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牧牛), 공(空)을 찾는 여정1. 소 혹은 소 아닌 소
절에 가면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불화 속의 동물은 소이다.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대웅전 처마 끝을 따라 걷다 보면 무심코 외벽을 따라 순차적으로 펼쳐진 〈십우도〉를 마주하게 된다. 민화처럼 담백하고 친숙한 〈십우도〉에는 화제에 해당하는 〈심우송〉이 대부분 곁들여 있다. 오랫동안 농경사회였던 이 땅의 뭇사람들은 집과 들에서 함께 살며 일하던 소를 절에 와서 다시 그림으로 만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왜 소일까? 소가 일상생활과 가깝다고 할지라도 사찰의 불화 속에 자주 등장한 필요조건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의 삶과 가까운 동물에는 소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법명에서부터 깨달은 소를 내세운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에서 찾아볼 수는 없을까? 그의 화지일성(㕦地一聲)으로 유명한 ‘무비공(無鼻空)’ 역시 바로 소와 직접 연관되지 않던가. 고종 16년(1879) 겨울 11월 15일, 연암산 천장암, 세수 31세의 경허가 문을 박차고 나와 터트린 오도송(悟道頌)은 다음과 같이 펼쳐진다.
忽聞人語無鼻孔 문득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旽覺三天示我家 삼천세계가 바로 내 집임을 깨달았네
六月燕岩山下路 유월 연암산 아랫길
野人無事太平歌 들녘의 사람이 하릴없는 태평가를 부르네.
조선의 희미해져 가던 선맥(禪脈)을 깨우는 불꽃이 벼락처럼 일어나던 찰나이다. 그 계기는 ‘무비공(無鼻空)’이다.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자마자 삼천세계의 주인이 되고 있다. 삼천세계가 모두 내 것인데, 무슨 걱정이나 막힘이 있겠는가. 자유자재의 활연과 태평가의 나날들만이 있을 따름이다. 이처럼 자재로운 즉심성불(卽心成佛)의 오도송이 태어난 경위를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허성우는 학승들을 양성하던 강원까지 폐지하고 자신의 염화실 앞에 묵언패(黙言牌)를 단단히 내다 걸었다. 스스로를 깊은 어둠과 고행의 심연 속으로 유폐시킨 것이다. 호열자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마을을 지나다가 공포에 질린 자신을 보며 돌아와 삶과 죽음의 문턱에 대해 눈을 뜨지 않으면 송장이 될지언정 나서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칼을 갈아 턱에 바짝 대고 수행하는, 인추자복 마도당신(引錐刺服 磨刀當頣)의 날이 길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 자국이 참담하게 늘어갔다. 그러나 용맹정진의 눈빛은 더욱 형형해져 갔다. 그는 오직 자기만을 의지하며 어둠을 밝히는 어둠의 세계를 스스로 타파해 나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목숨을 건 수행에도 활연대오(豁然大悟)의 빛은 열리지 않았다. 수개월이 훌쩍 지난 어느 날이었다.
경허의 사제인 학명도일이 어느 날 곡식 볏가리를 내리는 이 처사를 만났다.
이 처사는 경허 스님의 시봉을 받들던 사미승 동은의 속가 아버지이다,
이 처사가 아들 소식을 묻자 건강하게 잘 있다고 대답하자 이 처사가 한마디 한다.
“중이 중노릇 잘못하면 중이 마침내 소가 됩니다.”
이에 학명도일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다 다 이루지 못하여 죽어서 소로 태어나서 그 시주에게 은혜를 갚으면 되겠지요.” 한다.
이 처사가 다시 한마디 한다.
“어찌해서 그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하십니까? 죽어서 소가 되더라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는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요.” 했다.
도일은 콧구멍 없는 소의 뜻을 헤아릴 길이 없어 머뭇거리다가 경허 선사께 어렵게 물었다.
그 순간 경허는 무비공(無鼻空)을 연신 외치며 염화실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경허성우의 오도송의 근간인 ‘무비공(無鼻空)’의 탄생 설화이다. 그렇다면 콧구멍 없는 소, 무비공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가?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경허성우의 오도송은 한갓 그림일 따름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 앞에 남전(南泉, 748~834)의 〈양우(養牛)〉 편은 등대처럼 다가온다.
남전(南泉)이 시중(示衆)하여 말하였다.
