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어록(五家語錄) 동산록
동산 양개 선사
1. 행록
스님의 휘(諱)는 양개(良价)이며, 회계(會稽) 유씨(兪氏) 자손이다.
어린 나이에 스승을 따라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다가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는 대목에서 홀연히 얼굴을 만지며 스승에게 물었다.
"저에게는 눈.귀.코.혀 등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반야심경」에선 '없다'고 하였습니까?"
그 스승은 깜짝 놀라 기이하게 여기며,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라고 하더니 즉시 오설산(五洩山)으로 가서 묵선사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가르쳐 주었다. 21세에 숭산(嵩山)에 가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사방으로 유람하면서 먼저 남전(南泉: 748∼834)스님을 배알하였다. 마침 마조(馬祖: 709∼788)스님의 제삿날이어서 재(齋)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남전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내일 마조스님의 재를 지내는데 스님이 오실는지 모르겠구나."
대중이 모두 대꾸가 없자 동산스님이 나서서 대꾸하였다.
"도반을 기대하신다면 오실 것입니다."
"이 사람이 후배이긴 하지만 꽤 가르쳐 볼 만하군."
"스님께서는 양민을 짓눌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음으로는 위산( 山: 771∼853)스님을 참례하고 물었다.
"지난번 소문을 들으니 남양 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 ?∼775)께선 무정(無情)도 설법을 한다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저는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산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가?"
"기억합니다."
"그럼 우선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게."
그리하여 동산스님은 이야기를 소개하게 되었다.
"어떤 스님이 묻기를,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라고 하였더니 국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는 무정(無情)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도 설법을 할 줄 안다는 말입니까?'
'활활 타는 불꽃처럼 쉴 틈없이 설법한다.'
'그렇다면 저는 어째서 듣지를 못합니까?'
'그대 스스로 듣지 못할 뿐이니 그것을 듣는 자들에게 방해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듣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듣는다.'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나는 듣지 못하지.'
'스님께서도 듣질 못하였는데 어떻게 무정이 설법할 줄 안다고 하시는지요.'
'내가 듣지 못해서이지. 내가 듣는다면 모든 성인과 같아져서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생에게는 들을 자격이 없겠군요.'
'나는 중생을 위해서 설법을 하지 성인을 위해서 설법하진 않는다.'
'중생들이 들은 뒤엔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중생이 아니지.'
'무정이 설법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경전에 근거하셨는지요?'
'분명하지. 경전에 근거하지 않은 말은 수행자가 논할 바가 아니다. 보지도 못하였는가. 「화엄경」에서 <세계가 말을 하고 중생이 말을 하며 삼세 일체가 설법한다>고 했던 것을.'"
동산스님이 이야기를 끝내자 위산스님은 말하였다.
"여기 내게도 있긴 하네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 뿐이다."
"저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위산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하였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부모가 낳아주신 이 입으로는 끝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지 못한다."
"스님과 함께 도를 흠모하던 분이 있습니까?"
"여기서 풍릉( 陵) 유현(攸縣)으로 가면 석실(石室)이 죽 이어져 있는데 운암도인(雲岩道人)이란 분이 있다. 풀섶을 헤치고 바람을 바라볼 수 있다면 반드시 그대에게 소중한 분이 될걸세."
"어떤 분이신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가 한번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스님을 받들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하기에 이렇게 대꾸하였네."
'당장에라도 번뇌(煩惱)를 끊기만 하면 되지.'
'그래도 스님의 종지에 어긋나지 않을는지요?'
'무엇보다도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말라.'"
동산스님은 드디어 위산스님을 하직하고 곧장 운암스님에게 가서 앞의 이야기를 다 하고서 바로 물었다.
"무정(無情)의 설법을 어떤 사람이 듣는지요?"
"무정이 듣지."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내가 듣는다면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저는 무엇 때문에 듣질 못합니까?"
운암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말하였다.
"듣느냐?"
"듣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설법도 듣질 못하는데 하물며 무정의 설법을 어찌 듣겠느냐."
"무정의 설법은 어느 경전의 가르침에 해당하는지요?"
"보지도 못하였는가.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물과 새와 나무숲이 모두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한다'라고 했던 말을."
동산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게송을 지었다.
정말 신통하구나 정말 신통해
무정의 설법은 불가사의하다네
귀로 들으면 끝내 알기 어렵고
눈으로 들어야만 알 수 있으니.
也大奇也大奇 無情說法不思議
若將耳聽終難會 眼處聞聲方得知
동산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저는 남은 습기(習氣)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이제껏 무얼 해왔는냐?"
"불법(聖諦)이라 해도 닦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쁨을 맛보았느냐?"
"기쁨이 없지는 않습니다. 마치 쓰레기더미에서 한 알의 명주(明珠)를 얻은 것 같습니다."
동산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서로 보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도록 하게."
"보고 묻는 중입니다."
"그래, 그대에게 무어라고 하더냐."
운암스님이 짚신을 만드는데 동산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서 말하였다.
"스님의 눈동자를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주려느냐?"
"제게 없어서입니다."
"설사 있게 된다 해도 어디다 붙이겠느냐?"
스님이 말이 없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눈동자를 구걸하는 것이 눈이더냐?"
"눈은 아닙니다."
운암스님은 별안간 악(喝)! 하고는 나가버렸다.
동산스님이 운암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스님과 이별하긴 합니다만 갈 곳을 정하진 못했습니다."
"호남으로 가지 않느냐?"
"아닙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조만간에 되돌아오게."
"스님이 안주처가 있게 되면 오겠습니다."
"여기서 일단 헤어지고 나면 만나기 어려울걸세."
"만나지 않기가 어려울 겁니다."
떠나는 차에 다시 물었다.
"돌아가신 뒤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스님의 참모습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꾸할까요?"
운암스님은 한참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저 이것뿐이라네."
동산스님이 잠자코 있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양개화상! 이 깨치는 일은 정말로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동산스님은 그때까지도 의심을 하다가 그 뒤 물을 건너면서 그림자를 보고 앞의 종지를 크게 깨닫고는 게송을 지었다.
남에게서 찾는 일 절대 조심할지니
자기와는 점점 더 아득해질 뿐이다.
내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 분을 뵈오리
그는 지금 바로 나이나
나는 지금 그가 아니라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여여(如如)에 계합하리라.
切忌從他覓 與我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會 方得契如如
동산스님이 뒷날 운암스님의 초상화에 공양 올리던 차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승께선 '이것뿐이다'라고 하셨다던데 바로 이것입니까?"
"그렇다."
"그 뜻이 무엇인지요?"
"당시엔 나도 스승의 의도를 잘못 알 뻔하였다."
"운암스님께서는 알고 있었습니까?"
"몰랐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줄 알았겠으며, 알고 있었다면 어찌 이처럼 말하려 하였겠나."
장경 혜릉(長慶 慧稜: 854∼932)스님은 말하였다.
"이미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말했으랴."
다시 말하였다.
"자식을 길러보아야만 부모 사랑을 알게 된다."
동산스님이 운암스님의 제삿날에 재(齋)를 올리는데 마침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운암스님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는지요?"
"거기 있긴 했으나 가르침을 받진 못했다."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무엇하러 재를 올리십니까?"
"어떻게 감히 운암스님을 등지겠는가?"
"스님께선 처음에 남전스님을 뵈었는데 어째서 운암스님에게 재를 올려주십니까?"
"나는 스님의 불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에게 법을 설명해주지 않은 점을 중히 여길 뿐이다."
"스님께서는 스승을 위해 재를 올릴 때, 스승을 긍정하십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하지 않는다."
"어째서 완전히 긍정하지 않으십니까?"
"완전히 긍정한다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동산스님은 당(唐) 대중(大中: 8468∼859) 말년부터 신풍산(新豊山)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그 뒤 예장(豫章) 고안(高安)의 동산(洞山)에서 성대히 교화를 폈다. 방편으로 5위(五位)를 열어 3근(三根)을 훌륭하게 이끌었으며, 일음(一音)을 크게 천양하여 만품(萬品)을 널리 교화하였다. 지혜보검을 쑥 뽑아 빽빽한 견해 숲을 가지 쳤으며, 조화로운 음성을 널리 펴서 여러 갈래 천착을 끊어주셨다.
다시 조산(曹山)스님을 만나 정확한 종지를 깊이 밝히고 훌륭한 법을 오묘하게 폈으니, 도를 군신(君臣)의 비유로 회합하였고 편위(偏位)와 정위(正位)를 아울러 쓰셨다.
이로부터 동산의 현묘한 가풍이 천하에 퍼지게 되었으므로 제방의 종장(宗匠)들이 모두 추존(推尊)하여 '조동종(曹洞宗)'이라 하였던 것이다.
2. 감변 . 시중
1.
운암스님이 시중(示衆)하였다.
"어떤 집 아이는 물었다 하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동산스님이 나오더니 질문하였다.
"그의 집에는 상당한 경론들이 있겠군요."
"한 글자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 수 있습니까?"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는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을 하면 도리어 말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원주(院主)가 석실(石室)*에 갔다오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석실로 들어가더니 어찌 그리 빨리 돌아오느냐?"
원주가 대꾸가 없자 동산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차지한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운암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는 다시 가서 무엇 하겠느냐?"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인정을 끊어서는 안됩니다."
운암스님이 한 비구니에게 물었다.
"그대의 아버지는 살아계시는가?"
"계십니다."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가?"
"팔십입니다."
"그대에게는 나이 팔십이 아닌 아버지가 있는데 알겠느냐?"
"아마도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닐런지요."
"오히려 손자뻘이지."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니라 해도 손자뻘이지."
2.
동사스님이 제방을 돌아다니다가 노조(魯祖: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참례하였다. 절하고 일어나서 곁에 섰다가 이내 나와서 다시 들어가자 노조스님이 말하였다.
"이럴 뿐이며, 이럴 뿐이니, 그러므로 이러하다."
스님이 말하였다.
"그래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걸요."
"어떻게 해야만 그대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스님은 절하고 여러 달을 시봉(侍奉)하였다.
한 스님이 노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말 없는 말'입니까?"
"그대의 입은 어디 있느냐?"
"입이 없습니다."
"무얼 가지고 밥을 먹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동산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그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 무슨 밥을 먹겠습니까?"
3.
동산스님이 남원(南源: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참례하고 법당에 올라갔더니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전에 만났던 사람이군."
동산스님은 바로 내려가 버렸다. 다음날 다시 올라가 물었다.
"어제 벌써 스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만 언제 저와 만났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마음 마음이 쉴 틈없이 성품바다로 흘러들어간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습니다."
동산스님이 하직을 하자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을 많이 배워 널리 이익되게 하라."
"불법을 많이 배우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어떤 것이 널리 이익을 짓는 것입니까?"
"무엇 하나도 어기지 말라."
4.
동산스님이 서울에 도착하여 흥평(興平: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에게 절하였더니 흥평스님이 말하였다.
"늙고 썩은 몸에 절하지 말라."
"저는 늙거나 썩지 않은 것에다 절하였습니다. "
"늙고 썩지 않은 자는 절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동산스님이 되물었다.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바로 그대 마음이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의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목각인형에게나 물어보게."
"저에게 한마디 말이 있는데, 모든 부처님의 입을 빌리지 않습니다."
"어디 말해보게."
"제가 아닙니다."
동산스님이 하직을 하자 흥평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흐름을 따라 정처없이 가렵니다."
"법신(法身)이 흐름을 따르느냐, 보신(報身)이 흐름을 따르느냐?"
"결코 그런 식으로 이해하진 않습니다."
그러자 흥평스님은 손뼉을 쳤다.
보복 종전(保福從展: ?∼928)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그리고는 달리 말하였다.
"몇 사람이나 찾을까."
5.
동산스님이 밀사백(密師伯: 神山僧密의 존칭)과 함께 백암(百巖)스님을 참례하였더니 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호남에서 옵니다."
"그곳 관찰사(觀察使)의 성은 무엇이던가?"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어라 하던가?"
"이름도 모릅니다."
"그래도 정사(正事)는 보던가?"
"그에게는 낭막(郎幕: 부하관료)이 있습니다.
"출입도 하던가?"
"출입은 하지 않습니다."
"왜 출입하질 않지?"
동산스님은 소매를 털고 바로 나와버렸다.
백암스님은 다음날 아침 큰방에 들어가 두 스님을 부르더니 말하였다.
"어제 그대들을 상대한 문답이 서로 계합하지 못하여 하룻밤 내내 불안했다. 지금 그대들에게 다시 한 마디 청하네. 만일 내 뜻과 맞는다면 바로 죽을 끓여 먹으며 도반이 되어 여름을 지내겠네."
"스님께서는 질문을 하십시오."
"왜 출입을 하지 않는가?"
"너무 귀한 분이기 때문이지요."
백암스님은 이에 죽을 끓여 먹으며 함께 여름 한철을 지냈다.
천동 함걸(天童咸傑: 1118∼1186)스님은 말하였다.
"명암이 투합하여 팔면이 영롱하여 그 자리를 범하지 않고 몸 돌릴 길 있으니 조동(曹洞) 문하에서는 구경거리가 되겠으나, 가령 임제스님의 아손이었더라면 방망이가 부러진다 해도 놓아주지 않았으리라. 당시에 그가 '성을 모른다'고 했을 때 등허리에 한 방을 날려 여기에서 부딪쳐 몸을 바꿔 깨쳤더라면 죽을 끓여 맞이했을 뿐 아니라 높은 스님을 모시는 밝은 창문 아래 모셨으리라. 알겠느냐, 알겠어!"
"악! 漆桶(漆桶)아, 법당에 가서 참례하거라."
6.
동산스님이 밀사백과 함께 용산(龍山: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찾아가 문안을 드렸더니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산에는 길이 없는데 그대들은 어디로 왔느냐?"
"길이 없다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스님께선 어디로부터 들어 오셨는지요?"
"나는 운수(雲水) 따라 오지 않았다."
"스님께서 이 산에 머무신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요?"
"세월은 신경쓰지 않는다."
"스님께서 먼저 계셨습니까, 이 산이 먼저 있었습니까?"
"모르겠다."
"어째서 모르십니까?"
"나는 인간. 천상으로부터 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스님께선 어떤 도리를 얻으셨기에 이 산에 안주하십니까?"
"나는 진흙소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껏 소식이 없다."
동산스님은 비로소 몸가짐을 가다듬고 절하였다.
7.
동산스님이 행각할 때 마침 한 관리가 말하였다.
