주비어니남) 부엌 조이 재잘거리는 소리 들려오나니

絲絲楊柳裁衣好(사사양류재의호) 실실이 버들잎이랑 옷지으면 좋겠고

粒粒梅花作飯甘(립립매화작반감) 알알이 매화꽃일랑 밥지으면 맛있겠다고 하네

 

〚작자〛 이건창(李建昌) 조선 후기의 문신ㆍ학자(1852~1898). 자는 봉조(鳳朝/鳳藻). 호는 영재(寧齋). 고종 11년(1874)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가서 서보(徐郙)ㆍ황각(黃珏) 등과 교유하여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평생 척양주의자로 일관하였다. 저서로 ≪당의통략(黨議通略)≫, ≪명미당고(明美堂稿)≫가 있다.

 

 

 

□ 이기설 (李基卨)

 

〇 유회(遺懷) - 느낀바 있어

 

窗外連宵雨 (창외연소우) 창 밖의 밤비 그치잖터니

庭邊木葉空 (정변목엽공) 뜰 가 나뭇잎 다 지고 없네.

騷人驚起晏 (소인경기안) 시인이 놀라 일어나서는

長嘯倚西風 (장소의서풍) 서풍에 기대 휘파람 분다

 

〚작자〛 이기설(李基卨, 1556-1622)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조(公造), 호는 연봉(蓮峯)으로 조선시대 호조정랑, 비변사낭청, 청풍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 이 달(李 達)

 

〇 박조요(撲棗謠) - 李達

隣家小兒來撲棗(인가소아래박조) 이웃집 아이가 대추 따러 왔는데

老翁出門驅少兒(노옹출문구소아) 늙은이 문을 나서며 아이를 쫓는구나

小兒還向老翁道(소아환향로옹도) 아이 도리어 늙은이 향해 말하기를

不及明年棗熟時(불급명년조숙시) “내년에 대추 익을 땐 살지도 못할걸요”

 

〇 산행관외작(山行關外作) - 李達

近水疏籬紅杏花(근수소리홍행화) 물 가까이 성근 울타리에 붉은 살구꽃 피었고

掩門垂柳兩三家(엄문수류량삼가) 문을 가린 드리운 버들 두세 집이네

溪橋處處連芳草(계교처처련방초) 시내 다리 곳곳엔 향기로운 풀 이어졌고

山路無人日自斜(산로무인일자사) 산길엔 인적 없이 해만 저절로 기우네

 

〇 습수요(拾穗謠)

田間拾穗村童語(전간습수촌동어)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의 말이

盡日東西不滿筐(진일동서불만광) 하루 종일 동서로 다녀도 바구니가 안 찬다네

今歲刈禾人亦巧(금세예화인역교)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도 교묘해져서

盡收遺穗上官倉(진수유수상관창)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관가 창고에 바쳤다네

 

〇 채련곡 차대동누선운(采蓮曲 次大同樓船韻] - 李達

蓮葉參差蓮子多(연엽참치련자다) 연잎은 들쭉날쭉 연밥도 많은데

蓮花相間女郞歌(연화상간녀랑가) 연꽃을 사이에 두고 아가씨들 노래하네

來時約伴橫塘口(내시약반횡당구) 돌아갈 때 짝과 횡당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辛苦移舟逆上波(신고이주역상파) 힘써 배를 저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네

◀ 이 시는 대동강 누선의 시(詩)인 정지상(鄭知常)의 시에 차운한 연밥을 따는 사랑 노래이다.

 

〇 회주(回舟) - 李達

宿鷺下秋沙(숙로하추사) 자려는 해오라기 가을 모래에 내려오고

晩蟬鳴江樹(만선명강수) 저녁 매미 강숲에서 울어대네

歸舟白蘋風(귀주백빈풍) 흰 마름꽃 바람결에 배 돌리며

夢落西潭雨(몽락서담우) 꿈속에서도 서담 비 속 맴돌고 있네

 

〚작자〛 이달(李達, 1539~1618) 조선 중기 선조(宣祖) 때의 한시인(漢詩人). 신분적 한계가 있었으나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 지어 선조 때의 삼당파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허균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산사》 등이 있다.

 

 

 

□ 이덕무(李德懋)

 

〇 도중잡시 육수 (途中雜詩 六首) - 李德懋

其一 (기일)

行行摩詰詩裏(행행마힐시리) 마힐의 시 속으로 가고 또 가도

處處倪魫畫中(처처예오화중) 곳곳마다 예오의 그림 속일세

煙白禽如渡海(연백금여도해) 허연 연기 위에 새는 바다 건너는 듯

溪淸魚若乘空(계청어약승공) 맑은 시내 물고기는 허공을 오르는 듯

 

〇 절구」 이십이수(絶句 二十二首) - 李德懋

其一(기일)

紅葉埋行踪(홍엽매행종) 단풍잎이 발자국을 묻어 버렸으니

山家隨意訪(산가수의방) 산중 집을 마음 가는 대로 찾아가네

書聲和織聲(서성화직성) 글 읽는 소리 베 짜는 소리와 어울려

落日互低仰(낙일호저앙) 석양녘에 서로 낮았다 높았다 하네

其二十二(기이십이)

石磴樵人細(석등초인세) 비탈길엔 나무꾼이 작게 보이고

遙村一火紅(요촌일화홍) 먼 마을엔 한 점 불이 붉네

川原堪入畫(천원감입화) 내와 들판이 그림으로 들어올 듯이

都在遠觀中(도재원관중) 모두 다 멀리 보이는 광경 속에 있네

 

〇 추야음(秋夜吟) - 李德懋

一夜新凉生 (일야신량생) 어느 하루 밤 산들바람 갑자기 무니

寒공入戶鳴 (한공입호명) 가을 귀뚜라미 문에 들어 우는구나.

野泉穿竹響 (야천천죽향) 들녁의 샘물은 대숲 뚫고 소리내어 흐르고

村火隔林明 (촌화격림명) 고을에는 등불이 숲 사이로 밝아지네

山月三更吐 (산월삼경토) 봉우리는 밤 깊어 달 토하고

江風十里淸 (강풍십리청) 긴 강에 바람은 십리 먼 곳까지도 맑도나.

夜闌星斗燦 (야란성두찬) 밤이 깊어 별빛 찬란한데

玉宇雁群橫 (옥우안군횡) 창공에 기러기 떼 비끼어 날아간다.

 

〇 춘일우제(春日偶題) - 李德懋

一年春光花萬樹(일년춘광화만수) 일 년의 봄빛은 만 나무에 꽃으로 가득 피고

空山流水淨照面(공산류수정조면) 빈 산 흐르는 물 말끔히 얼굴에 비치네

芳草如剪蜨遺粉(방초여전접유분) 향기로운 풀 오려낸 듯 나비는 분을 남기고

靜士心朗無所罥(정사심랑무소견) 고요한 선비는 마음씨 밝아 매인 바 없네

煙垞烏牸牟然吼(연타오자모연후) 연기 자욱한 언덕에 검은 암소 “음메-에” 울며

自任其眞蹄自遣(자임기진제자견) 스스로 한껏 천진스레 발굽질을 하네

 

〇효발연안(曉發延安) - 李德懋

不已霜鷄郡舍東(불이상계군사동) 관아 동쪽 새벽 닭 울음 그치지 않고

殘星配月耿垂空(잔성배월경수공) 샛별 달과 함께 하늘에서 반짝이네

蹄聲笠影矇朧野(제성립영몽롱야) 삿갓 쓰고 말에 올라 어스름한 들녘 지나면서

行踏閨人片夢中(행답규인편몽중) 임의 꿈속으로 밟으며 가네

◀ 이 시는 연안을 떠나며 지은 시이다.

 

〚작자〛 이덕무(李德懋)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1741∼1793. 근세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박학다재하고 바둑에도 일가견이 있어 〈혁기론(奕棋論)〉을 썼다.

 

 

 

□ 이량연(李亮淵)

 

〇 야설(野雪)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遂作後入程(수작후입정)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 ★백범 김구선생의 애음시이다.

 

〇 夜夢(야몽) 꿈-李亮淵(이량연)

鄕路千里長(향노천리장) 내 고향 천리 먼 길

秋夜長於路(추야장어로) 가을밤은 고향 길보다 멀어라

家山十往來(가산십왕래) 나 꿈 속에 고향 산을 열 번도 더 오갔건만

簷鷄猶未呼(첨계유미호) 새벽닭은 아직도 울지를 않네.

 

〚작자〛 이양연(李亮淵 1771∼185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진숙(晋叔), 호는 임연(臨淵). 광평대군 여(廣平大君璵)의 후손, 음저서로는침두서(枕頭書)· 석담작해(石潭酌海)· 가례비요(嘉禮備要)· 상제집홀(喪祭輯笏) 및 시문 약간 권이 있다고 한다.

 

 

 

□ 이맹윤(李孟畇)

 

〇무자탄(無子嘆)

自從入道起於寅(자종입도기어인) 사람은 인(寅)에서 나서

父子相傳到此身(부자상전도차신) 부자 서로 전하여 이 몸에 왔구나

我罪伊何天不弔(아죄이하천불조) 내 죄 많아 하늘도 위로하지 않는구나

未爲人父撗絲新(미위인부빈사신) 아직 남의 아버지가 되기도 전에 머리털만 희어간다.

 

〚작자〛 이맹윤(李孟畇)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사원(士原), 호는 한재(漢齋).

색(穡)의 손자이며,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종덕(種德)의 아들이다. ​좌찬성을 역임하였고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 이매창 (李梅窓)

 

〇 규중원(閨中怨) - 李梅窓]

瓊苑梨花杜宇啼(경원리화두우제) 옥 같은 동산에 배꽃 피고 두견새 우는 밤

滿庭蟾影更悽悽(만정섬영갱처처) 뜰 가득 달빛 더욱 서러워라

相思欲夢還無寐(상사욕몽환무매) 꿈에나 만나려도 도리어 잠마저 오지 않고

起倚梅窓聽五鷄(기의매창청오계) 일어나 매화 핀 창가에 기대어 五更의 닭소리 듣네

 

〇 상춘(傷春) - 李梅窓

不是傷春病(불시상춘병) 봄을 근심해서 생긴 병이 아니라

只因憶玉郞(지인억옥랑) 다만 임 그리워 생긴 병이라오

塵豈多苦累(진기다고루) 진세(塵世)에 어찌나 괴로움이 많은가?

孤鶴未歸情(고학미귀정) 외로운 학이 되어 돌아갈 수 없는 정이여

 

〇 자한 (自恨) - 李梅窓

春冷補寒衣 (춘냉보한의) 봄날이 차서 얇은 옷을 꿰매는데

紗窓日照時 (사창일조시) 깁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네

低頭信手處 (저두신수처)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긴 채

珠淚滴針絲 (주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네

 

〇 증취객(贈醉客) - 李梅窓]

醉客執羅衫(취객집나삼) 취한 손님이 명주저고리를 잡으니

羅衫隨手裂(나삼수수열) 명주저고리 손길을 따라 찢어졌네

不惜一羅衫(불석일나삼) 명주저고리 하나쯤이야 아까울 게 없지만

但恐恩情絶(단공은정절) 다만 주신 은정까지도 찢어졌을까 두려워라

 

〇 춘사(春思) - 李梅窓

東風三月時(동풍삼월시) 봄바람이 불어오는 삼월에

處處落花飛(처처락화비) 곳곳에서 지는 꽃잎 흩날려요

緣綺相思曲(연기상사곡) 비단 옷 입고 상사곡을 불러 봐도

江南人未歸(강남인미귀) 강남 간 임은 돌아오시지 않네요

 

〇 한거(閑居) - 李梅窓

石田茅屋掩柴扉 (석전모옥엄시비)

花落花開辨四時 (화락화개변사시)

峽裡無人晴盡永 (협리무인청진영)

雲山炯水遠帆歸 (운산형수원범귀)

바위 사이 초가집 사립문 닫고 사니

꽃 지고 꽃 핀들 계절을 알 수 있겠는가

골짝엔 사람 없고 맑은 날은 길기도 한데

구름 낀 산, 번쩍이는 물에 멀리 돛단배 돌아온다

 

〚작자〛 이매창(李梅窓, 1529~ ) 중기의 화가로 신사임당의 맏딸이다.

 

 

□ 이방원(李芳遠)

 

〇 만수산(萬壽山)

如此亦何如(여차역하여) 이런들 어떠하리

如彼亦何如(여피역하여) 저런들 어떠하리

城隍堂後坦(성황당후탄) 만수산 드렁칡이

頹搔亦何如(퇴비역하여) 얽혀진들 어떠하리

我輩若此爲(아배약차위) 우리도 이같이 얽혀

不死亦何如(불사역하여) 백년까지 누리리라.

〚작자〛 이방원(李芳遠) 조선 제3대 왕인 ‘태종’의 본명.

 

 

 

□ 이산해(李山海)

 

〇 모산(暮山)

 

海天風定日沈霞(해천풍정일침하) 바람 그친 하늘, 해 지는 노을

蒲葦洲邊夕露多(포위주변석노다) 부들, 갈대 우거진 물가엔 이슬도 많아라

瘦馬倒鞭沙路逈(수마도편사노형) 여윈 말에 채찍질하여도 길은 멀어

夜深明月宿漁家(야심명월숙어가) 밤 깊고 달 밝아 어촌에서 묵어가려네

〚작자〛 이산해(李山海, 1539~1609) 한산 이씨 명문가 출신으로 목은 이색(李穡)의 후손, 토정 이지함(李之菡)의 조카. 북인의 영수라는 학문적ㆍ정치적 위상을 가졌던 관료.

 

 

 

□ 이상질(李尙質)

 

〇 월야회음(月夜會飮)

叢篁近月自生風(총황근월자생풍) 대숲에 가까운 달 절로 바람 일고

復有荷花小閣東(부유하화소각동) 게다가 작은 누각 동편에 연꽃이 피었다.

莫道他鄕愁遠客(막도타향수원객) 타향이 먼 나그네 수심케 한다 말아라

主人樽酒不曾空(주인준주불증공) 주인의 술동이엔 술이 떨어진 일 없었다.

 

〚작자〛 이상질(李尙質, 1597∼1635)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문(子文), 호는 가주(家州)이다. 조선후기 문인 이상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18년에 간행한 시문집.

 

 

 

□ 이서구(李書九)

 

〇 구마 (驅馬)

望村必驅馬(망촌필구마) 마을 보이면 반드시 말을 몰아가니

馬踶舂如杵(마제용여저) 말발굽 소리 마치 절구질 하는 듯하여라.

童稚爭倚門(동치쟁의문) 아이들은 다투어 사립문에 기대고

夫老散偶語(부노산우어) 어른 들은 흩어져 짝 지어 수근데는구나

籬犢牟然去(이독모연거) 외양간의 송아지는 음메음메 울며 가고

回首送其去(회수송기거) 사람들은 머리 돌려 가는 것 보내주는구나

 

〇 만자백운계 부지서강구 소와송음하작(晩自白雲溪 復至西岡口 少臥松陰下作)

讀書松根上(독서송근상) 솔뿌리 위에서 책을 읽으니

卷中松子落(권중송자락) 책 속에 솔방울이 떨어지네

支筇欲歸去(지공욕귀거) 지팡이 짚고 길을 나서려니

半嶺雲氣作(반령운기작) 고갯마루에 구름 기운이 일어나네

◀ 포천 백운계에서 저녁에 다시 서강의 입구에 이르러 잠시 솔 그늘에서 누웠다가 지은 시이다.

 

〇 산행(山行) - 李書九

數棘荒寒堆亂石(수극황한퇴란석) 가시덤불 황량하며 어지러운 돌무더기 쌓여 있고

斜陽欲盡廢田頭(사양욕진폐전두) 석양볕이 버려진 밭머리에 지려고 하네

野棠結子珊瑚顆(야당결자산호과) 팥배나무 열매 산호처럼 맺혀 있는데

何處飛來黃褐侯(하처비래황갈후) 어디에서 청학이 날아왔나?

 

〚작자〛 이서구(李書九) 1754(영조 30)~1825(순조 25), 자 낙서(洛瑞), 호 척재(惕齋), 강산(薑山), 소완정(素玩亭), 석모산인(席帽山人)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 이석형(李石亨)

 

〇 영회(詠懷) - 李石亨

虞時二女竹(우시이녀죽) 순임금 때의 두 여인의 대나무요

秦日大夫松(진일대부송) 진시황 때의 대부였던 소나무

縱有哀榮異(종유애영이) 비록 슬프고 영화로움이 다름은 있지만

寧爲冷熱容(영위랭열용) 어찌 차고 뜨거운 얼굴을 하리오

◀ 사육신(死六臣)의 단종(端宗) 복위(復位) 운동을 배경으로 풍자(諷刺)

 

〚작자〛 이석형(李石亨, 1415, 태종 15~1477, 성종 8):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백옥(伯玉), 호는 저헌(樗軒). 김반(金泮)의 문인이다.조선전기 황해도관찰사, 판한성부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 이성계(李成桂)

 

〇 등백운봉(登白雲峰)

引手攀蘿上碧峰(인수반라상벽봉) 댕댕이 휘어잡고 상상봉 올라가니

一庵高臥白雲中(일암고와백운중) 조용한 암자 한 채 구름 속에 누워 있네

若將眼界爲吾土(약장안계위오토) 눈 앞 아래 펼쳐진 땅 내 것이 될 양이면

楚越江南豈不容(초월강남기불용) 초월강남 먼 곳인들 어이 아니 안기리

〚작자〛 이성계(李成桂) 조선 제1대 왕인 ‘태조’의 본명

 

 

 

□ 이수광(李睟光)

 

〇 도중(途中) - 李晬光

岸柳迎人舞(안류영인무) 언덕 버들은 사람 맞아 춤을 추고

林鶯和客吟(임앵화객음) 숲 속 꾀꼬리는 나그네 읊조림에 화답하네

雨晴山活態(우청산활태) 비 개이니 산은 활기찬 모습이고

風暖草生心(풍난초생심) 바람 따스하니 풀은 돋는 마음이네

景入詩中畫(경입시중화) 경개는 시 속에 든 그림이고

泉鳴譜外琴(천명보외금) 샘물 소리는 악보 밖의 거문고네

路長行不盡(노장행부진) 길이 멀어 가도 끝이 없는데

西日破遙岑(서일파요잠) 서산의 해는 아득한 봉우리를 깨뜨리네

◀ 이 시는 따뜻한 봄날 중국으로 사행(使行) 가는 길에 쓴 시

 

〇 상수역도중(湘水驛途中)

雨後淸和近午天(우후청화근오천) 비 온 뒤 화창하고 한낮이 가까운데

驛樓芳草暗湘川(역루방초암상천) 역루의 꽃다운 풀, 상수 냇가에 풀빛 짙어라.

誰知倦客征鞍上(수지권객정안상) 그 누가 알까, 안장 위의 지친 나그네

半是吟詩半是眠(반시음시반시면) 반은 시를 읊고, 또 반은 잠들어 있는 줄을.

〇 제청산백운도(題靑山白雲圖) - 李晬光

白雲本無心(백운본무심) 흰 구름은 본디 마음이 없고

靑山亦不語(청산역불어) 푸른 산도 말이 없구나

色相兩空空(색상량공공) 색과 상 둘 다 실체가 없는데

風吹何處去(풍취하처거) 바람은 불어 어디로 가는가?

◀ 이 시는 푸른 산에 흰 구름이 흘러가는 구름을 그린 그림을 보고 쓴 제화시(題畵詩)이다.

 

〚작자〛 이수광(李睟光, 1563~1628)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며 조선시대 공조참판,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저서로는 『지봉집(芝峯集)』이 있다.

 

 

 

□ 이순신(李舜臣)

 

〇 무제육운(無題六韻) -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蕭蕭風雨夜(소소풍우야) 비바람 쓸쓸하게 몰아치는 한밤중에,

耿耿不寐時(경경불매시) 온갖 심사 가물가물 잠은 오지 않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懷痛如癆膽(회통여최담) 애통한 이 내 심사 쓸개가 찢어지고,

傷心似割肌(상심사할기) 가슴 아픈 이 마음은 살 에이는 것 같구나.

山河猶帶慘(산하유대참) 강산은 어디에나 비참한 몰골이라,

魚鳥亦吟悲(어조역음비) 물고기, 새들도 서러워 목 메인다.

國有蒼黃勢(국유창황세) 기우는 이 나라의 이 운명,

人無任轉危(인무임전위) 누가 있어 다시 세우리.

恢復思諸葛(회복사제갈) 중원을 회복하던 제갈양이 생각나고,

長驅郭子儀(장구곽자의) 위기를 몰아내던 곽자의가 그립구나.

經年防備策(경년방비책) 몇 년이나 지나간 왜적 방비가,

今作聖君欺(금작성군기) 오늘에 이르러서 임금의 눈을 속였네.

 

〇 재해진영중(在海鎭營中)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水國秋光暮(수국추광모) 바닷가에 가을이 짙어 가는데,

驚寒雁陣高(경한안진고) 추위에 놀란 기러기떼 하늘높이 날으네.

憂心轉輾夜(우심전전야) 나랏일이 걱정되어 잠 못 이룰 제,

殘月照弓刀(잔월조궁도) 싸늘한 달 그림자 활과 칼을 비추네.