“내가 어릴 적부터 한 마리 검은 암소(水牯牛)를 길렀는데, 개울 동쪽에다 놓으려니 국왕의 물과 풀을 침범하지 않을 수 없고, 개울 서쪽에다 놓으려니 역시 다른 국왕의 물과 풀을 침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지금 분수에 따라 조금씩 가두어 들이고 다른 것은 내버려 두는 것만 못하다.”
南泉示衆云 王老師 自小養一頭水牯牛 擬向溪東放 不免食他國王水草 擬向溪西放 亦不免食他國王水草 如今不如隨分納些些 他惣不妨
— 《선문염송》 206칙 〈양우(養牛)〉
“한 마리 검은 암소(水牯牛)”를 중심으로 선화가 전개된다. 개울 동쪽과 서쪽은(溪東溪西)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어지는 이분법적인 분별지를 가리킨다. 선/악, 차안/피안, 색계/공계, 세속/신성 등의 분별지에 갇히면 어느 한쪽 나라 땅의 풀만을 먹기 위해 침범해야 하는 선택지에 빠진다. 검은 암소가 자신의 땅에서 나는 자신의 풀을 고루 먹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편벽된 남의 풀이나 뜯게 되는 상황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집착과 분별을 벗어나 소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임운등등(任運騰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 마리 검은 암소(水牯牛)”는 진아(眞我), 본래면목의 형상화이다. 그리고 개울 동쪽과 서쪽(溪東溪西)은 외부의 색성미향(色聲美香)에 따라 작용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이 모든 과정이 사실은 자신 마음의 논밭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자신의 본래 마음 밭을 찾아 마음의 소를 풀어놓으면 어느 곳에도 음마(陰魔)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여기에 이르면, 소가 있어도 그 소를 이리저리 끌고 다닐 코뚜레는 처음부터 필요가 없어진다. 무비공(無鼻空)이다. 소의 코뚜레란 인위(人爲)이고 코뚜레 뚫을 코가 없는 소란 무위(無爲)로 해석된다. 코뚜레를 꿰어 길드는 소는 분별하고 사려하고 차별하는 반연(攀緣)의 대상이다. 경허 선사 역시 소의 콧구멍에 코뚜레를 뚫으려는 마음을 버렸을 때 이미 소는 자유이며 부처이며 자신의 본성이고 만물의 근원임을 홀연히 깨우치게 되었던 것이리라.
경허성우의 수제자로 널리 알려진 만공은 〈경허법사영찬(鏡虛法師影讚)〉을 통해 이를 새삼 다시 증명해 주고 있어 흥미롭다.
鏡虛本無鏡 거울이 비었으니 본래 거울이 없고
惺牛曾非牛 소를 깨달았으나 결코 소가 아닐세
非無處處路 거울도 아니요 소도 없는 곳곳에
活眼酒與色 활안은 술과 색이로세
“거울이 비었으니 본래 거울이 없”다. 본래 거울이 없으니 먼지가 앉을 곳도 닦아야 할 곳도 없다. 거울이든 수행이든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여 갇히는 것의 경계이다. 그리하여 “소를 깨달았으나 소”는 아니다. 소이지만 소가 아닌 소이다. 소도 깨달음도 집착하여 갇힐 대상은 아니다. 오직 “본무경(本無鏡)”의 깨달음이 있을 뿐이다. “활안”, 살아 있는 눈은 주색을 가까이하지만, 그러나 정작 주색도 없다. 주색과 친하지만, 주색에 얽매임이 없다.
과연 주색을 즐기면서 주색과 무연할 수 있는 것인가? 다음 시편은 이 점을 증거해 준다.
佛與衆生吾不識 부처니 중생이니 그런 건 나는 몰라
年來宜作醉狂僧 근래엔 술 취한 미친 중이 되었네.
有時無事閑眺望 때때로 일 없이 한가하게 바라보니
遠山雲外碧層層 먼 산은 구름 밖에 층층이 푸르네.
— 〈偶吟 8〉 전문
《경허법어》에는 ‘작취(作醉, 술에 취하다)’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 작품이다. 1, 2행에서는 술 취한 미친 중의 행색이 느껴지지만 3, 4행에서는 선승의 심법이 배어 나온다. 광승과 선승이 둘이 아니라 연속성을 이룬다. 이미 모든 경계와 계율이 지워진 성속일여(聖俗一如)의 자재이다.