"삼조(三祖:승찬)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 제가 주석을 낼까 합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고 「신심명」에서 말하였는데 어찌 주를 내려 하느냐."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주를 내지 않겠습니다."
8.
동산스님이 과거에 행각할 때 길에서 물을 걸머진 한 노파를 만났었다. 스님이 마실 물을 찾았더니 그 노파가 말하였다.
"물을 마시는 것은 무방합니다만 제게 질문이 하나 있으니 먼저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 물에 티끌이 얼마나 있습니까?"
"티끌이 없습니다."
노파는 말하였다.
"내가 걸머진 물을 더럽히지 말고 가십시오."
9.
동산스님이 늑담( 潭)에 있으면서 초수좌(初首座)가 하는 말을 들었다.
"정말 신통하다. 정말 신통해. 불가사의하도다. 부처님 세계여, 도의 세계여!"
그러자 스님은 질문하였다.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는 묻지 않겠소.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말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초수좌는 한참 말이 없더니 대꾸를 못하였다.
동산스님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빨리 말하지 않느냐?"
"언쟁해서는 안됩니다."
"하라는 말도 못하면서 무슨 언쟁은 안된다고 하는가."
초수좌가 대꾸가 없자 스님이 말하였다.
"부처다 도다 하는 것은 모두가 언어이니, 교(敎)를 인용해 보지 않겠는가?"
"교에서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뜻(意)을 체득하고서는 말을 잊는다 하였네."
"그래도 교의(敎意)를 가지고 마음에서 병을 만들고 있군요."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설명하는 병은 어느 정도이더냐?"
초수좌는 또 대꾸가 없더니 다음날 혼연히 죽어버렸다. 그리하여 스님은 당시 '질문으로 수좌를 죽인 양개(良价)'라고 불리웠다.
10.
동산스님이 신산 밀사백(神山密師伯)과 물을 건너게 되었을 때 물었다.
"어떻게 물을 건너야겠습니까?"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야지."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대는 어떻게 건너려는가?"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지요."
다른 본(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동산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면서 말하였다.
"발을 잘못 딛지 마십시오."
"잘못 디디면 건너지 못할걸세."
"잘못 디디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는 것이지."
동산스님이 하루는 신산스님과 함께 차밭에서 김을 매다가 괭이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저는 오늘 기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력이 없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기력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였군요."
동산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가다가 홀연히 흰 토끼가 달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신산스님이 말하였다.
"잘 생겼군."
"어떤데요?"
"서민이 재상에게 절이라도 하는 것 같군."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
"대대로 벼슬을 하다가 잠시 권세를 잃은 것 같습니다."
신산스님이 바늘을 들고 있는데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무얼 하십니까?"
"바느질을 한다네."
"바느질하는 일은 어찌해야 합니까?"
"땀땀이 서로 같아야 하네."
"20년을 같이 다녔는데도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어찌 이렇게 공부하십니까?"
"그대라면 어찌 하겠는가?"
"땅에서 불이 일어나는 듯한 도리입니다."
신산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지식(知識)으로 알 수 있는 것치고 해보지 않은 것이 없네. 그러니 '곧장 끊는 경지(徑裁處)'에 대해서는 스님이 한 마디 해 주시게."
"사형께서는 어떻게 공부를 하려 하십니까?"
신산스님은 여기에서 단박 깨닫고 일상과는 다른 응대를 하였다.
그 뒤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동산스님이 먼저 건넌 뒤 외나무다리를 들고서 말하였다.
"건너 오십시오."
신산스님이 "양개화상!" 하고 부르자 스님은 외나무다리를 놓아주었다.
동산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의 절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안에 심성(心性)을 설하는 자가 있답니다."
신산스님은 말하였다.
"누굴까?"
"사형께 질문 한 번 받고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마음을 설명하고 성품을 설하는 사람이라니 누구지?"
"죽음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11.
동산스님이 설봉 의존(雪峯義尊: 822∼908)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천태산(天台山)에서 옵니다."
"지자(智者)스님을 뵈었느냐?"
"제가 무쇠방망이 맞을 짓을 했습니다."
설봉스님이 올라가 문안을 드리자 동산스님은 말하였다.
"문 안에 들어오면 무슨 말이 있어야지. 들어왔다고만 해서야 되겠느냐?"
"저는 입이 없습니다."
"입 없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에게 눈을 돌려다오."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은 앞의 말에 달리 말하였다.
"입 생긴 뒤에 말씀드리겠으니 기다리십시오."
장경 혜룡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설봉스님이 땔감을 운반하던 차에 동산스님의 면전에 한 단을 던지자 스님이 말하였다.
"무게가 얼마나 되던가?"
"온누리 사람이 들어도 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던졌는가?"
설봉스님은 말이 없었다.
동산스님이 부채 위에 불(佛)자를 쓰자 운암스님이 보고 거기다 불(不)자를 썼다. 스님이 다시 아닐 비(非)자를 붙였더니 설봉스님이 보고는 한꺼번에 지워버렸다.
흥화 존장(興化存奬: 830∼88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내가 너만 못하다."
백양 순(白楊順)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동산스님이었다면 설봉스님에게 '너는 나의 권속이 아니다'라고 말했으리라."
천발 원(天鉢元)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과 운안스님은 평지에다 공연히 무더기를 일으켰으며, 설봉스님은 이 일로 지혜가 자라났다."
설봉스님이 공양주(飯頭)가 되어 쌀을 이는데 동산스님이 물었다.
"모래를 일어 쌀을 걸러내느냐, 쌀을 일어 모래를 걸러내느냐?"
"모래와 쌀, 양쪽 다 걸러냅니다."
"대중은 무엇을 먹으라고."
설봉스님이 드디어 쌀 항아리를 엎어버리자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의 인연을 보건대 덕산(德山)에 있어야만 하겠군."
낭야 혜각(낭야慧覺)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의 이런 행동은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던져버리고 산을 찾아 신 오얏을 따는 격이다."
천동 정각(天童正覺: 1091∼1157)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은 걸음마다 높이 오를 줄만 알았고 짚신 뒤꿈치가 끊기는 줄은 몰랐다. 만일 정(正)과 편(偏)이 제대로 구르고 박자와 곡조가 동시에 진행되었다면 자연히 말과 기상이 서로 합하고 부자(父子)가 투합했으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이 설봉스님을 긍정하지 않은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만 리에 구름 없으나 하늘에 티끌 있고
푸른 연못 거울 같으나 달이 오기 어렵네."
설두 종(雪竇宗)스님은 말하였다.
"곧은 나무에 난봉(鸞鳳)이 깃들지 않는데
금침(金針)은 이미 원앙을 수놓았네
만일 신풍(新豊)의 노인이 아니었다면
바로 빙소와해를 당했으리."
동산스님이 하루는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고 왔느냐?"
"물통(槽)을 찍어서 만들고 왔습니다."
"몇 개의 도끼로 찍어서 완성하였느냐?"
"하나로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이쪽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그대로 손 볼 곳이 없군요."
"그래도 이쪽의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설봉스님은 그만두었다.
분양 선소(汾陽善昭: 947∼1024)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저라면 벌써 궁색해졌을텐데요."
설봉스님이 하직하자 동산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영중(嶺中)으로 돌아가렵니다."
"올 때는 어느 길로 왔었지?"
"비원령(飛猿嶺)을 따라 왔습니다."
"지금은 어느 길을 따라 되돌아가려는가?"
"비원령을 따라 가렵니다."
"비원령을 따라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도 아는가?"
"모르겠는데요."
"어째서 모르는가?"
"그에게 면목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대가 모른다면 어떻게 면목이 없는 줄 아는가?"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마음이 덩벙대는 자는 망한다."
12.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이 찾아와 뵙자 동산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취미(翠微)스님에게서 옵니다."
"그는 어떤 법문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더냐?"
"취미스님이 나한(羅漢)에게 공양을 하기에 저는 물었습니다. '나한에게 공양을 하면 나한이 온답니까?' 하니, 스님은 '그대가 매일 먹는 것은 그럼 무었이더냐?'하였습니다.
스님은 말하였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더냐?"
"그렇습니다."
"대선지식을 헛되게 참례하지 않고 왔구나."
동산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이냐?"
"도응입니다."
"향상(向上) 자리에서 다시 말해보라."
"향상에서 도응이라 이름하지 못합니다."
"내가 도오(道吾)스님께 대답했던 말과 똑같구나."
운거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화상아! 그대가 뒷날 띠풀집을 짓고 제자들을 맞이할 때 홀연히 누가 질문하면 어떻게 대꾸하려느냐.?
"제가 잘못했습니다."
동산스님이 하루는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사대화상(思大和尙)이 왜국(倭國)에 태어나 국왕이 되었다던데 정말 그런가?"
"만일 사대(思大)스님이 맞다면, 부처라 해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은 그렇다고 긍정하였다.
동산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을 둘러보고 옵니다."
"그 산은 머물만 하더냐?"
"머물만 하질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도성 안이 모조리 그대에게 점령되겠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들어갈 길을 얻었군."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겠는가."
"'길이 있다면 스님과 사이에 산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뒷날 천 사람 만 사람이 붙들어도 머물지 않으리라."
동산스님이 운거스님과 물을 건너던 차에 물었다.
"물이 얼마나 깊은가?"
"젖지 않을 정도입니다."
"덜렁대는 사람이군."
"스님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마르지 않을 정도라네."
오조 법연(五祖法演: ?∼1104)스님은 말하였다.
"두 사람의 이 대화에 우열이 있느냐? 산승은 오늘 팔을 휘젖고 가면서 여러분을 위해 설파하겠다.
물을 건넘에 '젖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창고에 진주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격이며, 물을 건넘에 '마르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꽂을 송곳조차 없는데 무슨 가난과 추위를 말하겠는가.*마른길, 젖은 길 양쪽 다 관계치 말고 그저 녹수청산(綠水靑山)에 맡기게."
운거스님이 하루는 일을 하다가 잘못하여 지렁이를 잘라 죽였더니 동산스님이 "적( )!"하고 호통을 쳤다.
운거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조(二祖)는 업주(業州)로 갔다는데 어떠냐?"
운거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동산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대천제인(大闡提人: 부처될 종자가 없는 중생)은 5역죄(五逆罪)를 지었는데 효도고 봉양이고가 어디 있겠느냐."
"비로소 효도하고 봉양하게 되었군요."
동산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과거에 남전(南泉)스님이 「彌勒下生經(미륵하생경)」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묻기를, '미륵은 언제 하생(下生)합니까?'했더니, 그는 '현재 도솔천궁에 계시어 미래세에 하생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남전스님은 '천상에도 미륵은 없고, 지하에도 미륵은 없다'라고 말하였다."
운거스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질문하였다.
"천상에도 미륵이 없고 지하에도 미륵이 없다니 그렇다면 누가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단 말입니까?"
동산스님이 질문을 받자 선상이 진동하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말하였다.
"도옹화상! 내가 운암스님에게 있으면서 그분께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화로가 진동하듯 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한 번 질문을 받으니 온몸에 땀이 흐르는구나."
그 뒤에 운거스님이 삼봉(三峯)에 암자를 지었다. 열흘이 지나도 큰 방에 오지 않자 동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요즈음 어째서 공양(齊)에 오질 않는가?"
"매일같이 천신(天神)이 음식을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대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이런 견해를 짓고 있다니 그대는 느지막하게 찾아오게."
운거스님이 느지막하게 찾아오자 스님이 불렀다.
"도응 암주(道膺庵主)!"
"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것이 무엇일까?"
운거스님이 암자로 되돌아가 고요하게 편안히 앉아 있었더니, 이로부터 천신이 찾아도 끝내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사흘 지나고서야 끊겼다.
동산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느냐?"
"장(醬)을 담금니다."
"소금은 얼마나 넣느냐?"
"저으면서 넣습니다."
"어떤 맛을 만들지?"
"딱 되었습니다."
13.
소산(疏山)스님이 찾아왔는데 마침 조참(早參) 때여서 나오더니 동산스님께 물었다.
"언어 이전의 도리를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아무 것도 긍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응낙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력을 들여야 옳습니까?"
"그대는 지금 공력을 들이고 있는가?"
"공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꺼릴 것이 없겠지요."
하루는 동산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 일을 알고 싶은가?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듯 해야만 그것에 계합하게 되리라."
소산스님이 물었다.
"무엇에도 어긋나지 않는 경지라면 어떻습니까?"
"화상! 이는 '공들여 닦는'쪽의 일이다. 다행히도 '공부 없는 공부'가 있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묻질 않느냐?"
"공부 없는 공부라면 저쪽 사람 일 아니겠습니까?"
"그대의 이런 질문을 비웃는 사람이 매우 많다."
"그렇다면 더 아득히 멀어지겠습니다."
"멀기도 하고( 然) 멀지 않기도 하며(非 然) 멀지 않음도 아니다(非不然)."
"어떤 것이 먼 것입니까?"
"저쪽 사람을 멀다고 하면 안되지."
"어떤 것이 멀지 않은 것입니까?"
"끝날 곳이 없겠군."
동산스님께서 소산스님에게 물으셨다.
"공겁(空劫)엔 사람 사는 집이 없었다 하니 이는 어떤 사람이 안주하는 곳이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생각(意志)이 있겠는가?"
"스님께서도 그들에게 물어보시죠."
"지금 묻고 있는 중이다."
"무슨 뜻입니까?"
스님은 대꾸하지 않으셨다.
14.
청림 사건(靑林師虔: ?∼904)스님이 참례하자 동산스님께서 물으셨다.
"이제 어디에서 떠나왔는가?"
"무릉(武陵)에서 옵니다."
"무릉의 법도는 여기와 무엇이 같은가?"
"오랑캐 땅에선 겨울에 죽순을 뽑습니다."
"다른 시루에 향기로운 밥을 지어 이 사람에게 공양하여라."
청림스님이 소매를 떨치며 나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뒷날 온 세상 사람들을 밟아 죽일 것이다."
고산 영(鼓山永)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대꾸하다간 물 한 방울도 받기 어려운데 무엇 때문에 다른 시루에 향기로운 밥을 지으라 하는가."
청림스님이 하루는 동산스님을 하직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려는가?"
"금륜(金輪)은 표적을 숨기지 않고, 온 세계에 홍진(紅塵)이 끊겼습니다."
"잘 간직(保任)하게."
청림스님이 조심스럽게 나가는데 동산스님께서 문에서 전송하시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떠나는 한 구절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걸음걸음 홍진을 밟으나 걸음걸음 몸 그림자가 없습니다."