◀ 바다 진영에서

 

 

 

 

〇 陳中吟(진중음)

天步西門遠(천보서문원) 임금의 행차는 서쪽에서 멀어지고,

東宮北地危(동궁북지위) 왕자는 북쪽 땅에서 위태롭다.

孤臣憂國日(고신우국일) 외로운 신하는 나라를 걱정할 때이고

壯士樹勳時(장사수훈시) 사나이는 공훈을 세워야 할 시기로다.

誓海魚龍動(서해어룡동)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도 감동하고

盟山草木知(맹산초목지) 산이 맹세하니 초목도 알아준다.

讐夷如盡滅(수이여진멸) 원수를 모두 멸할 수 있다면

雖死不爲辭(수사불위사) 비록 죽음일지라도 사양하지 않겠노라.

 

〇 閑山島夜吟(한산도야음) -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水國秋光暮(수국추광모) 물나라에 가을이 깊어 가는데

驚寒雁陣高(경한안진고) 기러기 울면서 진지 위에 나는 구나

憂心輾轉夜(우심전전야) 나라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애태우는 이 밤에

殘月照弓刀(잔월조궁도) 새벽달 창에 스며들어 활과 칼을 비추네

 

〇 한산도가(閑山島歌)

閑山島月明夜上戍樓撫大刀 (한산도월명야상수루무대도)

深愁時何處一聲羌笛更添愁 (심수시하처일성강적갱첨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나

 

〚작자〛 이순신(李舜臣) 조선 선조 때의 무신(1545~1598).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32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어 거북선을 제작하는 등 군비 확충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산도에서 적선 70여 척을 무찌르는 등 공을 세워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다. 노량 해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저서에 ≪난중일기≫가 있다.

 

 

 

□ 이순인(李純仁)

 

〇 증승(贈僧)

客遊山院已多時(객유산원이다시) 나그네 산원에서 노닌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不及李花聽子規(불급이화청자규) 빼꽃 필 적 소쩍새 소리는 듣지 못했구나

欲識山中春早晩(욕식산중춘조만) 산 속의 봄이 늦은지 빠른지 알고 싶으니

莫敎僧札入京遲(막교승찰입경지) 스님의 편지가 서울에 늦게 들게 하지 마소서

 

〚작자〛 이순인(李純仁, 1533년~1592년)은 조선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백생(伯生)·백옥(伯玉), 호는 고담(孤潭)이다.[1] 문장에 뛰어나 이이, 송익필, 이달, 최립, 백광훈, 이산해, 하응림 등과 함께 팔문장계로 불렸다

 

 

 

□ 이승소(李承召)

 

〇 연 (燕) - 李承召

畫閣深深簾額低(화각심심렴액저) 화각은 조용하고 주렴머리는 나직한데

雙飛雙語復雙棲(쌍비쌍어부쌍서) 쌍을 지어 날다 쌍을 지어 말하다 또 쌍을 지어 깃든다

綠楊門巷春風晩(녹양문항춘풍만) 문밖 거리의 푸른 버들에는 봄바람이 저물고

靑草池塘細雨迷(청초지당세우미) 못 둑의 푸른 풀에는 보슬비가 어지럽다

趁蝶有時穿竹塢(진접유시천죽오) 때로는 나비를 좇아 대숲 언덕을 뚫고

壘巢終日啄芹泥(루소종일탁근니) 집을 지으려 한종일 미나리밭 진흙을 쫀다

托身得所誰相侮(탁신득소수상모) 몸을 의탁하기에 장소를 얻었거니 누가 업신여기랴?

養子年年羽翼齊(양자년년우익제) 해마다 자식 길러 날개가 가지런하다

◀ 이 시는 제비에 대해 노래한 시)이다.

 

〇 제화선(題畵蟬)

香燒古篆坐蕭然(향소고전좌소연) 향기를 옛 전서에 사르고 조용히 앉아

讀盡黃庭內外篇(독진황정내외편) 황정견의 내외 편을 다 읽었도다

一味天眞無與語(일미천진무여어) 천진한 한 맛을 같이 나눌이 없어

畵中相對飮風仙(화중상대음풍선) 그림 속에서 마주 대하니 바람을 마신 신선이로다

 

〚작자〛 이승소(李承召, 1422~1484) 본관 양성(陽城). 자 윤보(胤保). 호 삼탄(三灘). 시호 문간(文簡).

이조·형조 판서, 좌참찬 등을 지냈다. 신숙주·강희맹 등과 함께 《국조오례의》를 편찬했다.《삼탄집》이 있다.

 

 

 

□ 이식(李植)

 

〇 도공암진(渡孔巖津)

簇騎臨回岸(족기림회안) 말 탄 사람 언덕 돌아 나오면서

呼船促衆篙(호선촉중고) 뱃사공 불러 노 저어라 재촉한다.

西南溟渤湧(서남명발용) 서남쪽엔 넘실거리는 검푸른 물

開闢孔巖高(개벽공암고) 입구에 버티어 솟은 공암이 높기도 하다.

見險誰能止(견험수능지) 험난함을 알지마는 정지시킬 자 누군가

貪程不覺勞(탐정부각노) 여정 단축하려 피곤한 줄도 모르는구나.

相期須早渡(상기수조도) 서로 빨리 이 물길 건너야 하니

向晚更風濤(향만갱풍도) 날 저물면 풍랑이 더욱 거세질 것이리라.

 

〇 영신연(永新燕) - 李植

萬事悠悠一笑揮(만사유유일소휘) 잡다한 세상만사 그저 한바탕 웃음거리

草堂春雨掩松扉(초당춘우엄송비) 사립문 닫은 초당에 봄비 촉촉이 내리네

生憎簾外新歸燕(생증렴외신귀연) 발 밖에 새로 돌아온 제비를 미워하는 것은

似向閑人說是非(사향한인설시비) 일 없는 사람에게 시비 걸기 때문이라네

◀ 새로 돌아온 제비를 노래한 것이다.

 

〚작자〛 이식(李植, 1584~1647) ]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史)·택구거사(澤癯居士) 조선 중신의 문신. 주자학을 정도(正道)로 신봉한 중세 봉건시기의 전형적인 지식인으로서 유가(儒家)의 현실긍정적 세계관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의 시는 각 체에 모두 능숙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대체로 정경의 묘사가 뛰어나고 직서적인 것이 많다. 그는 고체(古體)에 능하였다고 하나 오언율시에 특색을 발휘하였다.

 

 

 

□ 이안눌(李安訥)

 

〇 기가서(寄家書 二首) - 李安訥

其一(기일)

欲作家書說苦辛(욕작가서설고신) 집에 보낼 편지를 씀에 괴로움을 말하고 싶어도

恐敎愁殺白頭親(공교수살백두친) 흰 머리 어버이를 근심시킬까 걱정하여

陰山積雪深千丈(음산적설심천장) 그늘진 산 쌓인 눈의 깊이가 천 장인데

却報今冬暖似春(각보금동난사춘) 도리어 금년 겨울을 봄처럼 따뜻하다 알리네

◀ 이 시는 함경도 북평사라는 벼슬살이를 하고 있을 때, 집에 편지를 보내면서 지은 시이다

 

〇 등통군정(登統軍亭)

六月龍灣積雨晴(육월용만적우청) 유월 용만 땅에 장마비 개어

平明獨上統軍亭(평명독상통군정) 새벽에 홀로 통군정에 오른다

茫茫大野浮天氣(망망대야부천기) 망망한 큰 들판은 하늘 기운에 떠 있고

曲曲長江裂地形(곡곡장강렬지형) 굽이치는 긴 강은 땅 모양을 ?으며 흐른다

宇宙百年人似螘(우주백년인사의) 광막한 우주에 백년 인생은 개미 같고

山河萬里國如萍(산하만리국여평) 웅장한 산해에 만리 나라도 부평초로다

忽看白鶴西飛去(홀간백학서비거) 문득 서편으로 날아가는 흰 학을 바라보니

疑是遼東舊姓丁(의시요동구성정) 나르는 학들이 혹 요동 옛백성 아닌가 하노라

 

〚작자〛 이안눌(李安訥, 1571~1637) 본관 덕수(德水). 자 자민(子敏). 호 동악(東岳). 시호 문혜(文惠). 조선 중기 인조 때의 문신. 형조참판·함경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주청부사로 명나라에서 정원군의 추존을 허락 받아 원종의 시호를 받아왔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시문에 뛰어나 이태백에 비유되었고, 글씨도 잘 썼다. 《동악집》이 있다.

 

 

 

□ 이양연(李亮淵)

 

○ 추초(秋草)

秋草莫怨霜(추초막원상) 가을풀이여, 서리를 원망말라

秋殺亦生道(추살역생도) 가을의 죽음은 새로 사는 길이라.

却從地上蘇(각종지상소) 도리어 땅에서 소생할 것이라

人生不如草(인생불여초) 인생이란 풀만도 못한 것인가.

 

〚작자〛 이양연(李亮淵, 1771~1853)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진숙(晋叔)이며, 호는 임연(臨淵)· 산운(山雲)이다. 조선 후기의 시인. 문신. 호조참판·동지돈녕부사 겸 부총관을 거쳐 1852년(철종 3) 동지의금부사에 임명되었다. 저서로 <침두서枕頭書>·〈석담작해 石談酌海>·〈가례비요 家禮備要〉·〈상제집홀 喪祭輯笏〉이 있다.

 

 

□ 이언적 (李彦迪)

 

〇 고송(孤松)

群木鬱相遮 (군목울상차) 뭇 소나무 빽빽이 서로 막혀 있는데

孤松挺自誇 (고송정자과) 외로운 소나무 빼어남 스스로 자랑하네

煙霞祕幹質 (연하비간질) 연기와 노을 속에서도 줄기와 바탕을 간직했고

雨露長枝柯 (우로장지가) 비와 이슬 속에서도 가지마다 자랐네

千尺心應直 (천척심응직) 천척이나 높으니 마음 응당 곧을 것이요

九泉根不斜 (구천근불사) 구천이나 깊으니 뿌리 기울지 않을 것이네

棟樑雖有待 (동량수유대) 동량이 되리라 비록 기대하나

斤斧奈相加 (근부내상가) 도끼가 가해짐을 어찌하리오?

不似巖邊老 (불사암변로) 바위 가에서 늙는 것만 못하니

含姿歲暮多 (함자세모다) 해 저물어 가는 겨울에도 언제나 자태를 머금기를

◀ 이 시는 홀로 곧은 소나무를 노래한 것으로, 세상의 시비(是非)로부터 벗어나 조용히 여생을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〇 낙천(樂天) - 李彦迪

乘興逍遙展眺遐(승흥소요전조하) 흥을 타고서 거닐며 멀리 바라보니

暮天雲盡碧山多(모천운진벽산다) 저문 하늘 구름 다한 곳에 푸른 산이 많네

茫茫宇宙無終極(망망우주무종극) 아득한 우주는 끝이 없어

俯仰長吟浩浩歌(부앙장음호호가)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길게 터질 듯한 노래 부르네

◀ 이 시는 천명(天命)을 즐기며 부른 노래이다.

 

〇 무위 (無爲) - 李彦迪

萬物變遷無定態(만물변천무정태) 만물은 변천하여 정해진 모양이 없으니

一身閑適自隨時(일신한적자수시) 이 한 몸 한적하여 스스로 때를 따르네

年來漸省經營力(년래점성경영력) 근래 점점 작위(作爲)의 힘이 줄어드니

長對靑山不賦詩(장대청산불부시) 오래 청산을 대하고도 시를 짓지 못하네

 

〇 산당병기(山堂病起) - 李彦迪

平生志業在窮經(평생지업재궁경) 한평생 뜻과 일은 경전(經典) 궁구(窮究)에 있어

不是區區爲利名(불시구구위리명) 구구하게 이익과 명예 구하지 않으리

明善誠身希孔孟(명선성신희공맹) 명선(明善)과 성신(誠身)엔 공맹(孔孟)을 바라고

治心存道慕朱程(치심존도모주정) 치심(治心)과 존도(存道)엔 정주를 사모했네

達而濟世憑忠義(달이제세빙충의) 통달해서 세상을 구제함엔 충의에 의지하고

窮且還山養性靈(궁차환산양성령) 궁하면 산으로 돌아와 성령을 기른다

豈料屈蟠多不快(기료굴반다불쾌) 어찌 험하고 많은 불쾌함 생각하리오?

夜深推枕倚前楹(야심추침의전영) 깊은 밤 베개 밀어 두고 앞 난간에 기대노라

◀ 이 시는 과거 급제 후 24세에 산에 있는 집에서 병이 들어 일어나 지은 것

 

〇 산중즉사(山中卽事 三首) - 李彦迪

其一(기일)

雨後山中石澗喧(우후산중석간훤) 비 온 후 산중 바위틈에 시냇물 소리 요란한데

沈吟竟日獨憑軒(침음경일독빙헌) 시 읊으며 종일 홀로 난간에 기대었네

平生最厭紛囂地(평생최염분효지) 평생에 가장 싫은 것은 어지럽고 시끄러운 곳인데

惟此溪聲耳不煩(유차계성이불번) 유독 이 시냇물 소리는 귀에 번거롭지 않네

 

〇 차조용수운(次曺容叟韻) - 李彦迪

霧捲山靑晩雨餘(무권산청만우여) 늦은 비 온 뒤 안개 걷히고 산은 푸른데

逍遙俯仰弄鳶魚(소요부앙롱연어) 소요하고 부앙하며 연비어약을 즐기도다

莫言林下孤淸興(막언림하고청흥) 숲에 맑은 흥취 적다고 말하지 말라

幽鳥閑雲約共棲(유조한운약공서) 깊은 새, 한가한 구름이 함께 살자 하였노라

◀ 이 시는 조용수의 운에 차운한 것이다.

 

〇 추규(秋葵) - 李彦迪

開到淸秋不改英 (개도청추불개영) 맑은 가을 하늘 열려도 꽃빛은 변하지 않아

肯隨蹊逕鬪春榮 (긍수혜경투춘영) 기꺼이 오솔길 따라서 봄의 번성과 타투어본다.

山庭寂寞無人賞 (산정적막무인상) 산 뜨락 적막하여 감상할 사람 아무도 없어도

只把丹心向日傾 (지파단심향일경) 다만 온통 붉은 마음을 해를 향하여 기울어본다.

 

〚작자〛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문신이자 유학자. 그의 기보다 이를 중시하는 주리적 성리설은 이황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설이 되었으며, 조선 성리학의 한 특징을 이루었다.〈일강십목소〉는 그 정치사상을 대표한다. ‘이언적수필고본일괄’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 이옥봉(李玉峰)

 

〇 규정(閨情) - 李玉峯

有約來何晩 (유약래하만) 돌아온다 약속하시고 어찌 늦으신가요?

庭梅欲謝時 (정매욕사시) 뜰의 매화가 시들려고 해요

忽聞枝上鵲 (홀문지상작) 나뭇가지 위의 까치소리 문득 듣고

虛畵鏡中眉 (허화경중미) 부질없이 거울 속에서 눈썹 그려요

◀ 이 시는 안방에서 그리워하는 여인의 정을 노래한 것이다.

 

〇 위인송원(爲人訟寃) - 李玉峯

洗面盆爲鏡 (세면분위경) 얼굴을 씻는 동이로 거울을 삼고

梳頭水作油 (소두수작유) 머리를 빗는 물로 기름 삼아도

妾身非織女 (첩신비직녀) 이 몸이 직녀가 아닐진대

郎豈是牽牛 (낭기시견우) 낭군이 어찌 견우가 되오리까?

◀ 이 시는 이웃집 여자의 원통한 소송(訴訟)을 풀어 주기 위해 지은 시이다.

 

〇 즉사 (卽事) - 李玉峯

柳外江頭五馬嘶(유외강두오마시) 버들 너머 강 머리 오마가 울어대니

半醒半醉下樓時(반성반취하누시) 반쯤 깼다 반쯤 취해 다락에서 내릴 때로세

春紅欲瘦臨鏡粧(춘홍욕수림경장) 화장이 얇을세라 경대 앞에 앉아

試畫梅窓却月眉(시화매창각월미) 시험 삼아 매화 창의 반달눈썹 그린다오

 

〇 증운강(贈雲江) - 李玉峯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근래 안부가 어떠하신지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달빛이 깁창을 비추니 저는 한에 사무치나이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만일 꿈속의 혼이 다니며 자취를 남기었더라면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임의 집 앞 돌길은 반이 모래가 되었을 텐데

◀ 이 시는 운강(雲江) 조원에게 주는 시 임.

 

〇 칠석(七夕) - 李玉峯

無窮會合豈秋思(무궁회합기추사) 끊없이 만나니 어찌 가을 수심 있을까

不比浮生有離別(불비부생유이별) 덧없는 인간의 이별과 견줄 수가 없도다

天上却成朝暮會(천상각성조모회) 하늘에는 도리어 아침저녁 만나는데

人間漫作一年期(인간만작일년기) 사람들은 부질없이 일 년만에 만다 하네

 

〚작자〛 이옥봉(李玉峰)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으로 중국에도 이름이 알려졌으며 맑고 씩씩함이 느껴지는 시를 남겼다. 중국과 조선에서 출간된 시집에 허난설헌의 시와 함께 실려있다.

 

 

 

□ 이용휴 (李用休)

 

〇 방산가(訪山家)

松林穿盡路三丫(송림천진로삼아) 솔숲을 다 지나니 세 갈래 길 나와

立馬坡邊訪李家(입마파변방이가) 언덕 가에 말 세우고 이씨 집을 물었네

田父擧鋤東北指(전부거서동북지) 농사꾼 호미 들어 동북쪽 가리키는데

鵲巢村裏露榴花(작소촌리로류화) 까치둥지 있는 마음에 석류꽃 드러나네

◀ 이 시는 벗이 있는 시골집을 방문하면서 지은 시이다.

 

〚작자〛 이용휴(李用休, 1706, 숙종 34~1782, 정조 6): 본관은 여주. 자는 경명(景命), 호는 혜환(惠寰). 음보(蔭補)로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저서로는 『탄만집』·『혜환시초(惠寰詩抄)』와 『혜환잡저(惠寰雜著)』가 있다.

 

 

 

□ 이이 (李珥)

 

〇 계분봉수 (溪分峰秀)

溪分泗洙派(계분사수파) 시내는 사수가 흐르는 것 같고

峰秀武夷山(봉수무이산) 산봉우리 무이산 보다 아름답다.

活討經千卷(활토경천권) 재산이라고는 천 권 경서와 다만 몸담을 방 몇 간 뿐인데

行藏屋數間(행장옥수간) 주고받는 얘기와 웃음은

襟懷開霽日(근회개제일) 밝은 달이 가슴속까지 환하게 비치는 듯하여

談笑止狂峃(담소지광란) 설레는 이 가슴을 진정시켜 주노라

小子求聞道(소자구문도) 선생을 찾아온 뜻은 도를 알고자 함이지

非偸半日閒(비투반일한) 한가로이 놀러 다님이 아니 오리.

◀ 23세때, 퇴계를 찾아 인사를 올리고 나서, 그의 학덕을 찬양하며 지은 시

 

〇 哭退溪先生(곡퇴계선생) -이이(李珥)-

良玉精金稟氣純(양옥정금품기순) 아름다운 옥 정금같이 타고난 정기 순수한데

眞源分派自關憄(진원분파자관민) 참된 근원은 관민에게서 갈려 나오셨네

民希上下同流澤(민희상하동류택) 백성들은 위아래로 혜택 입기를 바랐건만

迹作山林獨善身(적작산림독선신) 행적은 산림에서 홀로 몸을 닦으셨네

虎逝龍亡人事變(호서용망인사변) 호랑이 떠나고 용도 없어서 사람의 일은 변했건만

峃回路闢簡編新(난회로벽간편신) 물길을 돌리고 길을 열어 놓으신 저서가 새롭네

南天渺渺幽明隔(남천묘묘유명격) 남쪽 하늘이 아득하게 이승과 저승이 갈리었으니

淚盡腸癆西海濱(누진장최서해빈) 서해 바닷가에서 눈물이 마르고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네.

◀ 퇴계 선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〇 浮碧樓(부벽루)

箕城東畔浿江頭 (기성동반패강두) 기성의 동쪽 언덕 패강 어귀에

中有祋渺之飛樓 (중유표묘지비루) 가물가물 높은 다락 솟아 있구나

靑山一望何袞袞 (청산일망하곤곤) 푸른 산 바라보니 어찌 그리 곤곤한가

白雲千載空悠悠 (백운천재공유유) 흰 구름 언제 봐도 한가로이 떠다닌다네

猩袍仙子此時過 (성포선자차시과) 성포 입은 신선은 지금 지나가는데

麟馬天孫何處遊 (인마천손하처유) 기린 탄 천손은 어디에서 노니나

玉簫吹澈彩霞盡 (옥소취철채하진) 옥퉁소 불어도 단장한 노을 없으니

古國煙波人自愁 (고국연파인자수) 고국의 연기 나부껴 절로 시름에 잠기노라.

〇 산중(山中) -율곡(栗谷) 이이(李珥)-

採藥忽迷路(채약홀미로) 약초 캐러 나섰다가 길을 잃었네

千峰秋葉裏(천봉추엽리) 봉우리 봉우리 마다 오통 단풍 속

山僧汲水歸(산승급수귀) 산사의 스님 물 길어 돌아가더니

林末茶烟起(임말다연기) 숲 끝자락에 차 끓이는 연기 피어오르네.