그렇다면 다시, ‘무비공’은 무엇이며 소는 무엇인가? 사람보다 크고 힘센 동물이지만 다스리면 함께 일하며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속성을 빌린 득의망상(得意忘像)의 방편인가? 소이건 콧구멍이건 그 실체의 있고 없음은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소에 갇히지 말아야 소를 알 수 있다는 것인가? 언구(言句)에 걸려서는 점점 더 덫에 빠질 뿐이기에 질문도 답변도 찾고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 그러나 역시 소는 소이고 또한 소가 아니라는 것인가? 이러한 모든 질문이 서로 엇섞이면서 소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다시 부서지고 했던 것이리라.
2. 공(空) 속으로 들어가는 소와 나
경허성우의 화지일성(㕦地一聲), 무비공(無鼻空)을 통해 소의 실재 앞으로 성큼 다가갈 수 있었다. 선정이 무르익은 절정의 시점에 경허는 무비공이란 말의 화살에 계제를 훌쩍 뛰어넘는 즉심성불(卽心成佛)의 깨우침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범부들은 이를 도무지 쫓아갈 수 없다. 그리하여 오도의 과정을 좀 더 느리게 순차적으로 설명해볼 수는 없을까? 이에 상응하는 것이 열 폭의 소와 동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그림과 제화를 통해 뭇사람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설명한 것이 바로 심우도이다. 심우도는 남조(南朝)의 보명 스님의 〈목우도(牧牛圖)〉와 임제 선사의 12대 법손 곽암(廓庵) 스님의 〈십우도〉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송나라 청거 선사의 〈십이목우도(十二牧牛圖)〉, 불국유백 스님의 〈팔목우도(八牧牛圖)〉 등이 있다.
보명 선사의 십우도는 ① 미목(未牧): 아직 억세고 사나운 야생의 소를 ② 초조(初調): 길들이기 시작하여 ③ 수제(受制): 목동의 말을 듣게 되고 ④ 회수(廻首): 고개를 돌려 목동을 돌이켜 보아 반조하는 마음에 이르게 되면서 ⑤ 순복(馴伏): 순순히 잘 따라 고삐조차 필요 없게 되어 ⑥ 무애(無碍): 소와 목동이 하나 되어 서로 장애가 되지 않고 자유롭게 되면서 ⑦ 임운(任運): 임의자재 하여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되는 상태에 이르러 ⑧ 상망(相忘): 무심하게 서로의 존재마저 잊어버리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⑨ 독조(獨照): 나 홀로 비추니 유희삼매의 경지를 향휴하고 ⑩ 쌍민(雙泯): 마침내 소와 내가 모두 사라진 최고의 견성에 이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편, 곽암의 십우도는 ① 심우(尋牛): 소를 찾아나서, ② 견적(見跡): 그 발자국을 보고, ③ 견우(見牛): 소를 직접 보게 되고 ④ 득우(得牛): 마침내 소를 붙잡아 ⑤ 목우(牧牛): 소를 길들이고 ⑥ 기우귀가(騎牛歸家): 잘 길든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후 ⑦ 도가망우(到家忘牛): 소의 생각 따위는 다 잊어버리고 ⑧ 인우구망(人牛俱忘): 급기야는 사람도 소도 다 함께 생각하지 않게 되는 상태에 이르러 ⑨ 반본환원(反本還源): 본래의 맑고 깨끗한 무위의 경지에 이르렀다가 ⑩ 입전수수(立廛垂手): 사립문을 열고 시정으로 나가 자유분방하게 속인들을 교화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보명과 곽암 선사의 ‘십우도’의 내용은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서로 근원 동일성을 지닌다. 차이점은 곽암의 심우도는 마지막에 입전수수(立廛垂手), 중생을 교화하러 저잣거리로 나가는 대승적 면모를 강조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보명 스님의 십우도에서는 검은 소가 길듦에 따라 하얀 소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데 반해, 곽암의 경우에서는 처음부터 흰 소로 시작된다. 이것은 전자가 수행 정진을 통한 성불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이미 부처인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는 것이 궁극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곽암 선사는 〈십우도〉 서문(序文)에서 “애초에 잃지 않았는데 어찌 찾을 필요 있겠는가. 깨달음을 등진 결과 멀어지게 되었구나. 티끌 세상을 향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네(從來不失 何用追尋 由背覺以成疎 在向塵而遂失).”라고 적고 있다.