"스님께선 무엇 때문에 속히 말하지 않습니까?"
"자네는 어찌 그리 성미가 급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절을 하고 떠났다.
15.
용아(龍牙: 835∼923)스님이 덕산(德山)스님에게 물었다.
"제가 막야( )의 보검을 가지고 스님의 머리를 베려고 할땐 어찌하겠습니까?"
덕산스님이 목을 빼고 다가가며 "와!" 하였더니, 용아스님이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하자, 덕산스님은 "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용아스님이 그 뒤에 동산스님에게 와서 앞의 이야기를 거론하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래, 덕산은 뭐라고 하더냐?"
"스님은 말이 없었습니다."
"말이 없었다고 하지 말고, 우선 덕산의 떨어진 머리를 노승에게 가져와 보아라."
용아스님은 그제야 깨닫고서 바로 참회하고 인사하였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덕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군. 이 몸이 죽은 지 오래인데 구제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보복 종전스님은 염( )하였다.
"용아스님은 전진할 줄만 알았을 뿐 발을 헛디딘 줄은 몰랐군."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그때 끊었어야 하는데 끊질 않았으니 이제 와서 어떻게 끊으랴."
동선 관(東禪觀)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검을 껴안아 몸을 다쳤으니 재앙과 허물을 자초했다 하겠다. 덕산스님은 머리 때문에 주인이 되어 다행히도 계산을 잘 하였으나 홀연히 동산스님에게 자취를 지적당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꼬리를 들켰다."
용아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동구의 물이 역류하게 되면 그때 가서 그대에게 말해주마."
용아스님은 비로소 그 뜻을 깨달았다.
16.
화엄 휴정(華嚴休靜)스님이 동산스님께 여쭈었다.
"제게는 이치의 길(理路)이 없어 알음알이(情識)의 작동을 면치 못합니다."
"그대는 이치의 길을 보았느냐?"
"이치의 길이 없음을 봅니다."
"그렇다면 알음알이는 어디서 생겼느냐?"
"사실 제가 묻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에 학인이 가는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리 가기만 하면 되네."
화엄스님이 땔감을 나르는데 동산스님께서 붙들어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비좁은 길에서 서로 만났을 땐 어떻겠는가?"
"엎치락뒤치락하겠지요."
"그대는 내 말을 기억하라. 남쪽에 머물면 천명이 되겠지만 북쪽에 머물면 300명에 그치리라."
17.
흠산(欽山)스님이 동산스님을 찾아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대자(大慈)스님에게서 옵니다."
"스님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색(色) 앞에서 보았느냐, 색 뒤에서 보았느냐?"
"앞뒤가 아닌 자리에서 보았습니다."
동산스님께서 묵묵히 계시자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너무 일찍 스승을 떠나 스승의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흠산스님이 암두(巖頭).설봉(雪峯)스님과 앉았을 때 동산스님께서 차를 돌렸다. 흠산스님이 이때 눈을 감자 동산스님은 말씀하셨다.
"어디 갔다 왔느냐?"
"선정에 들었다 왔습니다."
"선정은 본래 문이 없는데 어디로 들어갔느냐?"
노숙(老宿)은 대신 말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해한 사람이 매우 많다."
설두 중현(雪頭重顯: 980∼1052)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당시에 다만 암두스님. 설봉스님을 지적하면서 '이 졸기나 하는 놈들아, 차나 마셔라'했어야 했다."
18.
북원 통(北院通)스님이 찾아와 뵙자 동산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주인공에 꽉 눌러앉으면 두번째 견해(第二見)에 떨어지지 않는다."
북원 통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나오더니 말하였다.
"누군가는 그것과 짝하지 않는 자가 하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 역시 두번째 견해(第二見)인걸."
북원 통스님이 별안간 선상을 번쩍 들어서 엎어벼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저의 혀가 썩어 문드러지면 그때 가서 스님께 말씀드리지요."
북원 통스님이 그 뒤에 스님을 하직하고 영남(飛猿嶺)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동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잘해보게. 비원령(飛猿嶺)은 험준하니 잘 살펴 가게."
북원 통스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스님께서 "통화상!"하고 불렀다.
"네."
"왜 영남으로 들어가질 않는가?"
북원 통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영남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19.
도전(道全: ?∼894)스님이 동산스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벗어나는 요체입니까?"
"그대의 발 밑에서 연기가 나는구나."
도전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 다시는 다른 곳으로 유람하지 않았다.
운거스님이 이어서 말하였다.
"끝내 '발 밑에서 연기가 난다'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감히 저버리지 않았군요."
동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걸음마다 현묘한 자는 즉시 효과가 나는 법이지."
20.
동산스님께서 태수좌(泰首座)와 함께 동짓날 과자를 먹으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지탱하고 있다. 움직이고 작용하는 가운데서는 다 거두질 못한다. 말해보라. 허물이 어느곳에 있는지를."
"움직이며 작용하는 가운데 허물이 있습니다. "
동안 현(同安顯)스님이 달리 말씀하셨다.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시자를 불러 과자상을 물리라고 하셨다.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달리 수좌에게 말하였다.
"아침이 오거든 다시 초왕(楚王)에게 헌납해 보아라."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판별할 수 있었으랴. 그렇긴 하나 동산스님도 한 수 부족하다."
위산 철( 山喆)스님은 말하였다.
"여러분은 동산스님의 귀결처를 알았느냐? 몰랐다면 더러는 시비득실로 알고 있으리라. 내가 말하겠다. 이 과자는 태수좌만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누리 사람이 온다 해도 눈 바로 뜨고 엿보질 못하리라."
운개 본(雲蓋本)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에게 허공을 찢어버릴 쇠몽둥이가 있긴 했으나 깁고 꿰맬 바늘과 실은 없었다. 그가 '움직이며 작용하는데 허물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수좌는 과자를 먹어라'했어야 했다. 거기서 태수좌가 납승이었다면 먹고 나서 토해야 한다."
남당 정(南堂靜)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장막 안에서 계획을 세워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판하는 솜씨였고, 태수좌는 온몸이 입이어서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위산 과( 山果)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들었고, 태수좌는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나는 길을 가다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치욕을 씻으려고 한다. 당시에 그런 질문을 들었더라면 '영산(靈山)의 수기(授記)가 이같은 데에 이르진 않았다' 하고, 대꾸하려는 순간 과자를 면전에 확 집어던졌으리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숨통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후인들의 망상을 없애주었으리라."
정자 창(淨慈昌)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이렇게 과자상을 물리게는 했으나 요컨데 태수좌의 입은 막지 못했다."
21.
동산스님께서 유상좌(幽上座)가 오는 것을 보시더니 급히 일어나서 선상을 보며 뒤돌아서자 유상좌는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저를 피하시는지요."
"그대가 나를 못 본 줄 알았네."
22.
벼를 보는데 낭상좌(郎上座)가 소를 끌고 지나가자 동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소를 잘 보도록 하게. 남의 벼를 망칠라."
"좋은 소라면 남의 벼를 망가뜨리지 않을 겁니다."
23.
어떤 스님이 수유(茱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수행이라면 없지는 않지만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
다른 스님 하나가 동산스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가 그때 무엇 때문에 '무슨 수행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말씀을 옮기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부처의 행이지, 부처의 행."
그 스님이 돌아와 동산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유주(幽州)라면 그래도 괜찮을 듯한데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이다."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동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머리는 석 자(三尺), 목은 세 치(三寸)라네."
동산스님은 시자더러 이 말을 가지고 삼성 혜연(三聖慧然)스님에게 묻도록 하였다.
삼성스님은 시자의 손 위를 손톱으로 한 번 찔렀다. 시자가 돌아와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그것을 인정하셨다.
24.
서울의 미화상(米和尙)이 어떤 스님을 시켜 앙산(仰山)스님에게 묻도록 하였다.
"요즘에도 방편을 통한 깨달음(假悟)이 있습니까?"
앙산스님이 대답하였다.
"깨달음이라면 없질 않지만 두번째 자리(第二頭)에 떨어져 있는데야 어찌하랴."
다시 미화상은 그 스님더러 스님께 묻도록 하였다.
저 완전한 깨달음(究竟)은 어떠합니까?"
동산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도리어 그에게 물어야 하리라."
25.
진상서(陳尙書)가 물었다.
"52위 보살 가운데 무엇 때문에 묘각(妙覺)이 보이질 않습니까?"
"상서께서 묘각을 직접 보십시오."
26.
어떤 관리가 물었다.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가 납자가 되면 그때 가서 수행을 하지."
27.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였다.
"납자들이여, 늦여름 초가을에 이곳 저곳으로 갈 때 곧장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한참 잠자코 계시다가 다시 말을 이으셨다.
"만리 밖엔 한 포기 풀도 없는데 어떻게 가랴."
그 뒤에 누군가 석상(石霜)스님에게 이 말씀을 드렸더니 석상스님이 말하였다.
"어째서 문만 나서면 바로 풀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동산스님께서 듣고는 말씀하셨다.
"이 나라에 이런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대양 경현(大陽警玄: 942∼1027)스님은 말하였다.
"지금 문을 나서지 않고도 풀이 가득하다고 말하리라. 말해보라. 어느 곳으로 가야겠는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깎아지른 바위 온갖 푸른 풀을 지키지 말라. 흰구름에 눌러앉으면 종지(宗)가 오묘하지 못하리."
백운 수단(白雲守端: 1025∼1072)스님은 말하였다.
"암주(菴主)를 볼 수 있다면 바로 동산스님을 볼 것이며, 동산 스님을 본다면 암주를 보리라. 동산스님을 보기는 쉬워도 암주를 보기는 어려운데, 그가 주지(住持)에 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지도 못했느냐, '구름은 고갯마루에 한가하여 사무치질 않는데 흐르는 시냇물은 쉴새없이 바쁘다'고 했던 말을."
위산 과( 山果)스님은 말하였다.
"못과 무쇠를 절단하여 향상(向上)의 현묘한 관문을 활짝 열고 진실된 말씀으로 바로 그 사람의 요로(要路)를 지적한다. 말해보라. 그대는 '문을 나서면 바로 풀이다'고 한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석상스님은 그렇게 말했고 상봉(上封)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움직이지 말라. 움직이면 곤장 30대를 맞으리라."
경산 종고(徑山宗 : 1089∼1163)스님은 말하였다.
"사자의 젖 한 방울로 노새 젖 열 섬을 물리쳤다."
28.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뵐 수 있겠습니까?"
"같은 연배이니 격의없이 만나면 된다."
그 스님이 이어서 말하려고 하자 동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의 자취를 밟지 말고 다른 질문 하나 해보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지 못합니다."
그 뒤에 교상좌(皎上座)가 이를 들어 장경(長慶)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연배가 다른 것입니까?"
장경스님은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렇게 말했는데, 교화상! 다시 여기에서 무얼 찾는냐?"
29.
어떤 스님이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어떻게 피합니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추울 땐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덥게 하는것이지."
투자 동(投子同)스님은 말하였다.
"하마터면 그리로 갈 뻔했군."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큰 방으로 가라'고 했으리라.
운거 효순(雲居曉舜)스님은 말하였다.
"가엾은 낭야스님은 이렇게 처신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삼동(三冬)엔 따뜻한 불을 쬐고 한더위(九夏)엔 시원한 바람을 쏘이라'했으리라."
보봉 극문(寶峯克文: 1075∼1102)스님은 말하였다.
"대중아! 알았다면 신통희유하면서 어느 때라도 추위와 더위를 개의치 않아도 무방하겠으나, 모른다면 추위와 더위 속에서 겨울과 여름을 보내도록 하라."
상봉 재(上封才)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의 한 구절은 주인과 손님이 교대로 참례하고 정.편(正.偏)이 섭렵해 들어간다 할 만하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피하려느냐. 일 없이 산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노라. 여러분에게 묻노니, 알겠느냐."
늑담 문준( 潭文準: 1061∼1115)스님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을 위할 때라면 물이라 해도 따뜻하지만 남을 위하지 않을 땐 불이라 해도 차갑다."
30.
상당하여 "사은삼유(四恩三有. 주변의 인연과 윤회의 삶)를 받지 않을 자가 있느냐?" 하셨는데 대중이 대꾸가 없자 다시 말씀하셨다.
"이 뜻을 체득하지 못한다면 끝없는 근심을 어떻게 벗어나겠느냐? 다만 마음마다 사물에 걸리지 않고 걸음마다 가는 곳 없어 항상 끊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상응하리라. 부질없이 날을 보내지 말고 노력하여라."
31.
동산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에 갔다 옵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갔었느냐?"
"갔었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있더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에 도달하진 못했구나."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거기 머물지 않았느냐?"
"머무는 것은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서천(西天)에 긍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원래 그대를 의심했었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물소 뿔(駭鷄□)같은 것이다."
33.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킬 때 구해주어야 옳겠습니까, 구해주지 않아야 옳겠습니까?"
"구해준다면 두 눈이 멀어버릴 것이며, 구해주지 않으면 형체도 그림자도 안 보일 것이다."
34.
위독한 스님 하나가 동산스님을 뵈려 하기에 스님께서 그에게 갔다.
"동산스님이시여, 무엇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지 않습니까?"
"그대는 어떤 중생이더냐?"
"저는 대천제(大闡提)중생입니다."
동산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가 말하였다.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칠 땐 어찌합니까?"
"나는 일전에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갔다 돌아왔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다."
"저더러는 어느 곳으로 가라 하시렵니까?"
"좁쌀 삼태기 속으로 가라."
그 스님이 "허(噓)"하고 소리를 한 번 내더니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앉은 채로 입적(坐脫)하자 스님은 주장자로 머리를 세번 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렇게 갈 줄만 알았을 뿐 이렇게 올 줄은 몰랐구나."
소각 근(昭覺勤)스님은 말하였다.
"행각하는 납자라면 누구나 이 한 건의 일을 투철히 해결하려 해야 한다. 이 중은 이미 대천제 중생으로서 사방에서 산이 밀어 닥칠 때서야 바쁘게 손발을 허둥댔다. 동산스님이 큰 자비를 가지고 그에게 한 가닥 길을 평평하게 터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처럼 갈 줄 알았으랴. 그러므로 옛 사람은 말하기를, '임종할 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알음알이가 다하지 않는다면 노새나 말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한다'하였던 것이다."
동산스님이 말한, '나도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좁쌀 삼태기 안으로 가라' 했던 경우, 서로 맞서 사산(四山)을 막으면서 사산을 막지 않았다. 이쯤 되어서는 물통의 밑바닥이 쑥 빠져야 하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느냐?