 

〇 산중(山中) -율곡(栗谷) 이이(李珥)-

白雲抱幽巖(백운포유암) 흰 구름 아득히 바위를 둘러싸고

靑鼠窺蓬戶(청서규봉호) 다람쥐만 초라한 집을 엿보는구나.

山人不出山(산인불출산) 산 사람이 산에서 나가지 않으니

石逕蒼苔老(석경창태로) 돌 길에는 늘 이끼만 푸르구나.

 

〇 산중사영(山中四詠) - 李珥

- 산속에서 네 수를 읊다.

風 (바람)

樹影初濃夏日遲 (수영초농 하일지) 나무 그늘이 처음 짙어지고 여름 해는 더디기만 한데

晩風生自拂雲枝 (만풍생자 불운지) 구름을 찌르는듯한 나뭇가지에선 늦바람이 일어나네

幽人睡罷披襟起 (유인수파 피금기) 은자가 잠이 깨어 옷을 걸치고 일어나니

徹骨淸凉只自知 (철골청량 지자지) 뼈속 깊이 스며드는 서늘함을 혼자서만 안다네

月 (달)

萬里無雲一碧天(만리무운일벽천) 구름 한 점 없는 만 리 푸른 하늘에

廣寒宮出翠微巓(광한궁출취미전) 달이 푸른 산꼭대기에 뜨네

世人只見盈還缺(세인지견영환결) 세상 사람들은 다만 찼다가 다시 이지러지는 것만 알 뿐

不識氷輪夜夜圓(불식빙륜야야원) 밝은 달이 밤마다 둥근 것을 알지 못하네

水 (물)

晝夜穿雲不暫休(주야천운부잠휴) 밤낮으로 구름 뚫어 잠시도 쉬지 않으니

始知源派兩悠悠(시지원파량유유) 비로소 근원과 갈래 끝없음을 알겠네

試看河海千層浪(시간하해천층랑) 시험 삼아 보니, 하해의 천 겹의 물결도

出自幽泉一帶流(출자유천일대류) 깊은 샘 한 줄기로부터 흐르네

 (구름)

飛入靑山幾許深 (비입청산 기허심) 얼마나 깊은 청산에 날아드는지

洞中猿鶴是知音 (동중원학 시지음) 골짜기 속의 원숭이와 학들이 바로 절친한 벗들이라네

何如得逐神龍去 (하여득축 신룡거) 어떻게 하면 신룡이 가는데를 딸아가서

慰却蒼生忘雨心 (위각창생 망우심) 백성들이 비를 바라는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으랴

◀ 시는 산속에서 본 네 가지 자연물(풍(風), 월(月), 수(水), 운(雲))에 대해 노래한 영물시(詠物詩) 가운데 두 수(首)이다.

 

〇 범국(泛菊) - 국화를 띄우고.(栗谷 李珥) ★

爲愛霜中菊(위애상중국) 가엾게 여기게 되는 서리 속의 국화꽃

金英摘滿觴(금영적만상) 노란 꽃부리를 따서 잔에 가득채웠네.

淸香添酒味(청향첨주미) 맑고 깨끗한 향기 맛있는 술에 보태니

秀色潤詩腸(수색윤시장) 빼어난 빛깔 시를 짓는 마음을 적시네.

元亮尋常採(원량심상채) 원량(도연명)은 항상 찾아서 채취하고

靈均造次嘗(영균조차상) 영균(굴원)은 거처에서 처음 맛보았네.

何如情話處(하여정화처) 어떠한가 정담을 나누며 은거하면서

詩酒兩逢場(시주량봉장) 시와 술 자리 둘 다 만나는 곳이라네.

◀ 泛菊(범국) : 重陽節[중양절 음력 9월 구일]에 마시는 술에 국화를 띄움.

〇 숙남시보(언경)교사(宿南時甫(彦經)郊舍) - 李珥

返照依山扣野扉(반조의산구야비) 지는 해 산에 의지할 무렵 들 사립 두드려

坐看淸月出林霏(좌간청월출림비) 앉아서 숲 안개 위로 뜨는 맑은 달을 보네

焚香小閣淸無語(분향소각청무어) 향을 피운 조그만 집에 말쑥하고 조용하니

更覺風塵此會稀(갱각풍진차회희) 다시 세속에 이런 자리 드문 것을 깨닫겠네

◀ 이 시는 남시보의 성 밖 집에서 머물면서 느낀 것을 기록한 것이다.

 

〇 화석정(花石亭) -李珥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시인의 뜻이 끝이 없도다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먼 물줄기는 하늘에 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서리 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다

山吐孤輪月(산토고륜월) 산은 외로운 보름달을 토해놓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강은 만 리의 바람을 머금었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소리가 저물어 가는 구름 속에서 끊어지네

◀ 이 시는 율곡(栗谷)이 8세에 파주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지은 시이다.

 

〚작자〛 이이(李珥, 1536~1584) :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이다. 1536년(중종 31) 음력 12월 26일에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원수(李元秀)와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의 셋째 아들로 외가가 있던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동호문답>, <성학집요> 등의 저술을 남겼다. 현실ㆍ원리의 조화와 실공(實功)ㆍ실효(實效)를 강조하는 철학사상을 제시했으며, <동호문답>ㆍ<만언봉사>ㆍ<시무육조> 등을 통해 조선 사회의 제도 개혁을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18대 명현(名賢) 가운데 한 명으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있다.

 

 

 

□이정구 李廷龜

 

〇 감흥」 십수(感興 十首) - 李廷龜

其八(기팔)

中宵悄不寐(중소초불매) 한밤중에 근심스러워 잠 못 이루어

起坐披重衾(기좌피중금) 일어나 앉아 무거운 이불을 걷는다

江月入我幃(강월입아위) 강 달이 내 휘장으로 들어오고

江風吹我襟(강풍취아금) 강바람이 내 옷깃에 불어온다

泠泠萬慮息(영령만려식) 맑아 온갖 시름 사라지니

便見太古心(편견태고심) 곧 태고의 그 마음을 보겠다

床上有古書(상상유고서) 상 위에는 옛 책 놓여 있고

床前有素琴(상전유소금) 상 앞에는 장식 없는 거문고 놓여 있다

我欲奏一曲(아욕주일곡) 내가 한 곡 연주하고 싶으나

擧世無知音(거세무지음) 온 세상에 음을 알아주는 사람 없구나

 

〚작자〛 이정구(李廷龜) 조선 시대의 문신ㆍ한학자(1564~1635).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ㆍ보만당(保晩堂)ㆍ치암(癡菴)ㆍ추애(秋崖)ㆍ습정(習靜). 벼슬은 우의정, 좌의정에 이르렀다. 한문학의 대가로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조선 중기의 4대 문장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서에 ≪월사집≫, ≪서연강의(書筵講義)≫, ≪대학강의(大學講義)≫가 있다.

 

 

 

□ 이집(李集)

 

〇 입추일기경지(立秋日寄敬之

江海無家客 (강해무가객) 물에서는 집 없는 나그네

山林有髮僧 (산림유발승) 산에서는 머리 기를 중이란다.

焚香蘄道泰 (분향기도태) 향불 피워 태평성대 기원하며

對食願年登 (대식원년등) 밥상 모리에서는 풍년을 기원한단다.

睡起微涼入 (수기미량입) 잠 깨어 일어나니 서늘한 바람 들고

吟餘老病增 (음여노병증) 시를 읊고 나니 늙은 병이 심해지는구나.

玉人何處所 (옥인하처소) 그대는 있는 곳은 어디인가

咫尺是驪興 (지척시려흥) 지척이 곧 영흥 땅 아니런가.

 

 

〚작자〛 이집(李集,1314~1387) 고려 후기의 학자·문인.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호연(浩然). 호는 둔촌(遁村) 1368년(공민왕17) 신돈(辛旽)에게 미움을 받자 가족과 함께 영천(永川)으로 도피했다가 1371년 신돈이 주살되자 개경에 돌아와 이름을 집, 호는 둔촌으로 고치고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로 잠시 있었다. 그러나 곧 사직하고 여주 천녕현(驪州川寧縣)에서 독서와 시작(詩作)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 이항복(李恒福)

 

〇 고우(苦雨)

苦雨連旬夜徹明(고우련순야철명) 장마비 열흘 동안 주야로 계속 되어

曉庭雲物太縱橫(효정운물태종횡) 새벽 뜰의 구름 안개 너무나 자욱하다.

牀牀避漏人何限(상상피루인하한) 침상마다 새는 새는 비 피하는 사람을 어찌 원망하며

種種緣愁髮幾莖(종종연수발기경) 종종 시름으로 백발은 몇 줄기나 더했는가.

沙捲洑流穿竈入(사권보류천조입) 모래는 봇물에 밀려서 부엌까지 들고

蛙隨驚犬上墻鳴(와수경견상장명) 개구리는 놀란 개를 따라 담장에 올라 울고 있다.

鍾城戰血今如海(종성전혈금여해) 종성의 전쟁의 피가 지금 바다와 같아

天厭頑胡爲洗兵(천염완호위세병) 하늘이 싫어하여 오랑캐 군대를 비에 젖게 하는구나

 

〇 도청파 이배경원 우이삼수 정월구일 개북청 연릉제군휴호 송우산단도좌

到靑坡 移配慶源 又移三水 正月九日 改北靑 延陵諸君携壺 送于山壇道左

雲日蕭蕭晝晦微(운일소소주회미) 구름과 해는 쓸쓸하여 한낮도 어두컴컴한데

北風吹裂遠征衣(북풍취렬원정의) 북풍은 먼 길 가는 사람의 옷을 찢을 듯 부네

遼東城郭應依舊(요동성곽응의구) 요동의 성곽은 응당 예전과 같겠지만

只恐令威去不歸(지공영위거불귀) 다만 영위가 가서 돌아오지 않을까 염려되도다

◀ 유배지에 연릉 등 제군이 술을 가지고 와서 산단(山壇)의 길 아래에서 전송하면서 지은 시

 

〇 삼물음(三物吟) - 李恒福

 (서)」

廁鼠數驚社鼠疑(측서수경사서의) 측간 쥐는 자주 놀라고 사당 쥐는 의심이 많아

安身未若官倉嬉(안신미약관창희) 안전하긴 관아의 창고에서 즐겁게 노닒만 못하리

志須滿腹更無事(지수만복갱무사) 뜻은 배불리 먹고 또 무사하길 바라지만

地塌天傾身始危(지탑천경신시위) 땅 꺼지고 하늘 기울면 제 몸도 위태로워진다네

◀ 이 시는 올빼미·쥐·매미를 읊은 시 가운데 쥐를 노래한 것

 

〇 영정안(詠庭雁) - 李恒福

在郊那似在家肥(재교나사재가비) 교외에 있는 것이 어찌 집에서 살찌는 것만 하겠냐고

人笑冥鴻作計非(인소명홍작계비) 사람들이 기러기 세운 계획 잘못됐다 비웃지만

莫把去留論得失(막파거류론득실) 가고 머무름 가지고 득실을 논하지 말라

江南水闊網羅稀(강남수활망라희) 강남에는 물이 넓고 그물도 드물다오

◀ 이 시는 뜰의 기러기를 노래한 것으로

 

〇 은대시박내한자룡(銀臺示朴內翰子龍) - 李恒福

深室蒸炎氣鬱紆(심실증염기울우) 깊은 방 찌는 더위에 기분이 답답하여

夢爲鷗鷺浴淸湖(몽위구로욕청호) 꿈에 갈매기와 해오라기 되어 맑은 호수에 목욕하네

縱然外體從他幻(종연외체종타환) 비록 겉몸이야 변하거나 말거나

煙雨閑情却是吾(연우한정각시오) 가랑비에 한가로운 정이 바로 나라오

◀ 이 시는 승정원에서 조카사위 내한 박자룡에게 보여 준 시

 

〚작자〛 이항복(李恒福, 1556~1618) :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ㆍ필운(弼雲). 임진왜란 때 병조 판서로 활약했으며, 뒤에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에 인목 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 북청(北靑)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저서에 ≪백사집(白沙集)≫, ≪북천일기(北遷日記)≫, ≪사례훈몽(四禮訓蒙)≫가 있다.

 

□ 이행(李荇)

 

〇 독취헌시 용장호남구시운(讀翠軒詩 用張湖南舊詩韻) - 李荇

挹翠高軒久無主(읍취고헌구무주) 읍취헌 높은 집에 오래 주인이 없어

屋樑明月想容姿(옥량명월상용자) 지붕 위 밝은 달에 그 모습 그립네

自從湖海風流盡(자종호해풍류진) 이로부터 강산에 풍류가 사라졌으니

何處人間更有詩(하처인간갱유시) 인간 세상 어느 곳에서 다시 시가 있겠는가?

◀ 이 시는 읍취헌의 시를 읽고 장호남의 옛 시에 차운하여 지은 것으로, 죽은 박은(朴誾)을 그리워하며 지은 것이다.

 

〇 제천마록후(題天磨錄後) - 李荇

卷裏天磨色(권리천마색) 책 속에 천마산 빛이

依依尙眼開(의의상안개) 어렴풋이 여전히 눈앞에 열리네

斯人今已矣(사인금이의) 이 사람 지금 이미 가고 없으니

古道日悠哉(고도일유재) 옛길은 날로 아득해지네

細雨靈通寺(세우령통사) 영통사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斜陽滿月臺(사양만월대) 만월대에는 석양이 비끼었네

死生曾契闊(사생증계활) 죽고 삶에 일찍이 서로 약속했는데

衰白獨徘徊(쇠백독배회) 쇠약한 백발의 몸으로 홀로 배회하노라

◀ 이 시는 박은(朴誾)이 죽고 난 후 함께 천마산을 올랐던 기록인 「천마록」 뒤에 쓴 회고시이다.

 

〇 차중열운 삼수(次仲說韻 三首) - 李荇

其三(기삼)

佳節昏昏尙掩關(가절혼혼상엄관) 좋은 계절 저무는데 여전히 문 닫고 지내노니

不堪孤坐背南山(불감고좌배남산) 남산 등지고 차마 홀로 앉았기 어려워라

閑愁剛被詩情惱(한수강피시정뇌) 한가한 시름은 바야흐로 시흥에 몹시 시달리고

病眼微分日影寒(병안미분일영한) 병든 눈은 찬 햇살을 겨우 알아보겠네

止酒更當嚴舊律(지주갱당엄구률) 술 끊자니 옛 맹세 더욱 엄하고

對花難復作春顔(대화난부작춘안) 꽃을 보고도 다시 봄 얼굴빛 짓기 어렵네

百年生死誰知己(백년생사수지기) 인생 백 년 삶과 죽음에 누가 지기인가?

回首西風淚獨潸(회수서풍루독산) 가을바람에 고개 돌리며 홀로 눈물 흘린다

◀ 이 시는 중열 박은(朴誾)의 시에 차운한 것이다.

 

〇 화경(花徑) - 李荇

無數幽花隨分開(무수유화수분개) 무수한 이름 없는 꽃 저마다 피어있고

登山小逕故盤廻(등산소경고반회) 산 오르는 작은 길은 짐짓 구부러져 있도다

殘香莫向東風掃(잔향막향동풍소) 남은 꽃향기 봄바람 향해 쓸지 말아라

倘有閑人載酒來(당유한인재주래) 혹 한가한 사람 술 가지고 올지도 모르겠노라

 

〚작자〛 이행(李荇, 1478, 성종 9~1534, 중종 29) 박은(朴誾)과 함께 해동강서파(海東江西派)라고 불렸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창택어수(滄澤漁叟)·청학도인(靑鶴道人). 조선전기 우찬성,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저서로는 『용재집(容齋集)』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定)이고, 뒤에 문헌(文獻)으로 바뀌었다.

 

 

 

□ 이현일(李玄逸)

 

〇 유내연산(遊內延山)

絶頂登臨步武輕(절정등림보무경) 정상에 올라 바라보니 발걸음 가벼워

戒昏鐘報氣全淸(계혼종보기전청)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 들어니 기분이 상쾌하다

崖松隔水無風響(애송격수무풍향) 물 건너 언덕 소나무에 바람소리 하나 없고

嶺月棲牕盡夜明(령월서창진야명) 고개의 달은 창에 깃들고 밤이 다하도록 밝도다

竹砌寒霜吟外態(죽체한상음외태) 소나무 계단 차가운 서리에 밖 경치 읊으니

海天歸雁枕邊聲(해천귀안침변성) 바다 하늘에 돌아오는 기러기 해변에 앉은 소리

夢回怳覺身全蛻(몽회황각신전태) 꿈에서 깨니 내가 허물 벗음을 멍한히 깨닫고

起向幽溪踏雪行(기향유계답설행) 일어나 그윽한 계곡 향하여 구름 밝고 지나간다

 

〚작자〛 이현일(李玄逸) 조선 숙종 때의 도학자ㆍ문신(1627~1704). 자는 익승(翼升). 호는 갈암(葛庵).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지평(持平)에 발탁되고 대사헌을 거쳐 이조 판서를 지냈다. 과거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으며, 영남학파의 거두로 이이의 학설에 반대하여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지지하였다. 저서에 ≪갈암집≫이 있다.

 

 

 

□ 이 황 (李 滉)

 

〇 溪堂偶興三首 (계당우흥삼수)

- 개울가 초당에서 흥에겨워 -

四麓惟紅錦 (사록유홍금) 사방의 산기슭은 붉은 비단이요

雙林是碧羅 (쌍림시벽라) 양옆의 숲풀은 푸른 비단이라

豈知淳朴處 (기지순박처) 어찌 알리오 순박한 곳이

還被化工誇 (환피화공과) 도리어 화옹의 자랑이 될줄이야

因病投閒客 (인병투한객) 병을 구실삼아 한가로운 객이

綠深絶俗居 (연심절속거) 깊은 곳에서 세속일 끊고사네

欲知眞樂處 (욕지진낙처) 참으로 즐거운곳을 알려 한다면

白首抱經書 (백수포경서) 흰머리가 되도록 경전을 읽어야지

掬泉注硯池 (국천주연지) 샘물을 길러다 벼루위에 드리우고

閒坐寫新詩 (한좌사신시) 한가로이 앉아서 새시를 베낀다

自適幽居趣 (자적유거취) 유유자적 그윽함에 취해 있으니

何論知不知 (하논지부지) 어찌 알고 모르는 것을 논하리오

 

〇 계분봉수(溪分峰秀) - 이황(李滉)

病我牢闕不見春(병아뢰궐불견춘) 내 병석에 갇히어 봄 구경도 못했는데

公來披豁醒心神(공래피활성심신) 그대가 이렇게 찾아 주니 병이 씻은 듯 나아져 상쾌하네

始知名下無處士(시지명하무처사) 내 오늘 비로소 공의 선비다움을 알고

堪愧年前闕敬身(감괴년전궐경신) 내 스스로가 과거를 삼가지 못했음을 부끄러워 할 뿐

嘉穀莫容梯熟美(가곡막용제숙미) 좋은 곡식 밭에는 잡초가 무성할 수 없으니

遊塵不許鏡磨新(유진불허경마신) 어찌 글로써만 만나는 정분을 표현할 수 있으리

遇情詩話須刪去(우정시화수산거) 아무쪼록 서로가 열심히 공부하며

努力工夫名日親(노력공부명일친) 앞으로는 더욱 더 친하게 지내보세

◀ 퇴계가 58세때, 병문안을 찾아온 율곡(당시 23세)의 헌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

 

〇 만보(晩步) - 이황(李滉)

苦忘亂抽書 (고망난추서) 잊음이 많아 이 책 저 책 뽑아 놓고서

散漫還復整 (산만환복정) 흩어진 걸 도로 다 정리하자니

曜靈忽西頹 (요령홀서퇴) 해가 문득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江光搖林影 (강광요림영) 가람엔 숲그림자 흔들리누나.

扶筇下中庭 (부공하중정) 막대짚고 뜨락으로 내려가서

嬌首望雲嶺 (교수망운령) 고개들고 구름재를 바라보니

漠漠炊烟生 (막막취연생) 아득아득 밥짓는 연기 일고

蕭蕭原野冷 (소소원야랭) 으스스 산과 벌은 싸늘하구나.

田家近秋穫 (전가근추확) 농삿집 가을걷이 가까워지니

喜色動臼井 (희색동구정) 방앗간 우물터에 기쁜 빛 돌아

鴉還天機熟 (아환천기숙) 갈가마귀 날아드니 절기 익었고

鷺立風標迵 (로입풍표동) 해오라비 우뚝서니 모습 훤칠하다.

我生獨何爲 (아생독하위) 내 인생은 홀로 무얼 하는건지

宿願久相梗 (숙원구상경) 숙원이 오래도록 풀리질 않네

無人語此懷 (무인어차회) 이 회포를 뉘에게 이야기할까

搖琴彈夜靜 (요금탄야정) 거문고만 둥둥 탄다. 고요한 밤에.

◀ 「만보(晩步)」는 ‘저물녘에 걸으며’라는 뜻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李滉)의 문집 『퇴계집(退溪集)』제1권에 실린 전문 16행 5언 고시의 한시다.