한편, 보명의 〈목우도송〉에서 오도(悟道) 과정에 당도한 이후 소와 목동의 면모를 감상하면 다음과 같다.
白牛常在白雲中 흰 소는 흰 구름 속에 항상 머무르니
人自無心牛亦同 사람 마음 무심하고 소 또한 그러하다
月透白雲雲影白 밝은 달이 구름 뚫고 드러나니 구름 자취 엷어지고
白雲明月任西東 흰 구름 밝은 달 동쪽과 서쪽으로 오고 간다
— 〈相忘〉
①미목(未木)에서 사납게 뿔을 치켜들고 포효하던 소가 점차 길들어 소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어도 이치에서 벗어남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소는 목동이 필요 없고 목동 역시 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⑧상망(相忘)에 이르러 소와 목동이 서로서로 무심하게 자신의 일상을 깊이 향유하고 있다. 흰 소는 흰 구름처럼 지내고 사람 또한 저절로 한가롭다. 달과 구름이 오가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여기까지는 다른 상술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홀연 사람도 소도 사라지고 없다.
人牛不見杳無蹤 사람과 소 보이지 않고 자취 묘연하니
明月光寒萬象空 밝은 달빛이 차가우니 만상이 공(空)하다
若問其中端的意 누가 만일 그 가운데 분명한 뜻 묻는다면
野花芳草自叢叢 들꽃 향기로운 풀 절로 무성하다 하리.
— 〈雙泯〉
사람과 소는 어디로 갔을까? 그뿐만 아니라 만상이 텅 비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있음과 없음의 분별 자체가 무화된 단계이다.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 또한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또한 없는 것이니 바로 있고 없고가 융합된 까닭이다(佛性 非有非無 亦有亦無 有無合故).”(《열반경》) 그리하여 정작 눈 앞에는 목동이 바라보던 들꽃이 만발하고 소를 살찌우는 방초만 우거져 있다. 없음을 통한 있음이다. 진리는 이처럼 ‘있음/없음’의 분별지와 무관하게 살아간다.
물론, 이러한 속성은 곽암의 〈십우도송〉에서도 동일하다.
鞭索人牛盡屬空 채찍과 고삐 사람과 손, 속이 다 비어
碧天遼闊信難通 맑고 푸른 하늘 통하지 않음 있겠는가
紅爐焰上爭容雪 끓는 솥에 어찌 흰 눈이 남아 머물겠는가
到此方能合祖宗 이곳에 이르면 능히 조종에 계합되네
— 〈人牛俱忘〉
소를 찾아 나서는 ①심우(尋牛)에서 출발하여 소를 찾아 고삐를 매어 길들이고 다스려 마침내 소를 타고 허허롭게 집으로 돌아왔으나(騎牛歸家) 소를 잊고 더 나아가 사람도 잊는 계제에 이르고 있다. 소를 찾는 심우도는 정작 소와 소를 찾던 자신마저도 잊는 도정이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니 자성본원(自性本原)의 모습 또한 텅 빈 원상이라는 것이리라.
우리나라의 선사들 역시 적지 않은 심우도를 남겼다. 혹독한 수련을 거쳐 득도한 선법을 심우도를 통해 남긴 대표적인 선사로 경허, 만해, 무산 등이 꼽힌다. 특히 현대 시단에서 생명사상을 노래한 시인 김지하의 〈애린〉 연작 또한 심우도와의 병치 관계를 통해 개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물론 이들의 심우도는 보명과 곽암의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두 편의 심우도를 남긴 경허는 두 번째의 경우 첫 계제인 심우(尋牛)에서부터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어 주목을 환기한다.
可笑尋牛者 가히 우습구나, 소 찾는 이여.
騎牛更覓牛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네.
斜陽芳草路 볕 비낀 방초 길에
那事實悠悠 이 일이 실로 길고 길구나
— 경허 〈尋牛〉
소를 찾는 과정은 길고 지난하다. 그러나 소를 찾아 돌아오는 것은 큰 의미도 없지만 가능하지도 않다. 이미 소를 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찾아 헤매는 것이 이미 나의 가장 가까이에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심우도의 가르침을 이미 터득한 이후 다시 쓰는 심우도이다. 본래부터 잃지 않았는데 찾을 필요도 까닭도 없다.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요체이다. 이를 모르면 무명(無明)이고 이를 알면 광명이다.