금닭(金鷄)은 유리 껍질을 쪼아서 부수고, 옥토끼는 푸픈 바다문을 밀쳐 여는구나."
35.
야참(夜參)에 등불을 켜지 않았는데 한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물러난 뒤에 동산스님은 시자더러 등불을 켜라 하셨다. 그리고는 조금전에 말을 물었던 스님을 불러 나오라 하였다. 그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나오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밀가루 석 냥(兩)을 이 상좌에게 갖다 주어라."
그 스님은 소매를 털고 물러나더니 여기서 깨우친 바가 있었다. 드디어 의복과 일용품을 다 희사하여 재를 배풀고 3년을 산 뒤에 하직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가게."
그때에 설봉스님이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이 스님이 하직하고 떠나는데 언제 다시 올까요?"
"그는 한 번 떠날 줄만 알 뿐 다시 올 줄은 모른다네."
그 스님은 큰방으로 돌아가더니 의발(衣鉢) 아래 앉아서 죽었다. 설봉스님이 올라가 아뢰었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긴 하나 나를 따라오려면 3생(三生)은 더 죽었다 깨나야 할 것이다."
36.
동산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삼조(三祖)스님의 탑(塔)에서 옵니다."
"이미 조사의 처소에서 왔는데 다시 나를 만나서 무엇 하겠느냐?"
"조사라면 다르겠습니다만 저와 스님은 다르지 않습니다."
"내 그대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은데 되겠느냐?"
"스님부터 스스로 나오셔야 될 것입니다."
"내 조금전에는 여기 있질 않았었다."
37.
한 스님이 물었다.
"서로 만나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바로 모든 뜻을 알땐 어떻습니까?"
동산스님은 이에 합장한 손을 이마까지 올렸다.
38.
동산스님께서 덕산스님의 시자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덕산에서 왔습니다."
"찾아와서 무얼 하려는가?"
"스님을 공손히 따르렵니다."
"세간에서는 무엇이 가장 공손히 따르는 것이냐?"
시자는 대꾸가 없었다.
39.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고 그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는다. 그대들은 말해보라. 이 사람이 어떤 면목을 갖추었는지를."
운거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저는 법당에 참례하러 갑니다."
40.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부처의 향상사(向上事)를 체득해야만 조금이라도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할 땐 그대가 듣질 못한다."
"스님께선 들으시는지요?"
"말하지 않을 때라면 듣는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바르게 질문하고 바르게 답변하는 것입니까?"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묻는다면 스님께선 답변하시겠습니까?"
"물은 적도 없는데."
42.
한 스님이 물었다.
"방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은 보배가 아니다'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만두는 것이 좋겠네."
43.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시어 몇 사람이나 긍정하셨습니까?"
"긍정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어째서입니까?"
"그들은 제각기 기상이 왕과 같기 때문이다."
44.
스님께서 「유마경(維摩經)」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으셨다.
'지혜(智)로도 알 수 없고 분별(識)로도 알 수 없다' 하였는데 이것이 무슨 말인가?"
"법신을 찬탄하는 말입니다."
"법신이라 할때 그 말 자체가 벌써 찬탄한 것이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는다'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오조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의발(衣鉢)을 전수받지 못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받아야 마땅합니까?"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이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이기만 하면 의발을 전수받습니까?"
"그렇긴 하나 부득불 주지 않을 수는 없다네."
동산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저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해도 의발을 전수받기에는 합당하질 못하니 그대는 말해보라. 어떤 사람이 합당하겠는지를. 여기에서 딱 깨쳐줄 만한 한 마디(一轉語)를 던져보아라. 자, 어떤 말을 해야겠는가."
그때 한 스님이 96마디를 하였으나 모두 계합하질 못하다가 마지막 한 마디에 비로소 스님의 뜻에 적중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왜 진작 이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또 다른 스님 하나가 몰래 듣다가 마지막 한 마디만을 듣지 못하여 드디어 그 스님에게 설명해주기를 청하였으나 스님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3년을 쫓아다녔으나 스님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병이 들어 말하였다.
"나는 3년이나 앞의 이야기를 설명해 달라고 청하였으나 자비를 받지 못하였다. 선의로 하여 되지 않았으니 악의로 하겠다."
드디어는 칼을 가지고 협박하였다.
"나를 위하여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그대를 죽이겠다."
그 스님은 두려워하면서 말하였다.
"우선 기다리게. 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겠네."
이리하여 말하였다.
"설사 가져온다 해도 둘 곳이 없다고 하였다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설두 중현스님은 말하였다.
"그가 이미 받지 않았다면 그를 안목있다 하겠으나 가져오면 반드시 눈이 멀리라. 조사의 의발을 보았느냐? 여기에서 문에 들어가야 두 손에 그것을 받을 수 있으니, 대유령(大庾嶺)에서 한 사람이 이끌어도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온 나라 사람이 찾아온다 해도 떠나갔을 것이다."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그의 의발을 얻는데 모두 합당하지 않아야 도리어 옛 부처와 동참하리라. 말해보라. 동참할 자 누구인가.?
천동 정각스님은 말하였다.
"나 장노(長蘆)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곧장 가져와야지, 가져오지 않는다면 받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랴. 가져온다면 필시 안목이 있다 하겠으나, 받지 않는다면 참으로 눈이 멀었다 하리라. 알겠느냐. 관조(觀照)가 다하니 자체는 의지할 바 없어 온 몸이 대도에 합하네."
영은 악(靈恩嶽)스님이 취암의 말을 거량하고 나서 말하였다.
"양자강 도착하니 오(吳)나라 땅 다하고, 언덕 넘어 월(越)나라는 산이 많구나."
46.
한 암주는 불안하여 스님네들만 보면 언제나, "구해주게, 구해줘"라고 계속 말을 하였으나 알아듣지 못하였다. 동산스님께서 그리하여 그를 방문하였더니 암주는 역시 말하였다.
"구해주십시오."
"어떻게 구해주지?"
"약산(藥山)의 법손이 아니면 운암(雲巖)의 적자가 아니십니까?"
"그렇소."
암주는 합장하면서 "선지식이여! 안녕히 가십시오" 하더니 그냥 죽어버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 스님은 죽어서 어디로 갑니까?"
"불이 탄 뒤 한 줄기 순나물이라네."
47.
스님께서 대중운력 시간에 요사채를 순찰하다가 한 스님이 대중운력에 가지 않은 것을 보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째서 가지 않았느냐?"
"몸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건강할 땐 왜 왔다갔다 하였느냐?"
48.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평소에 학인더러 조도(鳥道)로 다니라 하셨습니다. 어떤 길이 조도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도 만나질 않는 길이라네."
"어떻게 가야 합니까?"
"곧장 그 자리에서 사심없이 가야만 하네."
"조도로 가기만 한다면 바로 본래면목 아닙니까?"
"그대는 무엇 때문에 전도(顚倒)되느냐?"
"어느 곳이 저의 전도된 곳입니까?"
"전도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종을 낭군으로 오인하느냐?"
"무엇이 본래면목입니까?"
"조도로 가지 않는 것이다."
그 뒤에 협산 선회(夾山善會: 805∼881)스님이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동산에서 옵니다."
"동산스님은 어떤 법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더냐?"
"평소에 학인들더러 3로(三路)를 배우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3로라더냐?"
"현로(玄路).조도(鳥道).전수(展手)였습니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다더냐?"
"실제로 하셨습니다."
"천리(千里)길을 따라가면 임하(林下)의 도인이 슬퍼한다."
(동산은 3로(三路:鳥道.玄路.展手)라는 격식으로 납자들을 지도했다. 조도는 새가 공중을 날 때 아무 자취를 남기지 않듯이 유무(有無).단상(斷常)등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경계, 현로는 유무.단상 등 상대를 떠난 묘한 경계, 전수는 손을 펴서 중생에게 나아가는 경계를 뜻한다.)
부산 법원(浮山法遠: 991∼1067)스님은 말하였다.
"지는 낙엽을 보지 않으면 어떻게 가을이 깊었음을 알랴."
49.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향상인(向上人) 부처가 있음을 알아야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향상인 부처입니까?"
"부처가 아니다(非佛)."
보복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부처라 해도 틀린다."
법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방편으로 부처라고 부른다."
50.
동산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신발을 만들고 옵니다."
"스스로 알았느냐, 남에게 배웠느냐?"
"남에게 배웠습니다."
"그가 그대에게 가르쳐 주더냐?"
"진실하기만 하면 어긋나지 않습니다."
51.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묘한 중에서도 가장 현묘함입니까?"
"죽은 사람의 혓바닥 같은 것이다."
52.
스님께서 발우를 씻다가 까마귀 두 마리가 개구리를 놓고 다투는 것을 보셨다. 한 스님이 문득 여쭈었다.
"어째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너 때문이지."
53.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법신부처입니까?"
"벼 줄기. 좁쌀 줄기이다."
54.
한 스님이 물었다.
"3신(三身) 가운데 어느 부처님이 여러 테두리(數)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나도 이제껏 이 문제에 간절했다."
그 스님이 그 뒤에 조산(曹山)스님에게 물었다.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길, '나도 이제껏 이 문제에 간절했다'라고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요?"
조산스님은 말하였다.
"처음부터 없애버려야 한다."
다시 설봉스님에게 묻자 설봉스님은 주장자로 입을 후려치더니 말하였다.
"나도 동산에 갔다 왔다."
승천 종(承天宗)스님은 말하였다.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一轉語)여
바다는 잔잔하고 강물은 맑아라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여
바람은 높고 달은 차가워라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여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쫓는구나
홀연히 납승이 나와서 전혀 아니라고 해도
그가 지혜 눈을 갖추었다 인정하여라."
묘희(妙喜)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어지러운 이야기로는 꿈에서도 3신(三身)을 보지 못하리라."
다시 말하였다.
"어째서 명치 끝에 침 한 방을 놓지 않느냐."
스님 회하의 한 노숙(老宿)이 운암스님에게 갔다가 돌아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운암스님께 가서 무얼 하였습니까?"
"모르겠네."
대신 말씀하셨다.
"수북이 쌓였구나."
55.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청산과 백운의 아버지입니까?"
"빽빽히 우거지지 않은 자이다."
"무엇이 백운과 청산의 아이입니까?"
"동서를 분별하지 않는 자이다."
"백운이 종일 의지한다 함은 무엇입니까?"
"떠나지 못함이다."
"청산이 아무것도 모른다 함은 무엇입니까?"
"둘러보지 않는 것이다."
56.
한 스님이 물었다.
"맑은 강 저쪽 언덕엔 어떤 풀이 있습니까?"
"싹 트지 않는 풀이 있다."
57.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세상에서 어떤 중생이 가장 괴롭겠느냐?"
"지옥이 가장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다. 여기 가사 입고서 대사(大事)를 밝히지 못한 것을 가장 괴롭다고 한다."
58.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이름이 무엇이냐?"
"아무개입니다."
"무엇이 그대의 주인공이냐?"
"뵙고 대꾸하는 중입니다."
"괴롭다, 괴로워. 요즘 사람들은 으례껏 모두 이러하니 나귀가 앞서고 말이 뒤따라가는 줄도(通常事) 모른다 하겠다. '자기를 위하려다가 불법이 가라앉는다' 하더니 바로 이런 것이구나. 객 가운데 주인(賓中主)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주인 가운데 주인(主中主)을 알아내랴."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그대 스스로 말해보라."
"제가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됩니다.
운거스님이 대신 말하기를, '내가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아니라 하겠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이처럼 말하기는 쉽다만 계속하기는 매우 어렵다"하시고는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아아, 요즈음 도를 배우는 부류들을 보면
누구나가 문 앞만을 알 뿐이니
서울에 들어가 성주(聖主)께 조회하려 하면서
동관(潼關)에 이르러 그만두는 것과도 같구나.
嗟見今時學道流 千千萬萬認門頭
恰似入京朝聖主 祇到潼關卽便休
59.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도는 무심히 사람에 합하고 사람은 무심히 도에 합한다. 그 뜻을 알고 싶으냐?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는다."
그 뒤에 어떤 스님이 조산(曹山)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늙는다'고 한 하나입니까?"
"부추켜 지탱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늙지 않는다'고 한 하나입니까?"
"고목(枯木)이다."
그 스님이 다시 소요 충(逍遙忠)스님에게 말하였더니 충스님은 말하였다.
"3종과 6의(三從六義)로다."
60.
오설(五洩)스님이 석두(石頭)스님 처소에 와서 말하였다.
"한 마디에 서로 계합한다면 머물고 계합하지 못하면 떠나겠습니다."
석두스님이 기대 앉자 오설스님은 그냥 떠났다. 석두스님은 바로 뒤따라가서 불렀다.
"스님!"
오설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석두스님은 말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것일 뿐이다. 깨달아(回頭轉腦) 무엇 하겠느냐."
오설스님은 홀연히 깨닫고 주장자를 꺾어버렸다.
동산스님께서 이 인연을 들어 말씀하셨다.
"당시에 오설선사(先師)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려웠으리라. 그렇긴 하나 아직은 가고 있는 도중이다."
61.
한 스님이 대자(大慈)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강서로 가렵니다."
"내 그대에게 한 가지 힘든 일을 시키려는데 괜찮겠느냐?"
"스님께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나를 데려갈 수 있겠느냐?"
"스님보다 더 나은 자가 있다 해도 데려가지 못합니다."
그러자 대자스님은 그만두었다.
뒤에 그 스님이 동산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해서야 되겠느냐."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라면 데려갈 수 있다고 하겠다."
법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스님께서 떠난다면 저는 삿갓을 들겠습니다."
동산스님께서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대자스님께서는 특별히 무슨 법문을 하시더냐?"
"언젠가는 이런 법문을 하셨습니다. '한 길(一丈)을 말로 하는 것이 한 치(一寸)를 가져오느니만 못하다.' "
"나라면 그렇게 말하진 않겠다."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행(行)하지 못할 것을 말해내기도 하며, 말(說)하지 못할 것을 행해내기도 한다."
62.
약산스님이 운암스님과 함께 산을 유랑하는데 허리에 찬 장도에서 쨍그랑 쨍그랑하는 소리가 나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어떤 물건이 소리를 내지?"
약산스님은 칼을 뽑아 별안간 입을 찍는 시늉을 하였다.
동산스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시중(示衆)하셨다.