 

〇 매답(梅答) - 李滉

我是逋翁換骨仙(아시포옹환골선) 나는 바로 환골한 신선 임포요

君如歸鶴上遼天(군여귀학상료천) 그대는 학을 타고 요동에 돌아온 것 같구려

相逢一笑天應許(상봉일소천응허) 서로 만나 한 번 웃음 하늘도 허락하셨으니

莫把襄陽較後前(막파양양교후전) 양양의 매화와 선후를 비교하지 마오

◀ 이황이 지은 매화시(梅花詩) 64제(題) 91수 가운데 한 편이다.

 

〇 보자계상 유산지서당 (步自溪上 踰山至書堂) - 李滉

花發巖崖春寂寂(화발암애춘적적) 꽃이 가파른 벼랑에 피어 봄은 고요하고

鳥鳴澗樹水潺潺(조명간수수잔잔) 새가 시내 숲에 울어 시냇물은 졸졸 흘러가네

偶從山後攜童冠(우종산후휴동관) 우연히 산 뒤에서 제자들을 이끌고

閑到山前問考槃(한도산전문고반) 한가히 산 앞에 와 고반을 묻는다

◀ 이 시는 제자들을 데리고 계상부터 걸어서 산을 넘어 서당에 도착하여 지은 것

 

〇 서전천고심 (書傳千古心) - 이황(李滉)

書傳千古心 (서전천고심) 글은 본래 옛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거라

讀書知不易 (독서지불이) 글 읽기란 그리 쉽지가 않을 줄 아네

卷中對聖賢 (권중대성현)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할 수 있으니

所言皆吾事 (소언개오사) 말씀하는 모든 것을 사표로 삼아야 하네

◀ 퇴계 이황이 제자 김부의(읍청정)에게 써준 詩金愼仲挹淸亭十二詠의 다섯 번째 시이다. (퇴계문집 권5)

 

〇 야지 (野池) - 李滉

露草夭夭繞水涯(노초요요요수애) 고운 풀 이슬에 젖어 물가를 둘렀는데

小塘淸活淨無沙(소당청활정무사) 조그마한 연못 맑고 깨끗해 모래도 없네

雲飛鳥過元相管(운비조과원상관) 구름 날고 새 지나는 것이야 제 맘대로이나

只怕時時燕蹴波(지파시시연축파) 단지 때때로 제비가 물결 찰까 두려워라

◀ 이 시는 『퇴계언행록(退溪言行錄)』에, “선생께서 젊었을 때 우연히 연곡(燕谷, 온계(溫溪)에 가까운 마을 이름)에 놀러 간 일이 있었다. 연곡에는 조그마한 못이 있는데, 물이 매우 맑았다. 선생께서 시를 지었다.”라고 했다.

 

〇 우설월중상매운(又雪月中賞梅韻) - 李滉

盆梅發淸賞(분매발청상) 화분의 매화가 맑은 감상을 발하고

溪雪耀寒濱(계설요한빈) 시냇가의 눈은 찬 물가에서 빛나네

更著氷輪影(갱저빙륜영) 다시 차갑고 둥근 달 그림자 떠오르지만

都輸臘味春(도수랍미춘) 한겨울인데도 봄을 맛보네

迢遙閬苑境(초요랑원경) 아득하니 신선의 경지요

婥約藐姑眞(작약막고진) 아름다우니 막고야산의 선녀일세

莫遣吟詩苦(막견음시고) 시를 읊조리느라 고심하지 마시오

詩多亦一塵(시다역일진) 시가 많은 것도 또한 하나의 흠이라오

◀ 이 시는 또 눈 내린 달밤에 매화를 감상한 시에 차운한 것

 

〇 월영대(影臺) - 李滉

老樹奇巖碧海堧(노수기암벽해연) 늙은 나무 기이한 바위 푸른 바닷가에 있고

孤雲遊跡總成烟(고운유적총성연) 고운이 노닌 자취 모두 연기 되고 말았구나

只今唯有高臺月(지금유유고대월) 이제 다만 높은 대에 달만이 남아

留得精神向我傳(유득정신향아전) 그 정신 남겨 내게 전해 주는구나

◀ 이 시는 최치원(崔致遠)이 머물렀다는 마산 월영대에 올라 지은 시이다

 

〇 임거십오영(林居十五詠) - 李滉

「觀物(관물)」

芸芸庶物從何有(운운서물종하유) 많은 저 사물은 어디로부터 생겼는가?

漠漠源頭不是虛(막막원두불시허) 아득한 근원의 머리, 빈 것이 아니네

欲識前賢興感處(욕식전현흥감처) 앞 현인의 흥감처를 알고 싶으면

請看庭草與盆魚(청간정초여분어) 뜰의 풀이나 동이의 물고기를 보아라

 

〇 잉용류공종룡(운)류자절구운 범득약간수 – 李滉

(自淸風泝流而上 所過輒問名紀勝 仍用柳公從龍(雲)流字絶句韻 凡得若干首)

「花灘(화탄)」

勢利爭先得(세리쟁선득) 권세와 이익 먼저 얻으려고 다투고

巉巖鬭衆流(참암투중류) 우뚝 솟은 바위 여러 물줄기와 만나네

惡人能覆國(악인능복국) 악한 사람 나라를 전복시킬 수 있고

惡灘能覆舟(악탄능복주) 악한 여울 배를 전복시킬 수 있다네

◀ 이 시는 맑은 바람을 따라 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지나는 곳마다 명승지라 류종룡의 운에 차운하여 지은 시 가운데 한 편이다.

 

〇 제금상사신중화폭 팔절(題金上舍愼仲畫幅 八絶) - 李滉

「西湖伴鶴(서호반학)」

湖上精廬絶俗緣(호상정려절속연) 호숫가 깨끗한 집 세속의 인연과 끊어진 곳이니

胎仙栖託爲癯仙(태선서탁위구선) 학이 깃들어 여윈 신선이 되었구나

不須翦翮如鸚鵡(불수전핵여앵무) 앵무처럼 깃촉을 꺾을 필요 없으니

來伴吟梅去入天(내반음매거입천) 장차 함께 매화를 읊으며 하늘로 들어가세

◀ 이 시는 상사 김신중의 화폭에 쓴 제화시의 한 수로, 서호에서 학을 짝함을 노래한 것이다.

 

〇 퇴계 (退溪)

身退安愚分(신퇴안우분) 벼슬에서 물러나니 내 분수에 편안해라.

學退憂暮境(학퇴우모경) 학문까지 물러설까봐 느지막이 걱정되네.

溪上始定居(계상시정거) 이제야 이 시냇가에 머물 곳 마련했으니

臨流日有省(임류일유성) 맑은 흐름 굽어보며 날마다 깨달으리라.

 

〇 화도집음주 이십수 4 (和陶集飮酒 二十首)

我本山野質 (아본산야질) 내 본디 시골 사람 기질이 있어

愛情不愛喧 (애정불애훤) 고요함을 사랑하고 지껄임은 싫어했네.

愛喧固不可 (애훤고불가) 지껄임 좋아하는 게 옳지는 않겠지만

愛情亦一偏 (애정역일편) 고요함만을 사랑하는 것도 또한 치우친 일일세.

君看大道人 (군간대도인) 그대여, 큰길가는 사람을 보게나.

朝市等雲山 (조시등운산) 서울에 살면서도 시골처럼 생각한다네.

義安卽蹈之 (의안즉도지) 올바른 길이 편안하니 이 길을 걸어야지,

可往亦可還 (가왕역가환) 갈 땐 가고 멈출 땐 멈춰야지.

但恐易磷緇 (단공역린치) 세속에 물들까 그것만 걱정이니

寧敦靜修言 (영돈정수언) 차라리 고요한 가운데 마음 수양하리라.

◀ 도연명의 시집에서 ·음주·이십 수를 화답하여

 

〚작자〛 이황(李滉, 1502~1571)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주자의 사상을 깊게 연구하여 조선 성리학 발달의 기초를 형성했으며, 이(理)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주리론(主理論) 전통의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조(宗祖)로 숭앙된다.

 

 

 

□ 임억령(林億齡)

 

〇 죽서루(竹西樓)

江觸春樓走(강촉춘루주) 강물은 봄 누각을 부딪히고 달려가고

天和雪嶺圍(천화설령위) 하늘은 눈 덮힌 봉우리가 둘러쌓고 있다

雲從詩筆湧(운종시필용) 구름은 시 쓰는 붓 따라 솟아오르고

鳥拂酒筵飛(조불주연비) 새는 술자리를 스치며 날아가는구나

浮雲如今是(부운여금시) 기분이 구름 위로 솟으려는 지금은 옳고

趨名悟昨非(추명오작비) 세상 명세를 쫓았던 지난 날은 그릇됨 알았도다

松風當夕起(송풍당석기) 솔바람 저녁 되어 일어나니

蕭颯動荷衣(소삽동하의) 서늘하게 은자의 옷을 불어올린다

 

〚작자〛 임억령(林億齡) 조선 명종 때의 문신(1496~1568). 자는 대수(大樹). 호는 석천(石川). 문장에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하였다. 을사사화 때 벼슬을 버리고 해남에 은거하였다. 문집에 ≪석천집≫이 있다.

 

 

 

□ 임벽당 김씨

 

〇 제임벽당(題林碧堂) - 임벽당에 제함

小洞幽深別一區(소동유심별일구) 작은 고을 그윽하게 깊어 특별한 한 지역,

膏籄泉石可忘憂(고황천석가망우) 천 석을 좋아하는 성벽에 근심을 잊을 수 있네.

人間非是渾無累(인간비시혼무누) 인간의 옳고 그름 온통 쌓아놓을 것 없으니,

花發知春葉脫秋(화발지춘엽탈추) 꽃피면 봄인 줄 알고 낙엽지면 가을이라.

 

〚작자〛 ※임벽당 김씨(1480∼?) 임벽당 김씨의 남편 유여주는 40세 되던 해인 중종14년(1519년)에 현량과에 추천을 받아 과거를 보았으나 급제하지 못하고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충청도 한산땅으로 돌아가 임벽당(林碧堂)을 짓고 독서와 서예로 일생을 마쳤다. 임벽당에서 함께 생활한 부인 김씨는 미망인이 된 후 외로움과 가난함을 시로 노래하였고 아들 위(緯)를 비롯한 십 여명의 조카와 종손(宗孫)들을 지도하였다. 그의 시중에 가난함을 노래한 것이 있다.

 

 

 

 

□ 임숙영(任叔英)

 

〇 산영루(山映樓)

月光穿樹鶴樓空(월광천수학루공) 학은 공중에서 잠들고 달빛은 나무숲에 비춰들고

霜葉蕭蕭乍有風(상엽소소사유풍) 바람이 일 때마다 서리 맞은 단풍잎이 떨어진다

虛閣夜深凉露濕(허각야심량노습) 빈 누대에 밤은 깊어가고 찬 이슬은 젖어들고

玉笛聲撤彩雲中(옥적성철채운중) 오색 구름 사이로 옥피리 소리 멀어진다

 

〚작자〛 임숙영(任叔英, 1576년(선조 9)~1623년(인조 1), 본관은 풍천(豊川). 초명은 상(湘). 자는 무숙(茂淑), 호는 소암(疎庵) 또는 동해산인(東海散人). 조선시대 박사, 부수찬,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 임제(林悌)

 

〇 무어별(無語別) - 林悌

十五越溪女 (십오월계녀) 열다섯 살의 아리따운 아가씨

羞人無語別 (수인무어별) 사람이 부끄러워 말도 못 하고 이별했네.

歸來掩重門 (귀래엄중문) 돌아와 겹문을 닫아 걸고는

泣向梨花月 (읍향이화월) 배꽃처럼 하얀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 이 시는 임제의 대표작으로, 왕사정(王士禎)이 『지북우담(池北偶談)』에 수록하여 중국에까지 알려진 시이다

 

〇 무제(無題)

酒肆風流跡已虛(주사풍류적이허) 술집의 멋스런 풍류 자취도 까마득하고

雄心寥落寄樵漁(웅심요락기초어) 큰 뜻도 다 가라앉아 시골사람 되었네

雲宵舊識音書斷(운소구식음서단) 출세한 옛 친구들은 소식이 끊기도

水竹新居契濶踈(수죽신거결활소) 물가 대숲 집엔 찾아오는 이도 없구나

蘇小縱輕貧孟浩(소소종경빈맹호) 소소(蘇小)는 가난한 맹호연을 소홀히 했다지만

文君猶托病相如(문군유탁병상여) 탁문군(卓文君)은 병든 사마를 돌보지 않았던가

名編玉籍團圓少(명편옥적단원소)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만나볼 수 없거늘

割盡柔腸一寸餘(할진유장일촌여) 애간장 다 끊어져 한 치나 남았겠나.

 

〇 패강가 십수 (浿江歌 十首) - 林悌

其六 (기륙)

浿江兒女踏春陽(패강아녀답춘양) 대동강의 계집아이 봄볕에 거니노라니

江上垂楊政斷腸(강상수양정단장) 강 위에 드리운 버들에 정말 애간장이 끊어지네

無限煙絲若可織(무한연사약가직) 한없는 가는 버들가지로 만약 베를 짤 수 있다면

爲君裁作舞衣裳(위군재작무의상) 임을 위해 춤출 옷을 짓고 싶네요”

◀ 임제(林悌)가 1583년 평안도 도사였을 때 대동강에 나가 놀면서 지은 시이다.

 

〇 추천곡 삼수 (鞦韆曲 三首) - 林悌

其一

白苧衣裳茜裙帶(백저의상천군대) 흰 모시 의상에 붉은 띠 두르고

相携女伴競鞦韆(상휴녀반경추천) 서로 이끄는 처녀들 다투어 그네 탄다

堤邊白馬誰家子(제변백마수가자) 둑 가 흰 말을 탄 사람은 누구 집 자제인가?

橫駐金鞭故不前(횡주금편고불전) 금채찍 움켜쥐고 일부러 앞으로 가지 않네

其二

粉汗微生雙臉紅(분한미생쌍검홍) 붉은 두 볼에 땀이 조금 배이고

數聲嬌笑落煙空(수성교소락연공) 고운 웃음소리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네

指柔易著駌鴦索(지유역저원앙삭) 부드러운 손가락은 원앙줄에 뚜렷하고

腰細不堪楊柳風(요세불감양류풍) 가는 허리는 버들에 부는 바람도 견디기 어려울 듯

其三

誤落雲鬟金鳳釵(오락운환금봉채) 구름 같은 머리채의 금봉 비녀 잘못해서 떨어지니

游郞拾取笑相誇(유랑습취소상과) 놀던 도령 주워서는 웃으며 들어 보인다

含羞暗問郞居住(함수암문랑거주) 부끄러움 머금고 몰래 도령 사는 곳을 묻기를

綠柳珠簾第幾家(녹류주렴제기가) “푸른 버들 옥 주렴이 있는 몇 번째 집인가요?”

 

〇 황진이 - 林悌

청초(靑草) 욱어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 35세때 평안도 도사로 부임하는 길에 홍진이의 묘에 들려 읊었다.

 

〚작자〛 임제(林悌, 1549∼1587) 본관 나주. 자 자순(子順). 호 백호(白湖)·겸재(謙齋). 대곡(大谷) 성운(成運)의 문인. 조선중기 시인 겸 문신. 황진이 무덤을 지나며 읊은 "청초 우거진 골에……"로 시작되는 시조와 기생 한우(寒雨)와 화답한 시조 <한우가(寒雨歌)〉등이 유명하다.

 

 

 

□ 장유(張維)

 

〇 분향(焚香)

淸夜坐焚香(청야좌분향) 맑은 밤 단정히 앉아 향불 피우니

香煙裊裊起(향연뇨뇨기) 향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火盡煙則滅(화진연칙멸) 불이 다하니 연기도 사라시고

煙滅香不死(연멸향부사) 연기는 사라져도 향기는 여전하다.

只是看不見(지시간부견) 단지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定在虛空裏(정재허공리) 정녕 허공중에 감돌고 있으리라.

何緣問香嚴(하연문향엄) 어찌하면 향엄에게 물을 기회 얻어

證得圓通理(증득원통리) 원통하는 그 이치를 증득할 수 있을까.

 

〚작자〛 장유(張維, 1587~1638)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묵소(默所). 조선시대 좌부빈객,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 장현광(張顯光)

 

〇 晧首吟(호수음)

皓首猶存赤子心(호수유존적자심) 백발이 다 되어도 어린아이 마음 그대로

此時方會一源深(차시방회일원심) 이제야 근원이 깊음을 알겠네

眼中天地都眞境(안중천지도진경) 눈에는 천지가 모두 참된 경지만 보이니

外誘何從得我侵(외유하종득아침) 외물이 어디로 내 마음을 침범하리오

 

〚작자〛 장현광(張顯光) 조선 시대의 학자(1554~1637).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학문 연구에만 전심하였다. 덕(德)은 도(道)의 지선(至善)이라 하였다. 저서에 ≪여헌문집≫, ≪역학도설≫, ≪성리설≫이 있다.

 

 

 

□ 정구(鄭逑)

 

〇 회연우음(檜淵偶吟)

伽川於我有深緣(가천어아유심연) 나에게 가천은 깊은 사연 있어

占得寒岡又檜淵(점득한강우회연) 가려서 선택한 곳, 한강과 회연이네

白石淸川終日翫(백석청천종일완) 깨끗한 바위, 맑은 시내 종일토록 즐기니

世間何事入舟田(세간하사입주전) 세상에 무슨 일로 주전으로 들어가리오

 

〚작자〛 정구(鄭逑, 1543년(중종 38) ~ 1620년(광해군 12)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 조선시대 강원도관찰사, 형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

 

 

 

□ 정도전(鄭道傳)

 

〇 고의(古意) - 鄭道傳

蒼松生道傍(창송생도방) 해묵은 솔이 길가에 자라니

未免斤斧傷(미면근부상) 도끼의 상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리

尙將堅貞質(상장견정질) 아직도 굳고 곧은 바탕을 지녀

助此爝火光(조차작화광) 횃불의 빛을 도와줄 수 있다네

安得無恙在(안득무양재) 어쩌면 병 없이 조용히 있어

直榦凌雲長(직간릉운장) 똑바로 구름을 뚫고 자라

時來竪廊廟(시래수랑묘) 때가 와서 큰 집을 지을 적이면

屹立充棟樑(흘립충동량) 우람한 저 대들보에 충당할 것인가

夫誰知此意(부수지차의) 누가 이 뜻을 미리 알아

移種最高岡(이종최고강) 가장 높은 산에 옮기어 심어 줄 것인가

 

〇 단오일 유감(端午日 有感) - 鄭道傳

野父田翁勸酒頻(야부전옹권주빈) 농삿집 늙은이들 술을 자주 권하면서

謂言今日是良辰(위언금일시량진) 오늘은 바로 좋은 날이라 일러 주네

頹然醉臥茅簷下(퇴연취와모첨하) 쓰러져 취하여 초가집 처마 아래에 누웠으니

還愧醒吟澤畔人(환괴성음택반인) 도리어 홀로 깨어 읊조리는 택반 사람 부끄럽네

◀ 귀양을 간 농촌에서 단오를 맞아 느낌이 있어서 지은 시이다.

 

〇 방김거사야거(訪金居士野居) - 鄭道傳

秋陰漠漠四山空 (추음막막사산공) 가을 그늘 아득아득하고 사방 산은 비었는데

落葉無聲滿地紅 (녁엽무성만지홍) 지는 잎은 소리 없이 땅에 가득 붉구나

立馬溪橋問歸路 (입마계교문귀로) 시내 다리에 말 세우고 갈 길을 묻노라니

不知身在畫圖中 (부지신재화도중) 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줄을 모르네

◀ 시골에 은거하고 있는 김거사를 찾아 나선 도중에 맞은 가을 경치를 노래하고 있다.

 

〇 사월초일일(四月初一日) - 鄭道傳

山禽啼盡落花飛(산금제진락화비) 산새는 울음 그치고 지는 꽃은 날며

客子未歸春已歸(객자미귀춘이귀) 나그네는 못 가는데 봄은 벌써 가 버렸네

忽有南風情思在(홀유남풍정사재) 갑자기 남녘 바람이 무슨 생각이 있는 듯

解吹庭草也依依(해취정초야의의) 자꾸 불어 뜰의 풀이 우거졌네

◀ 4월 1일, 초여름이 시작되는 날 지은 시이다.

 

〇 영류(詠柳) - 鄭道傳

含煙偏裊裊(함연편뇨뇨) 연기 머금고 유달리 한들거리더니

帶雨更依依(대우경의의) 비를 맞고선 더 늘어지네

無限江南樹(무한강남수) 강남은 나무도 많건만

東風特地吹(동풍특지취) 봄바람은 이 나무만 부나 봐

◀ 봄에 비를 맞아 함초롬한 버들의 청초함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〇 우(雨) - 鄭道傳

雨聲偏好處(우성편호처) 빗소리 유달리 좋은 곳이란

茅屋午眠中(모옥오면중) 띳집에서 낮잠 자는 그때로구나

亂灑侵寒浦(난쇄침한포) 어지럽게 뿌려 찬 개울을 침범하고

斜飛逐細風(사비축세풍) 비스듬히 날아가는 바람을 쫓네

柳低含晩翠(유저함만취) 버들은 나직하여 언제나 푸른빛을 머금었고

花重濕鮮紅(화중습선홍) 꽃은 무거워 선홍에 젖었네

田父笑相對(전부소상대) 농부들 웃고 서로 대하며

家家望歲功(가가망세공) 집집마다 풍년 들기 바라는구나

◀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노래한 시이다.