이러한 이치에 대해 목우자(牧牛子)라는 법명을 쓴 보조국사 지눌의 〈보조국사수심결(普照國師修心訣)〉에서의 설명은 매우 자상하다.
答只汝自心 更作什 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오직 그대 자신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쓴다는 말인가. 만약 방편을 써서 다시 알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신의 눈을 보지 못하고 눈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신의 눈인데 어째서 다시 보려고 하는가. 만약 잃지 않았음을 알면 그것이 곧 눈을 보는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보지 못한다는 마음이 있겠는가. 자신의 신령스러운 앎도 역시 그와 같아 이미 자신의 마음인데 어째서 알려고 하는가.
눈으로 눈을 찾는 행위에 빗대어 본각진성(本覺眞性)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심우도의 소는 실재의 소이면서 실재의 소가 아니다. 마음의 소이고 소의 마음이다. 없는 소이기에 잊어버리기도 어려울 것이 없다.
무산오현(1932~2018)의 〈무산심우도〉의 인우구망(人牛俱忘) 편은 이 점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히히히 호호호호 으히히히 으허허허
하하하 으하하하 으이이이 이 흐흐흐
껄껄걸 으아으아이 우후후후 후이이
약 없는 마른 버짐이 온몸에 번진 거다
손으로 깊는 육갑 명씨 박힌 전생의 눈이다
한 생각 한 방망이로 부셔버린 삼천대계여
— 무산오현 〈인우구망(人牛俱忘)〉 전문
1연은 깨달은 자의 통쾌한 원초적 웃음소리이다. 이 점은 2연을 통해 확인된다. 온몸에 마른버짐이 생기고 눈은 “명씨”가 박히도록 시달리던 번뇌가 벼락처럼 부서지고 있다. “삼천대계”가 한 방망이에 사라지고 있다. 그리하여 소는 물론 사람도 없다. 소로 표상되는 객관이 사라지면서 사람으로 표상되는 주관적인 자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주객 분리 이전의 텅 빈 원상만이 남게 된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환원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없음의 공(空)이 남는다고 할 때 공은 또한 무엇일까? 승려이면서 우리 근대 시사의 서막을 열었던 만해 한용운의 심우도 〈인우구망(人牛俱忘)〉 편에서는 이 점을 날카롭게 적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非徒色空空亦空 색만 공이 아니라 공 또한 공이기에
已無塞處又無通 막힌 곳이 없었으니 통할 곳도 없구나.
纖塵不立依天劍 티끌 세상의 불립문자 천검(天劍)에 의지하니,
肯許千秋有祖宗 어찌 천추토록 조종(祖宗)이 있음을 허용하리.
색즉시공(色卽是空)을 넘어 공즉시공(空卽是空)이다. 공 또한 공이다. 앞의 공과 뒤의 공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모두 공이지만 뒤의 공은 공마저 없는 공이다. 본래 공이니 막힌 곳이 없고 통할 곳도 없다. 막힘과 통함의 분별 이전의 공이다. 따라서 “천추토록 조종(祖宗)이 있”을 리도 없다. 그리하여 소도 없고 나도 없고 없음도 없다. 없음에 대한 강박도 집착도 없는 경지이다. 이때 오직 거침없는 대자유만이 있다.
3. 진흙소의 인생론
심우도가 소도 없고 나도 없고 없음도 없음을 향한 여정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모든 것이 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공즉시색과 색즉시공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를 노래하는 것은 더욱 자유롭다. 소는 실재이면서도 허구이고 자성(自性)이면서도 가상이기 때문이다. 선사들의 선시에 무쇠소, 진흙소 등이 변주되어 등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鐵牛無角涉虛空 뿔 없는 무쇠소가 허공에 올라
磕破三天帝釋宮 삼천의 제석궁을 부수어 깨트리네
翻身却下閻浮界 몸을 날려 염부계로 돌아와서는
擺尾謠頭雪嶺風 꼬리치고 머리 흔들며 눈 봉우리에 한 바람이라
— 소요태능 〈示彦法師〉
“무쇠소”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무쇠소는 허공으로 날아오르기도 하고 “삼천의 제석궁을 부수어 깨트리”기도 한다. 아득한 전설의 수미산 저쪽에서 이쪽까지 오가던 “무쇠소”가 “염부계”로 돌아와서야 “꼬리치고 머리 흔들”어 “눈 봉우리에” 바람을 일으킨다. 시상과 제재의 거대한 규모에 놀라게 된다. 《벽암록》에 따르면 무쇠소는 옛날 우왕이 황하의 범람을 막기 위해 만든 것으로 머리는 하남성, 꼬리는 하북성에 이르고 위로는 삼십삼천 아래로는 나락에 이를 만큼 거대했다고 한다. 이 무쇠소가 선사들의 선문답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데,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천지에 가득해서 가고 올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진여자성을 깨우치고 품에 안는 도량이 수행의 궁극이라는 암시이다. 이처럼 ‘무쇠소’의 도량을 갖추면 진흙소는 마음껏 만들고 깨우고 부리고 향유할 수 있다.