"살펴보라. 저 약산스님이 몸을 던져 이 일 위했던 것을. 요즈음 세상 사람들아. 향산의 일을 밝히고 싶다면 이 뜻을 체득해야만 하리라."
약산스님은 야참(夜參)에 등불을 켜지 않고 법어를 내리셨다.
"나에게 한 구절이 있는데 수소가 새끼를 낳으면 그때 가서 말해주겠다."
한 스님이 말하였다.
"수소가 새끼를 낳는다 해도 스님께서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약산스님이, "시자야, 등불을 가져오너라" 하자 그 스님은 몸을 빼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운암스님이 이 문제를 가지고 동산스님께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중이 도리어 이해하였군. 다만 절을 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약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호남에서 옵니다."
"동정호의 물은 가득 찼더냐?"
"아직은요."
"그렇게 오랫동안 비가 내렸는데 어째서 아직 차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대꾸가 없었다.
도오(道吾)스님이 말하였다.
"가득 찼습니다."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담담(湛湛)하다."
동산스님은 이 문제를 두고 말씀하셨다.
"어느 세월엔들 늘고 불고 한 적이 있더냐."
약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점을 칠 줄 안다고 들었는데 그렇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 점 한번 쳐보아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암스님이 이 문제를 동산스님께 물었다.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소?"
"스님 태어난 달(生月)이 언제지요?"
63.
스님은 5위군신송(五位君臣頌)을 지어서 말씀하셨다.
정중편이여
삼경초야 달은 한창 밝은데
서로 만나 알지 못함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그래도 암암리에 지난날의 미움을 품는구나.
正中偏
三更初夜月明前
莫怪相逢不相識
隱隱猶懷舊日嫌
편중정이여
눈 어둔 노파 고경을 마주하여
얼굴을 분명히 비춰보니 따로 진실 없도다
다시는 머리를 미혹하여 그림자로 오인하지 말라.
偏中正
失曉老婆逢古鏡
分明賣頁面別無眞
休更迷頭猶認影
정중래여
'무' 속에 티끌세상 벗어날 길이 있으니
지금 성주(聖主)의 휘(諱)를 저촉하지 않기만 하면야
그래도 전조에 혀 끊긴 사람보다는 낫겠지.*
正中來
無中有路隔塵埃
但能不觸當今諱
也勝前朝斷舌才
겸중지여
두 칼날이 부딪치면 피하지 말라
좋은 솜씨는 마치 불 속의 연꽃같아
완연히 스스로 하늘 찌르는 뜻 있구나.
兼中至
兩刀交鋒不須避
好手猶如火裏蓮
宛然自由沖天志
겸중도여
유무에 떨어지지 않는데 뉘라서 감히 조화를 하랴
사람마다 보통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자재하게 되돌아가 재 속에 앉았네.
兼中到
不落有無誰敢和
人人盡欲出常流
折合還歸炭裏坐
64.
스님은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향시(向時)는 어떠하며, 봉시(奉時)는 어떠하며, 공시(功時)는 어떠하며, 공공시(共功時)는 어떠하며, 공공시(功功時)는 어떠하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향(向)입니까?"
스님은 말씀하셨다.
"밥 먹을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봉(奉)입니까?"
"등질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공(功)입니까?"
"괭이를 놓아버릴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공공(共功)입니까?"
"색(色)을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이 공공(功功)입니까?"
"공(共)이 아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성주(聖主)는 원래 요임금(帝堯)을 본받아
사람을 예의로써 다스리며 임금 허리를 굽히네
어느 땐 시끄러운 시장 앞을 지나며
곳곳 문물(文明)이 성스러운 조정을 축복하네.
聖主由來法帝堯 於人以禮曲龍腰
有時시時頭邊過 到虛文明賀聖朝
깨끗이 씻고 진하게 화장함은 누구를 위함일까
두견새 소리 속엔 사람더러 돌아가라 권하네
백화(百花)는 떨어졌으나 우는 소린 다함 없어
다시 어지러운 산봉우리 깊은 곳에서 우네
淨洗濃粧爲阿誰 子規聲裏勸人歸
百花落盡啼無盡 更向亂峯深處啼
고목(枯木)에 꽃이 피니 겁(劫) 밖의 봄이며
옥상(玉象)을 거꾸로 타고 기린을 쫓는다네
지금 천봉(千峯) 밖에 높이 은거하니
달 밝고 바람 맑아 좋은 날이라네.
枯木花開劫外春 倒騎玉象□麒隣
而今高隱千峯外 月皎風淸好日辰
중생과 부처가 서로 침해하지 않으니
산은 절로 높고 물은 절로 깊어라
천차만별한 현상은 분명한 일이니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가 새로워라.
衆生諸佛不相侵 山自高兮水自深
萬別千差明底事 啼處百花新
머리에 뿔이 갓 나면 이미 감당하지 못하며
헤아리는 마음으로 부처 구하니 부끄럽기도 하구려
아득한 공겁(空劫)에 아는 사람 없는데
남쪽으로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에게 물으려 하겠는가.
頭角裳生已不堪 擬心求佛好羞
沼沼空劫無人識 肯向南詢五十三
3. 부 촉
1.
조산(曹山)스님이 하직하니 이때 스님께서 드디어 부촉하셨다.
"내가 운암선사(先師)에게 있으면서 보경삼매(寶鏡三昧)에 도장찍듯 계합하여 그 요체를 몸소 궁구하였는데,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노라."
그 말씀(詞)은 이러하다.
불조께서 가만히 부촉하신
이러한 법을
네 지금 얻었으니
잘 보호할지어다.
如是之法 佛祖密付
汝今得之 宣善保護
은주발에는 눈이 달렸고
밝은 달은 백로를 숨겼는데
종류는 같질 않으나
뒤섞이면 제자리를 안다.
銀 盛雪 明月藏鷺
類之弗齊 混則知處
뜻은 말에 있질 않으니
찾아오는 기연(機緣)에
걸핏하면 소굴을 이루어
빗나가게 떨어져 잘못이네.
意不在言 來機亦赴
動成 臼 差落顧佇
등지거나 맞닿음 양쪽 다 잘못이니
큰 불덩이 같아서
형색이 나타나기만 하면
바로 물듬(染汚)에 속한다.
背觸俱非 如大火聚
但形文彩 卽屬染汚
한밤중 그대로가 밝음이나
새벽이 드러나질 않았으니
중생을 위해 법칙을 짓고
이로써 모든 고통 뽑아주라.
夜半正明 天曉不露
爲物作則 用拔諸苦
비록 함(有爲)이 아니나
말이 없음도 아니니
보경(寶鏡)에 임한 듯
형체와 그림자 서로를 마주본다.
雖非有爲 不是無語
如臨寶鏡 形影相□
너는 그가 아니나
그는 바로 너이니
세상의 어린 아이처럼
다섯 상호 완연히 갖추었다.
汝不是渠 渠正是汝
如世孀兒 五相完具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안주하지도 않는다.
시끄럽게 글 읽는 소리
유구(有句)와 무구(無句)로
끝내 사물을 얻지 못함은
말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不去不來 不起不住
婆婆和和 有句無句
終不得物 語未正故
중리(重離□□) 6효(六爻)에
편(偏). 정(定)이 번갈아 드니
포개면 3이되고
변화가 다하면 5를 이루나
질초( 草)의 맛같고
금강저(金剛杵) 같기도 하다.
重離六爻 偏正回互
疊而爲三 變盡成五
如 草味 如金剛杵
정중(正中)에 오묘하게 끼어
북도 치고 노래도 부른다
산꼭대기 지나고 길바닥도 지나며
지방 따라 길 따라 가는데
어긋나면 길(吉)하여
범하거나 거스르지 못한다.
正中妙挾 鼓唱雙擧
通宗通塗 挾帶挾路
錯然則吉 不可犯
천진(天眞)스런 오묘함은
미오(迷悟)에 속하지 않는데
인연과 시절은
고요히 밝게 나타난다
미세하기는 틈 없는 데 들어가고
크기는 방향과 처소가 끊겼으니
털끝만큼의 차이에도
화음(律呂)에 맞지 않는다.
天眞而妙 不屬迷悟
因緣時節 寂然昭著
細入無間 大絶方所
毫忽之差 不應律呂
지금 돈점(頓漸)이 있어
이 때문에 종취(宗趣)를 세우니
종취가 나뉨이여
바로 법도(規지)가 되었도다
종취를 완전히 깨쳐
진상(眞常)이 끝없이 흐르니
밖은 고요하고 중심은 요동하여
망아지를 매어 쥐를 조복시킨다.
今有頓漸 緣立宗趣
宗趣分矣 卽是規 □
宗通趣極 眞常流注
外寂中搖 係駒伏鼠
선대의 성인은 이를 불쌍히 여겨
법을 위해 보시하고 제도하였다
중생의 전도됨에 맞추어
검은 것을 희게도 하였으며
전도된 생각이 없어지자
긍정하는 마음 스스로 허락하네.
先聖悲之 爲法檀度
隨其顚倒 以뇌爲素
顚倒想滅 肯心自許
옛 법도에 부합하려거든
옛것을 관찰하라
불도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10겁(十劫)동안 나무를 관(觀)하라.
要合古轍 請觀前古
佛道垂成 十劫觀樹
호랑이의 결함같고
말 다리의 흰 점과 같아서
하열함이 있기 때문에
보궤(寶 )가 보물이 되며
경이(驚異)함이 있기 때문에
이노( 奴)가 백고(白 )가 된다.
如虎之缺 如馬之
以有下劣 賓 珍御
以有驚異 奴白
예( )는 교묘한 힘으로써
백보 밖에서 활을 쏘아 적중했으나
화살 끝과 칼 끝이 서로 만나면
교묘한 힘인들 어찌 당하랴.
以巧力 射中百步
箭鋒相直 巧力何예
목인(木人)이 노래하니
석녀(石女)가 일어나 춤을 춘다
정식(情識)이 도달하지 않는데
어찌 사려를 용납하랴
신하는 임금을 받들고
자식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법이니
순종하지 않으면 효도가 아니며
받들지 않으면 보좌가 아니다.
木人方歌 石女起舞
非情識到 寧容思慮
臣奉於君 子順於父
不順非孝 不奉非輔
가만히 행동하고 은밀히 작용하여
어리석은 듯 노둔한 듯하라
그렇게 계속할 수만 있다면
주중주(主中主)라 이름하리라.
潛行密用 如愚若魯
但能相續 名主中主
2.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말법시대엔 사람에게 마른 지혜(乾慧)가 많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실하게 알고자 한다면 세 가지 병통( 參漏)이 있다. 첫째는 사견(見 參漏)인데 중생의 근기가 지위를 떠나지 않고 독바다에 떨어져 있음을 말한다. 두번째는 망정(情 參漏)인데 향하느냐 등지느냐에 막혀 있어 견처(見處)가 치우치고 메마름을 말한다. 세번째는 망어(語 參漏)인데 오묘함을 참구하나 종지를 잃어 중생이 본말에 어두움을 말한다. 배우는 이가 탁한 지혜로 유전하여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나니 그대는 이를 알아야만 한다."
3.
또 강요(綱要)가 되는 게송 셋을 말했다.
첫째, 북 치면서 노래하는(敲唱俱行)게송.
금침(金針)에 두 바늘귀 갖추고
좁은 길에서 은밀히 모두 다를 꾸렸네
보인(寶印)이 바람에 당하여 오묘하니
거듭거듭 비단 재봉선 열렸네.
金針雙銷備 挾路隱全該
寶印當風妙 中中錦縫開
두번째, 쇠로 현로를 막는(金銷玄路) 게송.
밝음 속에 어둠이 엇바뀌니
노력은 다했으나 더더욱 깨닫기 어려워라
힘이 다하여 진퇴를 잊으니
펼쳐진 그물을 쇠로 막는구나.
交互明中暗 功齊轉覺難
力窮忘進退 金銷網輓輓
세번째, 범성에 떨어지지 않는(不墜凡聖: 또는 理事不涉이라고도 한다) 게송.
사(事)와 이(理)에 모두 끄달리지 않고
돌이켜 관조함에 그윽하고 은미함 끊겼네
바람을 등져 좋은솜씨 나쁜솜씨 없는 터에
번쩍하는 번갯불 ㅉ아가기 어려워라.
事理俱不涉 回照絶幽微
背風無巧拙 電火燦難追
4.
스님께서 몸이 편칠 못하여 사미(沙彌)더러 운거스님에게 말을 전하라 하고는 부촉하였다.
"그가 혹 스님께선 편안하시더냐 하고 묻거든 운암의 길이 차례로 끊겼다고만 말하라. 그대는 이 말을 하고서 멀리 서 있어야만 한다. 그가 그대를 후려칠까 두렵구나."
사미는 뜻(旨)을 알아차리고 가서 말을 전하였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운거스님에게서 한 방을 맞았다. 그러나 사미는 대꾸가 없었다.
동안 현(同安顯)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운암스님의 한 가지가 떨어지진 않았다 하리라."
운거 석(雲居錫)스님은 말하였다.
"상좌야 말해보라. 운암스님의 길이 끊겼는지, 끊기지 않았는지를."
숭수 조(崇壽稠)스님은 말하였다.
"옛사람이 후려쳤던 이 한 방망이의 의도는 무엇이냐?"
5.
스님께서 열반(圓寂)하면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부질없는 이름이 세상에 남게 되었으니 누가 나를 위해서 없애주겠느냐."
대중 모두 대꾸가 없었는데 그때 사미가 나와서 말하였다.
"스님의 법호를 가르쳐 주십시오."
"나의 부질없는 이름은 이미 없어졌도다."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그에게 인정받은 사람이 없군."
운거스님은 말하였다.
"부질없는 이름이 남았다면 나의 스승이 아니다."
조산스님은 말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알아낸 사람이 없다."
소산스님은 말하였다.
"용은 물을 빠져 나올 기틀이 있으나 알아본 사람이 없구나."
6.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몸이 편찮으신데 병들지 않는 자도 있습니까?"
"있지."
"병들지 않는 자도 스님을 볼까요?"
"나는 그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본다."
"스님께선 어떻게 그를 보는지 가르쳐 주시렵니까?"
"내가 볼 때는 병이 보이질 않는다."
스님은 이어서 그에게 물으셨다.
"이 가죽 푸대를 떠나 어디서 나와 만나겠느냐?"
그 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은 게송으로 법을 보이셨다.