 

〇 월야봉회동정(月夜奉懷東亭) - 鄭道傳

半夜獨起立(반야독기립) 한밤중 일어나 홀로 서있으니

長空澹自寂(장공담자적) 높은 하늘은 해맑아 고요하다.

一片海上月(일편해상월) 바다 위 한 조각 밝은 달이

萬里照茅屋(만리조모옥) 만 리 멀리 오두막을 비춘다.

冷影故依依(랭영고의의) 차가운 그림자 짐짓 한들거리니

還如憐竄客(환여련찬객) 귀양살이 나그네를 불쌍히 여기는 듯.

爲憶東亭翁(위억동정옹) 미루어 동정옹을 생각해보니

應共此幽獨(응공차유독) 응당 이러한 고독을 함께 맛보리라.

 

〇 죽소 (竹所) - 鄭道傳

高人竹爲所(고인죽위소) 고상한 사람이 대로 처소 만드니

竹與人共淸(죽여인공청) 대와 사람 함께 맑아라

婆娑月夕影(파사월석영) 달 뜬 저녁엔 그림자 너울너울

淅瀝風朝聲(석력풍조성) 바람 부는 아침엔 소리 우수수

渠心獨自許(거심독자허) 제 마음을 홀로 허여하노니

苦節乃可貞(고절내가정) 괴로운 절개 곧을 수밖에

對比成益友(대비성익우) 서로 대하면 유익한 친구가 되니

聊以寄此生(요이기차생) 애오라지 이 생을 의탁하노라

◀ 이 시는 을축(乙丑)년(1385)에 삼봉(三峰)이 돌아와 개경에 있을 때 지은 시로, 유배지에서 벗어나 다시 벼슬길에 접어든 상태에서 대나무처럼 절조를 지니겠다는 고고(孤高)함을 보여주고 있다. 죽소(竹所)는 한상질(韓尙質)의 헌호(軒號)임.

 

〇 추림(秋霖) - 鄭道傳

秋霖人自絶(추림인자절) 가을장마라 사람 절로 끊기니

柴戶不曾開(시호불증개) 사립문은 일찍이 열지를 않네

籬落堆紅葉(이락퇴홍엽) 울타리엔 붉은 잎이 쌓이고

庭除長綠苔(정제장록태) 뜰에는 푸른 이끼 자랐네

鳥寒相並宿(조한상병숙) 새들은 추워 서로 맞대고 자고

鴈濕遠飛來(안습원비래) 기러기도 젖어 멀리서 날아오네

寂寞悲吾道(적막비오도) 슬프다, 우리 도 적막한 것

惟應泥酒杯(유응니주배) 오직 응당 술에 빠져야겠네

◀ 이 시는 가을장마를 노래한 것이다.

 

〚작자〛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역사의 중심에서 새 왕조를 설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꿈꾸던 성리학적 이상 세계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끝내는 정적의 칼에 단죄되어 조선 왕조의 끝자락에 가서야 겨우 신원 되는 극단적인 삶을 살았다.

 

 

 

□ 정두경(鄭斗卿)

 

〇 단군사 (檀君祠) - 鄭斗卿

 

有聖生東海(유성생동해) 성인께서 동해에 나셨으니

于時竝放勳(우시병방훈) 시절은 요임금과 나란하다네

扶桑賓白日(부상빈백일) 부상에서 흰 해를 맞이하노라면

檀木上靑雲(단목상청운) 박달나무가 푸른 구름 위로 솟았으리

天地侯初建(천지후초건) 천지에 처음으로 제후가 세워질 때

山河氣不分(산하기불분) 산하의 기운은 나뉘지 않았다네

戊辰千歲壽(무진천세수) 무진년부터 누린 천 년의 수명을

吾欲獻吾君(오욕헌오군) 나는 우리 임금님께 바치고 싶네

 

〚작자〛 정두경(鄭斗卿, 1597, 선조 30~1673, 현종 14): 자는 군평(君平), 호는 동명(東溟)조선 중기 문신 겸 학자. 교리로서 풍시 20편을 찬진하여 왕으로부터 호피를 하사받았다. 용문관제학에서 예조참판 ·공조참판 겸 승문원제조 등에 임명되었으나 노환으로 나가지 못했다.

 

 

 

□ 정사도(鄭思道)

 

〇 추우우제(秋雨偶題)

迢遞雲連塞(초체운련새) 아득하다, 구름은 변방으로 잇닿고

凄涼雨送秋(처량우송추) 처량하여라, 비는 가을을 몰아 보내는구나

滴階驚坐睡(적계경좌수) 뜰에 떨어지니 앉은 잠을 깨우고

着柳長詩愁(착류장시수) 버들가지에 뿌려지니 시상의 시름 자아낸다

夜暗憐鷄叫(야암련계규) 밤 어둠에 닭의 울음 어여쁘고

天寒愧客遊(천한괴객유) 하늘이 차매 나그네 처지 부끄럽다

戀君心愈切(련군심유절) 임 생각에 마음 더욱 간절하여

矯首獨登樓(교수독등루) 머리를 들고 혼자 누각에 올라본다

 

〚작자〛 정사도(鄭思道) 고려 말기의 문신(1318~1379). 공민왕 때에 일성군에 봉하여지고, 최영의 제거를 꾀하는 신돈에 반대하다 파직되었으나 복직되었다. 우왕 때에 오천군(烏川君)으로 봉하여지고 공신이 되었다.

 

 

 

□ 정사룡(鄭士龍)

 

〇 기회(紀懷) - 鄭士龍

四落階蓂魄又盈(사락계명백우영) 명엽초(蓂莢草) 네 번 계단에 지고 달이 또 찼는데

悄無車馬閉柴荊(초무차마폐시형) 찾아오는 사람 없음 근심하며 문을 걸어 두었네

詩書舊業抛難起(시서구업포난기) 시서의 옛일은 버려두어 다시 일으키기 어려운데

場圃新功策未成(장포신공책미성) 농사짓는 새로운 일은 계획이 아직 서지 않았네

雨氣壓霞山忽暝(우기압하산홀명) 비 기운이 노을을 눌러 산이 갑자기 어두운데

川華受月夜猶明(천화수월야유명) 강물은 달빛을 받아서 밤인데도 오히려 밝구나

思量不復勞心事(사량불부로심사) 근심이 다시는 마음을 괴롭히지 않으니

身世端宜付釣耕(신세단의부조경) 신세 오로지 마땅히 낚시와 밭갈이에 부쳐야겠네

 

〇 석민종필(釋悶縱筆) - 鄭士龍

隨意攤書坐(수의탄서좌) 마음대로 책을 편 채 앉아 있다가

孤吟對晩暉(고음대만휘) 외로이 읊조리며 석양빛 보네

岸風帆腹飽(안풍범복포) 둑 바람에 돛배는 잔뜩 부풀고

沙雨荻芽肥(사우적아비) 모래 가 비에 갈대 싹은 오동통하네

籬缺通江色(이결통강색) 울 터져 강 풍경 통해 보이고

簾垂礙燕飛(염수애연비) 발 내려져 제비 날 때 방해되겠네

誰知浴沂節(수지욕기절) 누가 알랴? 기수에 목욕하는 계절에

和病試春衣(화병시춘의) 병중에 봄옷으로 갈아입는 걸

 

〇 대탄(大灘) - 鄭士龍

轟輵車千兩(굉갈차천량) 우릉우릉 마차 천 량이 달리는 듯

喧闐鼓萬槌(훤전고만퇴) 쿵쿵 북을 만 번이나 치는 듯

篙工心欲細(고공심욕세) 뱃사공은 마음 졸아들려 하고

病客膽先摧(병객담선최) 병든 객은 담이 먼저 꺾일 듯하네

振鷺衝巖起(진로충암기) 날던 해오라기 바위에 받혀 솟아오르고

跳山入座回(도산입좌회) 뛰는 산 자리 들어 휘돌아 가네

片帆愁激射(편범수격사) 한쪽 돛배 격한 파도 근심스러워

欹側岸邊來(의측안변래) 엎어질듯 강둑 가로 돌아오누나

 

〇 양근야좌 즉사시동사(楊根夜坐 卽事示同事) - 鄭士龍

擁山爲郭似盤中(옹산위곽사반중) 산을 끼고 이룬 성곽이 소반과 비슷한데

暝色初沈洞壑空(명색초침동학공) 노을이 막 지자 골짜기는 텅 빈 듯하네

峯項星搖爭缺月(봉항성요쟁결월) 봉우리에 별빛이 반짝이며 이지러진 달과 다투니

樹巓禽動竄深叢(수전금동찬심총) 나무 끝에 새가 움직여 깊은 숲으로 숨네

晴灘遠聽翻疑雨(청탄원청번의우) 맑은 여울 소리 멀리서 들려 빗발이 뿌리는 듯

病葉微零自起風(병엽미령자기풍) 병든 잎 살짝 떨어지자 절로 바람 일어나네

此夜共分吟榻料(차야공분음탑료) 이 밤 시를 읊는 침상 값을 함께 내겠지만

明朝珂馬軟塵紅(명조가마연진홍) 내일 아침이면 붉은 흙길에 말방울소리 울리겠지

 

〇 춘흥(春興)

花滿園林葉未齊(화만원림엽미제) 뜰쭉날쭉 뜰에 가득 꽃은 피고

恰回殘夢有鶯啼(흡회잔몽유앵제) 꾀꼬리 울음소리, 꿈 깬 것 같아라

蝦鬢不碍東風過(하빈부애동풍과) 주렴이 봄바람 지나는 것 막지 못하니

無柰輕陰壓額低(무내경음압액저) 이마에 그늘 지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작자〛 정사룡(鄭士龍, 1491, 성종22~1570, 선조3): 본관은 동래.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 1509년 생원을 거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숙부 정광필(鄭光弼)이 영의정을 지낸 명문가로, 중종과 명종대에 관각(館閣)을 이끌었으며, 시문에 뛰어나고 글씨도 잘 썼으나 탐학리(貪虐吏)라는 비난을 들었다 저서로 『호음잡고(湖陰雜稿)』가 있다.

 

 

 

□ 정약용(丁若鏞)

〇 구우(久雨) - 丁若鏞

窮居罕人事(궁거한인사) 궁벽하게 사노라니 사람 보기 드물고

恒日廢衣冠(항일폐의관) 항상 의관도 걸치지 않고 있네.

敗屋香娘墜(패옥향낭추) 낡은 집엔 향랑각시 떨어져 기어가고,

荒畦腐婢殘(향휴부비잔) 황폐한 들판엔 팥꽃이 남아 있네.

睡因多病減(수인다병감) 병 많으니 따라서 잠마저 적어지고,

秋賴著書寬(추뢰저서관) 글짓는 일로써 수심을 달래 보네.

久雨何須苦(구우하수고) 비 오래 온다 해서 어찌 괴로워만 할 것인가

晴時也自歎(청시야자탄) 날 맑아도 또 혼자서 탄식할 것을.

〇 애절양(哀絶陽) - 丁若鏞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밭마을 젊은 아낙 통곡소리 그칠 줄 모르고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청문을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정벌 나간 남편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예부터 남자가 생식기를 잘랐단 말 들어 보지 못했네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상에 이미 상복 입었고 애는 아직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조자손 삼대가 다 군적에 실리다니

薄言往愬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급하게 가서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里正咆哮牛去皁(이정포효우거조) 향관은 으르렁대며 마구간 소 몰아가네

生生之理天所予(생생지리천소여) 자식 낳고 사는 건 하늘이 내린 이치기에

乾道成男坤道女(건도성남곤도녀) 하늘의 도는 아들 되고 땅의 도는 딸이 되지

騸馬豶豕猶云悲(선마분시유운비) 불깐 말 불깐 돼지도 서럽다 할 것인데

況乃生民思繼序(황내생민사계서) 하물며 뒤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豪家終歲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부호들은 일 년 내내 풍악이나 즐기면서

粒米寸帛無所捐(입미촌백무소연)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같은 백성인데 왜 그리도 차별일까?

客窓重誦鳲鳩篇(객창중송시구편)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이 시는 어느 백성이 자신의 양근(陽根)을 끊은 것을 슬퍼하며 지은 시로, 당시 심각한 군정(軍政)의 문란을 노래한 다산의 대표적인 사회시(社會詩) 중 한 수이다.

 

〇 荒年水村春詞十首 (황년수촌춘사십수) - 丁若鏞

- 거친 해 물 마을의 봄

東風吹綠草離離 (동풍취록초리리) 푸른 풀 파릇파릇 봄바람 불자

花柳依然似昔時 (화류의연사석시 ) 꽃 버들도 그대로 지난번 같아

只是寂寥春更甚 (지시적요춘갱심) 다만 내 삶 쓸쓸해 봄은 더 깊어

冷煙衰屋日華遲 (냉연쇠옥일화지) 차운 연기 낡은 집 햇살 늘어져

 

〚작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 :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삼미(三眉)·여유당(與猶堂)·사암(俟菴)·자하도인(紫霞道人)·탁옹(籜翁)·태수(苔叟)·문암일인(門巖逸人)·철마산초(鐵馬山樵). 가톨릭 세례명 요한. 시호 문도(文度). 광주(廣州)(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출생이다.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으로

주요 저서는《목민심서》,《경세유표》등이 있다.

 

 

 

□ 정여창(鄭汝昌)

 

〇 두견 (杜鵑) - 鄭汝昌

杜鵑何事淚山花(두견하사루산화) 두견은 무슨 일로 산꽃에 눈물을 뿌리나?

遺恨分明託古査(유한분명탁고사) 남은 한 분명 옛일인 것을

淸怨丹衷胡獨爾(청원단충호독이) 원한이나 충성스런 마음 어찌 너 홀로뿐이랴?

忠臣志士矢靡他(충신지사시미타) 충신지사 또한 맹세코 딴 마음이 없네

 

〇 유악양(遊岳陽) - 鄭汝昌

風蒲獵獵弄輕柔(풍포렵렵농경유) 부들에 바람 살랑살랑 가볍게 나부끼고

四月花開麥已秋(사월화개맥이추) 사월의 화개 땅엔 이미 보리 벨 때라

看盡頭流千萬疊(간진두유천만첩) 두류산 천만 봉 다 보았는데

孤舟又下大江流(고주우하대강유) 한 척 배는 또 아래 큰 강으로 흘러간다

 

〚작자〛 정여창(鄭汝昌, 1450, 세종 32~1504, 연산군 10):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 안음현감(安陰縣監)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경성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 정온(鄭蘊)

 

〇 몽견익승(夢見翼承)

夢見故人面(몽견고인면) 꿈에 친구의 얼굴을 만나보고

相論文字疑(상론문자의) 서로 논하다가 문자에 의문이 생겼다.

覺來樑月白(각래량월백) 깨어나 보니 대들보에 달이 밝은데

淸淚自漣洏(청루자련이) 맑은 눈물이 잔잔히 흘러내리는구나.

 

〚작자〛 정온(鄭蘊) 조선 중기의 문신(1569~1641).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ㆍ고고자(鼓鼓子). 부제학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였으며, 이듬해 화의가 성립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저서에 ≪덕변록(德辨錄)≫, ≪동계집≫ 따위가 있다.

 

 

 

□ 정용(鄭鎔)

 

〇 춘효(春曉)

酒滴春眠後(주적춘면후) 봄잠 자고 나니 술이 익고

花飛簾卷前(화비렴권전) 발을 걷지 않았는데 꽃잎 날린다

人生能幾許(인생능기허) 인생이 몇 년이나 되는가

悵望雨中天(창망우중천) 창망히 빗 속 하늘을 바라본다

 

〚작자〛 정용(鄭鎔) 생졸년 미상.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련(百鍊), 호는 오정(梧亭,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이르렀고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증직(贈職)받았다. 시(詩)를 잘 써서 세상에 이름이 있었으며 그의 시가 『국조시산(國朝詩刪)』에 들어 있다.

 

 

 

□ 정이오(鄭以吾)

 

〇 남산팔영(南山八詠) - 鄭以五

「雲橫北闕(운횡북궐)」

玉葉橫金闕(옥엽횡금궐) 옥빛 구름은 금빛 대궐에 비껴 있고

朱甍照碧天(주맹조벽천) 붉은 지붕은 푸른 하늘에 빛나네

丁東傳促漏(정동전촉루) 똑똑 급한 물시계 소리 들려오는데

戌北釀霏煙(술북양비연) 북쪽에서는 안개가 뭉게뭉게 일어나네

佳氣晴相擁(가기청상옹) 아름다운 기운 갠 날 서로 둘렀는데

高標望更連(고표망갱연) 높은 기상 바라보니 다시 잇따랐네

南山將獻壽(남산장헌수) 남산 같은 높은 복을 우리 임금께 드리니

穆穆萬斯年(목목만사년) 오래오래 만년을 누리소서

 

〇 작안산객관(酌安山客館)

海上芙蓉幾朶山(해상부용기타산) 바다 위에 연꽃 같은 몇 개의 산봉우리

淸光欲滴酒杯間(청광욕적주배간) 맑은 빛이 술잔에 떨어질 듯 하구나

登樓六月炎威變(등루육월염위변) 다락에 오르려니 유월의 무더위도 변하는가 보다

直欲乘風入廣寒(직욕승풍입광한) 곧 시원한 바람 타고 광한전에 들어가고 싶구나

〇 차운기정백형(次韻寄鄭伯亨) - 鄭以五

二月將闌三月來(이월장란삼월래) 이월이 다하고 삼월이 오려 하니

一年春色夢中回(일년춘색몽중회) 일 년의 봄빛이 꿈속에서 돌아가네

千金尙未買佳節(천금상미매가절) 천금으로도 아름다운 시절 살 수 없으니

酒熟誰家花正開(주숙수가화정개) 누구 집에 술 익고 꽃이 한창 피었는가?

 

〚작자〛 정이오(鄭以吾, 1347, 충목왕 3~1434, 세종 16):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 또는 우곡(愚谷), 시호는 문정(文定),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성균관대사성·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성석린, 이색, 정몽주 등과 교유하였으며, 신유학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의 문물을 정비하는 데 주력하였는데, 1398년 경사(經史)를 간추려 올렸고, 『사서절요(四書節要)』를 찬진(撰進)하기도 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 정철(鄭 澈)

 

〇 대화만음(對花漫吟) - 鄭澈

花殘紅芍藥(화잔홍작약) 붉은 작약꽃이 시들고

人老鄭敦寧(인로정돈녕) 정돈녕이 늙었네

對花兼對酒(대화겸대주) 꽃을 대하고 아울러 술을 대하니

宜醉不宜醒(의취불의성) 마땅히 취해야지 깨서는 안 되네

 

〇 산사야음(山寺夜吟) - 鄭澈

蕭蕭落木聲 (소소락목성) 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에

錯認爲疎雨 (착인위소우) 성근 비라고 착각했네

呼僧出門看 (호승출문간) 스님 불러 문을 나가 보게 했더니

月掛溪南樹 (월괘계남수) 달이 시내 남쪽 나무에 걸려 있다네

 

〇 서산만성(西山漫成) - 鄭澈

明時自許調元手(명시자허조원수) 밝은 때라 스스로 정승감을 자부했는데

晩歲還爲賣炭翁(만세환위매탄옹) 늘그막에 도리어 숯을 파는 노인이 되었네

進退有時知有命(진퇴유시지유명) 진퇴는 때가 있어 운명이 있음 알겠고

是非無適定無窮(시비무적정무궁) 시비는 일정이 없어 끝이 없구나

膏肓未備三年艾(고황미비삼년애) 고황병에 삼 년 묵은 쑥 갖추지 못하고

飄泊難營十畝宮(표박난영십무궁) 뜬 생활에 열 이랑 집 마련하기 어렵네

惟是老來能事在(유시로래능사재) 오직 늙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百杯傾盡百憂空(백배경진백우공) 백 잔의 술잔을 다 기울여 온갖 근심 없애는 것이라네

◀ 이 시는 동인(東人)들의 탄핵을 받아 강계(江界)로 위리(圍籬) 안치(安置)되었을 때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〇 추야(秋夜) - 가을 밤 (鄭澈)

蕭蕭落葉聲 (소소낙엽성) 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를 듣고

錯認爲疎雨 (착인위소우) 소나기 내리는 줄 잘못 알고서

呼童出門看 (호동출문간) 아이더러 밖에 나가 보라 했더니

月掛溪南樹 (월괘계남수) 달빛만 나무 위에 걸려 있다네

 

〇 추일작(秋日作) - 鄭澈

山雨夜鳴竹(산우야명죽) 산비가 밤에 대나무를 울리니

草虫秋近床(초충추근상) 풀벌레가 가을에 침상에 다가오네

流年那可駐(유년나가주) 흘러가는 세월을 어찌 잡으랴?

白髮不禁長(백발불금장) 백발이 자라는 것을 금할 수 없다네

 

〚작자〛 정철(鄭澈, 1536~1593) 《관동별곡(關東別曲)》 등을 지은 조선 중기 문신 겸 시인.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 정 호(鄭 澔)

 

〇 추일우성(秋日偶成)

閑來無事復從容 (한래무사부종용) 한가로이 하는 일 없고 다시 조용하니,

睡覺東窓日已紅 (수각동창일이홍) 잠에서 깨면 동창에 해 이미 붉음이라.