井底泥牛吼月 우물 밑에서 진흙소가 달을 향해 울고
雲間木馬嘶風 구름 사이 목마 울음 바람에 섞이네
把斷乾坤世界 이 하늘 이 땅을 움켜잡나니
誰分南北西東 누가 남북동서를 가름하는가.
《벽암록》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의 작품이다. “진흙소”가 “우물 밑에” 잠겨 있다. “진흙소”는 물론 우물 속에 있으면 전신이 소멸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달을 향해 울고” 있다. “남북동서를 가름”하는 분별을 넘어서면 없음의 있음, 있고 없음을 넘어선 있음을 구가하게 된다. 그리하여 “진흙소”의 울음과 “목마 울음”을 모두 감지할 수 있다.
눈사람이 냇물이 되어 흘러갈 때 눈사람이 흘러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사막의 모래사람이 바람에 흩어질 때 모래사람이 사막으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진흙소가 물속에 녹아도 진흙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진흙소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감각적 시각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다. 마치 진리를 보고자 하고 듣고자 하는 자는 감각적인 눈을 감고 귀를 닫아야 하는 이치와 같다.
海底泥牛含月走 바다 밑의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
巖前石虎抱兒眠 바위 앞의 돌호랑이 새끼 호랑이 안고 졸고 있다.
鐵蛇鑽入金剛眼 쇠 뱀은 금강안을 뚫고 들어갔는데
崑崙騎象鷺絲牽 곤륜산이 코끼리를 타고, 해오라기가 끌고 있다.
중국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진흙소”가 “달을 물고 달아나”는 모습을 보는 마음의 눈이 뜨이자 “돌호랑이”가 “새끼 호랑이”를 안고“쇠뱀”이 “금강안”으로 뚫고 나가는 모습이 모두 보인다. 모든 무생물이 제각기 서로 내적으로 상호 작용하고 활동하고 꿈꾸는 활유의 실존을 살고 있었다.
본각진성(本覺眞性)의 높은 경지에 오른 우리나라 대선사들의 게송에서도 진흙소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水上泥牛耕月色 물 위의 진흙소 달빛을 갈고
雲中木馬掣風光 구름 속의 나무말이 풍경을 끌고 가네
威音古調虛空骨 옛 부처의 노래는 허공의 뼈다귀요
孤鶴一聲天外長 외로운 학 울음소리 하늘 밖으로 퍼지네
— 逍遙太能 〈宗門曲〉
소요태능(1562~1649)의 “진흙소”는 “달빛”의 밭을 “갈고” 있다. 달빛이 비친 잔잔한 수면 풍경이 마치 새하얀 빛의 밭처럼 느껴진다. 하염없이 적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밤하늘에는 구름이 흐른다. 그 흐르는 속도와 질감은 “나무말”이 끌고 가는 것 같다. “진흙소”를 발견한 시선에 “나무말”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허공에 흩어져 있는 “부처의 노래”를 듣고 감상하는 활연한 경지이다.
휴정의 임종게(臨終偈) 역시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서 읽힌다.