학인은 항하사같이 많으나 하나도 깨달은 이 없으니
혀 끝에서 길을 찾는데 허물이 있다네
형체를 잊고 종적을 없애려느냐
노력하며 은근히 공(空) 속을 걸어라.
學者恒沙無一悟 過在尋他舌頭路
欲得忘形泯 蹟 努力段勤空裏步
4. 천화
이윽고 머리 깎고 목욕시키고 옷을 입히라 명하고는 종을 울려 대중과 하직하더니, 엄연하게 앉아서 천화(遷化)하셨다. 그때 대중들이 울부짖고 통곡하며 한참을 지나도 그치질 않자 스님은 홀연히 눈을 뜨고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출가인이라면 마음을 사물에 붙이지 않아야만 진실한 수행인이다. 삶을 수고롭게 하고 죽음을 애석히 여기며 슬퍼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다시 일을 주관하는 스님에게 우치재(愚痴齋)를 준비하라 하셨다. 대중들이 그래도 연연해 하자 7일간을 연장하였다. 음식과 도구가 갖추어지자 스님은 대중을 따르다가 재가 다하자 이윽고 말씀하셨다.
"절집이 무사하려면 대체로 떠날 때 시끄럽게 요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윽고 방장실로 돌아가 단정히 앉아서 영영 떠나시니 그날은 함통(咸通) 10년 3월이었다. 세수 63세. 법랍은 42세, 시호는 오본선사(悟本禪師), 탑은 혜각(慧覺)이라 이름하였다.
조당집(祖堂集) 동 산 록
1. 행록
운암(雲巖)스님의 법을 이었고, 홍주(洪州) 고안현(高安縣)에 살았다. 스님의 휘는 양개(良价), 성은 유(兪)씨며 월주(越州) 저기현(諸 縣)사람이다. 처음에 마을에 있는 절(院, 普利院)의 원주(院主)에게 출가하였는데, 원주는 스님을 감당하지 못했으나 스님은 싫어하거나 꺼리는 마음이 전혀 없이 2년을 지냈다. 원주는 스님의 공손함을 보고 「심경(心經)」을 외우라고 했는데, 하루 이틀도 못가서 환히 외워버렸다. 원주는 그 다음 경을 외우라 하니, 스님이 대답했다.
"이미 외운 심경의 뜻도 아직 모르는데 그 다음 경을 더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껏 줄줄 외워놓고 어째서 모른다 하는가?"
"심경에서 꼭 한 구절을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는 구절이 어디인가?"
"눈.귀.코.혀.몸.생각이 모두 없다(無眼耳鼻舌身意)는 구절을 모르겠으니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원주는 말이 막혔다.
이로부터 이 법공(法公)이 예삿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원주는 곧 스님을 데리고 오설 영묵(五洩 靈默: 747∼818)스님에게로 가서 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말했다.
"이 법공은 나로선 지도하기 어려우니, 스님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오설스님이 허락하니, 스님은 그 아래서 허락을 받고 3년을 지도받고 계를 받았다. 그리고는 모든 법을 다 물은 뒤에 사뢰었다.
"저는 행각을 떠나고 싶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오설스님이 말씀하셨다.
"찾아가서 물으려거든 남전(南泉)스님에게 가서 물으라."
"한 번 떠나면 인연이 다한 것이니 외로운 학은 둥우리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오설스님을 하직하고 남전스님에게로 갔다.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4)스님이 귀종(歸宗)스님의 재(齋)를 올리면서 법어(法語)를 내렸다.
"오늘 귀종스님을 위해 재를 지내는데 귀종스님이 오겠는가?"
아무도 대답이 없자 스님이 나서서 절하고는 "스님, 다시 물어 주십시오"
하여 남전스님이 물으니, 동산스님은 "길동무가 있기만 하면 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남전스님이 뛰어내려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셨다.
"비록 후생(後生)이지만 다듬어봄직하겠다."
이에 동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양민을 눌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이로부터 이름이 천하에 퍼져, 선지식(作家)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나중에 운암 담성(雲巖曇成: 782∼841)스님에게 가서 현묘한 뜻을 모두 알고는 대중(大中: 847∼879)연간이 끝날 무렵에는 신풍산(新豊山)에 가서 선요(禪要)를 크게 폈는데, 이때 한 스님이 와서 물었다.
"스님의 본래 스승을 뵙고자 하는데 어찌해야겠습니까?"
"나이가 비슷하니 걸릴 것이 없다."
학인이 다시 의문나는 점을 물으니, 스님이 대답했다.
"앞의 발자취를 거듭 밟지 않겠으니, 다른 질문을 하나 하거라."
러자 운거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저는 스님의 본래 스승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상좌(上座)를 시켜 장경(長慶)스님에게 가서 이 이야기를 들어 묻기를, "어떤 것이 나이가 비슷한 것입니까?" 하라 했더니, 장경스님이 말씀하셨다.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이 그대에게 여기까지 와서 무엇인가를 묻게 하였더란 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남전스님을 뵈었으면서 어째서 운암스님의 제사를 지냅니까?"
"나는 운암스님의 도와 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을 귀중히 여길 뿐이다."
"무엇이 비로자나불의 스승이며 법신(法身)의 주인입니까?"
"벼 줄기, 조(栗) 줄기다."
스님이 백안(百顔)스님에게 갔을 때 백안스님이 물었다.
"요즘 어디서 떠나왔는가?"
"호남(湖南)에서 떠났습니다."
"관찰사(觀察使)의 성이 무엇이던가?"
"그의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엇이던가?"
"이름도 알지 못합니다."
"밖에 나온 적이 있는가?"
"나와 본 적이 없습니다."
"일을 마땅하게 처리하던가?"
"낭막(郎幕)이 따로 있습니다."
"비록 나오지는 않았으나 일은 바로 처리하는구나."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와버렸다. 백안스님은 하룻밤이 지나서야 아직 선당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물었다.
"어제 그 두스님(頭陀)은 어디로 갔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저올시다."
"지난밤, 스님을 상대했으나 밤새도록 불안하였으니 불법이 퍽 어려운 것임을 알겠소. 두타가 여기서 여름을 지내면 나는 두 스님을 모시고 따라야 되겠소."
그리고 대신 대답하기를 청하니, 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너무 존귀하십니다."
운암스님이 원주가 석실(石室)로 떠나려는 길에 말씀하셨다.
"석실에 들어가거든 그대로 돌아와서는 안된다."
원주가 대답이 없으므로 동산스님이 말했다.
"거기엔 벌써 누군가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운암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대가 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동산스님이 대답했다.
"인정을 끊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흡사 물소(解鷄犀)같은 것이다."
2. 대기
1.
한 스님이 동산(洞山)스님에게 물었다.
"때때로 부지런히 닦으란 말씀이 퍽이나 좋은데 어째서 의발을 얻지 못했습니까?"*
"설사 '본래 한 물건도 없다' 했더라도 의발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의발을 얻겠습니까?"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가 얻을 것이다."
"이 사람이 받겠습니까?"
"받지는 않으나 그에게 주지 않을 수는 없다."
2.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키는데 구해줘야 합니까, 구해주지 말아야 합니까?"
"구해주자니 두 눈이 멀겠고, 구해주지 않자니 형상과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겠구나."
3.
운암(雲巖)스님의 재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스승(先師)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습니까?"
"내가 비록 거기에 있었으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다."
"받은 것이 없다면 재는 차려서 무엇합니까?"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으나 스승을 저버릴 수는 없다."
4.
또 재를 차리는데 물었다.
"스님께서 스승의 재를 차리시니, 스승을 긍정하는 것입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치 않는다."
"어째서 전부를 긍정치 않으십니까?"
"만일 전부를 긍정하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이 일을 안국사(安國師)에게 물었다.
"전부를 긍정하면 어째서 저버리는 것이 됩니까?"
안국사가 대답했다.
"금 부스러기가 비록 귀중하나 '아들을 아버지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백련(白蓮)스님이 말씀하셨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봉지(鳳池)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반만 긍정하는 것입니까?"
봉지스님이 말씀하셨다.
"오늘로부터 향해 들어가되 친히 뵙는 것은 우선 보류해 두게."
"무엇이 반은 긍정치 않는 것입니까?"
"행여 그대는 긍정하는 것이 아닌가?"
"전부를 긍정하는 것이 어째서 도리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까?"
"합당한 것을 붙들고 있으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
5.
한 스님이 물었다.
"3신(三身)중에 어느 부처가 테두리(數)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내가 항상 이 일에 간절하였다."
그 스님이 조산(曹山: 840∼901)스님에게 물었다.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항상 이 일에 간절했다'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조산스님이 대답했다.
"내 머리가 필요하거든 찍어 가거라."
그 스님이 설봉(雪峯: 822∼908)스님에게 가서 물으니, 설봉이 주장자로 입을 쥐어박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도 동산(洞山)에 다녀온 적이 있다."
6.
어느날 밤에 등불을 켜지 않고 있는데 한 스님이 나서서 설법을 청하거늘 스님이 시자에게 '등불을 켜라'하였다. 시자가 등불을 켜니 동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아까 이야기를 청하던 스님은 나오라."
그 스님이 나서니, 동산스님이 말씀하셨다.
"밀가루 두서너 홉을 이 스님에게 갖다 주어라."
그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갔는데 그후 이 일로 깨친 바 있어 의발을 받고 한차례 공양을 차렸다. 삼사년을 지나 하직하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잘 가라, 잘 가라."
이때 설봉스님이 곁에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저 납자가 떠났는데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
"한 번 갈 줄만 알았지 다시 오는 것은 모른다."
그 스님이 큰방에 가서 의발을 자리에 풀어놓고, 천화(遷化)하였는데 설봉스님이 보고서 알리니, 동산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해도 나보다는 3생쯤 뒤졌다 하리라."
이에 대해 다른 이야기가 있다. 두 스님이 길동무가 되었는데 한 사람이 병이 나서 열반당(涅槃堂: 절 안에 늙고 병든 사람을 돌보는 집)에서 쉬고 한 사람은 간호했다. 어느날 병난 스님이 길동무에게 말하였다.
"내가 떠나려는데 같이 갑시다."
그러자 간호하던 스님이 대답했다.
"나는 병도 없는데 어째서 같이 가겠소?."
"아직까지는 동행했다 할 수 없고, 이제부터 같이 가야 비로소 동행입니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동산스님께 가서 하직을 고하고서 가겠소."
그리고는 스님께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고하니, 동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그대가 할 일이니, 잘 다녀오라."
그 스님이 다시 열반당으로 가서 둘이 마주 앉아 온갖 일을 이야기하고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초연히 떠났다.
설봉스님이 이 법회(法席)에서 공양주(飯頭)를 맡고 있었는데, 그들이 차례로 떠난 것을 보고 동산스님께 가서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까 와서 스님께 하직을 고하고 간 스님 둘이 열반당에서 마주 앉아 죽었습니다."
동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두 사람은 그렇게 갈 줄만 알았고 전해 올 줄은 몰랐다. 내게 비한다면 3생이 뒤졌다 하리라."
7.
스님께서 어느 때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나에게 헛된 명성이 자자한데 누가 없애 주겠는가?"
어떤 사미가 나서서 말했다.
"스님께서 법호를 하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백퇴(白褪)를 치면서 말씀하셨다.
"이제 나의 헛된 명성은 사라졌다."
이에 석상 경제(石霜慶諸: 807∼888)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아무도 그를 긍정할 이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다시 물었다.
"아직도 헛된 명성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장삼이사(長三二四)는 남의 일이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헛된 명성이 있으면 우리 스승이 아니지요."
조산(曹山)스님이 말씀하셨다.
"옛분터 오늘까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소산 광인( 山匡人: 唐末五代人, 曹洞宗)스님이 말씀하셨다.
"용은 물에서 나오는 기개가 있건만 사람에게는 알아내는 기능이 없습니다.
8.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르게 묻고 바르게 대답하는 것입니까?"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 그런 이가 묻는다면 스님께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대가 묻는 것은 물음이 아니다."
9.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병(病)입니까?"
"깜빡 일어나는 것이 병이다."
"무엇이 약입니까?"
"계속하지 않는 것이 약이다."
10.
동산(洞山)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삼조의 탑전에서 옵니다."
"조사의 곁에서 왔다면서 나는 만나서 무엇하려는가?"
"조사는 학인과 다르지만 스님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의 본래 스승을 만나고 싶은데 되겠는가?"
"저의 스승이 나오셔야 합니다."
"조금 전에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었다."
11.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맹세코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고서 내가 성불하리라'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마치 열 사람이 과거에 응시했는데 한 사람이 급제하지 못하면 아홉 사람이 모두 급제치 못하거니와, 한 사람이 급제하면 아홉 사람이 모두 급제하는 것과 같다."
"스님께서는 급제를 하셨습니까?"
"나는 글을 읽지 않았다."
12.
동산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가?"
"아무개라 합니다."
"무엇이 그대의 주인공인가?"
"지금 스님 앞에서 응대하는 바로 이것입니다."
"애닯어라! 요즘 학인들은 거의가 이렇구나! 그저 당나귀 앞이니 말 뒤니 하면서 자기의 안목을 삼고 있으니 이래서 불법이 침체되지 않을 수 없구나. 객 가운데 주인(客中主)을 가려내랴."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그대가 말해 보라."
"제가 말하면 객 가운데 주인(客中主)이 됩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쉬우나 계속하기는 퍽이나 어려울 것이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제가 만일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13.
동산스님께서 설봉(雪峯)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영(嶺)으로 들어가렵니다."
"그대는 비원령(飛猿嶺)을 지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올 때에는 어찌하겠는가?"
"역시 그리로 와야 됩니다."
"누군가 비원령을 거치지 않고 거기에 이르는 이가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그 사람은 가고 옴이 없습니다."
"그대는 그 사람을 아는가?"
"모릅니다."
"알지도 못한다면 어찌 가고 옴이 없는 줄을 아는가?"
설봉스님이 대답을 못하니 동산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저 모르기 때문에, 가고 옴이 없는 것입니다."
14.
스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일(向上事)을 체득해야 그래도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말할 자격입니까?"
"이야기를 할 때엔 그대는 듣지 못한다."
"스님께서는 들으십니까?"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들을 것이다."
15.
스님께서 어느 때 말씀하셨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만리 밖에 가서 서야 한다."
한 스님이 이를 석상(石霜)스님에게 가서 말하니, 석상스님이 말했다.
"문 밖에 나서면 어디나 풀밭이다."
동산스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말씀하셨다.
"당(唐)나라 안에 그런 이가 몇이나 있을까?"
16.