萬物靜觀皆自得 (만물정관개자득) 만물을 조용히 바라보면 모두 스스로 득의해 함이요,

四時佳興與人同 (사시가흥여인동) 사시의 아름다운 흥취는 남들과 더불어 한가지이다.

道通天地有形外 (도통천지유형외) 도는 천지의 형체 가진 것 밖으로 통하고,

思入風雲變態中 (사인풍운변태중) 사색은 바람과 구름이 변하는 가운데로 들어감이라.

富貴不淫貧賤樂 (부귀불음빈천락) 부귀에 빠지지지 않고 빈천을 즐기나니,

男兒到此是豪雄 (남아도차시호응) 남아가 이에 이르면 바로 영웅호걸임이라

​〚작자〛 정호(鄭澔, 1648년(인조 26) ~ 1736년(영조12)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중순(仲淳), 호는 장암(丈巖). 정철(鄭澈)의 현손이다. 조선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 정희량(鄭希良)

 

〇 사충암증장(謝沖菴贈杖) - 鄭希良

似嫌直先伐(사혐직선벌) 곧으면 먼저 베임을 꺼린 듯

故欲曲其身(고욕곡기신) 일부러 그 뿌리를 굽게 하였네

直性猶存內(직성유존내) 곧은 성품 여전히 안에 지니고 있으니

那能免斧斤(나능면부근) 어찌 도끼질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 이 시는 충암 김정(金淨)이 지팡이를 보내 준 것에 감사하며 지은 시이다.

 

〇 춘일서회(春日書懷)

莎草尙含凍(사초상함동) 잔디에는 아직 냉기 서려있는데

春風吹欲生(춘풍취욕생) 봄바람이 부니 다시 피어나려하는구나

輕陰連海暗(경음연해암) 가벼운 구름 바다에 닿아 어둡고

薄日漏雲明(박일누운명) 엷은 햇빛 구름사이로 환히 비친다

遊子思親淚(유자사친루) 떠도는 자식은 부모 생각에 눈물 흘리고

孤臣去國情(고신거국정) 외로운 신하는 나라 떠난 걱정이 된다

感時仍獨嘆(감시잉독탄) 시절 형편 느끼니 홀로 탄식되나니

愁緖政崢嶸(수서정쟁영) 시름의 실마리가 진정 많기도 하다

 

〇 차계문운(次季文韻) - 鄭希良

過眼如雲事事新(과안여운사사신) 구름처럼 눈앞을 지나가는 일마다 새로운데

狂歌獨立路岐塵(광가독립로기진) 먼지 낀 갈림길에서 미친 듯 노래하여 홀로 서 있네

百年三萬六千日(백년삼만륙천일) 백 년은 삼만 육천 일이요

四海東西南北人(사해동서남북인) 사해에는 동서남북으로 오가는 사람이라네

宋玉怨騷悲落木(송옥원소비락목) 송옥의 원망하는 초사는 지는 잎을 슬퍼하고

謫仙哀賦惜餘春(적선애부석여춘) 이백(李白)의 슬픈 부는 남은 봄을 아까워했네

醉鄕倘有閒田地(취향상유한전지) 취향에도 거닐 한적한 땅이 있으니

乞與劉伶且卜隣(걸여유령차복린) 빌려 유령과 장차 이웃하리라

◀ 이 시는 계문 성중엄의 시를 차운한 것

 

​〚작자〛 정희량(鄭希良, 1469, 예종 1~1502, 연산군 8): 자는 순부(淳夫), 호는 허암(虛菴), 산은(散隱)으로 해주 사람이다. 27세에 과거에 급제한 뒤 무오사화로 1498년 가을에 의주로 유배를 가고, 1500년 5월에 김해로 이배되는 등 유배지를 전전하다가 34세의 젊은 나이로 조강(祖江)에 투신자살하였다.

 

 

 

□ 조광조(趙光祖)

 

〇 증송재(贈松齋)

特松凌雲碧(특송능운벽) 우뚝한 소나무 푸른 구름 능멸하고

孤月照氷寒(고월조빙한) 외로운 달은 얼음 비춰 차갑구나.

欲識先生節(욕식선생절) 선생의 절개를 알아보려면

請取松月看(청취송월간) 청컨대, 소나무와 달을 취해서 보시라.

 

​〚작자〛 조광조(趙光祖) 조선 중종 때의 문신ㆍ성리학자(1482~1519).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菴). 시호는 문정(文正). 부제학, 대사헌을 지냈다.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영수로서,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다가 훈구파 남곤 일파가 일으킨 기묘사화 때에 죽임을 당하였다. 저서에 ≪정암집≫이 있다

 

 

 

□ 조상치(曹尙治)

 

〇 봉화단종자규사(奉和端宗子規詞)

子規啼子規啼(자규제자규제) 밤 새워 우는 두견 무엇이 서러울까

夜月空山何所訴(야월공산하소소) 바라보며 갈 수 없는 너의 맘을 하소연하는구나

不如歸不如歸(불여불귀여귀) 돌아가지 못하네 돌아가지 못하네

望裏巴岑飛欲度(망리파잠비욕도) 다른 새는 둥지 있어 돌아가거늘

看他衆鳥摠眼巢(간타중조총안소) 너는 어찌 홀로 남아 피를 뿌리나

獨向花枝血忟吐(독향화지혈만토) 짝 잃은 너의 모습 처량하지만

形單影孤貌憔悴(형단영고모초췌) 누구라서 외론 신세 생각해주리

不肯尊崇誰爾顧(불긍존숭수이고) 세상에 슬픈 원한 너 뿐이겠니

鳴呼人間寃恨豈獨爾(명호인간원한기독이) 비분강개하다 죽은 충신 의사를

義士忠臣增慷慨(의사충신증강개) 억울하고 기막힌 일 셀 수 없으리.

​〚작자〛 조상치(曹尙治)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경(子景). 호는 단고(丹皐)ㆍ정재(靜齋). 세종ㆍ문종ㆍ단종의 세 임금을 섬겼으며, 집현전 부제학을 지냈다. 세조 즉위 후 사퇴하고 은거하였으며, 자신의 묘비를 미리 써서 세조의 신하가 아님을 밝히고 죽었다.

 

 

 

□ 조 서(曺 庶)

 

〇 경안부(慶安府)

水光山色弄晴沙(수광산색롱청사) 물빛과 산색이 백사장과 같은 몇 개의 산봉우리

楊柳長壇十萬家(양류장단십만가) 수양버들 늘어 서 있는 강둑엔 십 만개의 집들이 즐비하구나.

無數商船城不泊(무수상선성불박) 무수한 장산 배가 성(城) 아래에 정박하여 있고

竹樓煙月咽笙家(죽루연월열생가) 저 건너 대숲 사이에 다락에서 피리소리가 구슬프게 들리네.

​〚작자〛 조서(曺庶) 조선 태조 때 문관. 본관 仁川(인천). 禮曹參議(예조참의)를 역임했으며 명 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 조수삼(趙秀三)

 

〇 북행백절(北行百絶)

其七(기칠) (麥灘(맥탄))

舂白趁虛市 (용백진허시) 흰 것은 찧어서 텅 빈 시장에 나아가고

殺靑充夜餐 (살청충야찬) 푸른 것은 베어서 저녁을 때우네

麥嶺斯難過 (맥령사난과) 보릿고개 넘어가기 어려운데

如何又麥灘 (여하우맥탄) 어떻게 또 보리여울을 건너갈까?

◀ 이 시는 61세에 함경도 지역을 유람하면서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의 고단한 생활상과 풍속을 노래한 것이다.

 

​〚작자〛 조수삼(趙秀三) 조선 후기의 시인(1762~1849). 초명은 경유(景濰). 자는 지원(芝園)ㆍ자익(子翼). 호는 추재(秋齋)ㆍ경원(經畹). 중인 출신으로, 문장과 시에 뛰어나 중국을 드나들면서 시명(詩名)을 떨쳤다. 작품에, 장편시 <고려궁사(高麗宮詞)>, <추재기이>와 시문집 ≪추재집≫이 있다.

 

 

 

□ 조식(曺植)

 

〇 만성(漫成)

平生事可噓噓已(평생사가허허이) 한 평생의 일들에 한숨만 나올 뿐인데

浮世功將矻矻何(부세공장골골하) 뜬 구름같은 세상 부귀공명 힘써 무엇하나.

知子貴無如我意(지자귀무여아의) 알겠노라, 그대는 귀하여 나 같은 뜻 없음을

那須身上太華誇(나수신상태화과) 어찌 몸이 화산에 올라 과시해야만 하는가.

 

〇 德山卜居(덕산복거) / - 조식(曺植)

​春山底處无芳草(춘산저처무방초) 봄날 어디엔들 방초가 없으리요마는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옥황상제 사는 곳 가까이 있는 천왕봉만을 사랑했네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식)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무얼 먹고 살 것인가

銀河十里喫猶餘(은하십리끽유여) 흰 물줄기 십리로 뻗었으니 마시고도 남겠네

〇 매하종목단(梅下種牧丹) - 曺植

栽得花王來(재득화왕래) 화왕을 심고 보니

廷臣梅御史(정신매어사) 조정의 신하는 매어사로세

孤鶴終何爲(고학종하위) 외로운 학은 끝내 무엇을 하는가?

不如蜂與蟻(불여봉여의) 벌이나 개미만도 못하구나

◀ 이 시는 매화 아래에 모란을 심고서 지은 시이다.

 

〇 우음 (偶吟) - 曹植

高山如大柱(고산여대주) 높은 산은 큰 기둥과 같이

撑却一邊天(탱각일변천) 한쪽의 하늘을 받치고 섰네

頃刻未嘗下(경각미상하) 잠깐도 일찍이 내려앉은 적이 없기에

亦非不自然(역비부자연) 또한 자연스럽지 않음이 없네

◀ 이 시는 우연히 지리산을 보고 노래한 것이다.

 

〇 서일병(書釰柄) - 曺植

离宮抽太白(이궁추태백) 불 속에서 하얀 칼날을 뽑아내니

霜拍廣寒流(상박광한류) 서릿발 칼빛이 달을 치고 흐르네

牛斗恢恢地(우두회회지) 견우성과 두우성 넓디넓은 곳에

神游刃不游(신유인불유) 정신은 놀아도 칼날은 놀지 않네

 

​〚작자〛 조식(曺植, 1501~1572) 본관 창녕(昌寧). 자 건중(楗仲,健中). 호 남명(南冥). 시호 문정(文貞). 김우옹·곽재우는 그의 문인이자 외손녀 사위이다. 조선 중기 학자. 출사를 거부하고 평생을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경상우도의 특징적인 학풍을 이루었으며, 퇴계 이황의 경상좌도 학맥과 더불어 영남 유학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 조위(曺偉)

 

〇 자경(自警)

道在須臾日用間(도재수유일용간) 진리라는 것은 잠깐의 생활에 있어

求而卽至是希顔(구이즉지시희안) 구하면 이르니 곧 안자의 경지도 바라본다.

苟能從事於精一(구능종사어정일) 진실로 정신일도로 공부에 종사할 수 있다면

天理分明也復還(천리분명야복환) 진리는 분명히도 다시 돌아오는 법이니라

 

​〚작자〛 조위(曺偉, 1454~1503) 본관 창녕(昌寧). 자 태허(太虛). 호 매계(梅溪). 시호 문장(文莊).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도승지, 충청도관찰사, 중추부동지사 등을 지냈다. 문집에 《매계집(梅溪集)》, 글씨로는 《조계문묘비(曺繼門墓碑)》, 《정부인문화류씨묘지명지석》이 있다.

 

 

 

□ 조준(趙浚)

 

〇 차모량역시운(次牟良驛詩韻)

鷄林山水欲淸秋(계림산수욕청추) 계림의 산수는 맑은 가을이 되려는데

萬古興亡客倚樓(만고흥망객의루) 만고의 흥망에 나그네는 누각에 기대는구나

尙使後人還不鑑(상사후인환불감) 뒷 사람이 거울삼지 못할까 두려워하노니

有誰知得我悠悠(유수지득아유유) 누가 있어 아득한 내 마음을 알게 할까

 

​〚작자〛 조준(趙浚, 1346~1405) 본관 평양(平壤). 자 명중(明仲). 호 우재(吁齋)·송당(松堂). 시호 문충(文忠).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고려 말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개국의 경제적인 기반을 닦고,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다. 제1차 왕자의 난 전 후로 이방원의 세자책봉을 주장했으며, 태종을 옹립하였다. 토지제도에 밝은 학자로 《경제육전(經濟六典)》을 편찬하였다.

 

 

 

□ 조현소(趙見素)

 

〇 엄릉탄(嚴陵灘)

千古興亡一夢中(천고흥망일몽중) 천고의 흥망성쇠도 하나의 꿈 속의 일

區區誰復辨雌雄(구구수복변자웅) 누가 다시 구구하게도 자웅을 가리려하나.

始知七里羊裘客(시지칠리양구객) 이제야 알겠노라, 칠리탄에 갓옷 입고 낚시 하던 이

大勝鷹揚渭水翁(대승응양위수옹) 무용을 드날렸던 위수의 태공보다 월씬 낫다는 것을

 

​〚작자〛 조현소(趙見素, 1610(광해군 2)∼1677(숙종 3),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장(自章), 호는 성강(星江). 아버지는 목사 박(璞)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 진주(珍珠)

 

〇 진주(珍珠) -평양의 명기(名妓) 진주(珍珠)

貝上珍珠有何能(패상진주유하능) 패주 위의 진주 무엇이 능한 바더냐

能歌能舞詩亦能(능가능무시역능) 노래와 춤 시문에 모두 능하네.

能能之中又一能(능능지중우일능) 능한 가운데 또 한가지 능함이 있으니

無月三更弄夫能(무월삼경롱부능) 달 없는 밤 삼경에 지아비 회롱함이 능함일세

 

〇 청기(請棋)

國色詩名世盡知(국색시명세진지) 온 세상이 다 아는 그 님은 詩도 잘 짓는다.

無由會面浪相思(무유회면랑상사) 만날 길은 없어도 생각만 흐르는구나.

一言堪喜還堪限(일언감희황감한) 고운 님의 말 한마디 기쁘고도 한스러워

該把文章當奕棋(해파문장당혁기) 우선 글 한 수를 지어 바둑 대신 보냅니다.

 

​〚작자〛 평양의 명기(名妓)

 

 

 

□ 차천로(車天輅)

 

〇 간성영월루(杆城詠月樓) - 車天輅

愁來徙倚仲宣樓(수래사의중선루) 시름이 일어 중선루에 배회하는데

碧樹凉生暮色遒(벽수량생모색주) 푸른 나무에 찬 기운 생겨 저녁 빛이 다가드네

鼇背島空風萬里(오배도공풍만리) 자라 등의 섬은 비었는데 바람이 만 리에서 불고

鶴邊雲散月千秋(학변운산월천추) 학 주변의 구름은 흩어졌는데 달은 천 년 동안 밝네

天連魯叟乘桴海(천련로수승부해) 하늘은 노나라 늙은이가 뗏목 타려던 바다로 이어져 있고

地接秦童採藥洲(지접진동채약주) 땅은 진나라 동자가 약 캐던 섬에 이어져 있네

長嘯一聲凌灝氣(장소일성릉호기) 길게 휘파람 부는 한 소리에 천상(天上)의 기운 가로지르니

夕陽西下水東流(석양서하수동류) 석양은 서쪽으로 지고 물은 동쪽으로 흐르네

◀ 일본에 갔을 때 지은 시

 

〇 강야 江夜) - 車天輅

夜靜魚登釣(야정어등조) 밤이 고요해 물고기가 낚싯대에 뛰어오르고

波深月滿舟(파심월만주) 물결이 깊어 달이 배에 가득하네

一聲南去雁(일성남거안) 남쪽으로 가는 기러기 한 소리가

嗁送海山秋(제송해산추) 가을의 바다와 산을 울어 보내네

 

〇 만흥 謾興)

欲坐而坐欲眠眠(욕좌이좌욕면면) 앉고 싶어 앉았다가 졸리면 잠을 자니

看卽林巒聽卽泉(간즉림만청즉천) 보이는 건 숲과 산, 들리는 건 물소리라.

蓬屋草庭人不到(봉옥초정인불도) 초가집, 잡풀 난 뜰을 찾는 이 하나 없고

往來風月與雲烟(왕래풍월여운연) 오가기는 바람과 달, 구름과 안개뿐이로다.

 

〇 봉황대(鳳凰臺) - 車天輅

千仞岡頭石骨分(천인강두석골분) 천 길 봉우리에 단단한 바위가 나뉘어

迥臨無地出塵氛(형림무지출진분) 아득히 임한 곳에 먼지가 솟았네

江通碧海生潮汐(강통벽해생조석) 강은 푸른 바다와 통해 밀물과 썰물이 일고

山近靑天合霧雲(산근청천합무운) 산은 푸른 하늘에 가까워 안개와 구름이 합치네

不盡鳥飛平楚外(부진조비평초외) 평야 밖에 끊임없이 새들이 날고

遙看日落大荒垠(요간일락대황은) 큰 황야 끝에 지는 해가 멀리 보이네

蘊眞協遇堪留眼(온진협우감류안) 참됨을 쌓아 어울린 모습 계속 바라보니

笑撥人寰幾聚蚊(소발인환기취문) 우습다, 속세에는 모기떼가 얼마나 모였는가?

◀ 경주에 있는 봉황대에 올라 지은 시이다

 

〇 우음(偶吟) - 車天輅

蝸角爭名戰未休(와각쟁명전미휴) 달팽이 뿔에서 이름을 다투느라 싸움은 끝이 없는데

幾人談笑覓封侯(기인담소멱봉후) 몇 사람이나 봉후자리를 구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까?

劍頭螘血流千里(검두의혈류천리) 칼끝 개미 피는 천 리에 흐르고

甲外鯨波沒十洲(갑외경파몰십주) 군진(軍陣) 밖의 고래 파도는 열 모래섬을 삼켰네

莫問是非身後定(막문시비신후정) 시비가 죽은 뒤에 정해지는지 묻지 마라

從知勝敗掌中收(종지승패장중수) 승패는 손바닥 안에서 결정되는 것을 알 것이니

若敎畫像麒麟閣(약교화상기린각) 만약 기린각에 초상을 그리게 한다면

上將奇功在伐謀(상장기공재벌모) 상장공의 기이한 공은 적의 계책을 무찌름에 있다네

 

​〚작자〛 차천로(車天輅, 1556~1615)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복원(復元), 호는 오산(五山)·귤실(橘室)·청묘거사(淸妙居士). 송도(松都) 출신으로 교리, 봉상시첨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묘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 채제공(蔡濟恭)

 

〇 宿海山亭(숙해산정)

暮倚海棠喚小船(모의해당환소선) 날 저물어 해당화에 기대어 서 작은 배를 불러 타니

數家楡柳海雲冥(수가유류해운명) 바다 구름 어두운데, 느릅나무와 버드나무 둘러 싼 몇 채의 집

鵬邊天去含吳楚(붕변천거함오초) 하늘은 붕새처럼 멀리 떠나 오나라 촉나라를 삼키고

鼇頂樓飛抗月星(오정루비항월성) 자라 머리에 지은 누각은 날아올라 달과 별과 맞서있다

蓬島靈氣風生腋(봉도영기풍생액) 봉래섬에 신령한 기운 불어와 내 겨드랑에 일고

縣城空翠雨連汀(현성공취우연정) 고을의 성은 비고 푸른데 비는 물가에 내린다

三珠咫尺鸞笙過(삼주지척란생과) 지척의 봉래섬의 삼주수 사이로 옥피리 소리 지나가니

不用絃歌五夜聽(불용현가오야청) 거문고 소리 밤에 듣지 않아도 좋구나.

 

​〚작자〛 채제공(蔡濟恭) 조선 영조ㆍ정조 때의 문신(1720~1799).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ㆍ번옹(樊翁). 영의정을 지냈다. 1781년 서명응(徐命膺)과 함께 ≪국조보감≫을 편찬하였으며, 가톨릭교에 대하여 온건 정책을 폈다. 저서에 ≪번암집≫ 59권이 있다.

 

 

 

□ 최경창(崔慶昌)

 

〇 고봉산재(高峰山齋) - 崔慶昌

古郡無城郭(고군무성곽) 옛 고을이라 성곽은 없고

山齋有樹林(산재유수림) 산집이라 나무숲만 있네

蕭條人吏散(소조인리산) 쓸쓸히 사람과 관리 흩어진 뒤

隔水搗寒砧(격수도한침) 물 건너엔 겨울옷을 다듬이질하네

 

〇 영월루(映月樓)

玉檻秋來露氣淸 (옥함추래로기청) 옥을 새긴 난간에 가을이 오니 이슬 기운 맑은데

水晶簾冷桂花明 (수정렴랭계화명) 수정 발은 차갑고 계수나무 꽃은 밝네

鸞驂不至銀橋斷 (난참부지은교단) 난새가 끄는 수레 오지 않고 은빛 다리 끊어졌으니

惆悵仙郞白髮生 (추창선랑백발생) 슬프다, 선랑은 흰머리만 자라나네

 

〇 차송월(三叉松月) - 崔慶昌

手持一卷蘂珠篇 (수지일권예주편) 손에는 한 권 도가 경전 예주편을 들고서

讀罷空壇伴鶴眠 (독파공단반학면) 빈 단에서 읽고나 학을 친구하여 잠들었구나

驚起中宵滿身影 (경기중소만신영) 깊은 밤 놀라 일어나니 몸에 가득한 그림자

冷霞飛盡月流天 (냉하비진월류천) 차가운 노을은 달빛 흐르는 하늘로 살아지는구나

 

​〚작자〛 최경창(崔慶昌, 1539~ 583)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예조 · 병조의 원외랑을 거쳐 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대동도(大同道) 찰방을 거쳐 1582년에 종성부사(鍾城府使)를 지냈다. 숙종 때에 청백리에 선발되었다.