千計萬思量 생각하고 꾀하던 모든 것들
紅爐一點雪 화롯불에 떨어진 한 점 눈이로다
泥牛水上行 진흙으로 만든 소가 물 위로 가니
大地虛空裂 대지와 허공이 꺼져버렸네
— 휴정 〈임종게〉
“생각하고 꾀하던 모든 것들/ 화롯불에 떨어진 한 점 눈”이 되었다는 것은 의혹이나 번뇌가 일시에 사라진 오도의 찰나로 해석된다. 오도의 활연 앞에 “진흙으로 만든 소가 물 위로 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진흙소는 물 위로 걸어도 진흙소이다. 마치 파도가 부서져 바다가 되어도 파도가 잠시 가라앉은 바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현상은 수시변통하여도 본질은 지속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 대별되지만 연속성을 이루는 것과 같다. 휴정의 다음 시편은 “생각하고 꾀하는 모든 것들/ 화롯불에 떨어진 한 점 눈”이 된 지점에서 만나는 삶과 죽음의 관계론이다.
生也一片浮雲起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니
浮雲自體本無實 구름이야 본래 실체가 없는 것
生死去來亦如然 살고 죽고 오고 감이 또한 그러하다오
삶과 죽음이 모두 “한 조각 구름”으로 귀결되고 환원된다.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면 삶이고 스러지면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름은 실체가 없다. 구름이란 물이 햇빛에 증발되어 생기는 수증기가 여타의 물질과 응결하여 미세한 물방울로 떠 있는 안개이다. 구름은 수증기가 햇빛에 걷히면 없어지고 다시 모여 포화되면 자욱한 안개의 형상을 한다. 다만 태양광의 산란 정도에 따라 빛깔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 인생의 절대 가치인 삶과 죽음이 바로 이처럼 일어나고 스러지는 뜬구름이라는 인식이다. “살고 죽고 오고 감”의 인생론이 모두 이러하다. “물 위의 진흙소 달빛을” 갈아엎는 이치를 통찰하면 인생사 모두가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닌 한갓 아지랑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된다.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 무산오현 〈아지랑이〉 전문
무산오현의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백척간두에 있다.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절벽의 정점이다. 이곳은 살 수도 없지만 죽을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극점이다. 삶과 죽음이 무화되는 영도의 지점이다. 하이데거는 ‘본래적 실존’을 자각하는 지점은 ‘비본래적 실존’의 일상을 규정하고 있는 모든 관계와 의미가 무화된 ‘무’의 지점이라고 설파한다. ‘무’의 지점에서 존재자는 본래의 자신의 존재성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산오현은 삶과 죽음이 무화되는 영도의 지점에서 오롯이 다가오는 “아지랑이”를 목도한 것이다. 삶과 죽음이 다한 지점에서 현현한 본래적 실존의 정체가 “아지랑이”였던 것이다. 수행자로서 “내 평생” 꿈꾸고 추구해온 것이 바로 한갓 “아지랑이”였다. 이것은 앞에서 인용한 삶과 죽음, 오고 감이 모두 실체 없이 떠도는 ‘구름’(浮雲自體本無實)이라는 휴정의 게송과 상통한다. ‘구름’ ‘아지랑이’ 등으로 표상되는 수시변통(隨時變通)하는 ‘있는 없음’ 혹은 ‘없는 있음’의 공적(空寂)이 인생의 근원이요 본질이라는 선적 일깨움이다.
4. 맺음말
목우(牧牛)는 소를 다스리고 나를 기르는 여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 소는 없다. 소는 내 마음의 소였다. 그래서 소는 자유롭게 무쇠소, 진흙소 등의 가우(假牛)로 변주될 수 있다. 소를 찾고 다스리는 여정은 본래의 나를 찾고 수행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나 역시 소처럼 본래 없는 존재이다. 어디에도 자성(自性)은 없고 원환의 공(空)만이 있을 뿐이다. 모이고 흩어지는 구름과 아지랑이로 표상되는 공적(空寂)일 뿐이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모든 존재론과 인생론은 본래무일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목우에 대해 언급한 장광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를 위무하기 위함이던가. 일찍이 함허당(1376~1433)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부처는 색과 성에 있지 않고
색과 성을 떠나 있지도 않나니
색과 성으로써 부처를 구하여도 볼 수 없으며
색과 성을 떠나서 부처를 구하여도 또한 볼 수 없다.
佛不在色聲
無不離色聲
卽色聲求佛
亦不得見
離色聲求佛
亦不得見
홍용희 h2002@khcu.ac.kr
문학평론가.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평론) 등단. 저서로 《김지하문학연구》 《꽃과 어둠의 산조》 《한국문화와 예술적 상상력》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편운문학상, 애지문학상, 시와시학상,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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