염관(鹽官)스님 회상에 어떤 스님은 불법이 있는 줄은 알면서도 소임을 맡아 일하느라 수행을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귀신 사자(鬼使)가 와서 잡아가려 하니, 그가 말하되, "내가 소임을 보느라고 수행을 못했으니, 7일만 기한을 주시오" 하였다. 사자가 대답하되 "내가 가서 염라대왕께 사뢰어 허락하시면 7일 후에 다시 오고, 허락치 않으시면 곧 되돌아 올 것이다" 하였다. 7일 뒤에 사자가 다시 와서 찾으니 찾을 수 없었다.
스님께서 이 일을 이야기하시니 한 스님이 물었다.
"그가 왔을 때엔 어떻게 대꾸해야 됩니까?"
"벌써 그에게 들켰다."
17.
한 스님이 조계(曹溪)에서 왔는데 동산스님이 물었다.
"육조께서 황매산(黃梅山)에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으셨다는데 사실이던가?"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황매산에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가지도 않았다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불법은 어디서 생겼을까?"
"스님께서는 불법을 남에게 주십니까?"
"얻기는 얻었으나 매우 저돌(抵突)하는 사람이로군."
그리고는 대신 말했다.
"언제적인들 잃었던 적이 있던가?"
초경(招慶)스님이 대신 말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18.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백 가지 대답을 해도 한 물음도 없다'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맑은 하늘에 밝은 달이로다."
다시 물었다.
"지금은 '백 가지를 물어도 한 대답도 없다'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는구나."
19.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이 산에 사십니까?"
"진흙소(泥牛)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직껏 소식이 없다."
20.
한 스님이 물었다.
"백 천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닦을 것 없는 사문 한분에게 공양하는 것이 낫다는데, 백 천 부처님께서는 어떤 허물이 있습니까?"
"허물은 없고, 그저 공덕을 쌓는 편에서 한 말이다."
"공덕을 쌓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보림(保任)이 있어야 옳은 줄을 모르는구나."
21.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새의 길(鳥道)*을 걸으라' 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새의 길입니까?"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곳이다."
"어떤 것이 '걷는 것(行)입니까?"
"발 밑에 실오리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거꾸로 생각하느냐?"
"제가 언제 거꾸로 생각했습니까?"
"거꾸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하인을 상전으로 잘못 아느냐?"
"무엇이 본래 사람입니까?"
"새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이다."
22.
한 스님이 물었다.
"6국(六國)이 편치 않을 때엔 어떻습니까?"
"신하에게 공이 없다."
"신하에게 공이 있을 때엔 어떻습니까?"
"나라가 평안하다."
"평안해진 뒤엔 어떻습니까?"
"군신(君臣)의 도가 합한다."
"신하가 죽은 뒤엔 어찌 됩니까?"
"임금이 있는 줄 모른다."
23.
한 스님이 물었다.
"선지식이 세상에 나오시면 학인은 의지할 곳이 있겠지만 열반에 드신 뒤엔 어찌해야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허공의 불꽃바퀴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끝없이 망령되이 일어나는데야 어찌하겠습니까?"
"태워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24.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몇 사람에게나 스님의 불법을 인정받으셨습니까?"
"한 사람도 인정해 주는 이가 없었다."
"어째서 인정해 주지 않습니까?"
"그들은 제각기 기상이 왕과 같기 때문이다."
25.
동산스님께서 운거(雲居)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형상(色)을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아직 말상대가 안되는구나."
운거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형상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한다."
"그렇게 형상을 볼 때에는 어떠십니까?"
"마치 한 덩어리 무쇠토막과 같다."
2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스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이에 스님이 자기 이름 양개(良价)를 부르니 그 스님은 대답을 못했다.
이에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면 저는 빠져나갈 길이 없겠습니다."
그리고는 또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면 스님께 꽉 잡히고 맙니다."
27.
스님께서 태장로(太長老)에게 물었다.
"이런 것이 있다.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고 늘 움직이면서 칠흙같이 검다.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허물은 움직이고 작용하는데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혀를 차며 내쫓았다.
이에 석문(石門)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찾을래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가 나서서 물었다.
"어째서 찾을 수 없습니까?"
"칠흙같이 검기 때문이다."
28.
설봉(雪峯)스님이 장작을 나르는데 스님께서 물었다.
"무게가 얼마나 되는가?"
"온누리 사람이 다 덤벼도 들지 못합니다."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으랴?"
설봉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거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들어도 들리지 않는 줄을 알 것입니다."
소산( 山)스님이 대신 말했다.
"그저 거기에 도달할 뿐이지 어찌 든다고 들어질 것인가?"
29.
한 스님이 와서 뵈니, 동산스님께서 그의 특이함을 보시고 일어나 절을 받고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서천(西天)에서 왔습니다."
"언제 서천을 떠났는가?"
"공양(齊)하고 떠났습니다."
"너무 더디군."
"산과 물을 구경하느라 그랬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는가?"
"그가 앞으로 나서서 차수(叉手)하고 섰으니, 동산스님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말했다."
"차나 마시라."
30.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산 구경을 하고 옵니다."
"산꼭대기까지 갔었던가?"
"갔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사람이 있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산꼭대기엔 안 갔었구나."
"산꼭대기까지 가지 않았으면 어찌 아무도 없는 줄 알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어째서 거기에 살지 않았는가?"
"살기는 사양치 않으나 서천(西天)의 누군가가 긍정치 않을 것입니다."
31.
스님께서 운거(雲居)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다녀오는가?"
"산을 둘러보고 옵니다."
"어느 산이 살 만하던가?"
"어느 산인들 살지 못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당(唐)나라 안의 모든 산을 몽땅 그대가 차지해야 되겠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들어갈 문턱을 얻었구나."
"길(路)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러 왔는가?"
"길이 있다면 간격이 생깁니다."
"이 사람은 뒷날 천 만 사람이 잡아도 머물지 않을 것이다."
32.
스님께서 늑담( 潭)에 갔더니 정상좌(政上座)가 대중에게 설법하기를, "그것 참 신기하구나! 불가사의한 도의 세계(道界)여,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경계(佛界)여!" 하였다. 그것을 보고 스님께서 불쑥 물었다.
"도계다 불계다 하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도계다 불계다 하는 이는 어떤 사람인가?" 이 한 마디만 하여라."
상좌가 잠자코 말이 없으니 스님이 재촉했다.
"왜 얼른 말하지 못하는가?"
"다투면 얻지 못합니다."
"하란 말도 못하고서 어째서 다투면 얻을 수 없다 하는가?"
상좌가 대답을 못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다 도다 하는 것은 그저 이름뿐이다. 경전을 인용해서 대답해 보겠는가?"
"경전에선 무어라 했습니까?"
"뜻을 얻고는 말은 잊으라 했다."
"아직도 경전의 뜻을 마음에다 두어 병을 만드시는군요."
"도계다 불계다 하는 자는 얼마나 병이 들었는가?"
상좌는 그 일로 목숨을 마쳤다.
33.
스님께서 설봉(雪峯)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흠대(槽)를 파고 옵니다."
"도끼를 몇 번 찍어서 만들었는가?"
"한 방에 다 해냈습니다."
"저쪽 일(那邊事)은 어찌 되었는가?"
"손을 쓸 곳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 이쪽 일(언 邊事)이다. 저쪽 일은 어찌되었는가?"
설봉스님이 대답이 없거늘 소산( 山)스님이 대신 말했다.
"낫과 도끼가 없는 경지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34.
한 스님이 물었다.
"단칼에 들어가 스님의 머리를 끊으려 할 때엔 어찌합니까?"
"당당하여 표면도 끝도 없느니라."
"지금은 약하고 열세임을 어찌합니까?"
"사방 이웃에 어딘들 없으랴. 잠시 주막거리에 머물렀다 간들 괴이할 일이 있겠느냐?"
35.
스님께서 또 학인들에게 분부하셨다.
"천지 사이 우주 안에 보배 하나가 산덩이 속에 숨겨졌는데, 신통하게 사물을 알아보나 안팎이 공적하여 어디에 있는지 찾기란 매우 어렵다. 깊고 깊으니 다만 자기에게서 구할 일이지 남에게서 빌리지 말라. 빌릴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모두가 남의 마음이니, 제 성품만 못하다. 성품이 청정하면 이것이 법신이다.
초목에서 나왔도다.
견해가 이와 같다면 머무를 때엔 반드시 벗을 가려서 때때로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 멀리 갈 때엔 반드시 좋은 벗에 의탁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밝힐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고, 나를 완성해 주는 이는 벗이라' 하였다. 선한 이를 가까이하면 마치 안개 속을 다니는 것 같아서 비록 옷이 젖지는 않으나 차츰차츰 눅눅해지고 쑥이 삼(麻)이나 대(竹)속에 나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진다. 흰 모래가 진흙과 함께 있으면 함께 검어지니, 하루 스승이 되면 종신토록 하늘 같이 존중하고, 하루 주인이 되면 종신토록 아버지같이 존귀하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36.
스님께서 병든 스님을 문병하며 "힘들겠구려"하니, 병든 스님이 말하였다.
"생사의 일이 큽니다. 스님이시여."
"어찌 차조밭으로 가지 않는가?"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훌쩍 떠났다.
37.
한 스님이 물었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려도 오히려 나기 전과 같을 때가 어떠합니까?"
"누군가는 그대 손이 빈 줄을 알지 못할 것이다."
38.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제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다지만 여기 내게는 뼈를 깎는 말이 있다."
한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지만 여기 내게는 뼈를 깎는 말이 있다' 하셨다는데 그렇습니까?"
"그렇다. 이리 오너라. 그대 뼈도 깎아 주겠다."
"이쪽 저쪽 다 깎아 주십시오."
"깎지 않으리라."
"그 좋은 솜씨로 어째서 깎아 주지 않으십니까?"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세상의 명의(名醫)는 손을 쓰지 않는다 하였다."
운문(雲門)스님이 서봉(西峯)에 이르니, 서봉스님이 물었다.
"나는 동산스님이 뼈를 깎아 준다는 말만 들었을 뿐, 자세히 알지 못하는데 그대가 자세히 말해 주지 않겠는가?"
이에 운문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니, 서봉스님이 합장을 하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구나."
운문스님이 다시 이 일을 서봉스님에게 물으니, 서봉스님이 대답했다.
"동산스님이 앞에서 했던 말을 해보아라. 너의 뼈를 깎아 주겠다. 나그네제2기(賓家第二機)가 왔을 때엔 어째서 깎아 주지 않는다 하였겠느냐?"
서봉스님이 한참 읊조린 끝에 "상좌야!"하고 불러 상좌가 대답하니 "쓰레기더미로구나!" 하셨다.
39.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손을 펴서도 배우고, 새의 길에서도 배우고, 현묘한 길에서도 배운다."
이에 보수(寶壽)스님이 수긍치 않고 법당 밖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저 노장은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는가?"
이에 운거스님이 동산스님께로 가서 말했다.
"스님의 그런 말씀을 어느 한 사람은 수긍치 않습니다."
"수긍하는 이를 위해서 말했지 수긍치 않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수긍치 않는 자를 나오라 하라. 내가 만나 보겠다."
운거스님이 말씀하셨다.
"수긍치 않는 자가 없습니다."
"그대는 금방 말하기를, '누군가 한 사람은 수긍치 않는다' 하더니, 어째서 다시 '수긍치 않음이 없다' 하는가? 어서 나서게 하라."
"나서면 수긍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수긍하는 것이 수긍치 않는 것이고, 나서는 것이 나서지 않는 것이다."
40.
한 스님이 물었다.
"싱싱하게 푸른 대가 모두 진여요. 빽빽한 국화는 반야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두루하지 않은 빛이다."
"어째서 두루하지 않은 빛이라 하십니까?"
"진여도 아니고 반야도 없다."
"드러나기는 합니까?"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어째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습니까?"
"세상이 아니다."
"세상이 아니란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기에 모른다고 대답하는가? 그대로 하여금 알게 해 주겠다."
"스님께선 어째서 그르쳐주지 않으십니까?"
"어찌 어찌 하다보니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어째서 알아들을 수 없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남의 말에 막히는가?"
"그렇다면 말이 없으리이다."
"말이 없지 않느니라."
"말이 없는데 어째서 아니라 하십니까?"
"말 없는 것이 아니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서로 만나서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으나 마음을 움직였다하면 알아차린다 하였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손을 머리까지 올려 합장하였다.
보자(報慈)스님이 이 일을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동산스님이 입 속으로는 그렇게 말해놓고, 그렇게 한 것이 합장정대인가?"
대답이 없자 스스로 대신 말씀하셨다.
"맥(脈) 하나로 양쪽을 잡았다."
42.
한 스님이 물었다.
"맑은 강 저쪽에는 무슨 풀이 있습니까?"
"싹트지 않는 풀이다."
"강을 건너간 이는 어떻습니까?"
"온갖 것은 다한 것이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싹트지 않는 풀이 어째서 큰 코끼리(香象)를 갈무리하는가. 큰 코끼리라 함은 지금(今時)의 공부가 결과를 이루는 것이요, 풀이라 함은 본래 싹트지 않는 풀이요, 갈무리한다 함은 본래(本來) 행상(行相) 채워나가는 것을 인정치 않으므로 갈무리한다고 한다."
43.
한 비구니가 큰 방 앞에 와서 말했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몽땅 내 자식들이로다."
이에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어떤 사람이 동산스님께 이야기했더니,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나도 그대에게서 태어났다."
44.
한 스님이 바리때를 들고 항상 가는 속인의 집에 갔더니, 속인이 물었다.
"스님은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무엇을 가리겠소."
속인이 풀을 가득 바리때에 채워 주면서 말했다.
"바로 이르면 공양하겠지만 이르지 못하면 그냥 가시오."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 이야기하니, 동산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것은 가리는 것이니, 안 가리는 것을 갖다 주시오."
45.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마음과 법 둘다 잊어 성품이 참되면, 그것은 몇째 자리가 되는가?"
"두번째 자리입니다."
"어째서 그것을 첫번째 자리라 하지 않는가?"
"마음도 아니고 법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법을 다 잊었을 때는 마음도 아니고 법도 아닌데 어째서 다시 그렇게 말하는가?"
그리고는 대신 대답했다.
"참이 아니면 자리를 얻지 못한다."
46.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아비가 젊다는 것입니까?"
"그대는 나이가 몇이던가?"
"어떤 것이 자손이 늙었다는 것입니까?"