 

 

 

□ 최기남(崔奇男)

 

〇 傷秋(상추)

久客西風淚滿裳(구객서풍루만상) 가을바람 불어 나그네 눈물 옷을 적시고

傷心不必是重陽(상심불필시중양) 마음 아픈 것 중양절 때문만은 아니라네.

孤雲落日秋光淡(고운낙일추광담) 가을빛 맑고 구름 떠있고 해는 지는데

極浦遙山瞑色蒼(극포요산명색창) 포구 끝 먼 산은 어둡고 짙푸르다

感慨有愁吟似病(감개유수음사병) 북받치는 감정에 서글퍼 병이 난 듯 하여

昏冥無酒醉如狂(혼명무주취여광) 혼몽해져서 술 없이도 미친 듯 취하네.

黃花赤葉徒相艶(황화적엽도상염) 누런 꽃, 붉은 잎 서로 요염함을 다투나

西海凋枯萬姓瘡(서해조고만성창) 서해는 말라버리고 백성은 다 병들었네.

 

​〚작자〛 최기남(崔奇男, 1586~미상) 본관은 천녕(川寧). 자는 영숙(英叔), 호는 구곡(龜谷)·묵헌(默軒). 조선시대 『구곡집』을 저술한 시인.

 

 

□ 최익현(崔益鉉)

 

〇 갱부문암(更賦門巖)

晩來啼鳥拂林端(만래제조불림단) 저녁에 새가 울며 숲을 스쳐 나는데

短策經由碧磵寒(단책경유벽간한) 짧은 막대 짚고서 푸른 냇가 지나간다.

艱步深穿雲雨上(간보심천운우상) 힘들어 걸어 간신히 비구름 뚫고 올라

朗吟高立斗牛間(랑음고립두우간) 별 사이에 높이 서서 읊조리고 있어라.

一身俯仰山河小(일신부앙산하소) 이 몸이 바라보아도 산하는 작은데

萬物含藏宇宙寬(만물함장우주관) 만물을 갈무리한 우주는 크기만 하여라.

莫道此中容易到(막도차중용역도) 이곳에 오기 쉽다고 말하지 말라

至今我亦費心攀(지금아역비심반) 지금에 나도 오면서 마음고생 많았어라.

 

​〚작자〛 최익현(崔益鉉) 구한말의 문신ㆍ학자ㆍ애국지사(1833~1906).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 대유학자(大儒學者)로 대원군을 탄핵하였으며 갑오개혁 때 단발령에 반대하였다. 을사조약을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며 유배지 쓰시마섬[對馬島]에서 단식사(斷食死)하였다. 저서에 ≪면암집(勉菴集)≫ 따위가 있다.

 

 

 

□ 표연말(表沿沫)

 

〇 承召赴京 途中述懷 (승소부경도중술회) 表沿沫

- 왕의 소명을 받고 서울로 돌아가는 도중에 느낌을 읊음

新築書堂壁未乾(신축서당벽미건) 새로 짓는 서재의 벽이 미처 마르지도 않았는데,

馬蹄催我上長安(마제최아상장안) 말은 나를 재촉해 서울 가자 하네.

兒時但道爲官好(아시단도위관호) 어릴 적에는 벼슬길이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老去方知行路難(로거방지행로난) 늙어 가는 이제야 인생살이 어려움을 알겠구나.

千里關山千里夢(천리관산천리몽) 천리 험한 길이라 갈 일이 아득한데,

一番風雨一番寒(일번풍우일번한) 비바람 치고 또 추위 닥치는 괴로움을 번갈아 겪네.

何時靜坐雲林下(하시정좌운림하) 언제 시골 자연 속에 고요히 앉아,

翠竹蒼梧仔細看(취죽창오자세간) 푸른 대와 소나무 들을 자세히 살피며 살게 되려는고.

◀ 시제목을 위관술회 (爲官述懷)이라고도 함

 

〇 산루소서 이수 (山樓消暑 二首) 表沿沫

- 산속의 누대에서 더위를 피하며 쓴 2수

其 一

一年消暑試登樓 (일년소서시등루) 해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누대에 오르니

草色蟬聲又晩洲 (초색선성우만주) 풀빛과 매미소리와 또 늦어가는 모래톱일세.

蕉葉雨晴空院淨 (초엽우청공원정) 파초 잎에 비 개니, 텅빈 집안은 깨끗해지고

梔花風軟小溪幽 (치화풍연소계유) 치자 꽃에 바람 스치니 작은 시낸 고요하네.

紅塵謝絶心如水 (홍진사절심여수) 티끌세상 멀리 떠나니 마음은 물같이 맑고

白首低廻氣尙秋 (백수저회기상추) 흰머리 나직이 돌아보며 기운 높이려 하네.

今日荷花生日是 (금일하화생일시) 오늘 때마침 연꽃이 피어나고 있는 날인데

恨無綠酒泛江流 (한무록주범강류) 술 싣고 강물에 배 띄우지 못함이 한일세.

其 二

詩酒琴棋病未能 (주금기병미능) 시와 술, 거문고와 장기들 병들어 못 하는데

逢君且話片心氷 (군차화편심빙) 그대 만나 깨끗한 마음을 서로 이야기하였네.

冷泉供我深山侶 (천공아심산려) 차가운 샘물은 깊은 산속에 벗을 만들어주고

明月閑於悟道僧 (월한어오도승) 밝은 달은 도를 깨달은 승려보다 한가로우이.

滿地蟬聲人白髮 (지선성인백발) 세상 가득한 매미소리에 사람은 늙어만 가고

一年柳色路金陵 (일류색로금릉) 오늘의 버들 빛에 중국 금릉길이 그리워지네.

洞天玉笛仙何在 (동옥적선하재) 골짜기 속의 옥 통소 소리, 신선은 어디 있나?

鶴去巖空擬白登 (거암공의백등) 학 떠나고 바위 빈 곳에 이백이 오른 듯하네.

 

〚작자〛표연말 [表沿沫, 1449~1498] 본관 신창(新昌). 자 소유(少游). 호 남계(藍溪). 김종직 (金宗直)의 문인. 1471년(성종 2) 식년문과 (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그 후 1478년 봉교(奉敎)시작하여 1484년 공조좌랑 이 되고, 1486년 장례원 (掌隷院) 사의(司議)로서 문과중시 (文科重試)에 병과로 급제, 장령(掌令)·사간(司諫) 등을 거쳤다. 1495년연산군 1) 응교(應敎)로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이 되어 《성종실록 (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고, 이듬해 직제학(直提學)으로 폐비(廢妃) 윤씨(尹氏)의 추숭(追崇)을 반대하였다. 그 뒤 승지 ·대사간 을 지냈다.

소릉(昭陵:文宗妃 顯德王后陵) 추복(追復)에 관한 사실을 사초(史草)에 적은 것과 김종직의 행장(行狀)을 미화(美化)해 썼다는 이유로 1498년(연산군 10)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경원(慶源)으로 유배 도중 은계역(銀溪驛)에서 죽었으며, 1504년갑자사화(甲子士禍) 때 부관참시 (剖棺斬屍)되었다.

당대의 문장가로서 유호인(兪好仁) 등과 함께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뒤에 신원(伸寃)되고, 함양(咸陽)의 구천서원(龜川書院), 함창(咸昌)의 임호서원(臨湖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남계문집(藍溪文集)》이 있다.

 

 

 

□ 하륜(河崙)

 

〇 제광주청풍루(題廣州淸風樓)

少年曾此一看花(소년증차일간화) 젊어 여기서 꽃을 한 번 보았는데

老大今來感慨多(로대금래감개다) 늙어서 지금 오니 감개가 무량하구나

歲月不留人換盡(세월불류인환진) 세월은 머물지 않아 사람은 다 바뀌었는데

眼前風物尙繁華(안전풍물상번화) 눈앞의 풍물들은 오히려 번화하기만 하구나

 

​〚작자〛 하륜(河崙) 고려 말기ㆍ조선 초기의 문신(1347~1416).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제일 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우고 정당문학에 올랐으며, ≪동국사략≫을 편수하고 ≪태조실록≫ 편찬을 지휘하였다. 저서에 ≪호정집≫이 있다.

 

 

 

□ 하위지(河緯地)

 

〇 희성일절(戲成一絶)

一別嬋娟竟渺然(일별선연경묘연) 곱게 이별하였나 끝내 아득하져

嶺湖其奈路三千(영호기나로삼천) 영남과 호남 삼천리 길을 어찌하나

此時可說心中事(차시가설심중사) 그 때에 마음 속 일을 말할 수 있으니

應費書兼十幅牋(응비서겸십폭전) 반드시 글과 일 폭의 장계를 적으리라

 

​〚작자〛 하위지(河緯地) 조선 전기의 문신ㆍ학자(1412~1456). 자는 천장(天章)ㆍ중장(仲章). 호는 단계(丹溪). 벼슬은 부제학ㆍ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 세조 2년(1456)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역대병요≫를 편찬하였으며, ≪화원악보≫에 시조 2수가 전한다.

 

 

 

□ 하항(何沆)

 

〇 오동(梧桐) -하항(何沆)

報秋古齋北(보추고재북) 옛 재실의 모퉁이에서 가을을 알리며

蒼蒼明月陰(창창명월음) 푸른 오동은 밝은 달빛아래 그림자 지우네.

民慍久未解(민온구미해) 백성들의 원망 오래 풀리지 않았으니

肯作南薰琴(긍작남훈금) 남풍곡을 탄주할 거문고 만들 수 없네

 

〇 만음(謾吟) - 何沆

江上老로月(강상로로월) 강 위의 한가한 달처럼 늙어

村居非本志(촌거비본지) 시골에 사는 것이 본래 내 뜻 아니니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시절에 꽃처럼 눈물 뿌리는 자

吾與杜子美(오여두자미) 나와 두자미 뿐이라네

 

〇 부제엄혜사(復題嚴惠寺)

寺黏蒼崖曲(사점창애곡) 절은 푸른 벼랑에 달라붙어있고

塵寰隔一江(진환격일강) 진세는 강 라나 사이에 두고 있는데

高吟巖上月(고음암상월) 바위 위에서 달을 높게 읊조리니

天與我爲雙(천여아위쌍) 하늘과 내가 짝이 되네

◀ 塵世(진세): 티끌 많은 세상

 

​〚작자〛 하항(何沆)

 

 

 

□ 하홍도(河弘度)

 

〇 덕천서원(德川書院)

歲首旣生魄(세수기생백) 해마다 연초에 혼백은 나고

氷輪如火輪(빙륜여화륜) 영원한 윤회의 삶은 불수레바퀴어라

天心未易測(천심미역측) 하늘의 마음 알기 쉽지 않지만

愚意喜陽純(우의희양순) 내 생각에 양기가 순백함이 기쁘다오

​〚작자〛 하홍도(河弘度, 1593년(선조 26) ~ 1666년(현종 7)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 아버지는 하광국(河光國)이며, 어머니는 강양이씨(江陽李氏)로 이광우(李光友)의 딸이다. 조선후기 『겸재집』을 저술한 학자.

 

 

 

□ 한용운(韓龍雲)

 

〇 독야(獨夜) - 韓龍雲

 

天末無塵明月去(천말무진명월거) 해맑은 하늘 끝으로 밝은 달은 넘어가고

孤枕長夜聽松琴(고침장야청송금) 외로운 잠자리, 긴긴 밤 솔바람소리 들린다.

一念不出洞門外(일념부출동문외) 이 생각도 동문 밖을 나가지 못하고

惟有千山萬水心(유유천산만수심) 오로지 온갖 산과 물과 함께 하는 마음 뿐.

玉林垂露月如霰(옥림수로월여산) 숲에 내린 이슬에 달빛 싸락눈 같은데

隔水砧聲江女寒(격수침성강녀한) 물 건너 다듬질소리에 강가 여인의 마음 차다.

兩岸靑山皆萬古(양안청산개만고) 두 언덕 푸른 산들은 모두가 옛과 같아

梅花初發定僧還(매화초발정승환) 매화꽃 피어날 때면 정녕 다시 돌아오리라.

 

〇 등선방후원 (登禪房後園) - 韓龍雲

 

兩岸寥寥萬事稀(양안요요만사희) 양언덕 고요하여 만단사가 쉬는 듯

幽人自賞未輕歸(유인자상미경귀) 숨어 살아 스스로 즐기니 돌아가지 않네.

院裡微風日欲煮(원리미풍일욕자) 절 안에 미풍 일고 햇살은 따가워

秋香無數撲禪衣(추향무수박선의) 가을 향기 셀 수 없이 옷을 휘감네.

 

〇 別玩豪學士(별완호학사) - 韓龍雲

 

萍水蕭蕭不禁別 (평수소소부금별) 떠도는 인생이기 이별은 있어

送君今日又黃花 (송군금일우황화) 그대를 보내노니 국화 설운 빛!

依舊驛亭惆悵在 (의구역정추창재) 텅 빈 역사(驛舍)와 슬픔만 남고

天涯秋聲自相多 (천애추성자상다) 하늘가 가을 소리 몸에 스며라.

◀ 別玩豪學士(별완호학사) - 한용운 완호 학사와 헤어지며

〚작자〛 한용훈(韓龍雲, 1879~1944) 독립운동가 겸 승려, 시인. 일제강점기 때 시집《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조선불교유신론》 등이 있다.

 

 

 

□ 함허당(涵虛堂)

 

〇 山居(산거)

山深木密合幽居(산심목밀합유거) 산 깊고 나무 우거져 조용히 살기에 좋아

境靜人稀興有餘(경정인희흥유여) 분위기 고요하고 사람은 드물어 멋이 넘친다

飽得箇中淸意味(포득개중청의미) 이곳의 맑은 뜻과 맛을 배불리 먹고

頓亡身世自容與(돈망신세자용여) 나와 세상 다 잊으니 저절로 여유로워라

 

〚작자〛 함허화상(涵虛和尙 1376∼1433) 조선 초기의 배불정책 속에서 불교를 수호한 고승. 성은 유(劉)씨. 호는 득통 (得通), 당호는 함허(涵虛). 처음 법명은 수이(守夷)이며, 처음 법호는 무준(無 準)이다. 충주출신. 아버지는 전객사사(典客寺事) 청(聽)이고, 어머니는 방씨 이다. 미륵보살에게 기도하여 태어났다고한다.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입학하 여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21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의 뜻을 굳혔다. 그는 종단폐합과 사사혁거(寺社革去) 및 사전노비(寺田奴婢) 몰수 등 으로 조선 초기의 배불정책이 극에 이르렀을 때, 불교의 정법(正法)과 그 이 치를 밝힘으로써 유학의 불교비판의 오류를 시정시키고자 노력한 고승이었 다.

저서에는 <원각경소(圓覺經疏)>3권, <금강경오가해설의>2권 1책, <윤관(綸 貫)>1권, <함허화상어록(涵虛和尙語錄)>1권이 전하여진다.

 

 

 

□ 한응인(韓應寅)

 

〇 題碧梧軒(제벽오헌)

山光當戶碧(산광당호벽) 산 빛은 방문에 파랗고

竹意近軒靑(죽의근헌청) 대나무 뜻은 처마에 가까워 푸르다

午睡初醒後(오수초성후) 낮잠이 처음 깨인 뒤로

翛然聽雨聲(소연청우성) 날개 치듯 떨어지는 빗소리 들린다.

 

〚작자〛 한응인(韓應寅) 조선 중기의 문신(1554~1614).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졸재(百拙齋)ㆍ유촌(柳村). 임진왜란 때 팔도 순찰사가 되어 공을 세워 호조 판서로 임명되었다. 뒤에 선조가 위독할 때 유교칠신의 한 사람으로 영창 대군의 보호를 부탁받았다가 광해군 때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 허균(許筠)

 

〇 문파관작(聞罷官作 二首) - 許筠

其二

禮敎寧拘放(예교녕구방) 예교에 어찌 묶이고 놓임을 당하리오

浮沈只任情(부침지임정) 잠기고 뜸 다만 정에 맡길 뿐

君須用君法(군수용군법) 그대는 모름지기 그대 법을 쓸 게고

吾自達吾生(오자달오생) 나는 스스로 내 삶을 이루리라

親友來相慰(친우래상위) 친한 벗은 와서 서로 위로하는데

妻孥意不平(처노의불평) 처자식은 뜻이 불평하구려

歡然若有得(환연약유득) 흐뭇하여 소득이 있는 듯하니

李杜幸齊名(이두행제명)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다행히 이름 나란하네

◀ 허균이 불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파면된 다음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〇 신안(新安) - 許筠

向夕笙歌散(향석생가산) 저물어 가자 생황 노래 흩어지니

燒香閉客房(소향폐객방) 향을 피우고 나그네 방을 닫는다

關河孤雁逈(관하고안형) 변방 강에 외로운 기러기 아득하고

風雨一燈涼(풍우일등량) 비바람에 등잔불 하나 싸늘하다

雪入朱絃冷(설입주현랭) 눈은 붉은 거문고에 들어차고

花飄綵翰芳(화표채한방) 꽃은 채색 붓에 날려 향기롭다

人生貴懽笑(인생귀환소) 인생이란 즐거움과 웃음이 소중한데

何地是吾鄕(하지시오향) 어느 곳이 내 고향일까?

◀ 이 시는 여행 도중 신안에 들러 지은 것

 

〇 조향천안(早向天安) - 許筠

黃泥滑滑馬行遲(황니활활마행지) 황토 진흙 미끄러워 말은 더디지만

從旅相攀莫怨咨(종려상반막원자) 같이 사는 사람들아 서로 끌어주며 원망하지 말게나

自有文章娛寂寞(자유문장오적막) 적막을 즐길 만한 문장을 지녔으니

肯於名位恨差池(긍어명위한차지) 어찌 명예와 지위가 어긋난 일을 한하리오?

人中懷璧元堪罪(안중회벽원감죄) 사람 틈에서 옥을 품으면 원래 죄를 얻는 법이고

暗裏投珠却見疑(암리투주각견의) 어둠 속에 진주 던지면 도리어 의심을 받는 법이지

此去不愁身更遠(차거불수신갱원) 이번에 가면 몸이 더욱 소외됨을 근심하지 않으리니

梅花消息已南枝(매화소식이남지) 매화 소식이 이미 남쪽 가지에 왔을 텐데

 

〇 초하성중작(初夏省中作) - 許筠

田園蕪沒幾時歸(전원무몰기시귀) 전원이 묵었는데 언제 돌아가지?

頭白人間官念微(두백인간관념미) 하얀 머리의 인간 벼슬 생각 적어지네

寂寞上林春事盡(적막상림춘사진) 적막한 상림원에 봄빛이 다하려 하기에

更看疎雨濕薔薇(갱간소우습장미) 다시 성긴 비에 젖은 장미를 보노라

懕懕晝睡雨來初(염염주수우래초) 몽롱한 낮잠 비가 막 내리는데

一枕薰風殿閣餘(일침훈풍전각여) 머리맡의 따뜻한 바람 전각에 남아도네

小吏莫催嘗午飯(소리막최상오반) 서리(胥吏)여, 점심밥 어서 들라 재촉 마소

夢中方食武昌魚(몽중방식무창어) 꿈속에 한참 무창 물고기 먹고 있는데

 

〇 해산선몽요(海山仙夢謠)

溟波隱隱浮鰲島(명파은은부오도) 푸른 바다에 은은히 뜬 오도여

瓊草漫山春不老(경초만산춘불노) 온갖 기묘한 풀 산에 가득하고 봄이 한창이라.

帝遣小玉驂靑鸞(제견소옥참청란) 상제는 소옥을 보내 푸른 난새 태워서

吹笙夜下紅雲端(취생야하홍운단) 피리 불며 한밤에 구름 끝을 내려온다.

裙衩半謝芙蓉帶(군차반사부용대) 저고리는 부용띠를 절반만 가기고

遠岫凝愁抹蛾黛(원수응수말아대) 먼 봉우리에 엉긴 시름 눈썹에 발리었다.

陸郞倚醉隔煙語(육랑의취격연어) 육랑은 취한 기운에 안개 밖에 속삭이며

仙袂笑拂三珠樹(선몌소불삼주수) 신선의 소매 웃으며 삼주수를 휘젓는구나.

丁當瑤瑤韻空冥(정당요요운공명) 쟁쟁 패옥 소리 공중에 울리니

鞭龍踏鯇多娉婷(편용답환다빙정) 용 타고 잉어 밟으니 너무나 아름답다.

彩蟾春桂香入骨(채섬춘계향입골) 월궁의 계수나무 그 향기가 뼈를 뚫고

鮫綃一點薔薇血(교초일점장미혈) 교초의 붉은 무늬 한 점은 장미꽃 핏빛이다.

蓬萊重結千年期(봉래중결천년기) 봉래산에 또다시 천년 기약 맺었으니

碧桃花落生孫枝(벽도화락생손지) 벽도화는 떨어져 손자 가지가 나오는구나.

寶枕瑤衾生曉寒(보침요금생효한) 옥베개 비단 이불에 새벽 추위 차가운데

祥雲繚繞歸巫山(상운료요귀무산) 상서로운 구름 얽혀 무산으로 돌아간다.

憑誰寄語陽雍伯(빙수기어양옹백) 누구에게 부탁하여 양옹백에게 말 전하여

種玉藍田餉書客(종옥람전향서객) 남전에 옥을 심어 글 손님을 배불리 먹일까.

 

〚작자〛 허균(許筠, 1569, 선조 2~1618, 광해군 10): 호는 교산(蛟山)·학산(鶴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 조선중기 문신으로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였다. 조선시대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집필하였다. 그외 작품으로 《한년참기(旱年讖記)》, 《한정록(閑情錄)》 등이 있다.

 

 

□ 허난설헌(許蘭雪軒)

 

〇 감우(感遇) - 許蘭雪軒

盈盈窓下蘭(영영창하란)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枝葉何芬芳(지엽하분방)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西風一被拂(서풍일피불) 가을 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零落悲秋霜(영락비추상)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秀色縱凋悴(수색종조췌)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淸香終不死(청향종불사)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感物傷我心(감물상아심)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涕淚沾衣袂(체루첨의몌)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〇 강남곡(江南曲) - 許蘭雪軒

其二

人言江南樂(강언강남락) 사람은 강남의 즐거움을 말하나,

我見江南愁(아견강남수) 나는 강남의 근심을 보고있네.

年年沙浦口(년년사포구) 해마다 이 포구에서

腸斷望歸舟(장단망귀주) 애타게 떠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이 시는 강남곡 오수(江南曲 五首)중 2수로 강남을 노래한 것이다. 중국 악부(樂府)의 명칭을 빌려 한 여인의 애타는 기다림을 읊고 있다.

 

〇 곡자(哭子) - 許蘭雪軒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작년에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슬프고 슬프도다, 광릉 땅에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한 쌍의 무덤이 서로 마주하고 일어섰네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백양나무에 쓸쓸히 바람 불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귀신불은 소나무와 오동나무를 밝히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종이돈으로 너희들 혼을 부르고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 맹물을 너희들 무덤에 따르네

應知弟兄魂(응지제형혼) 알고 말고, 너희 자매의 혼이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마다 서로 따라 노니는 것을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비록 배 속에 아이가 있은들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어찌 장성하기를 바랄 수 있으랴

浪吟黃臺詞(낭음황대사) 헛되이 「황대사」를 읊조리니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피눈물이 나와 슬픔으로 목메네

◀ 이 시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애달픈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〇 기부강남독서(寄夫江南讀書) - 許蘭雪軒

燕掠斜簷兩兩飛(연략사첨양양비) 제비는 비스듬한 처마를 지나 쌍쌍이 날고

落花撩亂拍羅衣(낙화료란박라의) 떨어지는 꽃잎은 어지럽게 비단 옷을 때려요

洞房極目傷春意(동방극목상춘의) 규방엔 눈이 미치는 곳마다 정을 잃고

草綠江南人未歸(초록강남인미귀) 풀 푸른 강남의 임은 돌아오지 않네요

◀ 이 시는 강남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 남편 김성립(金誠立)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〇 채련곡(采蓮曲) - 許蘭雪軒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荷花深處繫蘭舟(하화심처계란주)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었네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련자) 임을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 동안 부끄러웠네

◀ 이 시는 연밥을 따며 부른 노래로

 

〚작자〛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본관 양천(陽川). 호 난설헌(蘭雪軒).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명종 18년(1563년) 강원도 강릉(江陵)에서 출생하였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누나이다.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시인.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다.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고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 허목(許穆)

 

〇 죽령(竹嶺)

人喧小白太白高(인훤소백태백고) 소백 태백 높다고 사람들 시끄럽고

複嶺重關天下壯(복령중관천하장) 겹 고개 겹 관문이 천하에 웅장하여라.

積翠巃嵸六百里(적취롱종육백리) 첩첩이 가파른 산 육백 리나 뻗쳐

烟霞縹緲連靑嶂(연하표묘련청장) 안개 속 아스라이 푸른 산이 잇닿았다.

石棧盤回危且險(석잔반회위차험) 사다리 돌길 구불구불 험하고도 위험하니

行行脅息頻側望(행행협식빈측망) 걸음마다 숨 죽이고 곁눈질 자주 한다.

三月嶺上見積雪(삼월령상견적설) 삼월 고개 위에 쌓인 눈 보이고

高處寒凝未暄暢(고처한응미훤창) 높은 곳 한기 어려 따스하지 않구나.

蜀道不得難於此(촉도불득난어차) 촉 나라 험한 길도 이보다 어려울까

使我覊旅久惆悵(사아기려구추창) 나그네 길은 오래도록 날 슬프게 한다.

 

〚작자〛 허목(許穆) 조선 숙종 때의 문신ㆍ학자(1595~1682). 자는 문보(文甫)ㆍ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 제자백가와 경서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다. 저서에 ≪경설(經說)≫, ≪동사(東事)≫가 있다.

 

 

 

□ 허성(許筬)

 

〇 취후유득(醉後有得)

空廓人靜聽鍾鳴(공곽인정청종명) 빈 성곽에 인적은 드물고 종소리 들려오고

一斗山醪攪不淸(일두산료교불청) 한 말의 산 막걸리는 흔들려 맑지도 않구나.

半衣壑風吹未已(반의학풍취미이) 반 자락 옷자락에 골짜기 바람 불어 그치지 않으니

歸雲缺處見參橫(귀운결처견참횡) 돌아오는 구름이 트인 곳으로 참횡이 보이는구나.

 

〚작자〛 허성(許筬) 조선 선조 때의 문신(1548~1612).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ㆍ산전(山前).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바른대로 고하였다.

 

 

 

□ 허종(許琮)

 

〇 다경루우부(多慶樓又賦)

坐向郊頭草染衣(좌향교두초염의) 들을 향해 앉으니 풀 빛에 옷에 물들고

日斜山氣轉霏微(일사산기전비미) 해지는 저녁 산기운은 더욱 곱게 젖어든다

滿江春色無拘管(만강춘색무구관) 강에 가득한 봄빛은 아무 거리낌 없이

一任楊花上下飛(일임양화상하비) 버들꽃이 위아래로 나는대로 맞겨두는구나

 

〚작자〛 허종(許琮)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종경(宗卿)·종지(宗之), 호는 상우당(尙友堂). 조선전기 병조판서, 우의정, 내의원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 홍가신(洪可臣)

 

〇 別尹泰亨(별윤태형)

別後長相思(별후장상사) 이별 한 후 오랫동안 서로 생각하며

相思何日忘(상사하일망) 각하는 마음 언제 잊을 수 있겠는가.

黃牋數行字(황전수행자) 편지에 쓰인 몇 줄의 글자

讀罷斷人腸(독파단인장) 읽고나니 사람의 간장을 끊는구나.

 

〚작자〛 홍가신(洪可臣) 조선 선조 때의 문신(1541~1615). 자는 흥도(興道). 호는 만전당(晩全堂). 1589년 정여립의 모반 사건 후 파직되었다가 1594년 홍주 목사(洪州牧使)로 부임하여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고 청난공신이 되었다.

 

 

 

□ 홍간(洪侃)

 

〇 원산(遠山)

一枝春愁遠復長(일지춘수원부장) 한 가지에 봄 수심 멀어졌다 짙어지는데

雨雲依約覺猶香(우운의약각유향) 비구름은 기약대로 느낌이 여전히 향기롭구나

武陵雙碧多輕媚(무릉쌍벽다경미) 무릉 땅 두 푸른 것이 경쾌한 아름다움 많으니

堪笑文園枉斷腸(감소문원왕단장) 문단에서 부질없이 애통해함이 가소롭구나

 

〚작자〛 홍간(洪侃) 미상~1304년(충렬왕 30), 자는 자운(子雲) 또는 운부(雲夫), 호는 홍애(洪崖).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지경(之慶)이다. 고려후기 비서윤, 원주주관, 동래현령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 홍귀달(洪貴達)

 

〇 광진주중효기(廣津舟中曉起)

舟中晨起坐(주중신기좌) 배 안에서 새벽녘에 일어나 앉으니

相對是靑燈(상대시청등) 마주 바라보는 것이 푸른 등불이라네.

鷄犬知村近(계견지촌근) 닭소리 개소리에 마을이 가까움을 알겠고

星河驗水澄(성하험수징) 은하수는 물이 맑은 것을 보았도다.

隨身唯老病(수신유노병) 몸에 따르는 것 오직 병과 늙음이요

屈指少親朋(굴지소친붕) 손꼽아 보매 친척과 친구는 적도다.

世事又撩我(세사우료아) 세상 일이 또 나를 붙잡으니

東方紅日昇(동방홍일승) 동방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작자〛 홍귀달(洪貴達) 조선 연산군 때의 문신(1438~1504).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ㆍ함허정(涵虛亭). 1498년 무오사화 때에 왕의 실책을 10여 조목에 걸쳐 간(諫)하다가 미움을 사서 좌천되었으며, 갑자사화 때에 모함을 입어 처형되었다. 저서에 ≪허백정문집≫이 있다.

 

 

 

□ 홍대용(洪大容)

 

〇 증우인귀향(贈友人歸鄕)

知君非長往(지군비장왕) 그대 오랫동안 숨어있진 않을 것이니

奇跡同陽鳥(기적동양조) 기이한 그대 자취 기러기와 같구려

阿閣思鳳擧(아각사봉거) 조정에서는 봉황의 움직임 생각하고

澤梁戒雉鷕(택량계치요) 어촌에서는 꿩의 울음을 경계하노라

矰繳不敢施(증격불감시) 주살과 그물 감히 칠 수 없으니

逸翮振空杳(일핵진공묘) 날개 활짝 펴고 아득히 창공에 떨쳐라

永言保貞信(영언보정신) 진리의 말은 곧음과 믿음의 보전

有如江月皎(유여강월교) 강가의 달빛처럼 밝음을 가져야 하리

 

〚작자〛 홍대용(洪大容)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1731~1783).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ㆍ홍지(洪之). 북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천문과 율력에 뛰어나 혼천의를 만들고 지구의 자전설을 제창하였다. 저서에 ≪담헌집≫, ≪주해수용(籌解需用)≫ 이 있다.

 

 

 

□ 홍세태(洪世泰)

 

〇 눈죽 (嫩竹) - 洪世泰

嫩竹纔數尺(눈죽재수척) 어린 대나무 겨우 몇 척

已含凌雲意(이함릉운의) 구름을 넘어설 뜻 이미 머금었네

騰身欲化龍(등신욕화룡) 몸을 올려 용이 되고자

不肯臥平地(불긍와평지) 평지에 누우려 하지 않네

 

〇 만흥 이수 (漫興 二首)

其二(기이)

高閣深深夏氣淸(고각심심하기청) 높은 누각 깊고 깊어 여름 기운 맑은데

雲流雨去日微明(운류우거일미명) 구름 흘러 비는 개고 해는 희미하게 밝네

閉門寂寞靑山近(폐문적막청산근) 문 닫으니 적막하여 푸른 산이 가깝고

隱几蕭條芳草生(은궤소조방초생) 서궤(書几)에 기대니 쓸쓸하여 방초가 피어 있네

夢裏不知爲化蝶(몽리부지위화접) 꿈속에서 나비로 변화한 걸 몰랐는데

酒醒何處有啼鶯(주성하처유제앵) 술이 깨자 어디선가 꾀꼬리 울어대네

林風夕起吹雙袂(임풍석기취쌍몌) 숲 바람이 저녁에 일어 양쪽 소매에 불어오니

矯首晴天緩步行(교수청천완보행) 머리 들어 갠 하늘에 천천히 걸어가네

 

〚작자〛 홍세태(洪世泰, 1653, 효종 4~1725, 영조 1):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도장(道長), 호는 창랑(滄浪)·유하(柳下). 경사(經史)에 밝고 시(詩)에 능하여 1682년(숙종 8)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을 때 여러 사람들이 그의 시묵(詩墨)을 얻어 가보(家寶)처럼 간직하였다. 저서로 《해동유주(海東遺珠)》, 《유하집》 등이 있다.

 

 

 

□ 홍우원(洪宇遠)

 

〇 농원록죽(籠園綠竹)

摵摵滿園竹(색색만원죽) 뜰에 가득한 앙상한 대줄기

亭亭千碧玉(정정천벽옥) 우뚝히 들어 찬 천 개의 푸른 옥

自傾彭澤樽(자경팽택준) 스스로 도연명의 술독을 기울이니

誰是山陰客(수시산음객) 그 누가 곧 산음의 나그네인가

 

〚작자〛 홍우원(洪宇遠) 1605년(선조 38) ~ 1687년(숙종 13),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징(君徵), 호는 남파(南坡). 조선후기 이조판서, 우참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 홍섬(洪暹)

 

〇 홍문관(弘文館)

季淮燤趾舟恒正(계회제지주항정)

魚達成勘漑袞容(어달성감개곤용)

老讓國昌申鄭忍(로양국창신정인)

吉忠淳愼貴無窮(길충순신귀무궁)

계량 윤 회 권 제 정인지 신숙주 최 항 서거정

어세겸 홍귀달 성 현 김 감 신용개 남 곤 이 행

김안료 소세양 김안국 성세창 신광한 정사룡 홍 섬

정유길 박충원 박순 노수신 김귀영은 무궁하리라

 

〚작자〛 홍섬(洪暹) 조선 시대의 문신(1504~1585). 자는 퇴지(退之). 호는 인재(忍齋).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1535년에 김안로(金安老)의 전횡을 탄핵하여 유배되었다가 김안로가 죽은 후에 풀려났는데, 이때 자신의 심경을 읊은 <원분가(冤憤歌)>가 전한다.

 

 

 

□ 황정욱(黃廷彧)

 

〇 증거정주인구리김진(贈居停主人舊吏金珍) - 黃廷彧

少年刀筆吏稱佳(소년도필리칭가) 젊어서 서기로 명성이 있었으나

老去還悲五色迷(노거환비오색미) 늙어서는 도리어 슬프게도 오색도 구분 못 하네

迷路世間吾亦爾(미로세간오역이) 세간의 미로에선 나 역시 그러하니

白頭筇杖笑相携(백두공장소상휴) 흰머리에 지팡이 짚고 웃으며 서로 끌어 주네

 

〇 차옥당소도운 (次玉堂小桃韻)

無數宮花倚粉墻(무수궁화의분장) 무수한 궁궐 꽃 흰 담장에 기대어

遊蜂戱蝶趁餘香(유봉희접진여향)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은 향기를 찾는다

老翁未及春風看(노옹미급춘풍간) 늙은이 마음 봄바람 다 보지도 못하면서

空有葵心向太陽(공유규심향태양) 공연히 마음은 접시꽃처럼 태양을 향한다오

 

〚작자〛 황정욱(黃廷彧, 1532~1607) 조선 중기의 문신. 그의 시는 “크고 넓어서 나약한 시들을 모두 씻어 버린 듯하다”, “마음껏 내놓아 종횡(縱橫)하는 듯하다”, “갑자기 우뚝 솟은 듯하다”는 등 시의 풍격이 웅장(雄壯)하고 기위(奇偉)한 것으로 평가된다.

 

 

 

□ 황진이(黃眞伊)

 

〇 滿月臺懷古 (만월대회고)

古寺蕭然傍御溝(고사소연방어구) 옛 절은 도랑 곁에 조용하고,

夕陽喬木使人愁(석양교목사인수) 석양의 큰 나무 사람을 시름케 하네

煙霞冷落殘僧夢(연하냉락잔승몽) 연기와 놀은 스님의 남은 꿈에 차갑게 내리고

歷月崢嶸破塔頭(역월쟁영파탑두) 세월은 부서진 탑머리에 아득해라

黃鳳羽歸飛鳥雀(황봉우귀비조작) 누런 봉황새는 깃을 접고 새와 참새만 날며

杜鵑花發牧羊牛(두견화발목양우) 진달래꽃 떨어진 곳엔 양과 소가 풀을 뜯네

神松憶得繁華日(신송억득번화일) 신성한 송악산이 번화롭던 날을 생각하니

豈意如今春似秋(기의여금춘사추) 어찌 이제 봄조차 가을일 줄을 생각이나 했으랴?

◀ 이 시는 개성(開城) 송악산 기슭에 있던 고려시대 궁궐터인

만월대를 돌아보고 느낀 감회를 노래한 것이다.

 

〇 박연(朴淵) - 黃眞伊

一派長天噴壑礱(일파장천분학롱) 한 줄기 긴 하늘이 골짜기에서 뿜어 나와

龍湫百仞水潨潨(용추백인수총총) 폭포수 백 길 물이 쏟아져 나오네

飛泉倒瀉疑銀漢(비천도사의은한) 나는 샘이 거꾸로 쏟아져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노폭횡수완백홍) 성난 폭포는 가로로 드리워 완연히 흰 무지개네

雹亂霆馳彌洞府(박란정치미동부) 어지러운 우박과 날뛰던 번개가 골짜기에 가득하고

珠舂玉碎澈晴空(주용옥쇄철청공) 부서진 구슬과 옥이 맑은 하늘에 맑네

遊人莫道廬山勝(유인막도여산승) 나그네야, 여산이 낫다고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수식천마관해동) 모름지기 천마산이 해동에서 으뜸임을 알아야 하리

◀ 이 시는 하나인 박연폭포의 아름답고도 힘차며 깨끗함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〇 별김경원(別金慶元) - 黃眞伊

三世金緣成燕尾(삼세금연성연미) 영원한 굳은 인연 제비 꼬리처럼 갈라지니

此中生死兩心知(차중생사량심지) 이 중에서 살고 죽음을 두 마음만은 알리라

楊州芳約吾無負(양주방약오무부) 양주의 꽃다운 약속 내 어기지 않으려니

恐子還如杜牧之(공자환여두목지) 그대 도리어 두목지와 같음이 두렵네

 

〇 상사몽(相思夢)

相思相見只憑夢(상사상견지빙몽) 서로 그리워 만나는 건 다만 꿈에 의지할 뿐

儂訪歡時歡訪儂(농방환시환방농) 내가 임 찾으러 갈 때 임은 날 찾아왔네

願使遙遙他夜夢(원사요요타야몽) 바라노니, 아득한 다른 날 밤 꿈에

一時同作路中逢(일시동작로중봉) 동시에 함께 일어나 길에서 만나지기를

◀ 이 시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상황을 꿈을 매개로 하여

이루려는 마음을 노래한 것으로,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황진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〇 소백주 (小栢舟) - 黃眞伊

汎彼中流小栢舟(범피중류소백주) 저 중류에 떠 있는 작은 잣나무 배

幾年閑繫碧波頭(기년한계벽파두) 몇 해나 한가로이 푸른 물가에 매었던가?

後人若問誰先渡(후인약문수선도) 뒷사람이 만약 누가 먼저 건넜냐고 묻는다면

文武兼全萬戶侯(문무겸전만호후) 문무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라

 

 영반월(詠半月) - 黃眞伊

誰斷崑山玉 (수단곤산옥) 누가 곤륜산옥을 잘라

裁成織女梳 (재성직녀소) 직녀의 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牽牛離別後 (견우이별후) 직녀는 견우님 떠나신 뒤에

愁擲壁空虛 (수척벽공허) 시름하며 허공에 던져 두었네

〚작자〛 황진이(黃眞伊) 본명은 황진(黃眞),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신. 확실한 생존연대는 미상이다.

중종 때의 사람이며 비교적 단명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 휴정 (休靜) - 사명대사(四溟大師)

수이공구어(酬李公求語)

千魔萬難看如幻(천마만난간여환) 수많은 마귀와 어려움을 허깨비로 보면

直似灘頭撤轉船(직사탄두철전선) 여울머리에서 배를 돌리는 것과 같도다

呑透金剛竝栗剳(탄투금강병률답) 금강과 밤송이를 모두 삼켜버려야만

方知父母未生前(방지부모미생전)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나를 알 수 있다.

 

〇 환향(還鄕)(一) 청허당(淸虛堂)

其一(기일)

三十年來還故鄕(삼십년래환고향) 집 떠난 지 삼십 년 고향에 돌아오니

人亡宅發又寸荒(인망택발우촌황) 사람은 없어지고 눈익은 집들 모두 다 헐렸네

山川不語春草暮(산천불어춘초모) 청산은 말이 없고 봄날은 저무는데

杜字一聲來杳茫(두자일성래묘망) 두견새 우는소리 멀리까지 들려오네.

其二(기이)

一行兒女窺窓紙(일행아녀규창지) 계집아이 떼를 지어 창 틈으로 엿보니

鶴髮隣翁問姓名(학발인옹문성명) 이웃집 노인들 누구냐고 묻는다

乳號方通相

 

 

 

 

 

 

 

 

 

고방서예자료[752]조선시대 한시모음

□ 안민학(安敏學) 〇석년화(惜年華)春盡花衰綠葉齊(춘진화쇠록엽제) 봄이 다 가고 꽃은 지는데 푸른 잎은 싱싱한데年光如夢使人迷(년광여몽사인미) 세월은 꿈같아 사람을 사람의 늙게 하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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