"내가 평소에 사람들에게 현묘한 이야기를 했었다."
47.
한 스님이 물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그저 신령스럽게 알아차려야지 일을 통해 찾을 수는 없다' 하였으니, 무슨 뜻입니까?"
"문으로 들어온 이는 귀한 사람이 아니다."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기에는 아무도 알아볼 이가 없다."
48.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과 법이 없어졌을 때는 어떻습니까?"
"입으로만 이야기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입으로만 따지지 말고 당장 그렇게 해야 한다.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그것은 부처님 일이다."
"무엇이 향상인(向上人) 부처인지 지적해 주십시오."
"부처가 아니다."
49.
한 스님이 물었다.
"4대(四大: 육신)가 화합하여 건강할 때 병들지 않는 이도 있겠습니까?"
"있다."
"병들지 않는 이가 스님을 보겠습니까?"
"나야 그를 볼 때엔 병들은 것은 보지 않는다."
50.
한 스님이 물었다.
"바로 이럴 때는 어떻습니까?"
"그대의 굴택이다."
"이렇지 않을 때엔 어떻습니까?"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지 않는 그것이 스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 아닙니까?"
"신경쓰지 않거늘 소중히 여길 것이 무엇이겠는가."
"무엇이 스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까?"
"그대에게 주먹을 날리지는 않겠다."
"무엇이 제가 소중히 여길 점입니까?"
"내게 합장하지 말아라."
"그렇다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대를 알아주겠는가?"
"결국에는 어떻습니까?"
"누가 크다 하며 누가 작다 하려 하겠는가?"
51.
한 스님이 물었다.
"우두(牛頭)스님이 사조(四祖)를 보기 전에 온갖 새가 꽃을 물고 와서 공양했는데 그런 때는 어떻습니까?"
"구슬이 손바닥에 있는 것 같다."
"본 뒤엔 어째서 꽃을 물고 오지 않았습니까?"
"온 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52.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마음.뜻.의식이 없는 사람입니까?"
"마음.뜻.의식이 없지 않은 사람이다."
"만나 뵈올 수 있겠습니까?"
"남이 전하는 말을 듣은 적도 없고 남의 부탁을 받은 적도 없다."
"가까이 모실 수는 있겠습니까?"
"그대 한 사람뿐 아니라 나도 할 수 없다."
"스님께선 어째서 가까이 하시지 못합니까?"
'마음.뜻.의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합(大蛤) 속에 구슬이 있는 줄 대합은 압니까?"
"알면 잃는다."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앞의 말에 의지하지 말라."
53.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허공의 마음으로 허공의 이치에 합한다'했는데 무엇이 허공의 이치입니까?"
"확 트여서 겉도 끝도 없다."
"무엇이 허공의 마음입니까?"
"사물에 걸리지 않는다."
"어찌해야 부합되겠습니까?"
"그대가 그렇게 말하면 부합되지 않는다."
54.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병(佛病)을 가장 고치기 어렵다' 했는데, 부처가 병입니까, 부처에 병이 있습니까?"
"부처가 병이다."
"부처가 어떤 사람에게 병이 됩니까?"
"그에게 병이 된다."
"부처가 그를 알겠습니까?"
"그를 알지 못한다."
"그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에게 병이 됩니까?"
"듣지 못했는가? 남의 가풍(家風)에 누를 끼친다 했다."
55.
한 스님이 물었다.
"말 속에서 적중(的中)함을 얻을 때가 어떠합니까?"
"적중했는데 무엇을 또 취한다 하는가"
"그렇다면 적중한 것이 아니겠습니다."
"아닌 데서 적중이 있겠는가."
55.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천 만의 사람 속에 있으면서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고,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으니 그를 어떤 사람이라 하겠는가?"
"이 사람은 항상 눈앞에 있으면서 경계를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대의 이 말은 아비 쪽에서 하는 말인가, 자식 쪽에서 하는 말인가?"
"제 소견으로는 아비 쪽에서 한 말이라 여겨집니다."
스님께서 수긍치 않고 다시 전좌(典座)에게 물었다.
"이게 어떤 얼굴인가?"
"그는 얼굴도 등도 없는 사람입니다."
스님께서 수긍치 않으니, 또 다르게 대답했다.
"이 사람은 얼굴도 눈도 없습니다."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고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는 그것이 그대로 얼굴없는 사람인데 하필 그렇게 말할 것까지야 있겠느냐?"
이어 스님께서 대신 대답했다.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다."
5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나 어긋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이는 아직 닦는(功勳) 쪽의 일이다. 닦을 것 없는 닦음(無勳之功)이 있는데 어째서 그것을 묻지 않는가?"
"닦을 것 없는 닦음은 저쪽 사람 일이 아니겠습니까?"
"뒷날 그대의 그런 말을 비웃을 안목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편하고 자연스럽다(調然)하겠습니다."
"조연하기도 하고, 조연치 않기도 하고, 조연치 않은 것도 아니다."
"무엇이 조연한 것입니까?"
"저쪽 사람이라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이 정연치 않은 것입니까?"
"가릴 곳이 없느니라."
그리고는 갑자기 시자(侍者)를 불러 시자가 오니, 스님께서는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대중에게 일러라. 추운 자는 불을 쪼이고, 춥지 않은 자는 상당(上堂)하라고."
58.
스님께서 언젠가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일은 반드시 구절구절이 끊이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장안(長安)으로 통하는 여러 길이 실오라기같이 가늘지만 끊이지 않는 것 같아야 한다. 만일 하나라도 통하지 않는 길이 있으면 그것은 군주(君主)를 받들지 않는 것이니, 이 사람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것이다. 설사 훌륭하고 묘한 법을 배웠다하여도 역시 군주를 받들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그밖의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 세상의 사소한 명리 때문에 큰 일을 놓치지 말라. 이런저런 상(相)을 내서 한 조각의 옷과 밥을 얻는다 해도 모두가 종이 되어 반드시 갚게 되어 있다. 옛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종류마다 각각 분수(分齊)가 있다' 했으니,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옷과 밥에만 매이지 말고 인연에 맡겨 집착을 내지 말라. 나의 가풍은 이럴 뿐이다. 듣고 안듣고는 끝내 관계치 않겠으니 이렇든 저렇든 그대들 마음대로 하라. 편히들 쉬어라(珍重)."
3. 천화
스님께서 함통(咸通) 10년 기축(己丑: 869) 3월 1일에 머리깎고 가사를 입으시고 종을 치게 하고는 엄숙하게 떠나시니, 대중이 통곡을 하였다. 그러자 다시 깨어나 말씀하셨다.
"마음을 물건에 두지 않는 것이 출가자의 참 수행이다. 어찌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일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원주를 불러 우치재(愚痴齋)를 차리라 하니, 원주가 슬피 울면서 재를 차려 7일을 끌었는데 스님께서도 조금씩 잡수시더니, 마지막 날에 말씀하셨다.
"스님네들이 어찌 이다지 못났는가. 큰 길을 떠나는데 어째서 이렇게 소란하고 슬퍼하는가."
여드레가 되는 날, 목욕물을 데우라 하여 목욕을 하시고 단정히 앉아서 떠나시니, 나이는 62세, 승랍은 41세였다. 시호는 오본(悟本), 탑호는 혜각(慧覺)이라 하였다. 제자들을 경책하는 게송들이 문도들 사이에 많이 퍼졌으나, 여기에는 수록치 않는다.
정수선사(靜修禪師)는 찬(讚)을 지었다.
스님께서 동산에 계시니
5백 대중이 모였네
눈으로 소리를 들으니
경계와 반연이 꿈과 같았다.
시냇가엔 곧은 대
하늘가엔 상서로운 봉황이라
세 부처에 속하지 않기에
나는 이를 애통한다.
師居洞山 聚五百衆
眼處聞聲 境緣若夢
磵泮貞筠 天邊瑞鳳
不墜三身 吾於此痛
동산양개화상사친서(洞山良价和尙辭親書)*
(이 글은 동산스님이 20세 전후에 쓴 것으로, 「5가어록 」에는 없으나 수행의 귀감이 될 만하므로 여기 싣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에서 쓰는 현행본 「치문」 에 수록되어 있어 널리 알려진 글이나 원래 「치문경훈」에는 실려 있지 않다. 번역은 조선 숙종 21년(1695) 백암 성총(栢庵性總)스님이 중간(重刊)한 「치문집주」의 원문을 저본으로 하였다.)
부모님을 하직하며
부처님도 세상에 나오실 때는 모두 부모님을 빌어 생명을 받았고, 만물이 생길 때도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는 덕분이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아니면 태어날 수 없고 천지가 아니면 자랄 수 없으니, 다 길러주시는 은혜를 입고 덮어주고 실어주는 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아, 그러나 모든 중생과 갖가지 만상은 덧없는 것이어서 생멸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려서 젖을 먹여주신 정이 두텁고 길러주신 은혜가 깊으니, 돈을 꾸러미채로 바친다 해도 그 은혜 다 갚기 어렵고, 고기를 봉양한다 해도 그것이 어찌 오래오래 사시게 하는 길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효경(孝經)」에서는 "날마다 3생(三牲: 소.염소.돼지로 만든 음식)으로 봉양해도 오히려 불효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영원한 윤회에 들도록 서로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끝없는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출가하는 공덕이 최고입니다. 생사애욕의 강물을 끊고 번뇌의 고통바다를 뛰어넘어 천생만겁 내려오던 자애로운 부모께 보답하고 3계의 네 가지 은혜(恩惠: 부처님.나라.부모.시주)를 다 갚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자식 하나가 출가하면 9족(九族)이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저 양개(良价)는 맹세코 이 생의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집에 돌아가지 않고, 영겁 티끌몸(根塵) 그대로 반야지혜를 활짝 깨치려 합니다. 바라옵건데, 부모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시어 속으로 자꾸만 생각지 마시고 거룩한 정반왕(淨飯王)과 마야(摩耶)부인을 본받으소서. 뒷날 부처님 회상에서 만나기를 기약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우선 헤어지고자 합니다.
저 양개는 부모봉양 못했다는 5역죄를 꺼려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음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몸을 금생에서 구제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몇생을 기다려 구제할 것인가"하고 하였습니다.
바라옵건데, 부모께서는 저를 잊어주소서. 노래로 말하렵니다.
마음 근원을 깨치지 못한 채 몇해 봄이 지나니
부평초 같은 세상 그럭저럭 보냄에 한숨만 쌓여갑니다.
많은 사람이 불법문중에서 도를 깨쳤습니다.
유독 저만이 세상 티끌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이제 짧은 글을 올려 권속의 사랑을 하직하고 큰 법을 깨쳐 자애로운 부모님께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눈물을 뿌리면서 자꾸만 애닯게 생각할 것 없이 애초부터 이 몸이 없었던 듯 생각하소서.
숲 속의 흰구름은 언제나 짝이 되어주고
문 앞의 푸른 봉우리는 이웃이 되어줄 것이니
세상의 물질과 명예를 벗어나고
인간의 애정을 영원히 떠나렵니다.
조사의 마음은 말끝에서 그대로 깨치게 하고
현묘한 이치는 글귀 속의 진실을 꿰뚫게 해주니
온집안 친척들이여, 만나보고자 한다면
다가올 정직한 인과(因果)를 기다리소서.
뒤에 보낸 편지
제가 부모님을 떠나 지팡이 짚고 남쪽으로 내려온 지 벌써 10년이 지나 어느덧 눈앞에는 만리나 되는 갈림길이 막혀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어머님께서는 마음을 거둬들여 도를 바라보고 생각을 다잡아 공(空)으로 돌리소서. 이별의 마음을 머물러 두지 마시고 문에 기대 기다리지 마소서.
집안일이란 인연을 따르는 것이어서 갈수록 늘어나 나날이 번뇌만 더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님은 힘써 효도하여 얼음 속에서 고기를 얻어낼 것이며, 아우는 힘을 다해 모셔서 서리 속에서 죽순이 나오라고 울 것입니다.*
보통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자기를 닦고 효도를 하여 본성(天性)에 합하고, 이 사문(沙門)은 불법문중(空門)에서 도를 바라보고 참선하여 어머님의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이제 천산만수(千山萬水)에 아득한 갈래길을 만났으니, 여덟 줄 한 장에 아쉬운대로 마음을 적어봅니다. 노래로 말하렵니다.
명리를 구하지도 선비가 되고자 하지도 않고
불법이 좋아서 세속을 버렸으니
번뇌가 다할 때 근심의 불 꺼지고
은혜의 정 끊기는 곳에 애욕의 강물 마르리
6근이 공해진 지혜(六根空慧)가 향기로운 바람에 실려와
한 생각 생기려 하면 지혜의 힘이 잡아주네
어머님께 아뢰오니, 슬퍼하며 기다리지 마시고
죽은 자식이라 없던 자식이라 여겨주소서.
어머니의 답서
내 너와 전생에 인연이 있어 처음 모자로 맺어질 때, 애정을 쏟아부어 너를 밴 뒤로 아들 낳게 해달라고 부처님과 신령님께 빌었느니라. 임신하고 달이 차서는 실낱 같은 목숨이었으나 마침내 바람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너를 보배처럼 아꼈으니, 더러운 똥도 냄새난다 하지 않았으며 고생스럽게 젖먹일 때도 고생인 줄 몰랐느니라. 차츰 자라서 공부하러 보내놓고는 조금이라도 돌아올 때가 지나면 문에 기대 바라보곤 했었는데, 보내온 편지에 굳이 출가(出家)하겠다 하는구나. 그러나 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 어미는 늙었으며, 네 형과 아우는 다들 살림이 가난하니, 내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자식은 어미를 버릴 마음이 있으나, 어미는 자식을 버릴 뜻이 없느니라. 네가 일단 다른 곳으로 떠난 뒤에는 밤낮으로 항상 슬픈 눈물을 흘리게 되었으니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구나. 그러나 이제 너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네 뜻대로 하기를 허락하노라.
나는 네가 얼음에 눕는 왕상(王祥)이나 나무를 새기는 정란(丁蘭)*이 되기를 기대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네가 목련존자(目連尊者)처럼* 되어서 나를 구제하여 윤회에서 해탈케 하고 나아가 부처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무거운 죄를 짓는 것이니, 깊이 새겨 듣도록 하여라.
* 정란(丁蘭)은 어머니께 지극히 효도하다가 돌아가시자 나무로 어머니 모습을 만들어 봉양했다.
* 목련존자는 천안통으로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생하심을 보고 간절한 기도로 구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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